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08.07.26 자전거와 커피 20
  2. 2008.07.22 비는 사랑을 타고 17
  3. 2008.07.17 서울시 교육감을 직접 뽑아? 22
  4. 2008.07.15 커피 유난 2 17
  5. 2008.07.08 회복 12
  6. 2008.05.05 5월의 그 방 19
  7. 2008.04.29 1995-2008 내가 뽑은 최고의 영화 10 21
  8. 2008.04.05 자신감 13
  9. 2008.03.23 내 자전거 18
  10. 2008.03.11 꽃을 사다 16

자전거와 커피

놀잇감 2008. 7. 26. 16:14
사람마다 아무리 연습해도 안되는 분야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연습하면 조금이라도 실력이 나아진다는 건 분명 삶의 동력이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채근과 욕심을 유발하는 짜증스러운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자전거 타기 같은 것.
조금씩 자전거 타는 거리를 늘이다 드디어 집앞에서 한강까지 진출하게 된 것을 기뻐한지 몇달 됐는데
한강 자전거도로까지 가는 시간이 조금씩 단축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는 하지만 새로이 대두된 문제는 지구력이다.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산책객들을 피하느라 잠깐씩 멈춰설 때도 있음에도 30분을 넘기면 어느새 다리가 팍팍해 더 달리기가 겁이 난다. 갈 때보다 당연히 더 힘든 올 때를 위해 체력을 남겨두어야한다는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고작 한 시간의 자전거 타기로 녹초가 되는 몸을 지니고 산다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물론 첫날 느루를 끌고 나갔다가 동네망신을 당했던 때와 비교한다면 일취월장했다고 뿌듯해할 수 있지만, 하나같이 슝슝 나를 추월해가는 자전거들의 뒤꽁무니를 보며 버럭 치미는 부아와 욕심은  아직 멀었다고 나를 채근한다.
마음 한 구석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뿐이다.
다른 구석의 느긋한 마음은 나를 다독인다. 자전거 타기에 목숨걸 일 있니. 그냥 즐겁고 신나게 타면 되는 거야. 자전거 탈 때도 경쟁심을 발휘해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다른 인간들이 우스운 거란다, 라고.
그럼 또 다시 욕심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야, 그래도 운동이랍시고 타는 자전거를 겨우 1시간만에 빌빌대는 저질 체력은 좀 곤란한거 아니니?
곤란한 거 안다. 그런데 힘든 걸 어쩌라고!
^^

맛있는 커피 만들기도 비슷하다.
급기야 숭례문수입상가에 가서 수동 그라인더와 전동거품기를 장만해 본격적으로 집구석바리스타 시늉에 돌입한지 일주일째. 확실히 커피집에서 원두 살 때 아예 갈아온 커피보다는 비록 몹시 오래되어 변압기를 연결해야 하는 110V짜리 전기그라인더로 그때그때 갈아 만들어 먹는 커피가 맛있고, 그보다는 수동 그라인더로 브리카 포트에 맞는 입자로 갈아서 추출한 커피가 크레마와 향도 풍부하여 훨씬 맛있다.
당연히 유난떨며 만들어 마시는 커피의 종류 늘어났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이스아메리카노. 아이스카페라떼. *_*
기구들이 손에 익어 이젠 꽤 그럴싸한 맛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새로운 메뉴를 시도할 때마다 꺅꺅 감동하며 자화자찬을 하게 되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못말린다 정말).
별다방 콩다방 커피 못지 않다고 추켜세우는 분위기에 편승한 나는 급기야 날이 좀 더 더워지면 얼음과 함께 갈아서 프라프치노를 만들어볼까 하는 터무니없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으며, 아직은 계피가루가 없다는 핑계로 시도를 안 한 카푸치노는 조만간 성공을 거둘 것이라 확신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역시 지구력과 집착.
통틀어 30분이면 족한 준비과정이긴 하지만 매번 원두를 갈고 그라인더와 주전자, 거품기, 우유그릇 (프라프치노를 만들게 되면 믹서까지!) 를 씻어 치우는 일은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겐 꽤나 번거로운 과정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그라인더를 매번 물로 닦기도 그렇고 안닦기도 그러니 대안은 또 다른 도구를 사들이는 것이라 여기며 커피 그라인더 청소 전용 '솔'을 사야한다는 충동을 요즘 계속 느끼고 있으며, 카푸치노에 넣을 우유거품을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는 전용 비이커도 사야할 것만 같은 느낌.
계속 이 추세로 나가다간 커피 아트 독학하겠다고 온갖 도구를 사들일지도 모르겠다. -_-;;
그리고 그렇게 죄다 사들인 다음엔 또 금세 집착과 번거로움이 넌덜머리나 확 집어치울지도.

