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07.05.12 자전거 문답 8
  2. 2007.05.03 어린이날 5
  3. 2007.04.20 만년필 10
  4. 2007.04.11 오랜만에 혼자 10
  5. 2007.03.19 드디어 바나나빵을 만나다! 24
  6. 2007.02.21 숫기 5
  7. 2007.02.15 흑백 사진의 추억 7
  8. 2007.01.14 스트레스 해소법 3
  9. 2007.01.06 밤참은 나의 힘 7
  10. 2006.12.28 취향 문답? 3

자전거 문답

놀잇감 2007. 5. 12. 17:11
자전거타고 싶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상상으로라도 자전거 문답을 해보라고 지다님이 권하셨고
신이 나서 냉큼 바톤을 받았다. ㅎㅎ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건 꽤 됐다.
알량하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옆을 슝슝 지나치는 인라인 스케이터들이 부러웠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장만하고나서 달리다 멈추는 문제 때문에 겁을 집어먹게 되면서는
안정감 있게 자전거 타는 이들이 부러웠으니까...
그리고는 벨로의 자전거 예찬과 미니벨로 소개 포스팅이 이어졌고
토룡왕국 식구들의 자전거 찬양 분위기에 휩쓸려 욕망은 더욱 커져갔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오래된 다가구주택에 살고 있는 데다
작업실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몹시 위험천만하기 때문에  
아직도 자전거를 장만하면 어떻게 이용하게 될 것인지 자신이 없지만
집앞에 난 홍제천변 산책로를 위로삼아
올 생일선물 목록 1위는 어쨌든 미니벨로다. ^^*
그러니 상상으로라도 자전거 문답을 해보는 것이 그리 '미친짓'만은 아니라 여기련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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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하나마나 푸념 2007. 5. 3. 00:23
어린이날 선물을 사느라 오밤중까지 북적북적 선물코너가 요란한
O마트에 다녀오면서
요새 어린이는 예전보다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린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린이날 전날이 되면(어린이날은 휴일이니까)
수업도 거의 안하고 대강 노래나 부르면서(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이딴 노래)
놀다가 가끔씩 나타나는 엄마들이 들고 오는 과자며 사탕, 아이스크림 같은 걸 받는 게
큰 선물이었다.

그러니깐 몇몇 엄마들이 반 아이들 머릿수대로 '자야'(라면과자), '왔다바'(쵸코바였던듯), '줄줄이 사탕'  같은 걸 사갖고 와선 교실에서 나눠주었는데;;
언젠가 울 엄마도 친구 엄마랑 둘이 함께 '쮸쮸바'를 반친구들에게 돌려서 내가 기분이 아주 으쓱했던 것 같다.

그날 집에 갈 때 가방엔 남은 과자봉지와 사탕 따위가 들어 있어서
착한 누나답게 동생들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으로 기억함.

그런데 초등학생 조카를 보니, 어린이날이 되면 엄마들이 아예 돈을 많이씩 걷어서
전체 반 아이들에게 시계나 보조가방 같은 걸 사준다고 했다.
서로 고르겠다고 난리치면 안되니깐, 여자애들 남자애들로 무조건 나눠서 다들 똑같은 걸로..
그런데 그게 모든 엄마들이 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 큰 아줌마들이 전화를 돌려서 무조건 내라고 하는 액수만큼 내야한다고 했다. -_-;; 무서운 아줌마들..

내가 그 얘길 하며 마구 분개했더니만
어제 만난 후배네 조카 학교는 한술 더 떠서
엄마들이 아예 단독으로 반아이들 선물을 30-40개씩(그나마 인원수가 적어 다행이겠다) 다 맞춰서 선물해야 한단다.
후배의 동생은 그래서 우산을 30개 맞췄고
다른 엄마는 줄넘기를 30개 사기로 하는 식으로...
켁..
그럼 어린이날 선물을 30종류나 받게 되는 거냐고 물으니, 모든 엄마들이 선물을 마련하는 건 아니니까 30종류는 아닐 거란다.
거기다 또 선생님 선물비는 따로 내야 한다고... +_+

