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11.02.26 장욱진 20주기 회고전 4
  2. 2011.01.13 Sting, Sorry & Thanks 10
  3. 2010.12.24 샤갈전 8
  4. 2010.12.22 우표 9
  5. 2010.12.17 커피를 부르는 광고 11
  6. 2010.12.14 1900분 8
  7. 2010.11.21 장 뒤뷔페 전 6
  8. 2010.11.04 가을 나들이 4
  9. 2010.10.22 이러고 논다 22
  10. 2010.10.15 흥얼흥얼 4

새해 달력에 주렁주렁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두었던, 가고픈 전시회가 여섯개나 됐는데 보지도 못하고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고 있다. 샤갈전이나마 얼른 보고 오기를 잘했지, 3월까지 한다고 뭉기적거렸다간 어찌됐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국내에 소장되어 있던 딱 한편의 고흐 그림,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도 새 주인에게 넘어가기전에 전시되었었는데,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날짜를 놓쳤다. 그림 딱 한편에 관람료 만원이 비싸서라기보다는 내게 심리적으로 코엑스가 너무 멀었다. 거기만 다녀오면 지하철 멀미를 하는 바람에...  서로 사는 동네가 멀어서 데려다주기 불편하다는 구실로 헤어지는 연인을 비웃었는데 내가 똑 그짝이구나 싶었다. 고흐에 대한 애정이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지. 대규모 회고전의 경우 양적인 충족감은 있을지 몰라도, 작품 하나하나의 세밀한 감상이 불가능하다며 대규모 전시회를 마뜩찮아하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만 해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를 그림이니 더욱 꼭 가야겠구나 생각했으나 결국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과천 현대미술관에도 꽤 소장돼 있고 장욱진 재단도 있으니 머지 않은 시기에 또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앙증맞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순 없었다. 게다가 전시장도 만만하게 경복궁 옆 갤러리 현대였다. 전시 막바지라 다들 조바심을 냈는지 홍보가 워낙 잘 된 때문인지 평일 오후에 갔어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 특히 많았는데, 동심이 묻어나는 그림이라 아이들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여기저기서 그림 설명하는 엄마들 때문에 시끄럽긴 했지만, 엄숙하고 조용한 관람 분위기보다는 어쩐지 그런 소란함이 다정한 그림들과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 그림은 78년작, 가로수


동그랗거나 길쭉한 단순한 형태의 나무와 옹기종기 모인 마을의 집들,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들 그림처럼, 대부분 작은 화폭에 그려진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나는 마냥 좋다. 어떤 화가의 그림이든 대체로 새 그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예외가 있다면 어린 시절 나도 그렸을법하게 선으로만 묘사된 까치로 대표되는 장욱진의 새 그림이다. 장욱진 그림 속의 새들은 어린시절 내게  본격적인 새 공포증을 각인시킨 학교앞 병아리 좌판이나 히치콕 감독의 <새>와도 다르고, 뚱뚱하고 더러운 도시의 닭둘기와도 다르고, 언젠가 내 팔뚝에 똥을 찍 갈기고 날아간 이름모를 새와도 다르다. 



'57 나무와 새, 34x24cm



거의 모든 그림에서 해와 반달이 공존하고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무에 올라가 있거나 가족이나 동무와 함께 걸어가거나 어디선가 놀고 있다. 동화 삽화로도 꼭 어울릴 것만 같지 않은가!

다 좋아하지만 특히 남색과 초록색이 예뻐서 마음에 드는 <나무와 새>, 갈색 배경이 정겨운 <수하>는 봐도봐도 느낌이 좋다. 국내 가방업체에서 장욱진의 그림으로 가방과 지갑류를 선보였기에 신나서 얼른 지갑 하나 골라사고는 요번 전시에 그 그림도 포함되면 좋겠다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그 그림은 화집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어디서 한번쯤 실물을 만날 수 있겠지. 지갑을 한번 사면 3, 4년은 너끈히 쓰는 편이므로 일단 그 그림이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이번 전시는 연대별로 화실 이름에 따라 초기, 덕소 시대, 명륜동 시대, 수안보 시대 등으로 그림이 나뉘어 있었는데 시기에 따라서 엄청나게 화풍이 달라지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초기와 덕소시대 그림을 제일 갖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난번 덕수궁 석조전에서도 보았던 덕소 화실의 물건들이 여기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화폭이 작으니 덩달아 작고 탄탄해 보이는 앉은뱅이 이젤이 참 탐났다. 그리고 만약에 작품 하나 누가 골라 가지라고 한다면 <수하>가 아닐까 싶다. ㅎㅎ

'54, 수하, 33x24.7cm


이 그림은 재작년 한국근대미술걸작전에 갔다와서도 올렸던 것 같은데, 또 올린다고 문제될 건 없겠지. 아우 예쁘다.

초기에 그린 노란 바탕의 <자화상>도 그렇지만 장욱진의 그림은 간혹 손바닥보다도 작은 캔버스에 오밀조밀 유화를 그려놓았다. 요번에 처음 본 1972년작 <가족도>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오도카니 홀로 걸려 있었는데, 7.5x14.8cm의 작은 크기임에도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힘이 뿜어져나왔다. 주최측에서도 그걸 느꼈는지 일부러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사진촬영용으로 확대해 벽화로 만들어놓았던데, 색감이 어찌나 다른지 도저히 같은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감어린 흙색을 왜 시뻘겋게 표현해놓았는지 원! 아이들 데려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던데, 나는 불평용으로 찍어왔다. 제아무리 원작의 색감을 살려내기가 어렵기로서니, 자손들과 재단에서 기획한 전시에서 유일하게 벽에 새겨넣은 그림이 그모양이면 어쩐단 말인가. 수없이 기념촬영을 해갔을 사람들의 사진속에서만 장욱진 그림을 접한 이들은, 그 그림이 그토록 시뻘겋고 강렬한 줄로 착각할 게 아닌가. 안타까운 노릇이다.


