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10.08.12 조카들 선물 14
  2. 2010.07.10 슈렉 포에버 6
  3. 2010.06.17 자두 21
  4. 2010.05.12 구김살 없는 그림 14
  5. 2010.05.07 집에 왔다 8
  6. 2010.04.14 生還 16
  7. 2010.02.22 드립 커피 13
  8. 2009.08.20 UP 8
  9. 2009.06.11 자전거 바람이 불었다 21
  10. 2009.06.11 춘천의 추억 7

조카들 선물

놀잇감 2010. 8. 12. 16:09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가족 중 누군가 생일이 되면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다들 미리 묻는다. 엉뚱한 선물을 받고 난감해지기 싫은 실용주의 노선 때문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포장을 푸는 설렘도 크지만, 취향을 '딱' 알아맞히기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딱히 받고 싶거나 사주고 싶은 선물이 생각나지 않으면 성의 없는 '현금'이 오가기 일쑤이고 조금 발전했댔자 상품권이다.

민망한 말이지만 생일 때 선물목록을 만들어 주변에 돌리는 '몹쓸' 전통을 집안에도 끌어들인 건 나였다. 인간관계가 '너무' 방만해서 생일파티를 열번쯤 하느라 7월이 지나고 나면 체력과 지갑이 모두 고갈날 때 시작됐던 '습관'이다. 친구들이 생각해내는 선물이란 게 거의 비슷비슷해서, 립스틱, 향수 같은 건 마구 겹치기도 했고 장마철이 생일이다 보니 우산도 둘씩 받는 해가 속출했다. 해서 나는 뻔뻔하게 미리 위시리스트를 공개하고, 하나씩 골라 선물하도록 했다. -_-; 부담 되지 않도록 그리 비싸지 않은 걸로 품목을 정하고, 좀 덩치가 큰 건 몇명이 힘을 합하도록 부추겼다. 생일을 빙자해 한 살림 장만하려는 사기꾼이 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헌데 그 짓도 젊어서 한때나 할 노릇이지, 점점 선물 생각해내는 게 귀찮아졌다. 사실 별로 갖고 싶은 물건도 없었다. 갖고 싶은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사긴 민망하고 꼭 필요한 건 아니라서 선물로 받으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이 점점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속물스러움이 강화되면서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기엔 턱도 없이 비싼 것들이었다. 미니쿠퍼, 턴테이블이 딸린 '좋은' 오디오 세트, 브롬톤...  ㅠ.ㅠ

몇년 전부터 결국 나는 생일 선물 위시리스트 만드는 걸 관뒀다. 물론 그간의 내 습관에 길들여진 친구들이나, 위시리스트의 존재를 모르고도 필요한 거 없으냐고 늘 물어왔던 지인들은 여전히 내게 뭘 사줄까 물었지만 난 대답을 회피했다. 필요한 건 다 샀고, 딱히 갖고 싶은 게 없다고... 생일을 기념하는 것조차 민망해 피할 수 있으면 생일 즈음에 만나는 것도 사양하다보니 오히려 서로가 편해진 듯했다.

하지만 가족 파티까지 피할 수야 없는 법이므로, 조카들에게는 선물을 꼭 지정해준다. 그림이나 축하카드, 편지를 써오라고. 그래서 올해 받은 조카들 선물을 공개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이었는데 잡설이 길었다. ㅋ

자기들이 그려준 그림을 내가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히 여긴다는 걸 알면서도 조카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어느 순간 그림선물을 하지 않는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다 이젠 나보다도 키가 커버린 조카공주는 생일선물도 '빵빵한' 걸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기분파다. 그냥 그림 한 장 그려주면 된다는 데도 용돈을 톡톡 턴다. 받고 싶은 선물 없다는데도 올해도 역시나 나를 거의 쥐어짜듯 닥달해 현물로 선물을 안겨주었다. 누나에게 고무된 그 동생 녀석도 뜻밖의 선물을 들고 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 기대를 가장 충족시켜준 건 손수 그린 그림과 직접 꾸민 카드를 들고 온 녀석들이었다.