확실히 연습과 발전은 삶의 재미인데, 내 경우는 쓸데없이 집착하는 욕심과 앞서 염려하는 조바심이 흥을 망친다. 무슨 일이든 그냥 신나고 행복하면 그만인데 그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늘 참 어렵기만 하다.
암튼 이렇게라도 적어두면 욕심과 집착에 브레이크가 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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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사랑을 타고

놀잇감 2008. 7. 22. 20:58
젊은이들은 옛날 영화 <비는 사랑을 타고(Singing in the Rain)>는 모르는 대신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더 잘 알겠지만, 노래도 그렇고 빗속을 걸어가며 발로 물장구를 치다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는 영화 속 장면은 요새도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표절인지 알 수 없는 명목으로 비슷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어린 시절에 본 그 영화와 장면들이 깊이 각인된 때문인지
장마철만 되면 나도 그렇게 빗속을 신나게 쏘다니고 싶은 충동이 되살아난다.
더불어 예쁜 장화와 우산에 대한 로망도. -_-;

내가 어린 시절엔 겨울 부츠와 함께 장화도 부잣집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거나, 엄마들이 꽤나 별러야 사줄 수 있는 고가의 물건이었던 것 같다.
물론 본인들은 신발주머니에 잘 들어가지 않는 장화를 신고 학교에 오는 게 매우 싫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예쁜 비옷(비닐 거적대기를 둘러쓴 것 같은 내 비옷과는 차원이 다른;;)과 장화와 예쁜 우산을 세트로 들고 온 친구를 내심 몹시 부러워했었다.
나중에 나도 사촌언니가 물려준 장화를 신어볼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발이 젖지 않는다는 기능에만 충실할 뿐 조금도 예쁘지 않은 그 장화는 오히려 신고 다니기가 창피스러웠다.

어른이 된 뒤에 별 필요도 없는 문방구 쇼핑에 탐닉하는 나의 버릇이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라고 인정하듯, 예쁜 장화와 우산에 대한 나의 로망 역시 어린시절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뒤늦은 욕심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여전히 내가 선뜻 <저지르지> 못하고 탐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ㅠ.ㅠ
물론 지름신에 홀라당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하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구멍은 수시로 나를 들쑤신다.
작년부터 장화를 살까말까살까말까살까말까 수십번도 더 고민했던 이유는 이를테면 이렇다.
1. 장화는 굽이 제일 높아봤자 5.5센티미터다. (간혹 6cm굽이라고 선전하는 데가 있긴 하지만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5cm에 더 가깝다!) 최소 7센티미터는 돼야 내 신발될 자격이 있는데;;
2. 겨울부츠는 종아리 굵기를 교묘하게 가려줄 디자인과 길이가 다양하지만, 레인부츠는 길어도 굵은 종아리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든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막상 사놓고도 차마 못 신고 나갈 확률이 높음.
3. 장마라고 해도 비가 잘 오지 않는 요상한 요즘 날씨 +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고 방구들 귀신에 가깝게 살고 있는 내 처지 = 과연 장화를 사서 여름에, 아니 일년에 몇번이나 신을 수 있을까? +_+
4. 3번의 이유 때문에 형편없이 활용도가 낮은 물건치고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부터 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 부츠는 가격이
무려 6만8천원. 봄부터 노리고 있는데 세일도 절대 안한다.
ㅋㅋ ^^;;
내가 물건을 살 때의 기준으론 <가격대비 만족도 및 활용도>가 가장 중요한 항목인데, 일년에 두어번 신으려고 이걸 사들인 뒤 좁아터진 신발장에 보관만 하려니 아직은 사고픈 욕망보다 사지 말아야한다는 이성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우산은 또 다르다.
이미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붙여 사들인 우산이 몇개나 되는데도 사고 싶은 우산은 자꾸 내 레이더망에 걸려들고, 장화에 비하면 가격마저 착한 편이고 활용도도 높다. ^^
그렇다고 무턱대고 물건을 질러대는 인간은 또 아닌지라, 기다란 장우산이면서 우산모양이 깊어 비바람이 쳐도 머리가 쉬 젖지 않을 듯한 우산을 사고 싶다는 바람을 꽤 오래 간직만 하고 있었다. 까다로운 내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장우산을 만나기가 이상스레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우산의 특징상 내가 들기엔 너무 길고 크거나, 내가 바라는 만큼 폭 덮이는 깊이가 아니거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레이스 따위의 장식이 요란하거나... 암튼 그랬다.

그러다가 올 장마철이 시작되었고, 비가 오든 말든 장화와 우산에 대한 나의 로망은 연일 꿈틀꿈틀 특히 밤마다 되살아나 나는 어느틈엔가 인터넷 사이트들을 배회하고 있었다. 여전히 내 조건에 딱 맞을 정도로 마음에 100퍼센트 파고드는 우산은 없었던 반면, 괜히 눈길을 끄는 녀석은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요것. ^^
장우산이기는 하지만, 돔 형태가 내가 바라는 만큼 깊지지도 않고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비닐우산이고 수동이며 당연히 oem 중국산이다.
위시리스트에 담아두고 들여다보며 나는 계속 지름의 욕망과 티격태격했다.
"사용후기를 보니 비닐이 그리 튼튼하지도, 완전 투명하지도 않대."
"그림제목이 <girl's goods>라니! 그림이 너무 여성적이고 편협하잖아."
"사진은 그럴듯해 보여도 실물로 보면 훨씬 허섭할거야.."
"아무리 신지 가토 제품이라지만 비닐우산치고는 가격도 비싼 편 아닌가?"
.......


