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해당되는 글 136건

  1. 2015.03.19 새벽 커피 3
  2. 2015.03.05 이케아 5
  3. 2015.01.20 류큐의 바람 1
  4. 2014.11.07 4
  5. 2014.08.04 DDP 간송문화전 5
  6. 2014.07.29 드라마 잡담 2
  7. 2014.07.18 또 잉여짓 10
  8. 2014.07.15 등산이 뭔지 10
  9. 2014.05.21 마고자 금단추 11
  10. 2014.04.13 수양벚꽃 8

새벽 커피

투덜일기 2015. 3. 19. 05:46

어릴 때 모기에 물리면 집에선 주로 물파스를 발라주었는데, 물리자마자 바로 바르면 모를까 자면서 이미 한참이나 긁어버려 새빨갛게 부풀어오른 다음 날 즈음엔 물파스를 발라도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괜히 자주색으로 변했다가 시커멓게 변하기나 할 뿐. 그래서 대신에 나는 전해들은 '민간요법'(?)을 더 선호했다. 모기 물린데를 손톱으로 꾹 눌러 열십자로 자국을 남기는 거다. 아픔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손톱으로 꽉 누르다 보면 통증 때문에 가려운 느낌이 가려지는 효과랄까. 특히 모기나 벌레가 침을 꽂은 바로 그곳을 정확하게 열십자의 한가운데로 눌러줘야 효과가 직방이라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피를 내기도 했지만...


넘어지거나 찢겨서 어딘가 피가 나고 아플 때도 지혈을 핑계로 상처 부분을 모질게 꽉 누른 적도 있는 걸 보면 꽤나 자학성향이 있는 건가 싶다. 이 새벽에 위가 부은 듯 더부룩하고 쓰라린데도 굳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커피를 넘기며, 이 또한 벌레 물린 데를 손톱으로 지져대거나 상처를 더 짓누르는 과거의 행동과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대체 커피를 언제 마시란 말인가! 빈 속에도 마시지 마라. 밥먹자마자 바로 마시는 것도 미친 짓이다. 수면의 질을 위해선 늦은 오후에도, 잠자리 직전에도 마시지 마라.... 쳇... 


따지자면 지금 마시는 새벽 커피는 내겐 잠들기 전 너무 늦게 마시는 커피에 해당할 테고, 어제 날이 꿀꿀했던 관계로 적정 카페인 양(원두커피로 두 잔)은 이미 넘어버렸으니 어쩌면 아예 잠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성난 위는 더 아플 테고, 요즘들어 종종 말썽을 부리는 무릎도 더 아플테고 날카로운 신경에 더 까칠해질 테고.... ㅋㅋ 매사에 미리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보다 제풀에 지치고 마는 버릇대로 이미 다 결과를 예상했으면서도 결국 커피를 선택했으니, 결론은 아마도 내가 참 청개구리라는 것? 빈속에 찌르르 느껴지는 카페인의 자극(물론 나의 상상이겠지만;;)과 쾌감이 나빠봤자 설마 애연가들의 새벽 담배만큼 하랴,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려나 이 커피 맛있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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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투덜일기 2015. 3. 5. 17:09

아시아 최대규모라던가 세계 최대규모라던가 암튼 엄청 크다는.... 그리고 여러가지로 말도 많고 탓도 많아서 한번 가볼까 하던 마음도 움츠러들게 했던 이케아에 드디어 구경을 갔었다. 광명 사는 친구가 자기도 아직 안 가봤다며 겸사겸사 얼굴한번 보자고 해서, 딱히 뭘 사려던 것도 아닌데 (게다가 '들이기와 버리기 원칙'을 계속 고수하려면 쇼핑 전에 뭘 버릴지부터 결정해야 한다규~!) 그냥 구경만 하자, 싶었다. 

 

평일 오전(11시쯤)이라 주차장도 여유롭고 식당도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잠도 잘 못자고 거의 눈뜨자마자 달려간 터라 일단 배고픔부터 해결하자고 내가 극구 주장했는데, 얼핏 가격대비 꽤나 훌륭하다고 들었던 건 순전히 '가용비' 차원. 메뉴는 엄청나게 단순해서 뭘 다양하게 골라먹는 건 불가능했다. 끼니가 될 만한 건 김치볶음밥, 파스타, 미트볼, 연어라자냐, 넷 중 하나를 골라먹는 게 전부. 푸성귀를 플라스틱에 담아놓거나 접시에 포장해놓은 연어 샐러드도 있긴 했다. 볶음밥과 파스타가 단돈 2900원이고 맛도 뭐 그럭저럭 먹을 만하니 다들 '괜찮다'고 할 수밖에. ^^; 그러나 식판 카트 밀면서 계산하려고 줄 서 있는 사이 금방 식어버리고 어리바리 커피는 어떻게 마셔야 하나 고민하느라(계산대 앞에서 커피 머그잔이나 음료수 잔을 직접 꺼내 올려 놓으면 계산되는 방식) 방황했더니 자리 잡고 밥 먹을 땐 이미 지쳐서 쇼핑 의욕이 상실되었다. ㅋㅋ

