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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일본어 포스터를 올리는 건
일어에 익숙하신 이웃 블로거에게 진짜 영화 제목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인지 묻기 위해서다.
영어제목은 <Memories of Matsuko>인데 마츠코 앞에 또 다른 한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수식어가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 '혐오스런'인지 궁금했다.
(헐....  찾아보니 혐(嫌)자는 맞다. 혹시 한국 배급사에서 관객 끌기용으로 붙인 건 아닐까 분노했는데 원래부터 있던 제목인가 보다. -_-;;)

암튼 영화 속에서 마츠코를 '혐오스럽다'고 평가하는 건 말년의 극히 일부만을 본
극히 일부의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혐오스럽다기 보다는... 암담하다.

영화는 유치찬란한 색감과 70년대 미국 뮤지컬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과 노래,
파란만장 신파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 영화보는 내내 저도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묘하게도 계속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어쩜 이 감독은 여자의 일생을 저렇게도 처절하게 망가뜨려놓고도 그걸 가족주의와 사랑로 포장하려든단 말인가!

이제부턴 스포일러 염려가 있으니 영화 볼 사람은 클릭하지 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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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하나마나 푸념 2007. 5. 3. 00:23
어린이날 선물을 사느라 오밤중까지 북적북적 선물코너가 요란한
O마트에 다녀오면서
요새 어린이는 예전보다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린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린이날 전날이 되면(어린이날은 휴일이니까)
수업도 거의 안하고 대강 노래나 부르면서(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이딴 노래)
놀다가 가끔씩 나타나는 엄마들이 들고 오는 과자며 사탕, 아이스크림 같은 걸 받는 게
큰 선물이었다.

그러니깐 몇몇 엄마들이 반 아이들 머릿수대로 '자야'(라면과자), '왔다바'(쵸코바였던듯), '줄줄이 사탕'  같은 걸 사갖고 와선 교실에서 나눠주었는데;;
언젠가 울 엄마도 친구 엄마랑 둘이 함께 '쮸쮸바'를 반친구들에게 돌려서 내가 기분이 아주 으쓱했던 것 같다.

그날 집에 갈 때 가방엔 남은 과자봉지와 사탕 따위가 들어 있어서
착한 누나답게 동생들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기억함.

그런데 초등학생 조카를 보니, 어린이날이 되면 엄마들이 아예 돈을 많이씩 걷어서
전체 반 아이들에게 시계나 보조가방 같은 걸 사준다고 했다.
서로 고르겠다고 난리치면 안되니깐, 여자애들 남자애들로 무조건 나눠서 다들 똑같은 걸로..
그런데 그게 모든 엄마들이 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 큰 아줌마들이 전화를 돌려서 무조건 내라고 하는 액수만큼 내야한다고 했다. -_-;; 무서운 아줌마들..

내가 그 얘길 하며 마구 분개했더니만
어제 만난 후배네 조카 학교는 한술 더 떠서
엄마들이 아예 단독으로 반아이들 선물을 30-40개씩(그나마 인원수가 적어 다행이겠다) 다 맞춰서 선물해야 한단다.
후배의 동생은 그래서 우산을 30개 맞췄고
다른 엄마는 줄넘기를 30개 사기로 하는 식으로...
켁..
그럼 어린이날 선물을 30종류나 받게 되는 거냐고 물으니, 모든 엄마들이 선물을 마련하는 건 아니니까 30종류는 아닐 거란다.
거기다 또 선생님 선물비는 따로 내야 한다고... +_+

아...
요즘 출산율 낮아지고 교육비 무서워서 도저히 애들 못 키운다며
아이들 많이 낳는 게 부의 상징이라고 빈정거리는 건 정말 진실이겠더라.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철철이 선물값도 엄청나고, 이런저런 파티도 해줘야 한대고
(울 올케도 정민공주 1학년 생일 때 전체 반아이들 다 초청하고 엄마들까지 떼거리로 몰려와 생일잔치 치르는 바람에 병났는데, 1학년때만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해서 참았더니 요즘도 계속 그렇게 하는 엄마들이 많은데다, 심지어 요샌 생일 당사자가 초대된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돌리는 '풍습'까지 생겨 더 골치라고 했다. 어휴.. 엄마들까지 아이들 생일잔치에 따라가는 건 순전히 탐사용이고--가정형편이나 교육열의 따위가 자기 애와 어울려 놀아도 되나 안되나 검사한단다--학습지나 학원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라는 얘길 듣고 보니, 나는 올케에게 그냥 확 '개무시'하라고 조언해줬다. 아.. 또 화난다)
애가 학교에서 좀 뒤떨어지면 선생한테 확실하게 '약'을 써줘야 한다나 뭐라나.
게다가 가끔씩 교장선생이 엄마들 단체로 불러다 놓고 반반마다 에어컨을 바꾸라거나
TV를 대형 벽걸이형으로 바꾸라거나 요구를 하기도 한단다.
세상이 완전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직업은 몰라도 교직만은 인간의 자질을 제대로 보고 뽑았으면 정말로 좋겠는데
교육꼬라지는 나날이 우습게 돌아가고
애들 가르치는 건 순전히 엄마들과 사교육의 힘에 맡기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쩌면 좋을꼬.

