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08.03.07 한약 8
  2. 2008.02.09 첫째 기질 12
  3. 2008.02.04 수다쟁이 5
  4. 2008.01.28 경주를 가다 11
  5. 2008.01.24 뜬금없는 여행 8
  6. 2008.01.21 다시 찾은 고흐전 17
  7. 2008.01.16 일상복귀 17
  8. 2008.01.15 무수리의 삶 6
  9. 2007.12.24 재롱잔치 7
  10. 2007.12.03 식객 7

한약

투덜일기 2008. 3. 7. 15:49
늘 감정이 펄럭거리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요 며칠 기분이 줄곧 바닥이다.
이유는 동거인이자 나의 상전이신 왕비마마와 그녀의 한약 추종 때문이다. -_-;;
대체의학과 한방이 서양인들에게도 인정되는 추세라지만
나는 침술은 몰라도 한약엔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물 맑고 공기 맑은 산천에서 자란 한약재로 사람을 고쳤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요샌 툭하면 중국산 한약재에서 맹독성 농약 같은 게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중국산 한약재 때문에 얼마 전 또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 본 뉴스엔 한의사와 약재상들도 국산 한약재와 중국산 한약재를 구분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던데, 이윤추구에 눈이 어두운 악덕업자들은 값싸고 질 나쁜 중국산 한약재 수입을 관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몸에 좋은 것들을 죄다 끓여 우려 마시는 한약이 어찌 몸에 나쁠 수 있겠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우리 왕비마마 말고도 주변에 한약 추종자들이 꽤 있다) 나는 한약 잘못 먹고 간이 손상되어 한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던 노친네들(주로 지인들의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사건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 왕비마마는 지병이 하도 많으신 관계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치료제는 물론 우울증 치료제와 당뇨병 후유증으로 변형된 말초신경 때문에 정형외과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드시는 약의 양이 약간 과장하면 정말 한 주먹이다.
(맞다, 요샌 또 거기다 이비인후과 감기약까지..)

그런데다가 또 한약이라니!
엄마의 여러 주치의들은 한약을 먹어도 되냐고 물으면 펄쩍뛰며 울 엄마를 말리곤 하는데
대학병원 주치의 상담이라는 것이 빨라야 한달, 보통은 3개월, 당뇨병 센터 같은 곳은 6개월에 한번씩 진료를 받고 약을 타오기 때문에 그 긴 기간동안 울 엄마는 수시로 한의원을 찾아가 침도 맞고 한약을 먹어보라는
한의사들의 꼬드김에 홀딱홀딱 넘어가신다. ㅠ.ㅠ

양약으로 고칠 수 없다는(당뇨 후유증으로 변형된 신경은 수술로도 100% 복원이 불가능한데 울 엄마 같은 경우 워낙 겁이 많고 연세도 있고 우울증 심해질 수 있다며 그냥 약간 불편하게 사시라는 것이 주치의의 결론)
여러 병들을 한방으로 말끔히 낫게 하였다는 말이 있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건 병원에서 표기한 암이나 중증질환을 운동이나 유기농 식이요법으로 극복했다거나 하는 것처럼
분명 다른 노력이 병행되었을 것이다.
가만히 드러누워 침만 맞고 값비싼 한약을 먹어서 나은 것이 아니고!

내 주변에도 해마다 환절기가 되면 반드시 '보약'을 먹고 기운을 얻는다는 지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평생 단 한 번 '보약'이란 것을 먹어본(그나마도 먹다가 나중엔 몰래몰래 버렸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전혀 효과가 없었다. -_-;
비싼 돈 주고 지어주신 보약을 버리기까지 했던 건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고약한 냄새 나고 색깔도 끔찍하며 약효도 의심스러운 한약을 굳이 먹어야한다는 사실이 괴롭기도 하려니와
설사 좋은 약이라고 해도 '나에겐' 약효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음이 지독히도 싫은데 행여나 내 몸이 제대로 약기운을 받아들이기라도 했을라고?
위약효과로 엉뚱한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듯
좋은 약도 의심하고 싫어하는 회의주의자의 몸엔 잘 들을 리가 없을 것이다.