 

난 역시나 드넓은 초대형 매장 돌아다니는 것도, 이것저것 오래 구경하며 쇼핑하는 것도 싫어하는 게으름뱅이. 그건 일행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가자마자 식당 테이블에서 주로 수다떨며 시간을 보냈고(근 2시간 가까이!), 천원짜리 무한리필 커피치고는 맛도 제법 괜찮다, 근데 잔은 너무 작다 그러면서 귀찮아서 두잔씩밖에 커피도 안마셨다. 커피도 천원 생수도 천원. 식당에선 물이 제일 비싸네, 그런 말도  했던 듯.

 

이케아 방문을 앞두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와 달리 친구는 그래도 몇 가지 쇼핑품목을 생각했던 모양인데, 아우 고르기 어려워라... 인기품목은 이미 품절이 많고, 쇼룸에서 본 물건의 제품명과 품목 번호를 적어야 한다는데 이케아 연필도둑 소동 때문이었는지 메모지와 연필은 사라지고 없었다. 휴대폰 앱이나 카탈로그로 표시해야한다는 듯. 아 귀찮아...

 

해서 친구는 그냥 생활용품 쌓아놓고 진열하는 곳에서 수납함이니 베갯속이니 이불이니 하는 것들 몇개 카트에 주워담았고, 나는 수첩과 학용품 파는 곳에서 눈이 홱 뒤집혀 이것저것 오래 만지작거리다가 (책상 서랍에 새 공책이랑 수첩 많잖아!!) 다행히 죄다 제자리에 돌려놓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 그래도 민짜 수첩이랑 노트랑, 클립이랑 누런 포장지 중엔 마음에 드는 게 꽤 있었음. ㅎㅎㅎ

 

아무리 살 마음이 없어도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 하는 심정으로 내가 고른 건 천원짜리 분홍색 플라스틱 휴지통과 3개에 단돈 1900원인 코르크 냄비받침. 아싸 득템일세. ^^; 이케아는 국내 가구업체에서 걱정했던 것만큼 가구공룡이 아니라 그 외 생필품 시장에 더 타격을 줄 것 같다는 분석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친구도 책꽂이 하나 살까 눈여겨보다가 막상 낑낑대고 상자 옮겨가 조립할 생각 하니 사기 싫어졌다나. 국내 가구 사면 무료배송에 조립까지 다 해주는데! ㅋㅋㅋ 대신에 수건이 싸고 질 좋다면서 막 10개씩 구입..

 

째뜬 이케아가 왜 전세계적으로 장사가 잘되는지 알 것 같았다. 뭔가 가격대비 물건이 쌔끈한 느낌! 똑같은 플라스틱 수납함인데도 다이소나 모던하우스 같은데서 보던 저렴이들보다 만듦새가 깔끔하고 마무리가 잘 된 느낌이고, 색깔도 덜 촌스럽다고나 할까. 하기야 뭐 나도 몇년전에 이미 이케아 플라스틱 의자는 작업실 용으로 사서 써봐서 안다. 이번에도 3만3천원짜리 등나무의자가 어찌나 사고 싶던지  ^^;

 


내가 잠시 탐냈던 의자;; 근데 놓을 데가 없다!

친구는 첫 방문이니 애써 쇼핑을 자제하면서도 흰색 5단 책꽂이가 썩 마음에드는 게 있다며 나중에 내가 가서 조립해준다는 약속만 한다면 사다놓겠다고도 했다. 그밖에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는 스툴 같은 건 죄다 품절. 인터넷으로 입고 여부를 알아놓을 터이니 한번 더 가자나. ㅋ 내가 그러겠다고 하면 가구상자나 무거운 물건 옮기는데 유용할 것 같은 캐리어도 같이 살 태세!

 

집에 돌아와 닦아도 도무지 때깔이 안나는 오래된 플라스틱 휴지통 하나를 버리기로 하고 샛분홍(색이 너무 튀어서 살까말까 고민하다 에라이 천원인데 뭐;; 그랬다 ^^;) 휴지통을 엄마 방구석에 놓아드리니 매장에서 볼 때보다 색감이 더 나은 것 같았다. 냄비받침 3개 대신엔 딱히 버릴 게 없어서 알량하게 플라스틱 아이스크림 숟가락이랑 화분받침을 버릴 작정. 과연 조만간 이케아를 또 가게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가게된다면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좌악~ 해보고 합리적인 동선을 짜야겠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가긴 갈 모양인가...

