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09.04.17 음식 단상 13
  2. 2009.03.18 뻔한 후회 19
  3. 2009.03.15 새로운 커피 메뉴 발견 11
  4. 2008.12.17 라면 23
  5. 2008.11.17 먹어야 산다 15
  6. 2008.08.30 사랑니 10
  7. 2008.08.26 떡볶이 타령 19
  8. 2008.08.06 오 제주도 4 9
  9. 2008.08.04 오 제주도 2 15
  10. 2008.07.08 회복 12

음식 단상

식탐보고서 2009. 4. 17. 21:43
얼마전 공주님 납시는 날 저녁메뉴를 무얼로 할까 고민하다 연어 스테이크를 구웠다. 거창하게 말해 연어 스테이크지, 소박하게 말하면 그냥 생선구이였다. 다만 멋을 좀 부리느라 연어 살덩이에 소금과 후추, 바질가루를 슬쩍 뿌려 1시간쯤 재놨다가 열량은 그냥 무시하고 버터와 다진마늘을 좀 넣어 구웠고, 어서 본 건 있어가지고 타르타르소스랍시고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뒤 피클 대신 병제품으로 나온 레몬갈릭소스를 조금 섞어 구운 연어에 얹어 먹었다. 당연히 구울 때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훈제 연어 샐러드인줄 알고 인상을 찌푸리던 공주님은 반색을 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제대로 된(?) 연어를 처음 먹어본다면서.
왕족들은 역시 아무리 잘해줘도 끝이 없다. 이번주에 역시나 공주님 납시는 날 장도 보러가기 전에 일찌감치 전화가 왔길래, 오늘은 빨간고기를 해줄까 닭볶음탕을 해줄까 물었더니 공주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둘 다 싫고 내가 안 먹어본 걸로 맛있는 거 만들어주라. 지난번 연어 스테이크처럼." 
버럭 화가 나서 고모가 해주는 거 아무거나 먹으라고 대꾸하곤 또 착한 무수리답게 골똘히 고민해봤는데, 연어 스테이크는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12살난 조카가 먹어보지 않았으면서 내가 요리해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란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야흐로 없는 것이 없는, 풍요의 세상에 태어나 거의 모든 걸 누리며 살아온 공주가 아닌가 말이다.

일제 강점기 끄트머리에 태어나 전쟁을 거치고 어마어마한 변화의 역사를 거쳐온 우리 엄마 세대엔 댈 것도 아니겠지만, 먹거리에 관한 한은 나 역시 퍽이나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외식이라고 하면 엄마 곗날 중국집에 쫓아가 짜장면을 먹거나 졸업식 같은 중요한 날 큰맘 먹고 한일관 같은 불고기집엘 가는 게 전부였던 나의 유년과 비교하면 요즘 호화찬란하고 국적까지 다양한 외식문화와 먹거리의 발달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아직도 지방에 따라 취향에 따라 사람들마다 먹어본 음식의 종류가 한정될 터이고, 음식도 유행이라 시대의 흐름을 타 새로 생겨나거나 새삼 유행을 하거나 인기를 잃어 사라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밖엘 나가보면 한집 건너 한집씩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놀라우리만치 방대해진 외식산업은 확실히 옛날과 다른 방식과 빈도로 사람들을 지배한다. 나는 감자탕을 대학시절에나 비로소 구경해보았고 삭힌 홍어 전문점은 사회생활을 한참 하고 난 뒤에나 접할 수 있었으며 누룽지탕 같은 메뉴는 불과 몇년 전에 생겨난 것 같은데, 우리 조카들만 해도 이미 열살 이전에 저런 음식들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다 외식을 즐기기도 하고 맛있는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른들 탓이고, 또 정 먹고 싶으면 삭힌 홍어 사다가 집에서도 삼합을 만들어 먹거나 오븐에 수제 피자를 구워내는 놀라운 솜씨를 지닌 우리 올케들 덕분이다. 
뷔페에라도 가면 울 엄마는 지금도 무얼 먹어야할지, 뭐가 뭔지 메뉴를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시는 터라 우리 아랫것들이 적당히 알아서 음식을 담아다드릴 때가 많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인 어린 조카들은 아무 문제 없이 척척 지들이 먹고 싶은 것들을 담아다가 먹는다. 어쩔 땐 어른들이 되레 그들에게 뭐가 맛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집의 진짜 미식가들은 어린 조카들이어서, 옛날부터 그들이 잘 먹고 맛있다고 하는 걸 먹으면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_+ 파스타가 맛이 없네, 깐소새우가 맛이 있네... 어른스러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은 실소가 나온다.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임을 내가 알게 된건 분명 어른이 되고 난 뒤였다. 아니, 어른이 된 후로도 한참동안 스파게티는 <경양식집>에서 가끔 파는 맛없는 이태리 국수라고 여겼고(그게 첫 만남이었으니까;;) 맛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첫 출장을 갔을 때 본사 직원들이 환영파티랍시고 뉴욕에서 꽤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엘 데려가선 파스타를 먹으라고 권하는데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까지 가서 맛없는 스파게티를 환영파티 음식으로 먹을 순 없다고 여기며 낯선 메뉴에 끙끙거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시켜 먹은 <토르텔리니>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태리식 작은 만두인 토르텔리니를 맛있게 하는 곳을 아직도 서울에서 찾아 헤매고 있을 정도. +_+
어쨌거나 나는 <파스타>라는 말을 안 게 얼마 안되는데, 겨우 열살 전후의 조카들이 제 엄마에게 파스타며, 바비큐립, 퀘사디아 같은 어려운 음식이름을 척척 대며 만들어달라고 청하는 걸 보면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그리고 확실히 음식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내 주변엔 덩치만 커다란 어른이었지 감자탕이며 선지해장국, 간장게장을 못먹거나 맛을 모르는 지인들이 꽤 되는데 나의 조카들은 서너살 때 이미 입주변이 새빨갛게 변할 만큼 매워서 낑낑대면서도 감자탕의 맛을 알았고(할아버지의 술안주 기호식품이었으니까;;), 선지 해장국을 시키면 공주는 온 식구들의 선지를 죄다 빼앗아 먹곤 했다. 간장 게장 게딱지를 먼저 차지하고 앉아 거기에 야물딱지게 밥을 비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 집에선 전혀 놀라운 게 아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답게 조카들도 고기를 심히 편애하고 채소를 마지못해 먹기는 하지만 지금 하는 식상활 대로라면 웬만한 나의 지인들보다 빨리 음식 사회화 과정을 마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런 마당에 나더러 안 먹어본 맛있는 요리를 해놓으라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요구였던 셈인데, 난 또 뭐가 없을까 며칠째 틈틈이 고민하며 무수리의 책무에 충실히 살고 있다.

