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20.01.16 닷새만에
  2. 2020.01.14 죽을까봐 불안해 2
  3. 2020.01.14 서러움 일지 1월 14일
  4. 2020.01.13 새로운 증상
  5. 2020.01.07 눈을 감으면 글씨가...
  6. 2020.01.06 양극성장애 2
  7. 2019.05.29 봄소풍 5
  8. 2019.05.24 산후 우울증 4
  9. 2019.05.17 유전이면 어쩌나 6
  10. 2019.05.09 엄마의 우울증 4

닷새만에

아픈 손가락 2020. 1. 16. 21:32

일이 바빠 두문불출하고 집에 처박혀 일만 하던 날이 오늘로 꼬박 닷새. 결국 초저녁에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다가 돌아왔다. 온종일 수시로 등뒤로 다가와 핸드폰이 어디가 이상하고, 딸년이 이상하고, 통장이, 자동이체가 이상하다고 자꾸 말을 거는 통에 원고에 집중도 안 되고, 말대꾸와 설명을 해주는 것도 한계에 도달해 폭발한 거다.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예전엔 내가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고 눈물로 호소하면 엄마는 정신줄을 놓은 와중에도 날 안쓰러워하면서 따라 울다가 조금 안정을 되찾고는 했었는데, 이젠 엉엉 따라 울긴 하지만 딸년인 내가 이상해졌다고, 착한 딸은 어디 가고 저렇게 악독한 애가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내가 무섭다고 그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서로 한계가 온걸까.

배설이 필요하지만 결국 내 얼굴에 침뱉기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적어놓는다는 게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노트북과 책을 들고 뛰쳐나가 일부러 몸에 나쁜 정크푸드를 꾸역꾸역 먹은 뒤 스타벅스에 들어가 일감을 펼쳤지만, 결국 몇시간 못하고 들어왔다. 처음에 나갈 땐 엄마가 밥을 먹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밥도 약도 먹게 해야겠기에 꾸역꾸역 들어와 식탁을 차리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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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큰아들 전화를 받은 엄마. 십여분 전까지 작업실에 쫓아와 등 뒤에서 "어헝헝헝, 어떡해, 엄마 때문에 OOO(성까지 붙인 내이름)이 이상해졌어...엄마가 미쳐가지고 딸까지 미치게 만들었어.."라고 징징댄 게 무색하게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응, 엄마는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별 일 없어. 애들은 잘 있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엄마 잘못이야, 니네는 잘못 없어...

 

우와, 저러니 얼핏 듣고 멀쩡하다고 할밖에. 나한텐 별별 헛소리 다 하시고 속을 뒤집으면서 왜 아들들한테는 멀쩡한 척 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웃으며 대꾸했다. 걔네들은 엄마의 본 모습을 모르니깐 괜찮다고 그래야지 그럼 어떡해? 걱정하잖아. 근데 넌 바로 옆에서 엄마 볼꼴 못볼꼴 다 봤잖아. 속일 수가 없지. 하하하.

기가 막혀서 나도 따라 웃었다.

 

잠자는 약 드시기 직전.

불안해, 불안해, 노래를 하는 엄마에게 대체 왜 그렇게 불안하냐고 물었더니 또 단박에 대답이 나왔다.

죽을까봐 불안해. 맨날 죽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 다 그짓말이야. 죽을까봐 불안해서 미치겠어. 그러니까 엄마 좀 감옥에 갖다 넣어. 경찰서에 연락해서 잡아가라고 그래.

 

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다만 팔순에도 죽음이 두렵다는 게 솔직한 엄마의 마음이란 건 알겠다. 노상 살만큼 살았다고 중얼거리던 건 다 뻥이었단 말이지. 이상하다. 오십대인 난 지금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당장 삶이 끝난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난 나름 줄곧 아주 열심히 주어진 여건 안에서 퍽 즐겁게 살았고, 남은 중노년의 인생이 그닥 기대되지 않는다. 무슨 영화를 더 보겠다고...

 

하여간, 한해에도 여러번 발병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울 엄마의 증상을 수십년간 기록해 면밀히 연구했더라면 뭔가 근사한 업적을 이뤘을 것도 같다. 아닌가? 발표할 논문엔 환자의 표본 수가 더 많아야 하던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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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 상하는 일의 연속. 엄마이자 환자의 프라이버시 따위 개나 줘버려, 하는 심정이 자꾸 올라온다. 나이들면서 나도 점점 옹졸해는 거겠지. 그러든가 말든가. 차곡차곡 적어놨다가 엄마가 멀쩡해지면 그동안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굴었다고 다 일러바칠테다. 물론 그러면 엄만 또 민망하고 창피해서 다시 병이 도지려나? 암튼...

 

열 뻗치게 만들었던 오늘자 엄마의 발언들

- 추워 죽겠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다. 니가 전기장판 다 갖다 치워서 그렇다. 엄마 얼어죽으라고? (초겨울에 치운 건 여름과 가을 내내 침대에 두고 쓰시던 찜질팩이고, 그거 대신 시트 아래 아예 전기요를 깔아드렸었다. 그렇다고 설명하고 방금 켜드리고 나옴.)

- 너 옷이 그게 뭐니? 꼴 보기 싫다. 그런 옷을 맨날 왜 입고 있느냐. (재작년 아울렛에서 만원짜리 회색 플리스 티셔츠를 팔길래 덜컥 사왔으나 XL 사이즈라 집에 와서 혹시 엄마 입으실랴우? 물었더니 싫다고 질색팔색을 하시길래, 너무 긴 소매를 자르고 끝에다 스누피와 우드스탁을 수놓은 옷이다. 당연히 나는 너무 마음에들고 따뜻한데, 엄만 원래도 내가 큰 옷 입는 걸 싫어한다. 결국 딴 옷으로 갈아입었다.)

