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06.12.28 고흐의 노란색 7
  2. 2006.12.26 쌩얼 만용 4
  3. 2006.12.23 크리스마스 단상 1
  4. 2006.12.20 마리안느 관찰 일기 6
  5. 2006.12.19 커피 때문에 망한 하루
  6. 2006.12.16 머피의 법칙 6
  7. 2006.12.13 송년모임 2
  8. 2006.12.10 첫인상 5
  9. 2006.12.09 잠풀이 1
  10. 2006.12.06 인간 물개 8

고흐의 노란색

삶꾸러미 2006. 12. 28. 01:51

어렸을 때 크레파스 색깔 가운데 제일 닳아 없어지는 색깔이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을 거다.
내 경우는 노란색이었는데,
노란색도 연노랑과 개나리색, 귤색까지 톤별로 갖추어진, 호화찬란한 48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와 달리, 호사를 누려봤댔자 24색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나는 제일 먼저 하나 뿐인 노란색이 떨어지면 그림 그릴 의욕까지 떨어졌던 것 같다.
나중에 그림물감을 쓰게 되고 수채화의 묘미에 빠졌을 때도, 노란색을 하도 이색 저색에 조금씩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쓰는 바람에 노란색이 제일 부족했더랬다.

내가 여러 화가들 가운데 고흐의 그림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심취했던 노란색에 대한 애정 때문일 거란 생각도 든다.
미술책에서 고흐의 그림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본 그림이 <해바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악한 인쇄술 때문에 색감을 제대로 살려냈을 리 없는데도
샛노란 꽃잎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탐스럽게 꽂혀있는 해바라기 그림이 참 좋았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한 때는 주저없이 "해바라기!"라고 대답하기도 했는데, 사실 수많은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가운데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실제로 감상하는 영광을 누린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열네 송이 해바라기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는 것도 같지만,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가물가물할 뿐이다.
 
물론 고흐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게 어디 노란색 뿐이랴...
고흐의 그림에선 파란색도 확실히 남다르게 느껴진다.
인상파 그림들은 워낙 색감이 다채롭고 뛰어나지만, 고흐 작품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붓자국으로 표현된 아주 다양한 색깔의 변주를 보면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워 가슴이 촉촉하게 젖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 테라스>에 표현된 밤하늘의 색감은
보랏빛이 아련한 <아이리스> 연작과도 이어진다.
물론 실제로 감상한 게 아니라 화집이나 달력, 인터넷 따위로 본 것이 더 많으니
이런 그림들 또한 인쇄 판본마다 조금씩 다른 색감을 전제로 나 혼자 구성하고 상상한 색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고흐 작품의 색채는 그 누구의 작품보다 현란하다고 단언한다.

스케치 작품까지 합하면 고흐의 작품 수가 1000편이 넘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덧붙임: 고흐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고흐가 10년간 자그마치 19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내가 사진으로라도 본 건 절반이 조금 넘는 400여편 정도에 불과하지만
자기중심적인 내 시각으로 볼 때 그 많은 그림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색은
역시나 노란색이다.
이 블로그 스킨이기도 한 <아를에 있는 빈센트의 방>이나
대문 사진으로 일부만 오려 놓은 <밤의 카페 테라스>도 그렇고
<해바라기>는 물론, 꽤 많은 <밀밭> 연작에서도
하물며 다양한 인물의 초상화에서도 내 눈엔 다채로운 색감의 노랑이 제일 강렬하게 남아
샤갈, 하면 강렬한 빨강이 떠오르듯 (이것도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고흐, 하면 노랑이 떠오른다.

그리고 강렬하고 선연해서 가끔 슬프기까지한 고흐의 노란색이 어쩌면
점점 강렬해지는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자 광기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추측을 하곤 한다.
인상파 화풍의 영향을 받기 전인 초기작에선 노란색의 꿈틀거림이 그다지 강렬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그린 마지막 그림이라고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도 노란 밀의 물결은 검푸른 하늘에 대비되어
흐드러지게 아름답고 동시에 참 슬프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그림이란 걸 알고 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고흐의 노란색은 어린 시절 그림에 대한 나의 애착을 불러 일으키는 아련한 향수이자 막연한 슬픔이고 또 행복이기도 하다.
당대의 잘 나가는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작은 거의 없고, 대부분 크기가 작은 고흐의 작품들은 보면 볼수록 정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친구 같다.
내게 행복을 안겨주는 친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까마귀가 나는 밀밭, 50.5x103cm, 1890년 7월,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고흐...
라고 하면 우선 그의 불행한 병력과 생전 화단의 외면 같은 외적인 요인을 떠올리지 말고
모두들 나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노란색을 제일 먼저 연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끄적거려봤다.

