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09.12.19 투덜투덜 12
  2. 2009.11.09 어루만짐 15
  3. 2009.11.06 어렵다 6
  4. 2009.10.28 서열 20
  5. 2009.09.18 애자 10
  6. 2009.09.14 주말 떼자전거 6
  7. 2009.08.20 UP 8
  8. 2009.08.10 국수 18
  9. 2009.08.07 오래 된 선풍기 13
  10. 2009.07.16 참 잘했어요 6

투덜투덜

투덜일기 2009. 12. 19. 18:15

옛날에 고모들이 할머니한테 옷을 선물하면 늘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색깔이 어떻고 소매 길이가 어떻고 <갑삭해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틀렸다는 둥, 요란해서 이런 걸 어떻게 입냐는 둥... 교환이 가능한 경우면 몇번이나 바꿔오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면 할머니가 손수 리폼을 하시거나 그냥 옷장에 처박히기 십상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면서 웬만해선 옷 선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울 엄마가 사드리는 옷은 할머니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골랐으므로 고모들의 안목보다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할머니가 나한테만은 못마땅한 부분을 털어놓을 때가 더러 있었다. "니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남자 한복을 맞춰입고 사셨던 외할머니의 외투 선택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엄마나 이모가 심혈을 기울여 코트를 사거나 심지어 제일 좋은 양모 털실을 수십만원어치 사다가 뜨개질로 떠드려도 결국 그옷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친할머니, 외할머니 공히 최고의 선물은 <현금>으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십수년간 두분 할머니께 선물할 스카프나 목도리, 장갑 따위의 선물을 애써 고르기도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애용했던 선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무난하게 가자고 산 내복마저도 색이나 레이스가 요란하다 (내 눈엔 정말 수수한 건데도!)는 이유로 슬쩍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음을 안 뒤론, 나 역시 철저하게 <현금> 선물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까다로움을 겪어보았으면서 난 또 새삼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나는 작년부터 왕비마마에게 <털신>을 사드리려고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왕비마마가 최근 1년 넘게 애용하는 신발은 딱 하나. 바닥이 푹신해 다리 당김이 덜 느껴지는 마사이슈즈다. 그것 말고 다른 신발을 신고 외출했다간 금세 발바닥과 다리가 아파져 고생을 하는 걸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발이 편하면서 가볍고 신기벗기도 편리한 (끈을 조여야 하는 마사이슈즈는 신고 벗기가 불편한 게 탈이다)  따뜻한 신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온라인에서 발견한 복슬복슬 부츠형 털신 하나는 방수가 안된다는 이유로 겨울 내내, 그리고 올해 다시 왕비마마의 실내화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ABC마트 같은 데 가서도 이런저런 신발을 만져보고 신어보다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있던 차에, ㅌㄹ마을에 새로운 유행 신발이라는 <사눅> 사진을 보고 옳다구나 싶었다. 나 또한 매장에서 유념해 보았던 그 신발이 아니던가! 주
민들이 신어보고 그렇게도 편하다니, 왕비마마의 겨울용 <털신>으로 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게다가 엠티에서 실물을 두 켤레나 보고나선 마음을 굳혔다. 그 정도면 바닥도 푹신하고 털 때문에 포근해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데 적합해 보여 이왕이면 왕비마마도 한 켤레 사드리고 나도 사 신자고.
해서 얼른 40%나 세일을 하고 있는 마을 추천 사이트에 두 켤레를 주문하고 흐뭇하게 사눅 신발을 기다렸다.
헌데 드디어 오늘 신발이 도착해 엄마에게 보여주니 표정이 좋지 않다. 방수도 안되는 신발을 겨울에 어떻게 신고 다니느냐.. 쭈글쭈글해서 신고벗기 불편하다.. 왼쪽은 크고 오른쪽은 꽉 낀다(좌우 발 크기는 누구나 다르지 않나??)... -_-;;
결국 나는 신기 싫으면 관두시라고, 왕비마마 껀 반품시키면 된다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어휴... 나는 맨발로 신어도 감촉이 좋아서 마음에 들던데 웬 타박이신지 원...
그제서야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까탈스러움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되면 원래 저렇게 까다로워지는 것인지... 나가서 같이 고르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할 거면서! 죽을 날 머지 않았으니 새옷 새신발 사들이는 거 관두겠다고 하는 것까지 그 옛날 할머니들의 레퍼토리랑 아주 똑같다. 으휴... 
그나저나 비회원으로 구입한 신발인데 한켤레만 반품이 되나 어쩌나 그것도 모르겠고 골치아파 죽겠다. 젠장.. 투덜투덜..
Posted by 입때
,

어루만짐

투덜일기 2009. 11. 9. 15:23

"나이 들수록 사람은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되는 법이다. 늙음은 심신의 쇠약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내나 남편, 정인이 살아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들은 대개 섹스를 포기함과 동시에 어루만짐까지 포기하고 만다. 어루만짐이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루만짐은 더 나아가, 때로는 죽음으로 이르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몸이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어떤 접촉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이 탓이든 다른 이유로든 외로움을 타는 사람에게 어루만짐은 최고의 약손이다." (235쪽)
                                                        -- 고종석, <어루만지다>, 마음산책, 2009

