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144건

  1. 2019.04.06 전기렌지 4
  2. 2018.05.29 기억력 4
  3. 2018.01.12 파랑이 여동생 2
  4. 2017.03.27 글쎄... 8
  5. 2017.01.31 명절 차례 2
  6. 2016.01.25 상황 역전 2
  7. 2015.10.28 엄마의 장난감 11
  8. 2015.07.14 십대는 어렵다 2 6
  9. 2015.07.08 십대는 어렵다 10
  10. 2015.06.28 영화와 현실 6

전기렌지

아픈 손가락 2019. 4. 6. 17:54

몇년 전 부엌 씽크대와 수납장을 새로 하면서 쿡탑으로 바꿨던 가스렌지를 버리고, 2월에 전기렌지를 들였다. 가스렌지로 음식을 조리하면 불완전 연소된 가스 때문에 집안에 일산화탄소 농도가 엄청 높아 환기가 필수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래서 할아버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생 부엌에서 조리를 많이 해온 할머니들이 치매에 걸리는 확률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보다는 작년부터 깜빡깜빡 건망증이 심해져서 자주 냄비를 태우는 엄마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이 들면 미각만 둔해지는 것이 아니고 후각도 많이 둔해지는지, 엄마는 국이나 찌개를 데우려고 가스불을 켜놓고는 뒤 돌아 앉아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타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셨다. 기껏 아침에 혼자 차려 드실 때 데워드시라고 한밤중에 신경 써서 끓여놓은 쇠고기 뭇국이나 된장찌개를 한끼도 제대로 못먹고 새까맣게 태워버릴 때는 정말... 눙물이 앞을 가렸다. ㅠ.ㅠ 일주일이 멀다하고 시커멓게 된 냄비를 닦으면서 화도 났지만 이러다 엄마가 집을 홀랑 태워먹지나 않을까 두려워졌다. 넘친 국물 닦던 행주를 가스렌지 옆에 그대로 놓았다가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으니...

암튼 불안불안하던 차에 정수기 렌탈 업체에서 전기렌지 행사기간이라며 살살 꼬드긴 김에 홀라당 넘어가, 가스렌지를 없애기로 한 거다. 물론 걱정이 없진 않았다. 자타공인 '기계치'인 엄마가 전기렌지를 제대로 사용하실 수 있을까? 도시가스 중간밸브도 잠가놓으면 당황해서 가스불을 켜지 못해 노상 중간 밸브를 열어두고 살아야 했는데 말이다.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전기렌지 사용법을 '나름 세심하게' 메모지에 적어 렌지 옆에 붙여놓았음에도 엄마는 두 달이 다 되가도록 사용법을 익히지 못했다. 가스렌지는 손잡이만 눌러 돌리면 단번에 불이 켜지는 데 반해 전기렌지는 먼저 전원을 켜고-->냄비 위치를 정해 누르고-->불세기 숫자를 누르는 3단계 행동을 거쳐야 불이 켜진다. 이 과정을 너무 오래 뜸들이면 삐삐 거리면서 또 전원이 자동으로 꺼진다. 가스렌지처럼 불이 붙었는지 한눈에 확인도 어렵다. 전기가 들어오는 소리가 징~ 하고 들리지만, 보청기를 껴야 하는 엄마의 청력으론 그게 잘 안들리는 것 같다. ㅠ.ㅠ 그나마 3구 전기렌지 중 한 군데는 인덕션이 아니라 빨갛게 불이 들어오는데, 그곳만 사용하시라고 집중적으로 교육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해서 요즘 엄마는 전기렌지와 씨름하다 포기하고 '전자렌지'에 국이나 찌개를 데워먹는 방법을 택하거나 아예 국물요리를 포기하기 일쑤다. 왜 자기 혼자 있을 때 누르면 잘 안되는지 당신도 잘 모르시겠단다. 내가 보는 앞에서 3단계 작동법을 시연해보라고 하면 또 곧잘 하시던데... 물론 간혹 혼자서 '성공적으로' 전기렌지를 켜 국을 데워드신 적도 있지만, 그럴 땐 또 다 데운 뒤에 '끄기'를 누르지 않아서 또 다시 국 한 냄비를 홀라당 태워버린 전적이 2번이나 있다. 잠자다 말고 타는 냄새에 놀란 내가 뛰쳐나와 전원을 껐으니 망정이지. 엄만 내가 뛰어나와 불을 끈 뒤에야 비로소 탄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전기렌지 사용법을 적은 글귀가 너무 헷갈리나 싶어 다시 더 간단하게, 그림까지 곁들여 붙여 놓은 적도 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1, 2, 3단계를 거쳐야하는 작동법 자체가 엄만 그냥 복잡하게 여겨져 싫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엄마가 더 복잡한 스마트폰도 쓰시면서, 카톡으로 사진도 보내고, 찍은 사진 편집도 해 저장할 줄 알면서, 전기렌지 3단계가 뭐가 그렇게 어렵다는 건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자, 정말로 기계치라서 스마트폰도 전화 걸고 받고, 카톡과 문자, 사진찍기 이외 기능은 전혀 쓰지 않는다는 후배 하나가 자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된단다. 햄버거집이나 새로 생긴 쇼핑센터 푸드코트 같은데서 무인계산기 앞에만 서면 얼마나 진땀이 나는지 모른다나. 그 친구는 폰뱅킹, 인터넷뱅킹도 할 줄 몰라 은행업무도 ATM 머신을 꼭 찾아다니는데, 머잖아 자기 같은 사람은 퇴출 인류가 될 수도 있겠다며 걱정을 했다. 그러니 전자렌지 가지고 엄마한테 너무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올해로 79세가 된 엄마는 또래들 중에선 나름 인텔리고 지적인 욕구도 많으며 이 동네에선 꽤나 세련된 (아프지 않을 때만!) 할머니로 통하지만 그간 여러 지병을 앓아오며 자기가 되게 늙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건강과 관련해서 내가 조금만 잔소리를 할라치면 듣기 싫어서 내 입을 막으려는 수단으로 '내가 빨리 죽어야지' '빨랑 죽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된다' 카드를 휘두른다. 으익! 당뇨병환자임에도 단것, 열령 높은 것만 탐닉하며, 결과는 나 몰라라 하는 엄마를 보면 딱 유치원생 수준이니 그렇게 대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지면서도, 아직은 건망증 수준일 뿐 치매환자도 아니고! 우울증이 심하지 않을 때는 제발 든든한 우리 엄마로 자식들 입장과 사정도 좀 배려해주는 주는 마음을 품어주시길 바라게 된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 못하는 것이 노인의 특성이라지만, 엄마가 스마트폰에 적응해 어느새 중독자가 되어 하루종일 들여다보시는 것처럼 설마 전기렌지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겠....지? 꼭 그래야한다. 모녀가 자꾸만 부딪치는 건 까탈스러움이나 잘난척의 정도가 둘 다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란 걸 느끼는데 ㅠ.ㅠ 엄마의 현재가 미래의 내 노년의 한 모습이라면 너무 슬프다. '너도 늙어봐라'고 장담하는 엄마한테 난 좀 다를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 욕심일까. 

Posted by 입때
,

기억력

아픈 손가락 2018. 5. 29. 16:44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이젠 그런 말을 하기 민망하다. 책이나 영화 제목, 배우 이름, 여행갔던 장소... 머리속에 이미지로는 맴도는데 콕 찝어서 원하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놓기 힘든 순간들이 점점 많아진다. 걸핏하면 그거 뭐지...라며 말 꺼내는 친구들 놀리던 게 불과 1, 2년 전이었건만... 그 영화 뭐지? 로드무비, 여자 친구 둘이 마지막에 벼랑으로 차 몰고 떨어지는 거... 아, 그거.. 그게 뭐더라. 키 큰 여자 둘이... <델마와 루이스>? 맞다! 근데 그 배우 이름이 뭐였지? 수잔 서랜든이랑.... ㅠ.ㅠ... 

결국 이날 친구들과 나는 포털사이트 검색 찬스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 데이비스가 도저히 생각이 안나는 거라! 에효...  

