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08.05.16 마지막 장조림과 우족탕 17
  2. 2008.02.27 이상한 일 10
  3. 2007.11.10 탐서 욕망 13
  4. 2007.10.16 홍옥 예찬 18
  5. 2007.09.14 다이어트 4
  6. 2007.05.28 벌써 여름 10
  7. 2007.03.26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패밀리 7
  8. 2007.03.19 드디어 바나나빵을 만나다! 24
  9. 2007.02.09 옥수수 예찬 8
  10. 2007.01.22 멸치 생각 16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것 아니겠느냐던 멍청한 어느 인간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쇠고기를 웬만해선 안먹게 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기농이라고 표시 되어 있는 채소들을 장바구니에 넣으며서도 과연 유통업체와 상인들을 철썩같이 믿을 수 있을지 속으로 떨떠름한 마당에 수입 쇠고기의 원산지 표시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벌써부터 한우든 호주산이든 쇠고기 매장이 썰렁하다는데, 이런 꼴로 가다간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소비는 날로 위축되고 축산업 농가는 FTA 비준되기도 전에 다 망해 쓰러질 판국이다. 그게 걱정은 되는데, 나로선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원래 우리 식구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거하게 고기를 먹어줘야 기운이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산다. 채소와 푸성귀로만 차려진 밥상은 <저 푸른 초원>이라고 야유하며, 고기를 든든히 먹어줘야 계단 오를 때도 힘이 안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소한 달걀이라도 상에 올라야 하고 어쩔땐 일주일에 사흘 이상 고기(생선은 고기가 아니다)를 먹기도 한다. 미역국, 무국엔 반드시 쇠고기를 넣어 끓여야지 그 밖의 조개나 버섯만 넣고 끓였다간 나 혼자 꾸역꾸역 6박7일동안 먹어야 한다. 느끼한 곰탕은 일주일 내내 맛있다고 드시면서도, 멸치로 맛 낸 된장국은 2끼 이상 내놓으면 외면당하는 것이 우리 집안 내력.

연일 광우병 쇠고기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주말, 엄마는 마지막이될지도 모른다며 장조림을 해먹자고 한우 사태와 메추리알을 사오셨다. 나이로는 4.19 세대지만 그 때도 무서워서 밖에 안나가봤고, 68년 평생 데모란 건 처음이라며 벌벌 떨면서도 딸 성화에 덩달아 직접 청계천 촛불집회를 다녀오시고 보니, 광우병 쇠고기와 정부 해명은 죽어도 못 믿겠는데 결과적으로는 놈들이 밀어붙이기로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하고 말 것이라는 게 울 엄마의 결론인 듯했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 엄마는 언덕에서 발목을 접질려 복숭아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고 5주간 기브스를 해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_-;; 그래서 우리집의 마지막 장조림은 눈물의 장조림이기도 하다.
정말로 칼슘이 많이 우러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 복숭아뼈가 얼른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마지막 우족 하나를 꺼내 곰탕을 끓였다. 반나절 이상 곰솥에 우족을 끓이며,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마지막 우족탕>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해버렸다.

며칠째 장조림 반찬에 우족탕을 기본으로 내놓는 데도 엄마는 아무 불평이 없다. 푸성귀 반찬을 매일 똑같이 내놓으면 손도 안대는 양반인데, 장조림이랑 곰탕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더 맛있게 느껴지나보다. 사실 장조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줄곧 한번도 해먹지 못한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짭조름한 쇠고기 장조림을 워낙 좋아하셔서 밑반찬으로 거의 떨어뜨리는 일이 없었는데, 메추리알 삶아서 일일이 까는 것이 귀찮다고 엄마랑 내가 하도 투덜거리니까 최근 몇년동안은 삶은 메추리알을 까는 것이 아버지의 임무가 되었더랬다. 냉장고에 장조림이 떨어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이제는 없어진 동네 농협마트 정육점에서 맛있는 사태로 쇠고기를 고르고 메추리알을 두어 판 집어 사들고는 아버지가 휘파람을 부르며 돌아오시면 두 모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귀찮은 티를 팍팍 냈지만, 아버지는 씩 웃으며 어서 메추리알 까게 삶아놓기나 하라고 하셨다.

일요일 저녁, 발은 퉁퉁 부어오르는데 엄마는 식탁에 앉아 삶은 메추리알을 까며 아버지는 메추리알을 살점 하나 안 떨어뜨리고 껍질을 잘 까셨건만 왜 자기는 알이 다 너덜너덜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막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의 발목을 잡아먹은 장조림이라서 밉게 느껴졌는지, 오랜만에 만드느라 거의 태울뻔하기도 했던 장조림은 내 입엔 뻣뻣하고 별로 맛이 없다.

그러면서 버럭 화가 났다. 가슴이 아파서 차마 못 해먹는 것도 속상한데, 좋아하는 음식도 공포에 질려 못 먹게 만드는 정부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 쓸개빠진 무뇌아들한테 진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고기 좋아하는 울 엄마한테 귀찮은 티 안내고 다음엔 더 맛있는 쇠고기 장조림을 해드리고 싶단 말이다,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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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

삶꾸러미 2008. 2. 27. 17:35
아주 가끔 신경줄이 너무 팽팽해지면 있는 일이긴 하지만 연일 불면에 시달린다.
머릿속이 멍해져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진전이 되질 않는 아침이면
그냥 스르르 누워 5분만에 잠들어야 정상인데
그렇게 누워 몇시간씩 끙끙대다 보면 그냥 오후가 되어 버리는 거다.
36시간도 내쳐 잘 수 있다고 장담하는 자타공인 잠순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원고 마감일도 연장 받았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잠과 식탐은 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불면 때문에 편두통이 생긴것도 모자라 식욕이 없다.
끼니 때를 지나 배가 고프면 화가 나고 공격적으로 변하며 손이 벌벌 떨리는 증상을 갖고 있는 내가
식욕이 없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오늘 아직 한끼도 먹지 않았는데 배도 안 고프다. 이건 더 이상하다. -_-;;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일은 우리집 목욕탕에서 '지렁이'가 발견된 것.
루인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어젯밤 기겁한 일이 떠올랐다. ^^
오래된 옛날 집에 살면 여름 한철 온갖 벌레들과 만나게 되긴 하지만
난데없이 겨울 목욕탕 바닥에 지렁이 출현이라니 어찌나 놀랐던지.