 
책을 읽을 때도 확실히 당시의 관심사나 고민거리에 따라 눈을 파고드는 구절이 다르다. 여름부터 읽다 던져두기를 반복한 책을 어제 드디어 끝냈는데, 대체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사랑의 언어와 단상들 가운데 저 부분이 유독 가슴을 울렸다.
나무토막처럼 무뚝뚝한 나의 기질에 굳이 유전인자를 따져본다면 분명 엄마한테 물려받은 것이다. 눈 나쁘고, 키작고, 팔다리 짧고, 머리숱 없는 것까지 죄다 아버지를 닮았으면서 다정다감하고 잘 <어루만지는> 성품은 왜 안 닮았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소심하고 무뚝뚝한 성격을 물려받으려거든 덩달아 눈 좋고 키 크고 롱다리에다 머리숱도 많은 유전인자를 같이 타고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무뚝뚝 모녀는 결코 먼저 손을 내밀어 부비적거리는 성품은 아니되 다정한 가장 덕분에 평생 넉넉한 어루만짐 속에 살아왔는데, 이젠 그 뚜렷한 부재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딸이지 남편이 아니야!>라고 왕비마마에게 소리쳐보지만, 그래도 엄마가 내게 원하는 건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도 조물락조물락 손을 어루만져주고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고 아프다고 하면 안쓰러워서 꼭 안아주던 남편처럼 다정히 굴진 못하더라도 가끔 외로움을 어루만져줄 따뜻한 <약손>이 틀림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덩치 큰 아기가 되어가는 듯한 엄마와 어떻게든 악착같이 철부지 딸노릇을 하고 싶은 나의 갈등은 결국 내가 힘겨루기를 포기하고 제대로 어루만지는 역할을 수행할 때 풀릴 것이다. 하지만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도 왜 자꾸 억울함이 고개를 드는지(가령,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팔순 가까운 노모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고 집안일은 한톨도 안하며 사는 진정 캥거루족 지인을 부러워하며 -_-;), 내 마음속의 철부지를 자꾸 달래보아도 잘 모르겠다. 자식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일까. 
Posted by 입때
,

어렵다

투덜일기 2009. 11. 6. 16:45

어제 친구 아버님의 부음을 듣고 밤에 문상을 다녀왔다. 작년에 엄마를 여의고 1년 반만에 다시 아버지를 여읜 그 친구에겐 언니오빠가 다섯이나 되는데도 부음을 전하는 전화를 끊으며 퍼뜩 든 생각은 <고아>라는 말이었다. 엄마아빠 다 돌아가셨고 비혼이니 아이는 아니어도 고아인 셈이라는 생각이 든 거다.
여러가지 병치레로 요즘 특히 고통을 겪고 있는 왕비마마가 걸핏하면 빨랑 아버지 따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 내가 버럭 소리치는 말도 비슷하다. <엄마도 없으면 나더러 고아로 살란 말이야?!>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부모가 없으면 고아로 느껴지는 유아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새삼 네이버 국어사전을 뒤져보니, <부모가 없는 아이> 말고도 두번째 뜻에 <북한어] 예전에 어버이를 잃은 상제가 스스로를 이르던 말>이라고 돼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니 한편으로 위로가 되지만, 그래도 역시나 <고아>라는 말은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어젯밤엔 문상을 다녀와 잠든 엄마의 어깨 위로 이불을 올려주며, 성질 좀 죽이고 좀 더 다정한 딸이 되어야지 결심했는데, 만 하루도 못돼서 오늘 계속 왕비마마랑 티격태격했다. 종종 정적속에 입다물고 혼자 있는 걸 즐기는 딸과, 온종일 틀어놓은 TV소음을 배경으로 치덕치덕 붙어서 만지고 얘기하길 원하는 엄마의 조합은 늘 어렵다. 
원래부터 오늘 약속이 있어서 외출해야 하는데, 왕비마마는 또 화난 딸의 임시 가출로 여길 게 뻔하다. 특별히 잘못한 것 없는데도 서로에게 뾰족한 말을 날리게 되는 이런 날엔 그냥 침묵의 시간이 약이란 걸 왕비마마는 왜 모르실까. 이럴 때마다 좀머씨가 생각난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 딸 참 못됐다.
Posted by 입때
,

