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부터 덕수궁에서 열린 이 전시를 나는 볼까말까 망설이고만 있었다. 아시아 미술에 대한 무지가 가장 두드러진 이유였지만, 또 그래서 더 보러가야하는 게 아닌가 했었다. 유명 서양 미술가 작품에만 환장하며 좋아하는 내 태도가 걱정스러워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봐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10월 10일이 전시 마지막이라(역시 10월 10일까지였던 이응노 전시회도 결국 못갔다 ㅠ.ㅠ 그나마 대전 이응노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위로하기로 했음) 시기적으로 못보기 쉽겠다 여겼는데, 확실히 공짜는 게으름뱅이도 움직이게 한다는 게 맞다. ^^; 입장료가 비싸진 않았지만(덕수궁 입장료 포함 5천원) 그래도 초대권이 있으니 저녁 모임 이전에 구경하고 오라는 착한 지인의 권고에 지난 수요일 좋아라 달려나갔다. 잠이야 두 시간을 잤든 말았든...
염려했던 대로 '보기 불편한' 식민시대의 아픔과 전쟁의 참상이 주제인 그림들도 전시실 한두 개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난생 처음 보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일본, 필리핀, 인도 등의 근대 화가들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어디 있겠나 생각하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우리나라 화가들의 작품도 있기야 하겠지 생각했지만, 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횡재한 기분으로 만난 그림은 바로 이것.
이인성의 1944년 작품인 <해당화>다. 정물 해당화 그림도 아니고(과천 현대미술관에 있다는데 만날 교체전시중이라 난 구경도 못했다), 한용운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해방에 대한 염원까지 담아냈다는 이 거대한 작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삼성 리움 미술관에 있단다. 돈이 많으니 리움에서 대작은 참 많이도 갖고 있다. -_-;
요번엔 설렁설렁 맘에 드는 그림만 감상하리라 마음 먹었던 터라 도슨트를 따라다니지도 않았었는데, 바글바글 사람들에 둘러싸여 오래 설명하는 그림이 바로 이 작품이란 걸 깨닫고는 우리도 얼른 귀동냥을 했다.
먹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이 머지 않은 광복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림 오른쪽 아래 놓인 우산이 접혀 힘겨운 시기는 이제 다 지나갔음을 뜻한다는 등이 조목조목 그림 설명은 관두고라도, 나는 이인성의 그림이 '예뻐서' 좋다. (이런 무지한 감상 태도를 버려야한다는데 그게 안된다;;) 그냥 척 보면 정감 가는 작품이랄까. 하얀 수건을 쓰고 앉아 있는 누이의 얼굴은 옛날 우리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도 닮은 듯하고 정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더라도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기꺼이 뿌듯했을 심정이라 유난히 더운 날씨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전시실을 돌고 나서 아픈 다리를 오래 쉬어야 했음에도 그저 좋았다.
이 그림 말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포스터에도 실렸던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였다. 인도네시아 화가의 그림이라는데 이유는 몰라도 소장은 싱가포르 국가위원회더라. 중앙에 있는 인물이 워낙 인상적이라 작품을 구석구석 자세히 보지 않다가 그림 제목을 보고 잠시 움찔했기 때문에 (나는 병아리가 무섭다 +_+) 그림을 검색해 찾아오지 않고 미술관 앞에 있던 걸개그림 찍은 걸 대신 자랑하련다. (기다란 그림 아래쪽에 병아리 둥지가 놓여있고 병아리들이 껍질을 막 깨고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란다. 엄청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됐다.
인물화가 많았지만, 같은 여자가 봐도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그림들이 확실히 사랑스럽고 시선을 오래 끄는 이유는 뭘까 매번 궁금한데, 결론은 늘 하나다. 모든 동물의 수컷이 더 아름답다지만 인간은 예외라고. ^^; 이 그림이 포스터와 티켓에 실린 이유 역시, 전시 기획자가 나처럼 이 모델을 가장 어여삐 여긴 게 아닌가 의심했었는데, 그건 아니고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친 이번 작품들 가운데 시기작으로 딱 중간이라 선정됐다는 설명을 지인이 도슨트한테 듣고 와 전달해주었다. ㅎ
어쨌든 덕수궁에서 하는 전시회는 궁궐에 대한 끝없는 나의 선망 때문에 언제나 입구부터 행복해진다. 습관처럼 현대미술관을 나오며 계단 꼭대기에서 또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같은 구도의 같은 사진이라도 아이폰으론 처음 찍는 거잖아, 그러면서... 가을 단풍이 고울 무렵엔 다른 궁궐에도 꼭 가봐야겠다.
날짜는 또 월말이고 일은 밀려있고 그러나 역시나 일은 하기 싫고 낮엔 여우비가 내리더니 이젠 아예 주룩주룩 쏟아져 맥주일잔이 땡기고 돌아보니 변변한 휴가를 즐겨본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질 않고....
