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삶꾸러미 2007. 11. 3. 15:35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를 유별나게 따지던 시절,
그리고 찬바람이 불 무렵 생일을 맞은 이들에게
나는 별 고민 없이 늘 장갑을 선물했다.
스카프나 목도리가 많을수록 좋은 것처럼, 장갑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언제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장갑은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참 좋은 물건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장갑; glove*에 '사랑; love'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사랑과 관련된 복합어가 아닌 한, 저렇게 love가 단어 안에 들어가 있는 말은 glove 말고는 없는 듯하다 (찾아내시는 분께 700원*a 드리겠습니다!)

장갑을 선물할 때 그래서 난 꼭 glove와 love 이야기를 전하곤 했는데
그렇게 십수년간 사랑을 전파했음에도 -_-;;; 정작 내가 사랑이 깃든 장갑 선물을 '타인에게' 받아본 기억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생일이 여름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굳이 안챙기게 된 탓임을 알기에
언젠가 한 번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러 고급스런 장갑을 고르고나서 혼자 민망해한 적도 있었다.
하이고, 내가 이리도 사랑에 굶주렸구나 싶어서 말이다.

여전히 겨울만 되면 나는 장갑 코너에서 만지작만지작 욕심을 부리다가
집에 열 개쯤 있는 장갑을 떠올리고는 지름신을 물리친 뒤
정 사고 싶으면 지인에게 선물할 것을 하나쯤 고르는 게 다였다.

그런데 어제 '드디어' 간만에 나도 장갑 선물을 받았다.
가죽느낌이 부드럽고 손목을 꽤 길게 덮는 리본 달린 날씬한 장갑이다.
역시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따뜻하고 푸근하다는 걸 실감하며
싱글벙글 오늘까지도 주책맞게 자꾸 장갑을 껴보고 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
난 또 겨울이 온 것을 슬퍼하겠지만
그래도 새 장갑 끼고 나갈 생각에 잠깐이나마 흐뭇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것이 행복이려니 하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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