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라고 쓰니
마치 무슨 조폭 가문 느낌이 드는군. ㅎㅎㅎ
하지만 제목은 두운(?)을 맞추는 의미에서 그냥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족'의 의미가 심히 축소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집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이제 세 집 살림으로 나뉘어 있긴 해도
부모님과 나, 동생들 부부, 조카들을 포함한 11명 대가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탐도 집안 내력인지,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걸 몹시 좋아하는 우리들은
걸핏하면 뭉쳐다니며 외식도 즐긴다.

외식의 빌미는 주로 누군가의 생일이지만, 별 다른 날이 아니어도 괜히 의미 붙여
우르르 몰려가 밥 사먹는 걸 좋아하는 게 우리 '패밀리'의 특성인 것 같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북새통을 이루며 시어머니, 며느리, 딸 할 것없이 온통 노동의 장에 투입되어야 하는 마당에, 생일까지 집에서 챙기는 건 불공평한 노동력의 착취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은 사람은 없었지만 ^^;; 생일 외식은 며느리들 집에 와서 설거지 하는 것도 안쓰러워하시는 울 아부지가 오래 전부터 정한 원칙이었다.
아 물론, 올케들 처음 결혼하자 마자 첫해엔 시부모 생신이라고 한 번 씩은 집에서 상을 차렸던 것 같은데, 집에서 어른들 생일상을 차리면 친척분들도 모두 몰려오시기 때문에 명절과 똑같이 고생문이 훤하므로 그 담부턴 원천봉쇄 차원에서 외식을 빌미로 집을 아예 비우는 수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제일 어린 조카는 아직 돌도 안됐긴 했지만, 11명의 생일을 챙기려면 1년에 최소한 11번은 단체로 밥먹기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고,
어버이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 그밖에 기념해야 할 일(동생들의 승진이라든지, 올케들의 임신이라든지^^)을 더하면 어떤 달엔 두어 번 외식을 해야 해서
음식점 선정 때문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물론 사전 계획 없이 가뿐하게 집에서 삽겹살이나 구워먹자고 하다가 죄다 모여드는 주말도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패밀리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ㅋㅋㅋ

암튼...
처음에 조카가 정민공주 하나일 때는 외식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원래 아기땐 정민공주가 천사처럼 착한 아이여서 좀처럼 울거나 떠드는 일도 없어, 어느 식당을 고르든 편히 밥먹고 수다떨고 돌아오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식당만 예약한 뒤, 우아하게 가서 먹어주고 오면 그뿐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나름대로 편식하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패스트푸드까지도
몹시 즐기시기 때문에, 단체로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가게 되는 음식점 메뉴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었다.

그런데 조카들이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천사표 공주와 달리 막가파 골통계보를 타고난 왕자들이 탄생한 뒤엔 우아 떨며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하는 음식점엔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주 어려선 빽빽 울어대며 같이 먹겠다고 난리여서 누군가 한 사람이 계속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고, 좀 큰 뒤엔 거침없이 식당 안을 뛰어다니려고 하는 통에 놈들을 잡아 앉히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패밀리가 갈 수 있는 음식점은 별도로 '룸'이 마련된 곳이거나
유사한 골통 계보를 타고난 다른 아이들을 위해 아예 놀이시설을 갖춘 곳이거나
원래 좀 시끌벅적해서 놈들이 떠들어대도 눈치가 덜 보이는 고깃집이라든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특정 동네의 지점이 아닌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패밀리보다는 연인과 친구끼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더욱이 우리 가족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좀처럼 없다는 것이 문제다.

토요일에 생일을 맞은 막내는 한참이나 고심하던 끝에(만인이 원하기는 했지만 생일 맞은 본인과 울 아부지가 싫어하는 '장어'를 먹으러 갈 것인가,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정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였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신촌 우노로 행선지를 잡아놓고는
괜찮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가끔 느끼한 걸 왕창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메뉴였지만,
신촌이라는 장소가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우리의 염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같은 TGI라도 홍대쪽에 있는 건 가족단위로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우리도 가끔 가주지만
신촌에 있는 건 주차장도 없을 뿐더러 복작복작 젊은이들로 늘 넘쳐나 주말엔 대기 손님도 줄지어 있지 않은가.