작년만 해도 그림을 그려오더니 형아인 준우는 요번엔 손수 해바라기 카드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면 이 정도 만드는 건 우스운 걸까? 내가 보기엔 손끝이 보통 여문 것 같지가 않다.
꽃잎 하나 비뚤어진 구석이 없다! +_+
하트 두 개, 준우 올림 ㅎㅎ 
이걸 내밀면서 녀석은 두달 뒤인 자기 생일에 받을 레고 시리즈를 가격까지 알려주며 상기시켰다. ㅋㅋㅋ

두 형제의 그림과 카드는 현재 냉장고에 붙어 있다. 아마 내년 생일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킬 거다.


다음은 정민이랑 지환이 선물

뒤쪽에 있는 장우산이 정민이 선물이고
앞쪽의 화려한 팔찌가 지환이 선물이다. 지환인 더 화려한 걸 골랐는데 제 엄마와 누나가 극구 말리며 대신 추천해준 거란다. 사내녀석들은 내가 '화려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한다. +_+ 민낯을 들키면 '못생겨졌다'고 구박이나 하고...

우산은 아직 개시도 못했지만 (장우산 쓸 만큼 별로 비가 안오기도 했지만 아까워서!) 팔찌는 벌써 여러번 하고 다니며 자랑했다.

그렇다고 두 녀석이 편지를 생략한 건 아니다. ^^

조카들 염원대로 '행복하게 살으'련다.

그러고 보니 다른 녀석들은 머리 굵어졌다고 폰카를 들이대면 마구 피하는 통에 갖고 있는 최근 사진이 없다.
조만간 몰아놓고 또 한방 박아서 들고 다녀야지...

바쁨을 핑계로 거의 한달만에 자랑질을 마치니 몹시 뿌듯하다. ^^v
고모로 사는것의 묘미는 역시 이런 맛이다.
_M#]
Posted by 입때
,

슈렉 포에버

놀잇감 2010. 7. 10. 18:08

나도 매주 씨네프랑스 같은 거 보러다니고 싶은 '로망'이 있지만 현실이 따라주질 못하니 뭐 어쩌겠나. 이나마도 별러야 짬을 낼 수 있으니 그저 소소한 것에 감사하자.

미처 몰랐는데 <슈렉>이 처음 나온게 무려 10년 전이란다. 슈렉이 처음 나왔을 때 어찌나 통쾌하고 즐겁고 재미있었는지 그 여운이 참 오래갔다. 그에 비해 슈렉2는 그저 그랬고, 이후 나온 속편들은 봤는지 안봤는지도 잘 기억나질 않을 정도다. 하지만 10년만에 나온 슈렉 완결편은 어쩐지 보고싶었다. 처음 슈렉이 나왔을 때 나는 "딱 내 이상형이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었다. 배나오고 못생기고 좀 어리석으면 어떠랴, 삐딱하고 용감하고 정의롭고 착하고 여자 말 잘 들는데... ㅎㅎ

모든 행복이 '가정'으로 귀결되는 할리우드식 결말이야 뭐 좀 식상하다 할 수 있지만 <슈렉 포에버>는 완결편으로 똑 떨어지는 느낌이면서도, 그간 슈렉 시리즈를 자아비판하듯 패러디로 또 다른 웃음을 선사한다.
게다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까지 패러디해 비트는 데는 어찌나 웃기던지!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3D 디지털만 상영하는 바람에 거금 만3천원을 내야하는 건 억울했고, 안경 위에 또 다시 어설픈 3D안경을 덧쓰느라 걸핏하면 초점 안맞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조준하는 게 좀 성가스러웠지만, 슈렉이라 다 용서하기로 했다. 내가 안경을 낀 탓인지 3D 효과는 뭐 그리 감동스러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달리 비교할 게 없다. <아바타>도 안봤으니 뭐...

암튼 속편에서 세쌍둥이 낳아 키우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변모하는 바람에 매력이 뚝 떨어졌던 피오나를 여전사로 다시 그려낸 건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뻔한 트렌드라고 하더라도 흐뭇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묘사된 재미없는 결혼생활도 나름 현실적이고...
동화가 다 그렇듯 결론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는, 어리석게도 다들 행복은 부재를 통해서만 깨닫는다는 것이긴 하지만, 내게 동화의 매력은 역시나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해피엔딩이다. ^^
Posted by 입때
,

자두

식탐보고서 2010. 6. 17. 17:23

올여름들어 처음 과일가게에 나온 자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체리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크기 다섯개에 4천원이면 좀 비싸다 싶었지만 자줏빛으로 빛나는 싱그러운 자태를 본 순간 이미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어쩌랴. 커피 한잔 사마시려면 5천원도 훌쩍 넘는 때가 많은데도 과일값엔 매번 놀라 손끝이 망설여진다. 