아...
요즘 출산율 낮아지고 교육비 무서워서 도저히 애들 못 키운다며
아이들 많이 낳는 게 부의 상징이라고 빈정거리는 건 정말 진실이겠더라.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철철이 선물값도 엄청나고, 이런저런 파티도 해줘야 한대고
(울 올케도 정민공주 1학년 생일 때 전체 반아이들 다 초청하고 엄마들까지 떼거리로 몰려와 생일잔치 치르는 바람에 병났는데, 1학년때만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해서 참았더니 요즘도 계속 그렇게 하는 엄마들이 많은데다, 심지어 요샌 생일 당사자가 초대된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돌리는 '풍습'까지 생겨 더 골치라고 했다. 어휴.. 엄마들까지 아이들 생일잔치에 따라가는 건 순전히 탐사용이고--가정형편이나 교육열의 따위가 자기 애와 어울려 놀아도 되나 안되나 검사한단다--학습지나 학원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라는 얘길 듣고 보니, 나는 올케에게 그냥 확 '개무시'하라고 조언해줬다. 아.. 또 화난다)
애가 학교에서 좀 뒤떨어지면 선생한테 확실하게 '약'을 써줘야 한다나 뭐라나.
게다가 가끔씩 교장선생이 엄마들 단체로 불러다 놓고 반반마다 에어컨을 바꾸라거나
TV를 대형 벽걸이형으로 바꾸라거나 요구를 하기도 한단다.
세상이 완전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직업은 몰라도 교직만은 인간의 자질을 제대로 보고 뽑았으면 정말로 좋겠는데
교육꼬라지는 나날이 우습게 돌아가고
애들 가르치는 건 순전히 엄마들과 사교육의 힘에 맡기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쩌면 좋을꼬.

아동 심리치료를 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애들은 그저 뛰어놀며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또 해결하고 협상하고 그래야한다는데
방과후 초등학교 앞에 주욱~~ 늘어선 노란색 학원차와 엄마들 자가용을 보면
자폐아가 폭주하고, 여러가지 사회적응 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가 다 있다.

그나마 울 정민공주는 학원따위 안다니니깐 공부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을 줄 알았는데
아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한테 '인생게임'이란 보드게임을 (물론 본인이 원한 거다) 선물
받고는, 재미있게 놀라는 내 말에
'내 인생은 엄마한테 혼나는 것밖에 없으니 그거라도 갖고 놀아야 한다'고 말해 충격을 안겨줬다. 헐... *_*
겨우 10살짜리 입에서 '인생'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놀라운데, 하물며 저런 말을 하다니;;;

어린이날 기념으로 거금 들여 선물을 사주고도 고모의 마음이 아주 씁쓸했다.
나의 어린시절은 그저 행복하게 뛰어놀던 추억밖에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정민공주도 다 커서 뒤돌아보면 그렇게 행복한 추억으로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몹시 염려스럽다.

세상이 어쩌려고 이렇게 돌아가는지 원...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날 단 하루만 어린이가 행복해지라는 건 아닐 터인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로 어린이날 단 하루만 어린이 대접을 받고 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린이다운 건 수십만원짜리 선물이나 어린이날 특별공연이나 놀이공원 소풍이
없어도 그저 신나고 행복한 건데 참...

(머리를 쥐어짜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계속 말줄임표로 말이 끝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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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추억주머니 2007. 4. 20. 20:41
얼마 전까지도 나는 만년필을 쓰는 사람이 더는 없는 줄 알았다.
극히 일부의 마니아들만 고가의 만년필을 소장하고 사용하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예전에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것이 만년필과 시계였듯, 요즘도 만년필이 꽤 훌륭한 입학이나 입사 선물이라고 했다.
그것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금장식' 만년필 같은 것이...-_-;;;
((음.. 부자에 대한 괜한 비호감과 적대감이 있는 못난 이 성격하고는;; ))
그런데 또 주변에 물어보니, 꼬박꼬박 다이어리를 쓰고 수첩을 정리하는 지인들 가운데는
만년필을 쓰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기도 했다.
((아.. 부끄러운 나의 편견과 근시안;; ))