하수구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던데 느릿느릿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서 방황하는 지렁이를 보고는
처음엔 내 눈과 시력을 의심했고
그 다음엔 기겁하며 비명을 지를 뻔했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다 열심히 물을 부어 다시 온 길로 돌려보냈다. -_-''

오래된 집이라도 다행히 바퀴벌레와 개미는 출몰하지 않는 반면
여름이면 노린재, 매미, 벌, 이름모를 풀벌레 따위가 날아드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을 종이 양탄자에 태워 다시 밖으로 살려보내곤 한다.
그런 기억 때문에 어젯밤엔 지렁이도 어떻게든 집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퍼뜩
들었는데 그랬다간 얼어죽고 말 것 같았다.

오래된 하수구엔 분명 깨진 틈이 있었을 것이고 그 틈으로 기어오른 것이 하필 우리집 목욕탕이란
얘긴데... 온갖 더러운 물과 비눗물이 내려가는 우리 집 하수구 밑에서 지렁이가 살아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최근에 지렁이를 본 건 작년 여름 하남시에 있는 외삼촌 댁 텃밭에서 감자를 캘 때였는데!

그러고 보니 십수년 전엔 비가 온 뒤 집앞 언덕을 내려가는 일이 참 고역이었다.
여기저기 지렁이들이 길고 뻘건 몸을 뒤틀며 느릿느릿 지나가거나
자동차에 치여 처참한 시체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비가 온 뒤에도 지렁이를 본 적이 거의 없어 공해 때문에 우리 동네 지렁이들도 죄다
어디로 이사를 갔거나 몰살당했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근처 땅속에 살아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상하기 보다는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목욕탕에 출현한 지렁이. 암튼 별 일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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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서 욕망

책보따리 2007. 11. 10. 02:04
가을은 원래 절대로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날씨 좋고 선선해서 놀러다니기 최고인데 누가 집에 들어앉아 책이나 읽고 있겠나.
그래서 출판계에서 작당하여 1년중 최고 불경기인 가을에 책 좀 팔아볼 요량으로
독서의 계절이란 말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혹은 비화)이다.
 
어쨌든 내 주변의 최측근들은 책을 절대로 읽지 않는 반면
이웃 블로거들은 참 열심히도 책을 읽으신다.
계절에 상관 없이 참 많이들 읽으시는 것 같긴 한데 가을 들어서면서
내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진부함에 세뇌된 덕분인지
더욱 많은 책 이야기를 구경하게 되는 듯하다.
게다가 조단조단 읽은 책에 대한 후기도 맛깔스럽게 올려 놓으시니 나로선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영화든 책이든 난 그저 보고나면 좋다 나쁘다 괜찮다 인상깊은 구절이나 장면이 있었다 없었다 정도가
감상의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책에 든 구절들을 밑줄긋기하듯 적어두는 섬세한 정성 같은 것은
스무살 시절에 일기나 연애편지 좀 쓰던 때나 조금 하다 집어치운 것 같다.
물론 나에겐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시는 이웃블로거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책표지라도 구경하면서 느끼는 일말의 대리만족을 그분들은 아실는지.

아무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진부한 글귀의 세뇌정도는 참으로 지독한 것이어서
급기야 나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책이라도 사들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오늘밤 얼른 주문을 마쳤다.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사고싶은 책은 늘 넘치기 마련이라
오늘도 이책저책 들여다보며 고르다 카트에서 애써 추려낸 뒤 4권만 결제를 진행했다.
이 글에도 '탐서'라는 제목을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책을 잘 안읽는 주제에 벌써 마음이 뿌듯하다.
나의 탐서는 아무래도 독서가 아닌, '장서'에 가까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이 역시나 절반도 안된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밀린 숙제 하듯 과연 나는 꽂아두고 뿌듯해 하는 저 책들을 다 읽을 것인가...
작년, 재작년에 사두고도 못읽은 책도 쌓여있거늘.

왠지 계속 끌어안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 읽고 간직해 지식이 쌓일 것만 같은 허영이
바로 내 탐서 욕망의 근간임을  뻔히 알면서도
식탐 습관 못 버리는 것처럼 책 탐하는 버릇도 내버릴 수가 없다.
언제고 내 진정한 탐서가가 되리라는 요원한 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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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 예찬

추억주머니 2007. 10. 16. 21:05

홍옥에 관해 비슷한 글을 이미 쓴 것 같아 찾아보니 벌써 2년 전이었다.
다시 봐도 감흥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아
퍼다가 조금 다듬어본다.

내가 어렸을 땐 사과 종류가 홍옥과 국광(어린 친구들 이런 사과가 있었다는 거나 알려나?)만 있는 줄 알았다.
제사나 차례상에 오르는 사과는 그냥 내게 "맛없는 사과"일 뿐이었고 그 이름이 '부사'라는 건 아마 나중에 알았던 듯하다.

