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15.05.21 이해
  2. 2015.05.08 5월 8일 3
  3. 2015.04.11 몰라요 5
  4. 2015.01.25 지우 가족의 띠 그림 9
  5. 2014.12.15 그간... 1
  6. 2014.07.29 드라마 잡담 2
  7. 2014.06.30 못해먹겠다 6
  8. 2014.06.20 엄마의 발원문 8
  9. 2014.05.06 어김없이 8
  10. 2014.01.13 연필 깎기 10

이해

투덜일기 2015. 5. 21. 23:37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라는 단언을 하지 않겠다고 노력은 하는데 자꾸만 그 말이 튀어나온다. 그냥 입장이 다르고, 태도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각도 다를 뿐 그게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내 잣대에 맞지 않으면 자꾸만 '이해 불가' 타령을 하는 걸 보니 이젠 나도 말랑말랑한 사고가 불가능해진 꼰대 기성세대로 굳어가고 있는가 해서 두렵다.


늙은 딸의 짜증에 여유롭게 "너도 늙어봐라" 신공으로 대적하는 노친네도 어렵고, 그 어떤 잔소리에도 "뭐래?"라며 무시하는 십대도 어렵고, 참자 참자 사랑으로 덮어주자, 주문을 외우면서도 수시로 버럭버럭 화가나는 내 마음도 어렵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궁극적으로 네 편'이라는 신뢰를 주기란 참 얼마나 어려운가 새삼 느끼는 중이다. 


무튼.. 5월이 조바심 속에서 이렇게 가고 있다. 이런 날들도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웃으며 옛말하는 추억이 될 거라 믿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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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투덜일기 2015. 5. 8. 20:27

아카시아꽃 향기를 처음 느낀 건 7일이었다. 5월5일에 엄마랑 앞산을 오르러 나갔을 때만 해도 연두색 봉오리로 매달려있더니만, 외출했다가 어버이날 만찬을 위해 장을 봐가지고 낑낑대며 언덕을 오르는데 향기로운 냄새가 먼저 반겼다. 아카시아 향기를 즐길 여유도 없이 계속 우울한 나날.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이렇게 우울한 어버이날이 또 있을까.


지금은 그누구보다도 효자인 큰동생. 장손이라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고등학생때 잠시 방황을 하며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었다. 그때 엄마가 벼르고 별렀다는 말. 너도 장가가서 어디 너랑 똑같은 자식 나서 속 좀 썩어봐라... 


엄마들의 저런 바람은 반드시 이뤄진다던가... 동생은 실제로 요즘 자식 때문에 엄청나게 속을 썩고 있는데, 울 엄마는 정말로 당신의 발언 때문에 그렇게 됐나 싶어 맨날 회개하고 속죄기도를 올린단다. 그런데 속없는 자식놈은 다 커서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엄마가 바란 대로 됐잖아!"라며 부모 원망을 하고, 늙은 엄마는 또 그 말에 상처를 받는다. 


이래저래 마음 상하고, 즐거이 모여 왁짜지껄 밥 먹을 상황도 아니라 동생들에게 가정의달 행사로 모이지 말자고 했다.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 내가 너무 바쁘다. 섭섭하지 않다. 진짜로 마음이 안내킨다. 엄마가 싫단다....


그래도 막내동생네는 일요일에 잠시 다녀갔고, 큰동생네는 장손 ㅈㅎ이가 대표로 어버이날 카네이션 사들고 왔다. 그래, 어쩐지 육회 감을 좀 많이 사고 싶더라니. 잘 됐네. 부리나케 전복구이에, 샐러드 두 종류에, 육회무침까지 한상을 차린뒤 밥을 푸려고 보니 아뿔사, 밥통에 밥이 한 그릇밖에 없다. ㅠ.ㅠ


점심은 파스타 해먹으면서 '보온'으로 켜져있는 밥통에 새밥이 한통 가득 든 줄 알았다. 누가 뭐래도 '밥은 내가 해요'라는 엄마의 주장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서 쿠쿠 밥솥에 밥하기는 엄마 몫인데 맙소사, 한 그릇 남았던 밥은 당연히 아침에 엄마가 드셨어야 했던 거다. 하지만 어버이날 아침을 홀로 손수 차려드시기 싫었던지, 나에겐 밥 먹었다 거짓말(!)을 하고 고구마로 떼웠던 전말이 너무 늦게 드러났다. 으악...


어버이날이고 뭐고 길길이 날뛰며 왜 밥먹는 거 가지고 거짓말 하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치다가 다 차려놓은 밥상이 식어가는 가운데 씩씩대며 새로 밥을 앉혔다. 올 어버이날은 이래저래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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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투덜일기 2015. 4. 11. 11:25

50년 가까이 같이 산 엄마한테서 가끔 아직도 신기한 점이 발견된다. 오 놀라워라. 사람 참... 몰라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젠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이었던 거다.


왕비마마에게서 어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활자중독증'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주변의 다독가나 인문학 전공자나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이 특징은 그 어떤 활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전단지나, 심지어 화장실 낙서도 죄다 읽어야한다고. 나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중독'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혹은 눈이 피곤하면 자잘한 글자 피해 질끈 눈감기도 하고 관심없는 분야는 단호히 외면할 수 있다. 헌데 울 엄마는 하이고...


공식적인 '안산 벚꽃축제'가 오늘부터라기에 우리는 일부러 어제 꽃놀이를 나섰다. 집앞에도 벚꽃이 한창 만개했지만 꽃길을 걸으려면 역시 나가는 수밖에. 실은 꽃놀이 핑계대고 자락길을 한 바퀴 끌고 돌 심산이었다. 총 7km이고 보통 걸음으로 2시간 반 걸린다는데, 동네 주민이면서도 우린 아직 한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 후배들 데리고 거의 한바퀴 돌긴 했지만 자락길 중간에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온 터라 완주라곤 할 수 없으니...