아무려나, 과거의 나는 만년필로 쓰는 글씨를 참 좋아했다.
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넣고(카트리지형은 나중에나 보급됐다!)
가끔 잉크가 쏟아져 손이나 공책을 버리기도 하면서, 사각사각 써지는 글씨의 촉감이 어찌나 좋은지, 편지를 쓰거나 중요한 걸 적을 땐(좋아하는 선생님 과목의 필기라든지;;)  꼭 만년필을 집어들었고, 길이 아주 잘 들은 파카 45와 21 만년필 두개는
오래도록 나의 사랑을 받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영어를 배우고, '펜맨십'이라는 영어 공책에다
심지어 펜촉에 잉크를 찍어가며 인쇄체, 필기체 대소문자를 연습했던 까마득한 옛날이었던
지라, 만년필은 더더욱 소중한 애장품일 수밖에 없었는데
오래된 연필꽂이에 분명히 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만년필은 카트리지형으로 개조를 한 뒤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도 내가 손으로 뭔가를 끼적이고 (하다못해 다이어리라도) 기록하는 걸 그만두게
되면서 만년필에 대한 애착도 덩달아 사라져 신경도 쓰지 않게 된 듯하고,
그와 더불어 명필은 아니라도 "연애편지는 꽤 썼겠군"하는 평가를 받았던 동글동글 깔끔한 글씨체도 흐트러져 이젠 간혹 계약서를 써야 할 때에도 내 글씨가 부끄러울 정도로 악필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올케가 만년필을 하나 선물했다.
번역계약 같은 거 하러 가서 근사하게 만년필로 꺼내서 서명하는 모습이 멋져보일 거라면서^^ (역시 폼생폼사에 또 내가 좀 약하다)
문제는 파는 데가 흔하지 않은 제품이라 잉크 카트리지를 사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물론 나의 귀차니즘이 가장 큰 이유지만;;)인데,
오늘 내가 만년필 관련 포스팅을 하는 걸로 보아 벌써 다들 눈치 챘겠지만
드디어 "맞는" 잉크 카트리지를 장만했다!

두어달 전에 잠실 롯데까지 부러 찾아가서 사온 카트리지는 기막히게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ㅠ.ㅠ
오래 안 써서 일단 따뜻한 물에 펜촉을 다 헹궈낸 다음에 쓰라기에 무턱대고 집에 가져왔다가
시도해보고는, 내가 바보처럼 못 끼우는 건줄 알았더니만 파는 놈이 잘 못 내준 것이었더군.

암튼... 오늘 철철 비맞고 시내 나간 김에
몇달 째 들고만 다니던 만년필을 반드시 써보겠다는 욕심으로 카트리지 장만에 성공을 거둔 것.

집에 와서 종이에 자꾸 낙서를 해보고 있는데...
꽤 굵게 사각사각 적히는 필기감이 아주 그만이다. (이상하게 나는 볼펜도 굵은 게 좋다. 아무래도 날아가게 갈겨쓰는 글씨에 좀 더 품위를 실어주기 때문인듯...)
졸필도 약간은 근사해보일 만큼 ^^;;

만년필로 간만에 어디론가 편지라도 써야할 것 같은데;; 그럴 자신은 없고
하다못해 수첩에 메모라도 해야겠다.

블로그에 주절주절 끼적이는 것도 나름 행복하지만
가끔 이렇게 아날로그 감수성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주는 행복감이 참 푸근하다.
나는 어쩔수 없이 아날로그 세대인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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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혼자

삶꾸러미 2007. 4. 11. 23:57

오랜만에 혼자 한 게 두 가지나 되는 날이었다.
그 하나는 <음식점에 가서 혼자 식사하기> ^^;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은 흔하지만, 작업실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배달되는 밥을 시켜먹거나
하는 일 말고 부러 나가서 음식점을 찾아가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은 그리 잦지 않다.
혼자서 영화보기는 종종 해온 일인데, 그땐 먼저 끼니를 해결하고 가거나
밖에서 먹더라도 패스트푸드 점에서 후다닥 햄버거 따위를 먹게 되기 일쑤다.
그나마 패스트푸드 점엔 혼자 먹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 마련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패스트'푸드이니 빠르게 먹어치우고 일어나기 쉬운 것도 큰 매력이기 때문. 패스트푸드 점도 엄연히 음식점이라 할 수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혼자 카페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음식점 홀로 식사' 범주엔 들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은 우여곡절 끝에 혼자서 여성영화제 영화를 두 편 볼 작정이었고
중간에 1시간 반 정도 틈이 생기는데다 비는 시간은 마침 저녁 끼니 시간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끼니인 저녁을 패스트푸드 따위로 대충 때울 수야 없는법 ^^;
그래서 정식으로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챙겨먹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혼자서
음식점을 찾아가 먹고 싶은 걸 사먹은 게 거의 1년만인 듯했다.
얼마 전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병원 식당에 내려가 쫓기듯 홀로 밥을 사먹은 경험은
여기서 제외다. ^^;
모름지기 제대로 사먹는 밥이란 스스로 쟁반들고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 우아하게(랄 것까지는 없지만;;) 종업원의 접대와 봉사를  누리며
밥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드라마였더라... 명세빈이 기자로 나왔던 드라마에서 문득 스테이크가 먹고싶어진
주인공은 맛있는 스테이크집엘 가서 홀로 칼질을 하는데, 그걸 이상한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명세빈은 꿋꿋하게 고기를 씹으며 ^^
혼자서도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니는 게 남들의 시선을 끌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어서 마련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드라마가 방영된 게 벌써 몇년 전이라서 그런가, 내가 간 쌀국수집엔 나 말고도 홀로 저녁을 먹는 사람이 또 있었고, '혼자세요?'라고 묻는 종업원도, '네'라고 대답하는 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남들도 전혀 관심없었고.. ㅎㅎ
간혹 이것저것 먹고싶어지는 게 많은 식탐녀로서 간혹 같이 갈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시간 맞추기 힘들어 포기하느니, 앞으로도 종종 홀로 밥사먹으러 다니기 프로젝트를 실천해봐야겠다.
물론 좋은 친구와 맛있는 거 먹으며 수다떠는 즐거움은 홀로 맛있는 거 먹으며 음미하는 즐거움에 비할 수가 없지만 말이다.