하지만 결국 열흘쯤 전에 난 이 우산을 사고야 말았고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 쓰고 나가려고 계속 벼르고 있었는데 아직 본격적으로는 한번도 못써봤다. -_-;;
복날 삼계탕 재료 사러나가면서 잠깐 차에 타고 내릴 때 시운전(?)을 해본 것이 전부. ㅜ.ㅜ
마른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비가 내린 지난 주말엔 변덕스럽게 비가 오락가락해서 길다란 장우산을 들고 외출하기가 번거로웠고, 거기다 태풍이 몰고온 비라 바람에 혹시 비닐이 벌어질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흠...

바짓가랑이 젖을 염려 없는 반바지에, 역시 젖어도 상관없는 고무재질의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후두두둑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I'm singing in the rain~♪> 노래 흥얼거리며 물웅덩이에서 좀 철퍽거려줘야 하는데!

사실 <비는 사랑을 타고>라는 제목으로 뭔가 글을 끼적여야겠다고 생각한 동기는 따로 있었다. ^^;
지지난주 주말엔가, 억수로 비 내리던 날 그야말로 영화같은 장면들을 연출한 이가 있었으니...


다음에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엔 나도 기필코 저 우산을 쓰고 나가 첨벙거려주리라 결심하며 주간 날씨를 열심히 살피고 있다. 다행히 이번주에 또 비온단다, 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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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서울시 교육감을 서울시민들이 직접 뽑는다는 사실에 나는 완전 금시초문이었다.
내게 귀띔을 해준 지인들도,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교육감 선거가 그나마 이명박 정부의 미친교육에 그나마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선거는 7월 30일이라는데, 하필 그땐 제주도에 있을 터라 선거를 못하겠다고 염려했더니 부재자 투표를 하면 된다며 반드시 방법을 찾아 선거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나처럼 무지했던 이들에게 널리 알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게 하라는 것이 활동가 지인들이 나에게 내린 <지령>이었다. ^^;;

그런데 아...
게으름에 일가견이 있는 나는 어제에야 비로소 부재자 투표 방법을 확인해보았고
이미 부재자 투표 신청기간이 지났음을 (15일까지였더라 ㅠ.ㅠ) 알고 황망하여 차마 어젠 글을 올릴 수도 없었다(솔직히 글을 쓰기 시작은 했는데 마무리를 못하겠더라).
대선, 총선에도 뽑을 사람이 없어 외면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과연 교육감을 뽑는 <사소한> 선거에는 얼마나 관심을 보일 것인가 회의부터 들기도 했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건지 쉬쉬하며 지들끼리 다 해먹겠다는 심보인지 교육감 선거에 대한 홍보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이 상황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헌데 아무것도 모를 땐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선거 관련 플래카드들이 오늘 부쩍 눈에 들어왔다.
최소한 학교 교문과 담벼락엔 하나씩 걸려있는 듯.
좀 전에 뒤져보니 17일인 오늘부터 본격적인 교육감 선거운동을 한단다.

우스운건 얼마전 정신나간 양반의 대표주자인 조갑제 어르신께서 교육감 후보로 나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을 콕 찝어 거론하며, 촛불집회에나 나가는 불순분자이니 절대로 교육감에 뽑아주어선 안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는 것. 그 덕분에 촛불집회엘 다녀왔거나, 이명박 정부의 미친교육에 반대하는 이들은 고민스러운 선택의 어려움을 그 양반이 해결해주었다고 기뻐하는 중이란다.

하기야, 0교시, 사교육 강화, 영어몰입교육 따위를 막으려면, 이명박의 확실한 끄나불인 공정택 전 교육감은 당연히 곤란하고, 나머지 그 밥에 그 나물인 어르신들도 제쳐두면 남는 건 진보성향의 두 사람밖에 없긴 하다.
두 분 가운데 조갑제의 공격을 받은 인물은 주경복 교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0교시 폐지, 자사고 폐지, 학생 인권조례 제정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집회의 불순세력들이 집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수 진영에선 후보 단일화(물론 공정택으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나 뭐라나.

이제 촛불은 독도 문제로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비추고 있지만 무능하고 계획성 없는 정부는 딱히 입장도 대책도 없는 것 같고
미국산 쇠고기는 은근슬쩍 어디선가 팔려나가고 있으며
(아 참, TV에서 본 미국산 쇠고기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정육점엔 왜 그렇게 늙은 아저씨들 손님만 득시글거릴까? 원래 고기 사러 가고 장보는 사람들은 주부 아닌가? +_+  100분 토론에 나왔던, 익혀 먹으면 되는 거 아니나고 반문하다 광우병에 걸리더라도 자기는 미국산 쇠고기 사먹겠다고 말했던 그 개념없는 아저씨가 대거 친구들이라도 풀었나? 생각해볼수록 의문이다.)
억울하게 금강산 관광 갔다 총에 맞아 돌아가신 아주머니 사건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북한과 대북창구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등신같은 정부와 어설픈 현대아산의 삽질 속에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기 십상이다.

