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서 들었을 때 나는 한가인/엄태웅 조합보다도 배수지/이 제훈 조합에 훨씬 더 관심이 갔다. 나 역시 <파수꾼>에서 기태 이제훈을 보며 앞으로 주목할 만한 괜찮은 배우 하나를 얻었군 하며 흐뭇했었고, 수많은 아이돌 걸그룹에 대해선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면서 유일하게 알고 예뻐하는 아이가 '수지'다. 엄청 공들여 만져놓은 듯한 인공미 소녀들의 물결 속에서 수지양은 자연스러운데도 맑갛게 빛나며 예쁜 느낌! 한가인의 미모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열아홉살 수지와 비교하니 확실히 광채가 다른 것 같았다. 물론 빛나는 청춘을 그려난 과거의 화면이 현실에 찌든 현실의 모습보다 당연히 환하고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멜로 영화는 여주인공이 예뻐야 보기 뿌듯한 이 불편한 진실.. -_-;
영화를 보기 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포스터의 저 카피 대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쌍년/놈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이웃 어느분의 의견에 빵 터져 킥킥댔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그 말이 진리였다. 감정에 서툴고 사소한 것으로 오해하고 자격지심과 자존심 앞세우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찌질하게 먼저 상처 주는 쪽을 택했던 청춘 한때를 그 말만큼 잘 찝어낸 말이 또 있을라고!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나도 분명 '쌍년' 짓을 했다는 건 잘 안다. 영화처럼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재회는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만났을 때 진짜로 왜 그랬냐고 나더러 따지더라. ㅋㅋㅋ
수지와 이제훈에 대해선 이유없이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반면, 엄태웅과 한가인에겐 우려의 시선을 품고 있었는데 퍽 괜찮았다. CF속의 한가인이 그간 예뻐서 좋긴 해도 연기하는 걸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다가 <해를 품은 달>에서 보며 얼마나 아쉬웠는지. "연우 역할을 문근영이 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탄식을 수도없이 내뱉을 만큼 김수현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연기도 참 못했다(상대적으로 김수현과 아역 김유정 양이 사극 연기를 너무 잘한 걸수도 ^^;). 역시나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는지, '제주도 학원출신' 음대생이지만 피아노는 지긋지긋하고 아나운서가 돼 돈을 잘 버는 게 꿈이었으나 결국엔 의사 부인이었다가 술마시고 쌍욕도 마구 하는 이혼녀가 된 서연의 옷은 한가인에게 퍽 잘 어울렸다. 세상풍파는 혼자 다 겪은 듯 외모도 성격도 확~ 변해버린 승민(이제훈이 나이든다고 어떻게 엄태웅이 되느냐고!)을 수긍하는 건 약간 더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는 뭐 그랬다 치고! 보는 것이 극의 묘미이니 꼬치꼬치 따질 수야 없다.
감독이 꽤나 오래 준비하고 다듬은 대본이라더니 가끔 가슴을 툭 떨어뜨리거나, 참 기발하다고 킥킥대게 만드는 대사가 꽤 많았다. 알탕, 대구탕과 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 '매운탕'도 그렇고, '싱숭이생숭이', '우루사'도 그렇고...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서 벌써 다 까먹었으니 원;;) 하여간 근래 보기 드문 최고의 조연 캐릭터 '납뜩이' 조정석이 한 말과 행동들은 죄다 인상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이제훈한테서 <파수꾼>의 기태 그림자를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특히 택시기사한테 대신 화풀이하는 장면 ㅠ.ㅠ) 그에게 납뜩이 같은 솔직하고 좋은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까지 여겼다. 물론 여기서 이제훈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는 건축학과 새내기 승민이었는데, 미련한 내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는 뜻이다. -_-;
서울이란 도시는 고향이라 여기기 좀 뭣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곳이다보니 서울에서도 낯익은 지명이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면 엄청 반갑고 정겹다. 전도연 하정우 나왔던 <멋진 하루>도 그래서 더 좋은 영화로 기억된 듯한데, 이 영화에서도 '정릉' 때문에 호감이 배가됐다. 살아본 적은 없어도 그 동네 사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 나 역시 개포동-정릉간 그 버스를 갈아 타고서 자주 놀러다녔고, 누구의 묘인지 아직도 헷갈리는 '정릉'엔 중1때 소풍을 갔었다. 소풍 장소가 발표되자 당시 정릉 친구들은 아우성을 쳐댔다. 국민학교 6년 내내 정릉으로 소풍 다녔는데 중학교에 와서도 또 거길 소풍으로 가야하느냐고! 그리고 건축학개론 첫 시간엔가 서연과 승민이가 지도에 빨간펜으로 그리던 길 위에 현재 내가 사는 집도 있다. 아니, 내부순환로가 개통된지 오래지만 북악터널을 지나 구불구불 신촌으로 이어지는 그 옛길은 요새도 내가 걸핏하면 지나다니는 길이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그 설정에 괜스레 흐뭇했던 이유는 역시나 강북인의 정서였을까?
내가 건축을 해볼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건축과는 이과잖아! 난 수학 못해! 뭐 이런 원초적인 한계;;) 건축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막상 그들 일하는 얘기 들어보면 처음엔 엄청난 박봉에 노상 밤샘에, 건축주와의 신경전에 끔찍한 직업이 따로 없다 싶지만 그래도 '집'과 '건물'을 어느틈에 뚝딱(은 결코 아니겠으나;;) 만들어내는 일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멋진가! 게다가 영화에 그 과정이 나오는 건축의 배경은 심지어 제주도다. 한옥열망과 더불어 제주도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열망 또한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막 부럽다가 막판엔 심술이 났다. 그러니깐, 제주도에 저 정도 집 짓고 살려면 예쁜 외모로 의사랑 결혼했다가 위자료 엄청 받고 이혼해야 되는 건가? 아니지, 그 전에 일단 제주도에 물려받을 땅과 집이 있어야 하는 거네! 흑... 비뚤어진 심보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제주도 바닷가에 옛집과 추억을 최대한 살려 지은 집은 참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다. 확 터를 갈아엎고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서 더 애틋했던 것 같다. 인생 역시 깡그리 갈아엎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불가능지만, 서연과 승민 역시 과거의 기억을 가지런히 잘 정돈했으니 그 집처럼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납뜩이 때문에 대체로 깔깔 웃다가 영화관을 나왔는데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때문인지 덩달아 환기된 청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조용히 빗속을 걸으며 조금 슬펐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가 좋았지' 싶었던 부분도 확실히 더러 있긴 하다. 엄청 잘 만든 수작이 아님에도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는 건 다들 영화의 틈을 각자의 추억으로 메우기 때문인 듯. 암튼 이 영화 때문에 새삼 봄을 앓는 주변의 중년들이 몇몇 보여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들에겐 이 영화가 싱숭이생숭이다. ㅋ
이웃 주민들이 연달아 올린 글을 보며 나도 트랙백하고 싶다 생각은 하면서도 일단 대체로 기억이 가물가물 또렷하게 생각나는 게 드물었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멘붕'상태에 가까운 마감스트레스 때문에 뭔가 끼적일 마음의 여유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쓸데없는 곳에 집착하는 나의 뒤끝성향 탓에 틈만 나면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자꾸만 더듬고 있질 않겠나... 난생 처음 혼자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대체 뭐더라.. 뭐더라.. 이러면서. +_+ 아직도 통 기억을 붙들어내지 못한 항목이 많지만 일단 포스팅 하고 나면 오히려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ㅎㅎ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 언젠가 포스팅에서도 썼듯, 어릴 때 방학마다 삼촌이 종로통으로 불러내 나의 형제들에게 만화영화를 보여줬기 때문에 김청기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이 나의 첫 극장영화임엔 틀림이 없다. 그 이전에는 어린이가 영화관에 가서 볼만한 영화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게 <로보트태권V>가 였는지 <마루치아라치>였는지 <똘이장군>이었는지 <칠칠단의 비밀>이었는지 아쉽게도 콕 찝어낼 수가 없어 검색해보니, <로보트태권V>가 1976년에 나왔단다. 그렇다면 내가 열살 때이니 아마 그게 첫 영화일듯. 연년생 큰동생은 방학마다 늘 같이 다닌 게 확실한데, 처음부터 네 살 차인 막내까지 대동하고 갔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느 해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막내동생 손을 잡고 영화관을 향해 종로통 인도를 걷다가 지하철 환풍구에서 나온 바람에 갑자기 주름치마가 확 올라가 당황하여, 애먼 막내동생한테 막 화를 냈던 장면은 기억난다. 아마도 그날, 소심 & 뒤끝 작렬로 영화 보는 내내 집중 못하고 창피한 생각만 하고 있었을 듯. ㅋㅋ