두번째 영화를 보고 꽤 늦은 시간에 밖으로 나오니 뜻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TV 뉴스도 신문도 들여다보지 않은 터라 비가 올줄은 생각도 못했으니 우산을 챙겨갔을 리 만무했는데도, 전혀 당혹스럽지 않았다.
너무 대책없이 자란 머리칼 때문에 요즘 거의 매일 질끈 하나로 묶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던 터라 간만에 비좀 맞아볼까.. 하는 생각이 곧장 들었던 것.
그러니까 오랜만에 내가 혼자 한 두번째 일은 바로, <의연하게 비 맞고 돌아다니기>였다. ^^
신문이나 팸플릿 따위로 머리를 가리지도 않고
조금이나마 비를 피해보겠다고 뛰어다니지도 않고
다른 때처럼 마지못한 듯 새로이 우산을 장만하지도 않고
그냥 보통 걸음걸이로 초연한 사람처럼 빗속을 걷는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아득했다.
꽤 굵은 빗줄기엔 아직도 약간 먼지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지만
얼룩덜룩 옷이 다 젖는데도 기분이 그럴듯했다.

첫 영화(스파이더 릴리)를 보면서는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왔고
두번째 영화(스무살이 되기까지)를 보면서는 수시로 깔깔 웃다 두어번 눈물을 닦았는데
그렇게 펄럭거린 내 감정의 기복과도 잘 어울린 비맞기 경험이었다.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여행을 가든, 영화를 보든
뭐든 뭉쳐서 떼거리로 어울려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편할 때가 차츰 많아진다.
어울림과 소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야 물론 여전하지만,  
때로 대화와 소통의 피곤함을 잊어도 되고 번잡할 필요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보배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안 그래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인간인데, 점점 자폐성향이 짙어지는 것도 같아
한편으론 슬몃 걱정도 들지만, 혼자라서 참 좋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나름대로의 행복이라 여기련다.

행복 뭐 별 거 있어? ^^;;
(나는 늘 불행과 행복 사이를 촐싹거리며 오가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행복한 마음을 오래 연장하는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좀 뜸들였다 써야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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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키드님의 BBM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바나나빵의 열풍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나의 행동반경 안에선 유일하게 바나나빵을 만나볼 수 있는 지역이
홍대앞인데 이상스럽게도 한달에도 두어 번씩은 가게 되던 그곳엘 갈일이 최근엔 참 드물었다.

더욱이 바나나빵의 존재를 알게되기 불과 열흘 전쯤에 그곳에서 100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출판사엘 다녀왔던 나의 아쉬움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는데
드디어 오늘 홍대앞에 갈 일이 있어 벼르고 벼르던 바나나빵 알현을 실천에 옮겼던 것!

물론 그 만남이 아주 쉽진 않았다.
무작정 수노래방과 약국이 있는 네거리를 향해(내 기억으론 분명 이 두 가지가 지표였는데.. 키드님의 바나나빵 관련 글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확인할 도리는 없다 ㅋㅋ)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보니, 약국 앞엔 '미니 잉어빵'과 '호떡'을 파는 좌판과 평범한 떡볶이 포장마차밖에 없었고, 수노래방을 끼고 모퉁이를 도니 거기엔 커다란 말라뮤트를 매달고 뭔가를 파는 노점상과 솜사탕 아저씨밖에 없었던 것.
순간 당황하여 바나나빵 아줌마가 자리를 옮겼나 싶어 '공주 침대 카페'까지 올라갔던 나는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10초쯤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
그러나 바나나빵에 대한 집념은 생각보다 질긴 것이어서
결국 나는 걸음을 되돌려 수노래방 앞 네 거리를 골목골목 다시 뒤지다가
원점부터 시작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주차장길을 내려갔는데...

