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전 만난 후배가 고부갈등의 가능성을 피해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 머리가 시원찮아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진 않는데, 암튼 남아있는 기억으론 시어머니를 자기 남편 예뻐해주는 친절한 옆집 할머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매사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는 거였다. 크핫, 하고 웃으며 대단한 묘안이라 칭찬해주고보니, 내게도 아주 유용한 발상의 전환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다, 우리가 또 피붙이들에겐 뾰족한 말 턱턱 내지르고 짜증과 성질 막 부리면서도, 남들에겐, 특히나 이웃 노친네들에겐 좀 친절하고 관대하게 구는가 말이다.

 

물론 가끔 만나서 잔소리 듣는 시어머니와 24시간 붙어 살아야하는 노년의 엄마를 동급으로 취급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그런 태도를 취하는 한은 나 또한 버럭 화도 덜 내고 막말도 덜하고 짜증도 덜 부리지 않을까나. 수년동안 말짱했던 대비마마의 심신이 다시 불안해지면서, 난 왜 그리도 안쓰러운 마음보다 짜증이 더 치미는지 원.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병이 그러는거라는 걸 머리론 아는데 입에선 이미 뾰족한 말이 튀어나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노처녀 히스테리(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아니면 갱년기 예비증상이 아닐까 하고 주변에서 염려를 할 지경이다.

 

째뜬 한번 시도해보자 싶으면서도 무딘 머리로는 생각전환이 잘 안돼서 계속 명절증후군과 후유증을 호되게 앓는 며느리에 빙의된 딸노릇을 며칠 내내 하다가는 어젯밤 드디어 '상냥한 이웃집 아줌마 코스프레'를 결심했다. 노파심에 잔소리는 좀 심해도 친절하고 마음 약한 이 이웃 할머니는  청력까지 나쁘시니,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싫어서 버럭 화를 내기보다는 측은지심을 더 발휘해야 할 때라고 굳게 결심한 거다.

 

그 결과 비오는 아침 출근시간과 맞물려 엄청 막히는 길을 뚫고 병원 모시고 가면서 오면서는 물론이고(고백하자면 주변 얌체 운전자들과 멍청한 주차장 직원들한테는 미친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저녁이 다 된 지금까지 아직 인상쓸 일은 없었다. 끈기없는 내가 얼마나 더 이 코스프레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상냥한 이웃집 아줌마 빙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못된 딸년의 본색이 드러나면 얼른 심호흡을 한 뒤 세팅을 다시 하면 되겠지...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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