아동 심리치료를 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애들은 그저 뛰어놀며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또 해결하고 협상하고 그래야한다는데
방과후 초등학교 앞에 주욱~~ 늘어선 노란색 학원차와 엄마들 자가용을 보면
자폐아가 폭주하고, 여러가지 사회적응 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가 다 있다.

그나마 울 정민공주는 학원따위 안다니니깐 공부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을 줄 알았는데
아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한테 '인생게임'이란 보드게임을 (물론 본인이 원한 거다) 선물
받고는, 재미있게 놀라는 내 말에
'내 인생은 엄마한테 혼나는 것밖에 없으니 그거라도 갖고 놀아야 한다'고 말해 충격을 안겨줬다. 헐... *_*
겨우 10살짜리 입에서 '인생'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놀라운데, 하물며 저런 말을 하다니;;;

어린이날 기념으로 거금 들여 선물을 사주고도 고모의 마음이 아주 씁쓸했다.
나의 어린시절은 그저 행복하게 뛰어놀던 추억밖에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정민공주도 다 커서 뒤돌아보면 그렇게 행복한 추억으로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몹시 염려스럽다.

세상이 어쩌려고 이렇게 돌아가는지 원...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날 단 하루만 어린이가 행복해지라는 건 아닐 터인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로 어린이날 단 하루만 어린이 대접을 받고 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린이다운 건 수십만원짜리 선물이나 어린이날 특별공연이나 놀이공원 소풍이
없어도 그저 신나고 행복한 건데 참...

(머리를 쥐어짜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계속 말줄임표로 말이 끝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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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삶꾸러미 2007. 4. 30. 19:48
5월은 1년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다.
나무에 돋아난 연두색 이파리가 제일 예쁠 때이기도 하고
내 입에서 춥다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최초의 달인 경우가 많고 (4월은 내게 아직도 춥다)
중학교때 영어시간에 배운 달 이름 가운데 제일 짧아서 제일 먼저 외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
또 '유월이'가 간혹 6월에 태어난 하녀이름으로도 등장하는 것과 달리
'오월'은 어쩐지 어느 시인의 호 같기도 하지 않은가? ;-p

물론 학부시절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뒤범벅됐던 추억은 여기서 제외다.
민주, 항쟁, 학살, 투쟁, 처절한 생존 따위가 5월과 나란히 자리하기 훨씬 이전에
내 뇌리엔 아름다운 신록과 아카시아향기 풍기는 5월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5월이 더 슬프고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5월이 슬슬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버이날 선물의 비중도 커지더니만 이젠 조카들이 넷!
첫 조카의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며 신나게 돌아다녔던 9년전과 달리
이젠 네 녀석(그나마 작년까진 셋이었다)의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고 쇼핑하고 전달하려면 골치가 꽤나 아프다. ㅜ.ㅜ;;
정민공주처럼 콕 찝어서 선물을 요구하는 경우엔 그나마 고맙다. ㅋㅋ
스승의날도 대강 넘어가는 해가 많긴 하지만, 일단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어버이날 즈음하여 분가한 두 동생네와 스케줄을 맞춰 저녁약속을 잡고
음식점을 예약하고 그러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며칠째 올케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중인데도, 각자 친정 행사도 있고 보니
날짜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부모님 선물을 뭘로 해야하나 그것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에효...

꼭 무슨 날에만 부모님을 챙기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고 매년 해온 행사를 그냥 건너뛸 수도 없는 일이고
주말에 단체로 모여 밥먹었다 해도, 어버이날 당일을 또 그냥 넘어갈 순 없으니
난 또 한아름 장봐다가 이것저것 저녁준비를 하느라 허리깨나 아파야 할 거다. *_*
아놔... 메뉴는 또 뭘로 해야 할까.