오늘 문득
작은 복제품 액자로, 컵받침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달력으로,
블로그 꾸밈으로 모습을 바꾸어 작은 내 작업실 구석구석에서 나를 쳐다보는 고흐의 작품들이 일제히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아무래도 내 스킨 선택의 이유도 블로그 어딘가엔 적어 놓아야
고흐한테 덜 미안할 것도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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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얼 만용

삶꾸러미 2006. 12. 26. 23:56
뽀얗고 투명한 피부를 타고나지 못한 터라
대학 졸업 무렵부터 화장을 시작하고는 맨얼굴로 외출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주 진한 화장이 유행하여 립스틱과 아이섀도 색깔이 눈에 몹시 띄던 초창기를  제외하면
남들이야 내가 화장을 했는지 안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성의 없는 화장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번들거림이 싫어 유분기를 없애는 정도의 기본화장은
반드시 하고서야 외출을 했다는 얘기다.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하는 것은 옷을 제대로 갖춰입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에 꼭 동의한다기보다는, 그냥 남들에게든 나에게든 좀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어쩐지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엔 돌아다니는 것이 못마땅해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심리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내 경우 남들의 이목보다는 내 판단기준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측근이기 때문에 '하나도 안 이상하다', '괜찮다'고 위로하고 부추기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사실 본인이 아닌 한 자기 겉모습의 미묘한 부조화나 추함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남들은 어쩐지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한 나만의 기분을 잘 모르기 십상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남들이 어떻게 보든
최소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스스로의 기준에 흡족할 때에나 외출을 감행하는
소심한 행태를 아주 오래 지켜왔고,
밤샘 여파 때문에 화장은커녕 세수도 못한 채 맨얼굴을 드러내고 어딘가 가야만 하는 경우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목도리나 스카프를 둘러 최대한 남들과 나를 배려(!)하는 시도를 잊지 않기도 했다.
집안이 아닌 곳에서 마구 헝클어진 내 모습을 쇼윈도나 화장실 거울로 보게 되는 순간이 지금도 참 싫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남들은 내게 신경도 안 쓴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턴 쌩얼을 드러낼 만큼 피부속성이 좋지도 않은 주제에
마구 만용을 부리게 된다.
단순히 화장하기가 "귀찮아서" 주근깨와 기미가 숭숭 뿌려진 맨얼굴을 드러내고 나가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홀로 일하는 작업실에 갈 때에도 제아무리 집앞에서 곧장 차를 타고 가지만
일터에 '출근'을 한다는 데 의미를 두어 옷과 화장에 나름 신경을 쓰던 지난 날과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

물론 수시로 뾰루지까지 돋은 쌩얼을 드러내려니 남부끄러운 느낌은 여전하여
외투 깃을 최대한 올리고 어깨를 옹송거리며 후다닥 드나들고는 있지만
내 어쩌다 이렇게 만용을 부리는 수준에 도달한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결국엔 하늘을 찌르듯 위상이 높아진 내 게으름 때문이란 얘긴데
쌩얼 미인도 아닌 것이 맨 얼굴을 드러낸다면 그건 '게으르고 대책없는' 아줌마(여기서 방점은 '아줌마'가 아니라, '게으르고 대책없는'에 찍혀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이런저런 집안일 수발에 바쁜 아줌마들의 당당한 쌩얼이야 어떠하든 아름다운 것이고, 나 역시 이미 아줌마 소리가 자연스러운 나이이기에 아줌마에 대한 폄하 의도는 전혀 없다)의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도 자꾸만 화장이 귀찮다. ㅡ.ㅡ;;

이래서 너도나도 성형외과엘 가서 박피수술을 해 아기피부를 되찾으려 하나보다 싶기도 하지만, 워낙 젊어서도 아기피부가 아니었던 피부속성이고보니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할 생각은 손꼽만큼도 없으되, 쌩얼로도 아름다운 이들이 진정 부럽긴 하다. ㅠ.ㅠ

결론은
1. 게으름을 극복하고 최소한의 화장은 계속해서 하고 다니거나
2. 쌩얼 만용을 계속 부리며 자괴감에 빠지거나
3. 아니면 내 쌩얼에 드러난 주근깨와 기미와 주름을 무작정 사랑하거나...
셋 가운데 하나인가 보다.