서열

투덜일기 2009. 10. 28. 22:05

인구중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애완동물, 반려동물 키우기가 대유행인 요즘엔 나처럼 애완동물 싫어하는 인간이 정말 드물다. 아주 가끔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애완동물에 대한 반감 및 공포를 갖고 있는 이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데, 안타깝게도 주변인들 가운데 팔구 할은 나의 이런 생각을 못마땅해 한다. "애완동물이 얼마나 귀여운데! 이 매정한 인간아!"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는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모든 동물이 다 무섭고 귀찮고 싫다. -_-;;
어렸을 땐 우리집에도 개를 기른 적이 있었다. 물론 요즘처럼 깨끗하게 목욕시켜 상전 모시듯 하는 애완견 말고 마당에서 풀어놓고 기르며 집을 지키게 하는 그야말로 잡종견, 똥개였는데 생긴 것만 따지면 사실 잡종견이 어릴땐 더 예쁘다고 들은 것 같다. <캡틴>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 개도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는 외모가 봐줄 만 했던 것 같다. 엄청난 먹성으로 순식간에 커버린 뒤 디룩디룩 살이 붙더니 낯선 사람한테는 안짖고 아침마다 빨랑 밥달라고 울 엄마를 깨울 목적으로 짖어대거나,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갑다고 괜히 짖어대는 바람에 결국엔 이웃들의 원성을 사 어디론가 팔려가는 슬픈 운명을 겪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식구들은 대체로 개를 싫어해서 누구 하나 애완견을 기르자고 나서는 이가 없었기에 집안의 평화는 주욱 이어져올 수 있었다. 십수년전 동네 약국 아줌마가 키우던 애완견이 늘 홀로 집을 지키며 외로워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마당 넓은 집에 사시는 우리 외삼촌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하루 이틀 잠시 그 개를 맡아야했던 적은 있었던 듯하다. 괴로운 악몽이어서 얼른 지워버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낯선 집에서 밤새도록 낑낑대며 울어대는 그 개가 무서워서 나는 방밖에도 못나갔던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제 아무리 예쁜 애완견도 내 눈엔 무섭고 귀찮고 징그러운 존재로만 비치니 어쩌란 말인가. 혹시라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지인의 집에 가게 되면 나는 정말 오금이 저린다. 가끔씩 친해져보겠다고 놈들이 와서 내 발목에 몸을 비벼대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나온다. 
고양이는 워낙 도도한 동물이라 낯선 사람이 가면 경계만 할 뿐 엉겨붙지 않아 무서움의 정도는 똑같아도 봉변당할 일은 없는데, 개들은 왜 그렇게 들러붙는 존재인지 처음 보는 나에게도 쓰다듬어 달라고 달려느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는 그런 태도를 나에 대한 공격이자 도전으로 보기 때문에 비명부터 지르게 되고 막 호통을 치거나 (만만하게 생겼으면) 무조건 달아난다. 
헌데 웃기는 건 그놈들도 순식간에 나와의 서열관계를 파악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들을 무서워하는 걸 간파한 개들은 대번에 이를 드러내며 무시무시하게 짖어댄다. +_+ 그럼 나는 더욱 분노와 공포가 솟구치고, 애완동물 혐오증의 정도도 깊어만 갈 뿐이다. 아 왜 인간이 개랑 같은 방에서 지내야하는 건데!!! 나는 애완견이 방안을 뛰어다닐때 들리는 발톱 부딪치는 소리마저 소름끼친다. 뜨뜻한 몸과 털 밑으로 느껴지는 앙상한 뼈의 감촉도 싫고... 어린 아기랑 다를 게 뭐냐고 타박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내게는 엄연히 다르다! 아가들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개털도 안빠지고 나를 위협하지도 않는다고!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지.. (아기 싫어하는 사람에겐 또 이런 나도 똑같이 이상해보이겠지만서도 ㅋㅋ)

암튼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 공주네집에 애완견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 시집오기 전 큰올케는 애완견을 키우기도 했었고 워낙 개들을 예뻐하는 데다 조카들도 툭하면 개를 기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는 하고 있었다. 해서 <혹시라도 니들이 개를 기르게 되면 나는 절대로 니네 집에 가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그런 날을 하루라도 지연시키려 했었으나, 약발과 권위가 결국 떨어진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난 이제 니네 집에 안간다> 아니 <못간다>고 선언한 뒤 명절과 제사 때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중이었는데 (애완견이 있는 집에서 심지어 잠까지 자야하다니! 허걱!) 놀랍게도 오늘 공주네 개가 우리집으로 쳐들어왔었다. ㅠ.ㅠ 낮에 먼저 버스 타고 왕림한 공주 남매를 데리러 저녁에 온 올케가 예고도 없이 개를 안고 (강아지님이 하루종일 낮잠을 너무 자서 더는 못자게 하려고 데려왔단다) 등장했던 것! 나와 놀고 있던 조카들은 <파랑아~~~!!>를 외치며 더욱 신이나  희희낙락이었고, 강아지 또한 낯선 공간을 탐험하느라 신이 나서 돌아다녔지만... 내 반응이야 뭐 뻔한 것 아니겠나.
내 옆에 오게 하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으나, 심술공주는 개를 안고 자꾸만 나에게 들이대고 (좀 쓰다듬어주란다) 내가 지를 무서워한다는 걸 깨달은 이놈의 강아지는 기막히게도 집주인인 나에게 마구 짖어댔다. 송곳니까지 드러내면서... 올케와 공주는 몹시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그놈의 강아지가 여지껏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상대는 막내인 지환이밖에 없었는데, 감히 고모를 무시하려 든다면서.

전에도 겪어본 일이지만 새삼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져, 애완견에 대한 생각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감히 한살짜리 강아지놈이 나를 우습게 보다니! 올케들이나 왕비마마는 가끔 나를 제 친구들 다루듯 막 갖고 노는 조카들을 혼내며  <키는 작아도 우리 집에서 할머니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야. 아빠랑 엄마보다도 누나이고 언니야. 그러니깐 고모한테 함부로 하지마>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 공주네 식구들이 부디 그놈의 강아지에게도 저런 교육을 시켜주길 빌뿐이다. 젠장.
Posted by 입때
,