원작은 이렇게 시뻘겋지 않다규!


문제의 가족도 벽화는 이렇게 생겼다. 원작 그림은 위에 있는 <수하>와 비슷한 색감이라고 보면 됨. 나무의 초록색도 영 아니올시다다.

그밖엔 대체로 흡족한 전시였다. 돌아가시기 불과 두어달 전에 그렸다는 <밤과 노인>도 처음 공개되었고 별로 본 적 없는 먹그림들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물에서 육성도 들을 수 있게 해놓았는데, 주름 가득한 얼굴, 깡마른 체구에 거의 늘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들을 많이 접한 때문인지 이젠 오래전부터 알던 먼 친척같은 느낌이 들 만큼 친근했다. 놓치고 못갔으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듯. 역시나 내일이면 끝나는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도, 3월 1일에 끝나는 <피카소와 모던아트> 전시회도 포스트잇 메모를 조금 전 그냥 떼어버리며 아쉬웠지만, 하나는 건졌으니 장하다고 생각할란다. ㅎㅎ

마지막으로 고흐의 <아몬드꽃> 파란 지갑--낡아서 그림이 다 바래 하얗게 됐었다--에 이어 마련한 장욱진의 <나무> 지갑을 화집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색감이며 섬세한 부분까지 살려내진 못했지만 (나무 위 노란 집안에는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 백화점에서 본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선물로 받으려고 목록에 적어뒀었는데 연말에 세일하길래 냉큼 사버렸다. 음화화핫. 브랜드 로고 옆의 금속 장식 두개만 없으면 금상첨화겠으나 (번쩍이는 거 싫엇!) 동그란 나무에 시선을 돌리면 이내 흐뭇하다. 고흐 지갑 살때는 살아생전 딱 한 편밖에 그림을 못 팔았고 평생 가난했던 고흐에게나 그의 후손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돌아갈 것 같지 않아 좀 찝찝했으나, 이런 그림 저작권료는 장욱진 미술재단으로 들어갈 게 틀림없으니 아깝지도 않다. ^^; 

'86, 나무, 33.4x24.2cm

표에든 그림은 73년작 부엌, 21.6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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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Sorry & Thanks

놀잇감 2011. 1. 13. 06:49

2011년 1월 11일. 공교롭게도 1이 다섯개나 겹친 기념비적인 날이 스팅공연이었다. 열두시 반이나 돼서야 집에 돌아와 뜨끈한 감동이 식기 전에 적어두려고 공연 후기 끼적이다 양심상 찔려서 마무리를 못하고 이제야 끝낸다. 스팅공연을 예매한 순간은 작년이라 줄곧 5년만의 상봉이라 생각했었는데 6년만이란다. 맞다. 그때도 겨울이었고 몹시 추운 1월이었다. 그때 느꼈던 울컥한 감동을 그새 잊어버린 게 잘못이었다. 앨범투어에서 한국에도 빠지지 않고 들러준 고마움은 지난번과 똑같았으나, 요번 공연 때는 스팅에게 미안한 게  많았다.

5년전 스팅 내한공연 소식을 들었을 땐 티켓 오픈일을 달력에 크게 표시해놓고 그날 예매가능 시간이 되기 10분전부터 경건하게 컴퓨터앞을 지켰었다. 물론 꼬진 컴퓨터로 많은 이들과 경쟁하느라 결제단계에서 세 차례나 튕겨나가는 삽질을 해야했지만 결국 15분만에 중앙에서 왼쪽으로 좀 쏠리긴 했어도 앞에서 셋째줄 좌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을 거둔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공연날 맨눈으로도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보며 황홀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적어둔 티켓 오픈일마저 까먹고 며칠 지나 허겁지겁 예매를 했다. 당연히 VIP석은 다 나가고, 플로어 R석도 맨 뒤나 가장자리만 남은 상태였다. ㅠ.ㅠ 하기야 플로어에 'R'석이 남아 있다는 게 그나마도 감지덕지였지만. 