에효...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돌파리 같은 한의사는 울 엄마의 손발저림과 붓기와 비만을 몽땅 다 낫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한약을 권해왔는데, 그간 내가 침맞는 건 몰라도 한약은 절대 안된다고 결사반대하며 펄펄뛰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왕비마마께선 또 턱하니 한약을 지어오셨다.
더욱 웃기는 건 노친네들이 대개 자식들과 한약 때문에 불화가 있는지 노친네 환자들이 지은 한약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죄다 그 한의원에 약을 두고 먹는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더욱 의심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무자격 한의원에서 환자마다 진맥하고 약을 지어준다더니 완제품으로 한약을 대량 만들어놓고 무작위로 이름만 적어 상자에 담아 나눠주다 걸린 적도 있었단 말이다!)
해서 울 왕비마마께서도 내 눈치보일까봐 일부 몇개만 달랑 집에 가져다놓았다가 나한테 들킨 것.
ㅠ.ㅠ

이제 나의 임무는 엄마가 또 쓰러지면 119불러서 응급실로 모셔가는 것뿐이니 시한폭탄 쳐다보듯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울며불며 왕비에게 폭언을 퍼부은 것이 이틀 전.
집안 분위기는 당연히 계속 싸늘하고 착 가라앉았다.
뒤끝이 그리 긴 인간은 아니지만, 딸보다 돌파리 한의사를 더 신뢰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다.
울 엄마의 수많은 지병을 제가 뭔데 다 낫게 해주겠다고 장담을 한단 말인가?? 허준의 현신이라도 되나??
엄마보다는 돈벌이에 눈 어두워 허준인 척 하는 한의사놈에게 더 화가 나긴 하지만, 아 대체 울 엄만 한약을 왜 그리도 못 먹어서 안달이란 말인가!!
작년에도 몰래 한약 지어왔다가 나랑 한판 했었는데 그새 그걸 또 잊고... ㅠ.ㅠ

어쨌거나 부디 내 말이 씨가 되면 안되는데.. 걱정이다.

Posted by 입때
,

첫째 기질

삶꾸러미 2008. 2. 9. 17:34
별 근거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혈액형별 성격분류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지만
형제자매 가운데 몇번째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성격과 기질이 어느 정도 달라져
첫째는 첫째끼리, 둘째는 둘째끼리, 막내는 막내끼리 통하는 공통점은 확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든 예외없는 법칙은 없으니 모든 사람에게 '딱 떨어지게' 맞는 건 아니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맏딸은 맏딸대로, 맏아들은 맏아들대로,
둘째나 셋째, 또는 막내 특유의 성격을 얼추 짚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맏딸이나 맏아들, 막내의 기질을 모두 갖춘 외동딸이나 외동아들의 특징도 따로 분류가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표본조사 같은 거창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적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맞다고 극구 주장할 수야 없는 일이고,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둘째나 셋째, 막내로서의 삶을
속속들이 짐작해 기질을 파악해볼 재주 또한 없다.
다만 맏딸로 살아온 본인의 경험과 주변의 맏딸과 맏아들을 두루 살핀 결과 첫째 특유의 기질은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째는 자존심이 강하다.
만만하게 따라 배울 손위 형제들 없이 부모나 조부모를 역할모델로 삼고 성장했으며, 늘 주변에서 '너는 첫째니까 의젓해야 한다'든지 '누나 또는 형님으로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큰 덕분에 은연중에 어른들과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자존감이 극에 달하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누가 시키는 일은 견디질 못하고 스스로 다 알아서 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부모가 하는 잔소리에도 부아가 치밀 정도여서, 스스로 하려던 일도 누가 채근하면 버럭 짜증을 내면서 아예 하기 싫어진다.
더욱이 잘못을 지적받는 일은 크나큰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엔 수긍하지 못하여 반항을 하기도 하고, 비록 나중에 후회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처음엔 자기가 옳다고 박박 우긴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모 또한 약점 많은 인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더욱 못미더워하거나 안쓰럽게 여기므로 철이 일찍드는 경우가 많다.