오십대 초반인 내가 이럴진대 칠십대 후반인 왕비마마의 기억력이야 점점 나빠지는 게 당연하다. 뭐든 깜빡깜빡 하는 건 중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려니 해야할 것 같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반복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엄마도 나도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와 하루 일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암튼... 기억력이 부쩍 떨어진 건 그러려니 하겠으나, 원래도 조울증 환자라 늘 조마조마한 울 엄마의 경우 지난 봄 환절기를 지나며 퍽 염려스러운 상황이 많았다. LA 친구가 우리집에서 한달 기거하며 무수리 딸이 노상 밖으로 놀러다니느라 약간의 방치를 했던 상황이 노친네에게 녹록치 않아 스트레스가 많겠거니, 나름 감안하더라도 일단 화가 너무 많아지셨다. 

친구와 나는 그래도 나름 하루 건너 한번씩은 종일 집에서 뒹굴며 보필한다고 했는데, 딸 친구가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순간이 많았다. 워낙 남의 시선과 이목을 신경쓰는 타인지향적 태도를 일관해오신 분으로선 의아할 정도였다. 모녀간에 서로 혹독한 언사를 던지는 건 일상 다반사지만 ㅠ.ㅠ 아무리 한달째 기거하는 동거인이라고 해도 딸 친구에게 막 대하실 분은 아닌데... 

본인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다는데 동의했고, 결국 인지능력검사를 의뢰했다. 울 엄마를 포함한 모든 노인들의 제1공포가 치매에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나도 모르게 잃어가다 결국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질병이 다 있다니, 어휴 참 끔찍한 일이다. 원래도 엄마는 6개월에 한번씩 보건소 부설 치매지원센터에서 인지검사를 스스로 해보시는 분이다. 그래서 100에서 7을 연속으로 빼는 연산이라든지, 오각형 두개를 겹쳐놓은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테스트 같은 건 아예 암기할 정도다. 아마 나 보다 더 빨리 대답하고 그릴 걸!

친구의 말로는 정밀 인지능력검사는 본인과 보호자 둘 다 문진을 한다고 해서 (그날 먹은 아침 메뉴라던지, 인척들 가족관계, 인생의 큰 사건 같은 게 정말로 맞는지 따로 물어 서로 대조해본다고 한다) 나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뭔가 단계가 다른 테스트였던 듯 세브란스 병원에선 환자만 1대1로 상담을 했다. 울 엄마의 말로는 보건소에서 하는 무료 인지능력검사와 크게 차이도 없었다는 것 같다. 괜히 비싼 검사비만 버렸다고 하심. 진짜 그런지는 나로선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래도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설문이 설마... +_+ 솔직히 나는 뇌사진도 찍어보자고 그럴 줄 알았는데, 문진으로 끝나는 게 좀 의아했다. 물론 울 엄마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으시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암튼 일주일간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치의 상담을 기다렸다. 검사 당일 불안초조해서 그런지 워낙 잠을 설치고 가셨기 때문에, 결과가 좀 나쁘더라도 그러려니 하시라고 컨디션에 따라서 기억력은 크게 좌우된다고 엄마에게 미리 당부한건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드디어 정기검진 날, 검사 결과가 어떻느냐는 우리 질문에 의사는 '좀 애매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보통 동년배 평균 기억력보다 30% 이상 떨어지면 초기 치매 판정을 하는데, 울 엄만 15% 쯤 떨어지셨단다. 100명 중에 50등 하면 되는 건데;; 끝에서 20등 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는 설명. ^^; 그래도 기억력이 떨어진 건 맞으니 너무 충격은 받지 말고 '뇌 영양제'라고 생각하며 일단 기억력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어보라고 했다. 치료도 가능하고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니 염려 마시라고. 학창시절에도 그다지 우등생이 아니었던 덕분인지, 엄마도 쿨하게 꼴지 아니면 됐지 뭐, 그나마 다행이네, 하는 반응이었다. 

처방 받은 '뇌 영양제'를 일주일간 먹어본 엄마는 확실히 기억력이 나아진 것 같다고 평했다. 흐린 날이면 아침인지 오후인지 분간도 잘 못하고, 너 어디 나간다고 했지? 똑같은 질문을 5분 안에 3번씩 하던 증세도 없어진 것 같았다. 환절기를 벗어나면서 전반적인 심신의 컨디션도 좋아졌으니 약의 도움만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나 역시 불면에 시달리고 나면 시력이 떨어져 눈도 잘 안보이고 머리가 멍해져 귀도 잘 안들린다. 평소에도 안경을 빼고 있을 땐 전화 통화할 때 상대 목소리가 잘 안들리는 걸 뭐. ㅠ.ㅠ 

문제는 그 '뇌영양제'만 먹으면 엄마가 악몽을 꾼다는 것이었다. 아침 식후와 자기전에 한 알씩 드시는데; 그 약을 먹고 나선 눈만 감으면 무서운 것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심지어 하루는 꿈속에서 괴물(=이불)과 싸우다 침대에서 떨어지셨다. 젠장!

그간 엄마도 나도 바닥애호가라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침대에 누우면 허공에 붕 뜬 느낌? 호텔처럼 집보다 천장이 높은 곳이라면 몰라도.. 특히 한여름엔 서늘한 바닥에 보송하고 푹신한 요를 깔고 자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데! 암튼 그러나 엄마는 팔다리 근력이 떨어지면서 바닥에 앉거나 누웠다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더욱이 자다말고 선잠이 깬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젊은 사람들도 휘청거리기 일쑤인데;; 노년의 엄마야 오죽하랴. 컨디션 안 좋을 때 자다가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다 몇번 바닥에 나동그라져 멀리서 내 이름을 외쳐 불렀다는데, 밤샘 작업 중이라면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가겠지만 나도 쿨쿨 자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해서 결국 엄마 방에 침대를 놓아드리고는 혹시나 떨어질까, 평소 쓰시던 라텍스 매트리스를 옆에 깔아놓았었다. 노인일수록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리만 내려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쉬운 침대 생활이 필수라지만... 노인의 낙상 문제는 어휴.. 정말 흔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1달간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지켜본 결과... 엄마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워낙에도 잠버릇이 험하고 몸부림을 치며 돌아다니고 주무시는 편인데 침대에서 자면 구석본능이 생겨나 벽에 기대 잔다던데 정말인가? 신기해하며 드디어 두툼한 매트리스를 내방으로 치웠다. 

그러나... ㅠ.ㅠ 매트리스를 치운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엄마는 아침 나절에 침대에서 TV를 보며 노닥거리다 깜박 잠이 들어 결국 낙상을 하셨고 (내가 그렇게 누워서 TV보지 말라고 일렀거늘!!! 으으으) 2번 갈비뼈가 골절됐다. 갈비뼈는 부러져도 깁스를 하지 않는다. 그냥 생활을 조심하며 뼈가 붙기를 2달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침대 낙상사고가 4월 말의 일이었는데... 가뜩이나 충격을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그놈의 '뇌 영양제' 후유증(아마도)으로 꿈결에 괴물과 싸우느라 엄마가 보름 만에 침대에서 또 떨어진 거다! 어휴....

당연히 내 임의로 뇌 영양제는 그만 드시라고 했다. 대신에 온종일 누워 있지 마시고 제발 운동 좀 하시라고! 노인들은 근육에 힘이 워낙 금방 빠져서, 며칠만 누워 있어도 다리가 홀쭉해진다. 그러니 걷는 게 더 힘들어질밖에... 그래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야하는 집에서 밖으로 나서는 걸 엄마가 더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서 재건축을 하든 이사를 가든 엄마가 더 연로해지기 전에 환경을 바꾸고 싶은 마음인데, 현실이 안 따라주니 괴로울 따름이다. 

우습게도 (웃픈건가?)... 동전의 양면처럼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매일매일 보는 일일 드라마를 비롯해 몇몇 예능 프로그램도 처음 보듯 새로워 재미가 있으시단다. 분명 어제, 혹은 며칠 전에 본 드라마/예능프로그램인데 오늘 또 재방송을 보고 계신 게 답답해서 (물론 나도 단지 재미가 있단 이유로, 놓친 장면 보려고 재시청하는 경우가 있으면서!) 물어보면, 아냐, 이건 안 본 거야, 그러신다. 하긴 드라마를 보면서 휴대폰도 들여다보고 나한테 이것저것 참견도 하고 딴 생각도 하노라면 당연히 놓친 장면이 많겠지. ㅠ.ㅠ

해서 벌써 한달이 지나 드디어 내일 다시 정신의학과 정기검진일이다. 뇌 영양제를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하면 되려나? 그건 또 다시 후유증이 없을까, 아무래도 뇌 호르몬에 관여하는 약물일테니 조심스럽고 걱정이 많다. 평소 드시던 약끼리도 돌연 충돌을 일으켜 이상 증세를 경험한 적도 있는 분이라 더더욱.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그냥 서서히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야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노화는 질병이고 장애 같다. 나부터도 기억력이 무너진 건 물론이고 아침마다 일어나면 손마디가 뻣뻣한 걸 어쩌라고. ㅠ.ㅠ 벌써 이런데 무려 100세시대라고? 그건 너무도 무시무시한 저주가 아닐까. 


