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13.01.22 궁궐답사 6
  2. 2013.01.05 어떤 낱말이 보이시나요? 15
  3. 2013.01.04 과연 11
  4. 2012.12.06 스팅: Back to Bass Tour in Seoul 10
  5. 2012.11.16 그리고 부산 6
  6. 2012.11.13 창덕궁 나들이 6
  7. 2012.11.07 일본 북큐슈 셋쨋날 14
  8. 2012.11.06 일본 북큐슈 둘쨋날 12
  9. 2012.11.06 또 일본, 북큐슈 8
  10. 2012.08.24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 한국근대미술: 꿈과 시 2

궁궐답사

놀잇감 2013. 1. 22. 01:23

한옥의 역사와 궁궐의 역사, 이론 수업을 두 주일 하고 나니 벌써 궁궐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최초의 조선 궁궐인 경복궁을 시작으로 일단 창덕궁까지. 경복궁은 가뜩이나 관람객 바글거리는 토요일 오후에 시끌시끌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창덕궁은 휴관일인 월요일에 교육생들만 특별 출입을 할 수 있어서 고즈넉하니 좋았지만 온종일 철철 비가 내렸다는 사실이 함정. 다행스럽게 이틀 다 날씨가 별로 안추웠지만, 경복궁은 허허발판이라 칼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역시나 영하였고 창덕궁엔 살얼음이 얼거나 얼어붙은 길이 다시 비에 녹아 미끌미끌 위험천만이었다. 완전무장 후 핫팩을 들고 다녔는데도 발시리고 손시리고 코시려워서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을만한 한겨울의 궁궐답사가 아닐는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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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에서 제일 처음 눈에 띄는 낱말 세 가지는 2013년에 정말로 이루어질 거라는데, 근거가 있든 없든 이런 퍼즐 같은 종류 좋아하다보니 이웃 블로그에서 얼른 퍼왔다. 막상 해보니 나로선 결과도 대만족. ㅋㅋㅋ

여러분은 어떤 낱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시나요??? ^^*

 

 

 

내가 골라낸 첫 세 낱말은 holiday, money, happiness.

어쩜.. 이것은 운명이야! 라며 믿고 싶은 결과가 아닌가. holiday야 지금도 안식년 핑계로 계속 즐기고 있는 셈이고, 제대로 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아닐까 고민하는 걸 어찌 알고... 돈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까지 얻는다면 오오옷. 더 바랄 것이 없겠군. 행복은 요건이나 요행이 아니라 성취라고 했던 줄리언 반스의 말을 불과 몇시간 전에 포스팅에 옮겨 적었는데 흠...

암튼 재미삼아 토정비결 신년운수 보듯 이 또한 재미삼아 시도하고 즐거우면 되었네라...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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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투덜일기 2013. 1. 4. 18:09

새해들어 과연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시작한 일이 하나 있다. 자원봉사 따위와는  완전 담쌓고 살아온 사람이지만, 궁궐 청소 같은 일은 해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모종의 기획이라면 기획. 궁궐과 문화재 지킴이를 모집하는 단체가 꽤 여럿인 모양인데, 여기저기 기웃대다 한 군데서 마침 연말에 모집기간임을 극적으로 발견하고 마감일 하루 전에 허겁지겁 신청했다. 00명 모집에다 선착순 마감이라고 적혀있어서, 안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 조마조마했다. 돌이켜보니 이 얼마만의 '응시'인가.

 

교육대상자 발표를 보니 무려 100명. 내가 막연하게 바랐던 궁궐 전각 청소 소임과는 사뭇 다르게, 해설사 양성 교육이라서 좀 어마어마한 느낌은 있지만 궁궐과 한옥, 우리 문화재에 대해서 뭔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꽤나 뿌듯하게 소정의 교육비를 냈다. 그러고는 어제 첫 강의가 있어 27년만에 찾아왔다는 강추위를 뚫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6시반부터 시작되는 평일 저녁에 수업을 들으러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이들일까 자못 궁금했다. 방학 맞은 대학생들이 좀 있을 테고 나머지는 나처럼 죄다 백수? ^^;

 

아직 어떤 이들이 모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연령비율로 보니 20대부터 60대까지 제법 골고루 분포하고 있었고 남녀 성비는 25대 75로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많았다. 하기야 궁궐 해설사치고 여자 아닌 사람을 나는 입때껏 한번도 못봤다. 창덕궁도 그렇고 나는 궁궐 해설사들이 죄다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이거나 계약직 직원인 줄 알았는데 다들 자원봉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암튼,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해설사로 활동하고픈 마음은 없다해도 그만큼 교육내용이 알차려니 싶어서 기대중이다. 3월까지 일주일에 세번이나 교육이 있는데 끝까지 남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궁금타. 그렇다면 과연 나는 끝까지 버틸까? ㅎㅎㅎ

 

흥미로운 주제라고는 해도 강의 방식이 따분하고 지루하면 어쩌나 염려스러웠는데 세계 건축 통사를 훑어주었던 첫 강의는 퍽 재미있었다. 반사적으로 강의 내용을 공책에 열심히 필기하며(교육 끝나면 나중에 필기시험도 본다!), 구석진 자리에 앉은 걸 후회했다. 파워포인트로 비추는 스크린이 앞좌석에 가려져 주요 사진 캡션을 하나도 못 읽은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내일 수업땐 같은 구석자리라도 한 세쨋줄 정도로 노려볼 생각이다. 그럼 담배냄새 쩌는 지각생 아저씨가 옆자리로 파고드는 일도 없겠지. ㅠ.ㅠ 어젠 정말이지 수업 내용은 흥미진진한데 숨쉬기가 어려워서 죽는 줄 알았다. 얼마나 골초면 옆사람한테까지 그토록 호흡곤란을 일으킬까나. 한껏 몸을 틀어 앉아 수업 내내 내가 스카프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던 걸 옆자리 그 골초 아저씨도 눈치챘을까? 생김새도 못봤으니 미리 알아서 피할 순 없을 테고, 무조건 중노년의 아저씨 주변엔 앉지 않겠다고 첫날 수업 한번으로 결심이 섰다.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진즉 깨달았으면서도 또 뭔가를 배운다고 생각하니 설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제 수업에서 인류는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하던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역마살, 노마드 가질이 있어 여행을 좋아하며, 어딜 가든 현지에서 뭘 꼭 사오는 것도 채집 본능이라고 설명하던데, 공부 싫어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선망을 버리지 못하는 건 무슨 본능일까 문득 궁금했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여호아라는 공자님 말씀에 그리 깊이 세뇌된 건 아닐텐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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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1월에 스팅의 심포니시티 투어 공연이 끝나고 나서, 후유증 비슷한 걸 앓으며 스팅 공연을 또 보려면 5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쉬운 마음에 한참이나 공연후기 올린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근데 누군가 자신있게 단언한 사람이 있었다. 스팅, 1년 안에 또 투어 다닐 거니까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라고. 뭔가 좀 아는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온 이야기인 것 같아서, 한국엔 언제오나 스팅 공식 사이트를 종종 확인했다. 그러더니 진짜로 전세계 투어 스케줄이 차츰 잡혔고, 유럽과 미주를 죄다 돌고돌고 돌아 이스탄불, 베이루트 등지에 이어 아시아 도시 차례가 도래했다. 또 다시 한겨울이긴 하지만 그게 어디냐!

드디어 서울 공연 날짜가 잡히고 티켓오픈일이 공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온갖 준비를 마쳤으나 ㅠ.ㅠ 막상

티켓오픈 정시에 아무리 재빨리 손을 놀려도 자꾸 순서를 놓친 뒤  성공한 자리는 무려 19번째줄. 컴퓨터도 새걸로 바꿨는데 우쒸! 갈까말까 망설이다 플로어석 거의 제일 뒷줄에서 봤던 작년에 비하면야 엄청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암튼 속상했다. 공식 스팅 팬클럽 유료 멤버십 회원은 더 일찍 예매가능하다고 해서 무려 20달러나 내고 가입했는데, 다른 나라 예매링크는 죄다 들어가지는데 우리나라 예매링크만 먹통인 건 또 뭐냐! 공연 주최측이 어디였는지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각성하라 각성하라! 티켓값은 무려 198,000원이나 받아처먹고도, 멋진 포스터 한장 안 만들어붙였으며 제대로 된 플래카드 한 장 없다니! 공연장 입구를 알리는 싸구려 플래카드도 공연 끝나고 나와보니 이미 치우고 없었다. 현대카드가 슈퍼콘서트 빌미로 티켓값 엄청 올려놨다고 불평했는데, 그래도 걔네들은 시스템이라도 빵빵했구나 싶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판 25주년 기념 앨범 역시 아무래도 짝퉁이 의심된다! +_+

게다가 이번에도 공연날 웬 폭설?! 그나마 작년 공연땐 차타고 가는 중에 폭설에 길이 막혀 지각사태를 빚었던 반면, 눈이 미리 내려 처음부터 차를 버려두고 간 덕분에 일찌감치 올림픽공원에 당도해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19째줄이라고는 해도 정가운데라 스팅의 표정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감지덕지. 폭설 때문에 30분 늦게 시작된 공연은 정말이지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2012년 12월 5일 올림픽 체조경기장