그래서 콩밭에 간 마음을 담아 사진폴더를 뒤졌더니
지난달에 번개치듯 선운사에 다녀온 추억이 콧바람을 부추긴다.
콩밭에 간 이놈의 마음 어찌 돌려야 하나.
아무때나 내려오라던 절간 친구는 그날따라 행방이 묘연해져 우릴 바람 맞히는 바람에 선운사 대웅전 마당은 유독 뜨겁게 느껴졌지만, 7월의 녹음 우거진 오솔길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바람 맞은 마음 달래러 들른 변산 해수욕장과 하늘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예뻤다. 키가 30센티미터만 더 컸더라면 손에 잡힐 것처럼 유독 낮게 깔렸던 그날의 어여쁜 구름을 보니 숨통이 좀 트이는 것도 같고....
<토이스토리 3>을 보고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던 바로 다음날 같은 영화관에서 <인셉션>을 봤다. 그것도 토이스토리 같이 보자고 약속했다가 고모를 배신했던 초딩 조카와 함께...
열세 살 조카의 표현을 빌리면 "이 영화 짱 재밌다". ^^;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조카는 도무지 이해못할 거라고 예상했지만(실은 내가 헤롱헤롱 헷갈렸다), 틈틈이 내 옆구리를 질러대며 속삭여 묻는 통에 주변 관객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둘이 집으로 돌아오며 영화에 대한 이해를 서로 맞춰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런 상상력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이름대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참 '놀라운' 감독이다!
상영시간이 2시간 반이었던가... 영화가 몹시도 길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영화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관객은 우리 뿐만이 아니어서 인터넷을 뒤져 십여가지 '설'을 읽어보며 또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과 열정이 좀 더 부채질을 한다면 꼼꼼이 한번 더 살펴보고 싶은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그런 정성을 들이게 될 것 같진 않다.
곁다리로...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다룬 <라 비 앙 로즈> 보고 나서 과거에도 좋아했지만 Non, Je Ne Regrette Rien 이 더 좋아졌었는데 이 영화에서 '킥'의 전조를 알리는 노래로 나와서 은근히 기뻤다. '후회하지 않아'라는 가사도 그들의 꿈 비즈니스와 어울리는 듯하고... 게다가 코브의 부인 맬로 나온 여배우(마리온 코티야르)가 <라 비 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로 나온 사람이란다. 동일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장밋빛 인생에선 완전 에디트 피아프의 환생인 줄 알았는데.... 뭐 그렇다는 얘기다.
역시 뜸들이고 공들이려고 마음을 먹으면 더 되는 게 없다.
영화 보면서 느낀 찡한 감동과 펑펑 흘린 눈물과 애틋한 마음 때문에 뭔가 그럴싸한 후기를 적어보리라 작심했지만 차일피일 밀린 방학숙제 앞둔 듯한 조바심만 들 뿐이다. 연말 집계용으로 그냥 대충 기록만 남겨야지.
다들 칭찬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고, 애니메이션 영화에 특별히 애정이 많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감동과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여운으로 모두 남기기가 어디 쉬운가! 1, 2편 모두 극장에서 보며 신나했고 오래도록 후속작을 기다려왔지만 <토이스토리 3>은 시리즈 중 최고다!
이별에도 예의가 있는 법이라는 말 흔히들 하지만, 애정하던 대상과 '잘' 헤어지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예의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고도 상처는 남는 법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펑펑 울면서, 혼자 꾸역꾸역 십수년쯤 뒤에 예쁘게 자란 보니랑 앤디가 연결되서 장난감들이 반드시 앤디 2세들에게 전달되는 번외편을 상상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 같다. 나는 특히 애니메이션에선 왜 해피엔딩이 아닌 걸 견디질 못하는지 원.
1, 2편에서도 '싹수 있는' 소년이었던 앤디는 참 잘 자라주었고, 그래서 더 뿌듯했던 것 같다. 15년이나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들 때깔만 봐도 앤디가 얼마나 장난감을 소중히 여기며 갖고 놀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스토리 전개상 그런 거라 해도, 어쨌거나 대학생 될 때까지 간직했던 앤디의 장난감들이 하나같이 말짱하고 성능까지 그대로라는 게 난 그렇게도 뿌듯하고 좋았다.