Posted by 입때
,

파랑이 여동생

투덜일기 2018. 1. 12. 21:17

벨로의 반려묘 귄이와 여동생 고양이 쥬비의 소식과 사진을 간간이 접하며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는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고양이는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귄이 등을 쓰다듬었던 그 감촉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털이 꽤나 빳빳한 느낌이라 의외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랑이의)개털이랑 확실히 달라!

암튼.. 큰동생네 개 파랑이에게도 얼마전 여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라거. 보리 빛깔이라서 맥주가 연상되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귀여운 암컷 강아지에겐 좀 안어울리는 듯도 하지만, 뭐 내가 인간도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하듯 남성적인 이름을 지닌 암컷 골든리트리버를 누군가는 멋지다고 해주기를. ^^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커지는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기로 한 동생네의 결정에 일단 우려를 금치 못했지만 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뒷말을 하겠나. 다만 중성화 수술을 했으되 수술 직전에 딱 한번 짝짓기의 맛(?)을 본 터라 가끔 수컷의 본능인지 인형에게 수상쩍인 부비적거리기를 시전하는 파랑이는 어쩌라고 여동생 강아지를 들여왔나, 파랑이가 좀 불쌍하긴 했다.

다행스럽고 기쁜 건 귀여운 새 반려견이 들어오면서 온 가족이 똘똘뭉쳐 파랑이와 라거를 같이 챙기며 마구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애견 펜션엘 갔다질 않나, 파랑이와 라거를 조카 둘이 서로 자기 새끼라며 각각 데리고 잔다질 않나, 새로운 강아지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편애를 아이들이 나름 알아서 보완해주는 모양이다. 기특한 녀석들. 



Posted by 입때
,

글쎄...

투덜일기 2017. 3. 27. 23:31

인생이 특히나 무의미한 나이대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사회와 시국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넌 요즘 무슨 낙으로 사니?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되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에겐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맨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고 또 못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사람들 앞에선 아주 두툼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도무지 사는 낙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들 눈에 그래도 나는 뭔가 되게 분주하고 희희낙락 꽤나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넌 그래도 신나게 살잖아, 그런다. 아차 싶었다. 내가 행복한 가면을 너무 들이대고 살았던가? SNS가 종종 나 이렇게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과시와 자랑의 장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름 조심한다고는 하나, 솔직히 가끔은 그런 의도적인 과시가 오히려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길가에 피어난 봄꽃, 어쩌다 맛있게 만들어진 국수, 간만에 기분 전환이 되었던 외식 사진을 자랑질하는 이유는 그 순간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나만 누릴 게 아니라 막연한 공간 어딘가에 박제시켜 두고 호응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그런 순간들 역시 자꾸만 구경다니면 그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여간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카톡 창을 이리저리 괜히 두드리다 과도하게 씩 웃는 이모티콘을 먼저 쏘아보내고는, "글쎄... 나도 사실 사는 낙이 별로 없어. 요즘들어 특히 삶이 엄청 구차하다."라는 솔직한 대답은 차마 적지 못하고 (우울한 친구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쪽이었는지, 또 다시 가면 증후군이 도졌는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꼴 같잖은 잘난 척을 좀 했다.

나야 요새 포켓몬 잡는 재미로 살지! 은둔형 인간이 맨날 포켓몬 잡느라고 괜히 막 나가서 걸어다닌다. 훌륭한 게임이야! (사실은 두달이 넘어가면서 포켓몬 수집욕도 좀 시들해졌다 ㅠ.ㅠ) 음.. 또 5분 스케치도 하잖아... 그림이 안 늘어서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어!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낙은 여행이 아닐까...?

친구는 약간 한심스러운 듯 (그냥 내 자격지심일수도;;) 계속 'ㅋㅋ'라는 반응을 보이다 여행 이야기에 그제야 맞다고, 이제 궁극의 낙은 여행 하나 남은 것 같다고, 근데 그걸 자주 떠나지 못하니 더 암울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이면서 로망이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한줄기 희망이자 고문 같은 게 아닐까나? 여행 가고 싶단 생각 들 때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휴가 한달 신나게 놀려고 1년 꼬박 직장 다닌다는 선진국 국민이 아니고서야 원...

게다가 걱정대마왕이자 불안증환자로서 나는 어디서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그만큼 사전준비도 쉽지가 않다. 말로는 훌쩍~ 이라고 하면서도 대체로 여행지부터 예산까지 미리 한참 고민고민하다 떠나는 편이다. ^^ 그나마 아버지가 계실 땐 그래도 기회 봐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후다닥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젠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떠나는 날 직전까지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한가 너무도 불안하다. 이래서 가족은 울타리면서 동시에 역시나 멍에였어! 라며 짜증부리게 되는 거다. 물론 요즘 가족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사정이지만. ㅠ.ㅠ (버는 것도 변변찮은 니가 지금 여행이나 다닐 때냐!)

암튼... 사는 낙도 없고 애들 뒷바라지도 지겹고 밥먹는 것도 구차하고 억울해서 식욕이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까지 한숨이 나면서 맥이 빠졌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데 막 식욕이 돋아서 먹고 싶은 거 생각날 때마다 꾸역꾸역 찾아 먹어대는 내가 식충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 *_* 

카르페 디엠, 하쿠나마타타, YOLO...이렇게 맥빠질 땐 별별 주문을 다 외워도 소용이 없다. 젠장. 


 


Posted by 입때
,

명절 차례

투덜일기 2017. 1. 31. 23:15

명절 연휴때마다 sns엔 명절이 사라져야한다는 아우성이 절절하다. 조만간 사라질 '악습'이라는 데 나도 한표. 그러나 그건 머릿속 생각일뿐, 현실에선 그 시점이 문제다. ㅠ.ㅠ 게다가 여자들'만'의 노동이 담보되어서 그렇지 조상 핑계대고 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거, 특히 설날엔 세배하고 윷놀이 하며 노는 거 나름 괜찮다. 아니 사실은 심신이 고달파 괴로우면서도 퍽 좋아한다. 명절이 아니고서야 고모들이며 사촌동생들, 그들의 어린 아기까지 대체 언제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가족이 멍에라면서 아직도 가족주의를 못 벗어나는 내가 한편으로는 좀 부끄럽다. 오랜 세뇌 탓일까. ㅠ.ㅠ  하지만 많이 줄었대도 아직 스무명 넘는 가족이 모여 놀고 먹으려면 음식장만 스트레스가 만만치는 않다. 이 무슨 딜레마인지 원.