우왓... 허스키하면도 동시에 낭낭한 목소리 그대로인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으나 스팅의 외모가 더 젊어진 느낌! 스리살짝 비치면서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로 강조된 저 근육질의 몸매를 보라. ;-p

심포니시티 투어 때처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게 아닌데도 5인조 밴드의 완벽하게 꽉찬 연주와 편곡은 음향시설 열악한 체조경기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게다가 예전엔 짧은 인삿말도 고집스레 영어만 고집하더니, 요번엔 우리말로 '안녕 서울!' '고마워'를 외쳐준 스팅. 귀엽다잉...  ㅋ

중간중간 대놓고 관객의 호응과 떼창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행 하나는 요번엔 왜 이렇게 관객한테 요구사항이 많으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으나, 나로선 관객과 혼연일체가 되려는 스팅의 노력에 사람들이 잘 안따라주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우리 앞줄에 어린 딸 데리고 와 앉았있던 남자들 어쩜.. 박수도 안치고 계속 팔짱관람을 할 수가 있는지! 열살쯤 되보이는 딸아이는 심심해서 계속 핸드폰 게임만 열중하고;;; ㅠ.ㅠ)

예상 세트리스트를 찾아 미리 예습을 하긴 했으나 유럽쪽과 아시아 투어는 역시나 노래들이 좀 달라서 3분의 2만 적중했던 것 같다.  물론 예상했든 안했든 죄다 주옥같은 노래들이었지만서도... 어느덧 2시간 가까운 공연이 막바지로 치달아 앙코르로 Every Breath You Take을 죄다 일어나 떼창으로 부르다, 또 한번의 앙코르 땐 열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스팅이 직접 도미닉 밀러 대신 기타를 연주하며 Fragile을 불러줄 땐 아쉬움과 동으로 눈물이 다 핑 돌 것 같았다.

한국공연 공식사이트도 없어서 사진 퍼오기 힘들었다..

한국 관객이 워낙 열광적이라 특별히 앙코르 곡을 하나 더 해줬을지도 모른다는 흐뭇한 생각에 공연장을 빠져나왔는데, 중간에 만난 공연 스탭이 절대 양도할 수 없다는 세트리스트를 사진으로나마 찍어오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밀고 보니 ㅋㅋㅋ 다섯 곡의 앙코르 곡까지 죄다 짜여진 각본이었다. 결국 조삼모사였는데도 뿌듯한 걸 어쩌란 말이냐.

어째 후기를 투덜투덜 불평으로 시작한 탓에 그날의 감동이 반감된 듯하지만, 각본이었든 아니든 22곡의 노래와 연주는 모두 훌륭했고 아름다웠다. 두말할 것 없이 올 최고의 공연! d^^b

체조경기장을 2층까지 거의 꽉 채운 관객의 면면을 돌아보니 뜻밖에도 젊고 어린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 공연때는 역시나 중장년 관객들의 비중이 엄청났던 것 같은데, 스팅의 매력을 이젠 젊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을까? 나이대가 좀 더 젊어진 듯한 관객층덕분에라도 머지않아 스팅의 내한공연이 또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었다.

아참.. 그나저나 스팅 팬클럽 공식 티셔츠는 신청한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왜 안오는걸까나... 한국에선 공연 사전 예매도 안됐으니 20달러 내고 그저 그저 반팔 티셔츠 한벌 받는 게 혜택의 전부라는 얘긴데... 끙. 다음 공연땐 입고갈 수 있기를!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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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산

여행담 2012. 11. 16. 20:29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두시간 반. 푹신하고 넓은 우등고속 좌석은 곤한 다리를 쉬기에 딱이었고 우린 터미널 카페에서 드디어 반갑게 상봉한 쓴 커피를 '원샷'한 뒤에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심야가 아닌데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 안 조명을 깜깜하게 꺼두었다가 부산 노포 톨게이트에 접어들고나서야 실내등을 켜 승객들을 깨웠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며 잠깐이라도 부산까지 찍고 오자 결심했던 이유는 처음 일본에 가려 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하루쯤 놀다가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사전 모의가 무산되면서 뭔가 대단히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친구 핑계대고 이왕 나선 김에 부산에 이어 통영, 해남, 순천만 생태공원까지(여름부터 친구랑 휴가 계획 짜며 모두 언급되었던 여행지들이다 ㅋ) 죄다 둘러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2주라고 해도 S는 금요일 출국인데다 수요일엔 또 LA에서 같이 휴가나온 동료도 만나야했다. 은행장이 특별히 임무를 부여했다나 뭐라나 -_-;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올라갈 KTX도 이미 2시반에 예약해둔 터라 부산에서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숙소 예약하지 말고 우리도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한번 자보자고 별렀다. 하룻밤은 우아하게 별당아씨 노릇을 했으니 또 하룻밤쯤은 행랑아범처럼 쭈그려 자도 재밌겠다고. LA교포들의 정보력이란 암튼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친구의 언니는 한인 아침방송에서 봤다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빼빼목'을 사오라고 부탁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을 뿐이고!) 찜질방도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잠을 잔다는 것이 가능할지 두려웠으나 까짓것 하루쯤 잠 못자면 어떠랴, 내가 LA 놀러갔을 때도 뜬금없이 코리아타운 사우나엘 데려갔을 정도로 친구는 대중목욕탕 애용자인 것을. 그리하여 만 하루가 못되는 부산일정 역시 먹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야경보며 시원소주에 회 먹기,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로 금수복국, 점심은 밀면! 부산 오뎅과 자갈치시장 씨앗 호떡은 간식 옵션이었다. ^^;

 

안동에선 시내버스비 1200원을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했으나 부산에선 선후불 교통카드 사용에 불편이 없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갔을 때 사고 남은 티머니 카드가 그래서 서울과 부산에서 아주 요긴했는데, 친구가 갖고가 버렸다. 좀 남았을 텐데 ㅋㅋㅋ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으려나. 째뜬 노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곧장 향한 곳은 광안역.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된다더니, 우리 걸음으론 역시나 15분쯤 걸린 듯하고 인도에 나다니는 사람들 별로 없는 아파트촌 옆을 지나면서는 친구가 미국시민 답게 좀 두려워했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중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을 땐 나도 좀 간이 오그라들었음. ㅋ 다행히 곧 나타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은 평일임에도 휘황찬란 해변 카페, 술집마다 사람들이 드글드글, 바닷가엔 저녁 산책 및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해변에서 군데군데 영업중인 점 보는 파라솔! (광안대교 사진 오른쪽에도 살짝 걸쳐 나왔다 ㅋ) 대체 누가 저런 걸 보나 싶은데도, 파라솔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사주궁합 안좋다 그러면 헤어질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음. 오른쪽 사진은 민락 회타운인가 하는 건물 꼭대기층 횟집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일부러 광안대교 보이는 집으로 골라간 건데 다리쪽 방엔 자리가 다 찼다. ㅠ.ㅠ

 

그래도... 요즘 제철이라며 전어회도 따로 좀 챙겨주시고 맛과 서비스는 흡족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집어먹다가 매번 아차,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 (휴대폰에 먹고팠던 갖가지 한국 음식 사진을 넣어가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라면 소망인지라;;)

 

부산에 왔으면 시원소주를 마셔줘야지 암, 그러면서 술꾼인척 소주를 시켰으나 결국엔 사이다와 소주를 3:1의 비율로 섞어 먹다 배부르다는 핑계로 반병 남기고 왔다. 소맥을 할 걸 그랬나보다. ;=p

 

 

밤이 깊어가고 있었으나, 찜질방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어 내가 짜낸 아이디어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 CJ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은 LA에서도 볼 수 있다며 친구는 이왕이면 다른 걸 보고 싶어했으나 마침 볼만한 다른 한국영화가 없으니 선택은 결국 <광해>였는데, 나는 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영화 장면장면마다 우리가 최근에 갔던 창덕궁 구석구석이 막 나오는 게 아닌가! 쓰러진 광해가 숨어있던 집 역시 안동 하회마을일 리 없는데도 낮에 본 한옥들과 겹쳐져 더욱 실감이 났다. 그토록 뜸들이다 부산에까지 와서 <광해>를 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미루고 미루다 새벽 2시가 다 돼 택시타고 찾아간 달맞이 언덕 베*타 찜질방은 상상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꽤 훌륭했다. 그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별로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드넓은 방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큰 방엔 거의 누을 자리가 없을 정도! 여성용 수면실이 따로 있긴 하던데 좁은데다 온도가 너무 높아 숨이 막힐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도 요란하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들 덮고 자는 담요는 과연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구경다니며 탐색하던 우리도 드디어 담요와 목침을 하나씩 구해들고 제일 덜 더운 방에 몸을 눕혔다... 근데 거기도 너무 더워 ㅠ.ㅠ 나는 잠든 친구를 남겨두고 찬바람을 쏘이러 베란다 앞으로 갔다가 식당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친구 옆으로. 에구구 여행에서 잠자리는 역시 편해야 제맛임을 실감.