애자

놀잇감 2009. 9. 18. 23:49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최단기간 100만부를 돌파해 기념파티를 했다지만 나는 그 소설을 읽고 싶지가 않다. 내심 궁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나에겐 초대형 베스트셀러 기피증 말고도 엄마를 소재로한 소설이라는 점이 더 큰 요인이다. 거의 매일 24시간 이렇게 붙어지내는 모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울 엄마를 생각하면서 나는 괜스레 저 책을 안 읽기로 마음 먹었다.
영화 <애자>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철부지 딸과 병들어 죽어가는 엄마의 눈물겨운 신파극. 최강희는 세상의 딸들이 엄마랑 손잡고 가서 보기를 권했다지만, 나는 엄마와 둘인 절대로 싫었고 따로도 보기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질질 울기 싫어서 보기 좀 그렇다는 나의 말에, 그렇게 신파조로 슬프지 않고 밝게 그려졌다니 볼만할 거라고 지인이 설득을 했다. 그분에게도 병들어 누워계신 엄마가 없었다면 아마 난 끝까지 안보겠다고 우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만나면 서로의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는 사이인지라 믿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애자도 예쁘고 작가지망생의 저 방도 마음에 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애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원래부터 최강희는 내가 퍽 선호하는 배우이고 김영애 아줌마의 연기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나머지 조연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이름도 하필 <동팔>이어서 돌팔이 의사라고 놀림받는 최일화도, <찬란한 유산>에선 별로 매력을 못살렸지만 <바람의 화원> 정조 역할로 나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배수빈도, 낭랑한 목소리 때문에 좋은 장영남 편집장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김C도!
요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유독 많은 것 같은데, 외지인인 내가 보기엔 어색한지 안한지 잘은 몰라도 가끔 <몬 알아듣는> 대사가 있어서 좀 답답하긴 했다. 해운대 볼 때는 최소한 열마디에 하나쯤 못알아 들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도 강하고 세고 독하기까지 한 두 모녀의 캐릭터엔 아마도 경상도 사투리가 필수적이었을 것 같다. 
우려했던 대로 꽤 따라울 수밖에 없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 지끈거릴 만큼 피곤하게 울리는 영화가 아니어서 좋았고 툭툭 던지는 퉁명스러운 모녀의 대사하며, 구석구석 세심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였다는 느낌이 좋았고, 특히 죽음과 병을 다루는 방식이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신파 극심한 영화처럼 병든 엄마가 끔찍하게 아파하며 관객을 고문하는 장면이나 뒤늦게 철든 딸의 한스러운 통곡 장면이 너무 길면 어쩌나 몹시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에 하나 죽기 전에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그건 울 엄마 얘기 일 거라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어쩌면 세상의 모든 딸 마음 속엔 애자가 하나씩 들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간만에 유리알 가득 미세한 눈물방울이 흩뿌려져 있어서 하...하... 뜨거운 입김을 불어 안경을 닦았다.

Posted by 입때
,

주말 떼자전거

놀잇감 2009. 9. 14. 01:44

가을에 태어난 조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주말에 막내동생네서 미리 파티를 했다. 하지만 파티보다 중요한 건 내 자전거를 싣고 가서 준우왕자와 함께 자전거로 일산 호수공원을 같이 돌기로 한 약속이었다. 조카는 새로 장만한 자전거도 자랑할 겸, 그리고 요즘 "내가 워낙 빨라서 아마 고모는 못 따라올걸!"이라며 큰소리를 쳤던 자전거 타는 솜씨도 보여줄 겸 기대가 큰 눈치였다. 토요일에 비가 좀 온다고 했다면서 어른스럽게 며칠 전부터 날씨 걱정을 할 정도로...
나 역시 주초부터 주간날씨를 열심히 살피며 토요일엔 비가 안오길 바랐지만, 금요일밤부터 억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천둥번개까지 치더군. 그나마 오후부턴 날씨가 갠다기에 희망을 품었지만, 집 나서려던 2시쯤엔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며 다시 소나기가 내려 마음을 조렸다. 
어쨌거나 소나기 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토요일. 정민공주네까지 자전거를 두대나 싣고 와 꿈에 그리던 우리 가족의 호수공원 떼자전거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다혼의 우베공이 두대, 역시 다혼의 실버팁 한대, BMW 미니 자전거 한대, 삼천리 애팔래치아 한대, 성인용 자전거는 모두 미니벨로였고, 준우의 삼천리 넥스트 프로액션 SF, 지환이의 레스포 자전거, 지우의 삼천리 하이킥까지 모두 모으면 자전거가 여덟대였지만 어젠 올케가 우리 왕비마마 보필을 담당하는 바람에 준우네 자전거가 한대 빠졌고, 정민네도 자전거를 두대밖에 싣지 못해 총 여섯대가 호수공원으로 출격했다. (근데 멍청하게도 자전거 몽땅 모아놓고 사진찍는다는 걸 까먹었다. 뒤늦게 미니가 합류할 때쯤엔 조카들 건사하느라 내가 정신이 좀 빠져 있었던 모양...ㅠ.ㅠ 다음에 진짜로 다 모여 떼차질할 땐 꼭 기념촬영 해놔야지...)
9월 결심을 세운 날 딱 하루만 느루를 탔던 데다 밤새 아침까지 계속 시간대별 날씨상황을 알아보다 잠드는 바람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나는 호수공원 쯤이야..라며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에 거의 주말마다 호수공원에 놀러가서 빌린 자전거로 두어바퀴 쯤 수월하게 돌고 나서 잔디밭에 앉아 음주를 즐겼던 전적을 믿었던 것.
그런데 변수는 놀랍게도 조카들의 자전거 실력이었다. 무조건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들은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도 나에게 절대 앞장서면 안된다고, 반드시 자기네 뒤에서 쫓아와야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도 걔들보다 빨리 타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아니 쬐끄만 녀석들이 속력을 어찌나 내는지!
그나마 중간중간 사람들이 많아 속력을 줄여야 했는데도 준우와 정민 두 녀석을 따라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인데도 내가 집에서 월드컵 공원 다녀오느라 1시간 자전거 탄 만큼의 체력소모가 느껴졌다.
중간에 음료수 마시고 수다떨며 한참을 쉬기는 했지만, 막내가 앞장서 마지막으로 한바퀴를 더 돌기 시작하자 중간 무렵부터 난 도무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_+ 헥헥대며 뒤쳐져 도착하는 나를 본 동생들은 얼굴이 허옇게 됐다면서 딴사람한테 자전거 넘기고 차라리 운전을 하라고 권할 정도. 하지만 그럴 정도로 지친 건 아니었다규!!
어쨌거나 새삼 놀라웠다. 쉬지않고 재잘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체력이 대단한 것이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고모 앞에서 계속 온갖 묘기(한팔로만 잡고 운전하기, 엉덩이 떼고 페달 밟기, 두 다리 쫙 벌리고 자전거 타기, 요리조리 계속 방향바꾸며 타기 따위)를 부리느라 지쳤는지 준우왕자 역시 두 바퀴째엔 나랑 같이 뒤로 쳐지긴 했지만, 집에 와서도 또 숨바꼭질하며 뛰노는 녀석들을 보니 내 체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민공주는 제 삼촌의 뒤를 끝까지 바짝 쫓아갈 정도로 지칠 줄을 몰랐다는데, 한강변에서 제 아빠와 자전거를 오래 타도 어디쯤 오나 돌아보면 언제나 바짝 따라오고 있어 놀랄 정도라고 했다. 하기야 요즘 손과 발이 나보다 더 커버린 열두살 공주가 와락 나를 붙잡고 힘을 쓰면 나는 꼼짝없이 항복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완력이 세다.