요번 설날 sns에서 돌아다닌 명절 글귀 가운데 가장 웃기고도 정곡을 찔렀던 걸 퍼왔다. ^^;​


지인 한 사람이 페북에서 공유했던데 공감해 퍼올렸는데 원 출처는 딴지일보라는 것 같다. 킬킬 웃으며 나도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나 요번 명절에 도 난 음식상을 차려놓고 절을 했으니.. 이러고 보면 나도 아직은 영낙없이 악덕 시누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명절 '차례'라는 이름에 맞게 상차림 음식을 간소하게 하고 그냥 맛있게 먹을 음식에 치중하자고 올케들과 작년부터 의논을 했다. 아는 게 병이라고, 궁궐 쫓아다니면서 이런저런 교육을 받다보니 '차례'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다례'여서 왕실에서도 아주 간단한 다과와 함께 차만 올리는 게 전통이었단다. 근데 왜 우리는 제삿상과 똑같이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따져가며 거창하게 상을 차렸던 걸까! 그건 조선말 신분제가 헐거워지면서 부역에서 놓여나고자 너도나도 돈만 있으면 양반 족보를 사들여 신분세탁을 했고, 막상 양반 체통 차려 조상에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야하는데 대대로 보고 배운 바가 없으니 어깨너머로 남의 양반집 가풍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단다. 당연히 역사적 근거를 따지거나 제삿상과 차롓상의 차이 따위를 고민할 리 만무했고 한 가지 방식을 달달 외워 써먹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마저도 일제 강점기때 대부분 싸그리 잊혀졌는데, 해방 후 다시 전통 명절을 지킬 수 있게 되자 우왕좌왕 헤매는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위하야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걸 정부에서 정해 권장했고 이상하게 '통일된' 가정의례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발목과 편견을 붙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곁다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암튼 난 옛날부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지방에 적는 '현 고 학생부군신위'라는 글귀가 참 이상했다. 아니 왜 노친네가 돌아가셨는데 '학생'이란 말인가! 우리 할아버지가 86세때 돌아가셨는데 지방 글귀는 여전히 '현 고 학생부군신위'였다. 할머니 신위에 적인 '유인 장씨'라는 말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 세상에 돌아가신 장씨 할머니가 한 사람뿐인가! 조상 귀신이 진짜로 제삿밥 드시러 온다고 해도, 귀신같이 잘 찾아온다는 속담처럼 뭐 집집마다 잘 찾아다닌다고 치더라도, 이왕 지방과 신위를 쓸 거면 본인 제삿상인 줄 딱 알아먹게 풀네임을 다 쓰던지 해야지 말이야...

헌데 최근 답사 다니며 알고보니 '학생'이란 유학을 공부한 양반 중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품계를 받지 못했거나 서당에서 공부만 하다 사망한 이들에게 붙여준 예의상의 관직이고, '유인' 또한 종9품 맨 말단 직책의 부인에게 내려진 호칭이란다. '정경부인'이 정,종1품 문무관의 부인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듯이. +_+ 그런데 조선말엔 신분과 상관없이 일반 백성들에게도 사후에 선심쓰듯 '학생'과 '유인'을 붙여주게 되었던 것. 아니 근데 그런 시대착오적인 호칭을 써먹는 지방과 신위를 21세기에도 쓰고 있다는 게 말이 됨??!! 

해서 작년부터는 그 말도 안되는 지방 대신 제사 때 우리도 사진을 쓰자고 내가 우겼고, 설날과 추석땐 증조부모님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아버지, 젊은 시절 돌아가신 작은엄마까지 6분을 연달아 모셨던 터라 지방을 아예 생략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집도 설날엔 떡국 여러 그릇 한꺼번에 올려놓고 세배하고 끝낸대요! 라면서.

간소한 차례상에 대해서는 나름 나도 가족들을 설득할 역사적 근거를 마련했다. ​

​이것이 무려 대한제국에서 황제로 추존된 문조익황제를 위한 황실 차롓상 재현 모습이란다. 황제도 차례를 이렇게 간소하게 차렸다뉘! 

게다가 홍동백서니 좌포우혜 어쩌고 하는 제사 예법은 어딜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단다. 반찬도 딱히 무슨 음식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숙채, 침채, 육적, 어적.. 이런 식이다. 지방에 따라 해당되는 음식 아무거도 올리면 장땡이란 의미가 아닐런지.

별 의미도 없이 거창하기만 한 차례와 제삿상 차림 예법에 대한 문제점은 최근 몇년 새 계속 방송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어서 요번 설 전에도 뉴스에 여러번 같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오히려 예법 따지는 종갓집에서 차롓상을 더 간소하게 지낸다는 것! 왼쪽 사진은 퇴계 이황 종가 차롓상을 재연한 모습이란다. 반찬이라고 할 진 음식은 두부부침과 물김치? 정도가 다고 밥과 떡국, 포, 과일로 끝이다. 으아 그동안 우린 정말 쓸데없이 헛고생을 했구나야.

녹두전, 생선전, 호박전, 동그랑땡 최소 4가지 전을 올리느라 울 올케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전과 나물 준비는 올케 둘이 나눠서 하고, 나는 끓이고 굽는 고기류, 탕국, 나머지 반찬을 담당한다)

해서 우리도 설날과 추석엔 힘들게 전도 부치지 말자고 올케들과 의논을 했으나, 전마저 없으면 반찬으로 먹을 게 너무 없으니 차례상에 올리든 말든 일단 음식 장만은 하던대로 하겠다는 것이 두 올케들의 의지였다. 그럼 양이라도 딱 한 접시 나올 만큼 줄이든지... 

근데 요번 설날을 앞두고 막내올케가 전격 독감에 걸려 집에 격리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말이 A형 독감이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신종플루라며 호들갑 떨던 그 독감 아닌가! 사촌동생네 돌쟁이도 올텐데 우리집에 바이러스를 옮겨놓으면 안될 것 같아 잠복기 보균자일지도 모를 막내동생 식구들 모두 오지 말라고 했다. 아파서 끙끙 앓는다는데 전이고 나발이고 잘 됐다, 그냥 쉬거라. 

작년 추석을 지내며, 사촌동생들은 시댁에서 아침먹고 곧장 친정 격인 우리집으로 달려오는데, 막상 울 올케들은 그들 점심까지 챙겨먹이느라 오후 늦게나 친정으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던 나는 좀 늦었지만 왕비마마와 상의해 동생들에게 전격 선언을 했었다. 설날과 추석 중 한번은 우리집에 오지 말고 친정에 가서 차례를 지내든지 여행을 가든지 하라고. 물론 명절 땐 아침 먹고 무조건 친정에 가게 하겠다고.

명절에 먹여야 할 입 줄어들면 나야 부담 적어져서 신나고 좋다! 근데 변화의 바람에 대한 저항은 의외의 곳에서 닥쳤다. 명절 노동이 힘들어봐야 1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냐며 옛날엔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던 것에 비하면 훨 나아졌구만, 뭘 그리 불평이냐고 동생놈들이 아내의 권리 주장에 반발했던 것. 아 놔;; 1년에 한번 아니라 3년에 한번이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면 힘든 거지!

하여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내 맘대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던 바, 요번 설엔 나박김치도 안 담그고, 수정과도 안 끓이고, AI 핑계로 토종닭도 안 삶고, 굴비도 안 굽고, 막내올케 담당이었던 전 3가지도 싹 빠뜨리니 드디어 차롓상에 떡국과 밥 6쌍을 한꺼번에 올릴 공간이 생겨났다. ^^;

차례는 그야말로 조상신에게 1년 잘 살겠다는 의미로 세배하는 거니깐 수저 꽂고 그런 거 안해도 된다고 누누이 일렀건만 갑자기 달라진 순서에 작은아버지도 큰동생도 몹시 당황해서 나에게 자꾸 짜증을 부렸지만 암튼 여러번 술잔 올리고, 떡국과 밥 갈아 다시 놓고 어쩌고 하는 순서 없이 한번에 짠~ 일동 세배하기로 끝냈더니 거의 1시간은 절약된 것 같았다. 아싸~

그 옛날에도 차례와 제사를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합리적으로 모셨고, 주로 친정 옆에서 살던 딸도 당연히 제 몫을 다했다는데 왜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 관습이 이상하게 왜곡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증조부모님이야 뭐 명목상 같이 챙긴다고 쳐도, 손녀딸인 나로선 할아버지 할머니의 예쁨 받으며 자랐으니 그분들을 위해 차례든, 제삿상이든 준비하고 특히 좋아하셨던 음식 챙겨 놓는 것이 마냥 괴롭고 싫지만은 않다. 물론 그런 고루한 생각이 문제라 내 몸을 혹사시킨다는 건 알지만 암튼 최소한 나는 얼굴도 모르고 명절에 불려다니며 노동을 착취당해야하는 며느리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생각으론 엄마 계시는 동안, 그리고 내가 체력이 허락하는 동안엔 '꼭 사라져야할 악습'인 명절 차례와 제사를 가능한 한 간소하게 하는 방향으로 지속하되, 내 대에서 반드시 끝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명절 연휴때 해외든 국내든 여행 다니는 사람들 너무도 부럽지만, 나 같은 소심이는 아마 여행을 떠나서도 마음 편히 놀지 못할 게 뻔하니깐 ㅠ.ㅠ 올케들 눈치를 최대한 덜 봐도 되는 방향으로 계속 변화를 시도해볼 작정이다.  