어린 시절 종이인형과 딱지 정도 이외엔 장난감을 별로 갖고 논 기억이 없다고 줄곧 생각했었는데, 요번 3편에 나온 무시무시한 눈 깜박이는 아기 인형을 보니 나도 그 비슷한 인형이 있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금발머리가 곱슬곱슬하게 붙어있고 원피스를 입은 채로 눕히면 눈을 감고 앉히면 눈을 뜨는 딱딱한 플라스틱 아기 인형을 내가 몹시 무서워했었다는 것도! ^^ 낮에는 그럭저럭 업고 돌아다니거나 갖고 놀았지만 밤만 되면 그 인형 눈이 어찌나 무섭게 보이던지 냅다 집어던지곤 했기 때문에 그 인형은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었다. 영화 보는 내내 새삼 그 옛날 인형한테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암튼, 그래도 굳이 뭔가 꼬투리를 잡아보자면;;
원래 낀 안경과 그놈의 3D안경까지 두개를 들어올리고 눈물 훔치느라 꽤나 고생했지만, 사실 3D 효과는 별로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고, '데이케어 센터'를 굳이 '탁아소'로 번역한 게 계속 거슬렸다('서니사이드' 번역은 고심한 것 같던데 왜 하필 '탁아소'냐고!! 그냥 '어린이집'이나 '유아원' 정도로 옮겼더라면 거슬리지 않았을 텐데... 나도 안다, 직업병이다 ㅋㅋ). 사실 뭐 그렇더라도 만3천원이 아깝지 않았을 만큼 좋았다! DVD 나오면 꼭 소장할테닷.
나도 매주 씨네프랑스 같은 거 보러다니고 싶은 '로망'이 있지만 현실이 따라주질 못하니 뭐 어쩌겠나. 이나마도 별러야 짬을 낼 수 있으니 그저 소소한 것에 감사하자.
미처 몰랐는데 <슈렉>이 처음 나온게 무려 10년 전이란다. 슈렉이 처음 나왔을 때 어찌나 통쾌하고 즐겁고 재미있었는지 그 여운이 참 오래갔다. 그에 비해 슈렉2는 그저 그랬고, 이후 나온 속편들은 봤는지 안봤는지도 잘 기억나질 않을 정도다. 하지만 10년만에 나온 슈렉 완결편은 어쩐지 보고싶었다. 처음 슈렉이 나왔을 때 나는 "딱 내 이상형이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었다. 배나오고 못생기고 좀 어리석으면 어떠랴, 삐딱하고 용감하고 정의롭고 착하고 여자 말 잘 들는데... ㅎㅎ
모든 행복이 '가정'으로 귀결되는 할리우드식 결말이야 뭐 좀 식상하다 할 수 있지만 <슈렉 포에버>는 완결편으로 똑 떨어지는 느낌이면서도, 그간 슈렉 시리즈를 자아비판하듯 패러디로 또 다른 웃음을 선사한다.
게다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까지 패러디해 비트는 데는 어찌나 웃기던지!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3D 디지털만 상영하는 바람에 거금 만3천원을 내야하는 건 억울했고, 안경 위에 또 다시 어설픈 3D안경을 덧쓰느라 걸핏하면 초점 안맞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조준하는 게 좀 성가스러웠지만, 슈렉이라 다 용서하기로 했다. 내가 안경을 낀 탓인지 3D 효과는 뭐 그리 감동스러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달리 비교할 게 없다. <아바타>도 안봤으니 뭐...
암튼 속편에서 세쌍둥이 낳아 키우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변모하는 바람에 매력이 뚝 떨어졌던 피오나를 여전사로 다시 그려낸 건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뻔한 트렌드라고 하더라도 흐뭇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묘사된 재미없는 결혼생활도 나름 현실적이고...
동화가 다 그렇듯 결론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는, 어리석게도 다들 행복은 부재를 통해서만 깨닫는다는 것이긴 하지만, 내게 동화의 매력은 역시나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해피엔딩이다. ^^
올여름들어 처음 과일가게에 나온 자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체리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크기 다섯개에 4천원이면 좀 비싸다 싶었지만 자줏빛으로 빛나는 싱그러운 자태를 본 순간 이미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어쩌랴. 커피 한잔 사마시려면 5천원도 훌쩍 넘는 때가 많은데도 과일값엔 매번 놀라 손끝이 망설여진다.
날씨도 더워졌지만 요즘 내가 계절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과일가게에 드높이 쌓인 수박을 볼 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이 벌써 한참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몇통 안되는 수박을 진열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과일 도매상엔 엄청나게 큰 수박부터 적당한 크기까지 작은 수박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달기만 한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씨 빼는 게 귀찮아서 수박은 나의 기호품이 아니다. 모름지기 과일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해야 제맛이라는 게 나의 굳건한 믿음.