결국엔 스팅 공연을 보러갈 것임을 알면서도 좀 뜨악한 태도를 보였던 건, 이번 Symphonicities 앨범에 크게 열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보기도 전에 신곡은 없고 전부 예전 곡들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편곡했다는 정보만으로도 좀 걱정스러웠다. 난 뭐든 '퓨전'은 싫던데, 라면서. 그런 편견에 힘입어 막상 들어보니, Roxanne을 비롯해 두어곡 빼놓고는 다들 옛날 편곡이 아무래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실한 노트북으로 추출해 질 떨어지는 음원으로 주로 들어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스팅인데, 공연을 안 갈 순 없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누구랑 가느냐의 문제가 골치아파졌다. 어디까지 연락해서 의향을 물어야 하나, 아우... 그렇게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에 발목이 잡혀 다 귀찮아, 라고 잠깐 딴청을 부린 사이 티켓 오픈일이 지나버린 거다. 허걱. 게다가 현대캐피탈에서 공연을 주최하며 현대카드 20% 할인을 빌미로 티켓값을 왕창 올린 것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6년간 이 나라의 치명적인 물가 상승률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 예습을 거쳐 드디어 공연날, 넉넉하게 잡는다고 공연 3시간 전인 5시부터 일행을 만나 이른 저녁을 먹을 때만해도 설마 코앞에서 길이 그렇게 막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린다지만 올림픽 공원앞 네거리에서 주차장까지 1km도 안되는 거리를 통과하는데 1시간도 넘게 걸릴줄이야. ㅠ.ㅠ 그나마도 공연을 놓칠까봐 유턴차선과 중앙분리선을 마구 넘어가 횡단보도에서 공원 입구로 끼어드는 만행을 저지른 끝에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주최사에 전화를 걸어 주차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어떡하냐고 항의도 하고 공연이 지연될 거라는 귀띔을 받아 좀 안심을 했지만, 결국... 우린 공연이 시작된 후에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ㅠ.ㅠ 8시 30분쯤 공연을 시작한 모양이던데, 우리가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체조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7분, 눈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공연장을 향하는 수많은 무리 속에서 우리만 늦은 건 아니라는 위안도 잠시, 그나마도 늦은 사람들을 모두 문밖에서 한참 대기시키다 짬을 봐서 들여보냈으므로 무려 앞의 네 곡이나 놓친 거다. 흑흑흑. Englishman in New York의 쿵짝쿵짝 하는 리듬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문밖에서 들으며 우린 아쉬움의 한숨을 쉬어대야 했다. (아예 못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야 낫지! 라고 금세 마음을 고쳐 먹긴 했다. 무려 9시 넘어서도 계속 지각 관객들이 스물스물 들어왔으므로,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고 위로도 하고;;) 암튼 내가 요번 공연에서 제일 고대했던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랑 Roxanne도 세트 리스트에서 두번째, 세번째라 다 놓쳤다. 어흑. 스팅 공연에 내가 늦다니! 스팅이 노래와 연주를 하는데 짜증스럽게 중간에 슬금슬금 좌석으로 기어들어가다니!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리고 거리가 멀어도, 지하철 공사로 주변 교통사정이 쥐약이었대도 팬이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짓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스팅. 우리 같은 지각생들 때문에 감상을 방해받았을 다른 관객들에게도 미안하고...

정신없이 좌석에 앉아 감상을 시작하고 나서도, 오케스트라를 몽땅 외국에서 데려오는 줄 알았다가 대형화면에 비친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라는 걸 안 순간에도 미리 실망을 했었다. 스팅 일행이 공연 전날 한국에 도착했으니 리허설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어, 싶었던 거다. 근데 또 미안하게도 그건 순전히 내 편견이었다. 별도의 무용에 가까운 역동적인 지휘자의 역량 덕분인지,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엄청난 사전 연습 덕분인지 협연은 훌륭했다. 물론 체조경기장의 그 알량한 구조로는 섬세한 클래식 악기 소리를 일일이 전달하기 역부족이었다. 막귀로 듣기에도 일부 악기 소리는 완전히 묻히고 클라리넷 독주 소리는 막 찢어지고. +_+ 하기야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려면 예술의 전당 같은 델 가야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뭘 더 바란단 말이냐. 하지만 스팅이 앙증맞은 클래식 기타를 들고 간간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가운데 장엄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공연장을 채우니, CD로 들을 때와는 확실히 깊이와 느낌이 달랐다. 팝과 클래식의 '퓨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마뜩찮게 여겼던 나를 비웃듯 라이브로 들으니 한곡 한곡 새로우면서도 정겨운 편곡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CD엔 없었던 Russians 같은 곡은 얼마나 웅장하고 감동적이던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툴툴거렸던 거 미안해요, 스팅.

사진출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더 멋진 사진을 못찾겠다 +_+

게다가 역시 스팅은 스팅이었다. 5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예순인 아저씨가 어쩜 그리도 관리를 잘했는지 주름살은 확실히 많이 늘었어도 딱 좋을 만큼만 비음이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했고, 온화한 표정이며 간혹 드러나는 귀여운 섹시함도 그대로였다. '거장'이란 이정도는 돼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랄까. 무슨 곡이었더라, 그의 하모니카 연주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울컥 눈물이 날뻔했다. 재작년에 나온 겨울 앨범 사진이랑 동영상에서 꽤 많이 불어난 몸집과 시커멓게 산적처럼 염색한 머리와 수염 때문에 좀 실망했었는데, 그새 다시 몸매도 날렵해져 빨간색 실크블라우스가 여전히 어울렸고 머리칼도 희끗한 연갈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오히려 더 젊은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가 6년새 확 늙어버린 듯해 안타까웠다. 기타 연주 솜씨와 어벙한 표정은 그도 여전했지만서도. 주름살과 힘줄이 빽빽하게 드러난 손으로 섬세하게 기타줄을 튕기는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연주 장면이 대형 화면으로 클로즈업 될 때마다 나도 기타를 치고 싶다는 열망에 떨었다. 죽기 전에 Shape of My Heart 도입부의 그 감미로운 기타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_+

지난번 공연때는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두시간 쯤 그냥 내달리는 바람에 앵콜곡을 듣고도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엔 중간에 15분 휴식시간을 두었다가 1, 2부로 진행해 공연이 더 풍성하고 긴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점잖기만 했던 스팅이 중간중간 살랑살랑 팔과 몸을 흔들어 춤을 선보이는 여유까지 부리질 않나, Moon Over Burbon Street을 부를 때는 한국에도 뱀파이어가 있느냐며 소매 안감이 빨갛게 드러나는 드라큘라 코트 같은 긴 재킷을 갈아입는 정성을 보여주질 않나, 예전 공연보다 조금이라도 더 보여줄 거리를 고민한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세트 리스트를 보면 다 계획된 거라 할 수 있겠지만 암튼 인사하고 들어갔다가 계속 다시 나오며 앵콜곡을 무려 '네 곡'이나 불러준 것도 황홀했다. 이미 2부 끝날 때부터 모두들 기립한 상태에서 다 같이 춤을 추며 감상했던 Desert Rose에 이어 세곡째인 Fragile이 흘러나올 때도 탄식하듯 기뻐했지만, 악착같이 계속 박수를 치며 기다린 끝에 정말 가려고 했었던 듯 중세 수도사의 망토 같은 기다란 진회색 외투를 걸치고 나온 스팅이 무반주로 마지막 곡(뭔지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I Was Brought to My Senses였단다)을 불러줄 땐 정말 깊은 고마움과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앞으로 또 스팅을 보려면 또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 컸던 것 같다. 1998년, 2005년, 2011년, 그나마 1년씩 줄어들고 있는 내한공연 주기를 감안한 예상 기다림이 5년이다. 그럼 그때 스팅은 몇살이고 또 우리는 몇살이냐며, 한껏 들뜬 기분으로 눈밭을 걸어 나오던 평균나이 47세인 우리 일행은 마냥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스팅은 100살까지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결론이었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에 부르르 떨었던 감동의 세시간이 지나고 눈덮인 올림픽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만큼이나 어려워 지하 주차장에 또 삼십분이나 갇혀있었어도, 스팅을 만나러 가느라 할애한 총 7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다음 공연 때는 기필코 망설임 없이 제일 좋은 좌석을 확보하고 대낮부터 올림픽공원에서 놀다가 절대로 지각하지 않을 테다!  

