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2007.01.29 찜질방을 경험하다 8
  2. 2007.01.23 사기 주의보 6
  3. 2007.01.21 흔들흔들 4
  4. 2007.01.14 스트레스 해소법 3
  5. 2007.01.12 카르페 디엠, 그리고 노후대책 3
  6. 2007.01.09 건강염려증 2
  7. 2007.01.07 경품 욕심 3
  8. 2007.01.04 새해 달력 4
  9. 2007.01.02 고모의 딜레마 5
  10. 2006.12.31 마지막 날 3

혹자들이 찜질방을 '복합가족놀이공간'이라고까지 극찬하는 말을 들었지만
난 워낙 뜨거운 곳을 잘 견디지 못할 뿐더러
남들이 입었던 옷을 빌려입는다는 사실이 대단히 찝찝한 데다(언젠가는 세탁 부실한 찜질방 옷에서 '이'가 옮았다는 엄청난 소동도 들은 바 있었으니!)
찜질방이든 사우나든 일단 '대중목욕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단체 누드'의 민망한 순간을 언제든 겪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제껏 단 한번도 찜질방엘 가본 적이 없었다.
사우나야 가끔씩 혼자서도 다녀올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찜질방은 떼로 몰려가 즐겨야 하는 곳일 터인데, 그간엔 고맙게도 찜질방행을 강요하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찜질방의 장점에 대해선 익히 듣고는 있었다.
온가족이 총출동해서 온종일 놀다가 그 안에서 한끼 정도 해결하고 올 수도 있으니
주부들이 특히 좋아하며
심지어는 엄마 따라 '맛을 들인' 5, 6학년 정도 여자애들이 시험 끝난 날 따위에
보드게임이나 퍼즐 같은 걸 싸들고 지들끼리도 찜질방엘 간다더군.
하지만 24시간 영업을 하는 탓에, 집 나온 청소년 또는 어른들의 값싼 쉼터 역할을 하기도 하고, 수많은 종류의 찜질방 가운데  이불이나 거적을 덮어야 하는 일부 서늘한 방이나 수면실에선 차마 눈 뜨고 못 볼 짓거리들을 해대는 젊은/혹은 늙은 연인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공연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광경을 TV로 볼 때도 내게는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던 것 같고, 뻔들뻔들 땀을 흘리면서 '건강 데이트'를 한다는 연인들의 이야기도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런 내가 전격적으로 찜질방엘 가보게 된 것은 순전히 조카들 덕분이었다.
토요일에 와서 하루 자고 가기로 한 조카들은, 아파트에서 침대 생활을 하는 자기네 집과 달리 주택이라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우리집 방에 이불을 깔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선
대뜸 '찜질방 놀이'를 하자고 졸라댔다. ㅡ.ㅡ;;

아이 따뜻해..라고 중얼거리며 요 밑으로 파고들어 나란히 누워있던 조카들은
나를 꼼짝도 못하게 눕혀놓고 각종 소꼽놀이 도구를 챙겨와선 '검은 계란'이라며
까먹으라고 했고, 연이어 식혜와 주스, 각종 과일도  날라다주었다(물론 다 장난감^^).
찜질방 경험이 전혀 없던 나와 달리, 조카들은 제 엄마아빠와, 이모들과 여러번 다녀본 품새였다. ㅋㅋㅋ

잠들기 전에도 '찜질방 놀이'를 더 해야한다고 난리를 치던 조카들에게
다음날 진짜로 찜질방엘 가자고 약속한 뒤 겨우 재운 터라, 걱정반 기대반으로 엄마 모시고
우리도 3대가 찜질방엘 진출했던 것인데...
일단 여자들은 무조건 분홍색 옷(그나마 울 엄마처럼 뚱뚱한 사람들은 흰색 티셔츠를 남자들과 공유하더군), 남자들은 무조건 청회색으로 구분시키는 성차별부터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나마 아이들은 모두 노랑색 옷을 나눠주기에 못마땅한 마음을 접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빈 사물함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찜질방은 완전 만원이었고
구운 달걀과 음료수 하나를 사먹으려 해도 매점에 줄을 서야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 고모와 둘러 앉아 식혜에 '검은 계란'을 까먹으며 행복해 하는 조카들을 보니 나도 그럭저럭 즐거워졌다.