가정의 달을 앞두고 정신 시끄러운 내 기분처럼 4월의 마지막날 날씨는 몹시 우중충하다.
얼른 골치아픈 일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5월을 맞아야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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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벚꽃놀이

삶꾸러미 2007. 4. 15. 23:56

벚꽃 축제로 유명하다는 진해나 여의도 윤중로엔 일부러 행사기간에 맞춰 가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가고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득시글 거리는 데도 싫지만, 벚꽃의 흐드러진 아름다움보다
음식냄새 진동하는 포장마차들이 더 즐비한 그런 곳... 제 아무리 축제엔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가 정말 싫다.

그런데 우리 동네 근처에도 꽤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이 늘어선 벚꽃길이 있다.
해마다 봄이면 구청에서 벚꽃길 걷기 축제도 하고 그러는데 요즘이 만개철인지
며칠 전부터 엄마가 벚꽃 구경하러 가자고 성화였다.
그치만 나는 완전히 초절정 마감모드였던 지라 (하도 열심히 블로그질을 해대서 티는 안났겠지만 ㅋㅋ) 계속 모른 척 했는데,
오늘은 급기야 엄마가 동네 친구 아줌마랑 둘이 먹을 것까지 싸들고
구청 뒷산에 있는 벚꽃길로 놀러가시더니, 너무 좋으니 어서 아부지 모시고 구경오라고 전화까지 해댔다.
아버지는 어제 오랜 산행 끝에 발목이 아픈 상태고
나는 아침까지 원고와 씨름하다 간신히 잠든 상황이라 몹시 쌀쌀맞게 엄마나 많이 보고 오시라고 마다하며 전화를 끊고는 조금 찔렸더랬다.

그런데 역시 나보다 효자인 큰동생과 올케가 엄마 전화를 받고선 벚꽃도 볼겸 저녁 먹으러 들이닥친 것.
결국 우린 저녁을 먹고 나서 단체로 밤벚꽃놀이에 나섰다.
청사초롱이 길게 매달린 벚꽃길은 제법 그럴듯했고, 시끄러운 스피커를 매단 장사치들도 하나 없는 오솔길은 몇년 전에 낮에 와봤던 때보다 쾌적했다.
알록달록 촌스러운 색깔의 조명을 비춰 노랑, 분홍, 초록, 하늘색으로 보이는 벚꽃을 보며 울 정민공주를 비롯해 거기 나온 사람들은 마구 감탄했지만, 나는 조명이 좀 덜 인공적인 색깔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시큰둥하게 오솔길을 걸었다.

벚꽃놀이를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벚꽃이 만개해 있는 것 자체보다, 하얀 꽃들이 눈송이처럼 후두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그야말로 꽃비가 마구 날리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자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당신은 벚꽃이 한창 예쁘게 핀 걸 보는 건 좋은데, 휘날려 떨어지는 걸 보면 서글퍼서 싫으시단다.
너희야 앞으로 예쁜 꽃 볼 날이 많지만, 당신은 그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얼마 안 남긴, 무슨 소리냐고... 앞으로 10년 동안 매해 꽃놀이 모시고 오겠다고 큰소리 치며 대충 순간을 얼버무렸지만 가슴이 짠했다.
같은 꽃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나도 평균수명 운운하며 이젠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짧을 거라고
늘 엄살을 떠는데, 아버지 말씀에 문득 그런 내 촐싹거림이 부끄러웠다.
울 엄만 서울태생이면서도 아직 한강 유람선도 안 타봤고, 남산 타워에도 신혼여행 가기 직전에 택시타고 둘러 본 게 마지막이고, 그 새 수없이 생겨난 서울의 여러 공원--하늘 공원, 서울 숲 따위--에도 안 가봤다면서 가끔씩 한탄하는 걸 보며, 여유 좀 있을 때마다 모시고 가리라 마음먹지만, 재작년에 선유도 공원으로 소풍 간 걸 마지막으론 또 만날 바쁘다 바쁘다 짜증만 부리며 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더는 어떻게 잘해드릴 수도 없는 순간이 온 다음에
눈물로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잘해드려야 하는데, 왜 늘 깨달음은 뒤늦게나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참으로 무서운 진리인데
내 머리가 참 나쁜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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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참 먹고 난 식곤증에 시달리다 졸음 쫒기의 일환으로 적어본다. -_-;;
(다 쓰고 나면 부디 잠이 깨길..)
이제는 끝나버린 제9회 여성 영화제에서 본 마지막 영화 두 편.
<스파이더 릴리>와 <스무살이 되기까지>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남은 표와 시간 분배와 보고 싶은 영화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영화를 고르다 보니 두 영화를 고르게 되었는데
영화의 느낌은 전혀 달랐지만 내눈엔 비슷한 코드가 감지되었다.
제목에도 적었듯이 나를 둘러싼 가족과 성장, 그리고 첫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것.