좀 무리인 것 같았지만 암튼 결과적으로 자락길 완주엔 성공했다. 4시간만에. ^^; 안산 자락길은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이라 별 걱정을 안했는데, 우리집에서 자락길 입구까지 가는 오르막길과 계단이 복병이었다. 자락길 진입 시작도 전에 2, 3번이나 쉬었을 정도. ㅋㅋ 자락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중간중간 벤치가 보일 때마다 무작정 주저앉아 쉬어야하는 저질체력 노친네를 모시고 너무 무리하는 건가 더럭 걱정도 되었지만, 1/3쯤 갔을 때 중단하려면 너무 늦기 전에 되돌아가야한다고 했더니, 본인이 완주 의지를 불태웠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고 왕비마마를 놀려대긴 했지만, 중간에 벤치에서 만난 어느 아줌마가 매일 한 바퀴씩 도는데 안 쉬고 걸으면 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4시간이면 절반씩 걷고 쉬었다는 의미다. 70대 노친네가 뭐 그만하면 선방이라고 인정. 느릿한 걸음이야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조를 맞추기로 했지만, 가뜩이나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한 상황(내가 원래 성질이 급해서 걸음이 좀 빠르다)에 불을 붙인 건 바로 엄마의 '활자중독증'.


자락길 곳곳에 위치를 알리는 번호 팻말이 붙어 있고, 갈래길마다 표지판도 붙어 있는데 아오, 왕비마마는 그걸 죄다 소리내어 읽어야 지나치신다. 현재 위치 12-1, 너와집 442미터, 봉수대 1.2킬로미터... 설상가상, 서대문형무소 주변이기 때문인지 자락길 곳곳에 항일인사의 활약상이나 남긴 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그 또한 서서 다 읽어야 지나가시는 거다! 으으으... 

김지섭은 나도 금시초문... -_-;


근대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널리 알린다는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산에 가면 흔히 나무에 묶어놓은 '입산금지' 표시처럼 펄럭펄럭 천조각에 여기저기 난간과 나무에 노끈으로 매달아놓은 모양이 내 눈엔 심히 거슬렸건만, 오마니는 모르는 사람 많다며 또 열심히 그 앞에 서서 읽고 계시더라는..


"힘드니까 일부러 서서 쉴라고 다 읽는거지!"라고 내가 퉁박을 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나무 이름 팻말이며 지난 식목일에 심은 듯 새로 묘목에 달아놓은 성명 꼬리표, 스틱 및 아이젠 사용 금지하고 달리기도 하지 말라는 자락길 주의사항, 바위에 적어놓은 오래된 낙서까지 빠짐없이 중얼중얼중얼... +_+


장장 4시간(집에서 나간시간부터 따지면 무려 4시간 40분)에 걸친 자락길 완주를 치하하는 의미로 탕수육과 잡채밥을 사드리고는 (실은 나도 고단해서 집에 와 저녁 차리기 싫었다;;ㅎㅎ) 기어코 내가 한 마디 했다.


엄마는 활자중독증이야! 


다달이 날아오는 사학연금 회보랑 서대문구 소식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서 챙겨뒀다가 두고두고 읽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거였나. 난 또 그냥 못버리는 병인 줄 알았지 거기 찍힌 활자에 탐닉하시는 건 줄은 몰랐지 뭔가. 사람 참.. 몰라요... 


저 앞에 또 뭐라고 적혔나 보자... 힘차게 걸어가는 오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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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그림을 별로 안 그린다는 지우. 아주 가끔씩만 기발한 착상과 솜씨를 보여주곤 하는데, 새해 들어선 자기네 식구들을 띠 동물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어찌나 디테일한지... ㅋㅋㅋ

2015년 1월 3일 지우 10세 (3월에 3학년됨^^)


주말에도 노상 출근해 애들과 얼굴 마주칠 일 드물다는 돼지띠 아빠는 일벌레 돼지란다. 워낙 바빠서 가방 열린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모습이라고.
말띠 형아는 공부벌레의 이미지. 너무 열심히 공부하느라 눈에 핏발이 섰다. ㅋ
토끼띠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트레드밀을 걷고있다. 요새 특히 운동에 힘쓰고 있다나.
마지막으로 개띠 본인은 침대에 드러누워 빈둥거린다. 야 조용히 해... 라면서 ㅋㅋㅋ

어제 가보니 그림 옆에 성격과 특징도 적어놨던데 화가께서 자기 항목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설명해놓았다. 평소 담날이 시험인지 아닌지 통 관심없이 제 맘대로 사시는 편이라고... ㅋㅋ

양띠 고모 그림도 좀 그려주십사 부탁했더니 포복절도할 작품을 선사해주었다. ^^;;
2015년 1월 3일 지우 10세

그림 왼쪽의 양은 고모와 동갑이신 이모 양의 모습. 치킨과 피자를 비롯한 온갖 음식들을 차례로 비워 앞쪽에 빈접시를 쌓아놓고 계시다. 내가 알기론 키도 크고 날씬한 분인데 저런 탐식양으로 그려내다니 ㅎㅎㅎㅎㅎ

오른쪽 고모 양의 모습에서 북실북실 검은 양털과 함께 주의 깊게 봐야할 건 개구진 표정으로 양팔에 매달려 양을 괴롭히고 있는 말과 호랑이다. 그들은 바로 말띠 지@이형과 호랑이띠 정O이 누나!
지우는 저 두 남매가 평소 얼마나 고모를 못살게 구는지 안 봐도 다 알고 있었던 것! (하긴 지난번 제삿날 지우가 홀로 남아 자고가게 되자, 지@이 형아는 지우에게 '잠 안자고 고모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죄다 전수해주고 갔고, 함께 남았던 정O누나의 만행?을 다음날 아침 지우가 일부 목격하긴했다;;) 

양팔에 두놈을 매달고 ㅠㅠ 길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 팔 모양은 설마 하트인가? 너무 사실적이고 웃겨서 아주 배꼽을 잡았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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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투덜일기 2014. 12. 15. 16:50

마지막 포스팅을 한지 한 달이 넘었다. 다른 때는 종종 중간에 비공개로 써놓은 글도 있곤 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완전 블로그를 방치했다. 바쁘기도 했고 확실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간... 별일이 좀 있었다.