 

하여간에 매장을 돌아다닌 건 1시간도 안되는데 급피곤해져, 집에 와 오곡밥 하고 보름 나물 볶는데 힘들어서 혼이 났다. 3, 4시간 꼼꼼하게 돌아다니고 무거운 물건박스까지 옮겨 싣고 올라믄 아줌마필수 체력부터 챙겨야할 듯. 그것이 첫 이케아 방문의 소감이다. 미리 배를 채우고 가는 건 필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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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바람

놀잇감 2015. 1. 20. 15:12

경복궁 옆 고궁박물관에서 2월 8일까지 <류큐 왕국의 보물>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관련 공연이며 교육이 꽤 알차다. 류큐 왕국이란 ^^; 옛날에 '유구국'이라고 해서 조선, 중국과 교류한 역사도 꽤 길고 일본과는 별개의 나라였던, 현재 오키나와 섬에 존재했던 왕국을 말한다.
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역사박물관, 고궁박물관 중에서 안내책자와 전시 도록, 팸플릿의 질도 항상 고궁박물관이 최고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는데, 가만 보면 기획 전시내용도 거의 늘 알차고 훌륭하다. 안내책자나 브로셔의 글귀나 오타만 봐도 보유인력의 자질을 알수있는 법이 아닌가! 게다가 매번 공짜! (프란치스코 교황 내한 기념으로 했던 <천국의 문> 전시는 예외로 유료였다. 수녀님들을 비롯해 천주교신자들이 엄청 구경오던데 워낙 비싸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 오가면서도 안봤다. 혹시 기회되면 나중에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규~ -_-;) 고궁박물관 조직 자체가 탄탄한 건지, 뛰어난 학예사와 직원들을 잘 뽑은건지 갈 때마다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암튼 요번에 본 공연은 오키나와 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류큐 왕국의 보물> 전시와 연계해 류큐 왕국의 고전무용과 노래를 소개하는 자리. 이름하여 <류큐의 바람>이다. 고궁박물관 별관에서 17일과 18일 양일간 3회 공연을 하던데(부산에서도 공연 1번 하더라마는;;), 마침  주말에 경복궁에 갈 일이 있어서 맘먹고 구경했다. 오키나와는 내가 몇년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다. 갇혀있는 물고기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라는 추라우미 수족관을 꼭 보고 싶어서리... (그렇게 들먹들먹하고 있는데 작년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사랑이네가 구경가질 않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랑 공효진이 코끼리 바위엘 막 찾아가질 않나;; TV에서 펌프질을 막 하더군)  

이렇게 선망을 갖고 있으면 결국에는 조만간 저지르지 싶어서, 미리 공부(?)도 할 겸 연말에 경복궁 봉사 나간 날 짬내서 류큐 왕국 전시회를 둘러보았고 공연이며 특별교육 프로그램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ㅎㅎ <류큐의 바람: 오키나와의 춤과 노래>이라는 제목으로 여러가지 고전무용과 창작무용, 노래까지 보여준 공연은 생각보다 좋았다. 무료인 대신 선착순 입장이라고 해서 30분이나 일찍 갔는데도 앞자리는 죄다 관계자석이란 종이 붙여놓은 게 불만이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이 어린 아이들부터 챙겨서 차곡차곡 앞쪽 내빈석 빈자리로 옮겨주고 일일이 동선을 안내해주고 그랬다. 대체로 공무원들은 좀 싸가지가 없고 고자세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편인데, (계약직인지 아닌지 몰라도 다른 국립 및 시립 박물관 가봐도 직원들이 야박하게 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 선입견이 가끔 고궁박물관에 가서 깨진다. 아주 좋은 예. ㅎㅎ 

1시간 반에 달하는 공연은 앞부분의 궁중무용 순서때 하도 정적이고 조용해서 좀 졸리려고 했으나(한국이나 일본이나 궁중무용과 음악은 느릿느릿 움직임도 정적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좋게 말하면 우아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맥빠진다. ㅎㅎ 왕앞에서는 암살 위험 때문에 함부로 역동적인 동작이 담긴 춤을 출 수 없다는 듯;;) 후반부에선 활기찬 창작무용과 노동요 등이 있어 확실히 시끌시끌 신명나고 유머가 넘쳤다. 아싸~ 아싸~ 하는 추임새가 일본에서 온 것임을 새삼 확인. ㅋㅋ

아래 사진은 내가 찍은 건 아니고 일행 중 한분이 일찌감치 박물관 화장실 갔다가 마침 출연진을 만났다기에 전달받았다. 색감 화려한 의상이 아주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예쁜 옷도 많고...  전통무용을 어느 가문에서 3대째 전수받아 널리 알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일본에 많이 가본 건 아니지만, 료칸엘 가봐도 기념품 쇼핑센터에를 가봐도 쇼핑백이나 세탁물용 비닐팩 하나를 만들어도 그냥 허투루 하지 않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요번에도 오키나와 관광 지원을 위함인지 오키나와 안내책자랑 공연 브로셔를 예쁜 비닐봉투에 담아 주었는데, 안에 든 설문지를 작성하면 비닐파일도 나눠준다고 했다. 아쒸, 볼펜 없는데 생각한 순간 설문지에 저 앙증맞은 필기구가 클립처럼 꽂혀 있었다. (비닐종이 위에 놓인 검정색 물체;;)