음식은 언제부턴가 식탐 많은 나에게 끝없는 욕망의 대상이자 짜증스러운 노동의 집약체가 되고 말았다. 맛있는 음식 먹는 걸 그 무엇보다 좋아하기에 식도락 흉내내며 이런저런 음식점을 순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확실히 예전보다 외식 요리에 대한 애정이 줄었고 좋지 못한 재료가 남기는 외식 후유증에 더욱 민감해졌다. 복잡한 건 귀찮으니까 당연히 재료의 원맛을 살리는 소박한 요리법을 실천하게 되기도 했고, 온갖 성인병의 징후를 다 갖고 있는 엄마 때문에라도 싱겁고 건강한 집밥을 <손수> 해먹고 살다보니 생겨난 결과다. 아직도 맛있는 걸 먹으면 몹시 행복한데 그걸 만드는 주체가 주로 나여야 한다는 상황은 여전히 뼈저리게 체화되질 않는다. 비길 데 없이 맛있었던 엄마표 탕수육과 엄마표 돈까스, 엄마표 김밥 따위를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거부하고만 싶은 중년의 딸에게, 부엌은 확실히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지옥>이다(오래 전 씨네 21 칼럼에서 본 표현인데 바쁘게 부엌에서 콩닥거리다가 땀찬 고무장갑을 서둘러 벗을 때 잘 벗겨지지 않는 짜증스러움 등 공감가는 얘기들이 참 많았으되, 누구의 칼럼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차라리 먹는 걸 뜨악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더라면 정말 대충 해먹으며 덜 불행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문제는 나의 식탐으로 귀결됨을 느끼며 더욱 한숨이 나온다. 요리하는 건 싫은데 반찬 없는 밥상은 더 싫으니 어쩌란 말이냐!

이왕 할 거면 투덜거리지를 말든지, 투덜거리려면 하지를 말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할 텐데, 식탐녀 무수리는 끼니때마다 노상 입이 튀어나온다. 어쨌든 오늘 저녁 다시멸치와 마른 새우를 넣고 감자 한개, 애호박 반개, 양파 한개, 새송이버섯 한개, 맛타리 버섯 한줌, 두부, 다시마가루 조금,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찌개는 <매우> 맛있었고, 소금을 거의 뿌리지 않고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먹은 삼치구이도, 파프리카, 오이, 샐러리, 삶은 달걀에 발사믹 식초와 흑임자소스를 섞어 뿌린 샐러드도 훌륭한 맛이었다. (솜씨 자랑하는 거 맞다;;)
짜증과 투덜거림 속에서 그나마 내가 붙들고 살아갈 기둥은 이것뿐이려니...
<식탐은 나의 힘. 밥심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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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후회

투덜일기 2009. 3. 18. 12:42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 저지르고 난 뒤 하는 후회는 특히 스스로에게 민망하다.
가령, 과음을 하면 다음날 숙취 때문에 괴롭다든지
커피를 제 시간에 안 마시면 두통에 시달린다든지
여유로울 땐 일감을 계속 미루다 발등에 떨어진 뒤에 헐떡거린다든지
레드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빠개진다든지
라면을 밤참으로 먹고 자면 팅팅 붓는다든지...

어젯밤엔 후회할 게 뻔한 일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저질렀나보다.
일은 하기 싫었고 괜히 무료했고 배는 고팠고 그래서 TV를 틀어놓고는 자정 넘어 라면을 먹었는데 하필 와인 마시는 장면이 나올 게 뭐람. 여세를 몰아 라면으로 텁텁해진 입을 와인 한잔으로 헹구며 기분낼 때까지는 좋았는데, 한잔 정도로는 괜찮을 줄 알았더니 웬걸.
머리가 너무 아파 새벽에 누워서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라면국물도 안 마셨는데 잠까지 못잤으니 얼굴은 팅팅 붓고 머리는 빠개져 카페인으로 살살 두통을 달래고는 있으나 아직 진정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의 기쁨과 이어지는 후회의 관계는
비록 시간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긴 해도
결국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몽매함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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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난 이제야 알았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 보니 웬만한 카페엔 이 메뉴가 다 있더군.
하지만 난 얼마전 이태원에 있는 소르티노스에 갔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먹어보곤 반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는 말에 득달같이 사다가 시도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이름하여 에스프레소 아포가토.

