신문구독을 계속 해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이다.
매일 날아오는 것이 신문이지만 어쩔 땐 일주일치가 손도 대지 않고 고스란히 쌓여 있다가
재활용품 수거 날에 한꺼번에 쫓겨나기도 한다.
두 여자가 원래 매일 신문을 들춰볼 만큼 시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주말섹션에 나오는 북리뷰 정도나 챙겨볼까, 나는 시간이 많고 한가로울 때도 신문과 별로 친하지 않다.
어차피 주요 기사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으니 굳이 신문을 펼칠 마음이 안들 때가 많다.
게다가 논조까지 편파적인 보수언론이니 가끔 사설을 보면 기가 찰 때도 있다.
그런데도 확 신문을 끊을까... 하는 문제에 직면하면
두 여자 모두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_-;;
신문의 구독 이유가 단지 '정보 습득'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 처럼 신문의 용도를 광범위하게 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
나물이나 대파 다듬을 때, 김치 담글 때, 명절마다 전 부칠 때,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손톱발톱 깎을 때,
먼저 바닥에 척 깔고 보는 것은 물론 신문이다. (설마 우리 집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 ^^)
옛날에 회사 다니던 시절에도, 점심식사를 사무실로 배달시키고 나면
너무도 당연하게 누군가 회의실이나 빈 임원실에 신문을 깔아놓곤 했다.
나중에 치우기 쉬우라고 그러는 것일 테지만, 잉크 냄새 나는 신문 위에서 밥을 먹는 것이 그리 즐겁진
않았던 것 같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그 모양이 좀 우스워보였던지, 본사에서 출장온 직원들이 짜장면 탕수육 따위의
중국음식을 시켜 회의탁자 위에 죽 늘어놓고 부페식으로 점심을 같이 먹게 되면
참 '독특한' 테이블보도 다 본다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디자이너 하나는 그런 우리가 영 불쌍해 보였던 듯, 뉴욕으로 돌아가서 비닐로 된 체크무늬 식탁보를 샘플 박스에 넣어 보내며 '제발'(please를 두번이나 썼더랬다 ㅋㅋ) 신문지 대신에 그걸 깔고 맛있게 점심을 먹길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밥먹고 나서 식탁보를 휴지로 닦아 보관하는 수고를 피하고 싶었으므로
오후 새참이든 점심이든 사무실에서 뭘 먹게 되면 그 뒤로도 줄기차게 신문지를 깔았다. ㅎㅎ
(아, 이 대목에서 요즘 사무실 풍경도 그러한지 현재 직딩이신 이웃 분들의 참고발언 부탁드립니다 ^^)
둘째, 20년 가까이 보던 신문을 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자전거, 스팀청소기, 전화기, 상품권 따위의 선물을 들이밀며 신문구독을 꼬드기던 경쟁 신문사 때문에
우리도 몇번 신문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쇠힘줄처럼 질긴 이 신문보급소에서는 3개월 구독료 무료, 유사 선물 제공 따위의 당근으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우리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선물만 받아먹고 야멸차게 구독을 끊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막상 또 저들의 구구절절한 푸념과 사탕발림 얘기를 듣고 나면 계속 신문을 보게 된다고 했다. -_-;;
째뜬 현재는 그나마 아버지 통장에서 빠져나가던 자동이체를 해지한 상태라 신문 구독 중단을 선언하고
신문대금을 안내면 그만일 것도 같다.
이 참에 내가 보고 싶었던 신문으로 확 바꿔버릴까 했더니, 심약한 우리 엄마께서 신문값도 할인받고 있는데 사람도리가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고 또 꼬리를 내리신다. 으으으...
냉정하게 신문 안본다고 했는데 혹시라도 계속 신문을 배달하는 바람에 "XX일보 사절"이라고 써놓고 보급소와 싸움이라도 벌이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 울 엄만 단박에 스트레스 받아 앓아누우실 거다. +_+
셋째 이유는... 뭔가 더 있을 것도 같은데 딱히 생각나질 않는다.
아무튼 신문도 우리 식구들에겐 뿌리 깊은 습관인 것 같다.
보지도 않으면서 단순히 아침마다 배달온 우유와 함께 집어오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익숙한 반복행위가
너무 깊이 자리를 잡은 셈이다.
사실 그 임무가 엄마에게 떨어진 것은 몇달 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걸 아주 대단한 과업인양 생각하신다.언뜻 보기에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남편이 하던 일을 당신이 이어 하고 있다는 생각에 엄마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 모녀는 둘 다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이다.
게다가 우유부단하기까지.
아...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