날씨도 더워졌지만 요즘 내가 계절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과일가게에 드높이 쌓인 수박을 볼 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이 벌써 한참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몇통 안되는 수박을 진열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과일 도매상엔 엄청나게 큰 수박부터 적당한 크기까지 작은 수박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달기만 한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씨 빼는 게 귀찮아서 수박은 나의 기호품이 아니다. 모름지기 과일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해야 제맛이라는 게 나의 굳건한 믿음.

올해는 가지치기를 건너뛴 데다 해걸이를 하는지 통 수확이 신통찮은 앵두를 두어번 따먹으며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보들보들 새콤한 맛에 한동한 행복했고, FTA를 반대하는 의미로 수입과일은 '사다' 먹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지만 '누가 줘서' 얻어먹은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참외와 사과, 토마토로 근근이 과일 열망을 잠재우고 있었는데 자두를 만난 거다.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자두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씨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기야 꽃 맺히고 나서 열린 과일 열매의 생김새가 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랫부분까지 움푹 들어간 사과나 배와 달리 앵두, 체리, 자두, 복숭아, 살구 같은 건 꼭지가 달린 윗부분만 쏘옥 들어가고 아래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솟은 하트 모양이라는 의미다. 다들 가운데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고 말이다. +_+ 별것도 아닌데 나로선 새삼스러운 발견이라 마치 큰 성취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더운 날씨는 못견딜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서 자두랑 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산처럼 쌓여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봐야겠다. 과일은 나의 힘!

Posted by 입때
,

구김살 없는 그림

놀잇감 2010. 5. 12. 20:40

간만에 숨 좀 돌린답시고 구김살 얘기를 썼더니 계속 기분이 구겨진 채로 있는 것 같아, 다시 반전을 모색하는 포스팅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땐 그저 만만한 게 나의 조카들 자랑. ㅋ

첫조카가 생겼을 땐 나의 조카만 '유독 천재'라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라고 착각했고, 화가의 혈통(울 막내고모)이 어떻게든 유전자로 발현된 게 틀림없다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의 조카들도 그 또래 때는 다들 비슷한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개인차야 약간씩 있겠지만, 나의 조카들만 천재성을 발휘한 건 아니란 사실에 좀 맥이 빠졌어도 여전히 나는 "혹시 몰라..." 하는 마음에 아직도 조카들이 이면지 따위에 그려준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헌데 녀석들의 머리가 굵어지면서 언제부턴가는 통 작품을 받을 수가 없어졌다. 내가 지켜본 결과 아이들이 가장 황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기는 다섯살 전후(만으로는 48개월 전후)이고, 유치원이다 뭐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면서 7살쯤 접어들면 함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해서 최근 2년간은 통 조카들의 새작품을 확보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는 의미다. 집에 놀러가거나 유치원 발표회 같은 델 따라가서 그간 그린 작품들을 구경할 기회가 더러 있긴 했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 그린 작품을 헌사받는 기쁨을 그깟 한번 구경하는 것과 비교할 순 없는 법. 나로선 제일 어린 지우가 어서 커서 고모에게 그림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우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색칠에만 관심을 보여 윤곽선은 딴 사람에게 그리게 하던 녀석이 하루에도 스케치북을 몇권씩 써버린다는 소문이었다. 옳다구나 싶었고, 때를 노리던 나는 드디어 지우의 그림을 확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Posted by 입때
,