앗!
바로 미니 잉어빵과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 바로 옆에 아주 작은 포장마차가 덧대어 있었고
좌판 앞엔 자그마한 플래카드 같은 모양으로 노란 바탕에(어쩌면 노란색 글씨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워낙 흥분상태여서 ^^;; )'바나나빵'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순간적으로 나는 또 고민에 휩싸였다.
천원에 3개인데 2천원어치를 사야 하나.. 3천원어치를 사야하나.. -_-''
식구들과 나눠먹으려면 당연히 3천원어치를 사야겠지만
혈당이 300을 향해 치닫고 계신 왕비마마에게 이런 간식은 치명타라는 것을 잘 알기에
결국 나는 '나홀로 몰래 먹고 입샥닦기' 작전을 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줌마, 바나나빵 2천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
따끈한 바나나빵 봉지를 받아든 순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미소로
얼굴은 온통 헤벌쭉.... ^__________^
곧이어 봉지 안에 손을 넣어 끝을 조금 잘라 입에 넣어보니
키드님이 말씀하신 '부드러운 바삭바삭함'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느껴졌다!

아.. 그 기쁨을 키드님이나 교주님께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들의 연락처는 알 길이 없어 꿩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벨로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푸하하하...어서 포스팅을"이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답이 이내 날아왔다.

식은 뒤엔 어떤 맛일지 어서 집에 가서 먹어봐야지, 생각했으므로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 맛을 다시 음미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따뜻할 때 먹는 느낌이 더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워 좋은 듯했다.
그렇지만 식은 뒤에도 느끼하거나 뻑뻑하지 않아서 어느 틈에 2개를 슥삭 먹었다는;;

그리고... 여러분들이 포스팅에 사진을 첨부하셨으니 나까지 사진을 찍어올리는
열성을 보이진 않겠으나, 포슬포슬한 뒷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단한
바나나빵 앞면에 BANANA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게 왜 그리도 귀여운지~! ㅋㅋㅋ
(감동이 큰 덕분에 말끝마다 느낌표와 영탄법의 남발임을 널리 양해바랍니다^^;;)

식탐은 많지만 끼니 외에 간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단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예를 들어 크리스피 도넛 오리지널 같은 건 1개가 최대치--그것도 커피와 함께 먹을 때에만-- 그 이상은 치사량이다) 앉은 자리에서 2개를 뚝딱 먹고도 그리 질린 느낌이 없었다는 건 꽤 놀라운 결과다.
붕어빵도 좋아하지만 2개나 먹고 나면 단팥의 단맛 때문에 뒤끝이 개운칠 않고 곧장 물을 찾게 되는데, 바나나빵은 그리 달지 않고 담백해서 지금 2개를 얼른 먹어치우고 곧장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빵집에서 빵을 골라도 모양과 재료가 화려하고 달콤한 빵을 고르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담백하고 찝찔하고 거친 통곡물 빵 종류를 고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맥락에서도 붕어빵이나 호떡, 오방떡, 호도과자보다 바나나빵이 내 취향엔 더 맞는 것 같다.
가령, 인사동에서 사람들이 포장마차를 뱅뱅 둘러 줄줄이 기다려 사먹는 기름기 잔뜩 머금은 호떡은 줘도 싫고 혹시 하나 먹었더라도 봉투에 남은 게 있다면 다음날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릴 텐데, 바나나빵은 절대 못 버리고 다 먹을 것 같다!