놓친 게 못내 아쉬워서... 유튜브를 뒤졌다. 음향 좋은 동영상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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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전

놀잇감 2010. 12. 24. 15:36

2004년에 이어 6년만에 똑같은 장소인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샤갈 전시회에 다녀왔다. 내년 3월 27일까지 예정이라 12월 3일부터 전시 시작이라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줄곧 머리를 굴렸다. 과연 언제 가야 가장 한가하게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대형 기획전시는 노심초사 기다렸던 사람들 때문에 첫주가 꽤나 붐비는 편이란 걸 알기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겨울방학 해서 바글바글 애들이 몰려오기 전에 가자는 것이었다.

미술관 입구를 그림으로 꾸민 건 맘에 든다

그렇게 해서 잡은 거사일이 바로 어제였고, 찬바람에 인적 드문 정동길을 지나 시립미술관 언덕을 오를 때만해도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내 짐작이 맞았구나 하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나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매표소와 광장 앞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건만, 건물 안엔 우글우글... 아니, 평일 오후에 웬 할 일없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시끄러운 아이들만 없었지 관람객의 연령대도 몹시 다양했다. 여름방학 중이라 도깨비 시장 같은 분위기에다 거의 줄서서 돌아다니느라 사람들 머리 너머로 그림을 봐야했던 6년 전 그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와글와글 북적북적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전시장을 절반도 돌기 전에 피곤해서 카페로 피신해 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원래도 시립미술관 도슨트 설명이 워낙 부실한 건 알고 있었음에도, 하필 그마저도 제일 형편없는 알바생 같은 '인공미녀' 도슨트가 걸린 바람에 어찌나 버벅버벅 말을 씹는지 한숨이 다 나왔다. 전시관마다 겨우 두세 작품 설명하고 넘어가는 걸 그리도 내용을 못 외운단 말이냐! 오디오 가이드는 그나마도 30점 정도 작품을 설명해준다니, 혹시 한번 더 보러 가게 되면 시도해볼 생각이다.  

대형 기획전시 때마다 자랑스레 반복되는 광고는 늘 '사상 최대규모'라는 것이고 이번 샤갈전도 '아시아 최초'라거나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이례적인 기획이라는 '소문'을 들었고 164점이라는 작품 수도 나의 기대를 부채질했다. 그런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은 이번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 2004년에 감탄하며 보았던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샤갈스러운' 그림들은 그

산책, 캔버스에 유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 미술관 소장

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인상적인 그림들도 꽤 있었다. 요번 샤갈전의 메인으로 쓰인 그림인 <도시 위에서>는 6년 전에 왔을 때 얼마 전시를 못하고 돌려줘야 해서, 내가 보러 갔을 땐 아쉽게도 복제품이 대신 걸려 있었다. 그런데 요번엔 전시기간 내내 원본을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지난 전시에도 인상적이었던 러시아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벽화로 걸려 있던 패널 그림 네개 <무용>, <음악>, <연극>, <문학>도 다시 왔는데, 그뿐만 아니라 그밖의 대형 장식화들이 불타버린 천장벽화 빼고 모두 한꺼번에 전시되고 있었다. '아시아 최초'이고 '마지막' 전시라는 미사여구는 그러니까, 샤갈이 러시아 시기에 그린 이 예술극장 장식화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같은 시기의 <산책>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김춘수에게 영감을 주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낳았다는 <비테프스크 위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색채의 마술사 샤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화려하고 몽환적인 그림들은 확실히 지난 전시회 때 더 많았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엔 주제별로 그림을 나누어 놓은 전시관 구분이 좀 억지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샤갈의 그림들이 워낙 당대의 미술사조와도 다르고 독특한 양식이라 일정 주제로 뭉뚱그리기 힘들다지만, 그래도 유대인 예술극장 전시관과 마지막 석판화 작품방 빼놓고는 어쩐지 계속 중구남방 정신사나운 느낌이 드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엔 똑같이 성서를 주제로 작품을 모아놓았어도 통일성이 느껴지면서 아름답기만 하던데...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아가서> 시리즈가 몇 작품 오긴 했어도 이상스레 자질구레하게 붙여놓은 듯 시선이 집중되질 않았다. 작품 수만 많았지, 정말로 대형 작품 몇 점 빼놓고는 죄다 오종종 작은 그림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때문일 수도 있겠고, 주제별로 작품을 나누느라 들쭉날쭉한 작품시기가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전시는 유대인 예술극장 벽화 시리즈에 가장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나는 은연중에 화려하고 색감이 다채로우면서 신비로운 샤갈의 그림들만을 '샤갈스럽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 그리고 그런 시각으론 서커스, 사랑과 연인 주제로 나눠놓은 전시관 그림들이 제일 좋았다. 특히 서커스 전시관은 벽이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약간 의아했는데, 다 돌아보고 나니 그게 작품과 어울렸던 것 같다. 어쩐지 크리스마스스럽기도 했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번 샤갈전은 내 경우 '샤갈 그림을 원없이 봤다'는 충족감이 아무래도 좀 떨어진다. 바로 옆 덕수궁 미술관에서도 3월까지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을 하고 있는데 원래도 가려 했지만 거기도 몇 점 포함된 샤갈의 그림이 뭘까 궁금해서라도 꼭 보러갈 작심을 했을 정도로. 나는 자꾸만 2004년 전시와 요번 전시를 비교하며 실망스러워했는데, 그 전시를 놓쳤던 일행들은 90년대에 있었던 호암아트홀 샤갈전과 비교를 하며 아쉬워했다. +_+ 이러니 전시 기획하는 쪽에서도 참 사람들 입맛 맞추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쨌거나 원래도 샤갈이 즐겨 사용한 상징인 새와 수탉 때문에 (그놈의 새 공포증 -_-;) 나로선 소장할 작품을 찾으려면 한참 고민해야 하는 형국인데 (누가 준대나? ㅋㅋ) 전시장을 두어바퀴 돌고도 어느 그림을 가질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도시 위에서>나 <산책>은 너무 작품이 커서... 