세상을 쳐다보면 늘 답답했지만, 요즘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홧병이 나서 뒤로 넘어갈 것만 같다.
그저 안 보이는 척, 눈과 귀를 막고 돌아 앉아있고 싶은데 또 그럴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원...

그간 답답했던 마음은,
얼마 전 시국미사에서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고 한 사제단의 이야기로 어떻게든 보듬어보려고 했지만
어둠은 너무 짙고 넓고 깊고 광범위해서 작은 촛불로 험한 길을 헤쳐가다 해가 뜨길 바라기엔 기다림이 너무 길다.  

촛불의 갯수 만큼이나 다양한 소망과 바람과 욕심이 멋지게 하나로 집결되어 대단한 변화나 진보를 금세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다 깨지더라도 바위에 묻은 계란 찌꺼기가 조금씩 썩어들어가 바위에 금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여기다라도 뭔가 계속 깐죽거릴 작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7월 30일에 서울에 계실 분들은 모두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시라고 촉구하는 바이며
후보가 7명으로 추려지긴 했지만, 주경복 대 공정택의 싸움에서
미래 청소년들을 위한 삶과 교육의 질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주경복 교수를 찍어주시길!
청계천에서 제일 처음 촛불을 들었던 중고생들의 짧은 행복(긴 행복을 바란다면 학벌주의 사회부터 타파해야할 터이니 ㅠ.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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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유난 2

식탐보고서 2008. 7. 15. 23:46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도 마시고싶다는 욕망이야 커피 깨나 좋아한다 싶은 이들은 누구나 품는 것일 테고
나 또한 그런 이들을 커피 유난 떤다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내심으론 커피 주변기기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커피 주변기기를 파는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귀동냥도 하고 실제로 써본 이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여
내가 오래 전부터 흠모해왔던 건 바로 <비알레띠 브리카>.
에스프레소 머신처럼 크기와 가격이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생김새마저 앙증맞고 어여쁜데다 뽀얀 크레마까지 추출된다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매번 커피콩을 '적당히' 갈고 또 물과 불조절을 잘해야한다는 것인데 뭐,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라면 까짓거 그 정도 어려움쯤이야 감수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적극성이 나의 귀차니즘을 이기기까지 거의 반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

그렇다.
두둥~.
드디어 나도 모카포트의 지존이라고들 칭송하는 <비알레띠 브리카>를 갖게 된 것이다!


대강은 사용법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설명서를 다시 꼼꼼히 숙독한 뒤, 그래도 못 미더워 매 단계마다 설명서를 손에 들고 오늘 드디어 시음을 계획하였으니, 떨리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처음 포트를 사용할 때는 커피를 마실 생각 말고 3회 반복해서 추출해 버린 뒤에 본격적으로 추출해서 마시라고 되어 있는데, 볶은지 열흘밖에 되지 않은 '귀한' 원두커피를 시험삼아 써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커피로 테스트를 해본 뒤에 본격적으로 마실 것만 좋은 원두로 할 것인가 판단도 서질 않았다.
지인의 조언에 따르면 모카포트에 넣을 커피의 굵기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차피 몇번 시행착오를 거쳐야한다고 했는데, 매번 다른 원두콩을 갈아서 과연 내가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처음 두번 포트를 청소하는 의미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냉동실에 오래 보관해두었던 원두콩으로,
세번째 청소용과 실제 시음용은 최근에 선물받은 원두콩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실험에 돌입.
아.. 역시 바리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원래 처음 테스트용으로 3번 추출해서 버릴 때는 물과 커피의 양을 평소의 3/4으로 하라고 설명서에 되어 있는데 세번째 테스트 때 욕심을 부려서 그만 계량컵에 표시된 눈금만큼 물을 다 넣었더니, 압력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자마자 폭발하듯 저 작은 주전자 주둥이에서 커피가 튀어 벽에 커피 얼룩을 만들고야 말았다.
게다가 압력추 소리가 나면 재빨리 가스불에서 내려야 뽀얗게 생성된 크레마가  죽지 않는다는데....
으휴, 불을 끄는 순간과 가스불에서 포트를 내리는 순간이 달라짐에 따라 크레마의 양도 매번 차이가 생겼다. ㅠ.ㅠ

그뿐이랴, 커피원두의 입자가 과연 최적의 상태인지, 커피원두의 양은 적절한지 어쩐지도 알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최상의 맛인지 그것도 아직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
온 집안에 은은하고 그윽한 커피향이 감돌기는 했지만, 내가 추출한 에스프레소로 탄 아이스커피는 생각만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고 최소한 일주일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알량하나마 바리스타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오후 내내 낑낑대며 커피를 추출해보니, 카페에서 사 마시는 맛있는 커피는 리필까지 해주는 경우를 감안할 때 그리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_+

째뜬, 이렇게 해서 드디어 나도 커피 유난 떠는 부류에 합류하였음을 고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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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삶꾸러미 2008. 7. 8. 18:36
인생 뭐 별 거 있어!?
맞다. 별 거 없다.
사소한 것으로 기쁘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연이틀 발가락에 물집 생기도록 놀러다니며 그간 못했던 것들 하고 있는데
세상이 다시 만만하고 아름답고 그럴싸해 보인다.