올해는 가지치기를 건너뛴 데다 해걸이를 하는지 통 수확이 신통찮은 앵두를 두어번 따먹으며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보들보들 새콤한 맛에 한동한 행복했고, FTA를 반대하는 의미로 수입과일은 '사다' 먹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지만 '누가 줘서' 얻어먹은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참외와 사과, 토마토로 근근이 과일 열망을 잠재우고 있었는데 자두를 만난 거다.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자두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씨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기야 꽃 맺히고 나서 열린 과일 열매의 생김새가 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랫부분까지 움푹 들어간 사과나 배와 달리 앵두, 체리, 자두, 복숭아, 살구 같은 건 꼭지가 달린 윗부분만 쏘옥 들어가고 아래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솟은 하트 모양이라는 의미다. 다들 가운데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고 말이다. +_+ 별것도 아닌데 나로선 새삼스러운 발견이라 마치 큰 성취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더운 날씨는 못견딜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서 자두랑 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산처럼 쌓여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봐야겠다. 과일은 나의 힘!
간만에 숨 좀 돌린답시고 구김살 얘기를 썼더니 계속 기분이 구겨진 채로 있는 것 같아, 다시 반전을 모색하는 포스팅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땐 그저 만만한 게 나의 조카들 자랑. ㅋ
첫조카가 생겼을 땐 나의 조카만 '유독 천재'라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라고 착각했고, 화가의 혈통(울 막내고모)이 어떻게든 유전자로 발현된 게 틀림없다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의 조카들도 그 또래 때는 다들 비슷한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개인차야 약간씩 있겠지만, 나의 조카들만 천재성을 발휘한 건 아니란 사실에 좀 맥이 빠졌어도 여전히 나는 "혹시 몰라..." 하는 마음에 아직도 조카들이 이면지 따위에 그려준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헌데 녀석들의 머리가 굵어지면서 언제부턴가는 통 작품을 받을 수가 없어졌다. 내가 지켜본 결과 아이들이 가장 황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기는 다섯살 전후(만으로는 48개월 전후)이고, 유치원이다 뭐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면서 7살쯤 접어들면 함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해서 최근 2년간은 통 조카들의 새작품을 확보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는 의미다. 집에 놀러가거나 유치원 발표회 같은 델 따라가서 그간 그린 작품들을 구경할 기회가 더러 있긴 했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 그린 작품을 헌사받는 기쁨을 그깟 한번 구경하는 것과 비교할 순 없는 법. 나로선 제일 어린 지우가 어서 커서 고모에게 그림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우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색칠에만 관심을 보여 윤곽선은 딴 사람에게 그리게 하던 녀석이 하루에도 스케치북을 몇권씩 써버린다는 소문이었다. 옳다구나 싶었고, 때를 노리던 나는 드디어 지우의 그림을 확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지우가 처음 그려준 건 아기때부터 무척 관심이 많았고 내게도 수없이 그려달라고 청했던 자동차 그림이었다.
자동차. 이면지에 볼펜. 2010. 4. 17.
자동차 아래 깔린 도로까지 쓱쓱 그리더니 대뜸 가위를 달라고 해서 윤곽선 모양대로 오려놓고는 굳이 자기가 가져가야겠다는 걸 애써 말려서 겨우 얻은 그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따로 오려준 도로 모양이 사라졌다. ㅠ.ㅠ
만 48개월을 아직 2주쯤 앞두고 있는 다섯살 짜리 녀석이 가위질도 어찌나 잘하는지... 연필을 꼬집어 잡는(얼마 전까지 연필을 네손가락으로 움켜쥐고 그렸는데, 손가락 세개로 연필을 쥐는 걸 지우는 "꼬집는 것처럼"이라고 표현한다 ^^;) 모습도 예사롭질 않은 걸 보면 '소근육' 발달이 빠른 듯. ㅋ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같은 날 나는 갖은 아양을 다 떨며 지우에게 고모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조카들에게 자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 소장하는 기쁨은 겪어본 고모, 이모들만이 아는 것! 세 조카들 작품에 이어 드디어 지우 작품까지 갖게 된 셈이다.
고모. 이면지에 볼펜. 10. 4. 17.
고모라는 글씨 또한 제 엄마가 써준 걸 보고 따라 그린, 이른바 <캘리그라피>다. ^^
옆에 스카치 테이프로 오려붙인 솜씨 역시 지우 소행인데, 그건 자기란다. 작품에 화가 본인의 모습을 한 구석에 담아넣는 기법을 어디선가 듣기라도 했단 말인가! ㅎㅎㅎ
우쒸.. 이것도 스캔할 걸 그랬나, 좀 전에 찍었더니 사진이 좀 어둡다.
그러고 나서 또 다시 지난 주말. 할마마마 퇴원 축하에다 어버이날, 큰올케의 생일까지 겹쳐 모인 날, 그림 그리기에 심취한 지우에게 나는 또 다시 작품을 의뢰했다. "지우야, 고모 그림 한장만 그려주라, 응?"
녀석은 2주만에 확 달라진 화풍으로 새로운 작품을 척 안겨주었다.
고모. A4용지에 색연필. 10. 5. 8.