홍옥은 새빨갛고 윤기 나는 얇은 껍질이 특색이고 새콤달콤한 맛이었던 반면
국광은 알도 작고 볼품이 없을 뿐더러 육질이 좀 단단하고 단맛이 많았는데
둘 다 가격은 저렴해서 우리는 가을 무렵 얼기설기 나무로 엮어놓은 상자에 담겨, 쌀겨에 파묻힌 홍옥이나 국광 사과를 한 '궤짝'씩 집에 들여놓고 오래도록 먹곤 했다.
홍옥은 금세 시장에서 사라지는 데 반해, 국광은 좌판에서 한겨울에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후지, 또는 부사로 불리던 사과도 지천으로 깔려 있었지만 달기만 하고 푸석푸석한 사과의 맛을
나는 좀체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암튼 내가 그리도 좋아했던 홍옥이 단맛 위주의 사과 종류에 밀려 사라진 것이 10년도 더 넘은 듯했다.
더불어 저렴하지만 때깔도 떨어지고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국광' 사과도 찾아볼 길 없었다.
해서 그나마 초가을에 나오는 초록색 풋사과로 새콤달콤한 홍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는데...
몇년 전부터 드디어 홍옥이 과일가게에 다시 출현한 것이다!

모름지기 홍옥은 빤질빤질 매끄러운 빨간 껍질을 눈으로 음미하다
통째로 한손에 쥐고 와삭... 깨물어 먹는 것이 제맛이다.
그러면 새콤달콤 싱그러운 과즙이 입 한 가득 돌면서 행복함이 밀려든다.

고등학교 때였나...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도시락을 두개씩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
가을부터 겨울까지
울 엄마는 도시락 두개와 함께 꼭 홍옥 사과 두 개를 함께 싸주셨더랬다. 디저트로 먹으라고..
그러면 손 힘 좋은 단짝 친구한테 반으로 쪼개달라고 부탁해서
반쪽씩 손에 들고 서로 바라보며 와그작 와그작 깨물어 먹던 재미와 맛도 일품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홍옥을 통 만나볼 수가 없었기에 안타까워하고만 있었는데
이태 전 과일가게에서.. 수많은 종류의 사과 이름 속에서 '홍옥'이란 글씨를 보고 긴가민가.. 의심 많은 인간 답게 설마... 했었다. '홍옥'의 짝퉁임이 분명한 '홍로'를 좀 더 익혀놓고 사기 치는 게 아닌가 했던 것.
그러나 "속는 셈 치고" 한번 사와 먹어보니
역시나 새콤달콤 감동의 맛이었다.
나처럼 그간 홍옥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지
행복하게도 해마다 요맘때면 반짝 과일가게에서 홍옥을 만날 수가 있다.

감기 기운을 이겨보겠다고 며칠 신경써서 과일을 먹으며 계속 홍옥 타령을 해댔더니
엄마가 드디어 새빨간 홍옥을 사다주셨다.
겉에 입혀 놓은 왁스 때문이라지만, 예전엔 홍옥을 먹기 전에 꼭 옷자락에(지금 생각하면 더럽기도 하다만;;)
쓱쓱 닦아 빤질빤질 더욱 윤이 나게 문지르곤 했다.
그러면 제일 처음 한입 크게 깨물었을 때 생겨나는 동그란 이빨 자국과 연노랑색 과육이 참으로 예쁘게 느껴졌다.
*_*

좀 전에도 엄마가 굳이 과도와 포크까지 쟁반에 받쳐다 주신 걸 마다하고 덥썩 집어
무식하게 와그작 와그작 깨물어 먹었다.
껍질에 농약성분이 남아 있거나 말거나, 홍옥은 무조건 껍질째 먹어줘야 제맛이란 말이지.
쨍쨍 얼음이 어는 겨울은 커녕 11월만 되도 홍옥은 자취를 감춘다.
과육이 연한 탓에 오래 보관하거나 유통시킬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있을 때 많이많이 먹어두는 수밖에 없다.

으으...
글을 쓰면서도 다시 입안에 침이 돌아 얼른 또 새빨간 홍옥 사과 하나 꺼내
깨물어 먹어줘야겠다.

사고가 단순한 식탐가인 나에게 홍옥은, 이 가을 몇 안되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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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삶꾸러미 2007. 9. 14. 19:59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울 엄마가 그렇다.
자기는 끼니 외에 별로 먹는 것도 없고, 당뇨 때문에 과일도, 달콤한 빵도 먹고 싶은 만큼 못 먹고 살며 운동도 매일 하는데 도무지 살이 안빠진다고 화를 내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절대로 '물만 먹어서' 살이 찌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나름대로 먹는 걸 절제하느라 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평범한 사람보다 확실히 많이 먹는다. ^^;;

지난 두달간 허허로움 때문인지 자꾸만 간식에 손을 대는 엄마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했더니 엄만 그걸 '딸의 구박'이라고 여기며 서러워했다.
당뇨에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초기 증상까지 골고루 갖춘 엄마에게 먹을 것 때문에
내가 잔소리를 한 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건만, 엄마는 새삼 그걸 남편 없는 서러움으로 연결시켰다. -_-;; (물론 아버지는 나보다 엄마의 식탐에 관대했던 게 사실이다)
나도 과부 된 엄마를 구박하는 못된 딸이 되고 싶지 않았으므로, 한동안은 잔소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신이 난 엄마는 운동한답시고 동네 친구들과 산책을 나가선 자랑스레 호떡을 사먹고  찐옥수수 한 봉지까지 사들고 들어오곤 했다. 옥수수는 다이어트 음식이라면서. -_-;;
나의 예상대로 엄마는 단 5일만에 2킬로그램이 늘어 체중 75킬로그램을 돌파했고
허리둘레 36인치짜리 바지들이 다 맞지 않게 되었다. ㅠ.ㅠ
(참고로 울 엄마 신장은 159센티미터다.)