주말에 조카들과 자전거를 타보고 깨달은 게 있다. 꼬박 1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중간중간 숨이 찰 때도 있고 일부러 완만한 경사를 올라 허벅지가 팍팍해지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슬슬 쉬엄쉬엄 자전거를 탔는지. 기어도 늘 제일 높은 데 놓고 페달질을 게을리했는데 결코 그게 좋은 운동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천변 자전거도로에 하도 사람이 많아서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이 큰 핑계는 되지만, 월드컵공원에선 더 빨리 달리는 연습을 했어야 옳았다. 앞으로도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어쨌든 어린 조카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달리는 연습을 해두어야겠다. 그래야 이렇게 몇 시간 자전거 탔다고 담날 하루 종일 지쳐 뒹굴거리지 않을 수 있겠지. ㅠ.ㅠ



Posted by 입때
,

UP

놀잇감 2009. 8. 20. 16:57

과연 이게 초절정 마감모드에 임하는 자세인가 싶게 이번주는 계속 노는 추세다. 발등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뻔뻔함의 추동력이 놀랍다.
째뜬 개봉한지 꽤 오래라 이미 다 끝난 줄 알았던 <UP>이 아직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란 걸 알고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기대를 많이 했더라도 픽사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별로 실망하는 법이 없다. 섬세한 그림과 황홀한 색채만으로도 그저 행복해지기 때문. 칼과 엘리가 살던 집은 고풍스런 가구며 사소한 소품들까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다 집어오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애니메이션에 훨씬 점수가 후하다. 어쨌거나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단언했다. <해운대>보다 <UP>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디지털로 봤는데도 장면장면 자지러지듯 놀라고 헐떡거렸으니 3D로 봤더라면 나는 간덩이가 남아나질 않았겠더라. ㅋㅋ
어쩌면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지러워하다가 끝내 3D안경을 벗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상투적인 드라마 주인공들이 홀부모 슬하에서 자란 걸로 설정되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제작비 때문이거나 출생의 비밀을 터뜨리기 위한 방편이라지만, 가족과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확실히 홀부모 가정을 다루는 시각이 의연하다. 아이없이 해로하는 노부부의 사랑과 행복도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이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재를 당연하게 드러내면서 그 대안으로 확대가족을 제안하는 듯한 부분은 동양적인 것 같지만 어디나 아이와 노인은 상통하는 데가 있으니 굳이 동서양을 따질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암튼 여름방학 이벤트로 3대가 같이 본 <UP>은 우리 3대를 모두 만족시켰다. 마지막에 자막 함께 올라가던 칼과 러셀의 새로운 모험 앨범처럼 우리도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하게나마 짜릿한 모험을 느끼며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osted by 입때
,

국수

삶꾸러미 2009. 8. 10. 16:21

어느 책에선가 국수가 혁명가들의 음식이란 얘기를 봤다. 후루룩 먹고 또 일을 해야하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이 기다란 국수발을 끊지 않고 목으로 넘기며 죽음을 경험하는 거라나 뭐라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최소한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일 순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맛 없어도 면발 몇 줄기 삼키는 건 누구나 가능하고, 노동의 중간에 후다닥 끼니를 해치우기엔 국수만한 것이 없는데다 값도 싼편이니까. 물론 전통의 맛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는 우래옥이나 을지면옥의 냉면은 사먹으려면 7, 8천원이나 하는 고가(?)의 음식이 되었지만 몇만원짜리 만찬에 비하면야 뭐. 