이번엔 놓쳤더라도 나중에 개봉할 때 찾아보거나 (<스파이더 릴리>는 5월쯤 개봉한다는 후문^^) 어둠의 경로로 찾아볼 분들을 위해 이제부턴 more 기능으로 해야할 듯.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해보겠지만, 모든 영화 리뷰는 스포일러 요인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므로 알아서들 보시라. ㅋㅋ





참참참...
<스파이더 릴리>를 볼 때도 거의 빈좌석이 없었는데
<스무살이 되기까지>는 완전 매진이었다면서 주최측에서 깜짝 이벤트로 선물을 나눠주었다.
물론 재수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내가 대여섯 명 뽑아 주는 이벤트에 당첨될 리 없었지만
9회째인 여성영화제가 그토록 성황리에 매진을 기록하는 걸 보니 주최측이 아님에도 몹시 뿌듯했다.
내년엔 바야흐로 10주년째. 올해는 겨우 3편으로 마감했지만 내년엔 좀 더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영화를 골라 좀 더 많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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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삶꾸러미 2007. 4. 4. 03:14

아닌 척 잊고 살지만, 죽음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매번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배고파 죽겠네, 신경질 나 죽겠네, 짜증 나 죽겠네,
심지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따위의 엄살스러운 죽음과 다른 진짜 죽음.
말로는 오늘 내일 당장 사고로 죽을 지 모르는 게 현대인의 삶이라고 늘 떠들어대지만
내심으론 당분간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떠밀어내며 살다가
덜컥 부음을 듣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면서 아득한 느낌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의 동의어이기도 한 것 같다.
어려선 장의차만 보아도,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만 보아도 섬뜩하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고
'월하의 공동묘지', '망우리 공동묘지' 같은 괴담 시리즈가 연상되었다.

제법 어른이 되고 나서도 문상을 갈 일이 생기면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는 건 도저히 못할 일이었던 것 같다.
간신히 음료수 정도나 마시거나 그것도 그냥 들고 있다가 가방에 넣어오거나
그냥 살며시 테이블 아래 놓고 나올 정도로, 나는 죽음과 관련된 그 어떤 것과도
단절되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때 본격적으로 초상이라는 것을 치르면서
비로소 죽음도, 죽음의 의식도 그저 삶의 한 부분임을 깨달았다.
온종일 꺼이꺼이 목놓아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 떠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도 어느 순간이 되면 허기가 느껴져 육개장에 밥을 말아 입에 퍼넣다 그런 내가 또 혐오스러워져서 또 눈물이 나고, 넋나간 듯 주저 앉아 있다가도 또 아는 얼굴이 눈에 비치면 가서 인사도 하고
상복 옷고름에 김치국물 묻혀 가며 음식과 술도 나르고,
문상객들 뜸해진 새벽이면 고인의 영정 앞에서 스르르 옆으로 쓰러져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하고...
그런 일들을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았을까.

어려선 공동묘지는 무조건 으스스한 곳이라 여기고, 혹시나 국도변을 지나다 봉분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을 보면 언짢은 듯 시선을 피했건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합장해 모시고 10여년 째 성묘 다니는 공원묘지는 이제 우리 가족에게
단체로 찾아가는 나들이 장소처럼 친근하기만 하다.
두분이 생전에 다시는 못 가보신 이북 땅 대신에,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에 돗자리를 넓게 펴고 절부터 올린 뒤, 소풍객들처럼 우르르 둘러 앉아 음복하고 가져간 과일과 음식 나눠 먹고 담소를 나누면, 조카들은 신나게 봉분 사이를 뛰어다닌다.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으로 죽음과 친근해진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현재에 맞이하는 죽음은 단번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차츰 문상 갈 일이 많아지는 걸 보면, 내 나이가 실감되기도 하는데
이번엔 친구 동생의 부음이라 더욱 허망했다.
장례식장엘 다녀오고 나면 며칠은 신변 정리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나의 습관이고 보니
요 며칠은 또 유언장 쓰듯 내 삶을 정리하느라 청승을 떨게다.
그 호들갑이 다만 며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여튼 그 며칠이 지나고 나면 슬며시 다시 죽음을 떠밀어 내고
모르는 척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겠거니 하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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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라고 쓰니
마치 무슨 조폭 가문 느낌이 드는군. ㅎㅎㅎ
하지만 제목은 두운(?)을 맞추는 의미에서 그냥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족'의 의미가 심히 축소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집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이제 세 집 살림으로 나뉘어 있긴 해도
부모님과 나, 동생들 부부, 조카들을 포함한 11명 대가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탐도 집안 내력인지,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걸 몹시 좋아하는 우리들은
걸핏하면 뭉쳐다니며 외식도 즐긴다.

