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이 지나쳐 혐오스러울 지경인 벨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구 광분하긴 했지만
나 역시 식탐은 누구 못지 않은 인간이다.
간식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끼니를 충실히 먹어주어야 하고
때를 놓쳐 배가 심히 고프거나 먹다가 음식이 모자라면 난폭해지기까지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내가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 두끼만 먹고 산다고 늘 걱정을 입에 달지만
사실 올빼미족인 나는 엄연히 세 끼를 다 먹고 산다는 게 맞다.
남들에겐 점심일 시간에 먹는 하루의 첫번째 끼니는 정확히 말해 나의 아침이고
저녁은 점심, 밤참은 저녁끼니인 셈이다.
원고마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해야 할 정도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한
나는 또 끼니때마다 제대로 다 갖추어 놓고 먹어야지
반찬 한 두개만 달랑 꺼내놓고 대강 때우는 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국이나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모두 꺼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가끔 반찬이 부족하다 여겨지면 계란말이나 계란찜, 돼지고기 김치찌개 따위를 후다닥 만들어서 먹어주곤 한다 ^^;;
요리의 '대가'는 아니어도, 먹어본 음식은 대강 얼추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솜씨를 갖게 된 데는 수시로 편찮으셨던 울 엄마와 내 질긴 식탐이 반반씩 기여했을 거라고 여겨진다.

암튼...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양또한 만만칠 않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공기밥 정도는 당연히 한 그릇 다 먹는다.
그래서 과거에 나를 잘 모르던 시절, 양 적은 측근들이 셋이서 음식을 두 종류만 시키는 행태를 보이면 나는 버럭 화를 내를 냈었다. 나는 분식점의 경우 셋이서도 늘 네다섯 개는 시켜놓고 먹어야 뿌듯한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

나보다 체중이 두배나 더 나가는 동창녀석은 늘 자기보다 밥을 많이 먹는 내 위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치만 내가 보기엔 나보다 훨씬 덜 먹으면서 그 체중을 유지하는 그 녀석이 더 신기하다. =_=;;

아무려나 밤참도 나에겐 엄연한 한 끼니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먹는 법이 없는데
오늘은 오밤중의 식탐이 극에 달했는지...
백설기 한쪽과 우유 한 잔을 데우고 단감 하나와 귤 세 개를 챙겨 방으로 오려니
냉장고에 든 밤에 눈길이 꽂혔다.
문득 군밤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ㅋㅋㅋ 그래서
칼집을 넣어 몇달 전 홈쇼핑에서 오밤중에 고구마와 함께 충동구매했던 직화 냄비에
구워 시방 냠냠 먹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듯하다.
나란 인간은 먹는 것 앞에선 어쩜 이리도 단순한지 원...

그치만 배가 고프면 절대로 잠조차 잘 수 없는 올빼미 식탐녀에게
오밤중 밤참은 분명 엄청난 힘의 근원이고 행복이다. ^____^


p.s. '야식'은 일본말에서 유래된 잘못된 표현이란다.
순우리말로는 '밤참'이 맞다고... 나도 앞으로는
'밤참'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그간 썼던 '야식'이란 말을 죄다 바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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