공연 브로셔는 꼼꼼히 읽어보고 재활용 폐지로 내놓았지만, ​오키나와 안내책자는 (관광지 안내며 섬 전체 지도까지 들었다!) 비닐파일에 넣어 잘 보관해 두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오키나와 갈 때 가져가야쥐! 문득 우리나라 관광홍보도 과연 이렇게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람들 마음을 확 끌게 잘 하고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행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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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4. 11. 7. 16:20

지지난주 토요일에 사촌동생 결혼식엘 갔다가 꽃길과 리셉션에 장식되었던 꽃을 양껏 집어왔었다. 전문 예식장이 아니라 그날 예식은 딱 한번 뿐이라 한갓져서 좋았고 사진촬영을 마친 뒤로는 주최측에서 얼른 꽃장식을 뽑아 하객들 가져가라고 입구에 쌓아놓아 더 좋았다. 나는 노친네들 식당으로 안내한 뒤에야 그 낭보를 듣고 뒷북으로 혹시나 하고 가봤는데 다들 한두 다발씩 가져갈 만큼만 챙겼는지 아직 꽤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수국과 장미, 리시안서스를 각기 챙겨서 막내고모랑 나눠가졌는데도 집에 와 꽃으니 화병 3개 분량. 

맨 오른쪽 센터피스는 뭐, 주로 줄기 꺾어진 꽃들로 급조한 거라지만 며칠간 눈과 마음이 행복했다.  이 꽃들처럼 예쁘게 잘 살거라 사촌동생아, 그런 마음도 들고...

 

꽃이 오래가지 못할 걸 예상하기는 했지만 과연 사흘쯤 됐을 무렵부터 한 송이 한 송이 시들어 뽑아버리다 보니 일주일 뒤엔 장미는 다 사라지고 큰 화병 두 개의 수국과 리시안서스만 남았었다. 그나마도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면 수북했던 수국이 한줄기 통째로 축 늘어져 쪼그라져 있기 일쑤.

 

헌데 내일이면 꽃을 얻어온지 만 2주가 되는데도 하얀 수국 한 줄기와 리시안서스 한 송이는 여전히 멀쩡하게 버티는 중이다. 수국은 줄기나 두껍지, 리시안서스는 하늘하늘 가느다란 줄기로 어떻게 버티는지 신기할 따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옛말 틀린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름부터 아예 백일홍이라는 꽃도 있고, 가을 국화는 뭐든 2, 3주도 끄덕없다규~~) 장하고 고고하여라 꽃송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열심히 물도 갈아주고 줄기 끝도 잘라주며, 역시 잘 참고 질긴 게 이기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유독 강하게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특히 송이나 줄기가 크고 튼튼하지도 않았는데 남들보다 오래오래 잘도 버티는 것이 나름의 비법을 갖춘 게 틀림없다. 마음 스산하다는 핑계로 수시로 돌려대는 보일러 탓에 실내 공기가 꽤나 건조할 것 같은데도 누렇게 말라붙지 않고 종잇장처럼 얇은 꽃잎으로 새하얗게 버티고 있는 꽃. 누가 불러주어서 꽃이 되고 싶은 건 잘 모르겠는데, 질기고 아름답게 고고하게 독야청청 쭉 버티는 것도 진정 미덕이라는 (너무 당연한가?) 뜬금없는 깨달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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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간송문화전

놀잇감 2014. 8. 4. 15:39

매년 가을이던가, 1년에 딱 한 차례만 곳간 열쇠를 열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그래서 DDP란다. 나는 가운데 D가 '디지털'인 줄;;;) 개관 기념으로 봄부터 간송문화전을 열고 있다.  4월에도 한번 가서 보았는데, 워낙 보물급 문화재가 많아서 1, 2부로 나누어 교체 전시를 한다기에 신윤복의 미인도 보러 지난주에 또 다녀왔다. 국보급 문화재는 지난번과 똑같은 게 많았으나, 그림들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난번에 본 건데도 다 까먹었을 확률도 있음. ㅎㅎㅎ 


건축물로서의 DDP에 대해선 워낙 말도 많고 탓도 많았지만, 일단 전 시장 5세훈이 저지른 온갖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마다 외국인 건축가에게 일을 맡기는 바람에 맥락도 없고 역사도 무시한 흉물들이 곳곳에 너무 많아진 게 유감이고 생김새가 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콧하려다가 간송의 문화재에 넘어가고 말았다. 전철역부터 몇시간씩 줄서서 성북동에 올라가 잠깐씩만 봐야하는 간송미술관의 콧대높음을 한탄했었는데, 몇달씩 전시를 해주는 게 어딘가 고마워 하면서. -_-;


누구는 뱀이 똬리를 튼 형상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우주선 같다고도 하는 DDP의 외관은 이렇다. 