아직 치렁치렁 9개월째 방치하고 있는 머리는 어쩌지 못했지만
하늘하늘 쉬폰 원피스에 꽃단장까지 하고 반가운 이를 만나러 나가는 외출은 준비부터 즐거웠다.
늘 그렇듯 약속시간보다 조금씩 늦는 지인들을 기다리며 백화점을 휘휘 돌아보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프레첼을 썩썩 잘라 한 봉지 들고 씹으며 시간을 죽이면서도 나는 티파니 앞에서 쇼윈도를 들여다보던 오드리 햅번이 안부러울 정도였다.

반가운 친구, 내가 만들지 않은 맛있는 음식, 수다, 예쁜 찻집, 맛있는 커피, 달콤한 쿠키, 올 여름 처음 맛본 빙수, 뜻밖의 선물, 식탐, 여행계획, 또 수다, 수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행복해 하다 들어왔더니, 거의 두달 동안 찌들고 구겨졌던 몸과 마음이 이틀만에 단박에 회복되었음을 느낀다. 음, 아직 펴지지 않은 구석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계속 놀다보면 차츰 그 구석도 감쪽같이 다림질이 되지 않겠나. 그럼 또 한참, 인생 뭐 별 거 없다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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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그 방

삶꾸러미 2008. 5. 5. 00:09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인 5월이 시작되었지만, 가정의달이기도 하기 때문에 계속 슬픔이 따라다니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버이날 선물을 뭘로 할지 두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비용도 절반으로 줄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다 살아계실 때 어버이날 부담이 네 배, 다섯 배였어도 오히려 좋았던 것처럼 상실과 부재의 크기는 현실적인 편리함과 결코 비교할 수가 없다.

5월의 첫 포스팅은 뭔가 행복한 것으로 하고 싶었는데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가도 생각나는 쓸 거리는 죄다 우울한 푸념이나 울분의 토로밖에 안될 것 같아 며칠 전 볕 좋은 날 잠깐 작업실에 나간 김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만의 방 모습을 블로그에도 담아두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내 살림과 남의 살림을 주제로 달랑 두 장 찍어와서 올리려고 지금 보니 사방을 다 찍어올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음에 가면 입구쪽이랑 그저 새하얗기만 한 붙박이 장쪽도 찍어와야지. =_=

유복한 어느 선배가 분양받은 오피스텔처럼 한쪽 벽면에 질좋은 나무로 책장을 짜넣어 책을 빼곡히 꽂아넣지도 못했고, 호수나 강이 내다보이기는커녕 창밖 경치는 빨간 벽돌로 지은 다른 건물이 전부이며, 화분은 10개쯤 죽여 내보냈고 남은 화분도 누렇게 마른 잎들이 불쌍하게 매달려 있으며, 완전히 내 소유도 아니라 처음엔 못을 박고 액자를 걸어도 될까 소심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작업실에 나가 앉아 있으면 단출한 살림살이 속에서 비로소 세상과 마음껏 단절될 수 있다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4년전 작업실을 마련했을 때 나만큼이나 좋아했던 지인들은 아직도 <작업실로 한 번 놀러갈게>라고 벼르다 서울 귀퉁이에 있는 나만의 방에 찾아와 차 한잔 마시는 게 마치 남들 모르는 예쁜 카페 하나 찾아 놓았다가 아주 가끔 가보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골목 구석의 인적 드문 카페가 영 장사가 안되는 바람에 문을 닫는다고 하면 몹시 섭섭한 마음이 들듯, 내가 작업실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걸 알고 그들도 덩달아 마음이 씁쓸하다나.
나만의 방과 유럽여행을 바꿀 것인가의 결정은 우유부단한 마음속에서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중이고, 만날 적자만 내면서도 어거지로 손님 없는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처럼 나도 씁쓸한 웃음 지으며 4월분 관리비 청구서를 집어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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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림>을 주제로 찍은 사진인데 창문 옆에 붙어 있는 건 비상시에 몸에 묶고 뛰어내리라는 밧줄이 들어 있는 하얀 플라스팅 상자이므로 유일하게 내 살림이 아니다. 그래도 뚜껑에 샤갈전 팸플릿을 붙이고 위에 밤의 카페 테라스 액자를 올려둔 건 내 소행임.
오후 햇살이 저렇게 비쳐드는 걸 보면 서향이란 얘기다. 누렇게 잎이 말라 몰골이 형편없긴 하지만 화분에 햇살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블라인드는 늘 걷어놓고 다닌다. 소파가 햇빛에 허옇게 바라든 말든...
2년 전엔가 출판사 부탁으로 dmb방송에 나가는 책소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번역하는 사람의 작업실이라니까 책꽂이 앞에서 촬영하면 되겠다고 자기네 마음대로 생각했던 담당 pd가 와서 보고는 작업하던 책 말고는 다른 책이 한 권도 안보이는 작업실 몰골에 살짝 난감해 했다. ;-p
몇권 안되는 책들은 그나마도 붙박이 옷장에 숨어 있는데, 수십년 가까이 짐으로 빼곡한 옛날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이 공간에 별로 짐이 없다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그렇지만 제버릇 못버리고 책상위는 늘 어지럽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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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건물주인이 원래 장만해놓은 <남의 살림>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렇지만 전자렌지와 설거지 건조대, 커피메이커, 의자는 당연히 내 살림. 4년 넘게 저 주방에서 해먹은 요리는 라면이 유일하고 드럼 세탁기는 딱 한 번 써봤다. *_*
게을러서 컵을 있는대로 다 꺼내놓고 쓰다가 더는 쓸 컵이 없어지면 설거지를 하는 편이라 매일 출근할 때는 싱크대가 늘 만원이었는데... 간만에 나가 컵들이 건조대에 쌓여 있는 걸 보니 어째 버려진 자식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걔네들은 더러워진 채 개수대에 켜켜로 쌓여 있을 때 버려진 느낌일 텐데)