늘 허둥대듯 폭풍처럼 몰아쳐 원고를 마감했고,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못 미더워 붙들고 매달렸던 원고를 이메일로 보낸 뒤 허겁지겁 대충 싼 짐가방을 끌고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3월에 시도했다 실패했던 터키 여행. 7박9일짜리 패키지 상품에 3일을 연장해 짧게 자유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두어달 전부터 예약을 해놓고도 정말 가도 될까 염려하며 이번에도 타의로 못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일주일 전 출발확정일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귀국편 비행기 연장도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는 그래, 이번엔 확실히 잘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인 게야, 그렇게 생각했었다. 같이 가는 후배 J도 나도.

하지만 마음이 그리 가뿐하진 못했다. J의 어머니는 암투병 중이셨고, 울 엄마는 중이염 치료를 위해 입원을 권유받는 형편이었다. 심지어는 월요일 출국 예정인데 토요일에 의사가 얼른 치료 시작하자며 엄마에게 입원장을 내버렸다. 거기서 엄마는 또 넌 예정대로 가려므나, 난 홀로 입원할테다... 그러시고 ㅠ.ㅠ 막대한 취소 수수료를 물고 이번에도 터키를 포기해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의사와 원무과에 다시 뛰쳐가서 입원 못한다고 버텼다. 2주 뒤나에 입원 가능하다고.

암튼 우여곡절 끝에 떠나 도착한 이스탄불엔 계속 비가 내렸다. 12월부터 우기라더니 왜 벌써! 비쯤이야 뭐 방수재킷에 우산까지 준비했으니 맞아주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카파도키아에선 심지어 폭설이 내렸다. 우리보다 하루, 이틀 먼저 여행을 시작한 팀들은 폭설에 고립되어 산맥을 넘지 못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식도 들려왔으니, 열기구를 못 탄 것쯤이야 불운도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야했다. 그래, 눈 덮인 터키를 또 언제 내가 구경하겠니, 그러면서.

지중해쪽 안탈랴, 케코바에 갔을 때만 잠깐 날씨가 개었을 뿐 그밖엔 계속 우중충 비가 내렸고, 장기여행이 하도 간만이라 그랬는지 서둘러 짐을 싸서 그랬는지 내가 가져갔던 옷들은 너무 두껍거나 얇아서 춥지 않으면 더워서 낑낑대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나마도 챙겨간 바지도 티셔츠도 갯수가 부족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사프란볼루를 떠나 다시 이스탄불로 갔다가 인천공항에 내리니 우릴 기다리고 있던 건 엄청난 한파. 엄마가 미리 보일러를 돌려놓았다는데도 방의 냉기는 그날 밤에야 비로소 좀 가시는 듯했는데, 오자마자 세탁기 돌려 빨아놓은 옷들이 다 마를 새도 없이 다시 병원 짐을 싸 귀국 다음날 곧장 엄마를 입원시켰다. 

집에 돌아와 딱 하룻밤 자고 다시 떠돌이처럼 병실 쪽잠을 자야한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여행 파트너였던 J에게 엄마 상태는 좀 어떠시냐고 문자를 보내도 통 답이 없었다. J도 귀국하자마자 잡지 마감 들어가야한다더니 바쁜가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곧이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J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던 어머니가 우리 떠나 있는 동안 돌아가셨다는 것. 여행 중 J가 계속 가족들에게 어머니 안부를 물었을 때도 분명 암말 없이 신경쓰지 말고 잘 놀다오라고 했다던데, 어떻게 그런 일이. 

알고 보니 이미 우리가 터키 가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돌아가셨기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곧장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도 시간상 장례절차가 다 끝난 다음일 것이 뻔해서 식구들이 아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란다. 아아. 자식으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만큼 평생 한이 되는 일이 없다던데 얼마나 기가 막힐까...  괜히 터키 여행을 강행했구나 싶어 J에게도 그 어머니에게도 죄스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나이롱 환자처럼 그냥 시간 맞춰 항생제 주사만 맞으면 된다던 멀쩡한 엄마가 혈압 불안정으로 입원기간 동안 또 나를 식겁하게 하는 상황도 어쩐지 천벌 받는 것 같고... 안정되지 않은 떠돌이 같은 삶이 3주를 넘어가니 심신에 쌓인 피로로 신경은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 J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것도 어쩌면 몹쓸 짓일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마음의 무게를 덜어보겠다는 심보가 아니고 뭔가. 그래서 이 글은 생각을 좀 더 해본 뒤 공개를 안하게 될수도... 그치만 너무도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7년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곱씹으며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 자책하는 과정을 자꾸 되풀이하게 된다. 역시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왜 하필 올해 내내 터키 타령은 해가지고... 나도 이런 지경일진대 J는 괴로운 마음이 오죽할까. 부모님을 잃었을 땐 섣부른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고, 더욱이 나는 이런 상황을 야기한 죄인인지라 J에게 더더욱 할 말도 면목도 없다. 이럴 땐 나 말고 차라리 남탓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으니 J가 내 탓을 하며 욕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고...  