둥글게 이글루스 모양으로 입구를 만들어 놓은 여러 찜질방 입구엔 황금참숯방, 천연보석불가마, 황토소금방, 알프스아이스방 따위의 재미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온도가 심히 높고 거의 엉금엉금 기어들어가도록 입구를 좁게 만들어 놓은 불가마엔 들어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60도를 전후로한 찜질방은 뜨거운 걸 못견뎌하는 나도 제법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뜨거운 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는 사람들!
그리고 드넓은 홀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딱딱한 목침을 베고 코까지 골며 자는 아저씨들.. 가끔은 어려 보이는 여자애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남들 발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셈인데 어떻게들 그렇게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는지 원...
맨날 혼자 자다가 조카들과 올케와 동침하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샌 나와는 참 다른 세상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방마다 다정스럽게 누워있는 연인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그래도 대낮부터 심각하게 눈꼴사나운 광경을 연출하는 이들은 없어 다행이었다.

암튼 TV에서 본 것처럼 우리도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어 하나씩 쓰고 ^^;;
뜨거운 방에서 땀을 흘리고 나와선 아이스티와 녹차 따위를 마시며 탱자탱자 놀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후딱후딱 지나갔고, 사용료가 10분에 천원인 마사지 의자에 앉아 잠깐 마사지도 받고 나니 직업병인 어깨 결림이 조금 풀린 것도 같았다.

마지막 목욕탕에선 장난감까지 싸들고 가서 마냥 놀 작정을 한 조카들을 말리느라
전투적으로 샤워를 마치고 후다닥 나와야했지만 ^^;;
난생 처음 겪은 찜질방의 경험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물론 누구든 같이 가자고 청하면 얼씨구나 좋아라 따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몸이 찌뿌드드할 때, 번잡한 시간을 피해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가보는 건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ㅋㅋ 그럼 결국은 나도 찜질방이 '복합가족놀이공간'이라는 데 동의한다는 건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찜질 가운이 촌스러운 분홍색이 아닌 곳이면 좋겠고 ㅡ.ㅡ;;
남녀차별없이 같은 색 옷을 대단히 깔끔하게 세탁해서 주는 곳이면 더욱 좋겠고
얼음 동동 띄운 수정과도 파는 곳이면 좋겠다! (어제 가본 그곳은 치사하게 식혜만 팔아서 맘상했다. 난 수정과가 더 좋은데;;)

아무려나 별것도 아닌 찜질방 탐방기 끝!

Posted by 입때
,

사기 주의보

삶꾸러미 2007. 1. 23. 17:19
나 원 참...
살다보니 별별 사기꾼들을 다 만난다.
은행 홈페이지엘 가도, 국세청 홈페이지엘 가도 각각 직원을 사칭한 사기행각이 횡행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지문이 보이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나도 사기꾼과의 접촉이 있었다.

이른바 검찰청 사칭 사기꾼 ㅡ.ㅡ;;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또 다른 사기극이 있다.
나는 걸려들 뻔하다가 다행히 벗어났지만
울 큰올케는 고스란히 걸려들어 홀라당 돈을 날렸던
백화점/농협 하나로마트 직원 사칭 사기극!
특히 운전하는 사람들 주의해야 함.

Posted by 입때
,

흔들흔들

삶꾸러미 2007. 1. 21. 02:34
토요일 저녁 작업실에 있다가 난데없이 지진을 느꼈다.
처음엔 내가 어지럼증을 느끼는 줄 알았다.
작은 활자를 너무 오래 보아서인가 놀라 고개를 드니 내가 어지러운 게 아니라
확실히 세상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창문 롤블라인드의 줄이 살짝살짝 흔들리는 게 보이고
의자가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 처음엔 지진인줄 몰랐고
부실공사라 건물이 흔들리거나 (건물에 주차타워가 붙어 있는데 기계가 작동할 때마다 약간의 소음이 느껴지곤 했으므로)
주변에 커다란 가스폭발 같은 게 일어난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흔들림이 느껴지던 게 한 15초쯤 됐으려나..
찰나는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설마 건물이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혹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건가?
여긴 6층인데 엘리베이터는 안전할까?
왜 사방이 이리도 조용할까...
따위의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흔들림이 멈추고 나자 다시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 일 없었는데 나만 공황발작 같은 걸 일으킨 건 아닌가?
요새 쓸데없이 민감하고 예민하고 까칠해지더니 환각 같은 걸 느끼는 건가?
...따위의 의심이었다.
집에 전화를 걸어 혹시 식구들도 지진을 느꼈는지 물었지만
둔감하신 울 부모님은 왕왕대는 TV 소리를 배경으로 뭔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고 되물으셨다.