아직 3개나 남았는데, 내일 전자렌지에 몰래 살짝 데워먹으면 어떤 맛일지 ^^
그것도 궁금하다. ㅎㅎ

암튼....
바나나빵을 나도 드디어 만나서 기쁘기 그지없다!
다시 한 번 바나나빵의 존재를 알게 해준 키드님께 감사하고
바나나빵 열풍을 불게 했던 최초의 그 글이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며
트랙백은 키드님 못지않게 바나나빵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지다님께 보내기로 작심했다.  ^^;;

아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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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기

추억주머니 2007. 2. 21. 16:23

대인기피증에 관한 쌘의 글을 어제 읽고 나서 댓글에도 적었지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내가 친하게 어울리고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는 지인들 가운데는
사람들 앞에 보란듯이 나서서 대중의 이목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로 거의 없다.
물론 예외 없는 규칙은 없듯, 아주 드물게 사람들의 시선과 '조명발' 같은 것을 즐기는 측근이 한두 사람 정도 있기는 하지만, 고백컨대 그들과의 관계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유유상종, 동병상련이라는 옛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모든 면에서 똑같을 순 없겠지만, 지인들은 물론이고 하물며 블로그 파도를 타다가 만난 낯선 이에게서도 이런저런 공통점을 발견하면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쁘고 반갑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숫기'라는 게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참 많았다.
이제는 '세월의 때'가 많이 묻은 것인지, 나이와 함께 약간이나마 연륜이 쌓인 것인지
일 때문에 만나는 경우라면 낯선 사람들과도 제법 대화를 잘 나누는 편이지만,
예전엔 낯선 사람과 마주한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는지 늘 앞이 막막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 간혹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같은 거라도 하게 되면, 정말 심장이 터져나갈 것처럼 괴롭고 떨려서 말이 겉잡을 수 없이 마구 빨라지기도 했다.

이번 설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카들이 어른들께 세배하는 걸 뒤에서 쳐다보려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라고 똑똑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제 엄마들한테 매번 꾸지람을 듣는 조카들의 모습에 내 옛날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
나 역시 어린 시절 친척들이 사방에 둘러서거나 지켜보는 가운데 세배를 하는 것이 너무도 창피하고 쑥스러워서, 7살 무렵엔 세배 안 하고 세뱃돈 안 받겠다고 도망쳤던 전적도 있었다.
나중에 '돈맛'(!)을 알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세배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세배의 순간은 늘 당혹스러웠기 때문에 반드시 동생들과 나란히 서서 동시에 세배를 했다.
혹시라도 동생들이 배신을 하는 바람에 혼자서 세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역시나 심장이 두근거려 지레 치맛자락이나 옷고름을 밟고 비틀거렸던 것 같다.

꼭 설날이 아니라도, 우리 조카들도 만날 어른들께 인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혼이 나는데, 나 역시 옛날엔 그랬다.
그건 버르장머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목소리 높여 인사하는 것이 쑥스럽고 민망하기 때문이란 걸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나 뿐만 아니라 동생들까지 포함하여 우리 삼남매는 숫기 없고 수줍어하기로 유명했다.
외가의 사촌들은 우리와 정반대로 대단히 활달하고 인사성 밝고 누가 노래라도 시키면 주저없이 나서는 바람에 우리들 기를 팍팍 죽이는 반면, 다행히 친가의 사촌들은 대부분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간혹 먼 친척분들이나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애들한테는 대개 용돈을 주시지 않나?
마지못해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마치고, 손님들이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용돈을 내밀면 또 나는 그걸 받으러 앞으로 걸어나가는 순간이 죽도록 싫었다.
용돈을 받은 뒤 또 다시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 순간도.. -_-"

내성적이고 숫기 없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죽도록 싫고 민망했던 성격을 조금이나마 고쳐보려고 우리 삼남매 모두 대학에 들어가선 나름대로 각자 노력을 기울이긴 했던 것 같다.
나와 큰동생은 연극 동아리엘 들어갔고, 막내는 노래 동아리엘 들어가 어떻게든 무대 공포증을 약간이나마 극복하려 했으니까.

하지만 두 동생은 이제 어쩌려는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멍석체질이다.
나름 힘들게 교직이수를 하고 교생실습을 했지만, 시골 학교 영어선생님이 되어 집에서 벗어나는 로망을 짧게 품었던 때를 제외하면, 누군가를 앞에두고 목청 높여 뭔가를 가르친다는 게 나로선 못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다. 물론 임용고시에 붙을 자신도 없었지만 말이다. ^^;;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숫기 없이 뒷전에서 투덜대기만 하는 내 성격엔
조직을 떠나 이렇게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겨대는 일이 딱 맞는 것 같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할 때, 일부에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나다니는 거 좋아하는 니가 혼자 고립되어 끙끙대는 일을 평생 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혼자 일한다고 해서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나다닐 기회 역시 마찬가지여서, 가끔 계약서를 쓸 때나 얼굴을 대면할 뿐, 전화나 이메일로 원고 청탁을 받고 원고를 넘기는 정도로만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내 적성엔 딱이다.