사진은 4월에 찍어온 거라 그나마 좀 한적. 지난주엔 초딩들 방학한 걸 까먹고 갔다가 평일에도 어찌나 곳곳이 바글바글거리는지 앗뜨거라 후회했었다.  


똑바로 서거나 직선으로 이루어진 벽면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라 빙글빙글 건물 내부를 돌다보면 나도 모르게 벽의 기울기와 맞춰 몸을 삐딱하게 하고 걷거나 멀미가 날 수도 있는데, 그나마 몇달 만에 두 번째로 간 거라 나름 익숙해진 듯했고 매캐한 새집 냄새가 나는 건 사라지고 없었다. 


미인도와 더불어 내가 기대했던 건 지난번에 날짜별로 8개씩 나눠 교체전시를 하고 있던 <혜원 전신첩>이었는데 하이고... 전번에 본 걸 똑같이 전시하고 있을 줄이야! ㅠ.ㅠ 이번에도 보고팠던 <단오풍정>과 <월하정인>은 보지 못했다. 흑...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그나마 옷자락에서 바람이 휙휙 나오는 듯한 <쌍검대무>를 본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신윤복 전신첩, [쌍검대무]


 그밖에 소싯적 미술 교과서와 국사 교과서에서 보던 청자 항아리며 오리 연적, 원숭이 연적, 금동불상 등을 실물로 볼 수 있고, 간송 전형필이 집 몇채 값을 주고 사들여 엄청 어렵게 지켜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도 전시되어 있다. 4월 전시때는 국보급 문화재를 지키러 온 건지 곳곳에 시커먼 정장차림의 보디가드들이 위협적으로 버티고 서 있었고, 수많은 진행요원들이 더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전시장이 꼬불탕꼬불탕해서 동선이 좀 요상하긴 하다;;) 나 말고도 불만 품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 점은 개선된 듯했다. 일단 바글바글 애들 관람객이 많으니 그거 통제하기에도 바빠보였음. 


하지만 어둠컴컴한 조명(유물 보호를 위해 조명에 신경써야 하는 정도는 나도 안다규~!) 아래 유리 안에 가둬놓은 유물을 보는 건 참 짜증나는 일이다. 유리에 상이 비쳐서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잘 안보이니 원... 그렇다고 부분조명을 잘 해놓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눈 나쁜 사람 성질나게 만들어놓았다. 그러고는 곳곳에 디지털 영상을 틀어놓았다. 3D로 만들었거나 세세한 부분까지 그림을 확대해 놓은 영상이 수시로 돌아가서 시선을 끌기는 하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원본을 더 자세히 감상하고 싶을 뿐이고...


어쨌거나 가장 기대하고 갔던 신윤복의 <미인도>는 생각보다 작품이 꽤 컸다. 


길이가 130센티미터 정도 된다는데, 족자 크기 때문이긴 하지만 우왕... 정면에서 보면 거의 등신상처럼 느껴지는 크기다. 섬세한 아름다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_+


보존상태가 겨우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감지덕지. 한참을 홀린듯 감상했다. 요새 자주 보이는 국악소녀가 입은 한복도 그렇고 애어른 할 것없이 왜들 그렇게 소매통과 품이 미친듯이 좁고 꽉 끼는 한복을 입나 했더니, 그 전범이 바로 미인도더군! ㅎㅎㅎ

짧고 좁은 옷고름을 옆구리부터 달아 묶는 한복이 많이 보이는 것도 왠지 이제야 알았다. 한복에도 복고풍이 유행이었어!


기념품 가게에는 미인도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인간문화재 장인이 만들었다는 저 노리개도 고가에 팔고 있었다. 


간송문화전 입장료는 8천원이고, 2부 전시는 9월 28일까지 한단다. 간송문화전을 보면 그외 다른 전시장에서 하는 현대 디자인전이며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를 할인해주는 것 같았으나 그닥 관심 없어서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다. 4월에 갔을 땐 개관기념으로 DDP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 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끝이 난 듯했다. 방학이라 아무래도 애들 관객 유치를 위한 각종 디자인 전시회를 유치한 모양. 


월요일엔 휴관이고, 지하철 2, 4,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출구에서 DDP로 곧장 이어진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대체 뭘 어떻게 꾸며놓았나 지난 4월에 돌아보았는데, 땅파다가 수없이 나온 옛날 가옥 유구들과 이간수문을 그대로(위치를 엉망으로 바꿔놓았다고 들었다;;)  전시해놓았고, 옛날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도 몇 개 그냥 남겨놓았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무들은 아직 그늘을 드리우려면 멀고도 멀어보여, '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했음. 모름지기 공원은 좀 편히 쉬고 여유로워야하는 거 아닌가? 참 내...


