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09.12.14 순무 13
  2. 2009.10.30 과한 욕심 8
  3. 2009.10.15 홍옥이 나왔다 19
  4. 2009.09.25 제일-가장-최고 15
  5. 2009.09.17 비빔국수 14
  6. 2009.09.15 늙음에 대하여 4
  7. 2009.08.13 화르륵~ 13
  8. 2009.08.10 국수 18
  9. 2009.06.04 엄마표 김밥 21
  10. 2009.06.02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 8

순무

투덜일기 2009. 12. 14. 15:17
강화도에 간다고 하니 왕비마마는 올 때 "순무나 사와라, 심심할 때 깎아먹게."라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왕비마마는 <언제나> 심심하다. 온종일 TV를 동무삼으면서도 심심하다고 간간이 일하는 딸을 귀찮게 굴어 타박을 받을 정도니 나도 할 말이 없다.
심심하다는 핑계로 괜히 찾아다니는 간식만 안먹어도 체중 줄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 텐데, 식탐도 강하고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분이라, 그나마 열량이 적은 순무나 무, 콜라비 따위를 군입거리로 삼겠다 할 땐 반가워해야 한다.

오래 전 가족끼리 강화도에 놀러갔을 때도 순무를 사왔는데 만원에 한 보따리였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격을 물으니 알이 작은 건 6개 5천원, 큰 건 5개 5천원이라고 했다. 동생네가 와 있단 얘기를 안들었으면 5천원어치만 샀겠지만, 공주네 식구도 다이어트 때문인지 날로 깎아먹는 무를 좋아하는 편이라 큰놈으로 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는데, 알이 굵어선지 꽤 무거웠다. 며칠이든 당일치기든 어딜 다녀오면 그 지방의 특산물을 뇌물로 바치지 않으면 삐치는 집구석은 우리밖에 없나보다. ㅋㅋ 
어쨌거나 아줌마는 분명 순무 잎을 잘라 비닐에 담으며 "하나 더 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 집에 와보니 달랑 열개 뿐이다. 내가 전날의 과음으로 여전히 숙취에 시달리고 있기는 했지만 잘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나는 치밀하질 못해서 물건을 살 때 장사치의 셈에 그냥 맡기는 편이다. 과일을 살 때도 굳이 같이 세지 않는다. 내가 특히 셈에 약하기도 하고, 알아서 담겠지 싶어서... 그래서 실수인지 속임수인지 모르지만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확인 안한 내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과일의 갯수가 모자란다든지 슬그머니 못생기고 상처 난 과일을 집어넣은 걸 발견해 장사치의 얕은 속임수임을 실감할 땐 잠깐이지만 인간이 싫어진다. 

순무의 경우는 어차피 10개가 만원어치이므로 내가 손해본 건 없다. 내가 덤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한 개 더 주겠다고 해놓고 10개만 넣은 건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지만 그래도 뜨내기 장사라고 나를 허투루 대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제 내가 오자마자 왕비마마는 큼지막한 순무를 한 덩어리 잡아 조카와 함께 뚝딱 해치우셨다. 그래도 여전히 열개나 있으니 동생네와 반반씩 나눠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순무가 9개 뿐이라는 사실에서 그만 나는 잠깐 와락 짜증이 났다. "그 아줌마 뭐냐!" 나의 분노를 식탐과 순무 욕심으로 받아들였는지, 동생네는 달랑 순무를 2개만 얻어갔다. ㅋㅋ

오늘도 심심해진 왕비마마가 깎아준 순무의 맛은 그저 그렇다. 날 무보다 좀 단단하고 부위에 따라 단맛이 좀 더 많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의 매운 맛과 비슷하게 알싸한 맛으로 씹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겐 지금 순무의 맛이 중요하지 않다. 순무 장수 아줌마가 10개를 11개로 잘못 센 것인지, 덤을 하나 주겠다고 한 말을 그새 까먹은 것인지, 덤을 주는 척 괜히 생색만 내는 게 그곳 마케팅의 수법인지, 아니면 내가 헛것을 들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남은 순무가 다 없어질 때까지 나의 의문은 반복될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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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욕심

투덜일기 2009. 10. 30. 16:25

....은 화를 부른다. 명언이다. ㅠ.ㅠ
그동안 매주 장보러 갈 때마다 만원어치씩 사와 먹은 홍옥 사과가 <너무> 맛이 있었다. 홍옥의 진수를 보여준달까, 적당히 새콤하고 달콤하고 과즙 많고 빠알갛고 크기도 하나씩 깨물어 먹기에 적당했다.
10월이 끝나가며 나는 조바심이 났다. 11월 되면 이제 홍옥은 안나올 텐데!
해서 지난 수요일 나는 큰 마음을 먹고 홍옥을 한 상자나 사들였다. 선물용으로 나오는 복숭아나 포도 상자와 달리 홍옥 상자는 엄청 크고 70개도 넘게 들었더라. 복숭아 사건 이후 새로 뚫은 그 과일가게에서 여름부터 주욱 과일을 사다먹었고, 홍옥도 그간 벌써 3주째 먹어왔던 터라 당연히 믿고 사왔는데;;;
유난히 빨간색이 진한 요번 홍옥은 어째 맛이 좀 달랐다. 단맛은 좋은 편인데 아삭거리는 과육의 질감이 그간 먹어온 홍옥과 전혀 다른 거다. 약간 푸석푸석한 느낌이 들 정도로...
홍옥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홍옥에는 못미치는 사과의 맛.
만 하루 이상 고민을 하던 나는 (이미 10개 이상 먹어 치우거나 공주네 집에 싸줬다) 도저히 한달 내내 홍옥을 먹으며 찜찜하고 불행해지기가 싫어서 밤새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다잡아 조금 전 사과상자를 다시 채워 차에 싣고 과일가게엘 찾아갔다.
처음부터 대판 싸울 생각은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홍옥의 맛이 아니니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돈을 더 주고라도 바꿔오려던 것이었는데;; 단박에 거절당했다. ㅠ.ㅠ
이제 더는 홍옥사과가 나오지 않는단다. 정말로 드넓은 도매상 과일 좌판에 남은 홍옥사과는 딱 한상자밖에 없었는데, 내가 사온 것과는 크기가 달랐다. 바꿔줄 홍옥이 없다며 아줌마는 더 이상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다른 손님을 맞았다. 일단 과일가게 앞에 차를 세워놓고 사과상자는 아직 트렁크에서 꺼내지 않은 채 먼저 물어보긴 했지만, 민망하고 좌절스럽고 속상하고 화나고... 
쭈삣쭈삣 돌아서서 그냥 돌아와 다시 무거운 사과상자를 들고 낑낑대며 이층으로 올라왔다. 젠장.
욕심을 부린 탓에 올 가을엔 11월에도 홍옥사과를 음미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마 한달 내내 계속해서 안타깝고 속상해할 게 틀림없다. 홍옥사과의 진수는 이 맛이 아닌데, 더 아삭거려야 하는데.. 그러면서. ㅠ.ㅠ
역시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 적당히 욕심을 부렸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 맛있는 홍옥을 한 상자 살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던 거 아닌가!? 다 욕심쟁이 과일장수 아줌마 탓이다 뭐!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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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이 나왔다