 

 

그렇긴 해도 또 눈을 뜨자마자 이런 광경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는 묘미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전날 밤 그저 깜깜한 유리창으로만 보였던 목욕탕 전면도 죄다 저렇게 바다로 향해 있어 탕에 들어앉아서도 바다감상이 가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 찜질방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ㅎㅎ

 

아래는 노천탕이 있다는 옥상구경하러 올라가서 찍어온 해운대 앞바다 사진.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에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좀 걸어보겠냐고 했더니 바다구경은 충분하단다. 맞다, LA에서도 바다는 금방이었지... 

 

 

 

간단하게 때밀이(!) 목욕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계획대로 금수복국 해운대점. 오래 전 부산에 갔을 때 택시타고 가자했더니 교묘하게 곧장 2층 입구에 내려주어 얼결에 수만원짜리 '정식'을 먹어야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조심해야지 했는데, 웬걸. 택시 아저씨가 쿨하게 큰길가에 내려주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

 

그래서 시켜먹은 것이 은복 지리와 복주머니 만두. 

LA 한식당에 비해서 다들 음식이 왜 이리도 양이 적으냐고 투덜거리던 친구는 처음으로 1인분다운 뚝배기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서울에도 이미 분점이 있지만, 말간 국물의 복국은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제맛인 느낌. 해장할 필요도 없이 속은 멀쩡했지만 어김없이 시원했다.

 

 

마침 복국집 바로 앞에 원두커피집도 있겠다, 이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순히 풀려주는 기분이었다. 이후 부산관광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태종대, 자갈치시장 쪽을 돌아 기점인 부산역으로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것이었다. 해운대 코스를 타면 광안대교도 건너간다잖아! (버스비는 만원.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내리며 계속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간 동안 역시나 부산여행을 한 울 엄니가 가르쳐 주심. 후쿠오카 시티투어버스에 비해 훨씬 유용한데 우린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진짜로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엔 정말로 뚜껑없는 이층 투어버스가 다닌다는 듯;;

 

 

 

 

 

 

 

 

 

부산역 앞에서 은행구경과 서비스 체험도 좀 하고(얼마나 친절하고 편리한지 친구가 미국은행과 비교를 원했다), 다시 태종대행 시티투어버스를 타긴 했으나, 2시반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자갈치시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듯했고 태종대도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잘 기억도 나진 않지만 예전엔 택시를 타고 등대앞까지 갔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거기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걸 타고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시티'투어'버스다 보니 어찌나 해안으로만 돌고돌아 구석구석 다녀주시는지, 도심에서 태종대까지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나중에 택시타고 와보니깐 부산역까지 15분도 안 걸리더만!)  

 

 

말이 태종대지 솔숲길로 조금 걸어내려가 우묵하게 파인 만과 전망대 앞 바닷가를 본 것으로 이날의 관광 끝. 점심으로 별렀던 밀면을 먹을 시간조차없었다. ㅠ.ㅠ

 

 

결국 우린 회먹으러 부산 온 거였네, 라고 자조하며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할 정도였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서울역.

 

 

곧장 전철로 이동하여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의 동료들과 합류, 쌈지길과 청계천을 쏘다닌 뒤론 다시 홍대앞(주차장길 네일샵→액세서리 가게→조폭 떡볶이→커피집)을 휩쓸다 이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우리는 장렬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전국이 일일생활권임을 몸소 실천한 좋은 예.

 

(2012. 10. 24)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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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나들이

놀잇감 2012. 11. 13. 00:28

생각해보니 가열차게 놀러다닌 날들이 벌써 한달이 다 돼간다. 그때만 해도 단풍든 나무보다 새파란 나뭇잎이 더 많았는데 어느새  요 며칠 겨울 같은 날씨에 나무들은 헐벗었고 올해도 한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ㅠ.ㅠ 남은 기억 다 지워지기 전에 사진 쳐다보며 밀린 이야기를 다 풀어내야할 터인데. 이것 참.

 

일본에 다녀온 다음날부터 곧장 이틀에 걸쳐 서울 관광 스케줄을 쫀쫀하게 짜놓았으나, 그건 그저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시차도 너끈히 견딘 친구와 달리 며칠 전까지 급마감에 힘쓰며 밤샘을 거듭했던 나는 혓바늘이 돋질 않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길 않나 저질체력임을 여실히 실감했고, 연일 강행군은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하루는 장이나 봐다가 맛난 거나 해먹으며 쉬자고... 

 

LA선 절대 맛볼 수 없다는 납작말랑한 홍시와 홍옥사과, 막걸리와 해물부추전으로 비타민과 영양(?)을 보충한 다음날에야 비로소 나설 수 있었던 창덕궁. 그나마 원래는 창덕궁과 종묘를 한꺼번에 돌려던 계획이었으나 창덕궁 하나만 보기로...

 

친구가 이날 저녁부터 주말까지는 외가에 들러야 해서 짐을 싸가지고 나왔기에 마냥 돌아다니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창덕궁엔 입구에 무료 사물함이 있고, 나중에 이대앞에선 지하철역 사물함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 사물함 나도 난생처음 이용해보는 것이었는데 열쇠 없이 디지털 화면으로 사물함이랑 비밀번호 지정하고, 심지어 거기서 택배도 보낼 수 있더군! +_+ 놀랍도록 편리한 나라임을 새삼 실감. ㅋㅋㅋ

 

암튼 창덕궁에 들어서자마자 다리 건너편 느티나무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변해가고 있는 모습에 반해, 왼쪽에 사열하듯 서 있는 장엄한 회화나무 세 그루는 찍어오는 걸 까먹고 말았다. 걔네들은 아직 초록이 성성한 자태였는데...

 

 

 

대개는 인정전과 대조전 등지의 전각을 먼저 다 보고 후원 들어가기 전에 낙선재를 둘러보는데, 사진 순서를 보니 이날은 낙선재부터 들렀던 모양이다. 한달도 안 돼 벌써 이렇게 기억이 흐려지다니 뜨끔;; 아무튼 까마득한 오래 전 지금처럼 복원이 끝나기 전에 이방자 여사가 개조해 놓고 썼던 양실 목욕탕도 구경할 수 있었던 때도 좋았고, 원래대로 바꿔놓은 지금도 좋은 낙선재. 궁궐에 있을 정도니 당연하겠지만 참 짱짱하고 단아하게도 지었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히 보면 난간에도 이렇게 정교하게 구름과 호리병 무늬를 조각했다.

 

낙선재 마당에 있던 감나무마다 또 감이 얼마나 튼실하게 매달려 있던지 원. 잘 생긴 한옥집에 살 일은 아마도 요원하겠지만 혹시라도 다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나도 감나무를 꼭 심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사는 집앞에 있는 앵두나무도 시작은 버릴까말까 고민하던 작은 분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정전과 대조전 사진은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는데, 후원쪽으로 건너가면서 회랑 너머로 보이는 인정전 지붕이랑 원래 궁궐을 모두 감싸고 있었을 소나무가 나온 이 사진은 좀 괜찮은 것 같다. 옛날엔 내가 사진 찍은 자리도 그냥 마당이 아니라 빼곡하게 전각이 서 있었겠지... 

 

 

 

 

아래는 아마도 내의원이 있었다는 전각인 것 같다.  이날은 해설사 설명도 안 듣고 브로셔도 안들고 그냥 설렁설렁 돌아다녔는데, 떼를 지어 수첩과 볼펜 들고다니며 역사공부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어찌나 많은지 귓등으로 많은 정보를 얻기는 했으나 이미 다 까먹었다. ㅋ 암튼 누각과 단층 전각을 이어서 지은 이 건물 마음에 든다. 안에선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려나 심히 궁금.  

 

 

 

 

 

10월 중순이라 새파란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더 많긴 했지만 창덕궁 후원으로 넘어가니 조금씩 깊어가는 가을이 느껴졌다.  

 

역시나 가을의 손길이 제일 먼저 찾아온 곳은 애련지와 애련정 주변.

 

 

 

궁궐 전각들이 다 화려하고 근엄하긴 하지만 창덕궁에서 역시나 제일 마음에 드는 한옥을 꼽으라면 양반 사가를 그대로 궁에 옮겨놓았다는 연경당이 최고. 낙선재도 아담하고 예쁜데 한 군데 콕 집어서 살라고 하면 난 역시 사랑채 안채 별채 서재까지 다 갖춘 연경당을 택하겠다. ㅠ.ㅠ

 

 

특히나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난 작은 저 문.

옛날에 해설사한테 주워들은 가락을 옮겨보자면, 사랑채에 손님이 오면 안방마님이 하인들한테 굳이 묻지 않고 저 문으로 살짝 내다보아 사랑채 섬돌에 놓인 신발 켤레 수로 주안상을 준비한다나 뭐라나...

요새도 해설사가 연경당 안내할 때 그런 설명을 하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ㅎㅎ

 

암튼 단청 안 칠하고 적당히 낡고 바란 아담한 나무문과 문살이 참 예쁘지 아니한가. 