외식의 빌미는 주로 누군가의 생일이지만, 별 다른 날이 아니어도 괜히 의미 붙여
우르르 몰려가 밥 사먹는 걸 좋아하는 게 우리 '패밀리'의 특성인 것 같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북새통을 이루며 시어머니, 며느리, 딸 할 것없이 온통 노동의 장에 투입되어야 하는 마당에, 생일까지 집에서 챙기는 건 불공평한 노동력의 착취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은 사람은 없었지만 ^^;; 생일 외식은 며느리들 집에 와서 설거지 하는 것도 안쓰러워하시는 울 아부지가 오래 전부터 정한 원칙이었다.
아 물론, 올케들 처음 결혼하자 마자 첫해엔 시부모 생신이라고 한 번 씩은 집에서 상을 차렸던 것 같은데, 집에서 어른들 생일상을 차리면 친척분들도 모두 몰려오시기 때문에 명절과 똑같이 고생문이 훤하므로 그 담부턴 원천봉쇄 차원에서 외식을 빌미로 집을 아예 비우는 수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제일 어린 조카는 아직 돌도 안됐긴 했지만, 11명의 생일을 챙기려면 1년에 최소한 11번은 단체로 밥먹기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고,
어버이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 그밖에 기념해야 할 일(동생들의 승진이라든지, 올케들의 임신이라든지^^)을 더하면 어떤 달엔 두어 번 외식을 해야 해서
음식점 선정 때문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물론 사전 계획 없이 가뿐하게 집에서 삽겹살이나 구워먹자고 하다가 죄다 모여드는 주말도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패밀리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ㅋㅋㅋ

암튼...
처음에 조카가 정민공주 하나일 때는 외식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원래 아기땐 정민공주가 천사처럼 착한 아이여서 좀처럼 울거나 떠드는 일도 없어, 어느 식당을 고르든 편히 밥먹고 수다떨고 돌아오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식당만 예약한 뒤, 우아하게 가서 먹어주고 오면 그뿐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나름대로 편식하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패스트푸드까지도
몹시 즐기시기 때문에, 단체로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가게 되는 음식점 메뉴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었다.

그런데 조카들이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천사표 공주와 달리 막가파 골통계보를 타고난 왕자들이 탄생한 뒤엔 우아 떨며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하는 음식점엔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주 어려선 빽빽 울어대며 같이 먹겠다고 난리여서 누군가 한 사람이 계속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고, 좀 큰 뒤엔 거침없이 식당 안을 뛰어다니려고 하는 통에 놈들을 잡아 앉히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패밀리가 갈 수 있는 음식점은 별도로 '룸'이 마련된 곳이거나
유사한 골통 계보를 타고난 다른 아이들을 위해 아예 놀이시설을 갖춘 곳이거나
원래 좀 시끌벅적해서 놈들이 떠들어대도 눈치가 덜 보이는 고깃집이라든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특정 동네의 지점이 아닌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패밀리보다는 연인과 친구끼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더욱이 우리 가족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좀처럼 없다는 것이 문제다.

토요일에 생일을 맞은 막내는 한참이나 고심하던 끝에(만인이 원하기는 했지만 생일 맞은 본인과 울 아부지가 싫어하는 '장어'를 먹으러 갈 것인가,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정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였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신촌 우노로 행선지를 잡아놓고는
괜찮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가끔 느끼한 걸 왕창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메뉴였지만,
신촌이라는 장소가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우리의 염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같은 TGI라도 홍대쪽에 있는 건 가족단위로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우리도 가끔 가주지만
신촌에 있는 건 주차장도 없을 뿐더러 복작복작 젊은이들로 늘 넘쳐나 주말엔 대기 손님도 줄지어 있지 않은가.