어른 대동 않고 처음 본 영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엄마들이 애들만 영화관에 넣어놓고 나중에 픽업하고 그러는 문화는 없었고, 영화관이란 모름지기 어른과 함께 가야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5학년 때였나, 같은 동네 살 던 큰고모가 사촌동생을 데리고 영화를 보고 오라고 부탁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화관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쾌걸 조로>를 상영하는데 사촌동생이 그걸 보겠다고 떼를 쓴 모양이었다. 동생들이 놀러나가고 집에 없었기 때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짠순이'로 유명하신 큰고모가 영화값 아끼려고 나만 가라고 한 것인지 내막은 모르겠으나 암튼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사촌동생을 데리고 동네 영화관(동시상영관은 아니고 나름 3류 개봉관이었다)을 찾았다. 난생처음 내가 영화 표를 사고 거기 적힌 번호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으나, 시내 영화관과 달리 동네 영화관에서 주는 영화표엔 좌석번호도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아저씨들이 괜스레 무서워서 바짝 긴장해 처음엔 영화에 집중도 잘 하지 못했고, 원래도 부산하고 정신 사나운 사촌동생은 음료수 한병을 다 마시더니 영화 보다 말고 화장실엘 간다고 했다. 큰고모가 애지중지하는 외아들한테 또 무슨 일 생기면 안되지 싶어서 화장실 앞까지 쫓아갔다 캄캄한 극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영화는 꽤나 흥미진진했는데 녀석 때문에 줄거리를 놓쳐 짜증도 났고, 나중에 밖에 나오니 생각보다 어두워져 덜컥 겁도 났었다. 아무튼 동생들과 버스 타고 우리끼리만 화전이니 삼송리니 논바닥 스케이트장에 간 것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
중학교엘 들어가니 한학기에 두번은 단체로 영화관람을 했다. 며칠씩 시험을 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마지막날 시험이 끝나면 시내 극장에서 출석까지 확인하는 단체 영화관람을 하는 것이 그 학교의 전통(?)이라면 전통인 모양이었다. 그때 처음 본 것이 <사랑의 스잔나> 아니면 <디어 헌터>인 듯한데, 어느게 먼저인지 그걸 모르겠다. <사랑의 스잔나>는 슬펐다는 것말고는 별 기억에 없지만, 베트남전을 다룬 <디어 헌터>는 어찌나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는지, 지금도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최초의 영화로 손꼽는 작품이다.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보니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던데 우린 어떻게 단체관람을 했었는지 그것이 불가사의할 뿐. +_+ 영화음악도 인상적이라 라디오 심야 영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걸 일일이 녹음해서 반복해 듣곤 했다. 혼자 조숙한 척 하면서;;
단체관람이 아니고 친구와 처음 시내 영화관엘 간 것도 그 즈음이었다. 같은 반이기도 하고 집도 가까운 친구랑 단둘이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다가, 나의 막내동생도 데려갔다. (막내딸인 그 친구가 조잘조잘 수다 많고 말 잘듣는 우리 막내를 귀여워했었다. 자기도 그런 남동생 있으면 좋겠다고까지;;) 굳이 막내가 따라붙은 이유는 아마도 영화구경보다는 기사까지 딸린 친구네 검정색 세단 자가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날 우리끼리 시내 영화관엘 찾아가는 걸 못미더워한 친구 엄마가 차로 대한극장(혹은 국도극장;;)까지 데려다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암튼 뭔가 대단히 거창하고 역사적인(?) 날이어서 그날의 주변 기억은 또렷한데, 결정적으로 그날 본 영화가 뭐였는지 모르겠다. ㅠ.ㅠ 막내는 기억하려나,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지.
처음 아버지랑 단둘이 본 영화.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 <세계의 명화>를 밤늦게까지 참 열심히도 봤는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이고 서부영화까지 이미 본 것일 정도로 젊어서 퍽 영화를 좋아하셨던 모양이다. 내가 갓난아기 때, 부모님이 연애시절처럼 영화를 보러갔다가 깜깜해지자마자 내가 하도 우는 바람에 둘이 번갈아면서 극장에 들락날락하면서도 끝까지 영화를 보고 나온 적이 있다는 전설을 듣기도 했다. 그 뒤론 아예 포기했다고. 암튼 부부동반 영화관람은 불가능했을지라도 아버지는 가끔씩 TV 영화로 달래지지 않는 영화에 대한 갈증을 극장에서 친구분들과 푸셨던 것 같다. 내가 중고생 때 단체관람을 하고 온 영화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그러다 아버지가 보고픈 영화가 있으니 토요일에 단둘이 극장에 가자고 했다. 엄마와 동생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면서. ^^; 나는 좋아라 약속을 잡았고, 학교를 파하자 마자 종로로 달려가 단성사 앞 빵집에서 아버지와 만났다. 문제는 영화가 알 파치노 주연의 <스카페이스>였다는 것! 아버지는 <대부> 정도로 생각하신 모양이었는데, 영화는 훨씬 더 잔혹할 뿐만 아니라 부녀가 보기에 좀 민망한 장면도 더러 나왔다. 어쨌거나 숨을 죽인 채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버지는 내게 미안했는지 영화가 너무 자극적이라고 요즘 영화들은 옛날처럼 낭만이 없다고 투덜투덜 하셨던 것 같다. 아무리 아버지와 같이 갔더라도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에 어떻게 교복까지 입은 중학생을 들여보냈는지, 그것도 좀 의아하지만, 이미 <디어 헌터>도 중학생 때 단체로 들어가 본 걸 보면 옛날엔 마구 가위질을 해서 등급을 낮췄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듯 아빠와 딸의 이 오붓한 데이트를 나는 최근까지도 분명 중학생 때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빵집서 아빠랑 만난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헌데 저런 내용을 다른 블로그에 댓글로 달고 나서 찾아보니 <스카페이스>는 1983년에 만들어졌대고 우리나라엔 1984년에나 개봉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 뭐냐... 중학생 교복시절이 아니고 고3때란 말인가. -_-; 그러면 또 한 가지는 의문이 풀린다. 교복 자율화 세대라 사복 입고 다녔을 때니까 아무리 애가 좀 작아도 보호자 동반이니 극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간 그날 결국 부녀는 둘만 영화데이트한 게 들통나서 엄마에게 혼이 났다. 미리 얘기 하고 가면 누가 말리나, 왜 그 걸 비밀로 해, 기분나쁘게! 라는 것이 엄마의 요지. 혼이 나면서도 나는 내심 그날의 데이트가 뿌듯했던 것 같다. 이후로도 대학시절까지, 가끔씩 부녀의 영화 데이트는 이어졌지만 이후 같이 본 영화는 뭐였는지도 생각이 안난다.
보다가 뛰쳐나온 영화. 대학에 들어간 뒤로 나의 영화관람 양상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유명 신작 영화를 종로통 개봉관에 가서 보거나, 잘난척 하는 겉멋이 좀 들어 경복궁 옆에 있던 프랑스문화원에 가서 오래된 프랑스 영화를 영어자막으로 보거나(그러니 제까짓게 얼마나 이해를 했겠나!), 학교 근처 동시상영관에 가서 좀 지난 영화를 보거나. 암튼 신입생이라고는 해도 아직 미성년자라 성인영화는 제대로 본 적이 없던 나는 프랑스문화원에서 이런저런 영화를 보며 처음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벌거벗은 남녀의 몸은 물론이고 주요부분이 정면으로 막 나오는 게 아닌가! 나를 그런 문화생활로 이끌었던 동기이자 언니 하나는 나에게 성교육 제대로 시켜준다고 킥킥댔다. 암튼 예술과 문화를 핑계 삼아 프랑스문화원에서는 상당히 수위 높은 성인영화도 꿋꿋이 버텼던 것과 달리, 나는 학교 앞 동시상영관에서 슬그머니 도망쳐나오는 사건을 맞이한다.
당시 동시상영관에서는 괜찮은 외화 한편, 한국 영화 한편을 번갈아 상영했고, 아마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러 갔던 날인 것 같은데 하필 그때 상영된 한국영화가 애마부인 시리즈였다. -_-; 개봉관과 달리 그냥 영화 중간에도 들어가서 보고 싶은 영화 한 편만 제대로 보고 나오거나, 종일 앉아서 영화 두편을 구색 갖춰 보거나 그건 관객 마음이었다. 이미 수위 높은 프랑스 영화로 단련된 터라, 애마부인 시리즈 정도는 가뿐하게 보아주리라 마음 먹고 들어간 것이었는데, 허걱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영화 주인공이 내가 아는 사람(말하자면 친척;;)이 아닌가! ㅋㅋㅋ 영화배우인 거야 원래도 알았지만, 막상 스크린에 대문짝만하게 얼굴이 나오는데다 연기는 엄청 어색하고 성우가 더빙한 야릇한 목소리로 얄딱구리한 장면까지 자꾸만 나오는데, 민망해서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ㅋㅋㅋ 결국 나는 속이 좋지 않다면서 도망나와 복도 의자에서 그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번 친척모임에서 '그분' 얼굴을 어떻게 보나 걱정하면서...
첫 데이트 영화.