또 언제 나가게 될지 몰라 갈 때마다 화분에 물을 잔뜩 주고 오는데, 주인 잘못 만난 화분들한테 노상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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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나쁘고 기록해두는 습관도 없어서 체계적으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엔 워낙 젬병이지만 일하기 싫다는 핑계로 덩달아 찾아보기로 했다. 씨네21이 창간되었다는 1995년은 내 인생에서도 분기점을 이루는 해다. 어설프지만 번역가로 첫발을 디딘 해이기 때문.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많이 하여 얄팍하게나마 견문을 넓히려고 생각했으므로 영화도 꽤 자주 본 것 같은데, 내 머리는 13년의 세월을 갈무리해두기엔 용량이 너무 작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게 확실하다. -_-;;
언뜻 떠오른 <시네마 천국> <가위손> <조이럭 클럽> <길버트 그레이프> <파니핑크> 같은 영화들은 검색해보니 그보다도 훨씬 이전에 본 영화였다. 제목은 그럴듯하게 <최고의 영화>라고 붙였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내 기억에 남았으니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이다. 영화가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던 때의 에피소드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서 중고 비디오를 사 소장하거나 나중에 dvd로 갖고 있기도 한 영화가 꽤 되는 걸 보면 퍽 좋아한 영화들이라는 게 맞다. 리스트를 뽑고 나서 나도 조금 놀랐는데 ㅎㅎㅎ 하나같이 말랑말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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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삶꾸러미 2008. 4. 5. 22:51

벨로를 시초로 블로그 이웃분들의 연이은 <자신감> 포스팅을 보면서
약간은 자아비판 비슷한 고백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겠지만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간 바쁘기도 했지만 자꾸 뜸을 들이게 됐던건
과연 내 인생에서 자신감 100개인 시절이 있었던가, 아닌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아
그냥 내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시기를 정점이자 100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우유부단한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즈키님이나 키드님처럼 살아오는 동안 자신감이 100개로 온전히 채워진 적은 없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가장 자신만만하고 심지어 오만불손하기까지 했던 시기를 억지로라도
100개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나를 믿는 마음>인 자신감이 앞으로 더더욱 고개를 숙이거나 고작해야 수평선을 유지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게다.
그러므로 <자신감 백개>라는 말을 처음 뱉은 11살 이쟁그만 양이나 벨로의 <자신감 백개>와 비교한다면 나의 자신감 백개의 수준은 최소한 다섯개쯤 부족한 기준의 정점임을 미리 털어놓고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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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거

놀잇감 2008. 3. 23. 22:40
1년 넘게 별렀던 <내> 자전거가 드디어 생겼다. ^^
어제부터 만 하루 넘게 세워두고 구경만 하고 있는데(조립직후 차에 실어 오기 전에 약 15미터쯤 시승하긴 했다) 쳐다볼 때마다 정말로 얼굴에 미소가 벌벌 흐른다.

루이가노와 스트라이다, 다혼의 미니벨로들까지 모두 판매하는 멀지 않은 매장을 막내동생이 알려준지 몇달만에 벼르고 별러서 어제 전격 쇼핑에 나섰고, 매장에서도 1시간 가까이 고민하다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내가 선택한 건 하얀색 우베공.