아무튼 우리 엄마는 무사히 8일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고, 나 역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터키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서 사진도 들여다보지 못하겠고 계속 가슴이 먹먹하다. 때로 인생은 참 가혹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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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잡담

놀잇감 2014. 7. 29. 15:09

요샌 통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정붙이고 볼만한 드라마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들도 하나도 못/안봤다. 일단은 다운로드족이 아니라서 몰아보기도 못하고, 내 방엔 케이블이 골고루 안나오고.. 그렇다고 시간 맞춰 본방이나 재방을 볼 부지런함은 앞으로도 영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다 귀찮고 시큰둥한지 원... 


하여간 그런데도 가끔씩 엄니 따라서 보는 드라마가 있으니 <참 좋은 시절>과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주말드라마로군. 공중파 주말드라마의 특징은 몇주 안보다가 보아도 내용 이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인 것 같다. <기분 좋은 날>의 경우 일요일엔 <개그 콘서트>에 밀려서 안보는 날이 많은데도 등장인물 관계를 다 알겠으니 원... 암튼 KBS 주말 연속극은 울 엄마의 경우 어떤 내용이든, 배우가 누구든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틀어놓고 보신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적응 못해서 한달 쯤은 고생을 하면서도 딴데로는 채널이 절대 안 돌아간다! 어휴... 참 놀라운 충성심이라고 해야할지.


<참 좋은 시절>의 경우 이서진이 주인공인데, 엄마도 나도 <꽃보다 할배>로 뜬 투덜이 서지니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참고 보려다가 한참을 괴로워했었다. 울 엄마 왈,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 때가 백배 낫단다. 드라마에선 하도 무게를 잡고 인상을 써대서 늙은 아저씨 같다고... 여주인공이랑 안어울린다나. (심지어 이서진은 노총각이고 김희선은 애엄마인데도! ㅋㅋ)  그럼에도 울 엄마가 인내심을 갖고 그 드라마를 보는 건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쓰는 귀여운 애들(동원이 동주) 덕분이 칠할 쯤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본처인 장소심 여사(윤여정)과 첩 하영춘 여사(최화정)의 관계가 아닐까 대충 짐작하고 있다. 


바람둥이 남편이 오래 전 나몰라라 내팽개친 집안을 일구며 시아버지에 쌍둥이 시동생에, 배다른 막내아들에, 또 그 막내아들이 고딩때 사고쳐서 낳은 쌍둥이 손주들까지 호적에 자식으로 올려 보살핀 '보살' 같은 사람이 바로 장소심 여사(윤여정)인데, 첩인 하영춘(최화정)과의 애틋한 관계는 거의 놀라울 지경이다. 십수년간 남편 없는 집에서(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둘이 한 방을 쓰며 자매처럼 모녀처럼 지냈을 정도.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바람둥이 남편이 있는 집안이거나 불임의 문제로 후처를 들인 경우 형님, 아우 해가면서 본처와 후처가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사는 일이 옛날엔 꽤 많았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외갓집이 그랬다니 뭐 말 다했지...


내가 울 엄마의 친할머니, 그러니깐 증조 외할머니이신 '송씨' 할머니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반해, 울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에도 떡하니 한복 입고 가족사진에 찍힌 울 엄마의 '큰엄마'에 대해서는 통 기억이 없다. 그분이 증조외할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암튼 울 외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남매를 키우던 중, 살림 해주러 일 다니던 같은 동네의 어느 집에 아들을 낳아주러 후처로 들어가게 된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고향 가는 배를 탔다는 남편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가족 부양의 의무는 계속 외할머니 몫이었다...) 


딸 하나만 낳고서 계속 아이를 낳지 못해 대가 끊기게 생긴 그 하씨 집에, 외할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더 낳아주었고 본처와 후처는 나란히 한 집에서 애들을 건사하고 키웠다. 원래 있던 두 아이(울 엄마와 큰외삼촌)도 바로 윗집에 살면서 잠만 따로 잤지, 밥은 다같이 먹었다는 것 같다. 울 외할머니에겐 시어머니가 되는 송씨 할머니가 건재하셨기에 집까지 다 합치진 못했던 듯... 암튼 그러다 하씨 할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떴으니... 남은 건 우글우글 여자들과 올망졸망한 애들뿐. 


드라마 속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처럼 울 외할머니와 본처 할머니는 오손도손 같이 살며 애들을 함께 키웠대고, 동네에 작은 절을 지어 바칠 만큼 돈이 꽤나 많고 살림살이 규모도 컸다는 하씨네 집안일을 같이 돌봤다고 한다. 울 엄마는 하씨네 본처 아줌마를 큰엄마라고 불렀던 반면, 울 외할머니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은 본처를 그냥 엄마, 낳아주신 생모인 울 외할머니를 '작은엄마'라고 불렀단다. 그러니깐 울 외할머니 역할이 최화정이란 말쌈. +_+ 일반적으로 남편이 바람기가 많은 오입쟁이라 후처를 들이는 경우 본처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본처가 아들을 낳지 못해 스스로 아들 낳아줄 후처를 주선하는 경우엔 사이가 좋은 경우가 더러 있단다. (아무리 그래도 참 놀랍다! 곤경에 처한 여자들의 동지애, 자매애는 어디까지 가능하단 얘긴가...) 