아.. 정말 기억해내고 싶은데 이게 통 확실하지가 않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떼로 몰려다니며 영화를 봤고, 그 무리엔 영화감독이 꿈인 친구가 둘이나 있어 종류별로 참 다양한 영화를 보러다녔다. 하지만 사실 떼로 몰려다녔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친구들이 '걔'랑 나랑 엮어주려는 것이어서, 꽤나 시간이 지난 후 그 노력이 은근슬쩍 결실(?)을 맺고 말았기 때문에 어느덧 둘만 영화를 보러 가게 된 시점이 대단히 모호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던 것도 같고 <영웅본색>이었던 것도 같고... ㅋ
암튼 <영웅본색>은 걔가 하도 좋아해서 같이 세번은 본 것 같다. 자기도 그런 진한 우정 영화를 만들고 싶다나 뭐라나. 마지막엔 대부분의 개봉관에서 다 내리고 하는 데가 없어서 시설 엉망이고 퀴퀴한 냄새도 나는 파고다 극장(!)까지 찾아가 봤었다.
더불어 돌이켜보니 마지막 데이트 영화가 무려 <살인의 추억>이다. -_-;; ㅋ
난생 처음 혼자 본 영화.
이웃 주민들은 혼자 영화 본 시기가 꽤나 일러서 20대 초반 아니면 청소년기라는 사실에 좀 놀랐다. 아무래도 세대차의 탓이 좀 있겠지만 (혼자서 영화보는 문화는 역시 90년대에나 생겨났다는 것이 나의 견해;;) 독립심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암튼 내게 영화란 오래도록, 누구랑 함께 보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중요한 소재이자 공통점을 나눌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몇번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보기 싫은 데도 척 노리스 나오는 액션 영화 여러번 끌려가서 봤다 ㅋㅋ) 친구들별로, 또는 사귀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같이 볼 영화를 나누어 분배했던 것 같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이 볼 친구 없으면 동생을 데려가기도 하고.
그러다 서른 즈음에 회사생활을 관두고 번역일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전체적인 홀로서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밥도 혼자 식당 가서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카페도 혼자 가고, 술도 혼자 마시고, 영화도 혼자 보고. 출장 가서는 이미 다 해본 가닥이지만, 특별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는 소심함을 핑계로 아직 시도하지 못할 때였다. 게다가 준백수가 되고보니, 정말 남들 다 일하는 평일 대낮에 홀로 다닐 일이 많았다. 나름 거창하게 <홀로서기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여 하나씩 시도했고 뿌듯해 했던 장면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은 있는데, 아 또 결정적으로 처음 혼자 본 영화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ㅠ.ㅠ
할리우드 영화는 대형영화관에서 보고 그외 소규모로 상영하던 영화들은 종로에 있는 코아아트홀/씨네아트를 많이 이용할 때라, 혼자 처음 영화를 본 것도 코아아트홀이었던 건 확실하다. 거기서 혼자 <씨클로>를 혼자 보며 울다가 끝나고 민망했던 것도 기억 나지만, 그게 정녕 처음이었는지 그걸 모르겠다. 젠장. 어쨌든 혼자 영화관 가기를 트기는 했어도, 혼자 자주 보러다니진 않았고 늘 영화 파트너를 찾았던 것 같다. 씨네큐브가 생겨난 2000년 이후로는 퍽이나 스스럼 없이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지만, 아직도 영화는 누구랑 같이 봐야 더 재미있고 뿌듯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혼자 보는 영화는 어쩐지 외롭다. ㅋ
볼 때는 좋아라 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이 부끄러웠던 영화 파피는 이 항목에 <타이타닉>을 넣었던데 나도 막 공감했다. 재난영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좋아했고 빅토리아시대 풍 배경도 마음에 들어서 얼결에 기회가 되는 바람에 두번이나 봤다. 나중에 케이블이나 TV로 본 것까지 합치면 몇번이나 더 봤을지 원. ㅋ 나는 카메론 감독이 직접 그렸다는 영화 속 그림도 좋았는데! ㅋㅋㅋ 하지만 나중에 그놈의 뱃머리 장면까지 하도 많이들 패러디를 하니까 민망해지더라는;;;
고등학교 때 단체로 본 <사관과 신사>도 그런 영화에 속한다. 주제곡 Up where we belong 까지 엄청 좋아했었는데, 내가 좋아하던 국어선생님이 입에 막 거품을 물고 영화를 막 비판하는 거다. 구태의연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그렇구나 새삼 생각하며 감상문까지 써놨던 걸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리처드 기어 팬이라 <프리티 우먼>도 헤벌쭉 좋아라 하며 봤고, 당시엔 예뻐 보였던 줄리아 로버츠의 의상(특히 흰색 땡땡이 무늬 갈색 원피스!)도 마음에 들어했으나 뭐 이젠 리처드 기어 본인도 욕하는 영화가(세계 금융을 위기로 몰아넣은 기업 사냥꾼 미화했다고;;) 되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ㅋ
그밖에 절대 두번 볼 영화가 아닌 데 두번 봤다든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본 영화라든지, 그런 항목들은 여전히 기억의 늪에 빠져있다. 착한 어린 시절, 차마 봤다고 말을 못해서 두번 보거나 싫으면서도 꾹 참고 본 영화가 분명 있었는데 말이지... 이번 기억을 더듬으며 깨달은 사실 한가지. 십여년 전 기억보다 왜 까마득한 옛날 기억이 더 선명한 것이냐! 치매형 기억력인 것 같아서 좀 뜨끔했다. ㅠ.ㅠ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전해 해주시던 이야기들이 나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한일합방되던 해와 그 이듬해 이북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고, 만주 생활을 거쳐 한국전쟁을 겪고 90년대까지 사신 두분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개인의 역사로 지니고 계셨다. 물론 그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다 그러했겠지만 말이다. 할아버지가 젊어서 기운이 장사라 단오날 씨름대회에서 이겨 황소를 탔다는 이야기, 할머니가 꽃가마 타고 몸종까지 데리고 시집오던 이야기, 손기정 옹이 바로 이웃에 살았는데 뜀박질을 정말 잘해서 노상 심부름을 시켜먹었다는 이야기, 만주에서 여각하며 돈을 막 궤짝으로 벌어들였는데 밤마다 돈 세기가 싫어 큰고모 둘이 서로 미뤘다는 이야기,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다른 사람들처럼 집 살 생각은 안하고 곧 고향 돌아갈 거라 여겨 그 많은 식구가 여관에서 지내며 갖고 온 돈을 다 탕진했다는 이야기, 결국 평생 한량으로 사신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광주리 이고 나가 생선장수를 하며 생계를 꾸렸던 고생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수하신 덕분에 서른살 무렵까지 두분의 옛날 이야기를 되풀이해 들으며 나는 우리 조부님 세대가 아마도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지 않았겠나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드라마틱하기는 마찬가지다. 두분 역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열살 무렵 전쟁통에 피난살이 했던 기억을 갖고 있으며, 라디오와 전축에 이어 흑백TV와 컬러TV, 자동차, 컴퓨터 따위의 등장을 지켜보셨다. 젊어선 지금은 사라진 전차를 타고 다니며 통학 및 데이트를 했다고 하고, 서울이라도 동네가 높아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부모님은 결혼 이후에도 한참 물을 지게로 길어다 먹고 살았다고 전한다. 또 울 엄만 공병호 타자기라나 뭐라나 해서, 국내에서 최초의 국가공인 타이피스트 자격증을 딴 몇 명에 속한 덕분에 일터에서 콧대높은 '미쓰 리'로 불리며 그 옛날 출산휴가와 복직을 거듭하며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10년도 넘게 검찰청엘 근무했다고 들었다. 타이피스트들이 서류를 타이핑해주지 않으면 사건을 못넘긴다나 뭐라나. 그때 엄마의 흑백사진을 보면 머리 위쪽에 '후까시'를 잔뜩 넣어 부풀리고 아랫머리를 밖이나 안으로 살짝 꼬부려 '고데'(일명 '소도마끼'라고 하던가?-_-;)를 한 모습이다. 그땐 일주일에 한번 머리를 감고 월요일 아침 일찍 미장원엘 가서 그 머리를 하고는 얌전히 자면서 일주일을 버텼다나!
엄마는 옛날부터 TV를 보다가는 뉴스에 얼굴을 비치는 유명 정치인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그때는 '새파란 검사보'였다는 둥, '부장검사'였다는 둥 알은체를 했다. 막내 낳고 퇴직을 했으니 일을 관둔지가 40년도 넘었는데, 엄마는 그때 검찰청 동료 아줌마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만난다.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당시 국가정책을 무시하고 셋이나 애를 낳았다며 주변의 눈치를 꽤나 받았다는데, 엄마는 막내를 낳아 아들이 둘 되니까 그제야 마음이 턱 놓이더라고 했다. 이왕 산아제한 정책 무시한 거 딸 하나 더 낳지 그랬느냐고, 엄마가 아플 때마다 나는 계속 툴툴댔다. 아들들은 다 소용없고(!) 딸 하나는 너무 불리해!