그래서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고 보니 사실이란다.
강원도에서 4.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전국에서도 느낄 만큼의 강도였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어린시절 잠자다 말고 정말로 온 집이 좌우로 덜컹덜컹 흔들리는 것처럼 느꼈던 생애 첫 지진의 경험 이후 두번째인 것 같다.

세상이 온통 흔들흔들, 아니 부들부들 떠는 걸 잠시나마 온몸으로 느끼는 기분
몹시 불쾌하고 공포스러웠다.

오래 전 지리시간에 배운 '환태평양 지진대'(?) 같은 용어도 떠오르며
잊을만 하면 가끔씩 뉴스에 나와 대한민국도 지진의 공포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일갈이 생각나기도 했다.
'세상 까짓거 뭐 있어?' '내일 당장 사고로 죽을지 누가 알아?' 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척 하면서 속으로 나는 완전 겁쟁이다.
 
길게 병들어 아파하며 죽기보다는
갑자기 아쌀하게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죽음 앞에선 내 남은 삶은 대강이나마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고
이왕이면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깔려 죽는 따위의 허망한 방법은 아니면 좋겠다.
하긴.. 허망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

암튼...
잠깐동안의 지진에 죽음을 떠올린
엄살 최대치 비약의 토요일이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
어제 친구들이 불쑥 물었다.
"넌 요새 스트레스를 뭘로 푸니?"

요즘 사는 낙이 없어... 라는 맥빠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터라 3초쯤 망설이던 내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주로 먹는 걸로 풀고... 사람들 만나고, 수다떨고... 쇼핑도 하고,  여유 되면 여행 가고..."

친구는
"다른 건 뭐 누구나 다 하는 거고, 그나마 니가 살이 안찌는 체질이라 다행이다 야"라고 했다.

처음 나온 대답이 먹는다는 얘기인 걸 보면
내가 식탐으로 해소하는 스트레스가 제일 많다는 얘긴데
어젠 문득 식탐녀를 지나쳐 식충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화가 오간 때가 마침, 자동차 뒷좌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거북스러울 만큼 와구와구 배불리 저녁을 먹고난 다음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스트레스 해소법이란 게 알량하게 겨우 먹는 거라니.. 스스로 대답해놓고도 겸연쩍었다.

요 며칠 여기저기 푸념을 하고 돌아다닌 생각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언제부턴가는
호들갑을 떨며 맛있는 걸 찾아 먹어도, 편한 이와 걸판진 수다를 떨어봐도,
몹시 달고 맛있는 케이크와 카페인을 탐닉해도,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봐도, 찔찔 눈물을 흘려봐도,
쇼핑을 해도, 잠시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근원적인 답답함 같은 것이 마음 저 밑바닥에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숨쉬기조차 힘든 막막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누군들 인생이 힘겹지 않겠나.. 자위하지만
그래도 뭔가 나만의 낙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든다.
예전엔 저 위에 적은 것들로도 충분히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단박에 행복해졌는데
지금은 왜 안되는 걸까나.