- 머리도 꼴보기 싫다. 저번에 분명 미용실 간다고 그러더니만 계속 저러고 다닌다. 머리 안 자르고 어디 딴델 갔겠지. (하도 머리 길다고 타박이라 스프링끈으로 질끈 묶었더니) 저것 봐라, 또 이상한 걸로 머리를 묶었네. +_+

- 엉엉엉. 엄마... 엄마... OOO이 점점 이상해져, 나 어떡해 엄마...  (외할머니는 여든셋에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오이소박이를 담가 자식들에게 돌리셨다. 울 엄만 아프단 핑계로 살림 손에서 놓은지 15년도 넘었고, 딸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으면서!)

- (점심 먹으면서 하도 당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책하시길래 그럼 잘 됐네, 나 엄청 바쁜데 엄마가 점심 설거지 좀 해주세요, 그랬더니만 단박에) 싫어! 못해! 손시려워서 못해...

 

그래도 유일하게 희망적이었던 순간은...

오후에 커피 마시면서 엄마도 차 한잔 타다 드렸더니 "땡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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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증상

아픈 손가락 2020. 1. 13. 20:18

조울증이 심해지면 엄마는 매번 반복되는 말과 행동이 따로 있다.

일단 자책이 심해진다. 자격지심의 끝판왕이 되어 끝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타박한다. 경조증과 우울증이 겹쳐져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도저히 못참겠다고 내가 소리를 지를 때까지 계속한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거의 24시간 내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으로 중얼거린다. 주로 자책을 하지만 주변 사물과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기며 괴로워한다. TV도 이상하고, 방바닥에 먼지도 이상하고, 화분도 꼴보기 싫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도 이상하고... 식사 때마다  밥먹을 자격이 없으니 밥도 먹으면 안된다고 드러눕거나, 이웃사람들이 자기를 감시하기 때문에 절대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둥, (이유가 뭐든) 창피해서 이젠 절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2017년과 18도엔 말끝마다 '난 사실대로 얘기하는 거다'라고 우겨댔었다. 뜬금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액자를 가리키며 저렇게 오래된 사진을 뭐가 자랑이라고 떡하니 집에 두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책장에 든 조카들 아기때 사진을 보면서도 다 큰 애들 사진을 저기 왜 두는 거냐고, 애들이 와서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대학병원에서 당뇨약과 혈압약을 6개월치씩 타다 두고 먹는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난 사실대로 말하는 거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결국 장식장에 든 모든 사진 액자는 몇달간 엎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거'라면서 나는 물론이고 아들들, 며느리들에게까지 거침없이 생각나는대로 내뱉은 덕분에 (니가 사업으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른다만, 맨날 그렇게 사치하다 거덜난다. 남편이 힘들게 벌어다 준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면 안된다, 안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환자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말이든 아니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솔직한 지적이었기에 ㅠ.ㅠ 엄마는 엄청난 인심을 잃었고 미운 털이 많이 박혔다. 나 또한 상처 받은 적이 수없이 많았었고.

 

그런데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엄마의 증세는 좀 다르다. 물론 당신 본인에 대한 자책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긴 하지만, 의심증이 추가되었는데 그 의심의 주요 대상이 바로 나다. 어휴. 부산행 KTX와 숙소 예약을 인터넷으로 마쳤다는데도 도무지 그걸 못믿질 않나, 서울역에 가서도 고모들을 못 만날 거라고, 혹은 길을 잃고 기차를 놓칠 거라고 하질 않나, 친척분들이 내게 송금한 축의금을 내가 다 떼어먹을 거라고 하질 않나 (엄마 보는 앞에서 고모들을 증인으로 두고 축의금 봉투에 일일이 현금을 넣는 걸 보여주었음에도!), 부산에 자기를 버리고 올 거 같아서 계속 날 놓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고 하질 않나... ㅠ.ㅠ

 

부쩍 날 도둑년 취급을 해서 마음을 상하게 하더니만 급기야 엄마는 며칠 전 외출했다 돌아온 내 가방을 뒤졌다. 자꾸 거짓말을 하고 어딜 나다니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확인을 해야겠다나. 어휴.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딸에게 의존적이기만 하던 엄마는 어쩌다가 나에 대한 신뢰를 그토록 잃게 되었을까. 그간 엄마의 조울증이 심해질 때마다 짜증도 나지만 근본적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서 달래드리려는 태도였다면, 요번엔 너무 낯설고 무섭게 구는 엄마의 모습이 겁도 나고, 무진장 억울하고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난다. 입바른 소리는 잘하지만 근본적으로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었던 우리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정말 이상하고 괴팍하고 인색한 할머니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그래서 너무 슬프다. 

 

나 역시 일종의 가면우울증이랄까, 밖에 나가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즐겁게 지내려 노력하면서도 내 속은 점점 문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울 엄마의 정신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단 건 지인들도 대강 알지만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나 말고 울 아버지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아들도 결혼전엔 아픈 엄마를 목격했지만 20년쯤 나가 살았으니 그간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것도 아니고 24시간 실체를 겪어본 것도 아니니까. 놀랍게도 엄마는 내 앞에서 길길이 날뛰다가도 아들이 다니러 온다거나 전화가 걸려오면 금세 다른 표정이 된다. '응, 아들? 엄마 괜찮아. 걱정하지 마...' 물론 의사 앞에서도, 남들이나 친척들 앞에서도 비교적 얌전해진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선 멀쩡해 보이려는 환자의 의지가 발현되는 건지, 놀라운 연기력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로선 순식간에 달라지는 엄마의 태도에 그저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 아마도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을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나오는 건 그들도 이런 인간의 이면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 대한 심한 의심 이외에도, 엄마는 이제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하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과거엔 주로 '내가 미친년이라 큰 일이다, 미친 엄마 때문에 우리 딸이 힘들어서 어쩌나' 이런 푸념을 하셨는데 올 들어서는 계속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OOO(내 이름)이 이상하다, 쟤가 미쳤다'고 말하며 심지어는 내 눈이 이상하다고까지 하신다. 내 눈이 어떻게 이상하냐고 물으면, 달라졌다고, 그냥 이상해졌다고...  과연 새로운 이런 증상들의 의미는 뭘까. 일주일 전에 바꿔온 약(세로켈이 25mg에서 100mg으로 늘어남)으로 밤엔 전보다 약간 더 잠을 주무시고 있고, 눈감으면 나타난다는 글씨는 사라졌다고 하며 온종일 계속되던 중얼거림도 줄어들긴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엄청난 차도가 있는 것 같진 않다. 