 

 

 

 

 

 

창덕궁의 가을은 작년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이쯤해두련다.  (2012. 10. 18)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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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쨋날은 호텔서 아침먹고 나서 오후까지 그야말로 자유로이 돌아다니다 공항가기 전에 일행과 만나면 끝. 일본 호텔의 뷔페식 아침밥은 맛이 없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열심히 미니 오븐에 빵을 데워 테이블로 갔더니 친구는 미소시루에 밥, 시사모 구이와 명란젓을 듬뿍 담아와 희색이 만면했다. LA에서 명란젓 얼마나 비싼 줄 아냐고, 시뻘겋고 짜디짠 것도 비싸서 못 사먹는다고, 이렇게 말갛게 신선한 명란젓 처음 본다고, 넘 맛있다고 흥분일색이었다. 나도 먹어보라고 권했으나 다시 일어나 밥푸고 자시고 하기 귀찮아.... 그러고 보니 이날 아침밥은 사진도 안남겼다. 원래도 먹거리 보면 숟가락질부터 하지, 사진부터 찍는 인간이 아니라 셋쨋날 쯤 되니 원래 하던대로 돌아간 듯.

 

전날밤부터 이날 하루 뭘하고 놀 것인가 지도와 안내책자를 보며 아침까지도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베르메르 때문

이었다. ㅜ,.ㅠ

첫날 다자이후시에 갔을 때 이미 포스터를 발견하고 희희낙락 자유일정 때 보러가야겠노라고 결심했으나 가이드에게 물으니 후쿠오카에서 다시 가려면 거리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도 뭣하고 택시로 가면 2, 3만엔은 나올 거라고...(택시비가 3,40만원이란 말이냐!)

 

왔다갔다 왕복시간도 정확히 알수 없는데다 기껏 박물관에 찾아갔다 해도 허겁지겁 그림을 보고 나오려면 내내 불안에 떨어야할 것 같았다. 나 혼자였다면 몰라도 그림에 별 관심없는 친구를 이끌고 모험을 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해서 결국 포기.

그런 나를 놀리듯 시내 곳곳엔 베르메르 그림 포스터가 저렇게 떡하니 붙어있었다. 흥! 나중에 네덜란드로 보러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포스터 영문사이트 주소를 보니 베를린 어쩌고 되어 있다. 저 그림은 베를린 박물관에 있나? +_+ 암튼... 아쉬운 베르메르와의 인연.

 

자유일정에서 여행사가 추천하는 장소는 대부분 캐널시티 쇼핑몰과 도심 백화점 주변, 하카타 역 쇼핑몰 따위였으나 나와 친구는 둘 다 쇼핑을 별로 안좋아하는 인종. 쇼핑이라면 이미 전날 밤 드넓은 무지 매장을 실컷 구경한 걸로 족했다. (아직도 무지 매장에서 본 검정색 통짜 원피스가 눈에 아른아른.. 그러나 칠부소매의 겨울 원피스를 내가 언제 어디에서 입으리! 안 사길 잘했지) 게다가 이미 마냥 걸어다니는 데는 질력이 나기도 한 상태.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유람선이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휘휘 구경을 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이었다. 허나 유람선은 야경 위주라 낮엔 탈 수도 없었는데다 시간도 몇번 되지 않았고 (어쩐지 전날 강에 배가 하나도 안 돌아다니더라;;) 시티투어도 하루에 딱 네번. 지정 정류장 아무데서나 타고 내릴 수는 있지만 표를 사려면 시청 로비까지 가야했다.  

 

지도를 보니 하핫, 우리가 전날 벤치에 앉아있던 공원이 바로 시청 뒤에 있는 텐진 중앙공원이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야...

(이러면서 전날 사진 재활용. 공원 잔디에서 놀이기구 같은 걸로 연습하던 남녀 학생이 인상적이었다)

 

 

목표는 11시에 출발하여 항구와 해변, 도시 외곽을 도는 파란색 노선의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었는데 아뿔싸, 내 앞에서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묻던 일본 아주머니가 단체 가이드였던 듯, 남은 표를 몽땅 사가버렸다. 로비에 먼저 도착한 건 우리였는데! 잠깐 안내판 보며 남은 표 열두장이라고 희희낙락 확인하는 사이에 흑... ㅠ.ㅠ 매표원이 안내판 11시 시간표에 매진 팻말을 붙여놓았다. 결국 우린 12시에 출발하는 빨간색 도심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또 다시 두 시간이나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의미. 에효.  여러 설문과 인증 끝에 한번에 15분간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시청 건물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너무도 날씨 화창한 밖으로 나섰다.

 

 

 

요즘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박스 모양이 대세인 일반 자동차들과 대단히 클래식한 느낌의 택시도 한 장 찍고...

(정말로 운전수가 차문 자동으로 열고 닫아주는지, 일본 택시 한번 타보고 싶어서 별로 멀지 않은 나중 집결지까지 타고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결사반대했다.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냐고,  멀지도 않은데... 그치만 얼마나 비싼가 한번 타보고 싶긴 하던데;; ㅋ)

 

도심이라 주변에 백화점들이 대거 몰려있다는 건 알지만 굳이 들어가보고 싶진 않았으나 걷다보니 다이마루 백화점 앞이었다.

 

역시나 깔끔한 건물 앞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의미 모를 곰돌이도 구경하고, 귀여운 하마 모자(혹은 부녀?)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큐슈 날씨는 제주도와 비슷하려니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어찌나 덥고 햇살이 뜨거운지 외투는 계속 벗어서 들고다녀야 했다.  

 

이날 돌아다니며 제일 예뻤던 꽃집 앞 화분들.

 

공연히 억울하게 시간을 허비하다 드디어 시티투어 버스에 오를 시간. 지정석인데 그나마 일찍 표를 끊은 터라 앞에서 둘쨋줄, 자리는 좋았다. 햇살이 뜨거워 그렇지 ^^;

 

그래도 관광용이니 가끔씩 영어 안내라도 해줄 줄 알았으나 그건 헛된 기대였다. 계속 일본말로만 뭐라뭐라 방송이 나왔으니, 우린 그저 지도를 보며 위치를 짐작하는 수밖에. 처음에 항구쪽 고가도로를 잠깐 달려 바다를 뵈준 다음엔 그나마 대부분 도심을 도는 거라 돌아다녀 본 곳이 많았다. ㅋ

 

겨우 50분 보는데 2천엔이나 하고, 배차간격이 너무 멀어 다시 탈 수도 없으니(그날 하루는 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도 계속 이용할 수 있다는듯;;) 그다지 추천할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항구와 해변쪽을 도는 노선을 탔더라면 볼 게 더 많았을까? 그야 모를 일.

 

어쨌거나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는 일본에서 길쭉한 버스가 좌회전을 할 때마다 왼쪽 끝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야트막한 가로수에 부딪칠 것 같다고 기겁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음. 

2층 버스에 앉아 선글라스와 외투로 햇빛을 가리다가 가끔씩 사진기를 들어올리고 난사한 사진 중에 그나마 두 장. ^^;  

저것은 분명 야자수렸다? 제주와 비슷한 위도임이 분명하다고 나 혼자 우겼음. 그리고 가끔씩 도로 모퉁이에 서 있는 저 동그란 시계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는 시계탑에도 이제 다 디지털 시계로 숫자만 나오지 않던가?

 

암튼 후쿠오카 도심에서 내게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물은 바로 이것. 

용적률을 엄청 포기하고 옥상을 계단식으로 한 뒤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 나는 그냥 휴식공간이려니 했는데 버스 타고 돌다보니 저 옥상 중앙쯤에 난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는 사람 발견!

 

경사면 쪽에서 보면 이렇게 생긴 건물이다. 버스투어 하며 지나다 찍은 사진이라 좀 멀다...

무슨 건물인지 나중에 지도 찾아봐야지 작정했었는데;; 아 글쎄 챙겨왔던 지도를 벌써 내다버렸지 뭔가.

사무실 건물이라면 공간을 거의 절반이나 포기하고 저렇게 꾸몄다는 건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첨부: 저 건물 이름은 아크로스 후쿠오카. 후쿠오카현 국제회관이 자리잡은 13층 건물이란다. 저 경사면은 텐진 중앙공원과 마주하고 있으며, 항시 개방되어 있는 계단 산책로와 에코 빌딩으로 유명하다고...) 

 

 

 

 

 

 

 

 

 

 

 

 

 

 

 

 

다시 시청앞으로 돌아가 빨간 2층버스에서 내려 해야할 일은 점심을 챙겨먹는 것. 일본에 왔으니 초밥을 먹을 것인가, 일본 카레를 먹을 것인가... 눈에 띄는 음식점마다 기웃거리다, 사람 많은 곳엘 가야 맛있다는 지론을 철썩같이 믿고 찾아다녀보았으나 도심에서 직장인들이 1시 넘어서까지 우글우글 밥을 먹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ㅋㅋㅋ

그러다 발견한 곳이 이 작은 우동집. 허름하고 작은데 뭔가 포스가 느껴진다고 자위하며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영어메뉴도 있음! 메뉴판과 그릇에서 '원조' 글씨를 발견하고 몹시 뿌듯해하며 메뉴 맨 위에 있는 우동을 시켰다. 좀 짜긴 했어도 퍽 맛있었음.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지만 왜 이리도 양이 적은 것이냐! 눈치를 보니 다른 남자들은 거의 다 사리를 덤으로 시켜먹더군. 그럼 그렇지. 이것만 먹고 어찌 한 끼라고 할 수 있으리.