그리고 넘치는 '끼'를 주체못하는 수많은 '요즘' 사람들의 '이상한' 풍조 속에서
나처럼 숫기 없이 약간의 자폐기질과 대인공포증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알음알음 더 많이 갖게 되는 과정이 참으로 행복하다.
익명으로 끼적댈 수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한 것도 역시 나의 숫기없음 때문이지만
아무도 나무랄 사람 없으니 더욱 기쁘지 아니한가.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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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봤더라.
흔히 얘기하는 사회적 잣대로 본인의 나이가 꽤 많은지 아닌지 가늠해 보려면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보라는 데가 있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로터리식으로 채널을 돌리는 TV의 존재를 혹시 아는지...
영화 <타이타닉>을 명절특집 TV 영화가 아니라 극장에 직접 가서 봤는지...
어린시절 흑백사진이 있는지...
뭐 이런 질문이었는데, 물론 난 그 질문에 다 해당이 되었고 ^^
피식 웃으며, 그래 나 나이 많은 거 안다, 된장. 그랬던 것 같다.

윌리 호니스 사진 전시회를 보면서 그토록 흐뭇하고 뿌듯했던 건
거창하고 대단한 느낌의 사회적 이슈를 찍은 사진들보다 (7월 혁명 기념일이라든가..
역시 잘은 기억 안나지만 주먹 불 끈 쥔 아빠의 무동을 탄 어린이의 사진 같은 것도 있긴 했다)
그냥 일상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행복을 담은 소박한 느낌의 사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나는 인생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과 동네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는 그의 사진 철학은 정말로 많은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게다가 현대까지도 고집스럽게 흑백사진만 고집했던 그의 작품들은 어쩐지 낯익고
정겨워, 그간 여기저기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사진들 이외에도 혹시 우리 집에 그의 낡은 작품집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새로운 기계 따위를 사들이는 걸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한 때 수동 카메라로 열심히
우리 삼남매를 찍어주시면서 혹시나 참고한 작가는 아니었을까 하는 멋진 상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가 찍은 사진과 비슷한 느낌의 흑백사진을 앨범에서 본 것도 같았고, 결국 나는 며칠이 지난 오늘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된 옛날 앨범을 뒤적이며 흐뭇한 추억에 젖었다.

물론 내 느낌은 그저 개인적인 비약에 불과하고 사진의 구도나 질도 큰 차이가 있겠지만,
꼬마 삼남매의 모습을 담아놓으신 아부지의 사진들에서 나는 꼬마 뱅상의 모습을 찍었던 아버지 윌리 호니스의 흐뭇한 시선을 느꼈고, 그래서 참 행복했다.
이제는 조카들 사진이 아니면 굳이 사진을 공들여 뽑고, 앨범에 넣어 정리하고 그러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됐지만, 또 몇십년이 지난 뒤 요즘 남긴 사진을 보며, '아 그래.. 이땐 그래도 제법 창창했구나..'라고 중얼거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더라.

암튼...
잠깐이라도 흑백사진 속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 소중학 흑백 추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몇장 스캔도 해봤는데, 스캐너가 영 시원치않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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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들이 불쑥 물었다.
"넌 요새 스트레스를 뭘로 푸니?"

요즘 사는 낙이 없어... 라는 맥빠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터라 3초쯤 망설이던 내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주로 먹는 걸로 풀고... 사람들 만나고, 수다떨고... 쇼핑도 하고,  여유 되면 여행 가고..."

친구는
"다른 건 뭐 누구나 다 하는 거고, 그나마 니가 살이 안찌는 체질이라 다행이다 야"라고 했다.

처음 나온 대답이 먹는다는 얘기인 걸 보면
내가 식탐으로 해소하는 스트레스가 제일 많다는 얘긴데
어젠 문득 식탐녀를 지나쳐 식충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화가 오간 때가 마침, 자동차 뒷좌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거북스러울 만큼 와구와구 배불리 저녁을 먹고난 다음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스트레스 해소법이란 게 알량하게 겨우 먹는 거라니.. 스스로 대답해놓고도 겸연쩍었다.