투덜일기 2009. 10. 15. 16:42

일주일 만에 장을 보러 갔더니 그새 홍옥이 나왔다! 빨리 홍옥을 사다먹을 욕심에 장을 보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나의 식탐은 성격이 좀 오묘해서 고기와 생선류를 비롯한 음식에는 그저 뭉뚱그려 막연하게 <먹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반면에 과일류는 종류를 <콕 찝어서> 먹어야한다는 열망이 타오른다.
며칠 전부터는 그렇게 귤이 먹고 싶었다. 거의 매일 사과를 먹고 있던 터라 특히 비타민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옛날처럼 한 박스 집에 쟁여놓고 손바닥 노래지도록 마냥 귤을 까먹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 요즘에 나오는 귤은 조생귤이라고 해서 껍질도 말랑말랑 좀 잘 까지겠나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장보러 가서 귤을 사와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과일가게에 홍옥이 쌓여있는 걸 본 나는 광분해서 홍옥부터 잔뜩 담으라고 하고는 그래도 못내 아쉬워 귤도 한 보따리 사왔다. 모녀가 둘다 식탐도 많고 영양따져 골고루 먹어야하는 왕비마마 덕분에 우리집 엥겔계수가 좀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대충 일주일치 과일값이 일주일치 식료품 금액의 4분의 1이다. 어휴...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더라>며 먹는 것에는 절대 아끼는 법이 없는 나도, 카드로 결제하는 마트 비용은 그러려니 하는데 과일값을 현금으로 내려면 약간 손이 떨린다. 좀 전에 산 생선이며 채소 같은 반찬 가격과 대비하면 확실히 과일 값이 비싼 것 같아서...
하지만 집에 돌아와 얼른 홍옥을 씻어 와그작 깨물어 먹으니, 바로 이맛이다!
바야흐로 홍옥의 계절. 얼른 다 먹고 담주에 장보러 가면 또 사올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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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가장-최고

투덜일기 2009. 9. 25. 16:59

원래 우유부단한 인간임은 알고 있었으나 이젠 둘 중에 고르는 걸 어려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일 좋거나 싫은 것, 최고로 마음에 들거나 싫은 것조차 꼽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하다못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뭐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하겠다.
5월의 신록빛깔, 연한 하늘색, 진한 청보라색이 떠오르지만 그게 옷색깔이라면 또 마음이 달라져서 사람들이 스님 옷이냐고 타박할 정도로 희끗희끗한 회색, 잿빛이 좋고, 검정색도 빠뜨릴 수 없다. 물감색깔 중에 고르라면 아직도 노랑색을 고를지도 모르겠고...
그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헐.. 이것도 어렵다. 식탐녀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는 건 고문이잖아! 일주일 동안 세끼 계속 먹어도 좋을 듯한 음식을 고르면 되겠지만, 불행히도 나에게 그런 음식은 없다. 다 잘먹긴 하지만 음식에 관해서도 잘 질리고 변덕이 좀 심한가. 안 질리는 걸 고른다고 '잡곡밥'을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을 순 절대 없는 일... 난감하다.  
마찬가지로 제일 좋아하는 음악, 가수나 밴드, 배우, 최고로 꼽을 만한 영화나 여행지 따위를 정하라고 하면 난 공황상태에 빠져들 것 같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이런 기분일 땐 이게 좋은데 또 저런 기분일 땐 저게 더 낫고, 이게 좋은가 싶으면 저것도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는 얘기다.

비틀즈의 리마스터 앨범 발매기념으로 각자 제일 좋아하는 비틀즈 노래를 10곡 20곡씩 뽑는 이웃을 보며 나도 한번 골라볼까 하다가 깨달은 건 나란 인간이 그런 선택조차 제대로 못하는 헐랭이가 됐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련가 하고 앨범을 골라 다시 들어보았지만, 선택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맞다, 이 노래는 이래서 좋았지 싶고, 저 노래는 역시 가사가 시 한편이로구나 싶어서 좋고, 어느 노래는 어떤 특정한 기억과 맞물려서 중요하게 손꼽아야할 것만 같았다. 왜 이러나 싶어서 그럼 그나마 별로인 곡부터 제외시켜볼까 했지만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시험 사지선다 답안에서 확실히 아닌 것부터 골라내는 느낌과는 달리, 사과박스에서 일부러 제일 맛없게 생기거나 벌레 먹은 사과부터 골라내며 굳이 기분을 나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손에 집히는 사과를 먹으며 기뻐하면 되는 것이지. 게다가 비틀즈라는 사과상자엔 좀 덜익은 건 몰라도 벌레먹거나 썩은 사과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텐데.