퍼온 사진.. 출처 까먹음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푹 퍼담고 에스프레소 샷을 끼얹으면 그뿐이다.
소르티노스에선 캐러멜 시럽을 좀 얹어주었고, 다른 곳에서도 초콜릿 가루나 시럽을 얹어 주기도 하던데 이시리고(ㅠ.ㅠ) 단것이 별로라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않는 나에겐 그런 것까지 필요도 없다.
그냥 아이스크림 약간 퍼담고 에스프레소만 끼얹어 먹으면 그저 황홀.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뜨겁고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만남이 생각밖으로 잘 어울린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특별히 맛있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하겐다즈나 나뚜루 아이스크림으로 해도, 그 절반 가격에 마트에서 산 이름모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도 해도 최종의 맛은 큰 차이가 없더라. 그저 에스프레소만 잘 뽑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 밤중에 일하다 말고 밤참으로 만들어먹고는 몹시 흐뭇하다. 의무적으로 읽어야하는 책은 좀체로 진도가 나가질 않아서 또 딴짓... 카페인과 칼로리 섭취도 했으니 이제 일 좀 하려나 -_-;; 남들 다 놀고 쉬는 주말에 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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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식탐보고서 2008. 12. 17. 06:20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두번째 밤참(첫번째 밤참은 자정무렵 먹은 우유와 과자와 귤)으로 신라면을 끓여먹어 놓고선 후회막급이다.
라면은 왜 먹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상상하는 맛과 실제 맛과 먹고 난 후의 뒷맛이 이렇게도 다를까.
라면의 조미료맛에 분명 뇌의 어느 부분을 중독시키는 마약성분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지레짐작은 하고 있지만 하필 그 라면충동이 이 생새벽에 동할 건 뭐람.

어쩌면 그저 일하기 싫고 몇시간째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게 버거워서 궁뎅이 들썩여 보려는 작심이 주 동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만, 신라면 먹고 나면 특히 묘한 속쓰림과 막강한 식곤증에 시달리는 것을 알면서 왜 굳이 마지막 한오라기까지 홀라당 다 건져먹었을까 민망해하는 중이다.
졸리다.
잠시 졸음을 물리쳐보겠다고 블로그질을 선택했지만, 아마도 이 글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면 비실비실 이불속으로 파고들기 십상이다.
음식을 먹은 후 몸에 후끈 열이 나고 식곤증이 생기는 이유는 음식물 섭취의 <특이동적 에너지 작용> 때문이란다. 나도 뭔소리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 말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고등학생 때 가정 과목이었던가, 가사 과목이었던가 두 개 다 같은 선생이 가르쳐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교과서엔 들어있지 않았으되 수업중에 선생이 스쳐가듯 한번 언급했던 저 말이 시험에 나왔었다.
그것도 주관식으로.
단기간 지속되는 단순암기에 능했던 나는 암기과목들은 당연히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로 공부했고, 특히 <초치기>라고 하여 수업시간에 적어둔 필기노트를 시험 직전에 재빨리 훑어보고 나서 그 내용이 <식기 전에> 얼른 문제를 푸는 것이 주특기였다. 그런데 수업태도가 좋아 필기 하나는 철저하게 했던 덕분에다 운 좋게 시험 직전에 눈에 들어온 저 글귀를 기억한 바람에 전교에서 유일하게 -_-v 요상한 주관식 문제를 맞힌 괴짜가 되고 말았던 것.
시험을 치고 나서 첫 수업시간에 답안지를 공개하고 점수를 불러주며, 가정가사 선생은 늘 심술맞게 보였던 입술에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무려 600명 가운데 유일하게 그 주관식 문제를 맞힌 나를 칭찬해주었고 반 아이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사실 나는 시험 전에 <초치기>를 할 때 눈에 띄는 요주의 내용들을 중얼중얼 주변 친구들에게도 알려주는 <착한> 친구었고 <음식물 섭취의 특이동적 에너지 작용> 역시 워낙 이상하고 낯선 말이라 혹시 시험에 나올지 모르니깐 외워두라고 분명히 얘기했었건만 친구들은 <절대로> 기억나질 않는다며 혼자 시험 잘 보려고 정작 중요한 건 알려주지 않는 파렴치한 얌체로 나를 매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내가 시험 직전에 찍어줘서 맞은 문제가 몇개라고 기뻐할 땐 언제고... ㅜ.ㅜ

암튼 그런 사연으로 <음식물 섭취의 특이동적 에너지 작용>이라는 길고도 낯선 말은 내 뇌리에 깊이 새겨져 흐려질 줄을 모를 뿐만 아니라, 식곤증을 느낄 때면 가끔 퍼뜩퍼뜩 떠오르곤 한다.
라면 먹고 졸려서 빌빌대는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걸 보면 퍽이나 인상적인 사건임엔 틀림이 없는데,
과연 저 말은 내가 이상스레 기억했다가 맞혔기 때문에 생각이 나는 것일까, 600분의 1이라는 드문 확률 때문에 기억나는 것일까, 아니면 부당한 친구들의 비난 때문에 억울해서 생각나는 것일까?
ㅎㅎㅎ
어쨌든 결론은 졸리다는 것.
남들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시간에 그냥 얌전히 쓰러져 자는 것도 모자라 오늘은 라면 끓여먹고 팅팅부어 잠들 생각을 하니 킥킥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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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야 산다

삶꾸러미 2008. 11. 17. 16:07

일주일에 한두번은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달아보면서 체중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은 모순일까 아닐까.
자신의 몸매와 체중에 가장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체중이 크게 늘거나 줄어드는 상황을 주시하는 것일 뿐 체중이 좀 늘어났다고 해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더 살을 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먹는 것을 통제하여 몸을 혹사시키기엔 나의 식탐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살집이 많든 적든 타인의 눈총과 손가락질과 자학의 원인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나의 굳은 믿음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녀불문하고 깡마르거나 울퉁불퉁 무서운 근육질로 뒤덮인 사람들보다는 몽실몽실 올록볼록 오통통한 사람이 더 좋다.
중년에도 군살 하나 없는 마돈나의 몸매를 우러러보기는 하지만 나에겐 그런 몸매를 추구할 여력과 에너지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자랑스레 살집을 드러내는 비키니를 입지 않는 이유는 다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 물론 마른 사람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안되는 것이라지만, 뼈가 앙상히 드러나는 가시 같은 몸매를 보면 안타깝고 가여워서 맛있는 걸 막 먹여주고 싶다. 멀대처럼 큰 키에 으스러질 것 같은 몸매로 휘청휘청 걸어다니는 모델들의 걸음걸이는 나에게 하나도 멋지지 않다!