대신에 엽서 몇장 사들고 왔다. 클림트 전시회 때 독일 직수입이라면서 엽서 한 장에 3천원, 5천원씩 받아서 심하게 욕한 적이 있다. 헌데 요번엔 프랑스에서 수입한 엽서를 국내 제작 엽서와 똑같이 저렴하게 팔아서 그건 몹시 기뻤다. ^^; 엽서 사들고 다시 전시장에 들어가 비교해봤더니 색감도 퍽 훌륭한 편이다.

아 참, 전시입장료는 12,000원. 별다른 할인카드는 없는 대신에 평일 저녁 6시 이후엔 2천원 야간할인이 된단다. 쌩쌩 강추위에 인적 드문 겨울 평일 저녁에 가보면 한가하게 전시장을 돌 수 있지 않을까나. 혹시 생각있으면 시도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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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놀잇감 2010. 12. 22. 01:38

마지막으로 우표를 사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 우표값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우편으로 무언가를 보낼 일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단순한 편지나 카드가 아닌 것들이라 늘 우체국엘 가서 서류 무게를 달고 해당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예전엔 등기나 일반 우편으로 서류를 보낼 때도 요금에 해당하는 우표를 잘라주고는, 우리에게 우표를 붙여 해당 함에 넣으라고 했지만, 요샌 컴퓨터로 뽑은 스티커를 직원들이 직접 붙여 접수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아, 요즘도 외국으로 보내는 편지엔 우표를 붙이라고 주려나 모르겠군. 나 역시 우표를 붙인 우편물을 받아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올 초쯤 미국에서 친구가 보내온 편지에 붙어 있던 스티커 우표를 본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250원. 요즘 우표값이란다. 내가 부쳐야할 카드는 규격봉투가 아니라 정사각형이고 내용물도 좀 묵직해서 넉넉하게 우표를 두 장 샀다. 원래 나는 우표를 붙일 때 혀를 내밀고 침 묻히는 과정을 싫어했기 때문에, 예전에 더러 편지를 써서 부칠 때는 우표를 미리 집에 많이 사다 놓았다가 반드시 풀로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침으로 대충 붙였다가 우표가 홀라당 떨어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동네 입구의 잡화점에서 우표를 사 길거리에서 혀를 내밀고 얼른 우표에 침을 묻여 봉투에 붙이고는 우체통에 넣는 과정까지가 모두 정겨운 행사 같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연말이면 꼭 크리스마스 씰을 팔았는데, 요즘도 그렇게 학생들에게 강매를 하는지 문득 궁금하다. 설마 아직도 그러진 않겠지. 강매는 괘씸했지만, 그땐 집집마다 거의 우표를 수집하던 시절이어서 디자인만 예쁘면 크리스마스 씰도 같이 모아두곤 뿌듯해했다. 별로 예쁘지 않은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면 아끼지 않고 카드에 죄다 붙여보내며 소비했었고.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모으시던 우표책도, 아버지와 동생들이 모으던 우표책도 모두 내가 갖고 있다. 갖고 있다기 보다는 그냥 책장에 보관해두고 있다는 것이 옳은 말이다. 옛날엔 명판이니 시트니 해서 주요 우표가 발행될 때 새벽같이 우체국에 가서 줄서 기다렸다가 우표를 사오던 때도 있었으나,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요즘도 우표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을까.

난데없이 우표 타령을 하게 된 건 뜻밖에 날아온 반가운 크리스마스 카드 때문이었다. 옆구리를 찔리고서야 답장 보낼 생각을 한 건 민망하지만, 손글씨로 무언가를 적어 보내는 게 점점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카드를 적었고 덕분에 간만에 우표를 구경하게 되어 좋았다. 종교적인 인물의 탄신일과 상관없이, 그냥 한 해의 끄트머리에 달린 특별한 명절 같은 느낌, 이런 게 바로 나의 크리스마스 정신이었지 하는 깨달음이 빨간 봉투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체통에 넣으며 비로소 찾아들었다. 그리고, 조카들에게도 나에게도 올해부턴 크리스마스 선물 없다고 큰소리를 쳐놓은 마음이 슬며시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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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려면 커피콩을 꺼내서 수동 분쇄기로 갈고 브리카에 물을 올려 에스프레소를 추출함과 동시에 옆에서 희석용 물을 끓이는 다소 골치아픈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그 귀찮은 과정이 한편으론 정겹고 그윽한 향기가 온집안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기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캡슐형 에스프레소 기계에 대한 선망이 모락모락 일기도 한다. 조카네 갈 때마다 대접받는 캡슐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이 제법 쓸만하기 때문이다. 헌데 설상가상 요샌 조지 클루니가 한국 TV에도 등장해 나를 유혹한다. +_+ (한때 나는 -- 그러니까 메디컬 드라마 ER의 광팬이었을 때 -- 조지 클루니의 열혈 추종자였다. 이제는 뭐 여전히 그냥 멋지다, 숀 코넬리 급으로 나이들수록 멋있어지는 배우 정도로 생각하지만;;)
마침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클루니의 그 광고 생각이 나서 유튜브를 뒤졌다. ^^; 흥흥흥. 좋구나야.