그 상태로 나가다간 혈당과 혈압도 겉잡을 수 없이 올라갈 형편이라
나는 또 다시 지독한 악역을 맡고 있는데, 참...
식탐 유전자를 나에게 물려주신 울 엄마의 끊임없는 식탐을 말리는 게 너무도 힘겹다.
끼니 외엔 간식을 못드시도록 냉장고를 거의 비워놓다시피 해도
주말에 조카들이 다니러오면 모든 게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원래 한참 크는 애들은 수시로 입에 먹을 걸 달고 살지 않나?
착한 올케들은 차마 나처럼 혹독하게 엄마에게 먹을 걸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다같이 홀라당 아이스크림, 도넛, 햄버거 같은 걸 거침없이 먹어치우시는 거다.
아니 왜 금방 밥먹고 나서 또 다들 출출하다는 건지!!! *_*

엄마 때문에 음식의 칼로리 계산에 빠삭해진 나는 김밥 한줄, 아이스크림 하나, 햄버거 한 개의 추가 열량(각각, 2, 3백 칼로리는 족히 나간다) 소모하려면 2시간 동안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리 엄마의 운동이라곤 고작해야 쉬는시간 30분을 합하여 1시간 동안 동네 근처를 걷는 것뿐이다.
그나마도 운동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알량한 운동을 핑계로 간식을 덥썩 먹는다는 게 문제인데;; 본인께서는 "나름" 간식을 쬐끔밖에 안 먹었기 때문에 양에 안 차 그게 다시 스트레스로 남는다. 흑...

그렇다고 당뇨병 환자인 엄마를 마구 굶길 수도 없는 일이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혈당이 더욱 올라가니까.
괜히 출출하면 간식 찾아먹을 생각 말고 물을 드시라고 아무리 충고해도 못들은 척
냉장고를 뒤지던 엄마에게 오후에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 바쁜 일을 핑계로
작업실로 도망쳤는데 은근히 걱정이다.
내가 없는 틈을 타서
토마토 한 광주리, 포도 몇 송이, 귤 10개쯤은 순식간에 우습게 '작살내던' 과거의 과일킬러 실력을 발휘하고 계시면 어쩌나... ㅠ.ㅠ

뚱뚱한 딸 다이어트 시키려고 같이 헬스장과 에어로빅 다니는 엄마는 봤어도
뚱뚱한 엄마 다이어트 때문에 같이 운동 다니는 딸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이참에 구박만 하지 말고 나란히 헬스클럽엘 등록해볼까...
당뇨 합병증으로 손발 신경이 변형돼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엄마를 데리고 헬스장엘
가서 과연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도 막막하긴 하다.
어휴.. 그렇지만 난 운동이 정말 싫단 말이지. (운동 싫어하는 것도 유전인듯;;)

어디 쉽고 간단한 다이어트 비법은 없는지.. 오늘도 나는 인터넷의 바다만 헤매고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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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름

삶꾸러미 2007. 5. 28. 17:15
기온으로는 확실히 벌써 여름이다.
날씨가 미치긴 확실히 미쳤나보다.
5월말에 30도를 넘는 기온을 보이다니.

암튼 더운 날씨 핑계로
어제부터 계속 아이스커피, 얼음물, 얼음 보리차... 따위를 입에 달고 산다.
어리고 젊었을 땐 ㅜ.ㅜ;; 더위를 조금도 안탔더랬다.
삼복중에 낳은 아이를 두툼한 솜이불에 싸서 키웠다는 전설 속의 그 모습 그대로
나는 한여름에도 걸핏하면 춥다고 짜증내며 혼자 긴팔 옷 꺼내입고 다니기 일쑤였고
별로 땀도 흘리지 않았다. 다 과거 얘기다.

정확한 기점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라고 생각되지만 암튼 체질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여름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추위에 강해졌느냐 하면 절대로 아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달달달 추위에 떨면서 날씨 추우면 동면하고 싶다고 징징대는 거 여전한데
설상가상 여름 나기도 수월하지 않게 된 거다.
목덜미로 주르륵 흐르는 땀방울 같은 거, 예전엔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요샌 한여름 더운날 청소라도 한 판 할라치면 땀줄기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우웩~~ 간지러워서 처음엔 벌레인줄 알고 몹시 놀랐다. *_*

해서...
여름에도 반드시 뜨거운 커피를 즐기던 나는 사라지고
좀 덥다 싶어지면 냉동실 가득 얼음을 얼려놓고 수시로 우드드득 얼음을 깨먹고
아이스커피를 타먹고 얼음과 과일을 갈아 슬러시를 해먹으며 난리법석을 피운다.

좀 전에 얼음 잔뜩 넣은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고도
육수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냉면
살짝 얼린 콩국에 쫄깃쫄깃 면발이 일품인 콩국수
이빨 시리게 차가운 육수에 갈은 무와 고추냉이 다진 파 넣고 담가 먹는 메밀국수
좀 달긴 하지만 여름에 역시 제격인 별다방 프라프치노
연유랑 생과일 듬뿍 넣은 과일빙수(오늘 윤종신의 '팥빙수' 노래 여러번 들었는데, 난 단팥이 싫어서 팥빙수도 별로다.)
새콤시원하게 말아 먹는 열무국수
(뭐가 또 있더라....)

같은 음식들이 계속 떠오르고 있다.
한여름 날씨 속에서도 식탐녀의 식욕은 도통 떨어질 줄 모르나보다 ㅎㅎㅎ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 냉동실 한 가득 얼음만 잔뜩 얼려놓았다.
어휴...
노트북과 컴퓨터의 열기마저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여름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될 것인가.
올해도 에어컨 때문에 전기요금 깨나 나오겠구나야. 된장...

5월은 좀 5월답게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이건 5월 날씨도 아니고 6월 날씨도 아니여~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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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라고 쓰니
마치 무슨 조폭 가문 느낌이 드는군. ㅎㅎㅎ
하지만 제목은 두운(?)을 맞추는 의미에서 그냥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족'의 의미가 심히 축소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집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이제 세 집 살림으로 나뉘어 있긴 해도
부모님과 나, 동생들 부부, 조카들을 포함한 11명 대가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탐도 집안 내력인지,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걸 몹시 좋아하는 우리들은
걸핏하면 뭉쳐다니며 외식도 즐긴다.