그나마 신촌 우노엔 주차 시설이 있어 다행이었으나
각종 카드 할인과 더불어 대학생은 추가로 10%나 더 할인을 해주고 보니
새파란 아이들만 쌍쌍이, 기껏해야 서넛씩 득시글득시글 거렸지, 우리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우리를 위한 넉넉한 좌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우리는 최대 8명이 앉는다는 원탁 소파 자리에 제일 어린 조카까지 11명이 구겨 앉아서
음식을 채 놓을 자리가 없어, 같은 종류 음식을  포개거나 재빨리 먹어치우거나 하는
식탐 내공을 발휘하며 동시에 조카들을 단속하고, 정신 없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필해야 했다.

우리 패밀리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갈 때 예전에 가장 염려한 것은
울 아부지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시는 참이슬 반주였으나, 경력이 오래 되다 보니
이젠 소주를 집에서 싸가지고 가거나 근처 편의점에서 사서 빈컵 달라고 해 따라놓고 드시게 하며 다른 식구들은 맥주와 다른 음료수를 마시는데, 다행히 이제껏 울 아부지의 참이슬 반주를 막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보지 못하였다. ^^;;
(홍대앞 TGI와 아웃백, 지금은 없어진 마르셰에 이어 신촌 우노까지 성공!)

물론 '우노'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대놓고 부를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어린이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side 메뉴로 한접시에 2천원 하는 김치도 있는 걸 보면 패밀리 레스토랑을 따라가려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울 아버지의 관찰에 따르면 지난 토요일 그곳에서 제일 연장자는 울 아버지셨고
제일 연소자는 돌을 앞둔 우리 막내 조카였으며,
아마 40대도 나 혼자뿐이었을 거라고 했다. -_-;;

다행히 음식은 그럭저럭 맛이 있었고, 워낙 많은 메뉴를 시켜 엄청나게 먹어댔던 덕분인지 매니저가 맥주도 더 갖다 주고 김치도 공짜로 제공하긴 했지만(김치 찾으시던 아부진 포크로 찍어 먹으려니 김치도 맛 없다며 결국 남기셨다 ㅋㅋ)
그런 패밀리 레스토랑엘 가면 우리 부모님은 메뉴도 복잡하고 늘 너무 시끄러워 정신없고 혼란스럽다고 하시는데, 신촌 우노에선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 틈에 앉은 자리까지도 불편하셨나 보다.

우리는 가끔씩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고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즐겁게 떠들며 밥먹고 싶은데, 말만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젊은이들의 집합소에 더 가까운
무늬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우리 패밀리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치사하게 맥주랑 와인 같은 것만 팔지 말고 소주도 파는!)을 좀 만들어 달란 말이지!!
하는 수 없이 다음달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참이슬 반주에 느긋하게 구운 오리 같은 걸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모시는 수밖에...
하지만 또 몇달 뒤쯤에 음식점 레퍼토리가 떨어지면, 또 다시 참이슬 가방에 싸들고 시끄러운 패밀리 레스토랑 진출을 시도할 것은 틀림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골고루 다 잘먹는 '느끼한' 음식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고, 까르륵 웃어대는 조카들의 소란스러움이 다른 소음에 잘 묻혀버리는 음식점은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만한 데가 없지 않겠나.

대규모 패밀리를 위한 넓은 좌석은 있으되, 진짜 패밀리를 찾아보는 건 드물긴 해도
우리나마 머리 하얗게 세신 부모님을 모시고 자꾸 그런 데를 다니면
다른 젊은이들도 자기 부모님 모시고 다녀볼 생각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러면 울 아부지, 엄니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동년배들을 많이 보게 되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덜 느끼시겠지.

어르신들이라고 늘 한방 오리탕이나 갈비 따위만 즐기시는 건 아니라는 걸
젊은이들이 좀 알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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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모드

삶꾸러미 2007. 2. 25. 15:39
최소한 새벽 6시에 시작되는 병원의 하루는 참 길고 지리하다.
본인이 환자일 땐 지루할 때마다 슬쩍 잠들면 그만이지만 ^^;; 보호자의 경우에 특히 그렇다는 말이다.

지난 수요일 밤, 무섭게 치솟는 왕비마마의 혈압과 혈당에 2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식겁한 우리는 곧장 응급실로 달려갔고
다행히 위중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경과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결국 입원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목요일부터 지겨운 병원 생활의 시작.
가뜩이나 예민해서 누가 옆에만 있어도 잠 못 자는 까탈스러운 인간이
병원 보조 침대에서 자는 쪽잠은 몹시 피곤하기만 하다.
그나마 엄마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에 안도해야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여... 이젠 그저 몹시 꾀병스러운(!) 병세가 호전되길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단계에 이르니, 내 몸 피곤하고, 코앞으로 닥친 마감일에 원고 못 넘기는 것 때문에 짜증스럽다.