 

(물병만 크게 나왔다고 친구한테 잔소리 들은 카운터 정면 사진. 우동은 아직 한 젓가락도 안 먹은 상태. 입 큰 사람은 두 젓가락으로 끝낼 수도 있겠다. ㅋ)

 

이왕이면 다른 다리로 강을 건너겠다며 좀 멀리 돌아 다시 캐널시티 쪽으로 돌아오다 다리 위에서 찍은 강의 합류지점. 별로 안 넓은데 사진엔 퍽이나 넓게 나왔다. 이러니 한강은 찍어놓으면 바다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가운데가 뻥 뚤린 캐널시티 쇼핑몰 건물은 한장도 안 찍어왔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각 시간대별로 있다는 음악분수도 꽤나 기대했다가 어찌나 미미하여 놀랐던지. ㅋㅋㅋ 그에 비하면 우리 동네 개천변에 있는 분수쇼가 더 장관이더라.

 

아래는 항구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인데, 처음 여행 계획할 때 염두에 두었던 카멜리아호가 부두에 정박해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부산에서 그 배타고 타고 9시간이나 와야했더라면 배안에서 아마 몸서리를 쳤을 듯.  전망대 올라가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유리창 격자무늬가 선명하게 나온 이 사진 괜스레 마음에 든다.

 

이후 시간 때우기는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지친 다리를 쉬러 카페에 들어가서 계속 개겼던가... 일본 슈크림은 달지 않다며 그래도 한번 먹어보자고 해서 슈크림 빵도 같이 사먹었던 건 기억 나고, 사흘만에 부쩍 늘어난 뱃살에 한숨 지었던 것도 생각난다. 많이 걸어다니면 뭐하나, 고열량 간식을 좀 많이 먹었어야지.. 밤마다 맥주에... ㅎㅎㅎ

 

 

애당초 2박3일은 너무 짧지 않겠느냐고 나흘짜리 여행상품을 알아보라던 친구에게 아쉬우냐고 물었더니 이미 일주일 이상 놀러다닌 느낌이라 흡족하다고 했으나,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나는 마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3박4일짜리 홋카이도 여행을 갈 걸 그랬나... -_-;

 

 

암튼 티웨이 항공은 처음 타보는 경험이었는데 퍽 흡족했다. 그래서 다들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겠지. 갈 때는 오렌지주스에 크라상 빵 하나 달랑 주기에 쳇, 외면하다 주스만 마셨는데 돌아올 때는 참치주먹밥이 나왔다. 배 안 고파서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게 친구가 외쳤다. 맛있어! 까불지 말고 먹어둬. (집에 와서 신라면 끓여먹을 생각에 좀 버텨보다 결국 나도

다 먹었는데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는지... 공항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치는 바람에 집에 9시도 훨씬 넘어 도착했다. ㅠ.ㅠ 물론 그 밤중에도 라면 두개 끓여 김치 한 포기와 함께 폭풍흡입을 안 한 건 아니지만서도).

 

여행 다녀오면 그 어느 때보다 튼실해진다는 진리는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세끼 다 찾아먹고 사이사이 간식까지 챙겨먹는 습관에 길들여진 위는 거의 한달이 다 된 요즘에야 원래로 돌아왔다. 여행자로 산다는 건 참... 심신이 즐거운 일이다.

 

 

(2012. 10. 16)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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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한번 더 온천욕을 즐길 사람을 위해 6시반부터 울린 모닝콜을 무시하고 우린 8시까지 내쳐 잤던 것 같다. 8시반에 아침 먹고 10시까지 모이라고 했던가... 암튼 아침형 인간인 친구 덕분에 상당히 여유롭게 아침 먹기 전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있었다.

 

 

이곳이 우리가 묵은 하나미즈키 료칸. 방 열쇠 나눠줄 때 보니깐 3층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앞에서 보니 2층이다. 뒤와 옆쪽으로 애매하게 건물이 더 연장되어 있는 듯.

 

일행 중에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온 모녀커플이 있었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어르신에겐 좀 고역이었겠으나 젊은 사람들은 이 정도 규모의 저렴한 료칸에 묵어도 정말 아무 문제 없겠다. 늙은이처럼 난 왜 점점 온천 료칸이 좋아지는 걸까나 ㅠ.ㅠ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골목엔 이따금씩 옛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다녔다. 남학생들은 진짜로 7, 80년대 우리가 입었던 깜장교복이고 여학생들은 세일러복.

대체 왜 죄다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한 온천 사진을 찍고 다니다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내가 자기들 사진을 찍는 줄 알았는지(사진기 방향으로 볼 때 절대로 카메라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비켜있는 게 아니었음;;) 그 자리에서 배시시 웃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뒤늦게라도 내가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담아왔다. 나 같으면 얼른 도망가고 말았을 텐데, 착하기도 하여라. 

 

 

 

 

 

 

 

 

 

 

 

 

한국인 관광객이 엄청 오는 곳인 듯.. 글씨체는 좀 이상할망정 표지판마다 한글이 있다. 이런 거 찍어오는 거 웃기다면서도 결국 찍어오고야 말았다는;;; 일본은 어디나 기복신앙의 공간이 정말 많은 듯. 온천 골목에도 떡하니 이런 집이 있었다. 절 같지도 않고 규모도 엄청 작던데;;; <연애성취> 글자만은 대번에 알아본 나는 이웃주민 지다니를 떠올렸다. 종이 하나 매다는 데 100엔(대략 천오백원)이라는데 저걸 매달아 걸면 정말 연애가 성취될까? ^^;;

 

 

료칸에서 먹은 이날의 아침식사. 먹을 거 별로 없는 호텔식 뷔페가 아니라서 좋았다. 저 뚜껑을 열면 달걀 프라이와 베이컨 한 조각이 지글지글 익고 있고, 하얀 스티로폼 통엔 낫또가 들었다. 청국장은 좋아하여도 내 낫또는 못 먹는 사람이건만, 친구가 화장실 성공을 기원하며 먹어야한다고 해서 꾸역꾸역 삼켰다. 김이 딱딱하고 창호지 같긴 했지만 그럭저럭 가벼운 조찬으로 딱이었다. 이래야 부담없이 간식을 사먹을 수 있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아침을 먹고 나서 가방을 싸가지고 내려온 우리는 근처 가마토 지옥을 둘러봤다. 분출되는 성분에 따라서 같은 집인데도 군데군데 온천 색깔이 막 다르고 온도가 800도라나 어쩧다나... 정말 지옥이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부글부글 끓는 온천수 나오는 샘을 한바퀴 돌아 구경한 뒤 온천 수증기로 찐 달걀 사먹고 족욕 한판하고 나왔다. 그런 온천 지옥 자산 가치가  엄청나다는데(몇백억이라고;;), 귀엽게 생긴 사장 아들이 담뱃불 붙여서 재 떨어뜨려가며 수증기 많이 나오는 모습 시연하고 있는 걸 보며, 우리가 중얼거렸다. 한국 같았으면 부자 사장 아들이 저런 시답잖은 안내 하고 있겠냐. 일본이니까 가능한 거지....  

두 사진이 같은 집이라는 것이 신기...

 

다음은 벳부의 마지막 코스 유노하나. 유황재배지라는데 아마 한 10분쯤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ㅋㅋㅋ

움집 같은데서 수분과 햇빛을 막아 유황결정을 오래오래 키우는 걸 '재배'라고 표현한 듯. 움막이 선사시대 움집같이 생긴 건 약간 관심을 끌었으나 꼬리꼬리한 유황냄새는 좀체 좋아할 수가 없다.  

흐리고 침침했던 전날 날씨와 달리 화창하고 푸르른 하늘과 눈부신 햇빛. 이런 가을날에야 어디를 데려가서 풀어놓아도 좋아라 했을 듯. ㅋ

 

이어지는 행선지는 유후인. 아기자기한 기념품점과 민예품 상점 늘어서 있는 거리라며 익히 들어본 적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뭐 내 생각엔 인사동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싶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민예품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낼 수 없고 싸구려 기념품은 조잡해! ㅋㅋㅋ

차라리 유후인 공부를 미리 했더라면 호숫가에 있다는 샤갈 박물관엘 가볼 것을.. 사진 찍으며 샤갈이라고 적힌 건물이 보이길래 카페인가보다 했더니만,나중에 여행책자를 보니 샤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물이 엄청 맑아서 뛰노는 물고기 비늘이 보인다는 호수는 전날 내린 비로 혼탁... 전날 비와서 혼탁하다는데 물은 또 왜 저리 적어보이는가? 