벨로가 추천해준 미니벨로 가운데서 나름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루이가노, 우베공, 커브, 보드워크, 비테세> 가운데 매장에 가면 텔레파시가 통하듯 나의 단짝이 되어줄 자전거가 빛을 뿜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의 우유부단함은 자전거를 살 때도 여지없이 걸림돌이 되었다.
하얀 우베공과 베이지색  보드워크 사이에서 좀처럼 선뜻 고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일단 커브와 비테세는 몸판을 가로지르는 가로대가 옆에서 보면 넙적하여 내가 추구하는
가늘가늘하고 날렵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일찌감치 물망에서 제외되었고
루이가노 역시 매장엔 너무 비싼 모델만 있기도 했지만 핸들을 잡아보니 어쩐지 약간 무시무시한 느낌이랄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색깔도 진밤색과 검정색 뿐 -_-;;)

하늘색 우베공은 이미 벨로가 장만하였음을 알고 있기에 똑같은 걸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차피  하늘색은 수입할 때 작은 사이즈가 아예 들어오질 않았대고, 작은 사이즈로 물건이 있는 건 흰색, 분홍, 빨강 뿐 베이지색과 검정 따위도 아예 작은 크기는 이번에 수입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저기 팽배된 색깔의 성별화에 또 한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보드워크는 크기가 하나이고 은은한 베이지색이 마음에 들었으나 핸들 세로축이 전체적으로 은색이라는 점과 프레임에 새겨진 로고가 우베공보다 예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
ㅎㅎ 나 같은 자전거인생 초보에게 성능 따위는 얼추 비슷하다 여겨졌으니 일단 사양 비교는 뒷전이고 예쁜 게 더 중요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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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선택의 고민을 준 문제의 보드워크와 우베공)

조카들까지 거느리고 가서 매장 사장님과 사모님을 오랜 시간 고문하듯 창고와 매장을 오간 끝에
결국 베이지색 보드워크를 살 것 같다는 사장님의 추측과 달리 나는 구름빛깔의 우베공을 골랐고
(다혼에서 베이지색은 sand, 흰색은 cloud라고 표현하는데 구름빛깔이라니 흰색보다 얼마나 멋진가!)
후련한 마음으로 박스를 뜯어 조립을 기다렸다.

고르기만 하면 금세 끝날 줄 알았던 자전거 구입은 그 뒤로도 꽤나 시간이 걸려, 지켜보는 우리는 계속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조립을 마치고도 내 키와 뒷굽이 높은 운동화에 맞춰 -_-;; 안장 높이를 정하고, 팔자 걸음을 걷는 터라 페달도 똑바로 제대로 못 밟는 나의 자세를 교정하기 위한 잠깐의 교육을 받으며 나는 진땀을 약간 흘렸다. ㅋㅋ

매장을 나와 잠깐 골목길에서 새 자전거를 타보았는데, 워낙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어찌나 페달이 휙휙 잘 돌아가고 금세 속도가 나는지 약간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나 일단은 차에 고이 모셔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선
바퀴에 묻은 흙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에 세워둔채 계속 감상중이다.

오늘 하필 비가 오지 않았다면 당장 홍제천변으로 달려갔겠지만
며칠 또 이렇게 뜸들이며 감상만 하는 묘미도 괜찮을 것 같다. ㅎㅎㅎ

참... 이름도 정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자전거를 사면 꼭 한글 이름을 붙이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정해둔 이름은 없었는데
어제 오늘 이리저리 찾아보고 고심한 끝에 <느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느루>는 "한꺼번에 몰아치지 아니하고 오래도록"이라는 뜻을 지닌 부사로
"하루라도 느루 쓰는 것이 옳고..."와 같이 쓰인단다.
다들 빠르게 살지만 나 혼자 느릿느릿 살아도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 워낙 게으른 내 성향과도 잘 맞는데다
늘 일을 몰아쳐서 해치우는 그릇된 작업 습관을 반성도 할 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누룽지'랑도 어감이 비슷해 이래저래 마음에 든다.
우베공이 어떤 이들에겐 속도계가 필요할 만큼 제법 빠른 자전거라지만 매연 뿜는 자동차에 비길까.
지금 같아선 나는 그냥 휘휘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만끽할 정도로만 달릴 생각에 그저 흐뭇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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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다

삶꾸러미 2008. 3. 11. 20:00
3월 1일에 꽃다발을 살 일이 있었다.
정민공주의 뮤지컬 공연을 보러가야 하던 터라, 부탁 받은 것까지 꽃다발을 2개나 사러 다녔는데
제 아무리 졸업, 입학 시즌이라고는 해도 엄청난 꽃값 때문에 거의 나는 기절할 뻔했다.

분홍 장미와 낯선 분홍 프리지아에 다른 꽃 약간과 안개꽃을 섞어놓은 꽃다발이 무려 3만원.
겨울에 흔한 노란 프리지아 약간에 안개꽃을 둘러놓은 꽃다발도 역시나 3만원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 프리지아라고 하면 한다발에 기껏해야 3천원에서 5천원쯤으로 꽃호사를 누릴 수 있는 소박한 꽃이었는데 기가 막혔다.
그나마도 꽃의 갯수가 현저히 떨어져 히마리가 없어보이는 꽃다발은 깎고 깎아서 2만원.