째뜬 울 외할머니는 평생 그 하씨 집안 호적에 오른 적 없이 그냥 대를 이어준 첩으로만 사신 분이다. 생계 때문이긴 하지만 이씨 성을 가진 두 자식을 데리고 정식으로 개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에게 법적인 어머니 노릇도 할 수 없는 정말 딱한 처지에서 두집 자식들에게 모두 죄스러워하며 사신 것 같다. 체력이며 목청이며 천성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인데, 자식들에게는 늘 전전긍긍...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본인이 낳지 않은 하씨네 큰딸까지  하나같이 죽어라 속들을 썩여대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김치 담가 나르고 사고치면 뒷수습하고... 그러셨다. (젤 멀쩡한 자식인 울 엄마만 해도 걸핏하면 우울증이 도졌으니 뭐;;) 하여간에 울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울 외할머니와 '큰엄마'의 사이는 몹시 좋았고, 첩이 낳은 아이들도 다 엄청 예뻐했단다. 대를 잇게 된 두 아들 뿐만 아니라 막내딸까지도 주로 업어 기른 사람이 '큰엄마'였다나.본처 입장에서 볼 때 울 외할머니가 자신의 법적인 지위를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다른 자식들을 예뻐하다 못해, 엄연히 따지면 남남인 울 엄마와 큰외삼촌까지 잘해줬다는 걸 보면 본처나 후처나 두 양반 성품이 워낙 착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 '큰엄마'라는 양반이 아기 손가락 하나만 붙잡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우리 외갓집의 경우 남편의 이른 사망으로 본처와 후처간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집안을 일구었다면, 드라마 <참 좋은 날>의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수십년간 집밖으로 떠돌던 바람둥이 남편(김영철)이 돌아온 것! 당연히 두 여자의 공분과 미움을 살 수밖에 없고, 울 엄마 역시 그들에게 공감하며 김영철 아저씨를 엄청 욕하며 드라마를 보고있다. 저런 남편은 없는 게 낫지.. 라면서. 최근 이야기는 돌아온 남편 때문에 결국 첩이었던 하영춘이 집을 나갔고, 다들 늘그막에 노부부가 행복한 재결합을 하나보다 짐작하지만 장소심 여사가 이혼 카드를 내밀며 파란이 인다. 평생 희생하며 산 아줌니가 엄마 노릇 지긋지긋하다고 집을 나가겠다니 원... 


드라마에선 본처의 이야기지만 장소심 여사의 희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보면 나는  울 외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본처도 일찍 죽고 결국 모든 집안 건사와 자식 교육의 책임은 울 외할머니의 어깨에 떨어졌다. (울 부모님 결혼식 사진 속의 하씨 형제들은 모두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 차림이다.) 외할머니는 86세까지 장수하셨고, 계속 꽤 큰 살림 규모를 유지했지만, 본인 명의로는 그 어떤 재산도 남아있지 않았더랬다. 미리미리 죄다 자식들 공동명의로 해놓았는데도 또 그 지분을 놓고 하씨네 자손들은 장례 끝나기 무섭게 박터지게 싸움을 해대고...  윤여정이 이혼선언과 함께 가출 결심을 밝히면서, 엄마 노릇이 지긋지긋해서 이제 관두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 공감이 됐다. 아오.. 안봐도 비디오지... 얼마전까지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 시아버지 봉양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아무튼 하도 설정이 신파스럽고 구식이라 8,90년대가 배경인 줄 알았던 드라마는 요즘 이야기였다. ㅋㅋ 울 엄마 세대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울 할머니 세대에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으니 당연히 인기가 없지 싶지만, 암튼 나와 울 엄마는 주말 저녁 밥먹고 나서 잠시 쉬는 동안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답답한 구세대 드라마를 계속 보지 않을까 싶다. 울 외할머니의 인생은 일제 강점기에 남편과 이별한 이후 단 한순간도 아름답게 피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에겐 참 좋은 시절이 오긴 오려나..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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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먹겠다

투덜일기 2014. 6. 30. 22:00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파트타임 애보기라고 해야하나? 암튼 전업주부로 들어앉았던 큰올케가 또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당분간 12살짜리 조카를 보필하는 임무가 내게 떨어졌다. 그래봤자, 화목토에 다니는 수학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고, 매일 저녁 해먹이고, 밤에 집에다 데려다주는 일이 전부다. 


열두살 조카는 이제 집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우리집에 오는 법을 확실히 익혔기에, 월수금엔 방과후 집으로 선생님이 찾아오는 피아노와 영어 과외를 받은 뒤 숙제거리를 싸가지고 저녁을 먹으러 11정거장 거리인 우리집으로 버스타고 찾아온다. 다행히 수학학원 가는 날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걔네 엄마가 학교부터 학원까지 픽업을 해주거나 둘이 택시를 타고(!) 연희동으로 간단다. 애들끼리만 택시 타는 게 나는 너무도 못마땅한데, 조카의 친구 엄마 말로는 자기네 애는 하도 택시를 많이 타고 다녀서 염려 없다고 장담했고 올케도 별 거부감이 없는 눈치다. 


처음 며칠은 갑자기 달라진 삶에 심술이 난 조카가 집으로 고모가 자길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었고, 그렇지 않으면 택시를 탈 테니 큰길가에 내려와 있으라고 해서 몇번인가 데리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 고모는 바빠서 죽겠는 기간인데... 암튼 그래도 조카는 금세 리락쿠마 인형에 충전된 티머니로 버스 타는 묘미를 익혔고, 희희낙락 고모네 와서 마음껏 할머니 방 TV를 볼 수도 있고, 하녀처럼 살뜰하게 저를 챙기는 고모를 이리저리 부리는 재미(고모 놀자! 고모, 아이스 메밀차 먹을래! 고모, 방울토마토 먹을래! 고모, 바나나 먹고싶어!--집에 없어서 결국 사다줬다--고모, 얼음만 컵에 잔뜩 담아줘! 고모, 이제 우리 집에 가자! 고모, 우리 집에 같이 들어갔다가 가자!... +_+)에 길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주와 오늘까지 기말고사기간. 괜히 왔다갔다 붕 뜬 마음에 시험공부라도 잘 못하면 어쩌나 괜히 내가 눈치가 보여서 정말로 왕자님 모시듯 떠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라 나도 아직 녀석을 애기취급하는데, 엄마 손길이 적어져 애가 맘상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행히 지난주 영어시험도 그렇고 오늘 기말고사도 잘 본 것 같단다. 물론 성적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ㅋㅋ 어쩔 수 없이 나도 성적지상주의자로다. 그치만 고모가 보필해서 성적 떨어졌단 말은 듣기 싫은데;; ㅠ.ㅠ) 