그래도 단풍 들었으면 호들갑 떨며 예뻐라 했겠다 중얼거리며 뒤돌아섰다. 호수로 이어지는 개울은 문득 선운사 올라가는 길을 연상시켰음. 여기도 단풍 들었으면 더 아름다웠겠지...

 

 

유후인의 특산 먹거리는 일본 전지역 출품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했다는 코로케. 역시나 가이드는 '너무' 맛있을 것을 기

대하지 말라고 귀띔했고,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였으나.... ㅋㅋㅋ 역시나 튀긴음식을 안좋아하는 우리에겐 심히 느끼했다. 고로케가 당연히 그렇지 뭘! 생선을 넣은 듯한 금상 고로케보다는 차라리 감자고로케가 난 더 나았던 듯.

 

사진은 금상 고로케였는지 감자 고로케였는지 모르겠다. 금방 튀겨내어 바삭바삭 따끈하긴 했는데;; 우린 이후 상점들은 보는둥 마는둥 '진한' 커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


유후인에서 내가 제일 신기하게 느꼈던 건 어느 집 담장에 철사로 만들어 세워놓은 자그마한 조형물들이었다. 아무렇게나 철사를 구부려놓은 것 같지만 죄다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새의 형상은 분명 예술가의 솜씨!

 

 

 

어렵사리 찾아낸 커피집에서 산 쓴 커피로 느글느글한 목구멍을 씻어내리며 버스에 오르고 보니 또 점심시간.

휴게소 같은 데 있는 대형 음식점에 주르륵 준비되어 있던 솥밥 우동정식을 먹었다.

튀김과 연어구이가 차갑기는 했으나 맛은 대체로 훌륭. 고로께는 언제 먹었냐 싶게 밥과 우동을 흡입했다. 앙증맞게 나온 사과랑 귤도 맛있었음.

 

이후 스케줄은 내가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관심이 없었던 아소산, 활화산 분화구 구경이었다. 그런데 아싸~! 날씨는 쾌청해도 바람이 거세 '로프웨이'(케이블카를 이렇게 부르는 듯;) 운행이 중단되었단다. 처음 나눠준 일정 안내에도 날씨에 따라 분화구를 못 보게 되면 화산 박물관으로 대체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이드 말이 말이 화산박물관이지 사진 몇장 보고 오래 된 영상물 보는 게 전부이니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 말이! 해서 화산 사진은 로프웨이 승강장 건물에서 대강 보고, 그곳 특산물이라는 요구르트 한 병씩 마신 뒤 후쿠오카로 향했다. 심지어 점심 때 먹은 것 같은 저녁을 또 단체로 먹느니 박물관 입장료랑 저녁값이랑 챙겨서 각자 돌려줄 터이니 자유로이 사먹으라는 가이드의 제안. 우리야 당연히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별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가이드가 융통성을 많이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버스 타고 이동거리를 최소로 하려고 일정 순서도 좀 바꾸고 보나마나 한 전망대 관람 같은 건 하나 쯤 슬쩍 빼먹고...  워낙에도 마지막날은 자유여행이었지만 사흘 간 절반쯤이 자유롭고 보니 우리에겐 더욱 금상첨화였다. 

 

결국 우리는 늦은 오후에 후쿠오카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나서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애당초 셋이 가려던 여행이라 숙소 때문에 여행사 직원과 여러번 통화를 해야했는데, 우린 방이 좁아도 당연히 셋이 묵겠다고 우겼으나 매번 불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었다. 트윈이 아니라 세미더블이 어떻고 저떻고....

암튼 결국 둘이 갔으니 문제는 해결됐지만, 호텔방에 올라가 본 우리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비즈니스호텔이라 방이 정말 비좁아서 트윈 침대를 들여놓을 데가 아예 없어! ㅋㅋㅋ

 

치산호텔 방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등뒤에 출입문이 있고 침대 발치에 벽처럼 있는 곳이 화장실. 욕조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야할 정도로 귀여운 크기에 변기에 앉으면 거의 문에 무릎이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엄청 깨끗해서 하룻밤 자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음.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고 우리는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다만...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호텔임이 좀;; ㅋ

그러고 보니 일본은 대체로 와이파이에 인색했다. 로밍은 해갔어도 데이터는 차단해뒀던 터라 와이파이 되는 데서만 신문물 검색이 가능했는데 도심 호텔에서도 와이파이가 안될 줄이야! 벳부 료칸에서도 와이파이 패스워드 알려주던데 쳇!

그래도 나에겐 제법 실한 눈썰미와 방향감각이 있겠다. 두려움에 떠는 친구를 호기롭게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포장마차촌에서 본토 오뎅도 먹게해주마.

 

강을 따라 저녁때만 나타난다는 포장마차촌을 향해 곧장 강을 건너니 벌써 어스름. 

 

 서서히 장사를 시작하려는 포장마차가 보이긴 했으나 본격 영업은 해가 져야 할 모양이라 우린 계속 강을 따라 걷다가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뭔가 문화재스러운 건물도 만나기도 하고, 다리를 두어번 건너 공원 벤치에 한참 앉았다가 돌아섰다.

 

 

 

 

 

호텔 바로 옆부터 '캐널시티'라고 어마어마한 쇼핑몰이 있던데 후쿠오카는 운하의 도시인 듯했다. 넓지 않은 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세 갈래였던가?) 도심에서 다리를 건너 조금 가면 또 다시 강줄기가 나왔다. 차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사람들만 건너다니는 다리가 있고... 다음날까지 다리를 몇개나 건너다녔는지 셀 수도 없다.

 

엄청 큰 물고기가 가끔 펄쩍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후쿠오카의 강에선 그런데 한강처럼 낚시질 하는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낚시는 금지인가? 하기야 한강에서도 낚시는 원래 금지됐는데 사람들이 몰래몰래 하는 거라고 들은 것도 같다. ^^;

 

강변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오다 드디어 일본에선 드물다는 포장마차 촌에서 오뎅을 사먹기는 했는데, 맛은 뭐 그저 그랬다. 내 입맛이 워낙 서민적이다보니 오뎅도 좀 구수하고 팅팅 불은 걸 선호하는데 (반면에 친구는 쫄깃한 걸 선호;;) 국물이 너무 짜고 달아서 새삼 일본이구나 싶었음.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포장마차 안주는 비싸니까 조심하라는 가이드 말은 이번에도 틀렸어! 고기 꼬치 파는 집은 비싼 집도 있었지만 우리가 먹은 오뎅집은 둘이 먹고 450엔. 한국 떡볶이 포장마차랑 비슷하구만 뭘;; 겁을 주고 그러시는지.

 

암튼 요기를 하긴 했어도 저녁식사로는 제대로 된 일본 라멘을 먹기로 결심했던 터라 캐널 시티에 모여 있다는 유명한 라면집을 찾아 올라갔다. 입구에서 자동 주문기로 먼저 돈을 내고 주문서를 뽑아야하는 데 그걸 몰라 어리바리 테이블에 앉았다가 다시 나와 시킨 라면은 그나마 제일 맵다는 것이었으나... ㅋㅋ 친구는 라면 면발이 아무리 생면이라도 꼬불거리지 않는 건 반칙이라며 느끼함에 괴로워했다. 돼지뼈 국물 라멘에 뭘 기대하셨나요 ㅎㅎㅎ

 

교자랑 세트로 나오는 걸 시켰으니 망정이지 양이 하도 적어 미리 오뎅 안 먹었으면 배고파서 화났을지도...

 

 

암튼 시내 거리를 쏘다니다 엄청 비싼 과일집에서 발견한 네모난 수박  구경과 편의점에서 일본맥주 쇼핑을 끝으로 둘쨋날도 끝이 났다. 

 

나야 가끔씩 버스타고 나다니기나 하지, 새벽부터 종일 12시간(동부와의 시차 때문에 6시에 출근한단다 헐;;;) 근무에 시달리는 은행 간부인 친구는 여행 이틀만에 고백했다. 석달치 걸을 거 여기 와서 다 걸은 것 같다고. 12센티미터나 되는 통굽 슬리퍼를 용감하게 신고 일본 여행 오겠다는 걸(인천공항엔 맨발에 그걸 신고 내렸었다)  내가 극구 말려 운동화를 신게 했었는데  운동화 안 신었음 어쩔 뻔 했누 ㅎㅎㅎ

 

(2012. 10. 15)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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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본, 북큐슈

놀잇감 2012. 11. 6. 21:00

한두달전에 시작만 해두고 버려둔, 밀린 포스팅 마무리를 먼저 해야하나 생각하니, 10월 여행기는 그럼 내년에나 쓰게 되거나 아예 집어치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시작한다. 이번 가을의 우울함은 사진이나 들여다보며 넘겨볼 요량으로.