어린 조카들에게 물으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누구인지, 어떤 음식이 최고로 맛있는지,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제일 좋은 동물과 제일 싫은 동물이 무엇인지 스스럼없이 0.5초만에 대답이 튀어나온다. 단순한 사고로 온 열정을 다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잃지 않은 아이들을 보면 나는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고 우유부단하고 무엇에도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음이 더욱 실감된다.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좋고 싫음에 대한 판단력의 예리한 각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 참 많던데 난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아무래도 상관없고 아무거나 괜찮은 회색인간의 아무거나 인생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건만. 

어렵사리 생각해낸, 유일하게 아직 변하지 않은 듯한 최고의 음료 커피나 마시면서 멍해진 두뇌를 좀 자극해봐야겠다. 제일 좋아하는 음료마저 변하진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음... 정신 바짝 나게 아이스커피로 마실까, 그냥 뜨겁게 마실까... 으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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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

투덜일기 2009. 9. 17. 06:13
고추장 선전이야 그렇다 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이 화가 나거나 내숭떠느라 배를 곯고 집에 들어와 커다란 양푼에 밥을 잔뜩 넣고 온갖 나물반찬과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빈다음 아귀처럼 입에 떠넣는 장면을 보면 나는 너무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느낌에 막 화가 난다. 드라마를 많이 안보는 편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얼마 전 황정민이랑 김아중 나오는 드라마에서도 양푼비빔밥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나는 걸 보면(아니면 어쩌지...) 시뻘겋게 비빈 양푼비빔밥은 사람들 머릿속에 너무도 뿌리깊이 자리잡은 편견의 전형이 분명하다. 아직도 그런 장면을 포기 못하는 작가들이 게으른 건지, 아니면 그만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흔한 일인지 따져보자고 나선다면 나는 분명 전자에 한표.
양푼에 비비는 건 싫지만 어쨌든 나도 가끔 비빔밥이 먹고 싶어지지만 그렇게 수시로 아무때나 오밤중에라도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환경은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먹으려면 일단 나물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명절이나 차례 때처럼 삼색, 오색 나물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두 종류는 있어야지, 아니 최소한 맛있는 깍두기나 열무김치라도 있어야 밥을 비벼먹지! 암튼 내 경우 비빔밥은 내가 각별히 신경써서 고사리 나물을 볶았거나 가지나물과 호박나물을 동시에 만들고 거기다 고구마순 나물까지 갖추어 놓았다든지 해서 벼르고 해먹는 별식이다. 아무때나 양푼 꺼내들고 화풀이 하듯 숟가락을 휘둘러대는 오밤중의 해프닝 같은 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자꾸 딴소리가 길어지고 있는데 암튼 그런 <어려운> 비빔밥 대신 비빔숙수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김치만 넣고 밥을 비벼먹는 일은 나에게 있을 수 없으되, 소면 삶아서 김치만 송송 잘라 넣고 양념해 먹으면 되는 게 비빔국수니까. 매운 걸 잘 못먹는 편이면서도 가끔씩 매콤한 게 땡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생각나는 건 제일 먼저 떡볶이, 라면, 그리고 비빔국수다. 최근 들어 떡볶이 열망이 가장 크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 각인된 맛있는 떡볶이에 버금가는 맛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다행히 사다가 먹겠다거나 만들어 먹겠다는 부지런함은 자행되지 않았다. 라면은 또 딱 한 젓가락 먹고 나면 이 맛이 아니야 싶은 후회가 들기 십상이므로, 며칠 전부터 깨나 비빔국수가 먹고 싶었던 모양으로 꿈에서도 비빔국수 만들어 먹는 꿈을 꿀 정도였다. 물론 걸림돌은 언제나 귀차니즘. 막상 시작하면 별것도 아니지만 식탐이 요란하게 동하기 전엔 다 귀찮게만 여겨지는 게 먹자고 요리하는 짓이 아닐까.

그럼에도 오늘은 조금 전 밤참으로 혼자 부시럭부시럭 국수를 한줌 삶고 김치를 넣고(귀찮아서 송송썰기도 양념하기도 건너뛰었다) 대신 샐러드용으로 썰어놓은 오이와 파프리카를 좀 얹은 다음 고추장 양념에 썩썩 비벼 후루룩 쩝쩝 먹어주었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미친듯이 매운 맛을 찾는 이유가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라는데, 가학증 환자처럼 통증에 가까운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매운 걸 먹고 나서 화끈거리는 입안을 달래는 기분이 미묘하게 좋다는 건 나도 인정해야겠다. 언짢은 일이 있어서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밤새 작업하며 계속 기분이 가라앉았는데 부산 떨며 비빔국수를 먹은 걸 기점으로 슬슬 쪼그라들었던 두뇌가 펴지는 느낌이다. 단순히 뭘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빔국수> 때문인지, 아니면 <매운맛> 때문인지 가늠할 순 없어도 슬슬 식곤증까지 선물로 달고온 오늘의 새벽참 메뉴는 퍽 성공적이다. 남들에겐 오밤중 양푼 비빔밥이나 비빔국수나 생뚱맞고 우스운 건 똑같겠지만서도. 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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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하여