푸하하하.. 같은 인물을 그렸다고 볼 수 없을 만큼 확 달라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빨을 일곱개나 내놓고 웃는 모습에 귀걸이가 요란하고, 손가락은 다쳐서 붕대를 감았단다. ^^;
이날은 지우가 인심을 아주 후하게 써서 제 큰엄마 그림도 그려 선물로 주었고, 내친 김에 반고흐처럼 오른쪽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할머니 모습까지 작품으로 남기는 쾌거를 기록했다.
붕대 감은 할머니. A4용지에 색연필. 10. 5. 8.
이날 인물화의 특징은 눈동자 주변에 섬세하게 속눈썹을 뺑 둘러 그리는 것이었는데, 할머니 그림엔 붕대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눈 꾸미기가 생략되었다. 왕비마마는 정말로 고흐처럼 오른쪽 귀에 붕대를 감고 계셨는데 작품엔 왼쪽귀로 표현됐다. 예술가의 융통성이 발휘됐겠지...
왕비마마도 나도 자랑스레 이 그림들을 각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감상하는 중이다. 왕비마마는 에어컨에, 나는 벽에다...
거의 1년만인 지난 일요일에 또 병원 들어갔다가 오늘 나왔다. 나 말고 왕비마마 때문에. ^^;
이번 입원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수술공포에 사로잡힌 왕비마마의 변덕에다 병원과 의사의 삽질까지 더해져 수술일정이 연기되질 않나, 입원예정일엔 아예 수술을 취소했다가 또 다시 날짜가 당겨 잡히질 않나... 지난 일요일에 병원들어가기 직전까지도 통 앞일을 알 수가 없더니만, 바로 다음날 수술, 그리고 5일만에 전격 퇴원, 역사상 최단기간에 간병무수리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간이 짧으니 그간 쌓인 피로도 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간밤에 특히 잠을 설치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짐정리 해놓고는 단잠에 빠졌다. 원래도 잠자기를 즐기지만 내방에 편히 누워 따뜻하게 자는 잠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깨어나고 싶지가 않을 정도였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역시나 집이 최고다 싶긴 해도, 집에 돌아온다고 무수리가 해야할 일이야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묵지근한 몸을 일으켜 왕비마마의 저녁 진지를 챙기며 맥이 또 빠졌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질을 시작하니 비로소 정말 집에 왔다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꼼꼼히는 못읽었지만 대강 이웃 블로그도 한바퀴 돌아보니 나머지공부라도 해서 따라잡아야 할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나의 부재가 짧았다는 의미다.
여행후기를 더 미루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는 조바심에 틈틈이 적어놓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다 또 발동 걸리면 일 미뤄두고 포스팅에 열을 올리겠지만서도, 사진 크기 일일이 줄이고 올리는 게 번거로워서라도 하루씩 정리하는 게 좋겠다. 겨우 사흘간의 여행이 심리적으로는 일주일 이상 길게 느껴졌으니, 아마 후기도 쓸데없이 투덜투덜 주절주절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만의 여행이었기도 하니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마감중에 여행이라니!) 예상했던 대로 한시간이나 눈을 붙였을까 서둘러 일어나 세면도구를 마저 챙기고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12시반 출발인데 공항 집결 시간은 10시까지. 집에서 공항까지 리무진 버스로 한시간이면 충분하지만, 30분에 가까운 배차시간을 감안하면 아침 일찍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이용료 7500원이 아까워서 늘 당연히 집앞 정류장에 서는 리무진버스를 이용하는데, 두 사람의 왕복 버스비 3만 6천원을 감안하면 동생 말마따나 차라리 차를 가져가서 주차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 왕비마마의 편의를 위해서도 낫겠다는 걸 요번에 처음 깨달았다. 과연 앞으로 또 두 모녀가 해외여행을 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_-;;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하던 지인에게 일본 노선이 제일 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시간 남짓한 비행 시간동안 음료수도 나눠주고 식사도 나눠주고 기내 면세품까지 팔아야해서 번개불에 콩 볶듯 쉴틈없이 서둘러부쳐야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목적지인 돗토리현 요나고까지 예상시간은 겨우 1시간 10분. 당연히 기내식도 간단하고 부실한 도시락이었다. 기내식이 부실하니 미리 공항에서 요기를 해두라는 가이드의 조언을 들었던 터라, 나는 기내식을 먹는둥 마는둥 짧은 시간에 몇 개 안되는 일본말 외우기에 돌입했다. 아는 일본말이라곤 <스미마생>,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밖에 없는데, 왕비마마 간식이라도 사드리려면 <이꾸라데스까-얼마입니까> 같은 정도는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 몇 마디 수첩에 적어간 터였다.
나쁜 머리로 내가 열심히 외운 일본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꾸라데스까? (얼마입니까)
고레오 구다사이 (이것 주세요)
오미즈/오차 구다사이 (찬물/녹차 주세요)
오이시이데스네 (맛있네요)
와까리마시다 (알겠습니다)
~와 도꼬데스까? (~는 어디입니까?)
