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투덜일기 2015. 5. 8. 20:27

아카시아꽃 향기를 처음 느낀 건 7일이었다. 5월5일에 엄마랑 앞산을 오르러 나갔을 때만 해도 연두색 봉오리로 매달려있더니만, 외출했다가 어버이날 만찬을 위해 장을 봐가지고 낑낑대며 언덕을 오르는데 향기로운 냄새가 먼저 반겼다. 아카시아 향기를 즐길 여유도 없이 계속 우울한 나날.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이렇게 우울한 어버이날이 또 있을까.


지금은 그누구보다도 효자인 큰동생. 장손이라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고등학생때 잠시 방황을 하며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었다. 그때 엄마가 벼르고 별렀다는 말. 너도 장가가서 어디 너랑 똑같은 자식 나서 속 좀 썩어봐라... 


엄마들의 저런 바람은 반드시 이뤄진다던가... 동생은 실제로 요즘 자식 때문에 엄청나게 속을 썩고 있는데, 울 엄마는 정말로 당신의 발언 때문에 그렇게 됐나 싶어 맨날 회개하고 속죄기도를 올린단다. 그런데 속없는 자식놈은 다 커서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엄마가 바란 대로 됐잖아!"라며 부모 원망을 하고, 늙은 엄마는 또 그 말에 상처를 받는다. 


이래저래 마음 상하고, 즐거이 모여 왁짜지껄 밥 먹을 상황도 아니라 동생들에게 가정의달 행사로 모이지 말자고 했다.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 내가 너무 바쁘다. 섭섭하지 않다. 진짜로 마음이 안내킨다. 엄마가 싫단다....


그래도 막내동생네는 일요일에 잠시 다녀갔고, 큰동생네는 장손 ㅈㅎ이가 대표로 어버이날 카네이션 사들고 왔다. 그래, 어쩐지 육회 감을 좀 많이 사고 싶더라니. 잘 됐네. 부리나케 전복구이에, 샐러드 두 종류에, 육회무침까지 한상을 차린뒤 밥을 푸려고 보니 아뿔사, 밥통에 밥이 한 그릇밖에 없다. ㅠ.ㅠ


점심은 파스타 해먹으면서 '보온'으로 켜져있는 밥통에 새밥이 한통 가득 든 줄 알았다. 누가 뭐래도 '밥은 내가 해요'라는 엄마의 주장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서 쿠쿠 밥솥에 밥하기는 엄마 몫인데 맙소사, 한 그릇 남았던 밥은 당연히 아침에 엄마가 드셨어야 했던 거다. 하지만 어버이날 아침을 홀로 손수 차려드시기 싫었던지, 나에겐 밥 먹었다 거짓말(!)을 하고 고구마로 떼웠던 전말이 너무 늦게 드러났다. 으악...


어버이날이고 뭐고 길길이 날뛰며 왜 밥먹는 거 가지고 거짓말 하냐고 버럭버럭 소리를 치다가 다 차려놓은 밥상이 식어가는 가운데 씩씩대며 새로 밥을 앉혔다. 올 어버이날은 이래저래 망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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