삶꾸러미 2009. 9. 15. 18:27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주말에 놀러가 함께 저녁을 먹다 보면 늘 되풀이되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밥상 아래로 자꾸만 밥풀이나 반찬을 흘리는 할아버지를 타박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
양반은 모름지기 매끄러운 놋쇠 젓가락으로 청포묵 하나를 집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입까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젓가락질에 능해야한다며 코흘리개 시절부터 우리 손주들에게 엄하게 젓가락질을 가르치셨던 바로 그 할아버지가 진지를 잡수시면서 뭔가를 흘린다는 건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물론 할머니도 가끔 입가에 밥풀 같은 게 묻었는데 느끼지 못하실 때도 있지만, 그런 사실을 잘 아는 할머니는 수시로 입가를 닦거나 스스로 밥상 아래를 살피셨기 때문에 마지막에 밥상을 치우고 나서도 매번 지저분한 할아버지 자리와 달리 할머니 자리는 늘 깨끗했다.
게다가 골초였던 할아버지한테선 늘 심한 담배냄새와 함께 할아버지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할머니는 그게 늙은이 냄새라면서 질색을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은 늙은이 냄새 나면 애들이 싫어한다며 언제나 바지런하게 씻고 로션(할머니 용어로는 여전히 '구루무')을 바르셨는데, 정말로 우리 할머니한테선 노인 특유의 냄새를 느낄 수 없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6개월쯤 다시 할머니와 한집에서 동침하며 살던 시절, 내가 새벽녘에 컴퓨터를 끄고 옆방으로 들어가 부시시 할머니 옆자리로 파고들면 할머니는 나를 꼭 안아주셨는데 팔순이 넘어서도 아기피부처럼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할머니의 팔다리를 어루만지면 금세 잠이 들었다. 마지막까지도 우리 할머니한테선 흔한 노인냄새 대신 우리 할머니만의 달콤한 체취가 났던 것 같다. 역시나 팔순 넘어서까지 전국 방방곡곡 사찰로 성지순례를 다니실 만큼 정정했던 우리 외할머니한테서도 노인 냄새를 맡은 기억이 없다. 친할머니처럼 잘 때 껴안고 자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주 뵙고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했으므로 충분히 체취를 맡을 기회는 있었을 텐데.

내가 늙음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건 엄마 때문이다. 올해 나이 예순 아홉. 아직도 나에겐 아줌마 영자씨가 익숙하지만,  어느 누가 봐도 할머니라고 인정할 나이다. 요즘엔 특히 젊게 사는 노인들이 많아 칠순 넘어서도 펄펄 날아다니며 건강을 자랑하는 분들도 많지만, 지병도 많고 마음도 약하고 의존적이기까지 한 울 엄마는 그들과는 확실히 다른 그냥 할머니로 늙어가고 계신다. 그간의 여러 병력을 따져본다면 이 정도 회복도 고마워 해야 하는 수준이고, 노인으로선 그게 당연한 건데도 내 마음 속 어린아이는 젊은 엄마를 포기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자연스레 노인의 특징을 보이는 엄마가 매번 놀랍고 속상하고 서글프다가 버럭 짜증이 치민다. 
노인들이 밥풀이나 반찬 양념이 입가에 묻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입주변의 근육과 신경이 노화해 정말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입술과 혀의 놀림도 자연히 전보다 날렵하지 못해 음식을 입에 넣거나 씹을 때도 흘릴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울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말초신경이 상해 손가락 소근육의 움직임이 원할하지 못해 젓가락을 떨어뜨리기 일쑤이니 오죽하랴. 엄마 티셔츠를 보면 하나같이 앞섶에 보일락말락한 얼룩이 묻어 있다. 음식물을 흘린 자국이다. 미리 알아차렸을 때는 얼른 애벌빨레를 하거나 문질러 지우기나 하지, 몰랐다가 그냥 세탁기에 돌리고 나면 나중엔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식탁 밑 엄마 자리도 흘린 음식물로 매 끼니마다 어지럽다. 어린 조카 밥먹고 난 자리랑 똑같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치우자면 버럭 화가 난다.
진짜 화가 나는 대상은 인간의 노화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인데, 짜증과 분노는 늘 엄마에게 날아가고 만다. 숟가락질에 서툰 아이가 밥을 흘리는 게 당연한데도, 그걸 치우는 게 짜증나서 애한테 화풀이는 하는 몹쓸 엄마처럼.
며칠 전엔 심지어 울 엄마한테서도 드디어 노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사로잡혔다. 노인 특유의 냄새는 피부 노화로 떨어진 죽은 세포와 각질 때문이라 완전히 피할 순 없으니 잘 씻고 향수를 사용하는 수밖엔 없다고 들은 듯하다. 빨간 립스틱 하나 바르는 게 화장의 전부인 울 엄마가 향수를 쓸 리는 없고, 벌써부터 춥다고 매일 샤워는 안할 태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삼 느껴진 모양이다. 쓸데없이 민감한 나만 가끔 감지할 정도이긴 하지만, 끈적거린다고 바디로션 바르는 것도 싫어하는 왕비마마의 노인 냄새를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청력도 나빠져 TV도 거실을 왕왕 울릴만큼 틀어놓아야 하고, 돋보기가 없으면 작은 글씨는 전혀 볼 수가 없으며 기억력도 현저히 나빠져 했던 얘기를 자꾸 되풀이해 당부하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데도 딸로서 선뜻 수긍하게 되질 않는다. 그건 본인도 마찬가지라 나보다 더 속상할 텐데 화를 내는 건 언제나 못된 딸이다.
조금 전에도 늙은 딸 먹으라고 복숭아를 주고 가면서 끈적끈적한 과일물을 사방에 뚝뚝 흘리며 먹고 다니는 엄마에게 와락 신경질을 부렸다. 식탐에도 여러종류가 있지만 울 엄마의 식탐 특징은 입 한가득 넣고 씹는 쾌감을 유독 즐기신다는 점이다. 예쁘고 정갈하게 자른 과일을 포크로 얌전하게 찍어먹는 건 절대 울 엄마 스타일이 아니다. 무조건 통째로 들고 우적우적 크게 베어먹어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보다. 아오리나 홍옥사과는 나도 당연히 그렇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인정하지만, 단물 뚝뚝 흐르는 복숭아 같은 건 좀!!!
당연히 눈도 어두워졌으니 늙은 엄마가 닦는다고 해봤자 끈적임을 말끔히 닦아낼 리 만무해 두어군데는 빼먹기 일쑤인데 걸레질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목. 결국엔 내몸 편하자고 내는 화풀이였던 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셨던 것도 아니고 팔순 넘어 시들어가시는 그분들을 익히 지켜봤으면서도 늙어가는 엄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잘 안되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늙음에 대한 지극한 공포를 품고 있나 보다. 늙기 싫어서 발악하는 사람들의 흉한 모습을 손가락질하면서 말로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게 멋진 거라고 주장하지만, 나 또한 다른 방향으로 흉하게 발악하며 억지 용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확실히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는 지나버렸으니 아쉽고 중년도 노년의 미래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싫으니 천상 이게 철 안든 사십대의 청승이 아니고 무언가. 스무살 무렵의 유치한 나는 예순살까지만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적이 있다. 아마 그때도 죽음보다 늙음이 더 무서웠던 건 아닐까.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이치라고 고개 끄덕이기엔 늙음이 가져오는 심신의 흐트러짐이 너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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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투덜일기 2009. 8. 13. 17:06