어쨌거나 나이가 들면 근육의 양이 점점 줄어 지방으로 변하기 때문에 체중은 전혀 변화가 없더라도 근육에 비해 부피가 훨씬 큰 지방이 생겨나면 몸이 두루뭉수리하게 변할 수밖에 없단다. 반대로, 체중이 전혀 줄지 않았더라도 열심히 운동을 하여 몸의 지방을 근육으로 만들었다면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몸매가 매끈하게 정리되었을 확률이 높다. 
운동이랍시곤 숨쉬기밖에 하는 게 없는 내 몸에도 근육이 남아날 리 없으니, 원래 신축성 뛰어난 밥배를 위하여 언제나 약간씩 넉넉하게 입던 옷들이 최근 들어선 죄다 꽉 맞는 느낌이다. 밑위가 짧은 바지를 입어 허리선 위로 솟아오른 뱃살의 두께도 확실히 몽실몽실 넉넉해졌다. 그렇다고 소스라치게 놀라 다이어트에 돌입할 위인은 절대로 아니다. 아마 맞는 바지가 하나도 안남으면 신나서 새옷을 장만하러 나갈 가능성이 더 클 거다. 
명절연휴 동안 세 끼니에 더하여 간식까지 줄기차게 먹어대면 사실 2kg쯤 늘어나는 건 금방이다. 그나마 키가 작아서 그렇지 키가 큰 사람들은 명절 이틀 새 3kg도 쉬 불어난다. 기름진 음식을 갑자기 많이 먹어 두둑하게 몸에 저장됐기 때문인데 내 경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몸도 알아서 저장해둔 살을 내놓아 일주일 안에 예전 체중으로 돌아간다. 명절에 늘어난 군살 같은 건 사실 걱정거리도 아니다.
오히려 심하게 몸살 같은 걸 앓고 나서 몸무게가 빠졌을 때가 문제다.
나에겐 내가 체감하는 적정 몸무게가 있다. 그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정말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게 버거울 정도로 체력이 딸림을 느낀다. 그 기준보다 3kg이상 늘어나도 마찬가지다. 몸이 무거워서 거동이 불편함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 몸은 본능적으로 적응에 나선다. 체중이 많이 빠졌을 땐 끊임없이 식탐과 식욕을 동원해 스스로 에너지를 저축한다. 내 손으로 집어 내 입으로 씹어 삼키기는 하지만, 사실 그럴 때 나는 몸이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떠오를 때, 나는 그것을 몸이 보낸 텔레파시라고 믿는다.
가령, 단 게 먹고싶어지면 스트레스가 쌓였거나 순식간에 분해되는 에너지원으로써 고열량 탄수화물이 몸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초콜릿 케이크가 떠오르면, 커피의 카페인과는 다른 초콜릿에 함유된 카페인과 달콤함이 몸에 절실하다는 의미다. 각별한 나의 식탐을 몸이 보내는 절실한 텔레파시로 해석한 세월이 꽤 오래 된 터라
계절에 따라 몸상태에 따라 내 몸이 원하는 먹을 거리들은 고도로 세분화되었다. 아니, 사회화 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5월엔 주황색 알이 꽉 들어찬 꽃게찜이 먹고 싶고, 대하철엔 대하 소금구이가 먹고 싶으며
11월이 되면 싱싱한 굴에 방어회가 먹고 싶어지니, 철철이 달라지는 먹거리들을 머리 나쁜 내가 어떻게 익히고 있는지 참 놀라울 뿐이다. ^^

가뜩이나 나잇살이 오름을 느끼고 있는 데다 주말엔 뷔페식당에 가서 두끼 분량을 신나게 먹고 돌아왔더니 가차없이 소숫점 아래 두 자리까지 체중을 알려주는 디지털 체중계의 숫자는 실로 막강하다.
그렇지만 또 지금은 겨울이 아닌가. (아직 늦가을인가?)
올 겨울 추위를 무사히 나려면 동면 직전의 짐승들처럼 몸에 두툼한 지방층을 둘러놓아야 하는 법.
통통한 배를 두들기며 오늘은 커피에 데운 우유를 듬뿍 넣고 설탕까지 넣어 달달하고 그윽하게 한잔 마셔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먹어야 산다.
만일 늘어난 몸무게가 계속 유지된다면 나의 중년을 버틸 적정 몸무게가 그렇게 늘어났다는 뜻이라고 믿을란다. 20년 넘도록 크게 변하지 않은 몸무게의 변화 추이가 나도 궁금하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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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투덜일기 2008. 8. 30. 00:25
가끔 욱신욱신 쑤시고 미열 때문에 후끈후끈 덥고 종일 죽으로 연명한 터라 기운도 없어
누워서 까무룩 잠들었다가 TV 리모컨 갖고 씨름하다가 또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다가 그게 너무 지겨워져
컴퓨터 앞에 앉아도 블로그질은 참겠는데 일은 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핑계쟁이 게으름뱅이에게 어울리지 않게 부지런히 포스팅이나 해야지.

어제 오후 오른쪽 아래의 사랑니를 뽑고 나서 치과에서 들은 주의사항은 이랬다.
거즈를 2시간 반 동안 물고 있을 것, 그동안 말을 하지 말 것. (울 엄만 2시간만 있으면 빼도  된다면서 그 전에도 자꾸 말을 시켰다. ㅠ.ㅠ 그런데 다른 지인은 4시간 동안 거즈 물고 있으랬단다.)
다음날 아침까지 피가 멈추지 않으면 다시 치과로 올 것. (다행히 아침엔 피가 멎었다)
저녁과 다음날 아침은 가볍게 죽으로  떼울 것. 뜨겁지 않게 식혀서. (식은 죽 먹기도 그리 쉽진 않더라)
처방해 준 약 이틀치는 최소한 4봉까진 거르지 말고 먹을 것. (진통제는 역시 꼬박꼬박 잘 챙겨먹게 된다)
힘든 일은 하지 말고 집에가서 쉴 것. (아마도 내일까지는 '힘든' 번역작업에 손도 안 댈 것 같다 ㅋㅋ)
칫솔질 하지 말고 다음날까지는 가글로만 양치할 것. (그런데 오늘 저녁엔 답답해서 왼쪽만 양치질했다)

머리 나쁜 내가 저거 다 외느라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원...
암튼 어젠 마취가 안 풀려서 감각 없는 입술과 혀 때문에 물을 마시려고 컵을 입에 대면 넘어가는 물보다 질질 새는 물이 많아서 낄낄 웃고는 왼쪽 입술 끝에 빨대를 꽂아 물을 마셔야 했으며
어눌한 발음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남의 살 같았던 아랫입술이 내 살처럼 느껴진 건 저녁 9시가 넘어서였다.
 