실제로 어린 시절 내 친구들은 형제들이 대부분 많아서 보통 네다섯은 되었다. 제 밥 그릇은 지가 알아서 쥐고 태어난다면서. 그런 친구들 집에 가보면 우리 할머니가 내 이름 부를 때 고모들 이름을 먼저 두어번 부르고 나서야 성공하듯, 친구네 엄마도 자식들 이름을 부를 때 몇번씩 헷갈려했다. 울 엄만 그러는 일 없던데. 어쨌든 얼마전 <무한도전>에서 추억의 골목놀이가 종류별로 나오며, 맨 마지막에 엄마들이 저녁밥 먹으라고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들여가는 모습에 괜히 가슴이 짠했다. 요즘엔 그렇게 동네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없고, 엄마들이 골목어귀에서 "OO야 밥먹어라!"고 소리치며 아이를 찾는 일도 더는 없으니 말이다. 대신에 학원 간 아이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뿐...
더불어 내 나이와 역사도 만만칠 않음을 느낀다. 내 어린 시절 사진은 거의 흑백사진이다가 열살 무렵에야 겨우 컬러사진이 등장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리. 그뿐인가, 나도 동네를 돌아다니던 물지게, 똥지게의 기억이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고 ㅠ.ㅠ 나무로 짜인 장식장에 들어 양쪽으로 문을 드르륵 열게 되어 있던 흑백TV가 집에 생겨나, 학기초 <가정생활환경 조사서>에 드디어 '텔레비죤' 항목에 표시할 수 있게 됐음을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누런 육성회비 봉투의 추억이 없나, 교복자율화 세대라서 사복입고 고등학교엘 다닌 경험이 없나, 7,80년대 이야기가 나오면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 ㅠ.ㅠ 대학시절 좀 깨어 있는 친구들은 교양과목으로 컴퓨터 기초를 수강했지만, 나는 거금주고 산 <클로버> 타자기만 믿고 신기술을 외면했다. 먹끈이 돌아가고 자판을 아주 세게 쳐야 글씨가 새겨지는 수동 타자기만 사용해보다가, 회사에 취직해 처음 전동타자기를 접하고는 너무 힘주어 치는 바람에 한번에 알파벳이 세개씩 다다다 쳐져서 당황했던 건 또 어떻고! 사무실에 컴퓨터가 등장한 건 두번째 회사로 옮긴 이후였고, 그 뒤로도 한참이나 나는 주로 수십 종류의 서류양식 인쇄물에 기안서, 보고서, 영업계획서 따위를 손글씨로 쓰느라 끙끙대야 했다.
컴퓨터에 그나마 좀 익숙해진 건 90년대 중반이었던 직장생활 막바지. 개통하는데만 당시 돈 150만원쯤 들었던 무전기 만한 모터로라 휴대폰과 '임원진' 자동차에만 부착되어 있던 카폰을 신기해하던 나도 그 무렵 공중전화 옆에서만 통화가 되는 <시티폰>을 거쳐 PCS폰을 개통했다. 그때부터 썼던 번호를 3년전까지도 고수했으니 참 놀랍다. 그간 바꾼 핸드폰은 또 몇개나 될까. +_+ 아주 어릴 땐 집에 전화도 없어서 10원짜리 챙겨들고 공중전화 걸러 나가 까치발을 들고 다이얼을 돌렸는데, 이젠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보는 것조차 힘이 들다. 아버지 학교로 전화를 걸면 친절한 교환수 언니들이 자리 비운 아버지를 찾아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어떻게든 연결해주었고, 교복 입고 놀러가면 아버지가 교환실에 넣어놓고 퇴근시간까지 기다리게 했었다. 그러면 교환수 언니들은 간식으로 중국집에서 군만두랑 잡채밥을 시켜주었는데, 그 때 먹은 잡채밥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아직도 잡채밥은 중국집 음식에 대한 나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 극장 간판화가, 버스 차장과 더불어 교환수도 이젠 오래전에 사라진 직업이다.
이웃 블로그에서 공포 영화 <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한 이야기지만, 내가 어릴 땐 골목 담벼락에 주르륵 영화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포영화는 예고편도 못보는 겁쟁이라, 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은 글씨체로 쓰인 <캐리>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는 골목은 잘 지나지도 못했다. 방학이면 꼭 종로에 데려가 <로보트 태권브이> <똘이장군> <칠칠단의 비밀>따위의 만화영화를 보여주고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시던 삼촌 덕분에 나의 형제들은 꽤 어려서부터 단성사, 피카디리, 명보, 스카라, 국도, 대한 극장 같은데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외화의 등장인물까지도 거의 실물과 똑같이 그린 극장 간판이 걸려있던 시절이었다. 시내 개봉관 극장간판은 참으로 사실적인데, 동네 3류극장 쯤 되면 배우 얼굴을 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장간판 그림의 질이 달랐던 것도 기억난다. 오랜 독재 끝에 총맞아 죽은 대통령과 계엄령을 겪은 것이 중학생 때이니 참 나도 오래 살았구나 싶어 입만 열면 자꾸 옛날 이야기가 나온다. 꼰대스럽게도 아, 옛날엔 말이지... 그러면서. @.,@
굳이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민담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원래 그냥 지난 이야기 회상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아직 어린 조카들도 자신의 '옛날'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 너 어릴 때 이러저러했노라고 걔들은 기억도 못하는 아기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또, 또, 또... 그러면서 자꾸 옛날 이야기를 들춘다. 생각해보니, 어떤 시대를 살든 어느 세대에 속하든 인간의 수명이 워낙 길어 평생 따져보면 누구나 드라마틱한 삶과 역사를 겪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내가 <소년중앙>과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월간지를 보던 시절 21세기엔 쉽사리 우주여행을 다니고 다른 행성의 우주인과 교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그 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은 참 많이 변했고, 조카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그만큼 변해 나중엔 오늘의 현실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회상하게 될 것이다. 나의 남은 생엔 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남은 날에서 오늘이 제일 젊고 팔팔한 순간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걸 보면 확실히 내가 중년은 중년이다. ㅋ
게으름 뒷설거지 하느라 연말연시는 늘 쫓기듯 바쁘지만 그래도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한해 정리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우유부단한 속성 탓에 좀체 항목별로 셋을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_-; 마음에 꼭 드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베스트 사유를 쓰는 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라 스스로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또 이렇게 얼렁뚱땅 하고만다. 2011 베스트 포스팅. ㅋㅋ
1. 2011 베스트 책
책 목록에서 인상 깊었던 걸로만 색을 달리해두고도 꽤나 뽑기 어려웠다. 결국 독서노트를 뒤져 가장 인용문을 많이 적어둔 책을 보니 얼추 세권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의외로 남들이 다 읽은 책을 하도 안 읽은 게 많아, 이 책 또한 안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주인공 모모가 낯익은 건 순전히 <모모>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중간쯤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 아줌마가 결국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인지, 모모의 반전 비밀이 뭔지 다 기억이 났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쯤 읽었던가. 그런데도 폭풍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수많은 구절을 적어놓아 대체 뭘 인용할까 또 고민스럽다. 그래도 대강 골라 적자면...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p95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13-114
"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킥킥대고 책을 읽고 나서 감동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블루고비가 옮긴 책이라 또 다시 팔이 안으로 굽는 주례사후기(?)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었다. 특유의 유머와 집요함, 박식함이 넘치지 않게 어우러진 폴 콜린스의 글쓰기 묘미에 나도 빠져든 것 같은 데다, '책들의 종착지'라는 헌책 마을 웨일스 헤이온와이에 무작정 살려고 갔던 지은이의 좌충우돌 체험기라 소재부터 흥미진진했다. 헤이온와이를 책마을로 만든 장본인인 리처드 부스 할아버지가 작년 무슨 도서전에 한국에도 왔던데 구경갈까 하다 관뒀을 정도.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쩌면 운명이 비슷한 인생에 대해서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읽히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 p168.
"원래 작가라는 일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 p254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
다른 주민들의 책 베스트에도 많이 보이는 책을 나도 꼽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에 모든 단서가 담겨있다. 나 역시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밖엔 읽은 적이 없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이토록 맛깔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 다른 책도 찾아 올해 '몰아읽기' 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듯 열심히 친구를 모으고, 모은 표본(친구)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에 속했다." - p9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 p123
"사람은 아무리 나쁜 규율일지라도 그것이 옆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가볍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는 신비롭게도 폭력에도 적용된다." -p404
흐이구... 책 읽자마자 리뷰를 올렸으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을 것을... 아주 베스트 뽑으며 리뷰 올릴 기세다. +_+
적어둔 인용문이 거의 길어서 짧은 것 중에 골라 옮겨 적으려니 안타깝다.