내가 꽃다발을 2개 사야하니 좀 깎아보려고 흥정을 붙이자
꽃집 주인은 꽃에도 A, B, C 급이 나뉜다면서 나를 물정도 모르는 무식쟁이 취급을 하며
아예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_-;;
꽃집에서도 냉장고 안에 고이 간직하고 파는 대가 굵고 길고 튼튼한 꽃들과 입구 양동이에 아무렇게나 담가놓고 팔거나, 심지어 리어카에서 물에 담그지도 않은 채 옆으로 뉘어놓고 파는 꽃들의 질과 값이 다른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꽃집 주인은 극구 최고급 A급 꽃으로 만든 것이라 장담했지만 그리 크지도 않은 꽃다발 속의 장미는
분명 대가 가늘가늘하고 송이도 작아, 아무리 잘 봐줘도 B급 정도밖엔 되지 않는 듯했다.
남대문이나 양재 꽃시장엘 다녀왔다면 같은 값에 엄청나게 탐스럽고 호화로운 꽃다발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도 얼마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비싼 꽃다발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꽃집 주인 얘기로는 꽃값이 엄청나게 비싸진 이유가 비싼 기름값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비닐 하우스 난방을 해서 꽃을 재배해야 하는데 수지가 맞질 않아 많은 이들이 꽃 재배를 포기했고
그래서 품귀 현상이 벌어져 꽃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
게다가 꽃다발을 만든 플로리스트의 인건비가 있는데 꽃값만 따져서 꽃다발을 사려는 나의 얄팍한 생각을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꽃다발의 과잉 장식도 싫고 주렁주렁 달린 리본이며 너덜거리는 포장도 싫은 사람인 걸 어쩌랴.
게다가 플로리스트의 감각과 재치가 돋보이는 색다른 꽃다발이었으면 또 모를까(요새 여러 종류의 꽃들을 교묘하게 섞어 화려하고 상큼한 느낌을 주는 꽃의 배열이 유행이며, 그렇게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꽃들을 선택해 적절히 어울리게 하는 꽃꽂이가 전적으로 플로리스트의 역량에 달렸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저 평범한 수준의 꽃다발이었기에(물론 졸업시즌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무도 추악하게 꽃을 '싸서' 파는 꽃다발의 수준은 아니었다) 내 불만은 쉽사리 잠재우기 어려웠다.

째뜬 그렇게 꽃값 비싸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귀 아프게 듣고 꽃다발을 샀던 터라
봄도 왔으니 집에 프리지아나 튤립 한 다발 꽃아야겠다는 생각은 쏙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런데!
어제 혜화동에 갈 일이 있어 나가보니, 전철역 안 간이 꽃집에서 아 글쎄 프리지아를 한 다발에 무려 <천원>에 팔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한 다발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가느다란 줄기 10개를 묶은 것이긴 했지만
천원짜리 두 묶음이면 열흘도 되기 전에 내가 샀던 프리지아 꽃다발에 버금갈 정도의 양이었다!
열흘도 되기 전에 꽃값이 열배 이상 차이가 나다니 이 무슨 조화일까... -_-;
입학시즌이 끝나버려서 갑자기 꽃값이 내렸다고 해도
그간 비닐하우스에서 기름 때가며 재배한 원가가 있다면 그토록 엄청난 값의 폭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경제 개념이나 시장 원리에 대해선 일자무식이긴 해도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결론은 3월 1일에 내가 그냥 바가지를 썼다고 간단히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날 일산에서 꽃다발을 샀던 막내네도 3만원짜리 꽃다발 값에 기막혀 했기 때문에 나만 멍청히 바가지를 썼다는 추론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실 꽃값이 제일 싼 오뉴월에도 유독 꽃이 싱싱하고 예쁜 꽃집에 가보면
유리로 된 냉장 진열장 안에 우아하게 꽂혀 한 송이에 3천원짜리 장미가 있는가 하면,
길거리 리어카에서 한 다발에 3천원 하는 장미도 있으니 꽃값의 실체 따위를 파악하는 것은 내게
꿈도 못 꿀 일이다.
다만 도매가와 소매가의 차이가 있고, 유통과정의 정성에 따라 싱싱한 꽃과 금세 시들 꽃의 차이가 있고
원가가 비싼 꽃과 원가가 싼 꽃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어쨌든 꽃이 내게 주는 기쁨은 같다. ^^;;
소박한 값으로 꽃을 장만할 수 있었다면 더욱 뿌듯하긴 하지만, 꽃을 꽂은 순간 그게 얼마짜리였는지
포장이 얼마나 거대하고 촌스러웠는지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곧 잊혀진다.
3천원의 행복인지, 5천원의 행복인지 따지는 꽃자랑은 사실 블로그나 미니홈피 같은데 기록하기 위함일
뿐이고, 그저 간만에 꽃을 꽂아놓고 감상하는 소박한 사치를 누린다는 것만으로 족한 듯하다.

아줌마가 주섬주섬 셀로판지에 담아주는대로 흔쾌히 사들고 온 노란 프리지아는 확실히
내가 악착같이 깎으려고 했던 열흘 전의 꽃다발보다 세배 쯤 풍성하고 훨씬 싱싱하다.
비록 C급 꽃이라 해도 한 일주일 내 눈과 코는 행복한 호사를 누릴 터이니 그저 흐뭇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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