일단 내일은 친구들에 대한 예의로라도 얌전히 1번을 시도하리라. 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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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단상

삶꾸러미 2006. 12. 23. 22:12

돌아보면
기독교인도, 천주교인도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나에게도 늘 색다른 날이었다.
심지어 어려서부터 엄마랑 외할머니, 이모들 따라 절에 자주 다녔고
고등학교 시절엔 아예 불교학생회 활동도 했지만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라는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선물 받고 즐겁게 노는 날로 자리잡은 탓이다.
크리스마스를 뭔가 특별하게 보내야할 것만 같은 생각에 시달리는 건
나뿐만이 아닌 거의 온 국민의 정서가 아닐까?
시청앞은 물론이고 온갖 백화점과 거리에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고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와 어우러져 현란한 밤거리가 모두의 외출을 유혹하지 않는가 말이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도 한달여 전부터 온 거리에 등이 매달리지만
비신자들에겐 그저 하루 노는 '빨간날'에 불과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요즘도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은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엄마가 특별히 만들어 주신 커다란 장화 모양의 망사 양말 안에 작은 장난감과 사탕, 과자, 초콜릿 따위의 먹을 것이나, 장갑, 양말 같은 선물을 넣어주셨고,
우리 삼남매는 어서 잠들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온다는 으름장에 이불 속에 들어갔다가도 선물을 확인하느라 잠옷 바람으로 수시로 마루엘 나가봤더랬다.
그러면 정말로 신기하게 어느새 양말 안에 선물이 들어있곤 했다.
 다음날 아침 선물을 까먹으며 양말이나 장갑을 신거나 끼고 놀러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산타가 부모님의 깜짝놀음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질 않지만
그 뒤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았고, 게으름이 극에 달하거나 여건히 허락되질 않는 때만 빼면
작년까지도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잔뜩 사들여 여기저기 보냈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제작년 연말에도 남은 시간을 쪼개
바로 옆에 있던 대학 문방구에 가서 카드를 사들여 틈틈이 써보냈던 것 같다. 오 놀라워라!

그뿐인가, 지인들과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놀이를 불과 몇년 전까지도 부지런히 해댔고
그와 별도로 한 해 잘, 열심히 살았으니 장하다는 의미로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도
거의 매년 사들였다. 물론 그건 핑계겠지만 ^^;;
실은 올해도 이미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품목은 정해두었다.
시간이 없어 장만하러 나갈 짬을 못냈을 뿐...
그러면서 또 귀찮아서 크리스마스 카드 쇼핑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가까이 있는 지인들은 몰라도 바다 건너 있는 이들에겐 부지런히 카드라도 한 장 보내는 것을 나름의 착한짓이라 여겼는데, 이러다 올해는 연하장 보낼 시기도 놓칠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전통인 서양문화와 달리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 반드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만나야 하고
그게 아니면 친구들끼리라도 만나 몰려다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듯하다.
나 역시 몇년 전까지 대목 보려는 주인들이 값을 두배쯤으로 올려 붙인 '특별 메뉴판' 가격에 놀라면서도 종로 카페나 술집 골목을 쏘다녔고
그게 아니면 아예 스키장이나 콘도로 놀러가서 밤새 먹고 마셔댄 기억이 있다.

원래는 올해도 화려한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래도록 독야청청 싱글인 친구들과
홍콩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계획했지만...
친구 아버님의 병세가 악화되는 바람에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요란하게 안보내게 된 것이  잘된 일인 듯싶다.
여행 가봤댔자, 국제적인 지름신 강림하시어 미친듯이 카드춤이나 추어댔을 것이 뻔한 일;;
친구 아버님과 울 엄마의 병환이 좋아지시기를 조용히 비는 게 옳은 일이리라.

성당 부설 어린이집에 다니는 조카의 발표회가 있어서
오늘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즈음에 교회엘 갈 일이 있었다.
성당을 무대로 꾸며놓은 뒷배경 천막에 '예수님, 어서 오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보고서야
바보처럼 나는 크리스마스가 정말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ㅡ.ㅡ;;
12월 25일이라는 날짜가 정해진 것이야 뭐 여러가지 설도 많다지만
그건 예수탄생보다 2천년쯤 앞선 부처님 오신날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ㅎㅎ

개천절에만 단 하루 따지는 단기(檀紀)나..
부처님 오신날에나 흘깃 따져보게 되는 불기(佛紀)와 달리
예수 탄생을 원년으로 삼은 서기(西紀)는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당연히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크리스마스도 그냥 당연히 즐기는 연말의 휴일 하루로 변질되어 내 뇌리에 새겨졌던 모양이다.