집에 왔다

투덜일기 2010. 5. 7. 20:33

거의 1년만인 지난 일요일에 또 병원 들어갔다가 오늘 나왔다. 나 말고 왕비마마 때문에. ^^;
이번 입원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수술공포에 사로잡힌 왕비마마의 변덕에다 병원과 의사의 삽질까지 더해져 수술일정이 연기되질 않나, 입원예정일엔 아예 수술을 취소했다가 또 다시 날짜가 당겨 잡히질 않나... 지난 일요일에 병원들어가기 직전까지도 통 앞일을 알 수가 없더니만, 바로 다음날 수술, 그리고 5일만에 전격 퇴원, 역사상 최단기간에 간병무수리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간이 짧으니 그간 쌓인 피로도 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간밤에 특히 잠을 설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짐정리 해놓고는 단잠에 빠졌다. 원래도 잠자기를 즐기지만 내방에 편히 누워 따뜻하게 자는 잠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깨어나고 싶지가 않을 정도였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역시나 집이 최고다 싶긴 해도, 집에 돌아온다고 무수리가 해야할 일이야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묵지근한 몸을 일으켜 왕비마마의 저녁 진지를 챙기며 맥이 또 빠졌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질을 시작하니 비로소 정말 집에 왔다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꼼꼼히는 못읽었지만 대강 이웃 블로그도 한바퀴 돌아보니 나머지공부라도 해서 따라잡아야 할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나의 부재가 짧았다는 의미다. 

암튼 무사히 집에 왔다. 기쁘다.
Posted by 입때
,

生還

여행담 2010. 4. 14. 14:44
일요일에 떠나 어제 무사히 돌아왔음. 동생들은 사흘이 후딱 갔다면서 벌써 와서 아쉽겠다고 위로했지만, 모녀의 2박3일은 어찌나 길었는지 원래 예정대로 3박4일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도착하는 날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바람에 소망하던 꽃비는커녕 육중한 노친네 부축하고 우산 받쳐들고 다니느라 무수리는 완전 녹초 상태로 몸살 직전까지 빌빌대야 했다. 게다가 어제 인천공항에 내리니 갑자기 겨울 날씨! 삭신이 쑤셔서 어젯밤부터 오늘오전까지 두 모녀는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 끙끙 앓았음. ㅠ.ㅠ

동해바다에 면한 곳이라 느낌이 속초나 강릉 즈음으로 여겨지는 톳토리현, 시마네현 일부를 보고 온 주제에 일본이 어쩌니 저쩌니 말하는 건 가당찮은 짓이겠지만 어쨌거나, 처음 가본 일본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 생각보다 벚꽃이 별로 없더라. 끝물이기도 하고 비가 와서 많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아직 벚꽃축제기간이라는데 공원에 서 있는 벚나무가 그리 많지도 않았음. 진해나 여의도처럼 일본에도 일부 대도시에만 대규모로 벚꽃길이 조성되는 건가? 
- 화산지역이라 당연하겠지만, 일본 온천물 우리나라 온천물보다 좋더라. 온천욕 별로 안 좋아해서 효능 따위 잘 모르는 편인데, 머리감고 나서 곧장 매끈거리는 머릿결이 느껴졌음. 떠나는 날 아침에 한번 더 담그지 못하고 돌아온 걸 모녀 둘 다 후회스러워했다. ㅋ (나이가 들면서 온천이 좋아지는 걸지도.. -_-;;)
- 다다미방으로 된 온천료칸 체험, 은근 매력있다. 다다미를 해마다 바꾸는지 어쩐지 방에 들어가자마자 싱그러운 돗자리 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풍겼고, 저녁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에 다기 놓여있던 테이블 치우고 이불 깔아놓는 서비스 마음에 들었음. 
-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음식맛과 염도에 차이가 있으니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행의 현지음식은 절반 정도 내 입에 맞지 않았다. 모험정신 강하고 식탐 많은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나. 일행 중엔 컵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거의 연명한 이도 있었다. ㅋ 
- 귀엽고 아담한 경차가 정말 많더라. 경차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다는 말만 들을 때랑 직접 보는 거랑 역시 느낌이 다르다.
- 전통과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전국 어딜 가나 도시든 시골이든 볼썽사나운 아파트와 시멘트 양옥집 투성이인 이 나라와 달리, 오래된 일본집스러운 느낌의 나무로 된 집들이 참 많았다.