Posted by 입때
,

상황 역전

투덜일기 2016. 1. 25. 16:51

이제는 하도 재미가 없어져서 잘 보지않는 <개그콘서트>를 어제 우연히 채널 돌리다 보게됐는데, '웰컴 투 코리아'인가 하는 코너에서 한국의 엄마들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자식이 내 옷 그거 어디 갔느냐고 찾으면, 보지도 않고 어느 서랍 몇번째 칸에 들었다고 척척 얘기해주는 엄마들의 신비로운 능력에 대해서. <응답하라 1988>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얼핏 다뤄졌었다. 엄마 없이 너무도 잘 지내던 가족들에 황망하고 섭섭해하던 엄마의 기분을 돋우려고 개정팔은 서랍을 마구 헤집어놓은 뒤 특정 옷을 찾아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한다. (빨래를 해서 잘 개어 서랍에 정리해둔 장본인이었을) 엄마 라미란 여사는 혀를 끌끌 차며 아들 방에 들어와 당연스레 그 옷을 찾아주고...


음. 서론이 길었는데 암튼 울 엄마도 옛날엔 그랬었다. 목도리나 장갑이 통 안보여 찾아 헤맬 때라든지, 계절이 바뀌고서 작년에 입었던 그 바지를 찾다가 신경질을 부리면 희한하게도 엄마는 내가 방금 찾아본 그 서랍 속에서 쏙 문제의 옷이나 물건을 찾아내주곤 했다. 이상하다? 왜 내가 찾을 땐 안보였지? 아깐 분명히 없었는데...


우린 집과 옷장이 좁아서 코트 같은 겨울옷은 봄부터 여름 내 세탁소에 맡겨두었다가 입을 때 쯤에나 찾아와서 입는 경우도 잦았는데, 막상 날이 갑자기 추워져 성질과 난리를 피우며 옷을 찾아 헤매고 있노라면 엄마가 새벽부터 세탁소에 가서 외투를 찾아다주기도 했었다. 와 울 엄마 기억력짱... 뭐 그런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들의 그런 능력은 때때로 평생 가지 않나보다. 듣자하니 어떤 엄마들은 노년에도 여전히 그런 명민한 능력을 발휘하신다는데 (실제로 울 외할머니는 팔순이 넘도록 그런 능력의 소유자였다. 사랑방 시렁에 얹어놓은 대봉시 중에서 맨 왼쪽 두개만 잘 익었으니 그 놈으로 집어오라고 안방에 앉아서도 콕 찝어서 심부름을 시키신다든지... ) 울 엄만 아니다. 


몇년 전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잘 개어 서랍에 넣어둔 옷도 종종 못찾아, 버릇처럼 "암만 찾아도 그 옷이 안나온다"며 이상하다고 나를 들복는다. 물론 옷에 발이 달려 어디로 사라졌을 리 없으니, 내가 뒤지면 반드시 나온다. 옷장에 버젓이 걸려있는 외투나 스카프도 내 눈엔 빤히 보이는데 못찾겠다고...


그뿐인가. 나이들면 혀와 입주면 근육과 신경이 무뎌져서 아이처럼 입가에 뭘 잘 묻히거나 흘린다는 이야기를 누누히 듣기는 했지만 아오 진짜로 얼마나 흘려대는지! 엄마가 외출복과 집에서 입는 옷을 구분하지 않고 입는 걸 난 아주 질색을 하는데, 그 첫번째 이유가 앞섶에 생기는 얼룩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서 입고 지내는 상의 앞섶은 깨끗한 게 하나도 없다. 뭘 흘린 걸 발견하고서 금방 초벌빨래를 하거나 빨래하기 전에 잘 문지르면 지울 수 있지만, 문제는 엄마가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게 수많은 음식물 얼룩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 ㅠ.ㅠ


본인도 밥먹으면서 잘 흘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휴지로 옷도 닦고 식탁보도 문지르지만 ㅋㅋㅋ 나중에 보면 식탁 아래 밥풀이며 반찬 부스러기가 즐비하다. 오늘은 바닥에 점심에 끓여먹은 우동 가락까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젠 삼둥이처럼 전용 턱받이를 장만하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하시라고 구박한 적도 있다. 몇번은 실제로 식탁 앞에서 앞치마를 입힌 적도 있지만 금세 민망해졌다. 까짓거 옷을 빨면 되지... 요양병원 환자도 아니고.. -.-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잘 둔 다고 보관해둔 반지나 팔찌, 용돈 봉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 한숨부터 푹 내쉰 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수색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물론 엄마가 찾아본 곳에서 약간만 수색 반경을 넓히면 문제의 물건은 금방 발견된다. 요샌 종종 서랍안에 멀쩡히 들어 있는 손톱깎이도 사라졌다고 찾는 판국이라(다른 물건에 조금만 가려져 있어도 못 찾으신다) 나의 짜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진다. 아 대체 왜 잘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나 그 분노가 향하는 진짜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노화와 무기력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인 것 같다. 더는 우리 엄마가 전지전능 초능력자 같았던 슈퍼맘이 아니고 그냥 늙어가는 노인이라는 것을, 그 옛날 엄마가 우릴 보살펴주었듯이 역전된 상황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겠지.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들이 사방에서 엄마, 엄마, 여보, 여보 불러가며 이것저것 찾아달라고 해달라고 보챘던 시절의 울 엄마 나이는 사십대였다. 내가 대학1학년 때 울엄마 나이가 겨우 45세. 지금의 나보다 한참 젊다. ㅠ.ㅠ 그러니깐 30여년이나 지난 지금의 엄마에게 그 옛날의 전능함을 기대하면 안되는데, 중년이 되어서도 도무지 철딱서니 없는 딸은 여전히 늙은 엄마의 현재 모습을 선선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정작 엄마는 이제 초연한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길길이 날 뛰어도, 늙으면 애가 된다잖니, 너도 늙어봐라, 어쩌겠니 이렇게 된걸... 그러면서 웃어넘기신다. 그래서 다행이지만, 이렇게 모녀의 상황이 역전된 세월이 서글픈 건 어쩔 수가 없다. 





Posted by 입때
,

엄마의 장난감

투덜일기 2015. 10. 28. 14:10

스마트폰이 요즘 어른들의 필수 장난감이 된 거야 주지의 사실. 70대 노년의 울 엄마도 스마트폰 세상으로 입문하신지 석달이 넘었는데, 아이고 안 사드렸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처음엔 문자놀이에 빠져 집에 있는 나한테도 언제 일어날 거냐, 점심 뭐 먹을 거냐, 장보러 안가냐... 띠리링 띠리링 아주 귀찮게 하시더니만 ^^

요샌 사진 재미에 푹 빠져 계시다. 아예 동네 개천변 산책길의 꽃과 풍경 사계를 기록으로 남기시겠다고!

하루에도 수십장씩 찍어온 사진들을 내밀며 좀 보라고 하는데 무심한 딸은 그저 귀찮을 뿐이고!! ㅋ 멋지다, 잘 찍었다고... 영혼없는 칭찬도 하루이틀이지 원...
휴대폰을 내밀어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이젠 문자나 카톡으로 사진 폭탄세례!! 아 놔;;

나뿐만 아니고 두 아들과 만만한 시누이들한테도 막 자랑삼아 보내시는데... 한꺼번에 사진 너무 많이 보내는 거 실례고 민폐라고 암만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바로 답장 안하면 삐치기나 하실 뿐.

근데 또 열렬히 울 엄마의 작품생활을 지지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화가이신 울 막내고모다. ^^*
마침 요즘 그리는 작품이 풀, 나무, 꽃과 관련이 있대고 준비하는 논문도 풀꽃의 도상화 작업에 대한 거라나. 해서 오히려 아마추어가 찍은 소박한 풀과 꽃 사진이라 작품에 더 영감을 준댄다. 심지어 "언니, 그러다 사진 작품전 열어야겠어요"라고까지 (너무 심한) 극찬을..  ㅠ.ㅠ 
그 얘길 듣더니 울 엄니 더 신나서 작품활동에 힘쓰시고 자꾸만 또 나한테도 좀 보라고.... ㅋㅋ

내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 엑기스 매뉴얼을 손수 대여섯장이나 적어드렸는데 아무래도 독학하며 글로 익히자니 한계가 있었는지, 오늘부턴 아예 구청 스마트폰 초보교실에 등록해 공부하러 가셨다. 놀라운 학구열!