잠자기 전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큼지막한 알약이 세개나 들어 있는 약 한봉지를 먹고나선 참 수월하게 사랑니를 뽑았구나 생각했었는데 그건 완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밤이 깊은데도 후끈후끈 덥고 잠도 안오고, 뭔가 뇌의 안쪽에서 턱부분을 작은 절구공이로 통통 건드리는 듯한... 아니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내 몰골을 본 엄마는, "아니 무슨 애가 사랑니 하나 빼고 얼굴이 반쪽이 됐느냐?"고 하셨는데
웃기는 건 어제 저녁에 죽을 조금 먹기는 했지만 만 하루만에 놀랍게도 체중이 2kg이나 줄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식탐녀의 왕성한 소화장기는 맹렬하게 배고픔을 호소했지만, 성한 한쪽 이로도 우적우적 뭔가를 씹어먹을 만한 의욕이 일지 않아 맛도 없는 인스턴트 죽(아픈데 내가 사다 끓여먹으니 어찌나 서글픈지!)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것도 순전히 약 먹으려고.

아무려나 잔뜩 겁을 먹었던 충치 치료는 그렇게 전격적으로 죄다 바꿀 상황은 아니란다.
그동안 시큰시큰 시린 느낌이 있던 이빨은 내가 칫솔질을 너무 과격하게 해서 마모되어 그런 것이라며
스켈링마저 안해도 될 정도란다! 앞으로 부드러운 칫솔로 좀 조심하며 닦으면 시린 이빨들은 또 때가 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성한 이빨도 죄다 치료시키는 의사들도 많다던데 일단은 바가지 쓸 염려가 없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래도 서너개는 다시 치료를 해야한다는데 내가 하도 겁을 먹으니깐 그것도 천천히 하라며 썩은 사랑니부터 하나씩 뽑잔다.
그런데 이렇게 후유증이 커서야 어디 무서워서 또 사랑니를 뽑을 엄두를 내겠나.
일단은 후벼 파진 잇몸 갈아앉히고 마의 추석 행사 지내고 찬바람 나면 또 치과엘 가든지 할 생각.

치과는 빨리가면 갈수록 비용이 덜 든다는 잔소리를 누누이 듣는데도 참 실천은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치과는 무섭고 싫은 곳.
마취주사 맞을 때도 뜨끔했지만, 감각은 없는데 턱 자체가 뽑혀나갈 것 같은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의사의 손길을 겪고 보니 과연 내가 다시 제발로 치과를 찾을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네안데르탈인 이후 하악이 발달되지 않은 인류에게 사랑니는 필요없는 것이라 점점 퇴화중이기 때문에 아예 안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왜 나는 3개나 나가지고 이 고생이람.
나려면 확확 일찍이나 자라든지 마흔 넘어 아직도 썩어가며 기어나오는 이빨 따위 정말 싫단 말이다!
사랑니든 지혜의 이빨(wisdom tooth)이든 제 아무리 근사한 이름을 붙여 이쁜척 해도 결국엔 퇴출대상이니
사랑니 없는 사람들과 튼튼한 이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흠.. 내일은 식탐녀의 본능을 총동원해서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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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타령

식탐보고서 2008. 8. 26. 16:30
내겐 한동안 안 먹으면 점점 욕망이 커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다가 불만과 짜증에 휩싸이게 되는 음식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떡볶이, 라면, 버거왕표 와퍼 따위.

그 가운데 라면과 와퍼는 언제 어디서나 표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봉지라면이 개발되어 있거나 거의 똑같은 맛을 내는 매장들이 거리에 즐비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멀리하려고 애쓰다가 못 먹는 주기가 길어지면 욕구불만이 쌓일 뿐이므로 문제 해결 방법이 그리 어렵진 않다.
그러나 떡볶이는 다르다.

아마도 국민학생 시절 하굣길 좌판이나 포장마차에서 50원어치씩 사먹던 밀가루 떡볶이가 역사의 시작인 것 같은데 중고등학생 때 들락거리던 분식집 떡볶이(완제 및 즉석 떡볶이)를 거쳐, 나로선 떡볶이로 쳐주지도 않는 신당동 떡볶이와 최근 들어 술집 안주로 볼 수 있는 '고급' 해물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몹시 다양하게 즐겨온 떡볶이는 어느새 내 머릿속에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꿈의 맛으로 새겨진 모양이다.
그 어느 떡볶이를 먹어도 나의 떡볶이 욕망이 100퍼센트 채워지질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솜씨를 발휘해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어보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집 근처 마트 앞 좌판에서 꽤나 맛있는 떡볶이를 팔기 때문에 떡볶이 욕망이 솟구치면 쪼르르 달려가서 2천원어치만 사먹어도 흐뭇해지기는 하는데, 수십년째(!) 떡볶이 타령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바로 이거다' 싶은 환상적인 떡볶이를 만난 적은 없다.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해도 맛에 몹시 까탈스럽게 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조미료 맛이 심히 나지 않으면서 적당히 맵고 달달한 떡볶이는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도, 환상의 맛이라 인정할 수 있는 떡볶이를 찾지 못한 걸 보면 내가 찾는 떡볶이는 아마 괜한 추억의 감상을 버무려 넣어 실제로는 만날 수 없는 허구의 맛이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환상의 떡볶이를 찾는 식탐 여정을 끝냈다는 뜻은 아니며, 앞으로도 떡볶이 욕망이 솟구칠 때 떡볶이 포장마차를 보면 앞뒤 생각 없이 달려가 매운 입을 후후 불어가며 빨간 떡볶이를 먹고 있을 게다.