부처님 오신날, 매년 특별법회가 열리는 절에 가서
예쁜 꽃에 둘러싸여 계신 아기 부처님을 맑은 물로 씻어드리는 의식 후에 머리 숙여 절하였듯
믿음의 여부와 상관 없이 성탄절도 경건하게 축하하는 게 맞는데
어쩌다 이런 풍조에 휩쓸리게 되었을꼬.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주의에 가장 유력한 혐의가 가지만, 그렇다고 버스에조차 매달린 새빨간 리본 장식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보면 반사적으로 마음이 설레는 걸 말릴 수도 없다. ^^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찜해둔 물건도 아마 점원에게 분명히 예쁘게 선물용으로 포장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뻔하다.
반평생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빌미로 유희를 즐겼는데, 그 버릇이 쉽게 고쳐지겠나.

내년 크리스마스엔 또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게될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렇게 별 것 아닌 상념을 적어둔 것으로 만족할란다.
이만하면 철들었지 뭐.. ㅡ.,ㅡ;;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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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물 한 번만 주면 된다는 장담과 함께 선물받은 선인장도 죽이는 여자가 아무렴..
당연한 결과겠지만, 100일 넘게 나름대로 최대한 정성을 들여 키우던 마리안느가
확실히 죽어가고 있다.

메디컬 드라마나 병원 나오는 영화를 보면, 환자가 숨을 거두어도
의사가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하지 않으면 죽은 게 아니다.
화분 전문가도 아니면서, 나 역시 억지부리듯 죽어가고 있음이 분명한...
어쩌면 벌써 죽은 것인지도 모를 화분의 사망선고를 애써 미루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그 녀석을 얼마나 정성스레 돌봤는지 여기저기 끄적인 글을 죄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시절 자연 시간에 강낭콩 키우며 쓴 관찰일기가 생각나
여기 모아놓기로 했다.

정말로 마리안느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날 너무 속상해지면,
이 글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아보려는 알량한 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싱싱하고 건강하던 녀석들의 처음 모습





잘하면 살아날 것도 같던 녀석들은 나날이 잎이 누렇게 변해갔고
누런 잎을 잘라주면서 모양새도 차츰 앙상해졌다.
이제 초록 부분은 거의 안남은 상태...

식물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간 수없는 원망을 들었겠지만
이 녀석은 특히 떠나보내기가 안타깝다.
죽기 전까지 공기청정기 대신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심산이긴 했어도
정말 이 정도면 최대한 정성을 들였던 거라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며칠 전에 생긴 포인세티아 화분 두 개랑 수경재배용 개운죽도
이파리 세 장 남은 아마존과 함께
과연 내 악의 포스 속에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지.. 흑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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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커피를 열잔씩 마셔도 잠엔 전혀 지장 없던 때가 나도 분명 있었는데
서럽게도 이제 커피는 나의 잠을 방해하는 무서운 음료가 되었다.

몹시 피곤해서 몸은 늘어지는데, 정신은 말짱하고 눈물이 찔금찔끔 날 만큼 눈이 아파오는
불면에 시달리는 이유가 커피 때문이라면
나 같은 '전직' 커피귀신도 저녁엔 커피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제 막내동생이 밤늦게 다녀가는 바람에
유혹에 못이겨 같이 커피를 따끈하게 한잔씩 마시고는
오늘 아침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ㅠ.ㅠ

다시 올빼미의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새벽에 눕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새벽 6시가 넘어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수돗물 소리,
부엌에서 들리는 압력밥솥 딸깍이는 소리,
급기야 아버지가 등산가시느라 준비하시는 소리... 를 모두 들으며
마냥 잠이 와주길 애타게 기다려야 했던 것.
이불속에서 몹시 괴로워하다가 8시 넘어서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다시 9시 알람 때문에 벌떡 일어나 엄마 챙겨드리고
또 한두 시간 자다가 전화받고 어쩌고 하느라 또 깨어냐야 했고...
오후에도 병든 닭마냥 내내 빌빌 조느라 하루를 완전히 망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지 미쳤지..
밤 11시에 왜 커피를 마셨을까. ㅠ.ㅠ
몇 모금만 마시고 말겠다는 애초 작심은 어쩌고 그걸 다 홀라당 마셔버렸는지...
앞으로 다시는 카페인에 만용부리지 말아야겠다.

슬프지만 잠보다 커피가 더 좋은 시기는 확실히 내게도 지나가버렸나보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고작 커피 때문에 잠조차 안오시나... 으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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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삶꾸러미 2006. 12. 16. 02:11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편견에 불과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오늘은 좀 이상했다. ㅠ.,ㅠ;;;
1.
밖에 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비즈니스용 외출이라 드물게 정성을 들여 머리를 매만졌는데 (물론 내 솜씨야 늘 어설프지만)
우산을 쓰기에도 안 쓰기에도 어정쩡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우산 펴고 접는 그 짧은 와중에 머리가 금세 망가지고 말았다.