2. 2011 베스트 영화 비기너스
천국의 속삭임
주노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역시나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좋다! 게다가 음향감독의 실화라니 더욱 감동;;)은 연초에 봤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아 단연 베스트 후보였고 연말에 본 <비기너스>(시작하는 연인들, 유안 맥그리거와 멜라니 로랑의 만남도 좋았지만, 일흔다섯 병든 아버지의 설레는 사랑 또한 눈물겹게 흐뭇했다. 소소한 소품과 배경도 딱 내 취향)또한 보자마자 베스트 후보임을 실감했다. 나머지 하나를 뽑는데 살짝 고민을 하긴 했으나, 역시 뒷북으로 본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주노>(개성 넘치는 주인공 주노의 선택과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주노 새엄마는 <웨스트 윙>의 CJ였어! ㅎ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If you're in, I'm still in>이라고 주노가 광고지에 적어준 쪽지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마지막 장면까지 흡족~) 가운데 유쾌한 영화를 골랐다.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하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슬퍼서 또 보려면 가슴 아플 듯.
3. 2011 베스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공주의 남자
압도적인 1위이자 군말없는 올 최고의 드라마였던 <뿌리깊은 나무>를 억지로 꼽은 나머지 둘과 같이 올릴 수야 없지. ㅋ
3회였나, 4회부터 보다가 완전 빠져들어 앞부분 재방송 찾아본 뒤엔 거의 본방사수 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송중기에서 한석규로 이어지는 이도 세종역할의 전환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니! 송중기도 다시 봤고 한석규한테는 정말 감탄했다. 극의 짜임새며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대본이며, 주조연의 연기(진정 충신 무휼과 조말생 대감까지!)며... 피칠갑을 했던 마지막회가 좀 보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가놈의 마지막 반전까지 숨겨놓은 작가들 정말 존경스럽다. +_+
"임금의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태평성대가 어디 있더냐"고 했던가, 가슴을 쿡쿡 후비는 감탄스러운 대사가 매회 툭툭 쏟아졌는데 그때그때 적어놓지 않아 다 까먹었다. 밀본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세종이 "백성은 속아도 되고 지더라도 괜찮다. 또 싸우면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사극 보면서 어쩜 그리도 요즘 정치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가 많던지. 드라마 보다 말고, 그래, 속아서 대통령 뽑은 사람들도 대선 총선에서 또 싸워주면 된다고 중얼거리고 앉았었다. 참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
두번째는 <최고의 사랑>인데 가나다순으로 사진이 밀렸;;다. ㅋ 후반부로 가면서 재미와 관심도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애정과 독고진, 띵똥 보는 재미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봤던 드라마다. 공효진을 원래 좋아했지만 연기에도 묻어나는 듯한 매력이 궁금해서 책(공효진의 <공책>)까지 사봤으니 뭐 말 다했지. 책 편집과 만듦새는 참 엉망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공효진이 전하려는 환경 메시지와 생각은 마음에 들었다. 공효진의 다음 작품 기대중.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한정적인 얼개 탓인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 차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특별히 베스트에 넣어주었다. 세령 역의 문채원의 연기력이 좋아지는 과정을 응원하며 보던 생각도 나고(한복이 참 잘 어울렸던 <바람의 화원> 때부터 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마음에 안드는 한복이 너무 많았음! 특히 그네탈 때 입었던 것.. 으으),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연기한 중장년배우(이순재/김영철)도 좋았다. 울먹이며 "우리 삼촌이 맞습니까?" 묻던 아강이 역할의 김유빈은 최고였고!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회에서 한가놈의 정체가 드러난 뒤 성삼문, 박팽년과 스쳐지나는 장면을 보며, 먼저 방영한 이 드라마에서 본 사육신 참살 과정이 떠올랐던 것도 베스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사극 잘 안보는데 베스트에 둘이나 뽑혔고, 외국 드라마는 아예 없다. BBC <셜록>을 기대했는데 아예 제작이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올해는 설마 제작되겠지.
전시도 둘만 선정했다. 둘 다 후기 올렸으니 링크 참조.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를 갔더라면 셋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만 잔뜩.
올해는 가고픈 전시를 안 빼먹고 다 갈 수 있으려나.
6. 2011 베스트 발견
엄마의 건강
정유정
Snoopy's Street Fair
게임중독자의 자질
내가 번역한 책 한권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년 한해 엄마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체중은 7kg정도 줄었고 10분도 채 못걷던 분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걸음도 경쾌해졌으며,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울증 약도 꽤 줄였는데 정신적인 안정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모습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일년에 열달은 울증, 한달은 조증, 나머지 한달만 말짱하다고 내가 농담삼아 툴툴거렸던 게 거짓말 같다. 이젠 나더러 운동 안한다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고, 최근엔 심지어 잠든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버스타고 대학병원엘 다녀오셨다. 동네 의원은 몰라도, 복잡하고 진료과도 많은 대학병원은 아버지 계실 적에도 반드시 내가 운전해 모시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혼자 대학병원엘 가서 진료받고 약 타온 건 근 10년만에 처음이 아닐지. 암튼 과거의 엄마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살았다는데, 요즘 엄마는 '열심히 살려고' 사신단다. 합창단 연습도 여전히 열심히 참여중.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이다.
정유정은 <7년의 밤> 읽고 반해 국내작가 중 유일하게 전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읽고 나니 군더더기랄까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7년의 밤>보다 <내 심장을 쏴라>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에 읽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제일 좋아 두세번은 본 것 같다. 책표지가 기묘하게도 지우 그림과 많이 비슷해서였을까(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이상스레 정이 가는 작품. 어쨌거나 주류 문학계에선 정유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대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 지켜볼 작정이다. 흥!
[#M_비슷하다고 우기기;; |접기|
아직도 안드로이드 마켓엔 없고 아이튠즈에만 있다는 스누피 마을 게임. 정말 지난 연말부터 삶의 낙이다. ㅠ.ㅠ
눈내린 겨울배경 업그레이드 버전도 좋지만 어서 봄이 와 초록 잔디 깔린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벌써 22단계. 마지막 26단계가 머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를 이루고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리세트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마을을 가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쪽이 나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무료 앱이라 깔아놓고, 결국엔 10불짜리 기프트 카드까지 사서 캐릭터를 사모았다. +_+ 처음엔 하루에도 몇시간씩 끊임없이 붙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샌 틈틈이 실행해서 동전만 벌어들이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ㅋㅋ 어제였나 연속 27일째라며,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는 동전 10만개를 또 받았다. 이러니 매일 접속을 안할 수가 없다니깐! ㅠ.ㅠ
산타 스누피 기념 캡쳐
200점 증거 사진 -_-;
네번째는 베스트가 아니라 워스트 발견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겨서 이 항목에 넣으련다. 스스로 중독자 기질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작년에 이웃에 불었던 타일깨기 게임 열풍 때도 혼자 뒷북으로 열올라선, 다들 시들해 관뒀다는데도 홀로 악착같이(?) 중독자 답게 매달리더니(하도 시간낭비가 심해 즐겨찾기에서 지웠는데도 매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끝내 <200점>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관심에서 멀어져 더는 타일을 깨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폰으로 스누피 게임에 매달리는 중. ㅠ.ㅠ 그러나 중독자임을 자각하여 자제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의를 두련다. ㅋ
7. 201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멍하니 살았다.
적고 보니 두 마디로군.
아무리 돌이켜봐도 베스트나 워스트로 뽑을 만한 기억도 없고, 뭘 딱히 지른 것도 없는 것 같고(기껏해야 연말에 산 거위털 이불 정도?), 인상 깊은 사건도 없이 그저 소소한 아쉬움 뿐이다.
그래서 베스트 항목을 더 뽑으려야 뽑을 수도 없었다. 참 재미없게도 살았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2011년을 보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속 시원.
8. 2011년 번역작업 달랑 3권이 출간됐다. 그중 하나는 두권짜리라며 위안을 해보지만, 8월 이후 하반기 출간된 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마도 출판 불황과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일 듯.
작업한 책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벌려놓은 수만 잔뜩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 그래서 일부러 적어놓았다. 정신 차리라고 쫌!
9. 2012년의 계획이라면 1. 일과 관련해서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것
2. 조금 긴 여행 (홀로 두고갈 엄마 걱정도 덜었겠다, 여행비 모을 욕심에 더욱 열심히 일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3. 기타든 그림이든 뭘 좀 배우러 다니고 싶단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발휘할 것
4. 큰 마음 먹고 이사 (과연;; ㅎㄷㄷ)
역시나 남들 다 노는 연말에 일하기 싫은 반항심에 잠시 쉬어가는 설렁설렁 포스팅.
올해는 영화를 참 안봤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관을 많이 찾지 않아서 그렇지 옛날 영화나 뒷북으로 본 영화 덕분에 총 21편이나(!) 봤다는 걸 목록 보고 깨달았다. 어쨌거나 개봉시기와 상관없이 내가 올해 본 최고의 영화 세편 고르기는 어렵지 않아 다행이다. ㅋ
1. 천국의 속삭임
2. 8명의 여인들
3. 엘리펀트맨 4. 글러브 5. 유령작가
6. 시
7. 굿바이
8. 줄리 & 줄리아
9. 양과자점 코안도르 10. 블랙 스완
11. 써니
12.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13.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 14.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 15. 주노
16. 더 퀸 17. 비기너스 18. 완득이 19. 쩨쩨한 로맨스 20.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21. 굿바이 평양
진한 글씨는 베스트 후보작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본 영화 표시다.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용.