요새 TV에서 볼 수 있는 광고는 위의 것이지만, What else? 시리즈의 전편을 보아야만 저 내용이 더 실감난다.
여러 시리즈 중에서 내가 보기에 수트 차림의 바람둥이 조지 클루니를 가장 멋지게 (그래서 좀 느끼하게) 잘 표현해낸 광고 시리즈는 이거다.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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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분

투덜일기 2010. 12. 14. 11:59

발신 번호가 길고 복잡한 것으로 보아 국제전화임이 분명한 전화가 두번이나 오다 받으면 아무말 없다가 끊기고 또 받으면 아무 소리도 안하다 끊어졌다. 해서 또 그놈의 보이스피싱인가 지레 겁을 먹고 이맛살을 찌푸린 채 전투태세를 취하고 전화기를 노려보며 기다렸더니, 이번엔 또 컴퓨터방 전화가 울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리로 전화를 거는 이 역시 대부분 텔레마케터들이라 번호부터 확인했다. 아하. 이번에도 국제전화는 분명한데, 지역번호가 낯익은 친구 전화였다. 

미서부에 사는 친구가 아는 사람에게 새로 전화카드를 샀는데, 대체 얼마 짜리인지 몰라도 아 글쎄 한국이랑 1900분이나 통화할 수 있는 카드란다. +_+ 한국으로 전화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했더니만 아예 휴대폰에 핀번호를 다 입력해주었으나, 그 단축번호로 전화를 거니 자꾸 에러가 나서 운전하다 말고 수첩 꺼내 일일이 그 번호를 다 눌렀단다. 아무리 핸즈프리로 통화를 하는 거니 상관없다지만, 그래도 운전중엔 위험하다고 일단 끊고 다시 통화하자고 추임새처럼 반복하면서도 수다가 길어져 LA에서 고속도로 탔다는 애가 통화 끝날 때쯤엔 집에 다 와간다고 했다.

1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는데도 친구가 음화화홧 웃으며 아직도 1800분 넘게 남았으니 염려 말란다. 앞으론 자기가 전화할 테니까 쓸데없이 내쪽에서 전화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셈에 약한 나는 1900분이면 대체 몇시간인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요금제에도 무료음성통화가 200분 들어 있는데, 워낙 전화질을 꺼려하다보니 노상 남아돌아간다. 데이터용량처럼 음성통화도 다음달로 이월되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지만, 지지난달엔 무려 130분이나 남았다고 말일날 문자가 왔었고, 지난달엔 분발하는 의미로 악착같이 휴대폰을 써댔어도 40분이나 남았던 걸 감안하면, 나 같은 사람은 음성통화량을 이월시켜줘도 다 못쓰고 점점 불어나 오히려 부담만 느낄 것 같다. 

85년도에 친구가 이민갔을 때만 해도 서로 말소리가 한참 뒤에 전달되는 션찮은 통화품질의 국제전화로 몇분 얘기 안했는데도 전화요금이 몇만원씩 나왔으므로, 그땐 정말 급한 일이나 친구 생일날 축하 전화가 아니고선 선뜻 전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요샌 대체로 국제전화 요금이 싸져서 TV 광고처럼 굳이 저렴한 회사를 찾아 누를 필요도 없다. 자주 걸지도 않는데 무엇하러 숫자 하나라도 더 눌러서 실수의 가능성을 높인단 말인가. 헌데 알뜰한 친구는 나와 다르다. 얼마 전까지 친구는 나와 통화를 하려면 반드시 국제전화 정액제를 쓰고 있다던 언니네 집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한달에 10불쯤 내면 100분이 무료통화라던가. 그 이전에는 홍보용으로 나눠주는 전화카드를 주로 이용해 전화를 걸었다. 나도 여행갈 땐 전화카드를 사가지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일일이 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나중엔 그냥 신용카드 전화기를 찾아 쓰거나 좀 비싸도 짧게 끝내지 싶어 호텔전화를 그냥 썼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로밍 같은 거 불가능하던 시절 얘기다 ^^;)

새로 전화카드 사업을 시작한 지인을 돕느라 산 거라지만 1900분짜리 전화카드는 항상 검소하고 알뜰한 친구에겐 엄청난 소비가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 둘의 요즘 통화 빈도수로 볼 때 그 시간을 다 쓰려면 아마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_-; 그 카드 다 쓰기 전에 꼭 내가 가든 니가 오든 2주짜리 휴가계획을 잡아보자고 아련한 꿈을 수다로 풀어내다 전화를 끊었다. 1900분. 단순한 계산도 서툴고 아둔한 내 머리로는 거의 영원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든든한 쌈짓돈 같은 게 생긴 기분이다. 친구가 돈 버렸다고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새해 인사 전화는 내가 먼저 걸어야겠다. 크리스마스 카드 겸 편지라도 새삼 쓰면 더욱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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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뒤뷔페 전