 

마지막으로 요번들어 엄마는 이상하게 옷타령, 신발타령을 하신다.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고. 신발도 신고 나갈 게 하나도 없단다. 옷장에 있는 옷들을 죄다 꺼내 보여드리기도 하고, 결혼식 갈 때 걸칠 조끼도 새로 사드렸는데도 여전히 오늘도 엄만 입을 옷이 없어서 못나간다고 푸념이다. 그나마 신발타령이 멎은 건, 1월 들어 내가 겨울 신발을 두 켤레나 사놓았기 때문이다. 대체 한겨울에 추운데 어딜 나갈 데가 있다고 (매달 셋째주 화요일에 동창모임이 있긴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는 조울증이 도져서 못나간 적이 많다) 매일같이 옷타령 신발타령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럼 같이 쇼핑하러 나가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하니, 나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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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 전에 먹어야하는 약을 드시게 하느라 엄마와 한참이나 씨름을 하고 돌아왔다. 컨디션이 좋을 땐 매일 정해진 시간인 밤 10시에 '자기전'이라고 약봉지에 쓰인 약을 스스로 먹고 침대에 눕는 것이 엄마의 일과다. 하지만 요즘처럼 상태가 나쁠 땐 뭐든 일단 '싫다'고 거부하고 본다.

엄마, 저녁 드세요. - 싫어, 안 먹어. 먹을 자격 없어. 

엄마, 늦었어요, 약 드세요. - 싫어, 안 먹어. 먹어도 소용없는 약을 왜 맨날 먹으래. 이거 먹으면 내일 나 못일어나.

이젠 조근조근 달래는 것도 지쳐서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아 왜 또! 드시라고 하면 좀 순순히 드시라고요!

 

오늘 의사와 상담 때 엄마는 사뭇 우아하고 차분하게 그간 잘 못지냈고, 마음이 불안하고, 밤에도 잠을 못자는데 그 이유가 눈만 감으면 눈앞에 글씨들이 마구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내용의 글씨들이 총천연색으로 자꾸 보인다고. 거의 작년 이맘때도 엄마가 했던 말이다. 돌이켜보면 딱히 스트레스나 '이슈'가 없을 때 엄마 병이 심해지는 건 일년 중 늘 비슷한 시기였다. 과거엔 봄과 가을, 환절기를 잘 못넘기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한겨울에 증상이 가장 심한 것 같다. 일단 2017년과 2018년은 동일하게 11월부터 나빠져서 다음해 설날 즈음까지 계속 힘들었다. 2019년은 11월을 잘 넘기나 싶었는데 12월에 그놈의 부산 결혼식 때문에 그만...  하긴 결혼식이 아니었더라도 11월 중순에 엄마와 내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 때문에 사흘간 잠도 못자고 괴로워했었는데, 엄마는 깜빡깜빡 건망증 때문에 그 사건을 잊었던 듯 1, 2주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이 이야기는 으음... 그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인신공격이 될 수도 있으므로 좀 더 생각해보고 나중에 포스팅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해야지.

 

암튼 올해로 팔순을 맞은 엄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질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고, 핸드폰 메모장이나 탁상달력에 메모를 해두기는 하지만 반복적인 증상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도 이제부터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하려면 단편적인 메모가 아니라 좀 더 자세한 기록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부산에 갔을 때 밤새 잠 못자고 괴롭힘을 당하는 날 지켜본 고모들도 진지하게 엄마와 나를 위해서 뭔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봐야한다고 조언했었다. 일단은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파악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원래도 노인들은 어떤 상황을 접했을 때 두뇌의 필터링이 떨어지고 걱정이 많다. 그래서 '노파심'이란 말도 나왔을 테고. 늙을수록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없이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내놓게 마련이다. 그게 옳든 그르든 판단은 나중이고, 일단 말을 해놓고 보는 거다. 울 엄만 대단히 타인지향적인 성향이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한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크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동네에서 못마땅한 이웃의 행동을 보면 간혹 지적은 하지만, 그러는 빈도수가 높진 않다. 그런데 가족들에겐 좀 다르고, 우울증에 대한 나름의 방어기제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소엔 듣는 사람 생각 않고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신다. 예를 들면...

 

내가 뭔가 요란뻑쩍지근한 요리를 해바쳤을 때: 냄새는 엄청 요란하더니 맛은 그저그렇구나. (난 당연히 버럭.. ㅠ.ㅠ)

그런 효녀 세상에 없다고 내 칭찬을 하는 당신 친구들에게: 효녀 맞아, 근데 성격이 까칠해서 나랑 맨날 싸워.

번역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 줄 아느냐고 내 칭찬을 하는 친척들에게: 그렇죠, 맨날 밤새고 일하는 거 보기 안타까워요. 근데 벌이가 시원치않아서 혼자 먹고살기도 힘드나봐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 있을 때 시집이나 가서 편히 살지 원 참... 

 

그밖에 아들들에게도, 며느리들에게도, 손녀딸에게도 엄마는 그간 말실수를 참 많이도 했었다. 엄마의 정신건강이 안좋을 때라서 좀 양해를 해달라고 하기엔 평소에도 입바른 소리를 너무 많이 쏟아내시기 때문에 말로 인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엄마 입장에선 저런 이야기들이 다 '사실'일 거다.