주변에 밥집도 커피마실 곳도 별로 마땅칠 않아서 더욱 괴로웠던 동대문 나들이에서 미인도 알현 말고도 그나마 하나 건진 건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의 생선구이집. ^^; DDP는 또 다시 갈지 모르겠지만, 그 생선구이집은 나중에 이런저런 옷감이며 부자재(?) 사러 나가는 길에 또 들러 먹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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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잡담

놀잇감 2014. 7. 29. 15:09

요샌 통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정붙이고 볼만한 드라마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들도 하나도 못/안봤다. 일단은 다운로드족이 아니라서 몰아보기도 못하고, 내 방엔 케이블이 골고루 안나오고.. 그렇다고 시간 맞춰 본방이나 재방을 볼 부지런함은 앞으로도 영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다 귀찮고 시큰둥한지 원... 


하여간 그런데도 가끔씩 엄니 따라서 보는 드라마가 있으니 <참 좋은 시절>과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주말드라마로군. 공중파 주말드라마의 특징은 몇주 안보다가 보아도 내용 이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인 것 같다. <기분 좋은 날>의 경우 일요일엔 <개그 콘서트>에 밀려서 안보는 날이 많은데도 등장인물 관계를 다 알겠으니 원... 암튼 KBS 주말 연속극은 울 엄마의 경우 어떤 내용이든, 배우가 누구든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틀어놓고 보신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적응 못해서 한달 쯤은 고생을 하면서도 딴데로는 채널이 절대 안 돌아간다! 어휴... 참 놀라운 충성심이라고 해야할지.


<참 좋은 시절>의 경우 이서진이 주인공인데, 엄마도 나도 <꽃보다 할배>로 뜬 투덜이 서지니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참고 보려다가 한참을 괴로워했었다. 울 엄마 왈,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 때가 백배 낫단다. 드라마에선 하도 무게를 잡고 인상을 써대서 늙은 아저씨 같다고... 여주인공이랑 안어울린다나. (심지어 이서진은 노총각이고 김희선은 애엄마인데도! ㅋㅋ)  그럼에도 울 엄마가 인내심을 갖고 그 드라마를 보는 건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쓰는 귀여운 애들(동원이 동주) 덕분이 칠할 쯤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본처인 장소심 여사(윤여정)과 첩 하영춘 여사(최화정)의 관계가 아닐까 대충 짐작하고 있다. 


바람둥이 남편이 오래 전 나몰라라 내팽개친 집안을 일구며 시아버지에 쌍둥이 시동생에, 배다른 막내아들에, 또 그 막내아들이 고딩때 사고쳐서 낳은 쌍둥이 손주들까지 호적에 자식으로 올려 보살핀 '보살' 같은 사람이 바로 장소심 여사(윤여정)인데, 첩인 하영춘(최화정)과의 애틋한 관계는 거의 놀라울 지경이다. 십수년간 남편 없는 집에서(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둘이 한 방을 쓰며 자매처럼 모녀처럼 지냈을 정도.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바람둥이 남편이 있는 집안이거나 불임의 문제로 후처를 들인 경우 형님, 아우 해가면서 본처와 후처가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사는 일이 옛날엔 꽤 많았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외갓집이 그랬다니 뭐 말 다했지...


내가 울 엄마의 친할머니, 그러니깐 증조 외할머니이신 '송씨' 할머니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반해, 울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에도 떡하니 한복 입고 가족사진에 찍힌 울 엄마의 '큰엄마'에 대해서는 통 기억이 없다. 그분이 증조외할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암튼 울 외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남매를 키우던 중, 살림 해주러 일 다니던 같은 동네의 어느 집에 아들을 낳아주러 후처로 들어가게 된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고향 가는 배를 탔다는 남편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가족 부양의 의무는 계속 외할머니 몫이었다...) 


딸 하나만 낳고서 계속 아이를 낳지 못해 대가 끊기게 생긴 그 하씨 집에, 외할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더 낳아주었고 본처와 후처는 나란히 한 집에서 애들을 건사하고 키웠다. 원래 있던 두 아이(울 엄마와 큰외삼촌)도 바로 윗집에 살면서 잠만 따로 잤지, 밥은 다같이 먹었다는 것 같다. 울 외할머니에겐 시어머니가 되는 송씨 할머니가 건재하셨기에 집까지 다 합치진 못했던 듯... 암튼 그러다 하씨 할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떴으니... 남은 건 우글우글 여자들과 올망졸망한 애들뿐. 


드라마 속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처럼 울 외할머니와 본처 할머니는 오손도손 같이 살며 애들을 함께 키웠대고, 동네에 작은 절을 지어 바칠 만큼 돈이 꽤나 많고 살림살이 규모도 컸다는 하씨네 집안일을 같이 돌봤다고 한다. 울 엄마는 하씨네 본처 아줌마를 큰엄마라고 불렀던 반면, 울 외할머니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은 본처를 그냥 엄마, 낳아주신 생모인 울 외할머니를 '작은엄마'라고 불렀단다. 그러니깐 울 외할머니 역할이 최화정이란 말쌈. +_+ 일반적으로 남편이 바람기가 많은 오입쟁이라 후처를 들이는 경우 본처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본처가 아들을 낳지 못해 스스로 아들 낳아줄 후처를 주선하는 경우엔 사이가 좋은 경우가 더러 있단다. (아무리 그래도 참 놀랍다! 곤경에 처한 여자들의 동지애, 자매애는 어디까지 가능하단 얘긴가...) 