단순히 맛있는 걸 먹고 배만 불러도 느낄 수 있던 뿌듯한 포만감과 행복을
이젠 골똘히 찾아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내 경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더 까다롭고 까칠해지고 불만투성이 인간이 되어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깊이는 깊어질 생각을 않고 쓸데없이 생각의 겹만 많아져
파삭파삭 부서지는 파이처럼 메마른 뇌가 와사삭 사그라져버릴 것만 같다.
이러다 식충이에 무뇌충까지 되면 어쩌나. ㅜ.ㅜ
Posted by 입때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carpe diem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게 처음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가 주었던 깊은 감동과 충격적인 메시지는 결국
나에게 아전인수격으로
carpe diem = seize the day =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_=;; 라는 교훈으로 남았더랬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과
미래를 전혀 염려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알량한 견해로는 완전히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를 열심히 즐기며 살아서 행복하다면, 현재의 연속일 미래도 당연히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암튼 그러면서 사회생활 19년 통산, 적금통장 하나 없이 살아온 나는
누군가 저축을 도외시하는 내게 미래 설계를 운운하며 나무라면,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뭘!"이라고 큰소리를 치곤했다.
일년 내내 뼈빠지게 벌어서 휴가를 최대한 즐기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긴다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에 갈채를 보내며, 나 또한 "골빠지게" 원서를 들여다보며 번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과감하게 여행을 떠났으며,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와선 또 열심히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돈은 써야 또 생기는 거야!'라는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래서 나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꽤 된다. ^^;)

그런데 얼마전부턴 슬슬 나의 먼 미래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딱히 벌어놓은 돈도 없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으며, 돈벌어다 줄 남편도 없고^^; 혹시 나중에 기댈 여지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자식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이렇게 호랑방탕하게 살아가는가 싶었던 것이다.
일단 나이 들어 경제활동도 못해 가난한데 병들기까지 하면 곤란하겠다 싶어, 아무렇게나 주변에서 귀찮게 찔러대는 대로 이것저것 들어두었던 보험을 정리해 확실하게 큰 돈 드는 질병관리가 보장되는 상품으로 바꾼 게 재작년이었던가. 물론 그간 부었던 보험 해약금을 타들고는 부모님 용돈으로 조금 인심 쓴 뒤, 홀라당 여행을 다녀왔더랬다.
그러고 나서 과연 내가 몇살까지 일을 하고 노후자금을 얼마나 마련해야 노년에 유유자적 여행이나 다니며 살 수 있을 것인가 계산해보니 ㅜ.ㅜ;; 까마득했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83세라는데!
내가 좀 까칠하게 굴고 성질 드러워서 그보다 훨씬 일찍 죽게 된다 해도...
번역이 제 아무리 정년 없는 직업이라지만 60세부터는 소일거리 삼는 일 정도나 하면 모를까 지금처럼 번역기계 돌려대듯 몸과 뇌를 혹사시킬 수야 없는 법.
편한 노년을 보내고 싶어 진 것이다.

해서...
비슷하게 홀로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과 몇달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나눈 끝에
결론은 내가 연금보험을 들었다는 얘기다. ㅡ.ㅡ;;

물론 경제관념 전혀 없는 나의 현재 씀씀이와 벌이로 볼 때
아무 걱정 없이 편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은 절대 못되는 작은 시작이지만
어쨌든 만날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외치던 내가
노후대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한편 기특하고, 한편 서글프고,
심정이 아주 복잡다난미묘하다.

나도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히면서라도 미래의 안일을 꿈꾸는 유형의 인간이 되고 만 것인가.
자꾸 두려움과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성숙의 증거인지, 차츰 자신감을 잃어간다는 증거인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두툼한 보험약관과 증서따위를 받아들고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Posted by 입때
,

건강염려증

삶꾸러미 2007. 1. 9. 00:34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보면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들이 꽤 자주 나온다.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 부인도 그렇고
<엠마>에서 엠마의 아버지도 그랬고...
또 다른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난다. ^^;;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그런 인물들이 두드러지게 그려진 이유는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문득문득 과도한 건강염려증에 휩싸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마감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목이 가끔 콱 막힌 느낌이 드는데,
들어본 병명은 또 많아가지고 나도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게 아닐까 잠시 고민하는 거다. ^^
그치만 또 병원엔 죽어라 가기 싫어하는 인간이다보니
염려만 할 뿐 병원에 달려가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시기만 넘어가면 또 대개는 증상이 사라진다.
순전히 신경성이라는 얘기다 ㅋㅋ