주변에서 내가 엄마를 '잘못 키워서' 혹은 '너무 오냐오냐 해드려서' 저렇게 의존적이고 의지박약한 노인이 되었다는 말을 왕왕 들을만큼 엄마는 그간 우울과 불안이 심해질 때마다 내게 크게 의지하고 눈에 안보이면 괴로워하는 편이었다면, 작년말부터 시작된 엄마의 불안증과 의심증은 조금 또 방향이 달라졌고 말로는 여전히 "딸 없으면 못산다, 난 딸 없으면 시체다"라고 주절거리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으로.

 

일견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은행계좌 관리나 세금 납부를 내가 인터넷뱅킹으로 해드리는데 그게 영 불안한 거다. 내가 엄마의 연금통장 비밀번호와 계좌를 다 알고 있으니 홀라당 훔쳐가버릴까봐서. ㅠ.ㅠ 슬픈 건 엄마가 컨디션이 좋으실 땐 태도와 말씀이 정 반대라는 거다. 엄마 돈이 다 니돈이야, 엄마 죽으면 다 너 주고 갈 거야. 엄마 죽기 전에 너 잘 살게 만들어놓고 가야할텐데... 뭐 이런 눈물겨운 딸걱정을 하실 땐 언제고 지금은 내게 눈을 흘기며 못 보던 신발이 있느니, 못 보던 옷이 생겼느니, 통장에 찍힌 자동이체 금액이 어떻느니, 당신 카드값이 이상하느니... 매일같이 괴롭히는 중이다. 

 

아무튼 요즘 기시감이 들어 나도 불안하다. 18년 연말과 19년 초에 갑자기 생겨난 다리 통증으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기 직전에도, 엄마는 심히 정신이 병들어서 이렇게 나를 들들 볶았고, 게다가 나는 원고마감 중이었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었다. ㅠ.ㅠ 19년 연말과 20년 연초에도 여전히 엄마는 많이 아프고, 난 일로 심히 바쁘다. 다행인 건 지난 번의 경험으로 스트레스가 최고 수치에 달하면 두말없이 냉정하게 병든 엄마를 버려두고 밖에 나가 압력 추를 꺽어 폭발을 미연에 막는다는 점이다. 엄마가 더 징징대거나 말거나, 나부터 살고봐야지, 요샌 그런 생각을 1번으로 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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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장애

아픈 손가락 2020. 1. 6. 16:46

양극성장애( bipolar disease)는 조울증의 다른 이름이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꿔부르면서 조현병과 조울증이 너무 비슷해보였나? 아니면 기분이 심하게 오르락거리는 사람에게 조증이냐고 놀려대는 질병 혐오발언 탓에 공식 병명을 달리 부르기로 학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걸까? 암튼 그 이유는 몰라도 새로 나온 몇몇 정신건강 관련 책을 보니 조울증을 죄다 '양극성장애'로 표현하고 있었다. 비전문가로서 그냥 단어만 봤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를 짚어본다면, 조울증은 '증상'의 느낌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 같은 반면에, 양극성장애는 '장애'를 붙여놓으니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항구적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 같다. 뭔가 치료는 불가능하고 장애 상태에 그냥 적응해서 살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공황장애(panic disorder),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disorder와 disease는 똑같이 '장애'로 옮기기엔 뉘앙스가 사뭇 다른 듯하다. disorder(dis-order, 질서가 무너짐, 엉망진창)는 신체적인 이상, 약간의 기능 장애 같은 느낌인 반면에 disease는 비록 그 어원이 편하지 않음/불편함(dis-ease)에서 왔다고는 하나 엄연히 '질병'이란 말이지. ㅠ.ㅠ

 

하여간 점점 분리불안 상태의 어린애처럼 구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를 혼자 감당하는 게 힘들어서 작년에 보험공단에다 요양보호 등급신청을 해보려고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에게 진단서를 부탁했더니만, '경도인지장애'와 함께 '양극성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물론 보험공단에선 울 엄마 정도의 인지능력과 조울증으로는 심사도 불가능하다고 전화로 통보해왔다. 아주 치매환자로 인정을 받아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심한 인지장애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고. 젠장.

 

조울증이나 우울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잘 아는 사람들(심지어 아들들도!)이라도 짧은 시간 우리 엄마를 지켜보면 대체로 엄마 멀쩡한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나도 미칠 노릇이다. 일년내내 약을 드시고는 있지만 어떤 빌미로 증상이 심해져 겉잡을 수 없게 되면, 엄마는 하루종일 중얼중얼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밖에 내거나 온 집안을 서성서성 돌아다니거나, 집안 구석구석에서 오래된 서류나 우편물을 끄집어내 새삼 읽어보며 의심을 하거나, 딸이 눈에 안 보이는 게 불안해서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댄다. 

 

홀로 중얼거리는 내용은 대체로 자책과 후회, 어후, 미쳤어, 미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살면 뭐하나...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작년부터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나 밖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감시하고 뭔가를 훔쳐가려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젠 심한 의심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었다. ㅠ.ㅠ 치매 환자들이 흔히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서 도둑으로 몬다는데, 울 엄만 치매도 아닌데 왜 나를 도둑년으로 모는 건지 원!

 

습관처럼 말로는 "XXX(내 이름) 없으면 엄마는 시체야. 너 없으면 엄만 못 살아..."라고 하루에 열두번도 더 되풀이하면서(까칠한 요즘 나의 상태로는 이 말도 딸에 대한 엄마의 가스라이팅 같아서 짜증스럽기만 하다. 도둑년 취급이나 하지 말든지! 나더러 뭘 더 어쩌라고!), 12월 들어서는 실질적으로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기에 이른 것! 학교에 수업 간다고 외출해도 거짓말 하는 거라고, 자꾸 거짓말 하고 대체 어딜 나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고, 친척 결혼식 축의금을 내가 송금받아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돈을 내가 다 떼어먹었다고 의심하시고! KTX 티켓을 모바일로 구매했다는 말조차 믿지를 못해서 사흘 내내 고모들을 동원해 설명을 해드려야 할 지경이었다. 부산 숙소와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두고 여행겸 떠나려던 부산 결혼식을 결국 이런 상황에서 다녀왔다는 게 정말 기적이다. 