말복이라고 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장을 보러 갔었다. 재래시장 분위기의 과일도매상 옆에 있는 늘 가던 마트로. 기껏 장을 다 보고 나오는데 과일가게에 놓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도 말한 적 있지만, 그 마트는 주변 과일도매상 때문에 과일을 못판다. 원래 복날은 삼계탕도 먹고 맛난 여름과일도 먹는 거라는 생각에 값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저렴. 한개 단돈 오백원이란다. 지난번 장보러 갔을 땐 무려 만원에 8개밖에 안주는 자두를 사먹었기 때문에 나는 반색하며 얼른 열개를 샀다.
속으론 <싼게 비지떡인데...>라면서 좀 찜찜했지만 아줌마가 하도 잘난척을 하며 맛있다고 추켜세우길래 아무런 의심도 안했던 것 같다. 그 옆엔 물론 그 두배인 만원에 열개짜리 수박자두도 있었지만 크기도 별 차이 안났고, 아줌마는 자랑스레 말했다. "집에 가서 북북 씻어 먹어봐요. 얼마나 맛있나..."

그런데!!
나만큼이나 과일애호가인 엄마가 현관부터 봉다리를 받아들고 얼른 씻어먹으려고 부엌으로 가더니 뭐 이런 걸 사왔냐고 하셨다. 하나같이 시들시들 과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살 땐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 고르지만 과일가게 좌판에서 과일을 살 땐 주인한테 미안해서 그냥 맡기는 편이다.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그 언저리 과일가게에서 산  천도복숭아와 자두는 너무 비싸서 그렇지(한개에 1250원이라니!) 행복해질만큼 맛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방비였나보다.
꼬라지가 엉망이라도 맛이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먼저 씻어 맛을 본 엄마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셨다. 단맛은 하나도 없고 신맛 뿐이란다. ㅠ.ㅠ 신 과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철면피 아줌마한테 너무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화르륵 분노가 치솟아 그 자두를 먹어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다시 과일을 싸들고 가서 그 아줌마네 좌판에 확 던져버리고 돌아오거나, 환불해오고 싶은데 엄마가 기름값 아깝다고 말린다.
그냥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교훈만 가슴에 새기란다. 과일은 비싸도 맛있는 걸 사야하는 거라면서. ㅠ.ㅠ
그나마 만원어치 사온 게 아니라 오천원만 버렸으니 다행이라나.
그래도 좀체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모름지기 장사와 거래는 신용이고 믿음인데, 어떻게 저런 사기를 치나 모르겠다. 뜨내기 장사꾼도 아니고 수십년째 거기서 과일 도매상을 하는 사람이!
생각해보니 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집엔 하나도 없는데 유독 그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물이거나 맛있는 놈들이 대거 출하되지 않았단 의미인데 난 그걸 왜 지금에야 깨닫고 있을까. 그냥 지천으로 깔려 있던 복숭아나 사올것을... 결국 이 가라앉지 않는 분노는 바보처럼 부주의하고 생각없이 당한 나에 대한 것이다. 더 속상한 건 얼굴치인 내가 그 아줌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 집은 당연히 불매운동을 해야하는데 어쩐담. 그나마 끝에서 대여섯번째 집이었던 것 같으니(그도 자신은 없다만) 그 주변에선 두번다시 과일을 사지 않으리!
맛없는 저 자두를 어째야하나 그것도 심란하다. 확 버리기도 그렇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값은!) 확 다 갈아서 주스로 한번에 마셔버리자니 일일이 씨빼기가 귀찮고, 당장 되돌아가 그 아줌마 얼굴에 확 뿌려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만 같은데 삼복더위에 내가 그런 에너지를 쏟는 것조차 아깝긴 하다. 해서 괜히 부아만 더욱 치밀고 있음.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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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삶꾸러미 2009. 8. 10. 16:21

어느 책에선가 국수가 혁명가들의 음식이란 얘기를 봤다. 후루룩 먹고 또 일을 해야하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기다란 국수발을 끊지 않고 목으로 넘기며 죽음을 경험하는 거라나 뭐라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최소한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일 순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맛 없어도 면발 몇 줄기 삼키는 건 누구나 가능하고, 노동의 중간에 후다닥 끼니를 해치우기엔 국수만한 것이 없는데다 값도 싼편이니까. 물론 전통의 맛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는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의 냉면은 사먹으려면 7, 8천원이나 하는 고가(?)의 음식이 되었지만 몇만원짜리 만찬에 비하면야 뭐. 