외식의 빌미는 주로 누군가의 생일이지만, 별 다른 날이 아니어도 괜히 의미 붙여
우르르 몰려가 밥 사먹는 걸 좋아하는 게 우리 '패밀리'의 특성인 것 같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북새통을 이루며 시어머니, 며느리, 딸 할 것없이 온통 노동의 장에 투입되어야 하는 마당에, 생일까지 집에서 챙기는 건 불공평한 노동력의 착취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은 사람은 없었지만 ^^;; 생일 외식은 며느리들 집에 와서 설거지 하는 것도 안쓰러워하시는 울 아부지가 오래 전부터 정한 원칙이었다.
아 물론, 올케들 처음 결혼하자 마자 첫해엔 시부모 생신이라고 한 번 씩은 집에서 상을 차렸던 것 같은데, 집에서 어른들 생일상을 차리면 친척분들도 모두 몰려오시기 때문에 명절과 똑같이 고생문이 훤하므로 그 담부턴 원천봉쇄 차원에서 외식을 빌미로 집을 아예 비우는 수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제일 어린 조카는 아직 돌도 안됐긴 했지만, 11명의 생일을 챙기려면 1년에 최소한 11번은 단체로 밥먹기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고,
어버이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 그밖에 기념해야 할 일(동생들의 승진이라든지, 올케들의 임신이라든지^^)을 더하면 어떤 달엔 두어 번 외식을 해야 해서
음식점 선정 때문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물론 사전 계획 없이 가뿐하게 집에서 삽겹살이나 구워먹자고 하다가 죄다 모여드는 주말도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패밀리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ㅋㅋㅋ

암튼...
처음에 조카가 정민공주 하나일 때는 외식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원래 아기땐 정민공주가 천사처럼 착한 아이여서 좀처럼 울거나 떠드는 일도 없어, 어느 식당을 고르든 편히 밥먹고 수다떨고 돌아오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식당만 예약한 뒤, 우아하게 가서 먹어주고 오면 그뿐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나름대로 편식하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패스트푸드까지도
몹시 즐기시기 때문에, 단체로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가게 되는 음식점 메뉴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었다.

그런데 조카들이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천사표 공주와 달리 막가파 골통계보를 타고난 왕자들이 탄생한 뒤엔 우아 떨며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하는 음식점엔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주 어려선 빽빽 울어대며 같이 먹겠다고 난리여서 누군가 한 사람이 계속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고, 좀 큰 뒤엔 거침없이 식당 안을 뛰어다니려고 하는 통에 놈들을 잡아 앉히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패밀리가 갈 수 있는 음식점은 별도로 '룸'이 마련된 곳이거나
유사한 골통 계보를 타고난 다른 아이들을 위해 아예 놀이시설을 갖춘 곳이거나
원래 좀 시끌벅적해서 놈들이 떠들어대도 눈치가 덜 보이는 고깃집이라든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특정 동네의 지점이 아닌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패밀리보다는 연인과 친구끼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더욱이 우리 가족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좀처럼 없다는 것이 문제다.

토요일에 생일을 맞은 막내는 한참이나 고심하던 끝에(만인이 원하기는 했지만 생일 맞은 본인과 울 아부지가 싫어하는 '장어'를 먹으러 갈 것인가,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정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였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신촌 우노로 행선지를 잡아놓고는
괜찮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가끔 느끼한 걸 왕창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메뉴였지만,
신촌이라는 장소가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우리의 염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같은 TGI라도 홍대쪽에 있는 건 가족단위로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우리도 가끔 가주지만
신촌에 있는 건 주차장도 없을 뿐더러 복작복작 젊은이들로 늘 넘쳐나 주말엔 대기 손님도 줄지어 있지 않은가.

그나마 신촌 우노엔 주차 시설이 있어 다행이었으나
각종 카드 할인과 더불어 대학생은 추가로 10%나 더 할인을 해주고 보니
새파란 아이들만 쌍쌍이, 기껏해야 서넛씩 득시글득시글 거렸지, 우리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우리를 위한 넉넉한 좌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우리는 최대 8명이 앉는다는 원탁 소파 자리에 제일 어린 조카까지 11명이 구겨 앉아서
음식을 채 놓을 자리가 없어, 같은 종류 음식을  포개거나 재빨리 먹어치우거나 하는
식탐 내공을 발휘하며 동시에 조카들을 단속하고, 정신 없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필해야 했다.

우리 패밀리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갈 때 예전에 가장 염려한 것은
울 아부지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시는 참이슬 반주였으나, 경력이 오래 되다 보니
이젠 소주를 집에서 싸가지고 가거나 근처 편의점에서 사서 빈컵 달라고 해 따라놓고 드시게 하며 다른 식구들은 맥주와 다른 음료수를 마시는데, 다행히 이제껏 울 아부지의 참이슬 반주를 막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보지 못하였다. ^^;;
(홍대앞 TGI와 아웃백, 지금은 없어진 마르셰에 이어 신촌 우노까지 성공!)

물론 '우노'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대놓고 부를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어린이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side 메뉴로 한접시에 2천원 하는 김치도 있는 걸 보면 패밀리 레스토랑을 따라가려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울 아버지의 관찰에 따르면 지난 토요일 그곳에서 제일 연장자는 울 아버지셨고
제일 연소자는 돌을 앞둔 우리 막내 조카였으며,
아마 40대도 나 혼자뿐이었을 거라고 했다. -_-;;

다행히 음식은 그럭저럭 맛이 있었고, 워낙 많은 메뉴를 시켜 엄청나게 먹어댔던 덕분인지 매니저가 맥주도 더 갖다 주고 김치도 공짜로 제공하긴 했지만(김치 찾으시던 아부진 포크로 찍어 먹으려니 김치도 맛 없다며 결국 남기셨다 ㅋㅋ)
그런 패밀리 레스토랑엘 가면 우리 부모님은 메뉴도 복잡하고 늘 너무 시끄러워 정신없고 혼란스럽다고 하시는데, 신촌 우노에선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 틈에 앉은 자리까지도 불편하셨나 보다.