그동안 약한 기운의 감기를 벌써 몇달째 앓으면서도 인류는 감기약을 발명하지 못했으므로
병원에 가도 소용 없으니 그냥 먹고 쉬겠다고 주장하며 노친네들의 속을 썩이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오늘은 내 발로 피부과엘 찾아갔다.
연말을 가열차게 놀며 보낸 벌로 입술 가장자리가 찢어졌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통 낫질 않아 이리저리 인터넷 정보를 찾아보니 아무래도 바이러스성 염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간 쌓인 피곤은 충분히 풀릴만큼 아예 일요일엔 온종일 자다시피했는데도 안 낫고 점점 심해져 피까지 나는 걸 보니 드디어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

주사까지 맞아야하는 줄 알고 내심 덜덜 떨며 병원에 갔지만 ㅋㅋ
의사는 입술이 건조하여 그런 것이라며 먹는 약도 안 주고, 바르는 연고제 하나만 덜렁 처방해주곤 돌려보냈다.
항생제를 며칠쯤 먹어야하는 병이 아니란 게 너무도 다행이다 싶은데
결국 별것도 아닌 걸로 병원을 찾을 만큼 요즘 걸핏하면 기승하는 나의 건강염려증 때문에 좀 민망스러웠다.

병원과 약과 의사들은 잘 안 믿고 의심하고 못마땅해 하면서
안 어울리게 왠 건강염려증이람.

나이들수록 점점 예민해지는 것을 지나쳐 까탈스럽고 까칠해지는 걸 느낀다.
뭐든 마음 먹기 달렸으니 그저 마음 편히 먹으면 다 해결된다는 진리를 왜 자꾸 까먹는지 원.

암튼 그간 입을 잘 못 벌려서 본의 아니게 잘 못 먹었는데
(잘 못 먹는 인간이 바로 엊그제 그런 걸판진 밤참 타령을 했더란 말이냐! ㅋㅋ)
타온 연고나 열심히 입술에 발라 어서 식탐전선에 지장 없도록 해야지!

Posted by 입때
,

경품 욕심

삶꾸러미 2007. 1. 7. 18:36
행운과 나는 좀 거리가 먼 편이다.
그렇다보니 경품 따위에 응모해서 된 적은 평생 거의 없는 듯하다.
하물며 회사 다니던 시절, 회사 창립 기념일에 7, 80 퍼센트의 직원들이 선물을 타는 행운권 번호 뽑기에서도 나는 '당당히' 소수에 들었더랬다. ㅡ.ㅡ;;
관리과에서 불쌍하다며 나에겐 행운권을 한 장 더 쥐어줬더랬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 걸 보며, 내가 참 재수와는 거리가 먼 인간임을 실감했었다.

그렇게 늘 쓸데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경품 응모의 기회가 주어지면, 건망증 때문에 까먹는 경우가 아닌 한 은근히 기대를 품으며 응모를 시도하긴 한다. ㅡ.ㅡ;;

어제도 조카 생일 선물사러 *마트에 갔다가 영수증 이벤트 응모번호를 받아왔는데
그냥 버리려고 쓰레기통에 넣었다가
또 혹시 모르지.. 라는 생각에 다시 주워 좀 전에 인터넷으로 응모를 해놓았다.
해놓고 나오면서도 킥킥 웃음이 난다.
행여나!!!

온 국민이 로또광풍에 휘말렸던 몇년 전 설날...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친척분들이 너도나도 로또 얘기를 하는 것에 자극 받아
다음날로 울 아부지가 로또를 사오셨는데...
세 식구 대표로 내가 찍은 번호는 5장 가운데 (그러니까 30개의 번호 가운데)
달랑 3개밖에 맞지 않을 정도로... 나와 행운은 서로 친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번에 1등 경품인 오피러스 승용차를 타게 되면 그걸 팔아가지고
미니쿠퍼를 사는 데 보탤 수 있지 않을까 ^^;;;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ㅋㅋㅋ

막내 동생은 백화점 경품 행사에서 3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기도 했고
또 측근 한 녀석은 툭하면 경품으로 mp3나 핸드폰 따위를 받던데
다 무슨 조화인지 원...