국수 애호가였던 이북 출신의 조부모님과 오래 살면서 나 역시 국수를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고 지금도 퍽이나 좋아한다. 내가 파스타류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국수와 워낙 친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할머니댁에서 살 때나 나중에 분가후 주말에 다니러 다닐 때도 그 옛날 여름이면 점심끼니는 으레 국수였다. 평안도 출신 답게 물냉면 아니면 비빔국수. 멸치다시를 내서 뜨거운 육수에 말아먹는 잔치국수는 아무래도 서울이나 남도쪽 음식인듯 집에서 해먹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저 매일 냉면냉면... 맛있는 동치미 국물을 늘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어서 인스턴트로 파는 마른 냉면을 사다가 삶고 거기 딸려오는 봉지스프로 육수를 대강 만들어 먹는 건데도 삶은 달걀 하나만 얹어 있으면 어찌나 맛있게 여겨졌던지. 할머니가 신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과 설탕을 약간 넣고 맨손으로 고추장과 함께 조물조물 국수에 비벼 주시던 비빔국수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엔 동네마다 국수가게가 있어서 빨래를 널듯 긴 젖은 국수를 기다란 가로대에 걸쳐 높은 건조대에 척척 올려놓았다가 다 마르면 걷어서 잘라 팔았다. 그땐 쌀이 부족할 때라 혼분식을 장려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집마다 국수를 참 많이도 먹고 살았던 모양이다. 국수 심부름을 가는 것도 늘 내 차례였는데, 신문지에 크게 한움큼 싸준 국수를 사들고 오며 나는 한줄기씩 그 밀가루 국수를 뽑아 과자처럼 오독오독 끊어 씹어먹으며 즐거워했다. 엄마는 배탈난다고 질색을 했지만, 국수 삶는 걸 기다리는 동안 동생들과 나는 엄마 몰래 얼른 마른 국수 한두 줄기를 뽑아 씹으며 좋아했었다. 여름이면 우리 식구들은 냉면도 좋아했지만 콩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유난히 콩국수를 더 많이 해먹었던 것 같다. 학교 급식제도가 막 시작되고 있던 시절이라 그 땐 일주일에 한번씩 우유 대신 유리병에 든 두유가 빵과 함께 나오곤 했는데, 나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단맛을 가미한 콩국물을 절대로 못먹는 반면(편식은 안된다며 담임선생이 억지로 먹였다가 다 토해버린 기억이 있다) 소금을 쳐 고소한맛이 더욱 강조된 콩국물은 몹시 좋아했다. 콩을 덜 삶으면 콩비린내가 나고 너무 삶으면 메주냄새가 나기 때문에 콩국수를 맛있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엄마는 늘 푸념을 하면서도 매번 맛있는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몇해 전 나도 큰 마음 먹고 흰콩을 사다 삶아 손수 콩국수를 만들어보았지만, 콩이 옛날 콩이 아닌 때문인지 그 옛날처럼 고소하고 뿌듯한 맛은 결코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푹푹찌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도 점심끼니는 거의 언제나 국수다. 더욱이 마트에 나가보면 다양한 국수 종류는 물론이고 평양냉면 육수며 콩국물까지 1인분씩 봉지에 담아 팔고 있으니 금상첨화. 이런저런 브랜드 냉면을 죄다 사먹어 보니 굳이 완제품으로 비싸게 호화포장된 냉면을 세트로 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저렴하게 포장된 생냉면을 사고 제일 싼 봉지육수를 골라도 완성후의 맛은 거의 똑같다. 반면에 콩국물은 브랜드별로 가격과 맛의 차이가 심한 편인데, 딱히 내 입맛에 맛는 정말 고소한 콩국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무원이가 만든 콩국물이 *정원이네서 만든 것보다 낫더라. ^^

그저께 점심은 물냉면, 어제는 콩국수, 오늘은 크림스파게티. 그끄저께는 열무비빔국수를 해먹었을 텐데, 지난주에 사온 육수와 콩국물을 다 먹었으니 내일은 또 다시 비빔국수 차례. 연일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으니 자꾸만 차가운 것만 찾아서 그러는지 계속 배탈기가 있어서 오늘은 일부러 스파게티를 해먹었는데도 속이 편하질 않다. 이어지는 밀가루 세례를 감히 내 뱃속이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더위와 스트레스에 심신이 지쳐버린 것일까. 그래도 확실히 국수는 식욕이 없는 와중에도 일단 입안에 넣으면 술술 잘도 넘어가니 신기하다. 말년에 이가 부실해 단단한 음식은 거의 못드셨던 우리 할머니가 유독 소면을 좋아하셨던 눈물겨운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밥먹기 귀찮은 심정으론 저녁끼니도 국수로 대충 때우면 좋겠구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일 점심때 비빔국수는 특히 맵게 비벼먹고 나면 늘어진 정신줄이 좀 팽팽해지려나. 국수 한 그릇 먹자마자 얼른 또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요즘의 나를 보면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인 건 맞는 듯도 한데, 왕비마마는 무슨 죄람. 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겨먹었다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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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김밥