그밖에도 몇 개 더 적어갔지만 짧은 비행시간 동안 외우는 건 무리였는데, 다 외웠더라면 억울할 뻔했다. 결과적으로 사흘간 저말은 한번도 쓰지 못했으니까. 얼마라고 물어서 대답해 주면 알아는 먹을 거냐고! 게다가 맛있다고 감탄할 만한 음식은 사흘간 6끼니 동안 딱 한번뿐이었으니... ㅠ.ㅠ
여행상품 검색하면서 난생 처음 들어본 요나고는 정말 작은 도시인듯 공항 규모가 정말 작았다. 오래 전에 가본 속초 공항에 비할까. 타고간 비행기도 작은 편이었는데, 외국인은 인솔 가이드 포함하여 우리 일행 14명이 유일했다. ㅋㅋ 덕분에 지문과 사진을 찍어 입력해야 하는 입국수속은 금세 끝났고, 옛날에 주민등록증 만들 때처럼 양손가락에 시커먼 롤러로 잉크를 발라 지문날인을 해야하는 것으로 상상하며 막연히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던 외국인 지문입력은 그냥 손가락 스캐너에 양손 검지를 대는 것으로 끝이라 오히려 좀 의아했다.
예상은 했지만 일본 기상청도 구라청이기를 바랐던 마음도 무상하게 요나고 공항 밖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국이랑 기온 비슷하다더니만 엄청 더 춥고! .ㅠ.ㅠ 비교적 따뜻하게 처덕처덕 입은 터라 인천공항과 기내에선 겉옷을 벗어 들고다녀야했는데도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하늘이 하는 일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위로를 들으며 버스에 올라탄 뒤 드디어 조촐한 관광이 시작되었다.
첫 행선지는 사카이미나토. 사카이미나토에 조성되어 있다는 미즈키(엥? 미즈키 님?) 시게루의 요괴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미니버스에서 내려 기차를 타야했다. 만화 주인공들로 꾸며진 요괴기차를 타고 사카이미나토에서 내려 요괴 거리 곳곳에 서 있는 청동상이며 캐릭터를 살려 꾸민 가게를 구경하는 게 관광의 목적이었으니, 비까지 내리는 와중에 울 엄니가 그런 구경을 반길 리 없었고 일행 중 결혼 21주년을 맞아 여행왔다던 중년 부부도 울 왕비마마와 함께 버스를 지켰다. 그나마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만 후다다닥 수박 겉핥기 식으로 구경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나야 미즈키 시게루도 모르고 주인공 기타로도 모르지만 시간 들여 꼼꼼이 구경하고 싶은 거리여서 좀 안타까웠다.
이름 모를 역의 풍경, 나무가 신기하게 생겼다
마침 기타로 열차가 지나갔다
우리가 탄 열차? 전철?
천장에도 온통 요괴 캐릭터 그림
역 광장 초입에 있는 청동상 - 가운데 할아버지가 미즈키 상일까?
공원 가로등은 물론이고 택시에도 눈알요괴가 달려있더라 ㅋ
미즈키 로드 인증샷 - 미즈키 니의 거리가 있다니!
우산은 포기하고 후드 티 뒤집어 쓰고 돌아본 거리에서 발견한 벛꽃은 죄다 이런 수준이었다. 일주일만 더 일찍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ㅠ.ㅠ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겠나.
어쨌거나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상점과 요괴상을 찾아보는 재미가 뭐 그리 쏠쏠할까 싶었던 처음 생각과 달리, 요괴 캐릭터 모양으로 빵을 구워 파는 빵집이 없나 (3종류 사먹었는데 맛도 좋았다!) 정원 예쁜 찻집이 없나, 캐릭터 상품점이야 별로라고 쳐도 반나절쯤 돌아다녀도 좋겠다 싶은 곳이었다. 만화내용을 알고 왔더라면 더욱 금상첨화였겠지만...
주인공을 안찍을 수야 없지. 얘가 기타로다
젤 귀엽던데 얘 이름은 까먹었다 ㅠ.ㅠ
[#M_요괴 빵?|접기|
우리가 타고갔던 기차 캐릭터 모양의 빵 - 좀 뭉개졌는데..담날 아침에 먹었다 ^^
뭐니뭐니해도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따라가서 제일 싫은 건, 내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맞춰 헐떡거리며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도 일부러 꾸며놓은 거리 안쪽으로 그냥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잡화 식료품점에서 나 어릴 때 '미깡'이라며 사먹던 옛날식 밀감도 발견했고, 시골스러운 쌀집도 구경하며 신기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다음 코스를 위해 억지로 버스에 올라야 했다. 으휴.