결국 난생 처음 만나는 출판사와의 상담이 시작될 무렵
내 왼쪽 머리 한 줌은 볼썽사납게 삐쳐 있었다.
차라리 드라이나 하지 말것을..
꾸물대며 머리 만지다가 약속시간에도 10분 늦었단 말이다!
(아..  겉치장 하느라 중요한 약속에 늦는 거.. 정말 내가 싫어하는 행동유형인데! ㅜ.ㅡ)


2.
게다가 출판사가 자리잡은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반갑게 아는 체하는 이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대번에 내 이름을 부르며 언젠가 어느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나를 봤다는데 나는 완전히 깜깜.. 이름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못 알아봐 죄송하다고 말하며 대충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출하던 바로 그 사람이 출판사 대표님이란다.
아유 민망~
사람 얼굴 기억 잘 못하는 병 때문에 민망한 경험이야 많지만, 이번엔 좀 더
싸가지 없이 굴어서(실은 약속시간에 좀 늦어서 서두르느라 ㅜ.ㅜ) 더 나쁜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 같다.

3.
며칠 뒤 생일인 우리 정민공주님이 고모에게 특별히 부탁한 선물을 사기 위해..
그리고 작업실에서 있을 송년모임 준비를 위해 이마트엘 갔는데
분명 재고 있다고 전화로 확인까지 하고 갔음에도
울 공주님이 원하는 문제의 '분홍색' 디카폰이 없었다. ㅠ.ㅜ
노랑색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절대로'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받은 터라 식겁했다.
집 근처 완구매장이 떠올라 퇴근 길에 그곳에도 들려봤지만 품절이란다.
근육덩어리 미국 배우가 나왔던 sold out 이란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어흑...

4.
오후엔 청소한답시고 깝죽대다가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3년 가까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테이블야자 수경재배 화분을 떨어뜨렸다.
ㅠ.ㅠ
유리구슬이 온 방안으로 다 튀기고, 뿌리째 바닥에 나뒹굴던 테이블야자 포기를
다시 담아두긴 했지만 과연 탈없이 계속 살아줄 것인가 걱정이다.
수없이 죽어나간 화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생명력을 자랑하던 녀석이니
희망을 품고는 있지만, 워낙 화분죽이기 대장이라 몹시 겁난다. 흑흑..

5.
집에 오려고 주차타워에서 차를 빼려니
난데없이 에러가 났다.
다른 때는 그냥 에러 해제 버튼을 눌러주면 해결되더니
'운전중 좌측미러 감지'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꿈쩍도 하질 않아 결국
주차기계 A/S 센터에서 사람이 나와야 했다. ㅠ.ㅠ
내년 4월이면 입주 만 3년이지만 그동안 단 한번도 사이드미러 안 접고 다녔어도
이런 일 단 한번도 없었는데 웬 낭패람.
처음부터 거울이 문제가 됐으면 주차타워 입고조차 안 돼야 정상인데 멀쩡히 작동하다
출고할 때만 문제가 될 건 또 뭔가...
하지만 차가 약간 한쪽에 치우쳐 입고됐을 경우 거울을 안 접으면 그런 일이 간혹 생긴단다.
그치만 맹세코 지금까진 단 한 번도 문제가 없었단 말이다! 잉잉잉...
늦은 저녁이라 얼른 집에 가서 밥먹으려고 씩씩대고 내려왔다가
늦어진 것도 속상했지만, 단순한 실수로 공연히 바쁜 사람 오라가라 전화하는 사태 만든 내가 넘 싫었다.
으휴..

6. 집에 돌아와서 쇼핑목록 적었던 쪽지를 죽 읽어보니...
역시나 적어갔는데도 빠뜨린 게 있었다. 미쳐미쳐...
내일 모임에서 선물교환을 할지말지 모르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놓을 생각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하늘색 형광펜으로 적어놓은 걸 빼먹는 심보는 뭘까나. 참...

이렇게 주르륵 적어놓고 보니 어째 머피의 법칙이라기보다는
나의 미련함과 정신머리없음이 총체적으로 발현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더 사고 안 치고 이미 하루가 지나버렸으니 다행이라 여겨야지.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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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모임

삶꾸러미 2006. 12. 13. 17:22
바야흐로 연말이다.
그래서 자주 만나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대로
만남이 뜸했던 이들은 또 그들대로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 회포를 풀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모임을 청한다.