식탐보고서 2009. 6. 4. 17:57

누구나 오랜 역사와 추억의 양념 때문에라도 자기 엄마표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김밥집이 흔하지도 않았고, 김밥 먹는 날이 일년에 몇번 학교에서나 집에서 소풍 갈때로 국한되어 김밥이 꽤나 <귀한> 음식이었던 나 같은 옛날 세대에겐 더더욱.
나 역시 김밥을 아무리 손수 <싸>먹거나 <사> 먹거나 <얻어> 먹어보아도, 옛날에 울 엄마가 싸주셨던 추억의 김밥만큼 맛있는 건 없었다고 회상하게 된다. 식성에 따라 김밥 내용물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생김새부터 맛까지 거의 천편일률적인 김밥들 사이에서 울 엄마표 김밥은 정말 조금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당근을 채썰어 볶는 것이 아니라 다져서 볶은 뒤 밥에다 섞는다는 것. 그리고 달걀부침도 지단으로 얇게 부쳐 잘라넣는 대신 스크램블드에그 하듯 마구 뒤적여 잘게 부숴 역시 밥과 함께 볶거나 밥에 섞었다. 나는 우리집 삼남매가 익힌 당근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엄마가 어떻게든 당근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들으니 다른 사연이 있었다.
가난하던 그 시절 우리집은 비싼 일반미 대신 정부미를 주로 사먹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를 정부미는 값이 싼 대신 당연히 일반미보다 질이 떨어졌다. 색깔도 새하얀 일반미보다 당연히 탁하고 거무스름했던 듯. 평소엔 당시 혼식장려 캠페인 때문에 강제로라도 다들 보리를 넣어 도시락을 싸가야 했으므로 정부미밥도 다른 애들 밥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소풍날 혼식 검사를 할 리도 없고, 특별식인 김밥을 쌀때엔 당연히 쌀로만 밥을 짓는 것이 정석이었던 모양이다. 새하얀 쌀밥 한 가운데 정갈하게 속 고명이 들어간 김밥들 사이에서 거무스름한 쌀로 지은 김밥을 비교당하게 만들기 싫었던 울 엄마는 밥에 참기름 말고도 다진 당근과 달걀부침을 부숴 넣어 버무리는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어린 우리들은 그저 김밥이라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기뻐서 밥 색깔이 조금 다른 것쯤 신경도 안 썼을 것 같은데, 그 옛날부터 울 엄만 참 별 걸 다 신경쓰는 아줌마였다는 얘기다.
아무려나 볶음밥으로 다시 김밥을 싼 것처럼, 약간 노르스름한 밥에 시금치와 소시지(옛날엔 햄 대신 당연히 소시지로 김밥을 쌌다!), 어묵, 단무지를 넣은 울 엄마표 김밥은 소풍 때마다 단연 인기였다. 소풍 가서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끼리 서로 엄마 음식솜씨를 품평하듯 김밥을 하나씩 서로 바꿔먹곤 했는데, 깔끔해 보이진 않지만 전체적인 간도 딱 맞고 전혀 뻑뻑하지 않은 울 엄마표 김밥만큼 맛있는 김밥은 없었다. 부잣집 친구가 싸온, 쇠고기를 볶아넣고 자른 김밥 하나하나마다 정갈하게 한 가운데 깨소금을 얹은 최고급 김밥보다도 나는 정말이지 울 엄마가 싸준 김밥이 더 맛있었다.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는 것만은 아니어서, 친구들도 너도나도 내 김밥을 하나 얻어먹으려고 달려들 정도였고, 소풍에 따라오신 친구 엄마들도 울 엄마한테 김밥 만드는 비법을 묻기도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엔 우리도 일반미를 먹을 형편이 되었지만, 우리집 김밥 만드는 법은 바뀌지 않았다. 쌀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맨밥에 참기름과 소금만 버무려서는 절대로 울엄마표 김밥 맛이 나지 않는 걸 어쩌랴.
우리들이 다 자라 학교에서 소풍가는 일이 더는 없게 된 뒤에는 정말로 연중행사처럼 드물게 엄마표 김밥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조르거나, 김밥을 특히 좋아하는 막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주셨는데, 옆에서 내가 거드느라 엄마의 코치대로 김밥을 말아보면 영낙없이 옆구리가 터지거나 내용물이 한쪽으로 쏠렸다. 요리솜씨 뛰어난 엄마의 유전인자를 어느정도 물려받아 웬만한 음식은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예쁘게 김밥 마는 비법은 도무지 터득할 수가 없었다. 김밥집에서 파는 것처럼 밥을 잔뜩 많이 넣으면야 나도 내용물을 한가운데로 몰리게 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한입크기로 적당히 얇으면서 내용물이 정 가운데 들어가도록 하는 것인데 난 왜 그게 안되는지! 그걸 터득하겠다고 허구한 날 김밥을 싸먹을 순 없는 일이어서, 얼마 전부터 나는 너무도 귀찮은 김밥싸먹기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울 왕비마마는 와병 후 살림에서 손을 뗀지 수년이고, 제대로 된 엄마표 김밥을 마지막으로 먹은 건 아마도 10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가 아무리 솜씨를 부려도 김밥만은 추억의 그 맛과 모양을 살려낼 수가 없었다. 정 집에서 싼 김밥이 먹고 싶으면, 조카들의 잦은 소풍 뒷바라지에 이젠 김밥달인이 되었다는 올케들에게 살짝 몇 줄 더 싸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일인 걸 뭐. ;-p (이러니깐 시누이 소리 듣는 거라고?? ㅋㅋ)

하지만 또 내가 누구인가. 식탐 앞에선 웬만한 결심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의지력을 바닥내는 단세포 동물.
얼마 전 집에서 싼 김밥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다른 요리는 후다닥 뚝딱 잘도 하겠는데 김밥은 정말로 귀찮아서 다시는 만들어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걸 뒤집을 만큼 욕망이 컸다. 얼른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준비하고 있으려니 아차 싶었다. 집에 흰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다. 엄마의 건강을 위해 매번 항아리에 백미, 현미, 흑미, 서리태, 보리, 율무, 기장쌀까지 모두 적당한 비율로 섞어 넣어놓고 밥을 해먹고 있으니, 흰쌀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영양가야 더 많겠지만 김밥을 시커먼 밥으로 싸야하다니... 속상한 일이었다. 밥도 어지러운데 다진 당근과 달걀을 섞어 넣는 건 곤란할 것 같아 당근은 아예 넣지 않기로 했다. 익힌 당근 싫어!