본격후기는 슬슬 밀린 일 눈치 봐가면서 올리도록 하겠음. 여행은 늘 좋지만, 집에 돌아오는 건 더 좋다. 예전엔 판에 박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싫어서 항상 여행 끄트머리에 느끼는 아쉬움이 몹시 컸던 것 같은데, 이번엔 진심으로 귀가를 기다렸다. 오죽하면 제목이 <살아돌아옴>이겠나. 집에 와서 기쁘다. ㅋ
Posted by 입때
,

드립 커피

놀잇감 2010. 2. 22. 18:44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주전자 하나로 카페 놀이 하듯 솜씨를 부려 연일 커피 메뉴를 달리해 마셨던 초심은 버얼써 사라졌고 최근엔 마시는 커피 메뉴가 거의 일정했다. 그냥 커피 아니면 카페 라떼, 딱 두가지. 거품기가 고장나 카푸치노는 꿈도 꿀 수가 없고, 추워서 아포가토는 땡기질 않는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그냥 커피라고 말한 이유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즐길 정도는 못되어도 점점 진한 맛의 커피가 더 개운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물을 섞는 양이 훨씬 줄었으므로 아메리카노라고 말하기 싫었다. 어쨌거나 하루 한잔씩 즐기는 커피는 꽤나 만족스러웠는데도 공연히 심심해진 나는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던 1인용 드리퍼를 사들였다.

요즘 카페에선 대부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어주지만 간혹 드립 커피임을 자랑하는 곳을 만날 수가 있는데 향이 좋으면서도 맛이 깔끔한 드립 커피를 까짓것 집에서도 만들어 보자 싶었던 거다. 저렴한 플라스틱 드리퍼 가운데 나는 그나마 진하게 추출되기를 바라며 구멍 하나짜리 멜리타 드리퍼를 선택했고 (구멍 세개 짜리는 칼리타 드리퍼란다) 드디어 오늘 시음에 돌입했다. (택배 온 지 며칠 됐는데 귀찮아서 비닐도 안뜯고 구경만 했었다).

브리카 때도 처음부터 단박에 성공하지는 않았으니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은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원두를 다 먹어가고 있으니 신선도에서 문제가 있기는 하겠고, 다른 도구 없이 그냥 일반 주전자로 서툴게 물을 내린 얼치기 바리스타 탓이 크겠지만, 에스프레소로 추출한 커피보다 향도 별로고 맛도 그리 개운한 줄 모르겠다. 나름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대로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나. 드립 커피는 처음엔 물을 약간 부어 원두를 적신 뒤 빵처럼 부풀어오르게 살살 내려 3분 안에 추출해 먹되 맨 마지막 추출액이 떨어지기 전에 드리퍼를 치워야 잡스러운 맛이 없는 개운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단다.

곧 도착할 갓 볶은 원두를 갈아서 다시 시도는 해보겠지만 어설픈 솜씨로는 카페에서 진짜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 커피 맛을 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에 공연히 어깨가 쳐졌다.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사긴 싫은데!
Posted by 입때
,

UP

놀잇감 2009. 8. 20. 16:57

과연 이게 초절정 마감모드에 임하는 자세인가 싶게 이번주는 계속 노는 추세다. 발등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뻔뻔함의 추동력이 놀랍다.
째뜬 개봉한지 꽤 오래라 이미 다 끝난 줄 알았던 <UP>이 아직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란 걸 알고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기대를 많이 했더라도 픽사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별로 실망하는 법이 없다. 섬세한 그림과 황홀한 색채만으로도 그저 행복해지기 때문. 칼과 엘리가 살던 집은 고풍스런 가구며 사소한 소품들까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다 집어오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애니메이션에 훨씬 점수가 후하다. 어쨌거나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단언했다. <해운대>보다 <UP>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디지털로 봤는데도 장면장면 자지러지듯 놀라고 헐떡거렸으니 3D로 봤더라면 나는 간덩이가 남아나질 않았겠더라. ㅋㅋ
어쩌면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지러워하다가 끝내 3D안경을 벗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상투적인 드라마 주인공들이 홀부모 슬하에서 자란 걸로 설정되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제작비 때문이거나 출생의 비밀을 터뜨리기 위한 방편이라지만, 가족과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확실히 홀부모 가정을 다루는 시각이 의연하다. 아이없이 해로하는 노부부의 사랑과 행복도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이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재를 당연하게 드러내면서 그 대안으로 확대가족을 제안하는 듯한 부분은 동양적인 것 같지만 어디나 아이와 노인은 상통하는 데가 있으니 굳이 동서양을 따질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암튼 여름방학 이벤트로 3대가 같이 본 <UP>은 우리 3대를 모두 만족시켰다. 마지막에 자막 함께 올라가던 칼과 러셀의 새로운 모험 앨범처럼 우리도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하게나마 짜릿한 모험을 느끼며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osted by 입때
,