하도 실망이라 시간 아까웠던 19번 빼놓고는 영화가 대체로 괜찮았다.
모니터를 큰것으로 바꾸니 집에서 찾아보는 영화도 꽤 볼만하다고 인정.
포스터 안퍼오고 감독과 배우 이름도 없이 목록만 주르륵 적으니 참 성의없으나, 포스팅 쉬워서 좋군. ;-p
제목이 너무 거창한 감이 있어 좀 찔린다. 얼른 고백하자면 오래 전 울며 겨자먹기로 딱 한달 탱고를 배워봤다는 이야기다. 학교 때 연극을 했었는데, 하필 내가 맡은 배역이 잠깐 탱고 추는 장면이 있었다.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극단 동아리는 아니고 매년 가을 학과 행사처럼 무대에 올리는 원어 연극이라, 순전히 숫기 개발과 영어공부(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발을 들였다가 꼬박 3년이나 코를 꿴 터였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탱고라고는 코미디언들이 우스꽝스럽게 팔을 뻗고서 <라쿰파르시타>에 맞추어 격렬하게 방향을 바꿔가며 앞뒤로 오가는 춤 정도가 고작이었다. 헌데 나더러 무대에서 그런 우스운 춤을 추라니, 난감했다. 연출을 맡은 선배는 나와 파트너에게 탱고 추는 장면이 들어간 외화 비디오 하나를 주더니 잘 보고 연구해 따라하라고 명했다. 으악. 비디오를 보고 나니 더욱 막막했다. 전혀 우스운 춤이 아니잖아! 철거 직전의 도시 폐허에서 노숙인처럼 사는 소녀가 꿈속에서 짝사랑하는 우유배달 소년과 탱고를 추는 장면이라 애틋한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하는데 탱고 음악과 함께 우리가 엉거주춤 되도 않는 탱고 흉내를 내며 걸어다니면 으레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름방학과 함께 본격 무대 연습이 시작되자 보다 못한 기획이 우리를 이끌고 학교 앞 무도학원을 찾아갔다. 노상 회식때 짬뽕 국물에 소주를 마시던 중국집 송X원 건물 바로 3층에 무도학원이 있었다. 수완 좋은 기획 선배는 이미 박카스 한 상자 사들고 가서 학원 원장과 강사를 잘 구워삶아 놓았으니 염려 말라고 했지만, 쭈뼛거리며 들어간 허름한 무도학원 분위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우릴 반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빠글빠글 파마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여 기른 퉁퉁한 원장 아줌마의 태도도 시큰둥했지만 앞으로 우리를 가르칠 거라는 강사 아저씨는 어휴... 맥가이버 머리인지 단발머리인지 암튼 뒷머리를 길게 기른데다 '올빽'으로 넘긴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통 넓은 검정바지를 잔뜩 허리춤 위로 끌어올려 입은 '배바지'를 보노라니 한숨이 나왔다. 내심 이 사람들이 진짜 탱고를 가르칠 수나 있는 걸까 의아했다.
첫날 우리 둘에게 기본 스텝을 가르치던 강사는 나와 파트너 모두 뻣뻣한 몸치임을 깨닫고 역시나 한숨을 쉬었을 거다. 둘쨋날 연출에게 호통을 듣고 쫓겨나다시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무도학원엘 다시 가보니 마룻바닥에 분필로 발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시작하는 발만 제대로 짚으면 그림 따라 번갈아 발만 옮겨도 스텝이 완성될 거라면서. 그러나 문제는 스텝이 아니었다. 상체는 우아하게 뒤로 젖히고 하체는 서로 일직선이 되도록 붙여야 한다는데, 후배였던 우유배달 소년과 나 둘 다 발놀림에 신경을 쓰다보니 당연히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엉거주춤 엉덩이는 뒤로 빠지고... 한쪽 벽면의 거울로 보는 우리의 몰골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스텝 순서는 또 왜 그렇게 안 외워지는지! 무도학원까지 보내주었는데 도통 탱고가 늘지 않자 해병대 출신이었던 연출 선배는 잡아먹을 듯이 길길이 화를 냈고, 나는 3학년이랍시고 바락바락 대들며 정 못봐주겠으면 탱고 장면을 빼라고 항변했다.
몹시도 더웠던 그해 8월, 전체 연극 연습 말고도 선풍기만 휘휘 돌아가는 허름한 무도학원에서 매일 한시간씩 땀을 삐질삐질 흘렸지만 탱고 실력은 별로 늘지 않았다. 알고보니 수업료를 제대로 낸 것도 아니었고, 기획선배가 거의 담뱃값 정도를 쥐어주며 한 일주일 기본 스텝만 가르쳐주면 된다고 했다는데 몸치 둘이 꼬박 한달이나 춤 강사를 귀찮게 했으니... -_-; 단신인 나보다 키가 한뼘 정도밖에 크지 않은 느끼한 생김새의 강사 아저씨가 직접 나를 리드하며 가르칠 땐 열심히 배우려는 생각보다 그저 지독한 그의 머릿기름인지 스프레이 냄새와 등에 닿은 손길이 싫기만 했다. 후배였던 나의 파트너도 어쩜 그렇게 춤을 못추는지 원. 강의실에서 둘이 따로 연습을 하면서도 서로 발을 밟다가 웃어대기 일쑤였다. 나중엔 도저히 안되겠는지 학원장 아줌마와 제비 같은 강사가 마지막으로 직접 시범을 보여줄 터이니 분위기만 참고해서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손을 떼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
그때까지 연습했던 탱고 음악의 테이프를 복사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비장하게 두 사람이 추는 탱고를 지켜보며, 똑같은 스텝인데 어쩜 춤이 우리와 그렇게도 다를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장 아줌마의 푸짐한 몸매도 느끼하게 생긴 강사 아저씨의 제비 같은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가벼우면서 박력있는 두 사람의 스텝과 회전이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당시 난 대사 외우기도 벅차 죽겠는데 무대에서 난데없이 탱고를 추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저 괴롭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빠져 춤도 음악도 음미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공연일은 다가왔고 얼렁뚱땅 흉내만 낸 탱고 장면도 무사히 넘어갔다. '괴롭고 어려운' 탱고와도 안녕이었다.
물론 지겹도록 들으며 연습했던 <라쿰파르시타>를 비롯해서 탱고 음악을 들으면 비싯 웃음과 함께 진땀이 나는 것 같은 조건반사가 한동안 이어지긴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몇년 뒤엔가 알 파치노가 나온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 추는 장면이 나왔을 땐 워낙 영화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불쑥 내가 몸치가 아니어서 탱고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탱고의 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영화에서 탱고를 처음 춰본다는 여자가 알 파치노의 리드에 맞춰 완벽하게 춤을 춘다는 건 리얼리티가 영 떨어지지만!
요즘 알 파치노의 그 영화와 제목이 같은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역시나 탱고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탱고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이 드라마 때문에 또 당분간 탱고 학원에 사람들이 드글드글 하겠군, 중얼거리며 옛날 생각도 함께 떠올라 웃음이 난다. 내게는 난감하고 고통스러웠던 탱고의 추억도 지나고 보니 다 그리움이다.
방바닥을 뒹굴거리던 일요일 오후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돌리다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 지금까지 잠깐씩은 적잖이 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감상한 건 아마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신빙성 떨어지는 내 기억으론 방 한칸짜리에 살던 어린 시절 TV 주말의 명화 정도로 방영되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무서워하며 보았던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왜곡된 기억이었다. 1980년작품이라니, 바로 그해나 다음해에 수입되었다고 해도 중학생 때 처음 보았다는 뜻이고, TV영화로 본 게 확실하니 수입연도가 더 뒤로 간다면 고등학생 때였을 확률도 있다. 어쨌거나 그 아련한 기억 속의 더빙 영화에서 발음 부실하고 종종 침까지 흘리는 엘리펀트 맨 존 메릭의 역할을 맡았던 성우가 배한성 씨였다는 건 퍽 생생하다. 종소리가 짤랑거리는 듯한 구슬픈 메인 테마 음악도 귀에 몹시 익고.... 어제 본 EBS 영화는 자막이었지만, 간혹 내 귀엔 배우 존 허트의 음성과 배한성 씨의 더빙 대사가 서로 뒤엉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기가 언제든 부분적으로 상당히 깊이 각인된 영화였음은 틀림없다. 마음이 아프고 계속 지켜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중간에 포기를 했을지라도, 확실히 한번 보면 쉽게 잊기 어려운 작품이다.
당시엔 병명도 모른채 그저 '괴물'로 손가락질 받던 다발성 신경섬유종증 환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아무 이유 없는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의나 호의 또한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도.