 

기막히는 건 내 앞에선 눈을 흘기거나 부라리며 험악한 얼굴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의심하거나 발을 구르며 펄펄 날뛰다가도, 아들 전화를 받을 땐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온화한 표정으로 돌변해서 '아들?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마...'라고 한다는 거다. 물론 친척분들이랑 통화를 할 때도 말투와 태도가 달라진다. 누구보다도 남들의 시선과 평판을 의식하는 분이라 그런걸까? 요번엔 나도 정말 지치고 지긋지긋하고, 열이 뻗쳐서 엄마의 본모습을 증거로 남겨두겠다며 동영상 촬영을 해두었다. (한두달 뒤에 엄마가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면, 병증이 심했을 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엄만 당신의 '미친 모습'을 찍어두었다며 당연히 길길이 화를 내시고 딸을 더욱 미워하고 있지만, 내가 오죽하면!  고모들 두분과 같이 떠난 부산에서 1박2일간 엄마는 집에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대체로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는데, 엄마의 고질병을 잘 아는 고모들도 드디어 밤사이 드러난 불안증과 의심병의 진실을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나를 불쌍히 여겼다. 나의 인내심이 놀라운 수준이라고. ㅠ.ㅠ 

 

양극성장애 환자의 사연들을 들어보면 정말 기막힌 경우가 많다. 조증인 상태에선 환자가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에서 자칫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을 확 팔아버리거나 고가의 물건을 막 사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년 전쯤엔가 울 엄마도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 바람으로 지갑 하나만 들고 뛰쳐나가선 막내동생 예식장을 계약하겠다며 동네에서 멀지 않은 특급호텔에 찾아간 적이 있는가 하면, 며칠 뒤엔 백화점에 가서 투피스를 서너벌이나 사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그때 너무 속이 상해서 주치의에게 털어놓았더니, 집을 팔아버리거나 비싼 보석을 사들이거나 남에게 주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하더라.

 

조증 상태의 장점을 굳이 찾는다면 신체기능이 평소보다 좋아진다는 점이다. 시력도 청력도 더 예민해지는지, 보청기가 없어도 소리를 잘 듣고 안경을 쓰지 않아도 TV 자막이 다 보인단다. 다리가 아파 집안에서도 느릿느릿 걸어다니던 엄마는 종종 내가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의심스러워서 와다다다 쿵쿵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오신다. 물론 저러다가 심신이 안정되면 드디어 통증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며칠 끙끙 앓아누울 게 뻔하고 하루종일 지껄여댄 혀도 다 갈라지고 입안이 헐어 한참 고생을 해야 할 거다.

 

다른 때 같으면 어서 약을 바꾸러 병원에 무작정 가보자는 나의 부탁을 들어줄만도 한데, 요번엔 극심한 딸 의심증상 때문에 (정신병원에 자기를 처넣으려고 하는 술수란다) 원래 예약날자까지 꼬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이 한달여일만에 잡힌 정기 예약일이다. 정신과 약은 한꺼번에 투약량을 확 늘일 수도 없고 약을 바꾼다고 해서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도 아니므로, 사실 크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다만 나보다 신뢰하는 의사의 위로와 이야기를 엄마가 잘 듣고 플라시보효과도 좀 생기길 바랄뿐.  연초부터 참으로 지치는 나날인데, 이러다 내가 병나겠다 싶어서 자꾸 밖으로 도망칠 일을 꾸미고 있다. 나도 숨은 쉬어야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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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풍

아픈 손가락 2019. 5. 29. 11:04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엄마는 고교동창들과 만나는 점심 모임엘 나가신다. 초창기엔 열댓 명쯤 되었다던 모임 인원은 이제 6-7명으로 줄어들었다는데 그래도 80세를 앞두었거나 지난 할머니들이 매달 꼬박꼬박 모인다는 건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건강하시단 뜻이니까.

모교의 첫 글자와 벗友자를 넣어 '신우회'라는 이름도 있는 이 모임은 해마다 봄엔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게 전통이다. 이른바 봄놀이 꽃구경. 벚꽃이나 튤립, 장미가 피는 철에 예쁜 꽃도 보고 미술관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드시는 형태였다. 올해는 지난 4월에도 벚꽃보러 가봤으나 음식점에 마땅히 먹을 게 없더라. 그러니 '각자 먹을 것을 간단히 싸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요즘 살짝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임에 내심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엄마는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는 짜증을 냈다. 4월에도 갔는데 대공원엘 왜 또 가? 그리고 사 먹으면 간단할 걸 무겁게 왜 도시락을 싸오라고 그러냐고. 건강할 땐 절에 가야하는 볼일을 제끼고서라도 꼭 모임에 나갈 정도로 엄마에겐 우선순위가 높고 중요한 행사지만, 심신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엄마는 또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신다. 

귀찮아서... 자격이 없어서(무슨 자격?)... 친구들에게 민폐라서... 창피해서... 멀어서... '그것들' 잘난 척 하는 꼴 보기 싫어서.. ㅠ.ㅠ  그런데 요번엔 도시락 핑계를 댈 참이었다. 모임에 빠지고 나면 또 얼마나 아쉬워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는지 알기에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상태가 아주 심해 불안하면, 내가 먼저 엄마 친구분들께 연락해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요번엔 기분전환 삼아서라도 나들이를 성공리에 다녀와야 올 봄을 그럭저럭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방에서도 다 들리는 엄마의 통화 내용을 파악한 나는 슬쩍 떡밥을 던졌다. 엄마 도시락 뭘로 싸드릴까? 깁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와, 완전 봄소풍이네. 진짜 부럽다.