둘째, 첫째는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강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어느 집안이든 형제가 여럿인 가운데 첫째는 부모의 기대와 요구치가 높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동생들을 보살피고 이끄는 임무에 충실하다. 간혹 형제가 많으면 군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첫째도 있을 정도다.
듬직함, 책임감, 솔선수범, 친화력 등 어린시절부터 첫째에게 흔히 요구되는 정서를 골고루 개발하는데 성공한 첫째들은 가족 이외의 공동체에 진출해서도 그 같은 기질을 발휘하여 주변의 우러름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여 약간이라도 비뚤어져 자존감만 앞세우는 첫째는 손가락질 받는 '못된' 독불장군이 되는 수도 있으며, 막무가내로 권위주의를 앞세우기도 한다.
(물론 첫째로 태어나서도 병약하다든지, 심성이 유약하여 첫째의 운명이나 주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여 카리스마는커녕 평생 그늘이나 뒷전에 숨어 투덜거리기만 하는 첫째도 없지 않다)

셋째, 첫째는 완벽주의 성향이 다른 이들보다 강하여 흔히 까다롭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 기질은 자존심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려서부터 매사에 칭찬을 듣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머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끝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첫째들에게 '대충하고 넘어가기'란 웬만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끔 말로는 '대충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완벽해야 만족하므로 종종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넷째, 위와 같은 기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첫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자존심 때문에 또 그렇다는 티를 내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속으로 끙끙 앓기 쉽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 또한 첫째가 더 높을 것 같다는 심증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_-;;)


대단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처럼 적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순전히 내 주관적인 의견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별을 불문하고 내 주변의 첫째는 내가 관찰하고 실감하는 공통적인 특질을 갖춘 경우가 많아
서로 이해의 폭도 큰데, 어떤 경우는 첫째 기질끼리 서로 부딪쳐 어려운 관계가 되기도 한다.
맏딸이었던 엄마가 막내딸이었던 엄마보다 첫째를 더 잘 이해하기도 하지만
자존심과 완벽주의를 앞세우는 첫째 출신 두 모녀의 성격이 더 첨예하게 부딪칠 때도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첫째는 확실히 쉬운 일도 어렵게 하며 살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첫째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유별난 성격과 기질을 갖춘 인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내가 별난 인간이라 세상 참 팍팍하게 산다는 결론보다는
'첫째라서 그런 거야'라는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억지스럽게 꼽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인간적인 결점을 단순히 혈액형 때문이라고 믿으며 위안을 받으려는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군.
Posted by 입때
,

수다쟁이

투덜일기 2008. 2. 4. 17:02
어제 성묘 뒤끝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식전에 과자부스러기를 잔뜩 먹은 조카들이 정작 점심은 제대로 먹으려하지 않아
올케들이 어떻게든 조카들에게 좀 더 밥(실은 샤부샤부 맨 마지막에 끓인 죽)을 먹이려고 협박과 회유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나도 좀 거들어보겠다고 나섰다.
"얘들아, 한번만 잡숴~~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꿀맛 죽이 왔어~~요..."
조카들은 까르르 웃었지만 내 너스레는 별 효과가 없었는데
난데없이 엄마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라니(물론 내 본명을 부르며)야, 옛날엔 안 그러더니 너  언제부터 이렇게 수다스러워졌니."
난 원래부터 수다스러웠다고 극구 항변했지만...
수다스러워진 딸이 체신머리없고 주책스러워 실망이라는 듯한 표정의 엄마를 바라보며
속이 많이 상했다. -_-;;

오늘 블로그에 들어와 그간 쓴 내 글을 봐도 그렇다.
아무리 '끊임없는 수다'를 추구하는 것이 이 공간의 목적이지만
하나같이 길고 긴 글을 보니...
그 여자 참 되게 수다스럽다.
Posted by 입때
,

경주를 가다

여행담 2008. 1. 28. 17:31
방방곡곡 아직 안 가본 곳이 더 많기는 하지만
경주는 내가 제주도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다.
제주나 경주나, 그저 눈길 닿는 곳이면 다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라
갈 때마다 그 감흥이 조금씩 달라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달까.