그나마 신촌 우노엔 주차 시설이 있어 다행이었으나
각종 카드 할인과 더불어 대학생은 추가로 10%나 더 할인을 해주고 보니
새파란 아이들만 쌍쌍이, 기껏해야 서넛씩 득시글득시글 거렸지, 우리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우리를 위한 넉넉한 좌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우리는 최대 8명이 앉는다는 원탁 소파 자리에 제일 어린 조카까지 11명이 구겨 앉아서
음식을 채 놓을 자리가 없어, 같은 종류 음식을  포개거나 재빨리 먹어치우거나 하는
식탐 내공을 발휘하며 동시에 조카들을 단속하고, 정신 없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필해야 했다.

우리 패밀리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갈 때 예전에 가장 염려한 것은
울 아부지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시는 참이슬 반주였으나, 경력이 오래 되다 보니
이젠 소주를 집에서 싸가지고 가거나 근처 편의점에서 사서 빈컵 달라고 해 따라놓고 드시게 하며 다른 식구들은 맥주와 다른 음료수를 마시는데, 다행히 이제껏 울 아부지의 참이슬 반주를 막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보지 못하였다. ^^;;
(홍대앞 TGI와 아웃백, 지금은 없어진 마르셰에 이어 신촌 우노까지 성공!)

물론 '우노'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대놓고 부를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어린이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side 메뉴로 한접시에 2천원 하는 김치도 있는 걸 보면 패밀리 레스토랑을 따라가려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울 아버지의 관찰에 따르면 지난 토요일 그곳에서 제일 연장자는 울 아버지셨고
제일 연소자는 돌을 앞둔 우리 막내 조카였으며,
아마 40대도 나 혼자뿐이었을 거라고 했다. -_-;;

다행히 음식은 그럭저럭 맛이 있었고, 워낙 많은 메뉴를 시켜 엄청나게 먹어댔던 덕분인지 매니저가 맥주도 더 갖다 주고 김치도 공짜로 제공하긴 했지만(김치 찾으시던 아부진 포크로 찍어 먹으려니 김치도 맛 없다며 결국 남기셨다 ㅋㅋ)
그런 패밀리 레스토랑엘 가면 우리 부모님은 메뉴도 복잡하고 늘 너무 시끄러워 정신없고 혼란스럽다고 하시는데, 신촌 우노에선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 틈에 앉은 자리까지도 불편하셨나 보다.

우리는 가끔씩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고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즐겁게 떠들며 밥먹고 싶은데, 말만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젊은이들의 집합소에 더 가까운
무늬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우리 패밀리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치사하게 맥주랑 와인 같은 것만 팔지 말고 소주도 파는!)을 좀 만들어 달란 말이지!!
하는 수 없이 다음달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참이슬 반주에 느긋하게 구운 오리 같은 걸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모시는 수밖에...
하지만 또 몇달 뒤쯤에 음식점 레퍼토리가 떨어지면, 또 다시 참이슬 가방에 싸들고 시끄러운 패밀리 레스토랑 진출을 시도할 것은 틀림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골고루 다 잘먹는 '느끼한' 음식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고, 까르륵 웃어대는 조카들의 소란스러움이 다른 소음에 잘 묻혀버리는 음식점은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만한 데가 없지 않겠나.

대규모 패밀리를 위한 넓은 좌석은 있으되, 진짜 패밀리를 찾아보는 건 드물긴 해도
우리나마 머리 하얗게 세신 부모님을 모시고 자꾸 그런 데를 다니면
다른 젊은이들도 자기 부모님 모시고 다녀볼 생각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러면 울 아부지, 엄니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동년배들을 많이 보게 되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덜 느끼시겠지.

어르신들이라고 늘 한방 오리탕이나 갈비 따위만 즐기시는 건 아니라는 걸
젊은이들이 좀 알아야 할 터인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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