내가 작년에 느루를 장만하고 나서, 그때 직접 매장을 추천하고 조언을 해주었던 막내동생네도 곧 미니벨로를 장만했다. 애팔렌치아라고 하던가, 검정색으로 아주 늘씬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고선 올해부터 아직 네발자전거를 벗어나지 못했던 준우왕자의 강훈련에 돌입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겉보기론 3학년이라 해도 믿을만큼 키가 훤칠한 녀석이라 머지 않아 제 엄마와 함께 미니벨로를 탈 수 있게 하기 위해,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뗀 거다. 겁이 많아서 통 진도가 안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 틈엔가 녀석은 순식간에 두발 자전거를 마스터 하고야 말았단다. 이렇게...

그러고 나서 좀 있다 준우왕자의 동생인 지우의 생일이 돌아왔다. 겨우 만 세돌이 되는 녀석은 똑 소리나게도 우리에게 선물을 콕 찝어 요구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_+ 그것도 하얀색이랑 검정색으로.
"고모, 지우 자전거 사주세요. 하양색이랑 검정색 있는 거..."라는 지우의 말을 직접 전화로 들으며 나는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애들 자전거가 죄다 파랑 아니면 분홍, 아니면 노랑, 초록 같은 원색이던데, 하얀색이랑 검정색이라니...
그런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지우 기호에 딱 맞는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더라!
어린 녀석 취향이 세련됐기도 하여라. @.@
문제의 자전거는 삼천리자전거에서 나오는 <하이킥>이란다. 지우도 또래들보다 키가 커서 12인치를 사줘야 하나 16인치를 사야하나 고민했는데 딱 맞춤처럼 14인치짜리가 매장에 있더라나. 당연히 지우왕자는 저 자전거에 올라타곤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ㅎㅎㅎ
제가 원하는 선물을 생일선물로 받은 지우는 연일 자전거 타기에 힘쓰는 모양이고, 겁이 많아 속도 내는 건 엄두도 못냈던 제 형과 달리 방향전환이며 속도내기에 거침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다. *_*

무릎 보호대를 하고 제 형의 뒤꽁무니를 거의 바짝 뒤쫓는 지우의 모습을 보면 난폭운전의 기질마저 느껴진다. ^^; 귀여운 녀석...

준우마저도 두발 자전거로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본 데다 고모와 작은엄마의 미니벨로 맛을 본 정민공주는 자기도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미 온 집안에 불어닥친 자전거 바람에 물든 큰동생네도 전격 미니벨로를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내 자전거랑 똑같은 다혼 우베공 흰색으로...
다만 사이즈는 내것보다 큰 걸로. ㅠ.ㅠ

이 자전거를 타다가 공주는 오른쪽 무릎을 왕창 갈아 진물이 날 정도였는데도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눈치다. 사진은 5월 31일에 소풍 갔던 월드컵 공원에서 타는 모습이고, 공주의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자전거를 타고 느껴지는 바람이 보이는 것 같은 이런 사진.. 좋다. @.@



자존심이 심히 상하기는 하지만, 조카랑 고모랑 나란히 똑같은 미니벨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아주 그럴듯하다. 왼쪽이 내 느루, 오른쪽이 공주의 우베공.
이땐 하필 내 자전거를 올케가 타느라 안장을 제일 낮게 했고, 정민이 자전거는 동생이 안장을 높여 탄 직후라 더더욱 형님과 동생 같이 보인다. ㅎㅎㅎ

이번엔 여기저기서 동생들 사진을 퍼왔지만, 담번엔 정말로 온가족이 떼로 모여 자전거를 탄 뒤 단체사진을 찍어와야겠다. 암튼 온 집안에 부는 자전거 바람, 참으로 흐뭇하다.
 