바로 어제가 그런 떡볶이의 날이어서 좌판에 들러붙어 한 접시 먹어치우고는 그래도 아쉬워 1인분 포장해다 밤참으로 또 먹었는데도 어쩐지 좀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나의 떡볶이 타령은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의 상징인 것도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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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주도 4

여행담 2008. 8. 6. 15:12
어쩐지 아쉬워서 두고두고 조금씩 후기를 올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도 같고 기억력도 가물거려 나중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마무리를 해야겠다.

2008. 8. 1.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식사용으로 사놓았던 소박한 양식(바나나, 사발면, 포장용기 밥 따위)들은 거의 떨어져 우유와 주스 정도만 남았지만 그나마도 모두 해치우고 가야한다는 일념에 모두들 우유와 주스를 두잔씩은 벌컥벌컥 마셔댄 것 같다.
호화로운 나인브릿지 빌라와는 일찌감치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는데, 밤중 귀가길에 앞좌석에 앉았던 잇점을 살려 얼핏 풀 뜯어먹는 노루를 구경한 벨로와 키드님과 달리 당시 뒷자리에 앉았던 지다님과 나는 결국 한라산 중턱에 사는 노루를 볼 기회가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했더라면 또 모르겠는데, 잠자리가 설어 토끼잠에 시달리는 데다 아침잠까지 많은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 수는 없었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마지막 날엔 다들 꼭 가보고 싶었다고 손꼽았던 김영갑님의 두모악 갤러리를 먼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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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 사진만 찍다가 병든 몸으로도 제주도에 남아 그곳에 묻혔다는 사진작가의 일대기가 아니더라도 길쭉하게 제주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참 아름답고 정겨워서 슬펐다.
접사는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서 이 정도면 접사일까 아닐까 고민하면서 굳이 서툰 솜씨로 찍어본 사진들은 그분 작품에 대한 훼손일 것도 같아서 올리지 않기로 했다.
마치 아프리카 대초원의 바람을 담은 듯한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처음엔 갤러리 바깥에 조성된 정원에 옹기종기 장식되어 있는 작은 조각들도 혹시나 사진작가의 작품일까 열심히 사진에 담았는데 어느 여성화가의 작품이라는 듯하여 맥이 좀 풀렸다. 어쨌든 현무암 하나하나를 쌓아올리고 곳곳에 나무를 심어 가꾼 정성은 본인의 것이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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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에 줄지어 놓인 작은 돌 연못도 예쁘다.

공항 시간에 맞춰 한 군데 더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했던 우유부단한 일행들은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물 자연휴양림을 선택했다. 산굼부리와 휴양림 가운데 고르라고 칼자루를 지다님께 쥐어주었는데 단칼에 "휴양림이요!"라고 대답해주어서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
산굼부리는 산등성이 중간쯤에 형성된 분화구라 가을엔 단풍과 억새밭이 장관이고, 봄에도 꽃구경이 흥미롭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하나 없는 그곳으로 올라가려면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휴양림에 가기 전에 먼저 점심을 떼우기로 했던 우리는 전날 우도 정자 옆 간이 식당에서 본 열무국수를 계속 부르짖으며 비빔밥 같은 것도 좋지만 열무국수를 먹고싶다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워섬겼는데, 토룡마을을 이끄는 뛰어난 영도력과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눈썰미마저 빠른 키드님이 전격적으로 국수전문점을 발견하여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시원한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콩국수는 비싼 흰콩을 아끼느라 땅콩을 너무 많이 넣은 맛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훌륭했고
열무국수 또한 담백하고 시원하여, 더불어 시켰던 해물파전과 먹기엔 금상첨화였는데 어찌나 양이 많던지
모두들 국수와 파전을 조금씩 남기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먹은 국수와 파전까지... 이번 여행의 먹거리는 <제주도에선 맛난 음식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예전 제주도 여행에선 친한 현지인이 권해준 식당이 아닌 한, 늘 먹고도 별 맛도 없으면서 터무니 없이 바가지 쓴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는데, 제주도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정비를 했다더니 먹거리 문화까지 개발된 것 같아 흐뭇했다.

절물 휴양림은 역시 지난번 막내동생의 여행담을 주워듣고 알게 되어 처음 가본 것인데, 손바닥만한 공간을 휴양림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입장료를 받는 기분 나쁜 과거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퍽 괜찮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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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넓은 중앙로엔 그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골진 나무판자가 정갈하게 깔린 오른쪽 숲길로 무조건 접어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오로지 우리의 목표는 그늘진 평상을 찾아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드러누워 산림욕과 낮잠을 즐기는 것이었다. ^^
그렇게 평상에 드러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어찌나 맑고 파랗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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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 드러누워 이 사진을 찍을 땐 드러난 하늘 모양이 나비 같다고 생각하며 자랑삼아 찍은 것인데 와서 보니 막상 그 느낌이 별로 없다. 솜씨 탓도 있겠지만, 특히 자연은 마음에 담기는 것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사진에 담겨주질 않는 듯.