옛날엔 그런 걸 당연하다 여겼다.
그래서 12월의 마지막 두 주일은 거의 매일 음/주/가/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요란한 송년모임 약속을 잡았고, 스스로도 몹시 그걸 즐겼더랬다 ^^;;
직장생활 7년간 거친 회사 3군데에서 사귄 절친한 지인들과는 당연히 만나야 했고
좀 각별히 친한 출판사의 경우엔 직원 회식 자리에도 초대를 받곤 했다.
그뿐인가, 뜻하지 않게 사회에서 만나 깊은 정을 나누게 된 이들, 학교에서 만난 선후배들,
가족 송년모임까지...
지금도 만나자는 대로 다 약속을 잡으면 남은 2006년을 또 다시 흥청망청 보내야할 것 같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는
그렇게 요란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귀찮고 민망해졌다.
내가 그리워 만날 사람은 반드시 올해 만남을 되돌아보며 갈무리하지 않더라도
내년 역시 만남을 이어갈 테고
어떤 이유로든 만남이 뜸해진 이들은 그렇게 스르르 서로에게서 멀어지거나, 또 다른 계기로 다시 연이 이어지거나 하지 않겠나 말이다.

물론 꼭 만나서
굳이 '송년모임'이라는 꼬리표를 단 만남의 자리에 모여
올 한 해 우리 참 잘 지냈지 않느냐고, 또는 참 힘들었지만 잘 견뎠노라고
서로 어깨 토닥여주고 격려하고 편한 이야기를 나누고픈 이들도 있다.
다만 그런 모임은 나의 12월에 두어 번으로 족하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그냥 반갑게 만나서 2006년이든 2007년이든, 12월이든 1월이든 특별히 뭔가를 마무리하고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수다와 교감을 나눴으면 좋겠다.
어차피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고, 달력으로 구분해 놓은 건 인간의 편의 때문인데
꼭 그렇게 시간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어제 오늘
'올해가 가기 전에 소주나 한 잔 해야지..'라며 송년 모임 날을 받자고 다그치는,  
조금 '먼' 지인들에게는 비겁하게 '어, 내가 시간 봐서 다음 주쯤  전화할게...'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좀 찔리긴 하지만, 소모적인 연말을 보내고 싶진 않단 말이지..
물론 다음주에 내 연락을 기다리다 또 다시 만남을 청하는 이에겐
당연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날을 잡아주겠지만 말이다. ㅎㅎ

어느새 내가 이렇게 친구들 사이에도 엄연한 금긋기를 해놓았는지 참...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삼아온 게 좀 부끄러워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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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삶꾸러미 2006. 12. 10. 17:36

첫인상이 참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언제부턴가 사람은 역시 겪어봐야 안다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된다.
고맙게도 첫인상과 나중 느낌이 똑같아 특별히 헷갈리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지만
첫인상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보다 첫인상이 좀 떨어지더라도 내면이 진국인 사람도 많고, 첫인상은 좋았는데 알고보니 어이없는 인간도 참 많다는 걸
나이와 함께 깨달아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쁜 '병'이 있어서
솔직히 처음 잠깐 만나선 첫인상이랍시고 제대로 머리에 담아두지도 못한다.
얼마전부턴 일 때문에 처음 만나 명함을 주고 받게 되면
돌아서자마자 얼른 명함 뒤에 메모를 해둘 정도다. (어느 책에선가 그러라고 귀띔을 해주었는데 그게 나같은 '얼굴치'[란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에겐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더라)
예를 들어, 반테안경에 짧은 머리, 웃는 인상, 목소리가 허스키, 단 걸 좋아함.. 따위로. -.-;;
물론 출판계엔 여성동지들이 많고, 그들의 헤어스타일이 수시로 변하는 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ㅋㅋ

아무튼 나도 그리 강한 인상을 남기는 생김새가 아니므로
내가 돌아간 뒤에 저들도 내 명함 뒤에 동그란 얼굴, 작은 키... 따위의 인상착의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키나 얼굴 모양 따위의 물리적인 생김새 다음으로 과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기억할까 하는 것이다.

워낙 사람들의 얼굴을 처음부터 기억하지 못하는 덕분에
나의 경우 그들에 대한 첫인상은 두번째 만남까지 유보되는 셈이고
그 사이 전화통화라든지 이메일 같은 수단으로 좀 더 서로에 대한 단서를 파악하게 되면
단지 생김새만 갖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폭 넓은 평가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일 때문이든, 단순히 친분 때문이든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전제를
한자락 깔고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첫인상만 갖고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던 어렸을 때처럼 섣불리 마음을 다치거나, 또는 성급한 편견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줄어드는 것 같다.