국수 애호가였던 이북 출신의 조부모님과 오래 살면서 나 역시 국수를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고 지금도 퍽이나 좋아한다. 내가 파스타류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국수와 워낙 친근하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할머니댁에서 살 때나 나중에 분가후 주말에 다니러 다닐 때도 그 옛날 여름이면 점심끼니는 으레 국수였다. 평안도 출신 답게 물냉면 아니면 비빔국수. 멸치다시를 내서 뜨거운 육수에 말아먹는 잔치국수는 아무래도 서울이나 남도쪽 음식인듯 집에서 해먹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저 매일 냉면냉면... 맛있는 동치미 국물을 늘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어서 인스턴트로 파는 마른 냉면을 사다가 삶고 거기 딸려오는 봉지스프로 육수를 대강 만들어 먹는 건데도 삶은 달걀 하나만 얹어 있으면 어찌나 맛있게 여겨졌던지. 할머니가 신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과 설탕을 약간 넣고 맨손으로 고추장과 함께 조물조물 국수에 비벼 주시던 비빔국수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엔 동네마다 국수가게가 있어서 빨래를 널듯 긴 젖은 국수를 기다란 가로대에 걸쳐 높은 건조대에 척척 올려놓았다가 다 마르면 걷어서 잘라 팔았다. 그땐 쌀이 부족할 때라 혼분식을 장려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집마다 국수를 참 많이도 먹고 살았던 모양이다. 국수 심부름을 가는 것도 늘 내 차례였는데, 신문지에 크게 한움큼 싸준 국수를 사들고 오며 나는 한줄기씩 그 밀가루 국수를 뽑아 과자처럼 오독오독 끊어 씹어먹으며 즐거워했다. 엄마는 배탈난다고 질색을 했지만, 국수 삶는 걸 기다리는 동안 동생들과 나는 엄마 몰래 얼른 마른 국수 한두 줄기를 뽑아 씹으며 좋아했었다. 여름이면 우리 식구들은 냉면도 좋아했지만 콩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유난히 콩국수를 더 많이 해먹었던 것 같다. 학교 급식제도가 막 시작되고 있던 시절이라 그 땐 일주일에 한번씩 우유 대신 유리병에 든 두유가 빵과 함께 나오곤 했는데, 나는 지금이나 그 때나 단맛을 가미한 콩국물을 절대로 못먹는 반면(편식은 안된다며 담임선생이 억지로 먹였다가 다 토해버린 기억이 있다) 소금을 쳐 고소한맛이 더욱 강조된 콩국물은 몹시 좋아했다. 콩을 덜 삶으면 콩비린내가 나고 너무 삶으면 메주냄새가 나기 때문에 콩국수를 맛있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엄마는 늘 푸념을 하면서도 매번 맛있는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몇해 전 나도 큰 마음 먹고 흰콩을 사다 삶아 손수 콩국수를 만들어보았지만, 콩이 옛날 콩이 아닌 때문인지 그 옛날처럼 고소하고 뿌듯한 맛은 결코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푹푹찌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도 점심끼니는 거의 언제나 국수다. 더욱이 마트에 나가보면 다양한 국수 종류는 물론이고 평양냉면 육수며 콩국물까지 1인분씩 봉지에 담아 팔고 있으니 금상첨화. 이런저런 브랜드 냉면을 죄다 사먹어 보니 굳이 완제품으로 비싸게 호화포장된 냉면을 세트로 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저렴하게 포장된 생냉면을 사고 제일 싼 봉지육수를 골라도 완성후의 맛은 거의 똑같다. 반면에 콩국물은 브랜드별로 가격과 맛의 차이가 심한 편인데, 딱히 내 입맛에 맛는 정말 고소한 콩국물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무원이가 만든 콩국물이 *정원이네서 만든 것보다 낫더라. ^^