정말로 모임에 나가기 싫었다면 엄마는 다 싫다며 거부의 몸짓으로 침대에 드러누우셨겠지만 ㅎㅎ 왕비마마의 선택은 샌드위치였다.  근데 너 귀찮을까봐 미안해서 그러지... 말꼬리를 흐리는 엄마에게 염려 말라고 나는 큰소리를 쳤다. 샌드위치가 제일 쉬워! 에그샌드위치 괜찮지? 재료도 집에 다 있고, 식빵만 사면 돼!

소풍 전날 달걀과 감자를 삶아 다지거나 으깨고, 양파와 오이를 채썰어 소금에 절여 꼭 짠뒤 마요네즈를 넣어 일단 밤에 샌드위치 속을 만들어놓았다. 그러고는 식빵과 초콜릿을 사러나간 내게 어디 갔느냐고 엄마 카톡이 왔다. 노상 툭탁대는 엄마와 나는 말로 잘 못하는 미안해, 고마워 따위의 말을 그나마 카톡으로 주고받는다. 평소 막 반말로 떠들어대는 나도 카톡에선 약간이나마 더 유순해지는 듯.. ㅠ.ㅠ

다음날 아침 마요네즈와 홀머스타드를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꺼내먹기 좋게 유산지에 싸서 도시락을 완성했다(아침에 바삐 서두르느라 인증샷 찍는 걸 까먹음. 아까비;;). 과일도 참외 오렌지 포도 골고루 통에 담고, 평소 금기 음식인 초콜릿도 간식으로 챙겨 물과 함께 베낭에 잘 넣어드렸다. 어린 시절 소풍가는 날 김밥과 과자를 싸주던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뭔가 뭉클하고 뿌듯한 기분. ㅎㅎ 어쩐지 기분이 묘해서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드세요.. 했더니 엄마 왈. 싸우긴 왜 싸워? 각자 자기 꺼 먹으면 되지. ㅋㅋ

친구들에게 민폐라고 염려하는 건 길치인 울 엄마가 곧잘 모임 장소로 가다가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거나 만남 장소를 헷갈려 지각하는 일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 헤매는 울 엄마를 친구들이 데리러 나오시기도... 그런 날이면 엄마는 당신이 길치가 된 건 맨날 내가 차로 모시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너무 편해서 호강에 겨워 요강에 X싸는 셈이라고, 내 탓과 함께 습관처럼 자책을 하신다. 과천 서울대공원 가는 길은 환승 가까운 문 번호까지 하도 메모를 자주해 외울 지경이구만!

째뜬 느릿느릿 행동이 굼뜬 엄마가 한번쯤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는 상황까지 대비해서 요번엔 10시를 넘기자마자 노친네를 집에서 내몰았고, 무사히 대공원역에 도착한 엄마는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너 때문에 너무 일찍왔어! 12시까지 30분이나 남았잖아! 얘네들 언제 오냐...  

만남의 광장에서 잘 기다려보시라고, 분명히 엄마 친구들 15분 안에 죄다 나타나실 거라고 장담하곤 전화를 끊었는데.. (엄마가 모임에 지각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12시 땡 하면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늬 엄마 집에서 몇시에 나가셨니? 엄마 친구들은 다 일찌감치 나온다는 의미!) 아니나 다를까 10분쯤 지나 카톡이 왔다. 친구들 만났어. 다들 와서 앉아있었네... 그럼 그렇지! 작전 성공. 

미술관 앞에서 도시락부터 까먹은 뒤 수다를 떨다가 장미원을 돌아보고 오셨다는 엄마의 봄소풍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근래 드물게 만보도 넘게 걸었다며 허리 아프다고 엄살은 심했지만, 본인도 대장정을 완수한 것이 나름 뿌듯하신 듯 그날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곤하게 주무셨다.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자도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는데, 일단 하루라도 푹 자고 나면 바로 어느 정도 컨디션이 회복된다.  나들이 가서 햇빛을 많이 쪼인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됐을 테고...

엄마가 봄소풍을 다녀오신 건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이후 2, 3일은 '너무' 피곤하다며 침대와 물아일체로 보내는 날이 많았고 그러려니 봐드렸는데, 주말까지도 계속 집밖에 나가기 싫다는 핑계로 절에도 안 가시고 각종 수업도 빠지는 터라 순풍이 불던 모녀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자꾸 누워만 있으면 근육 풀려서 더 못움직이신다고요!! 버럭버럭 나는 또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당신의 끼니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외출한 딸에게 시위를 벌이고... 에효... 어렵사리 이렇게 또 5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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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아픈 손가락 2019. 5. 24. 00:33

울 엄만 어쩌다 조울증 환자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딸로서 나의 최대 의문이다. 엄마 본인의 말로도, 외가 친척들의 이야기로도 가족력은 없다는데 엄만 대체 왜?

이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게 된다면, 나 역시 조울증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 잠재적 환자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공포도 얼마간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에게 슬며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지 벌써 십수년이 된 외할머니는 엄마가 마음의 병을 얻은 이유를 '너무 착해서'라고 믿으셨다. 울 엄마가 바보같이 너무 착해서 할 말 못하고 참다가 병이 났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외할머니에겐 못되 처먹은 시누이였고 울 엄마에게도 아동학대에 가까운 가사노동을 시켰던 고모할머니는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 탓을 했다. 친정 살땐 그래도 웬만히 살았는데 시집가서 보니 시아버지는 엄하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 맏며느리로서 남편과 함께 12식구를 먹여살리느라 고생한 탓이라나. 그래서 울 엄마가 아프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고모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늬 아버지가 착해 빠져가지고 능력이 없어!) 친가 식구들을 욕했다.