그러다 2주째였던 지난주 중간쯤엔 괜히 스트레스 폭발, 조카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영어과외를 째기로 애 엄마와 통화를 하고 애를 집에 데려왔는데, 시험기간 직전이라 굳이 과외선생이 우리집으로 찾아와 수업을 하겠다고 했던 날이었다. 6시에 온다고 해도 7시에 수업 끝나면 저녁이 늦어지는 판국에, 설상가상 길이 막혀 과외선생은 6시 반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난 원래 끼니 시간을 넘기면 분노 조절이 안된다. ㅠ.ㅠ 6시 반엔 저녁밥을 먹어줘야;;) 괜한 신경질에 조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왜 자기한테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아... 화를 낼 대상은 그냥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이었거늘. 금방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매일 조카 저녁 챙겨먹이는 건 뭐 원래도 하는 일에 밥숟갈만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늘 영양 만점이라고 생각하는(아닌 날도 많은데 ㅠ.ㅠ) 고모의 밥상을 조카가 엄청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제 엄마에게 고모는 된장찌개도 대충 끓이는 데 엄청 맛있다고 했단다 으휴...) 편식 없이 아무거나 해주는 대로 잘 먹긴 하지만, 반찬에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저녁약속도 잡을 수가 없다! (엄마 혼자 한끼쯤 홀로 챙겨드시는 건 문제 없어도 손주 끼니 보필은 좀 무리인 게 사실.)


매일매일 조카에게 현재 어딘지, 집에 왔는지 학원에 갔는지, 예정대로 그 시간에 데리러가면 되는지, 혹은 버스 타고 오는 중인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아야 하고, 학원앞에 데리러 가서도 주차할 데 없으면 또 부리나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모든 상황이 나에겐 스트레스. 도대체 사교육에 힘쓰는 이땅의 엄마들은 어떻게 애들을 키울까! 난 겨우 2주만에 못해먹겠다 무자식이상팔자구나, 궁시렁궁시렁 온갖 투정을 해대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금요일엔가 나온 김에 저녁 먹고 들어가자는 말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가서 조카 데려다가 밥해먹여야 한다고 하자, 애들 다 키워놓은 지인들이 킥킥 웃었다. 운전해서 애들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거, 그거 마흔살 이전에나 할 수 있는 중노동이야! 라면서. 


물론 한정없이 내가 계속해야 하는 일은 아니고, 올케가 직원을 뽑아 일이 자리가 잡히면 곧 놓여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 아마 나더러 계속 하라고 하면 어디로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부모 노릇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다고 익히 생각은 해왔지만, 역시 난 엄마가 될 수 없는 잠깐잠깐 조카들을 예뻐하는 고모일 뿐이고, 온전한 책임은 버거워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고 하는 말을 새삼 이렇게 뼈저리게 실감할 줄이야... 

매일 같이 지네 집과 고모 집을 전전해야 하는 조카녀석도 안쓰럽고, 집에 데려다줄 때마다 가끔씩 얼굴을 보는 고딩 큰조카도 어쩐지 안돼 보이고, 목이 다 쉬어 계속 피곤한 몸으로 오밤중까지 돈벌이에 힘쓰는 올케도 안쓰럽고, 갑작스런 애보기 신세에 스트레스 받는 나도 안쓰럽고... 문득 이 세상의 모든 맞벌이 부부나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애들을 어떻게 키우나 의문이 든다. 이러면서 나라에선 출산율 떨어진다고 이상한 정책이나 세워대고 말이지...  암튼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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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발원문

투덜일기 2014. 6. 20. 16:51

며칠에 한번씩 연필 깎아대기 귀찮아서 연필 깎는 기계를 살까말까 고민하는 포스팅을 했다가, 결국 반성하고 계속 연필깎이 봉사를 보태기로 했던 엄마의 금강경 필사는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매일 새벽 거의 2시간씩 꼬박 식탁에 앉아서 금강경을 베껴적으시는데, 이젠 아는 한자가 많아져 속도도 빨라졌고 목표로 했던 7권 가운데 마지막 한권만 남았다는 것 같다. (1권에 3번씩 쓸 수 있으니 총 21번을 쓰는 셈)

 

노친네가 1월에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초반부엔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1달에 한권씩 써서 백중(8월 10일이다) 전에 다 끝내겠다던 대장정이 순조롭게 결실을 앞두고 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너무 짧아진 연필 몇 개는 버리고 새 연필을 서너 자루 더 깎아드린 것 같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참 대단한 끈기이고 정성이다 싶어서 존경스럽다가도, 간혹 잠도 안자고 새벽 3시에 막 필사하겠다고 나서면 억지로 다시 방으로 쫓아보내 더 주무시라고 하면서 버럭 화가 난다. 뭐든 스트레스가 되면 안되는 거라구욧!