흔히 빅토리아시대라고 일컫는 19세기 중후반은 유럽열강의 제국주의가 절정일 때였고, 몹시 팽배한 인종주의 편견은 식민지에서 데려온 '신기한' 인종을 구경거리로 내세운 '괴물쇼'(freak show)를 유행시켰다. 신의 저주 또는 자연의 오류인 구경거리를 바라보며 인종적인 우월함을 맛보는 것이 제국주의자들의 유희이자 오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신체 기형을 안고 태어난 존 메릭은 당연히 부모에게 버림 받고 서커스단에서 코끼리처럼 울부짖는, 말귀 알아듣는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 저자거리에서 그를 발견한 의사(앤서니 홉킨스)는 그를 런던의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를 해보려고 하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깨끗한 환경과 의복을 제공하며 존 메릭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것뿐이다.
엘리펀트 맨 존 메릭이 의외로 '지적인' 소통이 가능한 존재임이 알려지면서 존 메릭과 의사는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황송하게도 왕실과 상류층 사교계 인사의 관심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상류층 인사들과 교류한다고 해서 '구경거리'인 그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진 건 아니다. 푼돈을 내고 몰래 병원 창문으로 신기한 괴물을 구경하러 오는 서민들이나, 고가의 선물을 들고 와 엘리펀트 맨을 접견하는 상류층 인사들이나, 그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 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건 똑같다.
결국 존 메릭을 똑같이 구경거리로 만들어 개인적인 명성을 쌓는데 이용했다는 자각을 얻은 의사와, 사교계 인사로서 제일 처음 엘리펀트 맨을 찾아가 "당신은 엘리펀트 맨이 아니"라며 "로미오"라고까지 극찬했던 런던 극장의 켄델 부인의 경우엔 확실히 다른 인간들과 달랐다고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시대가 시대임을 감안할 때 정말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점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한계였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다시 안온한 동물원 우리를 떠나 유럽을 떠돌며 서커스단의 학대와 멸시를 받던 존 메릭이 죽어가면서나마 일시적으로 다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풀어주는 이들은 그와 똑같이 '괴물'이자 '구경거리' 취급을 받는 서커스단 단원들이다. 똑같은 소외계층의 도움으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항변하며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호흡곤란 때문에 평생 제대로 누워보지 못하고 앉아서 자야했던 한을 풀듯, 포근한 잠자리에 처음으로 반듯하게 누워서.
150년이 지났지만 엘리펀트 맨 같은 존재를 극단적으로 멀리하거나, 구경거리로 삼거나, 겉으로 수용하는 체 하며 속으론 혐오스러워하는 인간의 악의는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최근 뉴스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존재도 그러하다. 그들의 행위 자체가 그릇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대체 어떤 법적, 논리적, 이론적 근거로 그들을 이 나라 재판장에서 단죄할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해적'이라고 하면 조니 뎁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나의 이상한 편견이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작금의 모든 상황을 '대단한 구경거리'이자 '무용담'으로 포장하고 자랑하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출한 것은 국가의 의무이지, 틈틈이 자랑할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는 해적 재판의 추이가 과연 아직도 다른 해적들에게 억류되어 있는 금미호 선원들의 신변에는 어떤 파장을 미칠지 나는 그게 두렵다.
아니 어떻게 이번 겨울방학엔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단 하나도 개봉을 안할 수가 있는지! 조카 다녀가는 동안 '노는' 스케줄 짜면서 볼 영화가 없어서 참 난감했다. 은근 영화광이신 공주께선 최근 개봉한 <해리포터>, <헬로고스트>, <라스트 갓파더>까지 이미 모두 봐버렸으니 도대체 남는 영화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낙점된 게 <글러브>였다. 그나마 드라마 <공부의 신>에 나왔던 귀요미 이현우가 안나왔다면 공주의 간택을 받지 못했을 영화다.
나 역시 강우석 감독 영화를 좀 뜨악해 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청각장애학생들이 다니는 청주성심학교 야구단과 타락한 프로야구 선수의 조합이라니, 안봐도 너무 뻔한 스토리가 예상되었으므로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어떻게 줄거리가 예상을 빗나가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는지 원 -_-;
(* 이제부터 나름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보실 분은 참고하세요.)
하지만 역시 이런 '뻔한' 영화의 힘은 실화에서 나온다. 청주성심학교 야구단이 정말로 아직도 전국대회에서 1승도 못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듣지를 못해서 플라이볼을 캐치할 때 콜 사인을 못해 외야수들이 전력으로 서로 달려가다 부딪치고, 심판이 아웃을 선언해야만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아는 '야구선수'들의 고군분투기는 뻔해도 예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김혜성(<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안보여 뭐하나 궁금했는데 무려 야구부 주장에 4번타자, 홈런타자였다 ^^;;), 이현우(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하얀 이빨만 드러내며 씩 웃는데 아주 귀여웠다!), 장기범(고주원이랑 진짜 닮은 것 같은데, 급성난청으로 청력을 잃은 꽃미남 투수 차명재 역할을 감동스럽게 해냈다), 세 꽃소년의 눈빛과 수화연기가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정재영은 <아는 여자>에서도 야구선수로 나왔었던 걸 보면 '술처먹고' 야구방망이 휘두르는 캐릭터가 종종 드러나는 '일부' 개망나니 야구선수 부류에 꽤나 잘 어울린다. <아는 여자> 때도 상황이 좀 다르긴 했지만 시한부 인생인 줄 알고 시합에서 제멋대로 굴었으니까. 근데 죽어라 달리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자꾸만 <김씨 표류기> 때 사각팬티만 입고 달리던 원시의 느낌이 물씬물씬 풍겨 나 혼자 킥킥댔다. 스포츠 영화 보면서 조마조마한 이유는 경기 장면에서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질까봐 염려스럽기 때문인데, 이 영화는 선수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습량이 꽤 되는듯 퍽 자연스러웠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느라 뒹구는 애들만 보면 무조건 안쓰럽고 칭찬해주고 싶은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한물간 야구선수 김상남(정재영)과 헌신적인 매니저 찰스(조진웅)의 우정도 좀 신파스럽고, 교장선생님이신 원장수녀님이며, 교감선생님, 국어선생인지 음악선생인지 정체성 불분명한 여교사(유선)까지 나머지 인물들까지 죄다 상투적이라 민망할 지경이었으나, 최종적인 나의 평점은 '그럭저럭 볼만하다'로 결론을 내렸다. 다 '야구'와 청주성심 야구선수들로 나오는 아이들의 힘이다.
올 한해는 여러모로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혼돈의 1년이었다. 그래서 한해의 마지막 날에라도 정리를 잘 하고 넘어가면 내년을 좀 더 쓸모있고 알차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목록을 만들어본다. (실은 2010 베스트 포스팅 하고 싶어서 자꾸 블로그에 쏠리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는 의도다. 한해 마지막 날까지 원고독촉 전화를 받는 진상 떨기는 부디 오늘 날짜로 버리고 가면 안되겠니.)
2010 최고의 책 3
<점선뎐>(김점선 지음/시작/2009)은 올해 첫 완독책이었다. 거친듯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빠져들며 나도 간결하고 담백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떨었다. 잊고 있던 '까마중'을 떠올리게 한 고마운 책. 김점선의 다른 책과 (뭐였는지 까먹었다) 겹쳐지는 내용이 더러 있어서 아는 이야기인데도 새삼 기쁘게 읽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함민복 지음/현대문학/2009) 시인의 일상과 사연이 하나하나 모두 정겹지만 그야말로 '주옥같은' 표현들이 툭툭 떨어지는 느낌이라 여러 구절 베껴 적어놓고 흐뭇해 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오늘밤 나는 봄 편지 한장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봄 자체가 누가 보낸 긴 편지 한장 같으니 큰일입니다." - 178쪽 <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지음/송태욱 옮김/서커스/2007) 마지막 한 권으로 뭘 고를까 고민하다 유일하게 같은 작가의 책을 두권 읽었기도 하고 올해 제일 마지막으로 완독한 책이어서 ㅠ.ㅠ 가장 인상깊었으므로 포함시켰다. 공책을 보니 쪽수도 없이 "편견이 아닌 도덕이 있을까?"라는 문장을 맨 마지막에 적어 놓았다.