그저께 점심은 물냉면, 어제는 콩국수, 오늘은 크림스파게티. 그끄저께는 열무비빔국수를 해먹었을 텐데, 지난주에 사온 육수와 콩국물을 다 먹었으니 내일은 또 다시 비빔국수 차례. 연일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으니 자꾸만 차가운 것만 찾아서 그러는지 계속 배탈기가 있어서 오늘은 일부러 스파게티를 해먹었는데도 속이 편하질 않다. 이어지는 밀가루 세례를 감히 내 뱃속이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더위와 스트레스에 심신이 지쳐버린 것일까. 그래도 확실히 국수는 식욕이 없는 와중에도 일단 입안에 넣으면 술술 잘도 넘어가니 신기하다. 말년에 이가 부실해 단단한 음식은 거의 못드셨던 우리 할머니가 유독 소면을 좋아하셨던 눈물겨운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밥먹기 귀찮은 심정으론 저녁끼니도 국수로 대충 때우면 좋겠구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일 점심때 비빔국수는 특히 맵게 비벼먹고 나면 늘어진 정신줄이 좀 팽팽해지려나. 국수 한 그릇 먹자마자 얼른 또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요즘의 나를 보면 국수가 노동자의 음식인 건 맞는 듯도 한데, 왕비마마는 무슨 죄람. 고종황제도 냉면을 즐겨먹었다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보다. ㅎㅎ
Posted by 입때
,
내 기억속의 가장 오래된 선풍기는 지금처럼 온통 몸체가 플라스틱이 아니라 튼튼한 철제 구조에 드르르륵 로터리식 손잡이를 돌려 20단계쯤 풍량을 조절할 수 있고, 회전조절 장치는 둥그런 날개판 뒤쪽의 목덜미에 배꼽처럼 달려 있는 것으로 아마도 상표가 <도시바>였던 것 같다. 그 선풍기는 어찌나 튼튼한지 30년쯤을 쓰고도 멀쩡했고 풍량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제일 느린 바람으로 틀어놓으면 밤새도록 바람을 쐬어도 문제가 없어 해마다 5월부터는 무조건 선풍기를 끼고 사셔야 하는 열혈남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당연히 110볼트 제품이라 트랜스로 감압을 해야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했으나 몇년 전까지도 멀쩡히 사용했는데, 그 선풍기가 어쩌다 우리집에서 사라졌는지 그 부분이 기억에 없다. 결국 망가지고 말았었나??
여름이면 방방마다 TV와 선풍기를 각자 돌려대는 건 우리집 식구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에어컨을 설치하고 난 뒤에도 우리집엔 선풍기가 늘 석 대는 완비되어 있었다. 에어컨은 두세 배로 뛸 전기요금을 감당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못견디게 덥거나 동생네 식구들까지 모두 와 좁은 집에서 득시글거릴 때나 트는 물건이니까.
사라진 <도시바> 선풍기만큼 오래되진 않았어도 아직 멀쩡한 우리집 선풍기 가운데는 이제 LG로 이름을 바꾼지 오래인 <골드스타> 선풍기가 있다. 금성, 골드스타에서 LG로 이름을 바꾼 게 최소한 10년은 넘은 듯하니, 그 녀석의 수명은 그 이상이란 얘기다. 작년 여름 끝무렵에 멀쩡히 돌아가던 날개가 깨져버리는 바람에 그만 버려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모델 번호로 LG 전자제품 AS센터 사이트를 찾아보았는데, 고맙게도 모델명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작년엔 그냥 날개 없는 선풍기를 잘 닦아 넣어두었고 올 여름이 시작되면서 나는 굳이 AS센터엘 가서 날개를 사다 끼웠다. 원래 여름마다 아버지는 제일 신제품이고 디자인이며 색깔도 화사한 LG 선풍기를 내방에 놓아 주셨는데, 이제 그건 왕비마마가 쓰셔야 할 것 같아 곧 골동품 반열에 들게 될 골드스타 선풍기를 내가 차지한 거다. 
그런데 이 선풍기가 요즘 들어 어째 좀 시원치를 않다. 큰 이상은 없는데 회전할 땐 멀쩡하다 고정만 시켜두면 뭔가 틱틱 걸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마감모드랍시고 몹시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런 미묘한 소리는 이상스레 내 신경을 긁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는데,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에서 뿜는 열기를 하루 열몇시간씩 견디려면 선풍기는 필수고 그렇다고 종일 에어컨을 틀자니 아침저녁으론 꽤 선선한 날씨에 나만 뭐하자는 짓인가 싶다. 
마감 스트레스 때문에라도 갑자기 확 열이 오르면 대낮엔 간간이 에어컨을 틀기도 하지만 컴퓨터 열기를 날려보내는 방향으로 고정시켜두는 선풍기의 존재는 밤낮으로 나에겐 필수적. 틱틱거리는 소음이 싫어 휘휘 회전시킨 선풍기로는 성에 안찬다는 얘기다.
하는 수 없이 어젠 또 하나의 선풍기를 꺼냈다. 망가진 <도시바> 선풍기의 대체품으로 사들였거나 어디선가 포인트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선풍기엔 <더위사냥>이라는 제품명과 **해상 1억 배상책임보험을 자랑하는 문구가 적혀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다. 산지 몇년 된 듯하지만 여전히 새것처럼 말끔해 보여 반색을 하며 선풍기를 작동시켰더니...
ㅋㅋㅋ 미풍 버튼을 누르면 날개가 용을 쓰듯 천천히 돌아가며 시동을 걸다가 한참이 지나야 제 속도를 내며 돌아간다. 거의 종일 틀어놓고 있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는 이 선풍기 갑자기 서버리면 어쩐다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예전엔 모든 전자제품을 수리해주는 <전파상>이 동네마다 있었지만 요샌 웬만한 전자제품 AS는 모두 자체 회사가 운영하는 곳에서 담당하니 <전파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이렇게 이름 없는 회사에서 만든 전자제품은 어디에서 수리를 하라고? 싼맛에 사서 쓰다 고장나면 버리는 1회용이란 뜻인가?
틱틱 소리를 내는 <골드스타> 선풍기는 아마도 LG AS센터에 가면 수리를 받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대형 가전과 달리 선풍기는 들고 가서 수리를 받아야한다는 난점이 있어 과연 내가 그런 수고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집안내력상 아마도 쉬이 내다버리진 못할 거다. 최소한 회전으로 틀어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오래된 물건엔 어쩐지 이런저런 역사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선뜻 내다버리지 못하는 성향은 나의 우유부단함과 함께 혈통에 잠재된 DNA의 결과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식구가 30년 가까이 이 좁은 집에서 오래된 짐을 그대로 껴안은 채 살고 있지 않았겠지.
생각해보니 오래된 추억의 <도시바> 선풍기가 30년 넘게 여름을 지켰던 데는 솜씨 좋은 아버지와 전파상 아저씨의 거듭되는 손질이 주효했던 것 같다. 누렇게 변한 전선과 플러그 연결부분에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던 게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드르르륵 둥근 손잡이를 오래 돌려야하는 그 <도시바> 선풍기가 여름마다 마루를 차지하고 있는 걸 창피하게 여기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나마 제일 오래된 <골드스타>가 완전히 고장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다. 겉보기엔 아직 멀쩡한데... 아직 10년은 더 쓸 수 있겠는데... 그러면서. 
노인들이 오래된 물건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건 자신의 처지를 물건에 투사하기 때문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망가지고 생채기 나 쓸모 없어지게 되어 외면받는 물건에서 늙고 병들어 가는 자신들의 종말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고쳐 쓰고 싶어 하거나, 그냥 끌어안고 산다는 의미다. 
나는 옛날부터 오래된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었고 아직도 낡은 물건의 처지에 스스로를 투사할 만큼 늙은 건 아닌데도 어쩐지 이렇게 나이들어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오래 된 선풍기 하나 때문에 이렇게 구질구질 시시콜콜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만 봐도 역시...
Posted by 입때
,

참 잘했어요

삶꾸러미 2009. 7. 16. 12:46

일주일에 한번꼴로 장을 보러가는 집 근처의 OOO마트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낡은 상가 건물 1층에 있다. 재래시장과 마주보는 위치이기도 하고, 워낙 옛날 건물이라 지하 주차장 따위가 갖추어져 있을 리 없으니 건물 앞 도로에 구획이 그려진 노상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마트 바로 앞쪽 주차구획을 이용하면 무료 주차 확인 도장을 받아 처리할 수 있으므로, 뱅글뱅글 멀미나게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폐소공포증 비슷한 두려움에 젖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시간도 절약된다. 
내가 식탐이 많기도 하지만, 고른 영양분 섭취까지 신경써서 나름대로 메뉴를 짜 사들이는 일주일치 장보기의 양은 꽤나 거대하다. 무거운 건 배달을 시키고 신선식품만 먼저 들고오는데도 낑낑거려야할 때가 많으므로 나는 최대한 마트 입구에 가까운 주차공간을 찾는 편이다. 따라서 마트에 갈 때마다 만나는 공영주차장 요원 아저씨도 늘 동일한 분인데, 내가 그간의 긴 공백을 어렵사리 접고 드디어 끼적거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바로 이 아저씨다.