 

엄마 본인의 말로는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단다. (딸에게 이런 고백을 스스럼없이 하는 엄마라니.. 참 나.) 하여간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많이 졸다가 쉬는 시간에만 재잘재잘 살아났고(요즘도 한달에 한번 만나는 엄마의 고교동창들이 그런단다. 얘, 너 학교 다닐 때도 엄청 수다스러웠어!), 집에서도 공부 좀 할라고 그러면 어찌나 졸린지, 시험 앞두고서도 할머니한테 새벽에 깨워달라고 하고는 내쳐잔 뒤 다음날 안 깨웠다 신경질만 부렸단다. 할머니가 왜 안깨웠겠나, 깨워도 그냥 잤겠지. ㅋㅋ 게다가 워낙 악필이라 수업시간에 적어온 필기 내용을 (아마 졸면서 적어서 더 그랬을듯;;) 본인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게 함정. 그뿐인가. 무려 고2때부터 이후 8년간이나 이어지는 연애질을 시작해 종종 학교 수업 빼먹고 명동으로 영화구경도 다녔다니, 공부를 대체 언제 했겠나! (가끔 울 아빠가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책--주로 고전--읽기에도 바빴다고;;)

 

하여간 공부를 잘 해보고 싶어도 잘 안됐던 그 시절의 로망을 요즘에 투사하는 건지, 엄마는 뭐든 금강경 필사만큼이나 열심이다. 실버 아카데미 다닐 때는 무결석은 물론이고 숙제도 그날 오자마자 상 펴고 앉아 몇시간씩 낑낑대며 다 해치웠고, 요즘도 활동중인 실버 합창단은 열혈 선생이 구워준 CD를 집에서 연거푸 들으며 악보 챙겨와 따로 예습복습까지 해갈 정도다. 자고로 선생이 예습복습 해오란다고 정말로 해가는 아이들이 반에서 1퍼센트는 될까? -_-;; 암튼 그래서 엄마는 합창단 지휘자 선생도 인정하는 모범생이다. 

 

예전에 엄마가 서예 배우러 다닐 때도 신기하게 느꼈던 건데, 한글 글씨체는 진짜 악필인데 한문 글씨체는 잘 쓰는 편이라는 것! 나는 한글도 엉망이지만 한문 적어놓으면 그야말로 어린애가 그려놓은 듯 우스꽝스러운데, 금강경 필사야 밑에 흐린 점선으로 적혀 있는 대로 베껴적어서 그렇다치고 일반 공책에 한자성어 적어놓은 것도 한글은 지렁이 기어가듯 보이는 반면 한문 획은 반듯하다. 나로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그래도 몇달째 필사를 하면서 손아귀에도 힘이 생겨 악필도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금연하라고 하사금까지 내렸는데 아직도 몰래몰래 담배를 피워 노친네 애를 태우는 동생놈들 양심 찔리라고 엄마의 발원문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노친네가 쌓고 있는 정성의 힘이 어떤 절대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해서 소원이 덜컥 다 이뤄진다고 믿진 않지만(신은 없다니깐!) 이런 과정을 실천하고 지켜보는 인간들이 슬그머니 변모하려는 노력은 낳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 두 줄은 나와 괜히 티격태격한 날 덧붙인 모양이라 나도 찔린다. 버럭버럭 마감 스트레스 괜히 엉뚱한데 풀지 말고 나도 뾰족한 말 좀 덜 하기를 바라는 차원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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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투덜일기 2014. 5. 6. 20:33

어김없이 올해도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 어제만해도 드나들며 전혀 못느꼈고, 심지어는 아까 낮에 외출할 때도 못맡았던 향기를 방금 전 음식물 쓰레기 내다놓으러 나가면서 깨달았다. 온 동네를 휘감고 있는 듯 훅 끼쳐오는 진한 향기를 아깐 왜 못 맡았을까. 5월 6일이면 예년보다 많이 빠른 건가 어쩐건가.


벚꽃을 비롯한 봄꽃은 보름이나 일찍 피었지만 그 뒤로 날씨가 하도 수상하게 오락가락, 얼마 전 비온 뒤로는 아침 저녁 다시 발시리고 춥다고 느껴졌다. 바람은 또 어찌나 불어대는지. 참담하고 암울한 세상 때문에 더 춥다고 느껴지는 건지 진짜로 기온이 많이 떨어진 건지 분간이 잘 안되고 있었는데... 


음식물 쓰레기와 아카시아꽃 향기. 새삼 참 아이러니하구나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5월은 왔고 어린이날도 지났고 석가탄신일도 지나가고 있다.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면 해마다 외가쪽으로 온 가족 총출동하다시피 모였던 석가탄신일엔 어려서부터 꽤 많은 사촌들끼리, 다 자라선 어린 조카들 조르륵 앉혀놓고 찍은 사진이 많은데, 그런 사진들 속에선 대부분 반팔을 입고 있었다. 지금도 냉장고에 붙어있는 초파일 사진 속 조카들은 죄다 반팔옷이다. 올해 음력이 좀 빠른 탓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온종일 으스스 추워서 보일러를 돌렸다. 


가족모임은 어린이날인 어제 큰동생네 모여 고기 구워먹는 것으로 끝냈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열흘만엔가 현관문 열린 사이 가출해 애를 태웠던 파랑이도 어제 가보니 무사히 귀가해 있었다. 연일 비와서 벽보도 못 붙이는 상황이라 그새 안락사라도 당했으면 어쩌나 내심 쫄아가지고 차마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신고하고 잘 데리고 있었단다. 엄청 다행. 오늘까지 오른쪽 어깨가 뻐근할 만큼 조카들과 배드민턴도 쳤고, 몇년째 벼르기만 했던 가족사진을 막내 카메라로 그냥 찍었다. 아버지 생전에 스튜디오에서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엔 첫조카밖에 없어 8명뿐이다. 막내조카 태어나고 모두 11명이 된 대가족 사진을 찍자고 찍자고 부모님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이상하게 못했다. 나부터 사진찍는 게 너무 싫으니 원.


엄마는 막내가 삐까번쩍한 dslr 카메라를 들기만 하면 영정사진을 찍어 내놓으라고 포즈를 취하시는데, 난 또 그게 싫어서 매번 핀잔을 주었다. 옷이 어떻네, 머리가 어떻네, 표정이 어떻네...  물론 어제도 엄만 가족사진 다 찍자마자, 영정사진 하게 독사진 한장 예쁘게 찍으라고 또 나섰다. 하이고, 이여사님 제발... 노친네의 논리는 영정사진을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 늬 할머니, 할아버지 봐라....그리고 한살이라도 더 젊고 예쁠 때(?) 찍어놓아야 한다나. 