고등학생 때 기차를 타고 처음 찾아가 불국사 근처의 형편없는 여관촌에서 먹고자며
둘러본 경주 수학여행은 '경주'보다 '수학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기억으로 남았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따위의 기억은 죄다 그 앞에서 60명이 빨간 모자를 똑같이 쓰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남았을 뿐이었고, 천년 고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서의 경주 느낌 보다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기관사 아저씨를 구워삶아 객차 불을 끄고는 선생들에게 밀가루와 생닭발을 던진 일,
여관방에서 단체로 몰래 술마시다 뛰쳐나가 주정 부린 친구때문에 모든 것이 발각돼 단체기합을 받던 일,
토함산 일출을 본다며 깜깜한 새벽에  몽둥이 든 양치기에게 몰린 양떼처럼 바삐 산길을 오르다
숨이 딸려 몰래 뒤쳐진 것 뿐인데, 뒤 따라 오는 남학교 학생들과 모종의 접선(?)을 시도하려는 몹쓸 문제아 취급을 받아 억울했던 일, 모든 반찬이 비리고 짜기만 해서 너무도 맛 없었던 여관 음식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며 초코파이로 버텼던 일... 등등 주로 사고 치고 즐거워 했던 수학여행의 추억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후 10년쯤 지나 가을 단풍이 예쁠 때 찾아간 경주는 정말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똑같은 자리에서도 나는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운 좋게도 분황사 터에서 만난 어떤 대학원생 덕분이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라던 그는 안내문을 대충 읽고 종알종알 떠들면서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국사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모전석탑을 제대로 보는 법을 설명해주었고
유적지 한 귀퉁이에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굴러다니는 바위 하나도 예전엔 어느 돌부처의 몸뚱이나 어깨였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말로 어느 마당 한 구석에 절반쯤 파묻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석상과 돌부처를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이번엔 1월이라 무료 문화재 설명 도우미도 없었고 운 좋게 신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냥 아는 만큼, 모르는 만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어설피 구경한 경주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50년만에 다시 경주를 찾은 엄마와
20년 만에 다시 경주에 간 막내, 15년 만인 올케,
10년이 조금 넘은 나, 그리고 난생 처음 경주에 가본 어린 조카의 느낌을 비교하는 묘미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여행지에서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어쩌면 달라진 내 나이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통점이라면 수학여행 이후 늘 그랬듯 이번 경주여행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Posted by 입때
,

뜬금없는 여행

삶꾸러미 2008. 1. 24. 23:23
한파가 몰아치는 이 엄동설한에 뜬금없이 여행을 간다.
따뜻한 남반구...로 가는 것이면 좋겠지만 ^^
그것은 아니고 최소한 남쪽으로 향하긴 한다.
한가로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보자는 막내동생네의 의견에 그러마고 대답한 게
꽤 됐는데, 그때 정해진 날짜가 하필 이번 주말이었고 공교롭게도 날씨가 협조를 안하는 것 뿐이다.
지난주말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내게는 뜬금없는 여행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된 여행이기도 하다.

행선지는 경주.
온 가족이 까마득한 수학여행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그곳에 나는 어른이 된 뒤에도 두어번 여행을 갔고
수학여행 때 놓쳤던 옛도시의 정취와 놀라운 볼거리에 늘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녀올 때마다 늘어지는 나의 경주 자랑에 부모님 역시 솔깃해 하셨고
고등학교 때 본 느낌과 얼마나 다른지, 불국사와 첨성대, 안압지, 석굴암, 남산의 일출 따위를
다 같이 한번 꼭 보고 오자고 우린 막연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어딜 한 번 가려면 두 동생네가 마음쓰여 그냥 나가서 밥 한 번 먹는 자리에도 결국엔 꼭 죄다 불러들여 거국적인 대사로 만들고 마는 아버지에게 부디 경주 여행은 단출하게 엄마랑 꼭 셋이 떠나자고 해두었는데
그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벛꽃 만발한 봄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경주 모습이 제일이긴 하지만
눈이 쌓였을지 어쩔지는 모르겠으나 한겨울의 경주는 나 역시 처음이라 살짝 가슴이 설렌다.
운동부족에다 체중은 나날이 늘어나 걸음걸이마저 시원찮은 엄마 역시
짐스러울까봐 걱정을 하면서도 소풍 앞둔 아이처럼 퍽 기대하는 눈치다.
엄마랑 조카들이랑 같이 아버지 몫까지 최대한 실컷 보고 먹고 찍고 돌아올 생각이다.