우리는 가끔씩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고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즐겁게 떠들며 밥먹고 싶은데, 말만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젊은이들의 집합소에 더 가까운
무늬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우리 패밀리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치사하게 맥주랑 와인 같은 것만 팔지 말고 소주도 파는!)을 좀 만들어 달란 말이지!!
하는 수 없이 다음달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참이슬 반주에 느긋하게 구운 오리 같은 걸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모시는 수밖에...
하지만 또 몇달 뒤쯤에 음식점 레퍼토리가 떨어지면, 또 다시 참이슬 가방에 싸들고 시끄러운 패밀리 레스토랑 진출을 시도할 것은 틀림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골고루 다 잘먹는 '느끼한' 음식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고, 까르륵 웃어대는 조카들의 소란스러움이 다른 소음에 잘 묻혀버리는 음식점은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만한 데가 없지 않겠나.

대규모 패밀리를 위한 넓은 좌석은 있으되, 진짜 패밀리를 찾아보는 건 드물긴 해도
우리나마 머리 하얗게 세신 부모님을 모시고 자꾸 그런 데를 다니면
다른 젊은이들도 자기 부모님 모시고 다녀볼 생각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러면 울 아부지, 엄니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동년배들을 많이 보게 되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덜 느끼시겠지.

어르신들이라고 늘 한방 오리탕이나 갈비 따위만 즐기시는 건 아니라는 걸
젊은이들이 좀 알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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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키드님의 BBM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바나나빵의 열풍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나의 행동반경 안에선 유일하게 바나나빵을 만나볼 수 있는 지역이
홍대앞인데 이상스럽게도 한달에도 두어 번씩은 가게 되던 그곳엘 갈일이 최근엔 참 드물었다.

더욱이 바나나빵의 존재를 알게되기 불과 열흘 전쯤에 그곳에서 100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출판사엘 다녀왔던 나의 아쉬움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는데
드디어 오늘 홍대앞에 갈 일이 있어 벼르고 벼르던 바나나빵 알현을 실천에 옮겼던 것!

물론 그 만남이 아주 쉽진 않았다.
무작정 수노래방과 약국이 있는 네거리를 향해(내 기억으론 분명 이 두 가지가 지표였는데.. 키드님의 바나나빵 관련 글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확인할 도리는 없다 ㅋㅋ)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보니, 약국 앞엔 '미니 잉어빵'과 '호떡'을 파는 좌판과 평범한 떡볶이 포장마차밖에 없었고, 수노래방을 끼고 모퉁이를 도니 거기엔 커다란 말라뮤트를 매달고 뭔가를 파는 노점상과 솜사탕 아저씨밖에 없었던 것.
순간 당황하여 바나나빵 아줌마가 자리를 옮겼나 싶어 '공주 침대 카페'까지 올라갔던 나는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10초쯤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
그러나 바나나빵에 대한 집념은 생각보다 질긴 것이어서
결국 나는 걸음을 되돌려 수노래방 앞 네 거리를 골목골목 다시 뒤지다가
원점부터 시작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주차장길을 내려갔는데...

앗!
바로 미니 잉어빵과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 바로 옆에 아주 작은 포장마차가 덧대어 있었고
좌판 앞엔 자그마한 플래카드 같은 모양으로 노란 바탕에(어쩌면 노란색 글씨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워낙 흥분상태여서 ^^;; )'바나나빵'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순간적으로 나는 또 고민에 휩싸였다.
천원에 3개인데 2천원어치를 사야 하나.. 3천원어치를 사야하나.. -_-''
식구들과 나눠먹으려면 당연히 3천원어치를 사야겠지만
혈당이 300을 향해 치닫고 계신 왕비마마에게 이런 간식은 치명타라는 것을 잘 알기에
결국 나는 '나홀로 몰래 먹고 입샥닦기' 작전을 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줌마, 바나나빵 2천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
따끈한 바나나빵 봉지를 받아든 순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미소로
얼굴은 온통 헤벌쭉.... ^__________^
곧이어 봉지 안에 손을 넣어 끝을 조금 잘라 입에 넣어보니
키드님이 말씀하신 '부드러운 바삭바삭함'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느껴졌다!

아.. 그 기쁨을 키드님이나 교주님께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들의 연락처는 알 길이 없어 꿩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벨로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푸하하하...어서 포스팅을"이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답이 이내 날아왔다.

식은 뒤엔 어떤 맛일지 어서 집에 가서 먹어봐야지, 생각했으므로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 맛을 다시 음미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따뜻할 때 먹는 느낌이 더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워 좋은 듯했다.
그렇지만 식은 뒤에도 느끼하거나 뻑뻑하지 않아서 어느 틈에 2개를 슥삭 먹었다는;;

그리고... 여러분들이 포스팅에 사진을 첨부하셨으니 나까지 사진을 찍어올리는
열성을 보이진 않겠으나, 포슬포슬한 뒷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단한
바나나빵 앞면에 BANANA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게 왜 그리도 귀여운지~! ㅋㅋㅋ
(감동이 큰 덕분에 말끝마다 느낌표와 영탄법의 남발임을 널리 양해바랍니다^^;;)

식탐은 많지만 끼니 외에 간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단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예를 들어 크리스피 도넛 오리지널 같은 건 1개가 최대치--그것도 커피와 함께 먹을 때에만-- 그 이상은 치사량이다) 앉은 자리에서 2개를 뚝딱 먹고도 그리 질린 느낌이 없었다는 건 꽤 놀라운 결과다.
붕어빵도 좋아하지만 2개나 먹고 나면 단팥의 단맛 때문에 뒤끝이 개운칠 않고 곧장 물을 찾게 되는데, 바나나빵은 그리 달지 않고 담백해서 지금 2개를 얼른 먹어치우고 곧장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빵집에서 빵을 골라도 모양과 재료가 화려하고 달콤한 빵을 고르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담백하고 찝찔하고 거친 통곡물 빵 종류를 고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맥락에서도 붕어빵이나 호떡, 오방떡, 호도과자보다 바나나빵이 내 취향엔 더 맞는 것 같다.
가령, 인사동에서 사람들이 포장마차를 뱅뱅 둘러 줄줄이 기다려 사먹는 기름기 잔뜩 머금은 호떡은 줘도 싫고 혹시 하나 먹었더라도 봉투에 남은 게 있다면 다음날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릴 텐데, 바나나빵은 절대 못 버리고 다 먹을 것 같다!