동생들은 어서 간병인을 고용하라고 하는데,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정작 환자가 남의 손길 닿는 게 몹시 싫단다.
된장된장된장...

암튼 잠시 집에 다니러 온 김에 이런 보고 할 여유도 생겨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터인데
어떻게 밀린 원고의 난관을 해결해야 할 것인지.. 그것이 막막하다.
간병 무수리의 슬픈 비애.
캥거루족으로 사는 늙은 딸에게 역시 이럴 때 가족은 분명 멍에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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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뒤끝

삶꾸러미 2007. 2. 20. 16:13
서울이 고향이다보니
명절마다 좁은 집에서 복닥복닥 워낙 많은 손님을 치르는 까닭에 명절 뒤끝마다 나는 어디엔가 그 후유증을 털어놓았던 것 같다.
이번엔 블로그가 내 넋두리 공간으로 당첨됐다.

유난히 짧았던 이번 설 연휴는 유난히 후유증이 길다.
연일 음식준비며 뒤치다꺼리에 힘쓰느라 손바닥은 수세미처럼 버석거리는데, 핸드크림을 왕창 발라도 증세가 쉬 없어지지 않는다.
명절마다 최대 고비인 설날 저녁 30인분 잔치상의 어마어마한 설거지는 두 올케가 도맡아 했음에도 그렇다. 너무 바쁠 땐 아줌마 정신이 발휘되어, 고무장갑을 낄 여유가 없다. 내 손은 내가 아껴야 한다고 다짐했었는데, ㅋㅋㅋ 섬섬옥수 다 망가졌다.

설날 전날부터 내리 콩닥콩닥 뛰어다닌 까닭에, 설날 저녁부터 뒷다리가 땡기더니 어제는 거의 절뚝거려야 할 정도로 다리가 아팠다. 오늘도 어깨와 다리가 뻐근하고 뒷꿈치가 아프다. ㅠ.ㅠ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외가에 가는 걸 생략한지 2년째라 그나마 어제 온종일 쉬었는데도 이렇게 피곤이 안풀리다니... 노동의 강도가 이번엔 좀 심했나보다.

평소에도 우울증이 수시로 찾아오는 울 왕비마마께서
설날을 앞두고 거의 일주일전부터 너무도 꾀병스러운 명절증후군이 도져 완전히 아기처럼 돌변하는 바람에 특히 이번 설날은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른 땐 하루, 이틀 전부터 병이 나더니만 이번엔 일주일 전부터 아예 나몰라라 드러누우신 왕비마마를 보며, 늙은 딸 무수리는 완전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온 나라의 며느리, 시어머니, 아들, 딸들이 다 겪는다는 명절 증후군...
역시나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웃기는 건 몇년 째 암것도 안하고 뒷전에 앉아만 계시는 왕비마마가 홀로 명절 증후군에 덜미를 잡혔다는 것이다. -_-;; 해마다 일어나는 일이지만 해마다 짜증난다.
온갖 육체적인 고생은 우리 아랫것들(!)이 다 하는데!
우리도 왕비마마의 조언 없이 명절을 치르느라, 심리적인 부담감과  마음 고생도 만만치 않은데, 왕비마마는 그저 마음 고생 약간만으로도 정신을 놓아버린다.  나 원 참...

암튼, 와병으로 드러누우신 왕비마마의 문제를 제외하면
이번 설날도 "잘" 지나갔다.
몇년 째 나는 친척들 모두 모여  맛있게 음식 먹고 담소 나누는 걸로 명절의 의의를 마무리 짓자며, 음식 싸보내는 건 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고집쟁이 울 아부지의 반대에 부딪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대로 손이 큰 집안 답게 모든 음식은 넘치도록 많았고, 다들 맛도 있었고, 남은 전과 떡과 잡채 따위를 바리바리 싸서 고모님들 손에까지 들려 보내는 전통을 올해도 이을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난생 처음 만들어본 수정과는
울 고모님들이 "평생 먹어본 수정과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평할 만큼
너무 달지도, 진하지도, 맵거나 싱겁지도 않고, 딱 알맞은 농도의 초절정완벽진미였다. ^^V
날이 따뜻하여 미리 냉동실에 넣어 절반쯤 얼렸다가, 살얼음 살살 씹히는 상태로 대접했던 게 아주 압권이었다는 후문! 크하하하...