남들에 대해선 이렇게 내가 비교적 너그러운 잣대를 갖게 되었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너그럽게 보아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뜻일 테고
요즘 한참 '동안 열풍'이 부는 것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자기관리를 한다는 뜻에서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어마어마한 액수의 '견적'을 받아 과학기술의 힘으로 만드는 억지 동안 말고.. ^^

무조건 어려보이는 게 좋은 건 아닐 테지만,
어쨌든 나 역시 그간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며 속으로 몹시 기뻐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제법 내 나이대로 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인데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공연히 속이 상하고 거울을 보며 새삼 반성을 하게 된다.
물론 남들은 20대에 이미 시작한다는 마사지며 피부관리 따위 전혀 안하고
피부에 천적이라는 밤샘을 밥먹듯이 하면서 이 정도면 뭐 훌륭하지!.. 라고 자위도 해보지만
며칠 잠 못자고 푸석한 얼굴로 훤한 햇빛 속에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지고, 결국 그만큼 '액면가' 내 나이도 많아 보이는 게
당연할 거다.

거기다 얼마전부터는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럽다.
얼마 전 여행을 갔을 때도 그랬고,
엊그저께 후배 아기 돌잔치에 갔을 때도 그랬는데
사람들이 잠깐동안의 내 말투와 겉모습만 보고도 내 직업을 얼추 맞혔기 때문이었다.
한결같은 그들의 짐작은 '글쓰는 일과 관계된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나로선 그게 칭찬인지 비난인지 걱정스러웠다.

농담삼아 내가 '설마 그거 잘난체 해서 재수없다는 뜻은 아니겠죠?'라고 되물으니
다들 까르르 웃었는데, 나로선 내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형과 편견이란 게
먹물 좀 들었다 싶게 굴면서, 뭔가 현학적인 체를 한다거나 결국 좀 잘난 척을 하는 모습
아닌가 말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유형이 잘난 체 하는 사람인데
내가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니.. 살짝 공포스럽다.

그동안 겨울 오는 게 우울하답시고, 또 바쁘답시고 까칠하게 굴며 지낸 내면의 변화가
드디어 내 얼굴까지 흉측하게 좀먹은 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고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인간형이 된 건 아닌가 싶어 염려된다는 얘기다.

나는 진짜 글쟁이도 아니고, 다른 진짜 글쟁이들의 글에 매달려 간신히 덩달아 살아가는
반편 글쟁이인 셈인데도 그간 생색만 거나하게 내고 지낸 건 아닌가.

부디 내 얼굴에 책임질 나이에 걸맞는 만큼의 무게가 실린 거라 빌면서도
동시에 세상사람들의 '나이값'이라는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전천후 동안으로 계속 남고 싶은 턱없는 소망이 더 크다.
나는 나이값 못한다는 소리가 정말정말 싫은데
거기다 직업값도 못한다는 소리마저 듣는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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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풀이

삶꾸러미 2006. 12. 9. 07:18
'잠풀이'라는 말은 원래 없을 거다.
내가 그냥 '한풀이처럼 잠을 잤다'는 의미에서 생각나는 대로 갖다 붙인 제목이니까.

그저께였나보다.
미친짓하듯 식음과 잠을 전폐하고, 꼬박 하루 이상 매달려 원고 하나를 정리해 넘기고는 마침 저녁약속까지 있는 바람에 36시간쯤 계속 깨어 지냈다.
극도로 민감하고 예민해지는 마지막 그 순간이 되면 잠이 안오는 건 물론이고 먹는 것도 귀찮고 하물며 누가 말 거는 것까지 짜증이 난다. (까칠하기는...)
암튼 그 동안 겨우 2끼를 먹을까말까, 그 가운데 한 끼는 대강 비빔밥을 만들어 갖고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숟갈씩 떠넣을 정도였다. -.-;;
암튼, 하기 싫어서 여름부터 마무리를 미루다 미루다 어쩔 수 없이 막바지에 몰린 일이라
끝을 내야 하긴 했으니, 끝낸 것만으로도 기쁘고 장했다.

젖은 휴지처럼 몸이 늘어지긴 했지만
아예 잠을 안 잔 것치고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몹시 양호한 상태로
후배 생일파티를 끝내고 집에 와서도 곧장 쓰러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제법 버티다가
잠이 들었는데...
ㅎㅎㅎ
그뒤론 정말 시체처럼 늘어졌다.
자고자고 또 자고, 잠깐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또 스르르 잠들고..
그렇게 17시간쯤 자고 났더니 찌뿌드드 했던 몸이 날아갈 것도 같았는데
저녁 한끼 먹고 좀 놀다가는 ㅋㅋㅋ
어젯밤 자정도 되기 전에 또 잠이 왔다.