처음 이 아저씨를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길어야 1년 반 정도.
낯선 사람과 쓸데없이 말 섞는 걸 싫어하는 내가 처음 차를 세운 뒤 이 아저씨를 만나고 뜨악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기 때문이다. 마트 입구쪽에 차를 세우면 그간 다른 주차요원 아저씨들은 아무 말 없이 시간만 표시한 종이를 앞 유리창에 끼우거나, 그나마 친절한 분들이 "마트가냐?"고 묻고는 도장 받아올 종이 반쪽을 찢어 건네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일단 차가 접근하면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무조건 양팔을 휘저어 반색하며 주차를 돕고는, 차에서 내리면 이렇게 말한다. "잘 하셨습니다!" 이면도로에 계속 오가는 차들이 있으니 주차과정이 험난할 때도 있는데, 이 아저씨는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던져 주차를 도울 때가 있다. 저러다 차에 치이지 싶을 정도로...
그러고는 마트에 간다고 하면 "아유, 잘 오셨어요."라며 주차증 반쪽을 찢어주는데,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도 잊지를 않는다. 과잉 친절에 어색해지는 나 같은 사람은 얼른 "네"라고 대꾸하고 머쓱해서 장을 보러 도망치듯 들어가게 됐는데, 처음 장을 보고 나와서 나는 좀 짜증이 났었다.
그 아저씨의 일처리가 어쩐지 굼뜨고 느렸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찍어준 확인 시간을 초과하면 돈을 더 내야하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내 경우는 하도 장을 많이 봐서 대부분 시간도장을 넉넉히 찍어받기 때문에 주차증만 척 봐도 알텐데 이 아저씨는 주차증 시간과 자기 시계, 그리고 또 다른 장부에 적힌 기록을 꼼꼼이 확인하지 않고는 보내줄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빨리빨리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 길들여진 나는 몇분 안 되는 그 아저씨의 꾸물거리는 태도에 괜히 부아가 났던 것 같다. 실은 그게 일 처리의 원칙임에도 말이다. 처음엔 아저씨가 주차요원 초보라서 그러는 줄 알고 속으로 혀를 찼지만, 1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아저씨의 주차증 확인시간이 빨라지지 않은 걸 보면 그 분은 그냥 원래 그런 분이라는 의미다.
"아유, 넉넉하네요. 잘하셨어요."라고 또 한번 칭찬의 말과 함께 무료주차 확인이 끝나면, 그 아저씨는 또 열심히 오가는 차를 살피고 양팔을 휘저으며 내가 차를 빼기 좋도록 안내를 한다. 이면도로의 주차구획선을 떠나기까지, 제 아무리 운전과 주차에 베테랑이더라도 "오세요, 오세요!" "천천히 하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조심하세요." "잘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로 이어지는 그 아저씨의 인삿말을 피할 도리는 없다. ^^
언젠가 한번은 그 아저씨가 잠시 화장실에라도 간 듯 옆 구역의 아저씨에게 주차증을 드리고 확인을 받아야했는데, 내가 차를 뺄 무렵 헐레벌떡 달려온 아저씨는 동료에게 "아유, 미안해요."라고 하더니 도장 찍힌 주차증을 확인해 장부에 끼우며 덧붙였다. "잘했어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늘 하던 자기 일에 <잘했다>는 칭찬을 들은 동료 아저씨의 표정이 궁금해진 나는 얼른 거울을 쳐다보았는데, 예상대로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칭찬쟁이 아저씨는 정말로 기쁜듯 싱글벙글.

어제도 장을 보러 다녀오며 나는 어린시절 숙제공책에 찍힌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은근히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그 아저씨의 익숙한 칭찬 3종 세트를 듣고 돌아왔다. 
"아유, 주차 잘하시네요." - 다른 차의 주차증을 발급하느라 미처 도와주지 못하는 새에 내가 냉큼  차를 대자
"잘 오셨어요." - 마트에 간다고 하니까
"아유, 넉넉하게 잘 받아오셨네요." - 30분 무료 도장 두개를 쾅쾅 받아온 나의 주차증과 유리에 끼워놓은 주차증에 적힌 시간과 자기 손목시계를 유심히 다 확인하고 난 다음에

도대체 그 아저씨는 어째서 그렇게 매사에 싱글벙글 감탄하고 칭찬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처리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인 것 같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그 아저씨를 처음엔 버럭 짜증스럽게 여겼고, 아직도 그 아저씨의 "잘하셨어요"라는 말에 민망하다는 생각이 크긴 하지만 나도 본받아야할 점이라는 건 분명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는데 말이지...
칭찬은커냥 입만 열면 뾰족한 꼬챙이로 콕콕 찔러대는 말만 뿜어대고 있는 초절정 까탈스러움을 떨쳐버려야하는데 참, 그게 쉽질 않다. 

오늘은 왕비마마한테 "잘했다"는 말을 최소한 3번은 해보겠다는 다짐의 포스팅.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