소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이겠지만... 흐뭇하면서 동시에 부담백배다.
명절때마다 다들 수정과 내놓으라고 할 테니까... 쩝...

암튼 이번에도 왕비마마 대신, "수고 참 많았다"는 인사와 함께 "라니는 아까워서 어디 딴집에 못 준다"는 친척 어르신들의 말을 계면쩍게 들으며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 내가 이렇게 몸이 바스라져라 열심히 일하고 또 뿌듯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딸이 아니고 며느리의 입장에서라면 아마 입이 댓발은 더 나와서 투덜대며 명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속의 나와 달리 매번 조금도 투덜대지 않고 씩씩하게 명절 일손을 도운 두 올케가 그래서 더 기특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무사히 명절 치른 기념으로 이번에도 세 여자만 뭉쳐서 단합대회라도 해야겠다.
왕비마마까지 네 여자가 모이면 더욱 좋겠지만, 왕비여사는 하나도 수고 안 했으니 자격상실이다. 쳇...

2주전 계획은,
명절 노동으로 쑤시는 삭신을 다 같이 찜질방에 가서 노곤하게 풀자는 것이었는데
꾀병쟁이 왕비여사 때문에 그것도 다 글렀으니, 그저 뜨뜻한 방바닥에나 또 드러누워 어깨와 허리를 지져봐야겠다.
내일부턴 정신차리고 작업모드로 진입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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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준비

삶꾸러미 2007. 2. 16. 16:58
8남매 장남이신 울 아부지의 자랑스러운 '고명딸'로 태어나
나는 명절에 대한 기억이 아스라히 남아 있을 때부터 명절 노동에 손을 보탰던 것 같다.
제일 쉬운 단계인 "생선 전 밀가루 묻히기"부터.. ^^;;

이제 그 일은 작년부터 정민공주의 몫이 되었으니..
정민이도 나중에 커서 명절이면 자기도 엄마랑 고모 거들어서 포뜬 생선에 밀가루 묻혔다고 추억하게 되겠지.

"남들 다 가는"(?) 시집을 안 가고 버티기에 들어간지 꽤 됐지만
명절은 며느리가 아닌 나에게도 제법 버거운 노동의 장이다.
부실한 엄마 대신, 장보기부터 명절음식 총감독을 해온 연차가 제법 되기 때문...
음식 솜씨 좋으신 작은엄마들이 명절이며, 제사 때마다 미리 와서 도와주시지만, 이젠 환갑을 바라보시는 그분들은 좀 쉬실 때가 된 것 같아서, 올케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작년부터 우리끼리 음식준비 다 해보자고 다짐했다.
우리식구만 달랑 먹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3, 40명쯤 되는 친척분들이 드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건 역시나 부담이 크다.
하지만 몇년간의 전적으로 보아, 올해도 무사히 맛있고 푸짐하게 잘 지나갈 것이라 여기며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명절 때 다 팽개치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픈 나의 "로망"이 과연 언제나 이루어질까.. 하는 것이 서글플 뿐. ^^;;
하긴 그런 로망이 있긴 해도, 일년에 몇번 우글우글 다들 모이시는 친척분들이랑 맛있는 거 나눠먹고 세뱃돈 받고(요샌 부모님 밖에 안 주시지만 ㅜ.ㅜ;;)
고스톱 치시는 작은 아버지들 옆에서 개평 얻어내고, 애들 끼리 윷점치고 그러는 게 나는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제법 즐기는 편이다.
명절의 즐거움이 여성들의 가열찬 노동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 속상한데... 그거야 아부지를 비롯한 모든 남자들을 자꾸 부려먹으면 되지 않을까...(라지만 막강한 설거지를 좁은 부엌에서 해치우는 건 아무래도 동생놈들한테 역부족이더라. 쩝..)

암튼 오늘은 난생처음 수정과를 끓이고 있다.
마음 같아선 조카들이 좋아하는 식혜도 만들고 싶지만, 아무래도 엿기름과 밥알 띄우는 게 자신 없어서, 그냥 계피와 생강을 푹푹 끓이기만 하면 되는 수정과에 도전했다.

온 집안에 풍기는 계피 냄새가 그럴듯하게 명절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과연 제 맛이나 나주려는지.. 슬쩍 걱정이 든다.

오늘 안에 대청소도 해야하는데...쩝.
청소는 아무래도 나보다 더 꼼꼼하신 아부지를 닥달해봐야겠다.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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