하여간에 나에게도 경품 행운이 찾아오는 날은 있을 것인가??
(누군가 "행여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ㅋㅋ)

Posted by 입때
,

새해 달력

삶꾸러미 2007. 1. 4. 17:20
2007년이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 탓도 있지만
새해가 시작된지 나흘이나 지나고 나서야 새해 달력을 방에 걸었다.

달력을 보면 그 집안의 종교와 취향,  생활 수준까지도 알 수가 있다는 말이 있다는데
듣고보니 정말 그렇다.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기 전에는 달력이 늘 남아돌았다.
아버지가 교직원으로 계시던 대학의 학교 달력은 물론이고, 각종 은행 달력, 여행사 달력,
가끔 쓸만한 명화달력에 다이어리까지 주변에 마구 나누어줄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과거 내가 회사 다니던 시절에 받아온 달력들도 여럿 되어
내 방엔 그나마 마음에 드는 달력을 골라 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어디든 적을 두지 않은 준백수의 생활을 하고 있고, 아버지도 정년퇴직한지
몇년 되시다 보니, 생기는 달력이라곤 거래은행과 약국, 학교 달력 정도에 불과하다.
은행과 대기업에선 종이 재질을 달리한 고급 달력을 소수 제작해  VIP에게만 나눠준다는데
물론 우리집이 그런 VIP 대접을 받을 리 만무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주렁주렁 방방마다 여기저기 달력을 걸어놓는 걸 싫어하는 편이지만
모든 방에 벽걸이 달력 하나, 탁상 달력 하나를 놓아야만 직성이 풀리시는
부모님은 그간 들어온 새해 달력을 12월부터 이중으로 걸어두고는
내가 방에 걸어두고 싶어할 만한 근사한 달력을 못 구한 걸 못내 섭섭해 하셨다.
아니, 달력 하나 갖고도 까탈스러움을 떠는  나를 못마땅해하셨다는 게 옳다.

하지만 나는 몇해 전부터 방이든 작업실이든 공짜로 나눠주는 달력을 걸거나 놓아둔 적이 없었다.
작년엔 고흐 달력을 선물로 받았고
재작년엔 내가 서점엘 가서 일부러 예쁜 벽걸이 달력을 사왔더랬으며
탁상달력은 아예 몇년째 거의 대주다시피 선물한 지인이 있었고 ^^;;
메디컬 드라마 er이 좋아 만든 작은 모임에선 몇년 내리 아예 탁상달력을 직접 맞춰 나눠갖기도 했더랬다.

그래서 어쩌면 올해도 뜻밖의 선물로 달력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새 달력 걸기를 미뤄왔던 것인데
내 바람이 너무 컸던 모양으로 그런 낌새가 보이질 않는다는 걸 깨닫고 며칠 전 얼른 인터넷으로 주문한 달력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올해도 방엔 고흐 달력을 걸어놓을까도 생각했지만, 몇년 전과 작년에 걸어두었던 그림과
겹치는 것 같아 이번엔 아주 단순한 디자인으로 길쭉하게 한 달이 들어 있는 앙증맞은
벽걸이 달력을 골랐고, 탁상 달력도 손글씨체가 귀엽게 들어간 걸로 장만하고 보니
몹시 뿌듯하다.

보험회사와 인터넷 서점에서도 탁상달력을 보내주긴 했지만, 뭣 하나라도 책상엔 예쁜 걸 놓아두고 싶어서 아부지 쓰시라고 벌써부터 선심을 쓰고는 며칠 동안
잠자는 방이며, 컴퓨터방, 작업실에 새 달력이 없어서 좀 민망했는데 이제야
새해 맞이 준비를 제대로 한 것 같은 느낌이다.

굳이 돈 주고 달력을 사들이는 나의 행태를 어른들은 참 별스럽다고 생각하시며
돈X랄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해마다 1월이 열리면 마음에 꼭 드는 달력에 가족들과 지인들의 생일이며 기념일을 적어두는 연례행사가 나에겐 참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대감도 있긴 하되 과도한 스트레스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각종 원고마감일을 적을 때
달력이나 스케줄러라도 예뻐야 그나마 부담감으로 인한 손떨림이 덜 한 것도 같다. ^^;;

암튼... 방이며 작업실에 2007년 달력을 걸고 세워놓으니
이제야 나만의 시무식을 끝낸 듯하다.