사진은 그렇게 해서, 아마도 수년만에 내가 싼 깁밥의 몰골이다. 심혈을 기울여 치즈까지 넣었지만 밥이 너무 뜨거워 금세 녹아 더욱 볼품없어졌고, 내용물은 역시나 한쪽으로 밀린데다 크기도 들쭉날쭉 가관이었다.
내용물에 다 따로따로 간을 했어도, 원래 방식대로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싱거워 30% 이상 부족한 깁밥을 꾸역꾸역 집어 먹으며 나는 또 중얼거렸다.
"내 다시는 집에서 김밥 싸먹나 봐라..."

엄마는 좀 싱겁긴 해도 먹을만하다고(맛있다고는 절대 하지 않으셨다!) 했지만, 들인 품과 기대에 비하면 결과물은 실망스럽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랏간 무수리의 삶을 이어오면서 느끼는 건, 아무렇게나 쉽게 대충 해서 먹을 때 결과물이 더 흡족하다는 사실이다. 괜히 공들여 절차가 복잡한 요리를 하면, 가사노동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과정에 이미 지치고 화가 나는데다 식탐과 식욕 기대치 또한 높아 웬만해선 만족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왜 또 그렇게 먹고 싶은 건 많은지 원...
벨로와 키드님이 통영 여행에서 먹은 충무김밥 자랑하는 거 보고 식탐이 동해 해먹은 짝퉁 충무김밥도 그랬었다. 역시나 잡곡밥으로 싼 김밥은 보기에도 먹음직하지 않았고, 모나브님의 요리법대로 애써본 오징어무침도 어딘가 심히 부족한 맛이었다.
ㅠ.ㅠ
채썬 무를 미리 절였다가 손아프게 짜서 무쳤는데도, 왕비마마의 촌철살인.
"무가 좀 더 아작아작했어야지."
당연히 나는 그때도 투덜거렸다.
"다시는 해먹나 봐라..."

오늘은 또 무얼 해먹나 오후 내내 무수리의 고민을 잇다보니 문득 엄마표 김밥 생각이 나서 3월과 5월에 찍어둔 사진을 찾아 주절거리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없다. 김밥 싸는 엄마 옆에 앉았다가 김밥 꽁지 낼름낼름 집어먹으며 행복하던 그 때가 그저 그리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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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연극 초대권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정보는 전혀 없이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는 고흐에 대한 연극이라는 것만 듣고도 당연히 갈 작정을 했다. 헌데 퀵으로 보내준 초대권과 함께 온 소개 전단지엔 테오와 빈센트, 단 두 사람이 등장하는 연극이며,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각색한 내용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만에 연극을 보는 것인지 까마득할 정도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웬만하면 즐겁게 감상할 다짐이 되어 있었다.
지인들과 일찌감치 만나 저녁을 먹고 좌석을 배정받고는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신뒤 8시를 기다려 드디어 극장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소극장 바닥 무대엔 두 배우가 쪼그려 앉아 있는 바람에 조금 놀라웠다. 예상과 달리 평일 저녁임에도 소극장은 거의 빈자리 없이 관객이 들어차, 연극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이어 그것은 나의 착각임이 드러났다.

임영웅 연출, 이호성/이명호 출연


빈센트 역할의 이호성과 테오 역의 이명호,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한 편이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연기할 때는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서도. 단순한 무대에서 각기 모노드라마를 하듯 수많은 사건들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두 형제의 격렬한 고통과 교감은 시종일관 팽팽히 느껴졌다.
그러나 내용은 너무나 뻔했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반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익히 본 내용 이외의 참신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변화 없이 단조로운 무대에서 들려주는 뻔한 이야기는 두 배우가 아무리 감정을 담아 호소한다고 해도 지루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식곤증 탓도 있었지만, 연극 자체는 정말 하품나게 재미 없었다. 나는 고흐에 대한 예의와 의리(?)로라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같이 간 지인 둘은 계속 졸았노라고 나중에 실토했다. 한 친구는 나갈 통로만 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거라나.
그런데도 어떻게 그날 그렇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죄다 초대권의 힘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흐를 다룬 작품이라 해도 절대 주변에 추천해줄 수 없는 연극이다. 특히 <반고흐, 영혼의 편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혹시 책을 안 보았고, 고흐의 생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있을 수 있으려나? 글쎄, 나는 둘의 대화와 관련된 그림들을 떠올리려 애쓰며 심취하려 노력했음에도 즐기기 어려웠으니 그 마저 장담할 순 없다. 아무리 소극장이라지만, 관련 그림들을 뒷배경에 슬라이드로라도 비춰주었으면 덜 지루했을 텐데 싶었다. 초대권 들고 갔는데도 엉덩이 아프고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니 거금 3만원을 들여 보러 갔더라면 억울해서 펄펄 뛰었을 거다. 언제부턴가 연극 보는 일이 드물어진 건, 뜸해진 나의 문화생활 탓이기도 하지만 가끔 본 연극에 노상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고전을 졸려하는 나의 짧은 식견도 크게 작용하지만, 재미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재미없는 이 연극보다는 근처 밥집 찾아다니다 먹은 돈까스 집 <담(談)>의 낮은 천장과 바삭하고 양많은 돈까스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가격도 단돈 6천원. 근처에 가게 되면 담에 또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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