동해에 인접해 일몰이 절경이라는 신지코 호수가 다음 행선지였으나, 비바람치는 오후에 일몰은 무슨 일몰. 가운데 소나무섬을 만들어놓았으니 그거라도 구경하라는 말에 버스에서 내려 한 다섯발자국 가다가 사진 한방 찍고는 그냥 돌아섰다. 그래도 이 사진속의 두 연인은 젊어서 비바람 무릅쓰고 한참이나 다녀오더라마는...
동해바다 내려다보러 올라간 그 다음 전망대도 당연히 나는 시큰둥했고, 어서 온천료칸에 가서 푹 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코스정식 카이세키 요리에 대한 기대도 허기와 함께 부풀어올랐고... 대체로 요번 일행들의 목적은 온천료칸 체험인듯 했으므로, 시답잖은 관광 코스는 한둘 정도 빼고 푹 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혹시라도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중에 여행사에 항의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그 바람을 실천에 옮길 수는 없었다. 괜찮은 온천 료칸 골라서 푹 쉬는 여행을 계획하려면 그저 호텔팩이나 자유여행밖에는 방법이 없는듯.
<명탕순례>랍시고 우리가 첫날 간 곳은 타마즈쿠리 온천. 돗토리현 공항에 내리긴 했어도 이미 어느 시점엔가 시마네현으로 넘어가 그곳 주소는 시마네현이라고 했다. 온천 역사가 1300년이나 된다고 해서 저녁이나 아침에 짬 내서 온천마을 산책도 할 작정을 품고 떠났으나, 여행 가서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어본 역사가 없으니 당연히 패스~. 게다가 반나절 만에 이미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듯한 왕비마마를 모시고선 그저 온천욕이나 할밖에 아무것도 계획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숙소인 마츠노유 료칸
료칸 안뜰 -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온천욕탕이다
원래 내가 꿈꾸었던 온천료칸 체험은 역사가 몇백년씩 되는 소규모 전통 료칸에서 기모노를 차려입은 오카미상의 깍듯한 시중을 받아보는 것이었으나 ㅠ.ㅠ 그런 곳은 단체손님을 받지 않는 듯, 패키지 상품으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공권과 숙박 예약만 대행해주는 자유여행 상품은 더러 있었으나, 일본말도 못하면서 왕비마마를 모시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진즉에 포기한 뒤, 그나마 좀 괜찮은 온천료칸 상품을 검색해본 터였다. 숙소 건물에 들어가자 마자 풀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느껴지더니 방에 들어가자 확실히 다다미방의 향취가 느껴졌다. 바로 이거야, 싶은. 온천료칸에 가면 저녁 먹기 전에 먼저 온천욕부터 하는 거라는데, 우리는 체크인 시간이 늦어 곧장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내가 꿈꾸었던 카이세키 요리 또한 다다미방으로 가져와서 차려주는 것이었으나, 식당으로 내려가야 했으니 또 한번 실망...
이것이 카이세키 요리
그렇다고 대규모 식당에서 객실손님 전체가 와글와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을 위해 따로 마련된 소규모 연회실 같은 곳에서 각자 한 상씩 차려진 저녁밥을 먹는 식이었고,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종업원들이 깍듯하게 시중을 들기는 했다. 열심히 외운 오미즈(찬물)이며 오차(녹차)를 달라고 입도 떼기 전에 눈치 빠르게 따라주시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매번 납작 엎드리듯 무릎 꿇고 시중드는 건 어째 영 불편하더라.
암튼 지역특산물인 게요리, 쇠고기 스테이크, 스키야키, 사시미, 소바... 온갖 진미가 나오는 것으로 기대했던 코스정식의 겉모습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맛이!!
우리나라 활어회와 달리 일본 사시미는 약간 숙성한 맛을 최고로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닷가에 가까워서 특선요리가 생선이란 것쯤은 짐작했음에도, 첫날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나는 허기를 빵과 과일로 달래야했다.
나말고도 열심히 큼지막한 카메라를 가는 데마다 들이대는 여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괜스레 자꾸 사진찍는 게 민망해서 얼른 한장 누르고 마느라 저 사시미 위에 덮인 종이도 걷지 않아 좀 민망하다. 아무려나 네다섯 점 올려 있던 생선회는 비려서 먹다 남겼고, 게다리는 차가웠으며 특히 제일 위 가운데 놓여있는 정체불명의 요리는 생선과 가지, 두부를 연잎 같은 데 싸서 찐 거였는데 어찌나 비린지 단박에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ㅠ.ㅠ 왼쪽 위 뚜껑 덮여 있는 스키야키는 어찌나 짠지 아래 있던 날 달걀을 풀어 넣어도 간이 맞질 않고 나머지 밑반찬은 차거나 비리거나 밍밍해서, 첫날 저녁 제대로 먹은 건 하얀밥과 미소시루와 쇠고기 몇점이 다였다. 카이세키 요리 엄청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곳만 실망스러운 걸까? 우쒸...