[#M_내친김에|접기|2010년엔 부끄럽게도 읽은 책 목록을 따로 포스팅할 수 없을 만큼 작년 대비 3분의 1도 읽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 기록해두면 내년엔 해걸이를 했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지 않을까. 나머지 6권은 아래와 같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2 (정은궐 지음/파란미디어/2007) - 지다 니 책 빌려서 밤새 황홀경 속에 독서했음.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2 (정은궐 지음/파란미디어/2009) - 역시나 연이어 밤샘독서에 꿈까지 꾸었음
<눈뜬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2007) - 앞에 폭우 선거날 부분만 4번쯤 읽다 재시도 끝에 완독 성공한 게 인상적이었다 ㅋ.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 (이혜경 外 8人 지음/강/2009) - 서울을 고향이랍시고 둔 터라 어쩐지 읽어보고 싶어서 사둔 책이었는데 기대가 컸던지 그저 그랬다. 내가 왜 젊은 여성 소설가들의 책을 잘 읽지 않는지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양윤옥 옮김/문학동네/2009) 미시마 유키오의 첫 자전소설이라지 아마.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걸 썼을까 놀랍긴 했는데 크게 인상적인 느낌은 없었던 모양이다. 별 기억이 나질 않는군. 상대적으로 <사랑의 갈증>의 완성도가 훨씬 높았고 인물 묘사도 탁월했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김춘미 옮김/민음사/2004) <가면의 고백>에 연이어 읽으며 이 책을 더 마음에 들어했던 기억은 있으나 공책에 제목만 덩그라니 있을 뿐 아무것도 적어놓질 않아서 회상 불가능이다. ㅠ.ㅠ
이왕이면 절반쯤 읽다가 던져둔 책도 적어놓자. 내년엔 부디 완독하라는 채찍의 의미로(라지만 일종의 면피용이라는 거 다 안다;;).
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이주희 옮김/문학동네/2010)
도둑일기 (장 주네 지음/박형섭 옮김/민음사/2008)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톤 빠블로비치 체호프 지음/오종우 옮김/열린책들/2009 세계문학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김희정 안세민 옮김/부키/2010)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김남주 옮김/열린책들/2009 신판)
우리들 (예브게니 자마찐 지음/석영중 옮김/열린책들/2005 보급판)
2010 최고의 영화 3 토이스토리 3
인셉션
하하하
세편 모두 영화보고 와서 후기를 올렸으므로 긴 설명 생략; <토이스토리3>은 보자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힐 거라고 장담했고, 연이어 본 <인셉션>도 최고다 싶었다. 하반기엔 영화구경도 잘 안다녔던 터라 나머지 한편을 뭘로 꼽나 걱정스러워 나다 프로포즈에서 오늘 4시에 하는 <옥희의 영화>를 보고 나서 베스트 세 편을 뽑을 작정을 열흘쯤 전에 했으나 결국 이렇게 집구석에 있다. 영하 12도에 어딜 나가느냐고! -_-;
2010 최고의 전시 3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샤갈 전
아시아 리얼리즘 전
올해는 전시회도 그리 많이 안 다녀서 최고의 전시 셋을 간신히 꼽을 정도다. 대체 뭘 하며 산 거냐. 역시나 각 전시후기를 포스팅했으므로 긴말 생략.
2010 최고의 드라마 3 파스타
셜록
시크릿 가든
누군가는 주방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요리사가 정신병자 같다고 혹평했지만 나는 올초 <파스타>를 보며 오글오글 손발을 움켜쥐면서도 유경이랑 세프 때문에 진정 행복했다. 둘의 사랑에, 특히 유경의 솔직한 사랑법에 갈채와 응원을 보냈고 음식 만드는 장면이 나올 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신나게 봤다. ^^; 그 뒤론 오래도록 마음 붙이고 열광하며 볼 드라마가 눈씻고 찾아봐도 잘 없어서 어찌나 한탄스럽던지... 그러다 연말에 겨우 세편의 에피소드로 나의 마음을 빼앗은 영국 드라마 <셜록>과 아직은 끝나지 않았으나 여러가지로 마음 불편해지면서도( (최철원과 김주원을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했고, 안하무인 개싸가지 김주원의 몇몇 행동은 확실히 계속 문제다) 중독된 듯 주말마다 본방사수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 덕분에 목록이 완성됐다. 생각해보니 이 셋 말고는 꾸준히 본방사수한 드라마가 없는 듯;
아.. 사진 규격 안맞아서 속상하다. +_+ <파스타>는 공효진이랑 이선균만 나온 예쁜 사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지쳐서 포기. <셜록>은 크리미널 마인드, CSI, 멘탈리스트를 뭉뚱그려놓은 듯한 천재 탐정 셜록과 왓슨의 명콤비도 일품이지만, 런던 시내 곳곳이 배경으로 나오는 게 참 좋았다. 시즌2를 눈빠지게 기다릴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시크릿 가든>에서 나는 김주원과 길라임이 눈으로 대화하는 저 장면이 제일 좋았다(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나 더 좋은 장면이 과연 나올까? @.@). 하지원과 현빈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이렇게 놀라운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었겠느냐고 볼 때마다 감탄한다.
2010 최고의 지름 3 1. 일본 온천료칸 체험: 왕비마마 보필은 너무 힘들었지만 파트너를 달리해(이왕이면 친구들과) 또 가고 싶다.
2. 실내용 자전거: 과거 옷걸이로 전락했다 버려진 전적이 있으나 요번엔 계속 사용중이라는 데서 점수 획득
3. 아이폰: 정액요금과 기기값, 부가세 포함 6만원을 넘는 요금 때문에 (이전엔 3만원 전후였는데!) 아깝고 후회스러운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지난번 모니터 망가졌을 때 아이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인터넷 검색에 사용했고 잘 듣지 않던 음악도 아이팟에 넣어놓으니 틈틈이 듣게 된 변화를 생각하면 잘 질렀다고 여길란다. ㅋ
2010 최고의 사건 3 1. 요가강습 1년 달성: 그렇다. 아직도 이 엄동설한에 추위를 뚫고 요가학원엘 다니고 있다. 작년 11월에 시작했는데 맙소사. 내가 1년 넘게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다 조카 덕분이긴 하지만,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요번 겨울방학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_-;
2. 마감일 어기기 최고 기록 6개월: 한두달도 아니고 서너달도 아니고 무려 6개월이나 마감일을 어긴 건 16년째 번역인생에서 처음이다. 기록깨기 도전은 절대 안될 말이고, 다시는 이 기록에 근접하지도 않기를.
3. 파랑이랑 친해지기: 아직도 다른 개와 동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조카네 개 파랑이의 끈질긴 구애와 추근댐 덕분에 이젠 녀석을 쓰다듬어주는 수준을 넘어서 무릎에 올려 안아줄 수도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손바닥에 놓아 먹일 수(!!!)도 있게 되었다. 애완견 혐오자로서 배신의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대 사건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2010 최고의 업적(?)
올해는 번역서가 네 권(이 가운데 둘은 두권짜리 장편이라 역자교정에만 몇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출간되었고, 번역 작업을 한 책은 무려 6권(물론 지금 이 순간도 마무리 중이지만 ㅠ.ㅠ) 이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평균 두달에 한 권 작업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짓인가 싶지만, 다 작년에 게으름을 부린 탓에 밀리고 밀린 작업이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어떤 책은 계약 마감일을 무려 6개월이나 어기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업적이 아니라 만행이라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지만, 스스로 업적이라고 믿어야 내년을 성실히 준비하며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고도 아직 나를 악덕 번역가로 매장시키지 않은 출판관계자분들에게 감사와 사죄의 인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기 와보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2010년에도 최고의 공연과 최고의 음반은 꼽질 못했다. 공연은 아예 보러간 게 없고 (그나마도 예매한 유일한 콘서트였던 플라시보는 공연이 취소됐다. -_-;) 음반은 딱 네 장 샀던데 어쩌라고... 억지로 스팅의 Symphonicities를 꼽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는 신선한 느낌의 Roxanne 말고는 예전 편곡이 대체로 더 좋은 것 같다. 2011년엔 나도 최고 공연과 음반 목록에 넣을 수 있도록 분발했으면...
2010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침몰 (또는 방황)
계속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하다. 자신감을 되찾을 것.
<토이스토리 3>을 보고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던 바로 다음날 같은 영화관에서 <인셉션>을 봤다. 그것도 토이스토리 같이 보자고 약속했다가 고모를 배신했던 초딩 조카와 함께...
열세 살 조카의 표현을 빌리면 "이 영화 짱 재밌다". ^^;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조카는 도무지 이해못할 거라고 예상했지만(실은 내가 헤롱헤롱 헷갈렸다), 틈틈이 내 옆구리를 질러대며 속삭여 묻는 통에 주변 관객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둘이 집으로 돌아오며 영화에 대한 이해를 서로 맞춰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런 상상력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이름대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참 '놀라운' 감독이다!
상영시간이 2시간 반이었던가... 영화가 몹시도 길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영화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관객은 우리 뿐만이 아니어서 인터넷을 뒤져 십여가지 '설'을 읽어보며 또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과 열정이 좀 더 부채질을 한다면 꼼꼼이 한번 더 살펴보고 싶은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그런 정성을 들이게 될 것 같진 않다.
곁다리로...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다룬 <라 비 앙 로즈> 보고 나서 과거에도 좋아했지만 Non, Je Ne Regrette Rien 이 더 좋아졌었는데 이 영화에서 '킥'의 전조를 알리는 노래로 나와서 은근히 기뻤다. '후회하지 않아'라는 가사도 그들의 꿈 비즈니스와 어울리는 듯하고... 게다가 코브의 부인 맬로 나온 여배우(마리온 코티야르)가 <라 비 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로 나온 사람이란다. 동일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장밋빛 인생에선 완전 에디트 피아프의 환생인 줄 알았는데.... 뭐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