 
Posted by 입때
,

춘천의 추억

추억주머니 2009. 6. 11. 18:11

춘천은 나에게 아련한 추억과 동경의 장소다.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가 나오기도 훨씬 전인 고3 여름방학때, 두 친구와 작당하여 아침부터 이어지는 따분한 자율학습을 과감히 제끼고 난생 처음 춘천행 기차에 올랐었다. 그 전에는 땡땡이라고 해봤자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떡볶이를 사먹는다든지 조금 일찍 달아나는 정도였을 뿐, 하루를 온전히 빼먹는 땡땡이는 시도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전날부터 몹시 마음이 설렜다. 청량리역에서 만나 일단 성북역까지 가서는 거기서 춘천행 기차를 타야했는데, 두어시간 남짓한 그곳이 나에겐 마치 한반도 끝에 있는 부산만큼이나 심정적으로 먼 곳이라 생각되어 대단히 짜릿한 일탈로 여겨졌다. 이미 아는 오빠를 따라 춘천에 몇번 다녀본 전적이 있는 친구의 안내대로, 춘천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간 공지천 주변을 거닐다 호숫가에 서 있는 <이디오피아>라는 카페에서 볶음밥과 빙수를 먹은 뒤 돌아오는 기차를 탄 것이 여행의 전부였지만, 우리 셋은 너무도 행복했다. 기차를 타고 오가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남한강과 북한강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웠고, 완행열차에서 사먹은 삶은달걀도 감동의 맛이었다.
그날의 추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나와 친구들은 남은 학기 내내 두고두고 춘천 기차여행 이야기를 되뇌다,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졸업 전에 다시 춘천으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진학을 하든 재수를 하든 단짝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서글퍼하면서. 두번째 춘천 여행에선 꽝꽝 얼어붙은 소양강댐에도 구경했고, 새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린 공지천을 배경으로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열여덟살이던 당시 춘천은 나에게 짜릿한 일탈의 공간이었고, 어른을 동반하지 않고 내가 홀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고, 여러가지 매력 넘치는 기차여행을 누릴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춘천 기차여행을 큰 자랑거리로 떠벌였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경한 친구들에게 겨우 두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춘천은 일탈의 장소이긴커녕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세 다녀오거나 매일 통학할 수도 있는 지척의 도시였다. +_+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친구 하나가 동조해주는 바람에 눈이 펑펑내리던 어느날 충동적으로 다시 춘천행 기차를 탔던 날, 우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는 소양댐을 굳이 걸어서 올라갔고 언 손을 호호 불며 맛없고 쓴 커피를 마시면서도 행복했다. 그날 처음 춘천 닭갈비라는 것을 먹어보았는데, 종일 눈에 젖어 덜덜 떨다가 들어가 먹어본 그 맛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몇년에 한번씩 춘천엘 간 적은 있지만 죄다 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춘천가는 기차>가 상징하는 춘천여행의 묘미와 추억을 더는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완행열차 비둘기호는 사라져버렸어도 언제고 한번 꼭 기차를 타고 춘천엘 가봐야지 막연하게 마음은 먹었지만, 강원도 여행길에 일부러 들르지 않는 한 춘천 자체를 찾아갈 일도 아예 없는 편이어서 춘천은 점점 내 추억의 창고에서도 깊숙한 구석쪽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낭보가 들려왔다. 판화가인 막내고모가 춘천에서 열리는 강원아트페어에 전시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차여행은 못하겠지만 간만에 춘천 땅도 밟아보고 고모 그림도 보고 닭갈비도 먹고 일석삼조, 일타삼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지난 7일, 왕비마마를 모시고 춘천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당연히 설레고 들떴다. 아직 철은 이르지만 가는 길에 가평 찰옥수수도 사먹을 생각을 하면, 막히는 길쯤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왕비마마와 공주 일행이 납시었는줄 온 세상이 알았는지 전날엔 미치도록 막혀 되돌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는 춘천행 국도도 뻥 뚫려 오히려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마다 서 있는 옥수수 장수들을 만나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뜨겁고 매운 닭갈비를 먹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이번 춘천 여행에선 정말로 눈과 입과 위 모두 흐뭇하게 대접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가끔 닭갈비를 사먹긴 하지만, 역시 닭갈비는 춘천에 가서 먹어야 제맛이란 진리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또 언제 춘천엘 가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일탈의 공간이었던 춘천에 처음으로 가족들을 동반하고 간 이번 여행의 의미는 또 다른 추억의 겹으로 남아 돌이킬 때마다 흐뭇할 거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