음... 해서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블로그 개점휴업이라고 간단히 알리려던 것인데,
늘 나의 수다는 참 길기도 하다. -_-;;
Posted by 입때
,

다시 찾은 고흐전

놀잇감 2008. 1. 21. 21:42
벌써 한참 된 일인데 새삼 포스팅을 결심한 건 어제 오늘 너무 우울하고 짜증이 나
생각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되는 일을 떠올릴 필요가 있어서다.
그리고 방학중 전시장을 찾을 계획을 하고 있을 블로거들을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

내가 두번째로 고흐 전시회장을 찾아간 건 1월 10일 목요일 오전.
매주 수요일 오전엔 유치원생들의 무료 단체관람이 있다는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평일 오전엔 설마 무료 단체관람객이야 없겠지 나름 짐작했고,
방학중 가장 아이들로 붐비는 시간은 오전 학원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엄마들이 이끌고 모여드는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아.뿔.싸.
조카들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던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티켓박스 앞엔 비닐 천막 안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마당 한 가득 여기저기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온 유치원생 및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구름처럼
우글거렸다. ㅠ.ㅠ

나 역시 어린 조카들과 함게 하려는 관람이긴 했지만
한둘씩 아이들을 동반하고 다니는 관람객과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내는 소음(논두렁에서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울어대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리지 않다)은 천양지차임을
과거 샤갈 전시회때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도 난감했다.
게다가 노구를 이끌고 실로 수십년만에 광화문 정동길에 납시신 우리 왕비마마를 대동한 터라
그림을 보기도 전에 아이들에 치여 지쳐선 안된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우리는 일단 와글와글 시끄러운 어린이 단체관람객을 일단 앞세워 들여보낸 뒤
투터운 옷가지와 가방들은 사물함에 넣어두고 가뿐한 차림으로(사물함 비용 100원은 나중에 도로 나오므로 결과적으로 무료다^^) 전시실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시끄러운 아이들은 '단순히' 숙제를 위해 온 것인듯 그림 자체는 감상을 하는둥 마는둥
저마다 수첩을 꺼내들고 뭔가를 신나게 베껴적고는 메뚜기떼 사라지듯 물러났고
우리가 2층 전시실을 둘러본 뒤 일단 카페로 철수해 카페인과 당분으로 피로를 풀고 돌아와
3층 전시실을 돌 무렵인 오후 12시 반쯤엔 전체적으로 한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초기 스케치 작품과 함께 고흐의 생애를 조망한 짧은 필름 상영을 하는 곳 역시
붐빌 때는 볼 엄두도 못내는데, 한 타임 기다렸다가는 이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을 정도.
또한 가장 큰 전시실인 생레미 시기와 오베르 시기 그림이 걸린 곳에선
중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멀리서 사람들 어깨와 머리 너머로 보이는 고흐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났다.

이번 고흐 전시를 최대한 실망하지 않고 보려면 3층에 있는 초기 스케치화와 고흐 생애 영상물을
먼저 보라는 조언도 있다는데 계단 오르내리기와 걷기를 몹시도 싫어하는 내 관점에서 보자면 ^^
그냥 2층 전시실을 순서대로 돌고
3층에 올라와 생레미 시기를 보기 전에 구석에 있는 초기 스케치화와 영상물을 본 뒤
생레미 시기와 오베르 시기로 대미를 장식하고 아트샵에서 진짜 작품 대신 복제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든지
성에 안차는 대로 기념 소품을 장만하면 나름대로 뿌듯한 관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 관람에서 유독 짜증스러웠던 것은
평일 오전에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어린이 단체관람객과 맞닥뜨렸다는 것 이외에도
입장료 할인혜택이 있는 GS 칼텍스 보너스카드의 사용이 원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째뜬... 할인 얘기 하면서 또 짜증이 떠오르긴 했지만
두번째로 고흐 그림들로 가득찬 전시실을 작품 순서와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상하고, 그림에 낯선 엄마와 조카들에게 아는 만큼만 알량하게 설명을 하고
또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림을 쳐다보며 오디오 가이드에 귀를 기울이는 정민공주를 지켜보는
마음은 참으로 흐뭇했다.