일요일에 1박2일로 부산 모녀여행을 다녀왔는데, 자긴 충전기 안챙겨가도 될 거라고 장담했다가 배터리 떨어진 걸 어찌나 아쉬워 하시던지 결국 올라올때 부산역 편의점에서 급속충전을 해드렸다. 근데 그 이후 이상하게 휴대폰이 먹통! 전화만 되고 시간날짜도 초기화되더니 문자 카톡이 안됐다. 내가 배터리 빼면서 유심칩 빠뜨렸나 덩달아 식겁. ㅠㅠ

안타깝게도 서울역엔 kt매장이 없고 비까지 내리는 밤중이라 얼렁 택시타고 집에 와야했다.
해서 다음날까지 휴대폰 놀이를 못하게된 왕비마마.. 거의 멘붕이신듯 안절부절! ㅋㅋ 스마트폰 금단증상이 따로없더군. ㅎㅎ 

어제 득달같이 휴대폰 매장에 갔더니 유심칩 빠진 건 아니라서 부팅을 여러번 하고 설정을 고치고 이것저것 눌러보더니만 금방 고쳐줬다. 그제야 안심하고 환하게 웃는 노친네. 아들들한테 카톡으로 부산 사진 자랑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병이 날 지경이었나보다. 아이고...

고교 동창모임에서 친구들이 큼지막한 스마트폰 화면 쓱쓱 넘기며 손주들 사진 자랑할 때 부러웠더다니... 이젠 울 엄니도 손주들 사진에 당신 사진, 손수 찍은 작품사진까지 아주 어딜가나 자랑이 한창이다.

울 엄니 때문에 또 어느 할머니도 스마트폰 세상에 입문하실지도 모를 일. ㅎㅎㅎ






Posted by 입때
,

십대는 어렵다 2

투덜일기 2015. 7. 14. 21:13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치는 건 아니고 (대나무숲의 메아리도 무섭다;;) 비밀블로그에 5월중순부터 매일 따로 문제적 십대와 사는 고충을 일기로 적고 있는데 역시 스트레스 해소는 혼자 끄적이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 것 같다. 해서 '문제적' 십대 씹기 포스팅 제2탄을 적어보기로. ㅋㅋ


대부분의 어린이도 그렇지만 십대는 채소를 제대로 안 먹고, (오로지) 고기를 좋아한다. 중고등학생을 둔 지인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침마다 고기반찬을 해대게 될줄은 정녕 몰랐다. 친구들이 새벽부터 삽겹살을 굽기도 하고 갈비, 스테이크도 해먹이고 그런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들을 땐 그냥 무쇠도 씹어먹을 남자애들 키우는 엄마들의 극성이려니 했었다. 어차피 오밤중에 집에 들어오는 고등학생은 집밥을 딱 한끼 아침에만 먹기 때문에  특별한 반찬으로 챙겨먹이는 걸 아침에 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 특히 요즘 남자애들은 공부도 공부지만 '키' 크는 게 중요하여, 아침에 고기 먹고 부지런히 학교 가서 얼른 또 농구 한판 때려주신다고... +_+ (186센티미터가 목표라나!) 고3되면 체력이 국력이라 엄마들도 저학년땐 의외로 아침운동을 지지한다네. (애들 수업시간에 존다고 체육 시간에 운동시키면 항의전화하는 엄마들 얘기는 또 뭔가.. 암튼 요지경 ㅋㅋ)


근데 이미 성장판이 닫혀버린 이노무 지지배도 꼬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잘 안먹는다. 지네 집에서는 반찬투정 안하고 그냥 주는대로 먹었다는데 아 왜! +_+ (왜겠냐, 니가 만만한거지;) 놀랍게도 이 아이는 아침에 억지로 눈을 뜨자마자 바로 식탁으로 가서 아침밥을 먹으며 잠을 완전히 깨는 것이 습관이다. 잠도 덜 깬 아이 치고는 참 밥이 잘도 넘어간다고 놀랄밖에. 암튼 그래서 밥 먹으라고 수십번 깨우면 겨우 눈을 뜨자마자 묻는다. 반찬 뭔데?  으으으으...


최소한 달걀말이나 달걀찜은 있어줘야 하고, 주로 먹고싶다고 주문하는 건 제육볶음, 돼지고기 김치찜, 닭갈비, 훈제오리... +_+ 가뜩이나 두 모녀 엥겔계수도 높았는데 고기대장 십대까지 와 있으니 식비가 그야말로 엄청나다. 아침부터 닭갈비, 순대볶음 같은 거 만들고 있노라면 한숨이....  돌연 성질나고 땀 빼기 귀찮아지면 종종 몸에 나쁘거나 말거나 햄, 소시지, 베이컨, 명란젓(공주 취급 받던 시절부터 이상하게 좋아하던 반찬;;)으로 떼우고 있다. 십대들은 또 가공식품을 좋아하니깐!


십대들은 니옷내옷이 없다. 이건 이 아이 하나만 그러는 게 아닌 게 확실하다. 수년째 지켜봐온 경험치도 있고, 얼마 전 TV에 중학생이 된 최진실 딸이 나왔는데 비싼 파카 사줬더니 친구랑 바꿔입었다고 할머니가 잔소리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아이고 쟤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암튼 서로 옷 많아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 새옷이랍시고 사줘도 금방 보이질 않는다. 그옷 어쨌냐고 물으면 자기보다 친구한테 더 잘어울린다고 결론이 나서 바꿔입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고가의 옷인 경우 얼렁 찾아오라고 난리치면 알았다면서 차일피일.... 계절이 바뀌고서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이 아이는 생일이 12월이라 주로 나와 할머니한테서 고가의 외투를 선물로 받아내는데 ㅠ.ㅠ 제대로 입고 다니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물어보면 친구네 집에 있다고...  그래서 이제 다시는 옷을 사주지 않겠다 결심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요번에 사준 셔츠도 입고 다니는 거 한 사흘 봤나... 어느날 문득 친구랑 바꿔입고 왔다더니 한달 넘게 안 받아온다. 바꿔입었던 옷은 또 딴아이한테 넘어갔다던데 ㅋㅋㅋ 암튼 친구 돌려줘야한다면서 빨아놓으라던 후드 티 몇 개가 아직도 그냥 옷방에 널려있다. 자동차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셰어카가  서서히 유행하고 있더더니만, 이 아이들은 셰어클로딩이냐 뭐냐. 난 아무리 돌이켜봐도 친구한테 괜스레 옷을 빌려입었거나 빌려준 적이 드문 것 같다. 비오는 날 쫄딱 젖었거나 음식 먹다가 대박 쏟아서, 친구 옷을 빌려입고 온 적은 있었다만 옷이 마음에 들거나 예뻐서 서로 바꿔입고 빌려입는다는 건 쫌... 그래도 친구가 안 입는다고 준 옷을 즐겨 입은 적은 있으니 이해해야 하는 건가. +_+ (가만 생각해보니 약간 '날나리'였던 사촌언니는 가끔 내 옷을 빌려가거나 자기 옷을 내게 '잠시' 빌려줘 입히려고 들었던 것도 같다. 대학 들어가자 마자 그 언니는 아직 십대였던 내게 자기 옷을 입혀선 가끔 신촌 '디스코장'엘 데려갔었다. ㅎㅎ) 집에서 나갈 때와 들어올 때 입은 옷이 달라지는 십대들.. 생각해보면 지들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흠...


딴 십대는 모르겠고 우리집에 있는 십대 지지배는 이어폰으로 음악듣다가, 문자질 하다가,  TV보다가 그냥 소파에서 잠든다. 일찌감치 잠자리로 쫓으면 싫단다. 그렁그렁 코고는 소리 내며 잤으면서 아직 안잔다고 큰 소리도 친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있는 게 편하다고...(아 물론 지네 집에서 침대생활 하다가 바닥에서 자려니 불편한 걸 수도;;) 종종 새벽 5시까지 안자고 떠들어댈 때도 있었지만 지도 체력이 딸리는지 그래도 요샌 3, 4시엔 잠드는 편인데 3시 전에 방에 가서 자라고 깨우면 일단 거부한다. 아 왜?! 그러다가 최소 3시는 넘어서 한번 더 잔소리를 해야 방으로 퇴청... 으휴.