그치만 여든다섯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영정을 칠순 사진(그냥 칠순기념 독사진이었을 뿐, 엄밀히 영정사진으로 찍은 건 절대 아니었다)으로 썼을 때, 모두들 15년 전의 할머니 모습을 낯설어했다. 최근 모습이 더 곱고 다정하고 예쁘다면서. 어떤 고모부는 영판 딴집 할머니 같아서 장모님 같지 않다고도 했다. 아버지 땐 너무 갑작스럽고 경황이 없어 사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집안 어르신들은 정년퇴직 직전의 근엄한 양복사진을 쓰라고 권했지만, 우린 일주일에 세번씩 산에 다닌 아버지의 등산복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아 근데 그렇게 수많은 등산 사진 중에 왜 쓸만한 독사진이 없는지. 드물게 있는 독사진은 다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고... 


암튼 이번 가족사진 촬영은 밥먹기 전날 내가 먼저 충동적으로 제안했다. 막연한 위기감 같은 게 작용했던 것 같다. 조카들 다 사춘기 접어들면 아예 나타나지도 않으려고 할 텐데! 녀석들 예쁜 모습으로 주르륵 옆에 앞에 앉혀놓고 찍은 사진을 갖고 싶었다. 넷 중에 둘은 벌써 나보다 키가 한참 크다. 영 보기 싫은 내 모습도 10년쯤 뒤에 보면 아 젊었구나 할텐데 뭐, 위로하면서. 제발 좀 웃어달라고 아양을 떨어대도 오랜 촬영에 떼거지로 짜증을 내며 툴툴거리던 조카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한 장이라도 제대로 건질 게 있을지 궁금하다. 있을 때 잘해줘야지,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카르페 디엠, 요즘 특히 나의 모토다.  


2014년 아카시아꽃 공식 기록은 아무려나 5월 6일이라고 써두려던 게 딴소리로 흘렀다. 마음 같아선 창문 활짝 열고 아카시아 향기를 방안으로 들이고 싶은데 너무 춥다. 그래도 괜한 위기감에 창문을 여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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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

투덜일기 2014. 1. 13. 21:33

새해들어 사흘에 한번은 연필을 깎아대야 했다. 연필 다섯자루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아홉자루로 늘어났는데, 그나마도 중간에 몽당연필 두 개는 버렸다. 새해들어 1월 1일부터 금강경 한문 필사를 시작한 대비마마 덕분이다. 처음엔 소형 연필깎이로 돌려댔으나, 몇년째 멀쩡히 잘 깎이던 칼날이 잦은 혹사에 문제가 생겼는지 자꾸 심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연필깎다가 심이 부러지면 왜 그리도 짜증이 나는지...  암튼 자주 깎아드리기 귀찮아서 연필 갯수를 늘려 바쳤는데도 사흘쯤 지나면 컴퓨터 책상에 뭉툭해진 연필이 놓여있다. 처음엔 '좀 깎아줘'라고 적힌 엄마의 쪽지도 연필과 함께 놓여 있었다. 나 잠든 새 외출하시면서 놓고 간 거라나. ^^;

 

대비마마는 아주 오래전에도  금강경 한문 필사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땐 서예를 배우러 다닐 때라 무려 한지에 붓글씨로 필사를 했었다. 그나마 요번엔 필사용 책을 사서 흐리게 적혀있는 글씨를 선따라 베껴적기만 하는 거라 엄청 수월하다지만, 오늘 드디어 한번 필사가 끝났다는 걸 보면 3번 꼬박 베껴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연필로 꾹꾹 눌러 작게 한자를 쓰려면 손가락은 또 얼마나 아플까나. 암튼 매일아침 기상과 동시에 1시간씩 금강경 필사에 여념이 없는 대비마마를 보면 존경심이 일 정도다. 우리 가족 중에서 아마도 요새 제일 성실하고 건강하게 살고 계신듯!

 

새해들어 운동을 좀 해보겠다던 나의 다짐은 작심삼일도 못되고 딱 두번 나가고 끝이었건만... 하루도 안빠뜨리고 새벽마다 상을 펼쳐놓고 필사를 하다니, 그 저력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력일까 강인한 모성일까 종교의 힘일까?  필사용 책인지 공책인지 앞에 적어놓은 기도 발원문을 슬쩍 들춰보아도 노친네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찡하다. 까마득한 옛날 동생들의 입시를 앞두고도 대비마마는 새벽마다 집에서 108배를 했었다. 남들은 100일 내내 절간으로 교회로 새벽기도도 다닌다는데! 그러시면서. 물론 재수, 삼수를 거친 동생녀석들의 입시 결과로 볼 땐 하나도 효험이 없는 생고생이었지만, ^^ 새벽마다 쿵 쿵 무릎을 찧으며 절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동생들이 설마 모르진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은 없다고 느끼지만, 그래서 대비마마의 금강경 필사와 정성스런 기도 발원이 초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온 가족의 건강과 사랑과 손주들의 행복을 조목조목 적어 비는 노친네의 소원이 이왕이면 이뤄지길 바라고 그렇다면 난 열심히 연필이나 깎아드려야 도리일듯. 그러나 난 벌써 연필깎는 게 귀찮아서 몇번이나 짜증을 부렸고(볼펜으로 쓰시지, 아 왜 연필로!?) 대비마마의 자립을 위해 튼실한 자동 연필깎이를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까칠한 딸이다. ㅋㅋ 헌데 나는 워낙 잘 하고 있어서(?!) 발원문을 따로 안 썼다고 하시더니만 오늘 보니 나를 위한 기도도 맨 아랫줄에 연필로 덧 적어넣은 걸 발견했고, 좀 찔려하는 중이다. 자동 연필깎이를 사? 말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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