수많은 그림 가운데서 어느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냐는 나의 질문에
정민공주는 뜻밖에도 <비탄에 젖은 노인>을, 지환왕자는 '파란꽃', 즉 <아이리스>를 골랐는데
공주는 슬퍼하는 노인 그림이 제일 잘 그린 것 같기 때문이고, 왕자는 파란 꽃이 제일 예뻐서라고
대답했다. ^^
아 참, 울 엄마는 제일 인상적인 그림으로 <자화상>을 꼽으셨고, 올케는 샤갈 전시회 때만큼 가슴 설레는 감동이 없긴 해도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애틋했다는 총평을 했다.
가족을 대동하고 전시회를 찾는 일, 조용한 관람을 원했던 과거의 나 같은 까탈 관객에겐 괴로운 일이겠지만
색다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다.

암튼...
제 아무리 방학이라 해도 한가한 오전 미술관을 상상하며 11시 도슨트 설명을 기대했건만
이번에도 도슨트 설명은 듣지 못했다. 오디오 가이드와 내용이 똑같은지 어떤지 한번 꼭 들어보고 싶은데...
다음엔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기필코 한가한 때를 노려보리라.
그 전에 "고흐 전시회를 꼭 구경가야겠다"는 준우왕자를 대동하고 전시장을 또 한 번 시끄럽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ㅋㅋ



Posted by 입때
,

일상복귀

투덜일기 2008. 1. 16. 23:00

명절때 수십명의 친척들이 와글거리다 돌아간 뒤에 좁아터진 집이 몹시 넓어보이고
이상스레 사방이 고요해진 느낌이 지금도 든다.
어젯밤 이 시간만 해도 자라고 깔아놓은 이불 위에서 공주와 무수리는 가열차게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
드디어 조금 전 공주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물론 제일 먼저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질에 여념이 없다.
3박4일간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도록 허락된 순간은 정민공주의 싸이질을 돕고 방문자수를 올리느라
공주의 감시 하에 내 미니홈피를 찾을 때 뿐이었다. *_*
어젠 잠시 블로그질 한답시고 올린 아랫글을 공주한테 들켜서 빨랑 지우라고 몇대 또 두들겨 맞아야 했다. 큭.
물론 공주가 잠든 뒤에 (무수리는 당연히 공주님 옆에 누워 꼭 껴안고 재워드려야 한다) 일어나서 일을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온종일 시달린 뒤끝엔 내가 먼저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라 나흘 간 일은 완전히 포기했었다.

어쨌거나 3박4일을 할머니댁에서 고모무수리의 보필을 받은 공주의 감흥은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엄마랑 아빠랑 지환이가 보고는 싶은데 집에 가기는 싫은 거 있지!"
"응, 원없이 놀았어." (원없이 놀았냐는 제 엄마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욕심쟁이 공주가 "원없이 놀았다"는 대답을 할 정도면 정말로 제 성에 찰 만큼 고모를 괴롭히며 실컷
놀았다는 뜻이다. ㅎㅎ
몸은 좀 고달펐지만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며칠 잘 놀았다.
웃는 얼굴이 잘 안만들어져서 거울 보면 심술마녀처럼 보인다고 늘 불평하시던 왕비마마도
공주 덕분에 수시로 웃으셔서 좋았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손주들과 조카들의 존재는 확실히 우리 모녀에게 행복의 근원이다. ㅋㅋ



 

Posted by 입때
,

무수리의 삶

투덜일기 2008. 1. 15. 23:20
겨울방학을 맞아 본격 무수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사흘째다.
왕비마마 홀로 보필하는 것도 힘들거늘 공주님까지 납시셨으니...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조차 없이 몸바쳐 모시고 있다.
당연히 블로그질은 뒷전일 수밖에. ㅠ.ㅠ
그나마 내일은 공주님의 귀가일이니 내일 밤부터는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듯.
심지어 오늘은 영화예매 늦게 해서 인터넷으론 표를 구할 수 없어 마구 두들겨 맞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어서 목숨은 건졌다. -_-;;
동생네 부부는 공주가 고모 무수리를 괴롭히면 즉각 데리러 오겠노라고 했는데
그 협박도 이번엔 별로 통하질 않았다.
3박4일이 참으로 길다. 흑...
Posted by 입때
,