그럴법한 이야기지만 나로선 또 의문이 생겼다. 나의 부모님은 고3때 동네 친구로 처음 만나 햇수로 8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1960년대 당시로선 꽤 드문 연애결혼파다. 애인이 대학 입시를 거쳐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는 동안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가 결혼을 결심했을 땐 예비 남편감의 가난과 8남매의 장남이라는 무게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어려서 내가 아빠의 어떤 점에 반해서 가난한 집 8남매 장남에게 시집을 왔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면, 엄만 장녀라서 그런지 맏며느리란 존재가 좋아보였다고 했다. 물론 막연한 상상과 실체는 엄청 달랐겠지.

하여간 예상 밖에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너무도 힘겨웠다면 결혼 직후 발병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검찰청 공무원이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만에 첫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다시 복직했고,  연년생인 남동생을 낳은 뒤에도 곧바로 복직해 별일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문제는 나와 4살 터울인 막내동생을 낳고나서부터였다.

나이 많은 우리 할머니 대신 엄마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쫓아다니며 학부형 노릇을 해주었다는 넷째 고모와 막내 고모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  울 엄마가 처음 조울증 증상을 보인 건 막내동생을 출산한 다음이었다고 한다. 검찰청 소속 첫번째 타이피스트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엄마는 당시 여직원의 정년이 31살쯤(헉! 겨우 만 30세?)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최근 정신과 주치의를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직업병으로 끝이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보이며 하신 이야기다.)  그래서 셋째를 낳은 뒤엔 복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출산 이후 엄마의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온 집안에 난리가 났었다는 고모들의 증언을 듣고 보니 시기가 얼추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전후 관계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엄마는 과연 산후 우울증 때문에 제대로 복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강제로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아야하는 인생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심한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요란한 굿 장면이 바로 막내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느 즈음의 일인 것 같다. 

요번에 고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또 하나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 정확하게 내가 몇살 때인지 좀 더 역사를 추적해보아야 하겠지만, 부모님은 첫딸인 나만 친가에 맡겨놓고 아들 둘만 데리고 분가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글쎄! 외할머니가 어디 가서 점을 본 결과 '동쪽으로 이사를 가야 병이 낫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장 근처인 광진구로 이사를 했다는 것! 물론 매주말마다 엄마아빠가 할머니댁에 와서 자고가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분가로 할머니댁에서 한참 살다가 3학년때 비로소 부모님댁으로 합류했다. 

무속인의 점괘가 맞았을리 만무하므로, 물론 엄마는 광진구로 분가를 한 이후에도 계속 심하게 아팠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디 어린 삼십대 부부는 참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넷째 고모가 걱정스러워 분가한 집에 가보면 엄마는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자책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늘 애처가였던 아버지는 병든 아내 수발이 괴로워 연일 소주를 마셔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엄마의 조울증 발병에 관한 실마리 하나를 푼 셈이다. 가끔 뉴스에도 보도되지만 산후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정말 무서운 병이다. 느즈막히 결혼을 해 마흔살인가 마흔 한 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나의 친구 역시 출산 후 무서운 우울증을 앓았다. 저절로 모성애가 뿜어 나오기는커녕, 너무도 무기력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는 갓난아기 돌보기가 힘들고 괴로워 나쁜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기의 안전을 위해 친구는 시댁에 아기를 보내 백일까지 떼어놓고 치료를 받았다.  울 엄마가 평생 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 친구 역시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몇년에 한번씩은 다시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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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아니 조울증 환자 엄마를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처음엔 아픈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고 사춘기땐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에 짜증이 났었고, 그다음엔 나도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서 엄마처럼 정신과 환자가 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있을 때도 아니었으니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은 얻기 어려웠다. 시기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나는 결국 엄마의 주치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우울증도 유전이 되나요?

엄마를 10년도 넘게 담당하던 민OO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유전되지 않으니까 염려 말라고 단박에 나를 안심시켰더랬다. 전문가의 확인으로 내심 안도했던 시기가 몇년은 되었던가? 그러나 그 이후 우울증 및 조울증과 신경증에 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기 시작했고, 저자마다 조금씩 주장은 달랐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서 병이 촉발되는 건 모든 질병이 다 똑같단 얘기.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안증에 시달리는 딸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공황장애와 불안증, 우울 인자를 물려받았다지 아마. 토할까바 두려워 유치원 등원하는 게 공포스러웠던 걸 시작으로 저자의 불안증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던데, 울 엄마의 조울증 투병 역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엄마와 외가 친척들이 아는 한 울 엄마 이전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옛날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부디 엄마의 병은 유전이 아니고, 그러므로 우리 삼남매도 비록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더라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기를 빌고 있다. 하긴 중년까지 잘 버텼으면 앞으로도 괜찮을까?

째뜬 난 엄마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싶진 않아서 어려서부터 방어기재를 작동시켰던 것 같다. 엄마처럼 하고픈 말을 무조건 참지는 말아야지. 남들 시선과 의견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지.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때면 에라 모르겠다, 다 놓아버리는 연습도 해야지. 화병이 나도록 착한 사람 노릇만 하지는 말아야지. 때로는 사납고 표독스러운 쌈닭이 되어야지. 그리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까발려야지...

어쩌면 남들에게 부담스러운 정보였을지 몰라도 난 누구를 만나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할 전망이 보이는 이들에겐 내가 처한 상황, 특히 엄마의 조울증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던 것 같다. 워낙 자주 앓으셔서 ^^; 아픈 엄마를 온 가족이 번갈아 돌보려면 주변에 티를 안 낼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다. 상태가 나빠진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을 땐 약속을 펑크내야 한다든지, 예약해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덜했던 시절부터 환자의 가족인 난 아무래도 주변에 좀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의 상태를 발견하는 '촉'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불면과 무기력감, 자학하는 태도까지 보이는 친구나 지인을 보면 열심히 설득해 병원진료를 받게 했다. 우울증 약으로 도움 받는 게 뭐가 어때서? 우울증은 뇌에서 나쁜 물질이 나와서, 혹은 좋은 물질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래! 초기에 빨리 시작하면 약으로 완치 된대! 일단 병원에 가보자...