숲속에선 피톤치드가 나오네, 음이온이 발생하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야 없는 법인데
이곳 평상에 드러누웠을 땐 확 트인 공간에서 절대로 잠들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답지 않게 나도 까무룩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숲의 심신 안정 효과가 그만큼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

아쉽게 휴양림을 떠난 우리는 공항까지 21분 걸린다는 네비게이션의 말을 믿고 시간을 안배했건만
마지막에 연료탱크를 꽉 채워 렌터카를 돌려줘야하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마지막 주유소를 지나치는 바람에 다시 공항에서 빠져나와 뺑뺑도는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무사히 차를 넘길 수 있었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건 제주도 휘발유 값이 서울보다 훨씬 싸다는 것!
서울에선 2천원이 넘는데, 제주도는 리터당 겨우 1810원!
연료통을 가득 채우면 거의 만원 가까이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졌다.  +_+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국내여행이지만 공항에서 면세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한데
한도액이 40만원이다보니 아주 값비싼 명품 가방같은 것들은 있지도 않고 주로 화장품과 선글라스 정도인데도 사람들이 완전 미친듯이 쇼핑을 하더군.
나도 화장품을 사기는 했지만 대단히 정신없는 도깨비 시장 같은 분위기라 오래 구경하진 못할 듯했다.

다들 몹시 피곤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들 꾸벅꾸벅 조는 분위기였는데, 돌아오는 한성항공은 착륙을 앞두고 어찌나 불안하게 흔들거리는지 뱃속과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고 설상가상 통로 반대편에 앉은 몰상식한 인간이 계속 휴대전화를 끄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어 <다이하드>에서 몰래 기내에서 전화질하는 기자에게 주먹질을 했던 브루스 윌리스 부인의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아는 여자>에서 동치성 부모님이 기내에서 동치성이랑 통화하다 꽝 추락사하는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물론... 김포에 무사히 착륙했으니 이렇게 후기를 올리고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내 몰상식 비율을 봐서라도 비행기 같은데선 아예 휴대폰 전파가 안잡히게 해야하지 않을까 공연히 부르르 주먹쥐고 떨었었다.
-_-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비행기 이착륙할 때 매번 불안하지만, <그래도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보상금도 많이 나오잖아>라고 위로하며 자신을 달랬었는데 저가항공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쩐지 보상금도 적게 나올 것 같아 앞으로는 더더욱 좀 덜 흔들리고 안전한(확실하진 않지만;;)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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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주도 2

여행담 2008. 8. 4. 17:10
사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에 나에겐 끝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원서 읽고 리뷰 쓰기를 죽도록 싫어하긴 하지만, 지난 원고를 워낙 늦게 넘겼던 터라 벌 서는 셈치고 출판사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넉넉하게 2, 3주 동안 소설을 한 권 읽고 검토서를 보내달라는 약속날짜가 바로 제주도 출발 직전의 월요일.
그러나 또 내가 누군가.
원고 마감일에 관한 한 이미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녀가 된 지 오래.
제주도 가기 전에만 보내면 되겠거니 차일피일 미루며 영화보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사먹으러 다니며 실컷 놀다간 또 다른 책 역자후기 때문에 일주일 또 낑낑댔으니, 출발일 전날 새벽 3시 반까지 검토서를 정리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책을 싸들고 가자 결심하고 말았다.

겨우 4시간 자고 일어나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고 밤중에 일행들과 맥주도 한 잔 걸친 셈치고는 새벽까지 꽤나 양호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역시 습성을 속속들이 잘 모르는 일행들과의 여행 때문에 소심한 인간답게 퍽 긴장을 했던 모양인데다, 더 늦기 전에 검토서를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 부담없이 놀아야겠다는 욕망이 작용한 듯했다.
해서 모두들 잠든 새벽 (실은 닌텐도 동물의 숲에 심취한 벨로가 게임하는 소리가 딩동딩동 꽤나 오래까지 아어지긴 했지만;;) 게으름녀의 여행 첫날밤은 일과 함께 3시 반이 넘도록 이어졌다. ㅠ.ㅠ
원래 계획은 일을 끝내는 대로 클럽하우스로 걸어가서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컴퓨터로 문서를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에 숲속으로 난 꽤 먼 오솔길을 홀로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해서 또 다시 눈을 붙였다 떴다 4시간쯤 토끼잠을 잔 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는
일행들이 일어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올 심보로 몰래 카드 키를 들고 컴퓨터로 향했으나...

애당초 검토서가 늦어졌던 이유, 출간을 권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론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으니
타이핑을 다 끝낸 뒤에도, 결정적인 검토 소견을 마무리하지 못해 전전긍긍 급기야 일행들이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 외출준비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 때까지 2시간을 넘기고서야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기상청의 날씨예보 어긋나기는 제주도에서도 어김이 없었고
오전오후 비올 확률이 각각 60%나 된다는 예보와 달리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에 우린 셋쨋날로 미뤘던 해수욕을 전격적으로 당겨 즐기기로 결정.
미리 수영복을 챙겨입고 놀기 가장 좋다고 벨로가 추천한 협재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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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했고, 공기가 맑기 때문인지 제주도 하늘의 구름은 늘 손을 뻗으면 잡힐듯 낮게 깔려 바람따라 떠돌았다.



허나.. 이틀 내리 수면부족에 시달린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리 없으니, 놀랍게도 협재 해수욕장에선 사진을 단 한장도 찍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ㅠ.ㅠ
완만하고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옥빛 바다, 그 주변에 어우러진 검은 현무암의 해안,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초록과 연둣빛 비양도의 모습을 남겼어야 하는 건데...
미치도록 뜨거운 햇살 아래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가방도 지키고 뙤약볕 아래 우산을 쓰고서라도 어떻게든 눈을 붙여볼 요량으로 홀로 남았으나 쓸데 없이 예민한 인간이 그런 해변에서 잠들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잘못이지.
더위에 헐떡이다 잠시 바다에 몸을 식혔다가 또 금세 돌아와 망연자실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벨로는
<애들 노는 거 지키는 엄마 같다>며 정곡을 찔렀다. ^^;
실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심 나이가 들면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재미도 줄어드는 것인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날은 암튼 덥고 피곤하고 가방과 돗자리를 지키는 책임감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 마냥 심신이 늘어졌던 것 같다.
암튼 경사가 완만해서 서해안처럼 가도가도 물이 얕고 깨끗하고 파도도 적당히 치는 협재 해수욕장은 가족단위로 파도타기에 아주 좋은 해변이었다. 과거에 함덕해수욕장과 하얏트 호텔쪽 중문 해수욕장에서 놀아본 적이 있었는데 중문은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굵어 발바닥이 좀 아팠던 반면, 함덕 해수욕장은 모래가 거의 밀가루 수준으로 곱고 백사장이 넓어 흡족했었는데 제주도에서 해수욕하려면 협재, 함덕처럼 북쪽 해변이 놀기 좋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오후들어 백사장에서 시켜먹은 '주황색' 치킨 한 마리와 미리 싸 간 천도복숭아로 점심을 떼운 우리는
주섬주섬 해수욕을 마무리하고 차디찬 물로 바닷물과 모래만 대강 닦은 뒤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다들 최대한 여유롭고 헐렁한 일정을 목표로 삼았던 데다 대체로 무얼 하든 다 좋은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선보였으니, 매번 가장 어려운 점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었던 듯. ^^