재롱잔치

삶꾸러미 2007. 12. 24. 17:39
해마다 나의 연말이 바쁜 이유엔
조카들의 재롱잔치도 한 몫 한다.
4살때부터 유치원엘 다녔던 정민공주부터 벌써 몇해째 재롱잔치 구경을 다니는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꽃다발 사들고 가서 지켜보면 울컥 눈물이 날 정도로(주책 고모란 거 나도 안다;;) 감동적이고 뿌듯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한달 이상 연습하며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숫기 없는 유전자의 난관을 극복하고 이젠 어느 정도 안무와 노래를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울집 공주와 왕자들이 정말로 기특한데
유심히 지켜보면 공연도중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데,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거나 심지어 울고 있는 아이들이 꼭 있다.
그 아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
우리 정민공주도 유치원 다니던 시절 재롱잔치때마다 거의 2년은 그렇게 무대에 서서 꼼짝않고 반항(?)을 하는 바람에 캠코더와 카메라까지 싸들고 간 제 부모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키지도 않는 재롱을 떨어야 하다니;; 얼마나 끔찍했을까 +_+

유치원 교사나 부모들은 그런 재롱잔치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하지만, 그건 '주류'에 속하는 다수의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일뿐
자의식이 유달리 강하거나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에겐 그저 끔찍하고 괴로운 '망신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도 옛날이라 유치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발표회 같은 게 있을 때
단체 합주나 합창은 몰라도, 연극이라든지 소수가 출연하는 꼭두각시 춤 같은 공연을 해야하면
나는 그야말로 주눅이 잔뜩 들어서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 혼자 실수를 하거나 넘어지면 어쩌나...
대사를 까먹으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것인데
공연이 끝나면 성취감보다는 그저 지겨운 일이 끝났다는 것만 반가웠더랬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은 절반 이상의 장래희망이 *연예인*이라니
그들의 끼와 숫기가 내 어린시절과는 수준부터 다를 것도 같다.

째뜬 올해도 2주 연속 토요일마다 우리집 왕자님들의 공연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두 녀석 역시 재롱잔치를 꽤나 즐긴 모양이다.
분명 녀석들에게도 얼마간은 스트레스였겠지만, 무사히 재롱잔치를 마치고 갈채를 받은 조카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 조카들 옆에서 내내 울음을 터뜨렸거나 굳은 얼굴로 서 있던 아이들도, 그들의 부모도
너무 큰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았기를 빈다.
2년 내내 무대 구석에 홀로 서있기만 했던 정민공주도 3년째 되던 해에는 단체 소고무와 합창을
곧잘 따라해서 우리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었단 얘기를 그들에게 귀띔해주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다 무대체질은 아니라고요! ^^*

Posted by 입때
,

식객

놀잇감 2007. 12. 3. 01:57
사실 나는 식객보다 똑같은 글잣수에 발음도 비슷한 <색, 계>를 보고싶었지만
주지스님 추천작이라며 <식객>이라는 영화가 있느냐고 보름 남짓 은근슬쩍 압력을 넣고 있었던
왕비마마 덕분에 왕비와 무수리 모녀는 날씨 우중충한 일요일 오후 극장을 찾았다.
개봉한지 한참 된 터라 영화관이 한가할 줄 알았더니 날궂은 일요일 한낮에 자리가 절반 이상 차는 걸 보면
아직도 인기는 꽤 괜찮은 모양.
타짜 때도 그랬듯 허영만의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던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순진한 희망에 가깝게 그려진 한일관계와 신파스러운 애국심이라는 고명이 역시나 약간 거북하긴 했어도,
입맛에 안맞는 고명은 걷어내고 먹으면 되듯
나에겐 꽤나 맛깔스러운 영화였다.

식탐녀답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점수는 대체로 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남들의 감상 포인트와 상관없이 나는 뜻하지 않은 복병 같은 몇 장면에서 흑흑 흐느끼고 말았는데
그래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어쩐지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데 없이 나를 울게 만든 것들은
접시 무늬가 보일 만큼 얇게 깔린 복어회 접시, 몇 개의 영정 사진, 하얀 보자기에 쌓인 유골함.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 그리고 육개장.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영화 시작 후 거의 5분 뒤부터 줄곧 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섰던
<집으로...>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식객> 또한 나에겐 눈물로 기억될 영화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