째뜬 울 외할머니는 평생 그 하씨 집안 호적에 오른 적 없이 그냥 대를 이어준 첩으로만 사신 분이다. 생계 때문이긴 하지만 이씨 성을 가진 두 자식을 데리고 정식으로 개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에게 법적인 어머니 노릇도 할 수 없는 정말 딱한 처지에서 두집 자식들에게 모두 죄스러워하며 사신 것 같다. 체력이며 목청이며 천성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인데, 자식들에게는 늘 전전긍긍...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본인이 낳지 않은 하씨네 큰딸까지  하나같이 죽어라 속들을 썩여대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김치 담가 나르고 사고치면 뒷수습하고... 그러셨다. (젤 멀쩡한 자식인 울 엄마만 해도 걸핏하면 우울증이 도졌으니 뭐;;) 하여간에 울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울 외할머니와 '큰엄마'의 사이는 몹시 좋았고, 첩이 낳은 아이들도 다 엄청 예뻐했단다. 대를 잇게 된 두 아들 뿐만 아니라 막내딸까지도 주로 업어 기른 사람이 '큰엄마'였다나.본처 입장에서 볼 때 울 외할머니가 자신의 법적인 지위를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다른 자식들을 예뻐하다 못해, 엄연히 따지면 남남인 울 엄마와 큰외삼촌까지 잘해줬다는 걸 보면 본처나 후처나 두 양반 성품이 워낙 착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 '큰엄마'라는 양반이 아기 손가락 하나만 붙잡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우리 외갓집의 경우 남편의 이른 사망으로 본처와 후처간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집안을 일구었다면, 드라마 <참 좋은 날>의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수십년간 집밖으로 떠돌던 바람둥이 남편(김영철)이 돌아온 것! 당연히 두 여자의 공분과 미움을 살 수밖에 없고, 울 엄마 역시 그들에게 공감하며 김영철 아저씨를 엄청 욕하며 드라마를 보고있다. 저런 남편은 없는 게 낫지.. 라면서. 최근 이야기는 돌아온 남편 때문에 결국 첩이었던 하영춘이 집을 나갔고, 다들 늘그막에 노부부가 행복한 재결합을 하나보다 짐작하지만 장소심 여사가 이혼 카드를 내밀며 파란이 인다. 평생 희생하며 산 아줌니가 엄마 노릇 지긋지긋하다고 집을 나가겠다니 원... 


드라마에선 본처의 이야기지만 장소심 여사의 희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보면 나는  울 외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본처도 일찍 죽고 결국 모든 집안 건사와 자식 교육의 책임은 울 외할머니의 어깨에 떨어졌다. (울 부모님 결혼식 사진 속의 하씨 형제들은 모두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 차림이다.) 외할머니는 86세까지 장수하셨고, 계속 꽤 큰 살림 규모를 유지했지만, 본인 명의로는 그 어떤 재산도 남아있지 않았더랬다. 미리미리 죄다 자식들 공동명의로 해놓았는데도 또 그 지분을 놓고 하씨네 자손들은 장례 끝나기 무섭게 박터지게 싸움을 해대고...  윤여정이 이혼선언과 함께 가출 결심을 밝히면서, 엄마 노릇이 지긋지긋해서 이제 관두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 공감이 됐다. 아오.. 안봐도 비디오지... 얼마전까지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 시아버지 봉양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아무튼 하도 설정이 신파스럽고 구식이라 8,90년대가 배경인 줄 알았던 드라마는 요즘 이야기였다. ㅋㅋ 울 엄마 세대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울 할머니 세대에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으니 당연히 인기가 없지 싶지만, 암튼 나와 울 엄마는 주말 저녁 밥먹고 나서 잠시 쉬는 동안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답답한 구세대 드라마를 계속 보지 않을까 싶다. 울 외할머니의 인생은 일제 강점기에 남편과 이별한 이후 단 한순간도 아름답게 피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에겐 참 좋은 시절이 오긴 오려나..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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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잉여짓