놀잇감 2010. 11. 21. 16:56

모 백화점에서 장 뒤뷔페 작품을 들여다 전시회를 했다. 까마득한 옛날엔 백화점마다 꼭대기층에 갤러리를 마련해두고 괜찮은 전시회를 자주 열었던 것 같은데(특히 '미도파'와 '신세계'에서), 장사에 눈이 어두워 이젠 갤러리라고 해봤자 코딱지만하게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고 대부분은 아예 갤러리를 없애버리고 그 대신 '문화센터'를 운영한다. 몇십주년 기념으로 장 뒤뷔페 전시회를 한다는 요란한 '뉴스'에 나는 반색을 하며 아무리 백화점 갤러리라도 '우를루프' 작품들을 중심으로 가져왔다니 28점이라는 적은 수라도 설마 소품 위주는 아니겠지 안도했다. 하지만, 새로이 본점을 엄청 크게 지은 백화점이고 돈도 많아 미술관도 운영하는 재벌이니 백화점 갤러리라도 좀 다르려나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내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미술관이 꼭 커야하는 건 아니지만, 백화점 규모에 비하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인색하게 작아서, 요번에 가져온 28점의 작품을 한곳에 다 진열도 못하고 반대편 에스컬레이터 앞 벽에 장식처럼 걸어놓기도 했다. 그것도 빛 반사 때문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으로 유리 진열장 안에 가둬서! 나 뭘 기대했던 거니.. 으휴. 그나마도 뒤뷔페 작품을 보게 해줬으니 감사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식당가와 이벤트 상품 나눠주는 행사장과 달리 담당 직원만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갤러리가 한가로운 건 고마운 일이어도 뒤뷔페 작품을 생각하면 서글펐다.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건 사진찍는 걸 막지 않았다는 점.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모든 갤러리에서 강박적으로 카메라 들이대는 걸 금지하는게 나는 늘 너무도 궁금했는데, 여기선 갤러리 반대편 쪽 에스컬레이터 앞 벽에 넣어둔 작품(<피아노>랑 또 한 작품)만 찍지 말라고 하더군. (갤러리 내 작품은 괜찮고 밖에 있는 작품은 왜 안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암튼 그래서 되는대로 이것저것 휴대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왔다. 우를루프는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나중에 뭘 봤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내 기억을 믿을 수 있다면 몇년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 전시랑은 겹치는 작품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물주전자> 같은 작품은 제목은 같았어도 그땐 그림이었는데 요번엔 조형물로 온 식이다. 

갤러리 입구 사진인데, 가운데 작품이 제목만 남기고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설마 훼손된 건 아니겠지...
포스터에 들어간 작품 제목은 알레고리쿠스였다. 제목을 보고 나니 귀엽다는 느낌. ㅎㅎ


기억을 도우려고 작품 제목이랑 일부러 같이 찍어 왔다. <물주전자>말고도 <중사>도 낯이 익은 걸 보면 이미 본 작품일지도... 평범한 사물과 인물을 보고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지 정말 볼수록 뒤뷔페는 천재다. +_+


알록달록한 우룰루프도 예쁘지만 나는 이렇게 푸른빛으로 간결히 표현한 우를루프가 더 좋은 것 같다. 하나 훔쳐가라고 하면 이 작품으로 하겠다고 속으로 찜했음. ㅋ
작품 제목은 <푸른 요소 III>.









요번엔 우를루프 이외의 회화 작품이 몇개 오질 않았는데, 드물어서 더 인상적이었던 인물풍경화 두 점. 각 제목이 <인물이 있는 붉은 풍경>과 <네 사람이 있는 풍경>이었던 것 같은데 헐... 하루만에 까먹었다. ㅠ.ㅠ 역시 제목과 같이 찍어왔어야 한다는 의미.

서울에선 22일까지 전시하고 이후 부산과 광주에서 순회전시를 한다고 한다. 요번주에 짬 못내면 일부러 KTX타고 부산에 놀러가서 뒤뷔페 그림도 보고 바다도 보고 회도 먹고 그러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 흐뭇해하다가 정신을 차려 게으른 몸을 움직였다. 그림 구경만 하려고 부러 백화점 나들이를 한 사람은 그날 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전시를 기획한 측에서는 작품 감상 후 '쇼핑'을 유도했겠으나, 나는 알량한 모양새의 갤러리에 대한 질타의 의미로 눈을 질끈 감고 곧장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사흘 내내 유일하게 건설적이고 칭찬해줄 만한 '짓'이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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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들이

놀잇감 2010. 11. 4. 16:57
 
멀지 않은 곳에 신나게 낙엽 밟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충동질에 옳다구나 신이 나서 다녀왔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는 조선의 왕릉 가운데 화성에 있는 융릉과 건릉. 각각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부부 합장묘다. 사는 동네가 서울 북서쪽이다보니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능이라면 지겹게 여길 정도로 소풍 때마다 섭렵했다. 서오릉, 정릉, 태릉, 홍릉, 동구릉... 그땐 만날 똑같게만 보이는 '묘지'에 뭘 볼 게 있다고 만날 소풍을 가나 불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왕릉 주변의 아름다운 숲과 드넓은 잔디밭이야말로 소풍의 최적소였겠다 싶다.