아직 3개나 남았는데, 내일 전자렌지에 몰래 살짝 데워먹으면 어떤 맛일지 ^^
그것도 궁금하다. ㅎㅎ

암튼....
바나나빵을 나도 드디어 만나서 기쁘기 그지없다!
다시 한 번 바나나빵의 존재를 알게 해준 키드님께 감사하고
바나나빵 열풍을 불게 했던 최초의 그 글이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며
트랙백은 키드님 못지않게 바나나빵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지다님께 보내기로 작심했다.  ^^;;

아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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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예찬

삶꾸러미 2007. 2. 9. 21:55
오늘은 웬일인지 정말로 '씻기가 싫어서' 작업실 출근을 포기하고
염려했던 대로 온종일 좀비처럼 빌빌거렸는데
조금 전 외출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이 옥수수 한 보따리를 내게 안기셨다!
연노랑색에서 진한노랑, 갈색 옥수수알이 그림처럼 예쁘게 들어박힌 찰옥수수를 본 순간
나의 좀비모드는 돌연 식탐아귀모드로 돌변했고,
폐인준백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메뉴인 '달걀라면'을 끓여먹은지 30분도 안된지라
배가 심히 부른 걸 아랑곳하지 않고 게 눈 감추듯 옥수수 한 자루를 해치웠다. ^^;;

조금 전 토룡일보의 바나나빵 기사를 읽으며 군침을 다셨던 걸 이심전심 부모님도 텔레파시로 느끼셨던 걸까!!
아아.. 뱃가죽이 팽팽하게 심히 늘어나 약간의 거북스러움이 느껴짐에도 옥수수가 주는 행복감에 미련스럽게도 마냥 기쁘다. ^___^
특별한 인공의 맛 없이 자연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옥수수가 나는 정말로 좋다.
생긴것도 야무지고, 이름마저도 예쁜 옥수수!
어렸을 땐 정말로 옥수수를 먹으면 늘 '옥수수알 길게 두 줄 남겨가지고~' 노래를 부르며
하모니카 부는 흉내까지 내며 행복했더랬다.
어렸을 때부터 길게 두 줄 옥수수알을 남기는 '내공'을 쌓았던 터라 찰옥수수가 아닌 몹시 무르고 노란 여물 옥수수를 먹을 때도 너덜너덜 옥수수 껍질 흔적이 많이 남은 옥수수대를 내려놓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대단히 깨끗하고 깔끔하게 옥수수 알맹이를 완벽하게 뜯어먹은 옥수수대를 남기는 나를 보면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_-V
그렇지만 그렇게 맛있고 소중한 옥수수알을 함부로 뜯어먹을 수야 없다는 것이 나의 옥수수에 대한 예의다. ㅋㅋ

요즘이야 이렇게 한겨울에도 저장해두었던 옥수수를 '맛있게' 쪄서 파는 데가 많지만
생긴건 멀쩡해도 딴지 오래된 옥수수를 저장한 탓에 너무 딱딱하고 맛이 없는 옥수수를 만나면 완전히 X밟은 기분이 되기 때문에 선뜻 사먹게 되질 않는데, 옥수수에 광분하는 딸래미의 성격을 잘 아는 부모님은 용케도 맛있는 옥수수를 찾아내신다.
당신들도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한눈에 맛있는 옥수수를 알아보시는 것이리라.

작년 여름에 동생네와 동해 다녀오면서 휴게소에서 사먹고
바닷가에서 또 사먹고, 결국엔 국도 근처에서 파는 옥수수를 한 자루 사다가
신나게 쪄먹었지만 나의 옥수수 열망은 좀체 가시질 않았던 것 같다.
여름 끝자락이 돼서 날것으로 파는 옥수수가 사라질 무렵이면 나는 마구 조바심을 치며
옥수수를 여러 자루 사다가 냉동실에 넣어놓고 겨울 내내 쪄먹는 방법은 없을까 별별 생각을 다하는데, 내가 그렇게 유난을 떨면 부모님은 겨울에도 옥수수 파는 데 많으니 걱정말라고 핀잔을 하셨더랬다.
그렇지만 여름에 갓 수확한 옥수수를 얼른 쪄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옥수수를 뜯어먹는 거랑, 어디 그 느낌이 같으랴!

하지만 그간 옥수수 열망이 컷던 덕분인지
오늘 사온 옥수수는 쫄깃쫄깃 보들보들 옥수수맛의 진수를 그럭저럭 간직하고 있다.
아... 행복해라.