바닷가에 가서는 반드시 해산물과 회를 먹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엔 회를 못 먹는 일행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거나한 횟집을 가는 것은 당연히 횡포였기에
비교적 저렴하고 푸짐한 동복리 해녀 잠수촌의 포장마차 같은 간이 횟집엘 가자고 내가 주장했는데
그리도   푸짐하던 해녀 할머니들의 인심도 성수기 관광철엔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걸 실감하여 마음이 상했다.
4년 전 봄에 갔을 땐 냉장고 대신 바닷가에 담가 놓았던 그물에서 건져올린 해삼과 멍게를 푸짐하게 잘라주고도 무조건 한 접시에 만원이었으며, 삶은 문어와 구운 석화도 대단히 넉넉했었는데 이번엔 아예 석화도 없고 접시는 하나같이 바닥에 깔린 정도.
내 마음도 상했지만, 굳이 해산물 싸게 먹자고 거기까지 데려간 일행들에게 미안해서 더 화가 났다. -_-;;

이어 보성 녹차밭보다 훨씬 더 넓고 볼만하다는 지인의 귀띔을 들었던 터라 오설록 녹차박물관에 가자는 내 의견에 다들 그러마고 하긴 했는데, 예상과 달리 입장료가 없는 건 좋았고 뜻밖에 10년만에 대학동창을 만나기도 했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만 바라본 제주 녹차밭은 큰 감흥이 없었다.
골이 좁은 밭고랑으로 일일이 사람들이 들어가 차잎을 따는 광경을 상상만해도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차 농사의 어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비경은 역시 바다와 오름이라는 사실만 백만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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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나 부실했던 둘쨋날의 먹거리에 그나마 식탐의 기쁨을 준 건 저녁에 찾아간 유리네 식당의 갈치조림.
늘 관광버스 줄지어 서 있고 왁자지껄 요란하여 순번을 기다리기 일쑤인 그곳에서 우린 운 좋게 가자마자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고 3만5천원에서 전격적으로 값을 내려 3만원(공기밥 값은 따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으며 다들 공기밥을 후딱 비웠다. 딸려나온 게장과 다른 반찬들도 괜찮았는데, 시끄럽고 번잡하긴 해도 제주도 갈치조림은 역시 유리네만큼 맛있는 데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불붙은 포켓볼 열정...
운동신경 젬병인데다 기억력도 나쁜 나는 소싯적에 시도해 본 당구와 포켓볼을 평생 멀리하며 살리라 다짐했건만 콘도에 마련된 당구 테이블을 발견한 일행들은 전의를 불태웠고...
난생 처음 쳐본다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키드님과 지다님, 그리고 다른 데 가서는 형편없는 실력이라지만 우리들에겐 완전고수로 보였던 벨로의 내기 본능에 편승하여 얼떨결에 시작된 2:2 게임에서 막상막하의 막당구 내공을 보이던 라니와 지다의 하수팀은 결국 우도반점 자장면 내기에서 분패하고야 말았다.
팔다리가 짧은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느라 낑낑거린 나는 이미 두번째 게임 즈음에서 지루해져 하기 싫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낮에 해수욕장에서 비교되었던 파도타기의 열정과 더불어 나의 나이듦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ㅜ.ㅡ
 
어쨌거나 둘쨋날도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벌써 이틀이 지났다는 사실에 마구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2008.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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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삶꾸러미 2008. 7. 8. 18:36
인생 뭐 별 거 있어!?
맞다. 별 거 없다.
사소한 것으로 기쁘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연이틀 발가락에 물집 생기도록 놀러다니며 그간 못했던 것들 하고 있는데
세상이 다시 만만하고 아름답고 그럴싸해 보인다.

아직 치렁치렁 9개월째 방치하고 있는 머리는 어쩌지 못했지만
하늘하늘 쉬폰 원피스에 꽃단장까지 하고 반가운 이를 만나러 나가는 외출은 준비부터 즐거웠다.
늘 그렇듯 약속시간보다 조금씩 늦는 지인들을 기다리며 백화점을 휘휘 돌아보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프레첼을 썩썩 잘라 한 봉지 들고 씹으며 시간을 죽이면서도 나는 티파니 앞에서 쇼윈도를 들여다보던 오드리 햅번이 안부러울 정도였다.

반가운 친구, 내가 만들지 않은 맛있는 음식, 수다, 예쁜 찻집, 맛있는 커피, 달콤한 쿠키, 올 여름 처음 맛본 빙수, 뜻밖의 선물, 식탐, 여행계획, 또 수다, 수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행복해 하다 들어왔더니, 거의 두달 동안 찌들고 구겨졌던 몸과 마음이 이틀만에 단박에 회복되었음을 느낀다. 음, 아직 펴지지 않은 구석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계속 놀다보면 차츰 그 구석도 감쪽같이 다림질이 되지 않겠나. 그럼 또 한참, 인생 뭐 별 거 없다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을 게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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