돌이켜보면 그들 가운데서 부모님이나 조부님 세대에 증상을 앓은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주로 마음 약하고 소심하고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약을 계속 먹고 치료를 받아도 완치는 되지 못해 혈압약이나 당뇨약 먹듯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는 지인도 있고, 말끔히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씩씩하게 잘 사는 지인도 있고, 처방된 약을 먹었다 말았다가 치료에 갈팡질팡하는 지인도 있다. 

기비혼을 가리지 않는 나의 우울증 환자 지인들도 혹시나 자식에게 유전될까봐 걱정하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확실히 우울감은 전염되기 쉽다는 거다. 점점 와병 기간이 길어지는 엄마 옆에서 시달리다 보면 나 역시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다. 힘들고 슬프고 암울하고...

작년 늦가을부터 겨우내 엄마 상태가 나빠져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내 마감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히 피폐해졌을 때 설상가상 다리 통증이 생겼고, 홀로 한밤중에 응급실에 찾아가 덜컥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땐 나의 정신 건강 상태도 정말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계속 정신이 온전치 않아 사사건건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종일 진통제 기운에 누워있다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징징 아파 울면서 끼니를 챙기노라면 어휴... 짐스러운 엄마랑 나랑 둘이 이 세상에서 확 없어져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어머 이거 우울증 환자의 반응인데! 반성했지만... 

당연히 조울증의 유전 여부에 대해선 의학전문가도 아닌 내가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다만 내가 현실에서 겪고 느껴왔던 경험상 100% 유전되진 않겠지만 유전인자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정도?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든 털어놓고 주변에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고... 지금껏 노력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면 되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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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성 페미니스트'라고 할 때 퍼뜩 떠오르는 몇몇 인물 중 한 사람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을 읽었다. 어느덧 80세가 된 투사 활동가의 이야기 속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독자 입장에선 나와 연결된 듯한 사연이 특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사주관상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딱 '역마살'이라고 표현할 만큼 평생 돌아다니며 산 작가의 인생도 신기했고 (나 역시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뿐 수시로 품는 여행 로망을 역마살 탓이라 여긴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작가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별 내용도 아닌데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구절은 바로 이것.

"어머니는 슬픈 영화나 상처 입은 동물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우울증이 도질 수 있었다." - <길 위의 인생> 204쪽.

와, 우리 엄마만 그러시는 게 아니구나! 이런 동병상련? 위로받는 느낌? '우울증'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 기복이나 의지박약이 아니라 병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서구에서도 현대사회에 들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전쟁 이후 먹고 살기 바빴던 6, 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은 당연히 별것 아닌 나약함의 표상이거나 괜한 투정이거나 '귀신의 소행' 쯤으로 생각됐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이 굿하는 장면이고, 무섭게 생긴 무당이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우리 엄마에게 살아 있는 닭을 던져 푸드득 날아올라 엄청 무서웠던 게 생각난다는 고백을 서른 살 무렵 처음 털어놓았을 때 이모가 엄청 놀라셨던 적이 있다. 그거 너 서너 살 때 일인데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며. 시집살이가 고됐던 게 원인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마음에 병이 든 엄마 상태를 외할머니는 굿을 해서 해결하려 했던 모양이다. ^^ 물론 무당굿은 우울증에 아무런 효험이 없었고, 엄마는 결국 당시 드물게 신경정신과 진료를 했던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OOO박사의 초창기 환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우울증과 싸워온 역사가 최소 50년 가까이 된다는 뜻이고, 어린 시절부터 몇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엄마의 우울증(조울증)과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수많은 의문에 휩싸였다. 첫번째 의문은 우울증 발병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 외가 쪽에선 '멀쩡했던' 엄마가 시집 가서 애 낳고 살다 우울증에 걸렸으니 호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이유일 거라고 친가 탓을 했었다.  그럴 법한 추론이지만, 정말로 최초의 우울증 발병이 결혼 이후일까 하는 점에 대해선 친척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엄마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선 확신이 없으신 것 같고...

하여간 어려서부터 줄곧 지켜보며 나름대로 내가 파악한 우울증 촉발 인자는 대체로 갱년기, 계절 변화, 스트레스였다. 처음 폐쇄병동에 입원까지 해야했을 정도로 엄마의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심해졌던 건 내가 스무살 때였는데, 사십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엄마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지 않았나 짐작된다. 째뜬 과거의 엄마는 몇년에 한번씩 우울증이 재발했을 때만 정신과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으나, 언제부턴가 1년 내내 우울증 치료제를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는데도 노년이 된 엄마는 이제 일년에도 몇번씩 증상이 오락가락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 자꾸 약을 바꿔야하는 지경이다.

작년에도 11월부터 상황이 나빠져 정말 힘들었고, 넉 달이 지난 올해 설날 무렵에야 비로소 우울증이 좀 진정세를 보였다. 투약 종류와 양을 조금씩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다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의 정상 상태'가 되었다고 주치의가 안심했던 게 지난 4월 초였는데... 말짱한 기간을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엄마는 지난주부터 다시 불안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니 대체 왜 또? ㅠ.ㅠ

스타이넘의 어머니처럼, 울 엄마의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 이유도 이젠 딱히 꼽을만한 게 없다. 일조량이 달라지는 환절기라든지, 명절의 부담감이나 친척의 중병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환절기도 잘 지나갔고 딱히 '이슈'도 없는 요즘 대체 왜 그러시는가 말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어버이날 기념으로 예쁜 손주들과 자식들 만나 맛있는 거 먹고 용돈도 받고 그러시는 행복한 시기에 하필 참나.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그러면 약을 먹어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이 이어지고, 불안이 깊어지면 도리어 흥분 상태가 되거나 무기력증을 보이기도 하는데, 부디 이번엔 너무 길지 않게 살짝만 앓다 지나가면 좋겠다. 가족이 아프면 다른 가족도 덩달아 아프고 맥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엄마의 우울증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당분간은 블로그에 풀어볼 작정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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