원없이 잠 한 번 자보고 싶다는 나의 소원이 드디어 풀린 듯...
그러더니 오늘 새벽에 "저절로" 잠이 깼다.
원래 잠을 자면 배고픈 줄도 모르는데... (대신에 배가 고프면 절대로 잠이 들지 못한다^^)
새벽 4시반에 눈을 뜨자마자 배가 고팠다. ㅋㅋ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먹고 빵을 좀 챙겨 먹고는, 배가 차면 더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몸도 이젠 잠이 지겨운가보다.

수면제 삼아 잔뜩 책을 꺼내 읽다가... 포기하고 일어나
또 다시 이렇게 말도 안되게 일찍 하루를 맞았다.

마음 같아선 따뜻한 이불 속에서 더 자고 싶은데^^  잠이 더 오질 않으니
공연히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잠풀이가 원없이 됐다는 뜻이라 여겨져 나름대로 흐뭇하다.

머리 맑아지게
그야말로 모닝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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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물개

삶꾸러미 2006. 12. 6. 02:26
일하기 싫어 잠시 TV 리모컨 놀이를 하다
아시안 게임 자유형에서 2관왕이 됐다는 우리나라 선수의 수영 모습을 보았다.
어휴....
인간 물개가 따로없더라.

오래 전 여름, 동생들(그것도 동생들 여자친구들까지 데리고 ㅠ.ㅠ)과 수영장에 갔을 때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선베드에 누워있는 비키니걸과 삼각팬티보이 아니면
물살을 가르며 날렵하게 수영실력을 자랑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몸매도 안되고 수영도 안되는 우리들이 대체 왜(!!!) 수영장엘 간 건지 후회하며
수영이란 걸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몇년 뒤이긴 해도 결국 끈기없는 인간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거의 6개월 가까이
수영강습을 받았지만
나는 아직도 자유형이 어설퍼 걸핏하면 물을 먹는 게 두려워 잘 안하게 되고
그나마 좀 나은 배영을 하다간 어딘가에 머리통을 부딪기 일쑤며
제일 폼이 낫다는 평영을 할 때는 짧은 신체 사이즈와 힘이 부족한 탓에 생각만큼 쑥쑥 잘 나가질 못한다.
물론 나비처럼 날아야 하는 접영으로 강습진도가 넘어갔을 땐 뻣뻣한 몸 때문에 완전히 포기를 해야 했고...

그런데 남들 수영하는 걸 보면 참 쉽고 수월하게도 물살을 가른다.
날렵한 물고기처럼 조금도 힘 안들이듯 물을 가르고 순식간에 수영장 끝에 도달해
눈깜짝할 새 턴을 하는 모습을 보면 키야...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똑같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어떤 인간은 저리도 아름다운 놀림을 보여주는데
나는 왜 이모양인지 원.
수영을 배울 땐 나도 수영장 끄트머리를 향해 수영해 가서 헥헥거리며 끝에 매달리지 말고
우아하게 턴 동작으로 다시 출발점까지 돌아오는 수준까지는 터득하리라 굳게 결심했지만
인어처럼 몸이 길고 유연했던 수영강사가 물속에서 보여주는 '전신 꿈틀이'를 나도 따라해야 접영을 배울 수 있다는 걸 안 순간 절망과 함께 관둘 수밖에 없었다.
턴 동작은 오리발 달고 하는 잠영 단계와 함께 맨 마지막에 배우는 것이었던 듯.

그나마 수영이란 걸 배우긴 했으니 감지덕지해야하겠지만
지금도 어디 가서 수영할 줄 안다는 말은 선뜻 하지 못하겠다.
아직도 물 먹는 게 두려워서야 원!

실력 없는 놈이 연장만 탓한다고, 수영배우면서 사들인 실내수영복이 대체 몇개인지
셀수도 없이 아직 서랍에 들어 있지만
다시 선뜻 또 수영을 배우러 또는 하러 다닐 작심은 쉽게 들지 않는다.
가끔 이렇게 수영 중계를 볼 때나 아주 아련하게
수영장 물이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팔다리를 스쳤던 감각만 살아나 그리울 뿐이다.

아무튼.. 박태환인가 하는 선수의 몸매는 놀랍도록 훌륭하다. *.*
요새 애들 발육 좋은 거야 알고 있었지만, 팔다리가 어쩜 그리 길고 늘씬한지..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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