역시나 모든 십대가 그러는 게 아님은 알지만 암튼 우리집에 있는 십대는 대화를 기피한다. 뭘 좀 꼬치꼬치 물으면 아왜?/뭐래.../아 몰라/몰라도 돼/저리가... 따위로 차단막을 친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애한테 어디서 만나냐고 물어도 대답은 "몰라"다. 얘기하기 싫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죄다 시시콜콜 엄마에게 털어놓는 사춘기 십대들도 여전히 간혹 있다기에 부러운 마음이 드는데 (과거의 나도 대체로 그랬다. ㅠ.ㅠ), 아주  심한 경우, 후배 하나는 중학생 아들 목소리를 일주일간 단 한번도 들을 수가 없단다. 어린시절처럼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 좀 시킬라치면 인상 팍 쓰면서 제 방으로 쾅 문닫고 들어가기를 시전한단다. 조카는 사생활에 관한 게 아닌 한은 그래도 최근엔 대꾸를 해주기도 하고 제가 먼저 뭘 묻기도 해서--가령, "고모 이거 입으니깐 나 뚱뚱해보이지 않아?"라든지--좀 나아졌다고 믿고싶지만 여전히 속을 모르겠다. 말 대꾸 좀 해주는 것 같아서 얼른 다가가 앉으면 대번에 저리가라고 쫓는다.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은지 원... 


또한 십대는 휴대폰이 생명줄이다.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질 않는다. 자면서도 손에 쥐고 있을 정도.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노무 지지배는 최신형 아이폰6를 산지 두달 만에 잃어버렸다. 어떻게 한시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는 아이가 그걸 잃어버릴 수 있는지는 불가사의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못쓰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변명. 게다가 새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학교에 빼앗겼다고 거짓말 했다가 들통난 사건에 이어, 마지막달 휴대폰 요금이 수십만원에 이르러 (아마 이것이 집에서 쫓겨난 결정적 원인이었을지도 ㅠ.ㅠ) 꼬진 기계로라도 새로 휴대폰을 사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단 착신 정지해놓고 약정기간 동안 기계값만 계속 내기로 한듯. 물론 요즘 십대는 휴대폰 없이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혹시 '공기계'라는 것을 아시는지? 나 같은 사람은 한번 휴대폰을 사면 마르고 닳도록 망가질 때까지 쓰고 가능하면 기기도 반납해서 혜택을 받지만, 고가의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2년 약정기간이 끝나면 미련없이 새폰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집집마다 쓰지않는 스마트폰 '공기계'가 더러 있는 모양. 해서 이 아이도 언제부턴가 누가 '빌려줬다'는 스마트폰 공기계 하나를 들고다닌다. 나도 영문을 잘 모르겠는데 그런 공기계는 일반전화도 안 되고 휴대폰 문자로 본인 확인을 해야 로그인을 할 수 있는 카톡도 불가능하지만, 음악을 듣는 건 물론이고 페이스북과 페이스북 메신저가 가능할 뿐더러 음성 통화기능도 쓸 수가 있단다! 그니깐 나나 제 부모는 절대 아이와 연락이 안되지만 페이스북을 하는 친구들 끼리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물론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난점이 있다--메시지와 통화를 주고받는다는 것! 물론 조카의 페이스북은 죄다 잠가놓아서 나로선 친구신청도 안되고 페이스북 메시지도 보낼 수 없다. ㅠ.ㅠ 


째뜬 이제 방학이 딱 일주일 남았다고,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적 십대는 방학이 되어도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다. (왜 안 그렇겠나. 잔소리는 좀 하지만 퍽 만만한 고모와 할머니와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TV가 있는데;;) 아이 부모도 딱히 데려갈 마음이 없다. 애가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갈 수도 없는 거고.. 데려다 놓고 또 속끓일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나 역시 스트레스 만빵이지만 이제 방학했으니 무조건 집에 가라고 쫓아낼 배짱은 솔직히 없다. 고모랍시고 이게 잘하는 짓인지 전혀 확신이 없음에도.... 더 먼 곳으로 튕겨져나갈까봐 우리가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걸, 아이는 벌써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하여간에 십대는 참... 어렵다. 

Posted by 입때
,

십대는 어렵다

투덜일기 2015. 7. 8. 22:20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구 말이 요즘 애들은 종이 다른 인류인 것 같다고 했다.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알쏭달쏭, 그냥 받아들이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실제로 희곡수업의 연장선에서 단체로 연극관람을 따라갔던 날 목격한 장면인데, 15학번이라는 여학생이 친구들이랑 재잘재잘 떠들다 말고 좀 떨어져 서 있는 우리(그러니깐 늙다리 교수와 교수 친구들)에게 달려오더니 한껏 애교 띤 목소리로 소리쳤다. "교수님, OO이가 자꾸 놀려염. 때려주떼염!" +_+ 

놀란 우리들이 나중에 은근히 친구를 놀렸다. 야, 너 대학교수 아니고 유치원 보모 같더라... 


물론 한두 명의 행동으로 다 싸잡아서 손가락질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암튼 스무살 아이들도 제 앞가림 잘 못하고 유아적 행동양식을 버리지 못할진대, 십대는 오죽하랴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고 몸에서 사리가 나오든 말든 의연하게 버티려고 하고 있는데 진짜로 어렵다. 가정불화(?)로 집을 나온, 혹은 집에서 쫓겨난 십대 조카를 데리고 지낸지 두달이 다 되간다. 팔자에도 없는 고등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새벽밥 해먹이고, 종종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밤마다 안자고 노는 애한테 빨랑 좀 자라고 하소연하고, 그래봤자 소용없이 악순환의 연속으로 아침이면 눈도 못뜨는 애를 열댓번씩 깨워서 또 아침을 먹이고... 으악... 


친구네 자식들은 대체로 너무도 모범생이어서 사교육도 제대로 안받고 대학에 척척 들어가거나, 특목고에서도 막 장학금을 받는 우수학생이거나, 혹간 재수를 하고 있더라도 제 부모 위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들이던데, 살다살다 이런 십대는 정말 금시초문이다. (물론 그간 감추어졌던 속썩이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알음알음 전해 들으며 약간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양태를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ㅠ.ㅠ) 


엄청난 세대 차이 뿐만 아니라 과거 나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아도 약간 반항기는 있었으되 대체로 '모범생' 범주에 들었던 내가 '문제적' 십대 소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조카가 이미 중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벌점 전교 1위를 도맡았던 아이인 걸 감안한다면 말이다... (하필 또 심히 규율이 엄한 학교를 다니긴 했다. 교복 치마 길이, 머리, 화장, 수업태도, 지각, 결석... 가뜩이나 까다로운 학교에서 조카는 그 모든 규정을 다 무시하고 거듭 위반했다. 님좀짱이심;;) 째뜬 뭐, 학교에서 치마 짧다고 머리 염색했다고 화장 진하다고 뭐라 그러는 건 나도 웃기는 규율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공부랑 무슨 상관이냐고... (교사들은 상관있다고 말할 테고 현실적 통계로도 어쩌면 상관 있겠지만 암튼...+_+)


물론 학교가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고 몸에 배게하는 교육공간임은 알지만 매사 온몸으로 반항하는 존재도 한둘 있어야한다고 쿨하게 넘어가기로 하자. 하지만 그밖에도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십대의 행동양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체 왜 그럴까 계속 고민해보지만 결론은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 그냥 그들은 그런 또래라고 봐야하는 걸까. 


일단 이 녀석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밤새도록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하며 킬킬거린다. 학교 안 갈거냐고 아무리 잔소리 해도 소용없다. 잠이 안온다는 것이 핑계. 휴대폰 화면 오래 들여다보면 뇌파가 이상해져서 잠 안오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 따위는 개나 주라지..


아침엔 깨워도 당연히 못일어난다. 5분만, 10분만... 꼼지락거리다가 결국 매일같이 지각이다. 학교에서 지각비를 걷으면 뭘하나. 별 소용도 없다. 그러고선 학교 가면 당연히 수업시간 내내 엎어져 자겠지. 안봐도 비디오다.