 

 

친구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이번에도 은근히 제주도 카드를 내보았지만, 오래 전 '고국방문단 제주관광 패키지'에 크게 덴 친구는 차라리 일본엘 가자고 했다. 배 타고 일본에 가는 거 있다며?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일본라멘이랑 우동도 먹고... 다 하자! 그래 까짓것, 우리도 라멘과 우동 먹으러 일본 가는 사치 좀 떨어보지 뭐,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 셋이 가기로 했던 여행은 둘로, 배 타고 가는 여행은 시간 아까워서 포기, 여행지는 큐슈로 정해졌다. 마지막날 자유일정이 포함된 패키지 여행의 가격은 지난번 엄마랑 갔을 때의 딱 절반. +_+ 저가항공사로 가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잠자리와 먹는 게 심히 부실하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만족! 융통성 있고 기동력 있는 여행이라 패키지의 폐해는 크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닐 수도 있다는 좋은 예. 

 

김포공항에서도 일본 가는 패키지 많던데 우린 이번에도 인천공항 출발. 저가항공사 터미널이 따로 멀리 있는지 난생처음 공항에서 셔틀 트레인도 타보았다. 딱 지하철 같은 느낌인데, 객차 수가 당연히 훨씬 적다. 셔틀 트레인 이용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 5분마다 하나씩 다닌다는데 매번 꽉꽉 차서 다니더군. 러시아워 때 지하철 타본 게 너무도 오래전 일이라, 줄서서 우르르 몰려 타고 또 우르르 내려 우르르 느릿느릿 줄지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광경이 딱 그 느낌이었다. 촌스럽게도 신기해하며 사진도 찍었으나 제대로 나온 건 없음.

 

10시 좀 넘어 날아올라 1시간 20분 만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도 일사천리. 전용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곧장 그리 멀지 않은 다자이후 시로 향했다.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텐만궁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입시철을 앞두고 관광객보다 일본 현지인들이 엄청 더 많은 듯했다. 마침 일요일이기도 해서 아이들 데리고 가족 나들이 온 일본인들이 드글드글...

 

입구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다 보니 일본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을 한 탁발승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일본어를 모르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스님들은 염불하는 목소리도 톤이 각기 다르고 좀 개성이 있는 반면, 일본 스님들은 하나같이 염불소리가 똑같은 것 같다. 암튼.. 발가락 갈라진 버선과 납작한 신발까지 완비한 차림이었는데 민망해서 좀 더 가까이 가서 찍진 못하겠더라. 여기가 일본이구나 느꼈던 첫 광경.

 

 

 

 

 

 

 

 

 

 

 

 

 

 

 

 

 

한옥도 집 크기에 비해 지붕과 기와 무게가 엄청나다고 하는데, 일본 전통 건축물은 그 느낌이 더 한 것 같다. 지붕이 건물의 절반을 훨씬 넘어! 큐슈 지방의 특징인지 기와가 아니라 나무를 잘게 쪼개 뭉쳐놓은 것 같은 지붕 재질도 신기했다. 건물 정면엔 마당 너머까지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건물 뒤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뭘 그렇게 빌 게 많은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뭇조각들. 저런 나무떼기 말고도 신사마다 흔히 묶어놓는 종이 부적도 많았다.

 

이 관광지에 딸린 식당에서 우동정식으로 조촐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나선 널널하게 오후에 관광지 하나 더 보고 벳부 온천 료칸에 투숙하는 것이 첫날 일정. 시간도 많겠다 구석구석

산책하듯 돌아보다 전통 옷을 입은 귀여운 아이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재수굿 하듯이 일본 사람들은 나이대 별로 여기 와서 무슨 의식을 치른다는 것 같다. 가이드 설명도 맨 뒤에서 귓등으로 듣는둥 마는둥 해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암튼 부모들도 아이들도 곱게 전통의상으로 차려입고 제법 거창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공간도 있었다. 민망해서 좀 더 가까이 찍지 못해 상당히 어정쩡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암튼 아이 본인과 부모에게 사진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았다. ㅋ

애들은 뭘 입혀놔도 귀엽지만, 무채색으로 된 전통의상을 입혀놓으니 뭔가 더 엄숙하게 느껴지면서 사랑스럽다. 한복으로 치면 양반네 도령복장 쯤 되려나?

 

 

 

암튼, 이곳의 특산물은 따뜻한 찹살떡이라는데 점심먹은 집에서 하나씩 나눠주어 맛이나 보겠다고 한 입 깨물고는 슬며시 가방에 넣었다가 나중에 버렸다. 팥소가 든 찹쌀떡을 기름에 드글드글 굴려놓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친구는 일본식 오뎅을 꼭 먹어야겠다고 해서 문어맛으로 하나 샀는데 식감이 한국 오뎅에 비해서 엄청 쫄깃했으나 역시나 튀긴 음식이다보니 느끼했다.

둘이 동시에 커피가 필요하다고 외쳐댔다.

 

 

그러고는 이미 올라가면서 봐둔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의미가 있을 법한 인테리어가 독특했던 텐만궁 앞 별다방과 그 몇 집 건너에 있던 기념품점. 

 

커피값은 환율 따져보면 거기나 여기나 비슷했던 것 같은데 유독 컵이 작았다. 커피 인심 후한 미쿡에서 온 친구는 종이컵 만한 커피가 신기하다며 깔깔깔. 사진도 찍어 남겼으나 괜히 자기 얼굴만 커보이는 것 같다고 삭제를 요구했다. ㅎㅎ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키츠키 성하마을>. 큐슈의 '작은 교토'라던데 교토엘 안가봤으니 알 턱이 있나. 내 느낌으론 황토를 바른 담장이며 잘 생긴 전통가옥들이 모여 있는 모양새가 안동 하회마을과 비슷한 것 같았다.(다행히 이 다음주에 안동엘 다녀와 비교 가능 ^^;)  

 

 

 

지금 생각해보니 꽤나 한적한 마을 풍경도, 공개해둔 공간이 있고 못 들어가게 해둔 공간이 있는 것도 하회마을이랑 비슷했군.

 

난 저 언덕을 내려가 마을 반대편 집들도 구경하고싶었으나 친구가 말렸다. 너무 가팔라! 시간 안에 못 돌아오면 어쩌려구! +_+

패키지 여행의 폐해는 뭐니뭐니해도 가이드 마음대로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 거기 가서 봐도 다 똑같아요... 라고 가이드도 말했지만 장담컨대 가이드는 저 반대쪽까지 한번도 안 가봤을 것이다.

 

얼핏 들은 바로는 에도시대 무사들의 저택이 모여 있던 곳이라는 듯하다. 주택의 구조도 재작년에 본 무사의 집과 똑같은 느낌. 공개된 저택의 경우에도 절대 마루나 실내엔 올라가지 말라고  가이드는 신신당부했지만, 막상 집안엔 친절하게 한글로 '신을 벗고 올라오세요'라고 적혀 있었다규~!

 

여유만 있다면 무사의 저택에서 차도 한 잔 시켜 마실 수 있게 해놨던데, 친구와 내가 녹차를 별로 안좋아해서 그냥 나왔다. ㅋ

 

 

 

 

 늘 약속시간보다 집결지에 한참이나 일찍가야 마음을 놓는 친구 덕분에 나는 주차장 주변 꽃이나 찍으러 돌아다녔다... 코스모스와 금잔화는 알겠는데 마지막 꽃은 난생 처음 보는 듯;; 전투적인 새나 곤충처럼 생겼다. ^^

 

 

버스타고 좀 가다가 "저기 보이는 게 벳부만입니다!"라는 소리에 여러 장 난사하였으나 결과는 신통찮다.

그래도... 군데군데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는 온천의 수증기가 보이는 것으로 만족. 날이 흐려서라나 뭐라나 온천에서 뽐어나오는 수증기가 이날따라 좀 덜하다고 했다. 심할때는 시가지 전체가 자욱하다고.

 

벳부에서도 물이 제일 좋은 골목이라고 가이드가 극구 자랑하던(그 말이 맞는 것 같긴했다. 유명한 'OO지옥'이라 이름붙은 온천이 주변에 죄다 몰려있었음) 숙소는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복층 건물이긴 했지만 진짜 전통료칸을 리노베이션한 느낌? 방이며 계단, 온천탕까지 얼마나 작고 앙증맞은지 귀여울 정도였다.

 

금방 물청소를 했는지 맨발 벗고 다녀도 되겠다고 친구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골목도 그렇고 료칸자체도 그렇고 정말 깨끗 깨끗. 게다가 료칸 주인은 한국인 아주머니였고, 친구는 김치 인심 후하겠다고 아주 좋아라했다. 

유타카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저녁은 두유 샤브샤브. 콩국물을 끓이면서 고기와 야채를 먹다보면 순두부가 만들어지는 원리란다. 뷔페식으로 마련된 샐러드와 밑반찬, 그리고 푸짐한 김치(!) 때문에 일행들 모두 행복하게 밥을 먹었다.

나 역시 지난번 엄마랑 여행했을 때 저녁마다 먹은 가이세키 정식보다 훨씬 좋았다.

 

점심 먹을 때만해도 일본 아줌마들이 이래서 날씬하구나 깨달았다던 사람들은 또 다시 한국식으로 배터지게 저녁을 먹고나서 각자 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온천을 즐길 시간...

