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동거인이자 나의 상전이신 왕비마마와 그녀의 한약 추종 때문이다. -_-;;
대체의학과 한방이 서양인들에게도 인정되는 추세라지만
나는 침술은 몰라도 한약엔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물 맑고 공기 맑은 산천에서 자란 한약재로 사람을 고쳤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요샌 툭하면 중국산 한약재에서 맹독성 농약 같은 게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중국산 한약재 때문에 얼마 전 또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 본 뉴스엔 한의사와 약재상들도 국산 한약재와 중국산 한약재를 구분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던데, 이윤추구에 눈이 어두운 악덕업자들은 값싸고 질 나쁜 중국산 한약재 수입을 관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몸에 좋은 것들을 죄다 끓여 우려 마시는 한약이 어찌 몸에 나쁠 수 있겠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우리 왕비마마 말고도 주변에 한약 추종자들이 꽤 있다) 나는 한약 잘못 먹고 간이 손상되어 한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던 노친네들(주로 지인들의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사건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 왕비마마는 지병이 하도 많으신 관계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치료제는 물론 우울증 치료제와 당뇨병 후유증으로 변형된 말초신경 때문에 정형외과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드시는 약의 양이 약간 과장하면 정말 한 주먹이다.
(맞다, 요샌 또 거기다 이비인후과 감기약까지..)
그런데다가 또 한약이라니!
엄마의 여러 주치의들은 한약을 먹어도 되냐고 물으면 펄쩍뛰며 울 엄마를 말리곤 하는데
대학병원 주치의 상담이라는 것이 빨라야 한달, 보통은 3개월, 당뇨병 센터 같은 곳은 6개월에 한번씩 진료를 받고 약을 타오기 때문에 그 긴 기간동안 울 엄마는 수시로 한의원을 찾아가 침도 맞고 한약을 먹어보라는
한의사들의 꼬드김에 홀딱홀딱 넘어가신다. ㅠ.ㅠ
양약으로 고칠 수 없다는(당뇨 후유증으로 변형된 신경은 수술로도 100% 복원이 불가능한데 울 엄마 같은 경우 워낙 겁이 많고 연세도 있고 우울증 심해질 수 있다며 그냥 약간 불편하게 사시라는 것이 주치의의 결론)
여러 병들을 한방으로 말끔히 낫게 하였다는 말이 있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건 병원에서 표기한 암이나 중증질환을 운동이나 유기농 식이요법으로 극복했다거나 하는 것처럼
분명 다른 노력이 병행되었을 것이다.
가만히 드러누워 침만 맞고 값비싼 한약을 먹어서 나은 것이 아니고!
내 주변에도 해마다 환절기가 되면 반드시 '보약'을 먹고 기운을 얻는다는 지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평생 단 한 번 '보약'이란 것을 먹어본(그나마도 먹다가 나중엔 몰래몰래 버렸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전혀 효과가 없었다. -_-;
비싼 돈 주고 지어주신 보약을 버리기까지 했던 건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고약한 냄새 나고 색깔도 끔찍하며 약효도 의심스러운 한약을 굳이 먹어야한다는 사실이 괴롭기도 하려니와
설사 좋은 약이라고 해도 '나에겐' 약효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음이 지독히도 싫은데 행여나 내 몸이 제대로 약기운을 받아들이기라도 했을라고?
위약효과로 엉뚱한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듯
좋은 약도 의심하고 싫어하는 회의주의자의 몸엔 잘 들을 리가 없을 것이다.
에효...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돌파리 같은 한의사는 울 엄마의 손발저림과 붓기와 비만을 몽땅 다 낫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한약을 권해왔는데, 그간 내가 침맞는 건 몰라도 한약은 절대 안된다고 결사반대하며 펄펄뛰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왕비마마께선 또 턱하니 한약을 지어오셨다.
더욱 웃기는 건 노친네들이 대개 자식들과 한약 때문에 불화가 있는지 노친네 환자들이 지은 한약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죄다 그 한의원에 약을 두고 먹는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더욱 의심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무자격 한의원에서 환자마다 진맥하고 약을 지어준다더니 완제품으로 한약을 대량 만들어놓고 무작위로 이름만 적어 상자에 담아 나눠주다 걸린 적도 있었단 말이다!)
해서 울 왕비마마께서도 내 눈치보일까봐 일부 몇개만 달랑 집에 가져다놓았다가 나한테 들킨 것.
ㅠ.ㅠ
이제 나의 임무는 엄마가 또 쓰러지면 119불러서 응급실로 모셔가는 것뿐이니 시한폭탄 쳐다보듯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울며불며 왕비에게 폭언을 퍼부은 것이 이틀 전.
집안 분위기는 당연히 계속 싸늘하고 착 가라앉았다.
뒤끝이 그리 긴 인간은 아니지만, 딸보다 돌파리 한의사를 더 신뢰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다.
울 엄마의 수많은 지병을 제가 뭔데 다 낫게 해주겠다고 장담을 한단 말인가?? 허준의 현신이라도 되나??
엄마보다는 돈벌이에 눈 어두워 허준인 척 하는 한의사놈에게 더 화가 나긴 하지만, 아 대체 울 엄만 한약을 왜 그리도 못 먹어서 안달이란 말인가!!
작년에도 몰래 한약 지어왔다가 나랑 한판 했었는데 그새 그걸 또 잊고... ㅠ.ㅠ
어쨌거나 부디 내 말이 씨가 되면 안되는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