요 며칠 여기저기 푸념을 하고 돌아다닌 생각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언제부턴가는
호들갑을 떨며 맛있는 걸 찾아 먹어도, 편한 이와 걸판진 수다를 떨어봐도,
몹시 달고 맛있는 케이크와 카페인을 탐닉해도,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봐도, 찔찔 눈물을 흘려봐도,
쇼핑을 해도, 잠시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근원적인 답답함 같은 것이 마음 저 밑바닥에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숨쉬기조차 힘든 막막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누군들 인생이 힘겹지 않겠나.. 자위하지만
그래도 뭔가 나만의 낙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든다.
예전엔 저 위에 적은 것들로도 충분히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단박에 행복해졌는데
지금은 왜 안되는 걸까나.

단순히 맛있는 걸 먹고 배만 불러도 느낄 수 있던 뿌듯한 포만감과 행복을
이젠 골똘히 찾아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내 경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더 까다롭고 까칠해지고 불만투성이 인간이 되어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깊이는 깊어질 생각을 않고 쓸데없이 생각의 겹만 많아져
파삭파삭 부서지는 파이처럼 메마른 뇌가 와사삭 사그라져버릴 것만 같다.
이러다 식충이에 무뇌충까지 되면 어쩌나. ㅜ.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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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지나쳐 혐오스러울 지경인 벨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구 광분하긴 했지만
나 역시 식탐은 누구 못지 않은 인간이다.
간식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끼니를 충실히 먹어주어야 하고
때를 놓쳐 배가 심히 고프거나 먹다가 음식이 모자라면 난폭해지기까지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내가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 두끼만 먹고 산다고 늘 걱정을 입에 달지만
사실 올빼미족인 나는 엄연히 세 끼를 다 먹고 산다는 게 맞다.
남들에겐 점심일 시간에 먹는 하루의 첫번째 끼니는 정확히 말해 나의 아침이고
저녁은 점심, 밤참은 저녁끼니인 셈이다.
원고마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해야 할 정도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한
나는 또 끼니때마다 제대로 다 갖추어 놓고 먹어야지
반찬 한 두개만 달랑 꺼내놓고 대강 때우는 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국이나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모두 꺼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가끔 반찬이 부족하다 여겨지면 계란말이나 계란찜, 돼지고기 김치찌개 따위를 후다닥 만들어서 먹어주곤 한다 ^^;;
요리의 '대가'는 아니어도, 먹어본 음식은 대강 얼추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솜씨를 갖게 된 데는 수시로 편찮으셨던 울 엄마와 내 질긴 식탐이 반반씩 기여했을 거라고 여겨진다.

암튼...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양또한 만만칠 않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공기밥 정도는 당연히 한 그릇 다 먹는다.
그래서 과거에 나를 잘 모르던 시절, 양 적은 측근들이 셋이서 음식을 두 종류만 시키는 행태를 보이면 나는 버럭 화를 내를 냈었다. 나는 분식점의 경우 셋이서도 늘 네다섯 개는 시켜놓고 먹어야 뿌듯한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

나보다 체중이 두배나 더 나가는 동창녀석은 늘 자기보다 밥을 많이 먹는 내 위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치만 내가 보기엔 나보다 훨씬 덜 먹으면서 그 체중을 유지하는 그 녀석이 더 신기하다. =_=;;

아무려나 밤참도 나에겐 엄연한 한 끼니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먹는 법이 없는데
오늘은 오밤중의 식탐이 극에 달했는지...
백설기 한쪽과 우유 한 잔을 데우고 단감 하나와 귤 세 개를 챙겨 방으로 오려니
냉장고에 든 밤에 눈길이 꽂혔다.
문득 군밤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ㅋㅋㅋ 그래서
칼집을 넣어 몇달 전 홈쇼핑에서 오밤중에 고구마와 함께 충동구매했던 직화 냄비에
구워 시방 냠냠 먹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듯하다.
나란 인간은 먹는 것 앞에선 어쩜 이리도 단순한지 원...

그치만 배가 고프면 절대로 잠조차 잘 수 없는 올빼미 식탐녀에게
오밤중 밤참은 분명 엄청난 힘의 근원이고 행복이다. ^____^


p.s. '야식'은 일본말에서 유래된 잘못된 표현이란다.
순우리말로는 '밤참'이 맞다고... 나도 앞으로는
'밤참'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그간 썼던 '야식'이란 말을 죄다 바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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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문답?

놀잇감 2006. 12. 28. 17:53
키드님이 요구하시니 또 낼름 퍼다가 실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문답인지, 키드님도 제목을 잘 모른다 하셨는데 좋아하는 것이든 취향이든 암튼 이럴 때 드러나는 이웃 블로거들의 성격이나 취향이 나도 참 재미나다 여기므로
성심껏 답해보려 함.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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