특히 융건릉은 숲이 아름다워 원없이 종류별로 낙엽을 밟을 수 있다고 들었으나, 우리가 너무 일찍 움직인 탓인지 막상 가보니 단풍이 이제 막 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화성이 서울보다 아래쪽이란 걸 감안하지 않은 탓이다. 1, 2주일 늦게 갔더라면, 하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피톤치드 풍성한 숲길을 한가롭게 거닐다 왕릉 앞 비탈 잔디에 벌러덩 드러누워 해바라기하면서 망중한이란 게 이런거지 싶으면서 행복했다. 낙엽밟기의 염원도 용주사에서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고... 이렇게 가을이 간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융릉(사도세자 부부묘), 융릉에서 건릉으로 가는 소나무 숲의 오솔길, 참나무 숲길, 건릉(정조대왕 부부 묘) 앞 박석, 용주사 앞마당의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낙엽 풍성한 용주사 입구의 순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청한 날씨가 딱이었는데 아쉬웠던 점은 지난 태풍에 피해를 입은 나무들이 엄청 많아 계속 전기톱으로 가지를 자르는 작업을 하고 있어 그 소음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망쳤고, 설상가상 근처 공군비행장에서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다녔다. -_-; 하필 우리가 왕림한 날 비행훈련을 할 게 뭐람;; 잘은 모르지만 담에 갈 땐 수요일을 피해야겠다. ㅋ
 

참나무에 높이 매달린 담쟁이 단풍이 예뻐서 애써 줌으로 당겨찍어온 소중한 사진. ^^;
좀 더 당겨 찍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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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논다

놀잇감 2010. 10. 22. 21:02

책 많이 읽는 이웃들이 리브로 세일 때문에 책과 음반 지름신이 동해 다들 들먹거리는데도 나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미 이달의 할당 지름신을 만족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기웃대는 문방구 사이트 9주년 기념 세일을 내가 그냥 넘길 리가 없지 않은가. 해마다 요맘때인 걸 미리 알고 위시리스트 잔뜩 채워놓고 기다렸지만 요번엔 그래도 비교적 실용적인 것들을 끼워 샀으니 크게 민망하진 않다.

문방구 사이트에서 실용성 없는데도 만날 내가 눈독을 들이고 탐하는 것들은 주로 필기도구류와 카드, 메모지 정도인데 특히 포스트잇은 왜 사도사도 만족할 줄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연필을 사들이는 데 심취하더니 연필 열망은 이제 확실히 잦아들었고, 포스트잇과 수첩, 메모지는 새로운 것들이 나올 때마다 눈을 빛내다가 문방구 모아놓은 상자를 열어본 뒤 애써 마음을 정리해 장바구니를 덜어내는 과정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종이인형 놀이의 향수를 자극한 포스트잇 시리즈는 지다 니가 오려다주신 걸로 잠깐 놀아보고 나서 오히려 더 사고싶어졌다. 도대체 어디에다 메모를 써서 포스트잇으로 활용하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깨 걸이 없이 그냥 옷입히는 놀이로 장땡이겠다 싶은 종이인형 놀이 포스트잇 너무 귀엽다! 조카들 생일카드로 쓰려고 카드 시리즈도 함께 샀는데, 포스트잇에 비해 인형들이 너무 커서 막상 보니 좀 징그러운 듯도 하지만 나중에 아까워서 못쓰고 혼자 쟁여둘지도 모르겠다. :) 

지난번에 사진 찾느라 파일을 뒤지면서 보니, 문방구 중독치료 백신 차원에서 포스팅하려고 했던 듯 간간이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더라. 이참에 문방구 사진 대방출(까지는 아니고;;). 이러고 논다고 슬며시 자수하고 나면 앞으로 텐바이텐 지름질 좀 덜하려나?

참고로 이 두 사진은 1, 2년 전에 찍은 것들이라 퍽 약소하다. ㄱ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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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흥얼

놀잇감 2010. 10. 15. 17:35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하루를 시작하며 들은 음악은 이상스레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엠피3이나 오디오, 라디오를 늘 가까이 하는 사람은 오히려 한 가지 음악에 얽매이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처럼 드물게 음악을 듣는 사람은 며칠씩 한 가지 노래나 음악에 얽매일 때도 있다. 물론 흥엉흥얼 콧노래를 부를 마음의 여유가 아예 없을 땐 한없이 삭막하게 지낼 때도 많다.

지난주엔 차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나오는 바람에 같잖게도 며칠 내내 가사도 잘 모르는 오페라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변화무쌍하게도 이번주의 주제가는 <개똥벌레>. 지난 주말에 다녀간 막내조카가 콘서트 놀이(방에서 불 꺼놓고 야광봉과 손전등을 휘두르며 "우윳빛깔 @@@!"를 외쳐대고 열광한다)에서 다섯 번도 넘게 불러준 노래였기 때문이다. 쪼끄만 녀석이 어떻게 그 헷갈리는 가사와 음정을 다 외웠는지 자꾸 순서를 바꿔 부르는 나한테 막 가르쳐줬다.
 
그 이전에는 TV의 영향으로 한동안 <넬라 판타지아>를 흥얼거렸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합창대회를 할 때마다 그렇게 연습을 지겨워하며 이런 쓰잘데기 없는 행사를 왜 하나 투덜거렸건만,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대회 준비하는 과정을 보니 심지어 그때가 막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오래 전 교생실습 나갔을 때 반 아이들 합창대회 거들던 생각도 떠올랐고. 인간의 목소리가 정말로 훌륭한 악기라는 것도 실감했다. 내 악기는 그리 쓸만하지 않지만서도...

일주일 내내 자꾸만 <개똥벌레> 멜로디가 튀어나오는 게 지겨워져서 시방은 일부러 스팅 노래를 틀어놨다. 내가 계속 흥얼흥얼 따라하기엔 좀 역부족이지만, 이 가을엔 정말로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닌가. 중고등학교 시절엔 꼭 라디오를 틀어놓고 공부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냥 배경일 뿐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예민해진 건지 까칠해진 건지 음악을 틀어놓으면 완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멀티플레이어라야 살아남는 현대엔 참 어울리지 않는 인간형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내가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흥얼흥얼거리며 단순 노동을 하는 거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곡조도 맞지 않는 콧노래를 부르며 뭔가 일을 하고 있으면,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 이도 있어 당황한다. 꼭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건 아닌데 말이다. 나도 모르게 뇌리에 박혀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은 어쩌면 기분 상승을 위한 일종의 정신작용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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