한 겨울에 이렇게 맛있는 찰옥수수를 먹게 되다니..
부끄러울 만큼 게으르고 나태한 하루를 보낸 뒤에 너무 과분한 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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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생각

식탐보고서 2007. 1. 22. 20:16
도시락 반찬으로 멸치를 싸와서 먹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기피하는 음식, 먹지 않는 반찬이 있기 마련인데
이제는 거의 몬도가네 수준으로 못 먹는 것이 없는 내가 그닥 즐기지 않는 몇 안되는 반찬엔 원래 '멸치'가 속했다.
그건 워낙 '편식대마왕'이란 별명에 걸맞게 가리는 것도 많고 비린것을 몹시도 싫어하시는 울 아부지의 영향이었다.
온갖 날것은 물론이고, 익힌 등푸른 생선마저도 못 먹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바닷가인 부산에서 고등학교때까지 다니셨다는 분이 쬐끄만 멸치까지 못 먹는 것은 좀 이상하다 싶지 않은가?
하지만, 멸치배가 들어와 덕장에 삶은 멸치를 마구 널어 말리고 있는 동네 입구를 지나다 보면, 마음 좋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집에 가서 반찬 해먹으라고 어린 우리 아버지한테 멸치를 한 보따리씩 싸주셨다는데, 8남매 장남 답게 살림살이를 염려한 아버지는 동생들이라도 먹이려고 그 멸치를 집까지 가져가며 비린내 때문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암튼 멸치와 등푸른 생선의 비린내를 못견뎌하시는 아부지 때문에
우리 엄마는 젊은 시절 아부지가 안 계실 때만 그런 '비린' 반찬을 해먹었는데,
지금이야 아부지의 인내심과 비례하여 엄마와 내 목소리가 무진장 커졌으므로 당당히 등푸른 생선을 굽거나 조려먹기도 하고, 멸치볶음을 상 위에 올려놓지만,
예전엔 아예 울 엄마가 그런 반찬거리를 사들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해먹고 난 뒤의 비린내마저도 못 견뎌,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도 냄새 다 빠질 때까지 온통 방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시위를 벌이는 통에 '차라리 안먹고 만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나.

게다가 YS가 집권한 뒤였던가?
YS 아버지가 거제도에서 멸치 사업을 한다나 어쨌다나 해서 멸치값이 엄청나게 올랐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멸치 한 상자에 십만원도 넘는 가격표가 붙어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며, 우리집은 멸치를 안먹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렇게 특별한 사정상 자주 안 먹다 보니 멸치는 우리 삼남매 모두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가, 갱년기 이후 여성의 골다공증 문제를 예방하려면 칼슘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방송을 타면서 슬그머니 우리집에도 멸치 반찬이 재등장한 것 같다.

물론 그런 뒤에도 나는 멸치 반찬에 그리 손이 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를 도와  중간 크기 정도의 멸치 내장을 따내면서 꼭 '멸치 똥을 딴다'고 표현했는데, 아버지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여 무조건 손에 배는 그 비린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덩달아 멸치를 싫어했던 남동생들이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아버지가 되고,
나도 덩달아 훌륭한 역할 모델 노릇을 하고 싶은 고모가 되면서
'고모는 아무거나 잘 먹는 어린이가 제일 이뻐!'라고 조카들에게 언제나 큰소리를 치려면
싫어하는 익힌(!) 당근도, 멸치 볶음도 퍽퍽 집어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요즘도 다른 반찬과 달리 멸치 볶음은 '절대로' 내가 손수 만들 수 없는 음식이라고 우기고는 있으며, 조리법을 아무리 똑같이 해도 본질적인 질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보관이 잘못된 때문인지 비린내가 심히 나는 멸치 볶음은 여전히 씩씩하게 먹어줄 수가 없지만 ^^;;
적당한 크기의 잔멸치를 바삭하고 달달하게 볶은 멸치 반찬은 이제 나도 맛을 알고 즐기게 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예전엔 죽어도 못 먹겠다 생각했다가 이제는 탐닉하게 된 음식이 한둘이 아니다.

- 무지막지 뼈다귀가 무서워 보였던 감자탕: 20살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선배들이 감자탕집 끌고가면 이맛살 찌푸리며 '무식한' 음식도 다 있다 여겼는데 ^^;;
이제는 사먹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정육점에서 돼지 등뼈 사다가 내 손으로 집에서도 끓여먹는다! ㅋㅋ

- 는질는질 씹히는 느낌이 소름끼쳐서 못 먹던 생선회: 맨날 회사 회식으로 횟집만 가는데 혼자 곁다리 반찬과 값싼 오징어회만 먹는 게 억울해 조금씩 시도하다  이제는 없어서 못 먹지 아마.

- 꿈툴꿈틀 애벌레처럼 보였던 산낙지: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ㅜ.ㅜ;; 참기름속에서 허우적대며 놈들의 힘이 살짝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맛이란.. 흑..

- 코가 핑 뚫리는 암모니아 냄새의 삭힌 홍어: 사실 지금도 무진장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삭힌 홍어 파는 식당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했던 예전에 비하면 ^^ 지금은 그 오묘한 맛을 좀 알 것 같다.

- 특유의 냄새를 좀체 참을 수 없던 양고기: 양고기 역시 나의 기호식품엔 들지 못하지만, 양고기 굽는 옆에서 애써 욕지기를 참느라 눈물을 흘리던 때도 있었는데;;; ㅋㅋ 지금은 그럭저럭 잘 먹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파피는 콩국수를 못 먹겠다고 하고 ^^;;
지다님과 벨로는 미더덕을 먹어본 적도 없으며
키드님은 미더덕을 싫어한다는 걸 보면

이상한 혐오식품을 제외하곤 못 먹는 음식이 이제 달랑 셋--보신탕, 추어탕, 곱창(보신탕은 그냥 싫고, 추어탕과 곱창은 수차례 노력했음에도 극복할 수 없는 맛이 느껴진다)--밖에 남지 않은 나는 그야말로 엄청난 탐식가인듯.
어른이 된 뒤로 주욱 변화 및 발전(?)해온 나의 식생활을 따져볼 때
결국 식성과 식탐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과도 유사하지 않나 싶다.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개개인이 그걸 얼마나 받아들이고 심취하느냐의 정도 차이랄까.

죽도록 싫어하다가 없어서 못먹게 된 음식도 있듯
앞으론 몹시 좋아했는데 죽도록 싫어하게 될 음식도 생기겠지.
내 식탐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새삼 궁금하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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