식탐녀의 상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방으로 돌아와 발견한 푹신한 이불 두 채였다. 다녀와서 알아보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료칸도 식당은 별채에 마련해두고, 아침 저녁 밥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 이불을 개고 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듯하다.
이불을 보니 하루만에 너무 피곤해서 온천이고 뭐고 한숨 먼저 자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써 몸과 마음을 추스려 유카타로 갈아입은 뒤 온천으로 내려갔다. 굳이 목욕탕에 귀중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든 일본 온천에는 열쇠로 잠그는 라커 없이 그냥 바구니 아니면 나무로 짜놓은 칸막이에 옷을 벗어놓는다. 들어갈 때 자기 번호만 눈여겨 보면 그만이다.
온천 성분 같은 거 전혀 모르긴 하지만, 완전히 말간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대강 씻었는데도 머리칼과 살결이 매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료칸에 딸린 온천탕이므로 규모는 당연히 그리 크지 않고, 탕이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는 일반 목욕탕 정도를 상상하면 될듯하다. 까마득한 옛날에 온양온천이랑 강화도 해수온천에 가본 적 있는데, 거기나 여기나 느낌은 다 비슷했다. 노천탕도 있었지만, 춥고 피곤해서 우린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해 그건 좀 아쉬웠다. 물이 다르다고 칭찬을 거듭하며 모녀는 다음날 새벽에도 한번 더 온천욕을 하자고 작심했지만 ㅋㅋㅋ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당연히 온천욕 대신 잠을 더 욕심냈다. 아무렴, 잠이 더 중요하고 말고.
_M#]
일요일에 떠나 어제 무사히 돌아왔음. 동생들은 사흘이 후딱 갔다면서 벌써 와서 아쉽겠다고 위로했지만, 모녀의 2박3일은 어찌나 길었는지 원래 예정대로 3박4일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도착하는 날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바람에 소망하던 꽃비는커녕 육중한 노친네 부축하고 우산 받쳐들고 다니느라 무수리는 완전 녹초 상태로 몸살 직전까지 빌빌대야 했다. 게다가 어제 인천공항에 내리니 갑자기 겨울 날씨! 삭신이 쑤셔서 어젯밤부터 오늘오전까지 두 모녀는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 끙끙 앓았음. ㅠ.ㅠ
동해바다에 면한 곳이라 느낌이 속초나 강릉 즈음으로 여겨지는 톳토리현, 시마네현 일부를 보고 온 주제에 일본이 어쩌니 저쩌니 말하는 건 가당찮은 짓이겠지만 어쨌거나, 처음 가본 일본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 생각보다 벚꽃이 별로 없더라. 끝물이기도 하고 비가 와서 많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아직 벚꽃축제기간이라는데 공원에 서 있는 벚나무가 그리 많지도 않았음. 진해나 여의도처럼 일본에도 일부 대도시에만 대규모로 벚꽃길이 조성되는 건가?
- 화산지역이라 당연하겠지만, 일본 온천물 우리나라 온천물보다 좋더라. 온천욕 별로 안 좋아해서 효능 따위 잘 모르는 편인데, 머리감고 나서 곧장 매끈거리는 머릿결이 느껴졌음. 떠나는 날 아침에 한번 더 담그지 못하고 돌아온 걸 모녀 둘 다 후회스러워했다. ㅋ (나이가 들면서 온천이 좋아지는 걸지도.. -_-;;)
- 다다미방으로 된 온천료칸 체험, 은근 매력있다. 다다미를 해마다 바꾸는지 어쩐지 방에 들어가자마자 싱그러운 돗자리 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풍겼고, 저녁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에 다기 놓여있던 테이블 치우고 이불 깔아놓는 서비스 마음에 들었음.
-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음식맛과 염도에 차이가 있으니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행의 현지음식은 절반 정도 내 입에 맞지 않았다. 모험정신 강하고 식탐 많은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나. 일행 중엔 컵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거의 연명한 이도 있었다. ㅋ
- 귀엽고 아담한 경차가 정말 많더라. 경차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다는 말만 들을 때랑 직접 보는 거랑 역시 느낌이 다르다.
- 전통과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전국 어딜 가나 도시든 시골이든 볼썽사나운 아파트와 시멘트 양옥집 투성이인 이 나라와 달리, 오래된 일본집스러운 느낌의 나무로 된 집들이 참 많았다.
본격후기는 슬슬 밀린 일 눈치 봐가면서 올리도록 하겠음. 여행은 늘 좋지만, 집에 돌아오는 건 더 좋다. 예전엔 판에 박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싫어서 항상 여행 끄트머리에 느끼는 아쉬움이 몹시 컸던 것 같은데, 이번엔 진심으로 귀가를 기다렸다. 오죽하면 제목이 <살아돌아옴>이겠나. 집에 와서 기쁘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