늦게 일어나서 지각을 할 지언정 '화장기 없는' 얼굴로는 절대 등교하지 않는다. ㅠ.ㅠ 이젠 아주 차안에서 화장 마무리하는 것에 맛을 들여서 노상 나를 운전수로 써먹는다. 지각을 하든 말든 혼자 가! 라고 큰소리도 몇번 쳐보았지만... 이 무대포 십대는 보란듯히 1교시를 가뿐하게 째는 시간에 어슬렁 어슬렁 집을 나섰다. 맙소사...  결국 엄청난 지각비는 내 주머니에서 나갔다. ㅠ.ㅠ 


신발 신는 방법도 이상하다. 남자애들은 제 사이즈보다 큰 운동화에, 여자애들은 제 사이즈보다 작은 운동화에 발을 구겨넣어 신는다. 아대체 왜??? 전족하는 옛날 중국 여자들도 아니고! 째뜬 요즘 여자애들은 신발이 앙증맞아 보여야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원래 사이즈와 상관없이 발을 구겨넣어 운동화도 작게 신는다. 운동화 사주러 갔다가 자꾸 내 운동화보다도 작은 걸 산다고 해서 한참 싸웠는데(중학생때만 해도 240 신던 아이가 지금 225를 신겠다고!), 조카애만 이상한 게 아니고, 요즘 여학생들 대체로 다 그렇다는 신발가게 직원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운동화 디자인도 앞코가 짧아서 발이 작아보이는 모양이 인기란다. +_+ 반면에 남자애들은 한두치수 크게 신는 게 멋이라고. 280 정도는 신어줘야 키크고 늘씬한 남자로 인정된다나 뭐라나. 


하의실종이 대세임은 알지만, 십대들은 치마도 반바지도 너무 짧다. 처음에 몸만 달랑 우리집으로 온 터라 당장 입을 옷을 사줘야했는데 맙소사.. 백화점에선 층층마다 뺑뺑 돌았어도 아예 옷을 살 수가 없었다. 내 눈엔 충분히 짧은 미니스커트와 반바지도 너무 길어서 촌스러우시다고... ㅠ.ㅠ 결국 길거리 패션 천국인 이대앞으로 가서 길이가 딱 한뼘밖에 안되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영 마뜩찮은 요란한 디자인의 티셔츠와 남방을 사줘야했다. 끙...


공부는 원래 타고난 것이고, 취미 없는 공부를 강요할 마음도 없으나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평소와 아무런 차이 없이 TV 리모컨 아니면 휴대폰만 갖고 씨름하는 아이를 보며 이젠 잔소리할 전투력도 상실했다. 어차피 고등학생 된 이후로는 조카네 집에서도 방에 교과서 한 권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 책은 다 학교 사물함에 두고 다니는 물건이지 들고 다니는 게 아니란다. 당연히 연필이나 볼펜도 안 가지고 다닌다. 묵직한 화장품 파우치만 등교 필수품. @.,@ 그냥 학교만 잘 다녀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든 놀라운 십대와 사는 건 하루하루 참으로 스트레스다. 오매불망 방학하기만 기다리는 중. ㅠ.ㅠ  방학만 해봐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도 다시 늬집으로 쫓아낼거다! 흥! 

Posted by 입때
,

영화와 현실

투덜일기 2015. 6. 28. 22:08

줄리엣 비노쉬와 조니 뎁이 나왔던 영화 <초콜릿>. 찾아보니 2000년 작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이고 세월무상. 영화관에 가서도 봤지만 이후 케이블에서도 가끔 해줘서 몇번 더 본 적이 있다. 식탐녀답게 '음식'이 나오는 영화는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넋놓고 보는 편이라, <초콜릿>은 아마도 조니 뎁에 대한 팬심으로 보러갔다가 초콜릿 열망까지 부풀리게 됐던 것 같다.


아무튼 책이든 영화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혹은 기분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감상 포인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맨 처음 볼 땐 아마도 조니 뎁한테 매혹됐겠고... 이어 줄리엣 비노쉬가 만든 초콜릿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을 법한데... 나중엔 노년의 엄마 때문인지 주디 덴치 이야기가 오래 남았었다. 


영화에서 주디 덴치는 어떤 이유인지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손자를 거의 만날 일 없는 당뇨병환자 할머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마법의 초콜릿으로 꽉 막힌 마을 주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인데... 주디 덴치는 줄리엣 비노쉬 덕분에 손자와 화해하고, 초콜릿이 죄다 들어가는 음식으로 파티를 연 자리에서 금지된 음식들을 마음껏 먹고는 그날밤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금지된 음식인 달콤쌉쌀한 초콜릿을 마음껏 먹고 죽다니... 영화를 보면서는 강렬한 백합 향에 질식해서 숨을 거두는 방법 만큼이나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질병 때문에 자기가 너무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행동을 못하게 되는 불행과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소소한 행복 가운데서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건강 쪽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게 이성적, 합리적이기도 하고. 비록 구차한 인생이라고 한탄은 하겠지만서도.


근데 막상 현실에서 용감무쌍하게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소소한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면,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버럭 화가 난다. 


사례1. 당뇨병 환자이신 지인의 아버지. 혈당조절용 먹는 약 단계를 넘어서 매일 인슐린 주사기를 배에 푹푹 꽂으셔야 하는 단계로 한 차례 발가락 절제수술까지 받으셨다. 당연히 식사요법이 매우 중요하고,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는 절대 금물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간식으로 좋아하는 단팥방을 한꺼번에 두세 개씩 드신단다. 어차피 인슐린 맞을 건데 뭐 어때! 이러면서... ㅠ.ㅠ 혈당조절이 잘 안되면 말초혈관이 또 막혀서 발가락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어쩌시려고... 아오...


사례2. 과일광이신 우리 엄마. 과일에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질이 많이 들어 건강식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과당 때문에 건강한 사람도 과일을 많이 먹는 건 별로 좋지 못하단다. 가령, 건강검진 받았을 때 나더러도 과일은 하루 사과 반개 정도만 먹으라고 했었다. 하물며 당뇨병환자인 우리 엄마야 오죽하랴! 근데 삼시세끼 후식으로 과일을 골고루 한개씩 후딱후딱 해치우셔야 직성이 풀리는 건 도무지 고쳐지는 습관이 아니다. (그나마도 자제해서 하루 세번 과일 한알씩이지, 맘껏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참외 한 광주리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왕비마마의 주장.) 

헌데 요번에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용종 4개를 떼어냈고, 이틀간 죽을 먹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과일도 금지. 헌데 이 노친네 내시경 사흘 전부터 과일을 금지당한 관계로(실은 너무 괴로워하시길래 내가 사과랑 토마토 갈아드렸단 말이다!) 이틀을 더 과일을 굶으려니 죽을맛이었나보다. 아침 댓바람부터 자고 있는 딸을 깨워 과일 먹으면 안되느냐고 성화. 단칼에 안된다고 잘랐는데, 알고보니 벌써 천도복숭아 한개 잡수셨다고. +_+ 정 드시고 싶으면 갈아드린다니깐 아 놔;;;

용종 제거하고 난 상처에 클립으로 찝어놔서 자극적이고 거친 음식 드시지 말라는 건데... 으으으...


사례3. 류마티스 환자 작은아버지. 류마티스 치료약이 워낙 독해서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꽤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래서 간 수치가 높아졌다고... 그러니 조심해야한다고... 하지만 '똥고집'은 집안 내력인듯, 힘든 일은 좀 쉬셔야한다, 술은 절대 안된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완전 무시. 그러더니 이 양반 결국 얼마 전 간성혼수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기야 등산으로 다져진 건강이라 자신하며 술담배 매일 즐기던 울 아버지도 큰소리 치다가 졸지에 가셨으니 그 피가 어디 가랴)  병명은 알코올성 간경화. 아... 기가 막히다 정말. 류마티스 약만도 문젠데 거기다 술까지. 60대 남자들의 무대뽀 정신은 정녕 아무도 못말리는 것인가.


그깟 과일 하루만 더 참지 왜 식탐을 못 버리느냐는 잔소리에 뭐 어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라며 '아몰랑 화법'을 시전하신 엄마한테 버럭버럭 한참 화를 내고는 독설로 마무리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니깐!' 나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요행을 바라다가 큰 코 다친다는 것,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사람들은 왜 잘 모를까. 물론 나도 큰소리칠 입장이 아님을 안다. 남들 잘 때 자야한다고, 모든 사람들의 몸에 돌아다니는 암 세포를 죽이는 건강한 호르몬은 밤에 자야 나온다고, 스트레스와 화는 암세포를 키우는 자양분이라고... 다 알면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걸 뭐. 그러니깐 반성한다는 얘기다. ㅠ.ㅠ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