올 한해도 열심히 살자.
Posted by 입때
,

고모의 딜레마

삶꾸러미 2007. 1. 2. 22:29

원래 아기와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가 조카들을 이렇게 지독하게 사랑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자식간은 온종일 씨름하다 보면 미울 때도 있고 고울 때도 있지만
고모와 조카 사이는 잠깐씩 그리움을 달래며 예쁠 때만 보고 있으니 조카 사랑이 어떻게 보면
더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이야. ^^
아무튼...
올해로 무려 10살(!)이나 된 정민공주가 태어난 뒤로 난 참 못말리는 고모였고
7개월 된 지우한테까지도 고모는 도무지 안 되는 게 없는 인간이라 조카들 버릇을 완전히 망치는 공공의 적이라고 식구들한테 손가락질을 받는다.

식구들의 비난 속에서도 내심 나는 조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걸 다들 시기하는 것뿐이라며 흐뭇해 하는데,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어느덧 넷이나 되는 조카들한테 골고루 사랑받는 고모로 살기엔 이제 체력이 몹시 딸린다는 것이다.
아직 기어다니는 아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녀석들의 고모 독차지 경쟁도 만만치는 않다.
밥먹을 때도 저마다 고모 옆에서 먹겠다고 싸움을 벌이는 지경이니까..

동생들은 내가 매를 벌었다며 한편으로 고소해한다. ㅡ.ㅜ;;
너무 하자는 대로 다 하니깐 애들이 고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친구처럼 막 대한다나.

하지만 조카들 버릇을 망치고, 스스로 매를 번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나는 조카들이랑 최대한 신나게 놀아주고 싶고, 바라는 걸 들어주고 싶다.
집안에서 한 명쯤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어른이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공룡 놀이, 자동차 놀이, 학교 놀이, 엄마 놀이, 크리스마스 놀이, 레슬링, 파워레인저 변신 놀이, 이야기 놀이, 그림그리기 놀이 따위를 열심히, 온 몸을 불살라가며 같이 한다.
그리곤 조카들이 돌아간 날 밤부터 거의 반몸살을 앓는다.

어제도 떡국 먹으러 다니러 온 동생들 식구가 온종일 먹고 놀다 돌아간 데다
방학 맞은 정민공주는 하룻밤 더 자고 가겠다고 나서서 1박2일간
훌륭한 고모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나니,
물집만 잡혔던 입술에 더하여 입천장이 헐고 입가가 빨갛게 찢어진 데다
삭신이 마구 쑤신다.
어제 엉긍엉금 기어다녀야 하는 동물놀이를 너무 오래 한 탓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사랑스러운 울 조카들의 '고모, 놀자!' 소리가 제일 무섭다. ㅠ.ㅠ
하지만 요 녀석들은 벌써 그걸 알아차리곤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고모네 집에 올라오자마자 소리친다.
"고모, 놀자~!"

동생들은 내 나이를 생각하라며 이제 그만 놀아주라는 데...
몸살을 앓을 땐 그래야겠다고 작심하면서도 막상 사랑스러운 녀석들의 얼굴을 보면
놀아달라는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다.
어리석은 고모의 이 딜레마는 언제쯤이나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 쯧쯧.

Posted by 입때
,

마지막 날

삶꾸러미 2006. 12. 31. 17:25

억지스러운 송년모임은 거부하겠다고 선언을 했음에도
이상스럽게 12월의 마지막은 연일 먹자판술판으로 거나하게 보냈다.
심지어 오늘까지도 약속을 정해놓았지만
드디어 몸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내심 고마워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발악하듯 이끌려다닌 지난 보름간의 허무함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남은 것은 물집 잡힌 입술과
팍팍하게 근육통이 느껴지는 허벅지와 장단지
술살 고깃살이 넉넉하게 붙은 듯한 허리춤,
그리고 잔뜩 밀린 일감뿐이다.

내년엔 하나마나 한 새해 결심따위 하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는데
단 한 가지..
약속 잘 지키자는 결심은 세워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와의 약속.
얼마나 많이 어겼는지 내년 끄트머리에 또 크게 후회하지 않도록.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