 

방에 올라오니 어김없이 다녀간 우렁각시가 테이블을 치우고 깔아놓은 이부자리. 이불을 저렇게 말아놓아 섬뜩한 느낌이라고 해서 내가 얼른 펴놓았다. ^^; 완전 폭신폭신 아늑하여라~

 

그러나 온천욕을 하기 전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료칸 냉장고엔 물 한 병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우린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마트를 찾아 나섰다. 물도 사고 일본 맥주를 마셔줘야햇!

약간 언덕길이라 올라올 때 힘들 거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린 방에 올라가 양말 가져오는 게 귀찮아서 운동화를 포기하고 '게다'를 신고 따각따각 골목길을 나섰다.

ㅠ.ㅠ 현지인이 말리면 역시나 그 말을 들어야 한다니까...

 

마트까진 한 20분 걸어야하는 거리. 나야 워낙 여름마다'쪼리'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친구는 아니나 다를까 발가락 사이가 아프다며 퍽이나 괴로워했다. 나 역시 굽이 높아도 푹신한 생고무 쪼리는 신어봤어도 쿠션이 전혀 없는 나무바닥 쪼리는 처음인지라 언덕 막바지엔 좀 힘이 들었다. 다행히도 중간에 족욕장이 있어서 쉬어가기로 한 건 좋았는데 물이 어찌나 뜨거운지! ㅠ.ㅠ 수증기 나오는 나무통에 다리를 넣고에 족욕하는 곳도 따뜻한 돌에 발을 올려두는 신기한 족욕체험도 있었으나... 혹시나 서툴게 작동하다 델까봐 뜨거운 온천물에만 발을 담갔다가 돌아왔다. 우리는 너무 뜨거워서 30초를 다 못 담그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 관광객들은 막 젊은 부모가 어린 아기 발도 같이 담그고 있는데도 아기가 전혀 울지 않았다. +_+ 체질이 달랐던 걸까... ㅎㅎㅎ 하여간 신기한 경험.

 

규모가 큰 료칸엔 온천탕이 있어도 방마다 욕조와 샤워시설이 있던데 여긴 세면대 뿐, 씻는 건 무조건 온천탕으로 내려가야 했다. 수도꼭지가 다 해야 열개도 안 되는 정말 앙증맞은 목욕탕엔 그래도 노천탕도 있었음. 후딱 온천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와선 피부가 매끈하네 마네 온천물 타령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일본 말 몰라서 새우깡 오리지널 맛인줄 알고 사왔던 밍밍하고 비린 과자 안주가 에러이긴 했지만, 온천 뒤끝엔 맥주 한 캔으로도 금세 취기가.... ㅋㅋ

 

별 얘기 없으니 여행기를 한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역시 안되겠다. 그리하여 첫날 일정 여기서 끝.

 

(2012. 10. 14)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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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인 것 같다. 덕수궁에서 한국근대미술 전시회가 열렸을 때, 유독 설명이 소상하고 정성스러웠던 도슨트가 이인성 화백의 그림 앞에서 말했다. 2012년이 탄생 100주년이니 아마도 조만간 대규모 회고전이 기획될 것이라고. 그 말대로 올해 5월부터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고, 나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맙소사, 석달 내내 벼르다 또 다시 끝나기 며칠 전에 겨우 다녀왔다. 입장료도 안받는 이런 무료 전시회는 미리미리 다녀와서 사방에 광고 하고 그래야하는데 쩝...  그나마 이인성 회고전 말고도, 2층에선 <꿈과 시>라는 주제로 근대미술 기획전시도 하고 있는데 그건 12월 2일까지라는 데서 위안을 삼아야겠다. 역시나 무료. 덕수궁 입장료 천원만 내고 들어가면 된다.

 

 

 

<계산동 성당>, <해당화>, <카이유>, <소녀> 같이 전에 본 적 있어 반가운 그림도 있었고 난생 처음 보는 그림과 소장품들도 많았다. 유화와 수채화만 그린줄 알았더니만 특히나 수묵담채화도 그렸더군! 그간 나는 이인성의 그림을 예뻐서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번에 모아놓은 그림들을 돌아보니 어쩌면 뭔가 많이 익숙한 느낌이라 좋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속적인 인물화에서는 고갱의 화풍이 느껴지고, 해바라기 정물화에선 당연히 고흐가 떠올랐으며, 풍경화 몇점에선 언뜻 샤갈이나 마티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미술상에서 도안과 수채화를 배워 전시회에 출품해 척척 입선을 했다니 천재가 틀림없다.

 

 

이인성, [가을 어느날] 1934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鄕. 3, 40년대 문화예술계에서 워낙 조선의 향토성이 활발히 다루어졌대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선 아예 향토색을 심사기준의 하나로 강조했다지만 대구 출신의 이인성은 꾸준히 조선의 향토색과 한국적인 정서를 서양의 화풍과 기법에 접목했던 듯하다.

 

왼쪽은 타히티 여인들을 그린 고갱의 그림과 종종 비교되는 <가을 어느날>. 이 작품도 조선미술전람회 수상작이란다. 일제시대 관제미술의 수혜자였으므로  당연히 친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한데, 식민지 백성으로서 별다른 부와 배경 없이 남다른 재능을 펼치려면 일단 널리 인정받는 수밖에 더 있었겠냐고 설명했던 2년전 도슨트의 이야기에 나도 수긍했었다. 다만 그림 구석구석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놓여 있는 갖가지 소재들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시장엔 이인성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각종 자료와 그림엽서,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도  나처럼 참 열심히도 명화 엽서를 사모았다는 사실에 괜스레 흐뭇했다. 물론 나야 한동안 구경하다 서랍속에 넣어두고 끝이지만, 이인성은 엽서 그림으로 서양의 화풍을 배우고 참고해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반영했다고. 그래서 작품의 화풍이 다양하게 느껴진 것 같다. 모르긴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지 않았을까?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언뜻보고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여름 실내에서>. 

이인성 [여름 실내에서] 1934

단순히 붉은 빛깔의 인테리어와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 때문일텐데, 나만 비슷하고 느끼는지 다른 사람들도 뭔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두 사람의 활동시기가 얼핏 겹치니까 혹시라도 일본 체류시절 교류의 가능성이 있을까나? 하지만 <붉은 실내>는 1948년 작품이라, 이인성이 이 그림을 훨씬 먼저 그렸다. 괜히 나 혼자 소설 쓰고 앉았는 것일지도... 어쨌거나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 화백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아오... ㅎㅎ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카이유>나 <계산동 성당>은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그림인데도 정겹고 참 좋다. 저 성당 앞 감나무가 아직도 있어 여전히 '이인성 감나무'라 칭한다는데, 진짜로 어떤 모습일지 대구에 가게 되면 꼭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은지 수년째, 대구는 기차타고 지나가보기만 했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때문인지 요번에 처음 본 <이화 교정>이나 <아리랑 고개> 그림은 나도 좀 지나다녀 본 언덕이라 슬며시 반가워 유심히 더 오래 구경했다. 

 

 

 

 

 

대체로 작은 크기의 그림들 사이에서 <가을 어느날>과 <해당화>는 꽤 큰 작품이라 이번에도 두드러져 보였는데 나의 착각인지 예전에 뭔가 오류가 있었는지  <해당화>가 '개인소장'이라고 되어있어서 살짝 의아했다. 지난번 기획전시때 본 <해당화>에는 분명 '삼성 리움 미술관 소장'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미술품 가운데 대작은 다 삼성이 갖고 있군, 하며 코웃음을 쳤었는데... 어찌된 것일까나. ㅋㅋ 어쨌거나 언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개인소장품들을 더 열심히 오래오래 감상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섰다.

 

덕수궁 미술관 2층 전시실에선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을 비롯해 유명한 한국 근대서양화가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지호의 <남향집>도! ^^; 사실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상설로 순회전시를 하고 있으니 만나기 어렵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볼 때마다 흐뭇한 걸 어쩌라고... 

 

오지호 [남향집] 1939

화가의 딸이라는 빨간옷 소녀와 햇살 받으며 졸고 있는 하얀 강아지, 청보라색으로 표현된 나무그림자까지 정겹고 사랑스럽다. 이른바 '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작'이라고 소싯적부터 교과서를 달달 외던 시절부터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인상파 편향적인 나의 그림 취향은 참 오래도록 변할줄을 모른다. ㅋ

 

<남향집>외에도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던 화가와 작품들이 꽤 눈에 띄며, 작품 사이사이에 이상과 윤동주 등의 싯구절을 적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근대는 암울한 일제강점기지만 그 시절에도 예술은 꽃피고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분명 이 땅에선 황금시절이 아니었겠지만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도 퍽이나 매력적인 것 같다. (엇, 이런 발언 위험한가?) 이런 상상은 아마도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향인듯. 

 

 

 

 

 

 

 

 

 

궁궐 안 마당에 군데군데 서 있는 이인성 전시회 배너 가운데서 <카이유>를 찍어가지고 나오려니, 대한문 바로 옆에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에서는 쉰 목소리로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가롭게 전시회나 보러다니는 게 조금 찔렸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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