놀잇감 2014. 7. 18. 17:24

등산용품 선망에 이어 요번엔 또 생활한복 타령이다. 등산이든 요가든 낚시든, 뭘 하든 상관없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전에 그와 관련된 옷과 장비부터 사고보는 사람들.. 나도 이젠 절대로 손가락질 못하겠다. 그 사람들이 옷 욕심이나 허세가 많은 게 아니고,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 한달에 한두번도 안되는 기회를 바라며 끊임없이 쓸데없이 계속해서 등산복과 생활한복에 눈독을 들이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고 있으니 으휴... 그나마 알량한 수입과 지출 규모를 따져서 막 질러대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궁궐 안내 나가는 날 입는 생활한복도 이제 계절이 완전히 한바퀴 돌았으니 분명 새로이 더 옷을 사지 않아도 입을 옷은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너무 머슴스럽지 않으면서 예쁜... 그러나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은 한복에 대한 로망은 좀체 꺼지질 않는다. 평소 입는 옷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더 큰 기준인데;; 작년 여름 수습기간 중에 덜컥 싼맛에 장만한 여름 옷은 소재만 마일뿐, 사실 그냥 긴 통치마에 매듭단추가 달린 블라우스 형태였다. 푹푹 찌는 폭염엔 그 정도로도 나름의 복장규정('지킴이는 활동시'최소한' 생활한복을 입고 안내하여한다'는)에 위배되진 않는 모양이지만, 도통 한복스럽지 않다며 나 혼자 마음에 안들어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여름도 다 가는 9월쯤 하얀 적삼 비스무리한 걸 하나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정식 옷고름은 아니지만 고름 비슷하게 변형된 리본도 달려있고 (요즘은 또 일반 한복도 옷고름이 짧고 얄상한 게 유행이다) 한복여밈 같은 깃선이며 홈질로 마무리해놓은 장식도 마음에 들었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하얀색이 시원해보이지...


생활한복류는 아무래도 젊은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보니 小자가 66 사이즈부터 시작된다. 해서 막상 택배온 옷을 입어보니 꼭 남의 걸 얻어입은 듯 허수아비 같았다.. ㅋㅋ

얼른 품도 줄이고 소매통도 안으로 꿰매 좁히고 뒤쪽으로  

허리부분에 대충 다아트를 넣어 어벙벙한 느낌을 줄였다.

그러고 야심차게 궁에 입고 갔더니만....


-_-; 반응이 별로였다. 일단 형광 하얀색이라 푸르딩딩한 기운이 도는 흰옷이랑 나랑 별로 안어울린다는 총평. 게다가 또 내가 뭐 화장을 막 진하게 하는 편도 아니고 립스틱도 바르는 둥 마는둥.. 하다보니 딱 환자복 입은 아픈 사람 같단다. (거울로 내가 봐도 그건 인정 ㅋㅋ 평소 흰색&검정 배색을 자주 입고 다니지만 그냥 티셔츠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역시 궁궐에선 화려한 색깔이 어울린다는 고수들의 조언. 결국 딱 한번 입고 더는 안입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올해 여름...  반드시 다려야 입을 수 있는 마블라우스 대신에 저 적삼(이름이 구김마 꽃적삼이던가;;)을 산 이유도 그냥 빨아서 말렸다가 대충 입으려던 거였는데! 싶어지면서 또 다시 인터넷을 눈빠지게 검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은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색깔로 또 한번 사 볼까 어쩔까 고민하다 퍼뜩 든 생각은, 염색을 해입자!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천연염색과 관련된 정보를 폭풍검색, 비트로 염색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중간쯤으로 물이 얼마나 예쁘게 들까 마구 기대하면서... 


일부러 재래시장에 가서 비트 두 덩이를 사다가 대충 썰어 믹서기로 갈아서 매염제로 필요하다는 백반까지 함께 넣어  천연염료를 만든 뒤 신나게 옷감에 비벼댔다. 그러나 핏빛처럼 진했던 비트의 진분홍색은 백반을 섞으니 약간 갈변하는 듯? 어쨌거나 손목 아프게 주물러대다가 (30분간 담가 주무르라고 어느 블로그에;;) 대강 물이 다 든 것 같아 좀 꾸둑꾸둑 말려 염료를 고착시킨 뒤에(그러는 과정에 여기저기 얼룩덜룩 ㅋㅋㅋ 그러나 그게 천연염색의 묘미지.. 라며 내심 뿌듯;;) 물에 헹궜다.

그런데 으악... 헹구는 과정에서 염료 물이 다 빠지네그려!  ㅠ.ㅠ


결국 1차 천연염색은 실패로 판명났다. 비트든 포도든 양파든 천연염색 매염제는 '백반'이라고 하던 모든 블로그들이 다 '뻥'이었던 거냐! 나 원참... 나의 옷은 저 형광 하얀색에서 하도 오래 입어 더럽게 때 탄 흰색으로 돌변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다시 폭풍검색을 했다. 이번엔 실제로 본인이 천연염색을 해본 건지 어디선가 풍월로 들은 걸 옮겨적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블로그 포스팅은 다 무시.. 주로 실패담을 읽었다. 신나게 염료 물 들였다가 들은 풍월대로 매염제로 백반을 사용했더니 색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백반 물의 농도가 중요한가? 


그러다 유레카!  천연염료에 관해 쓴 논문을 발견했다. 95도로 30분간 끓여 만든 각종 천연염료의 발색 과정을 옷감의 종류(면, 마, 견)에 따라 매염제(백반, 소금, 식초, 사용 안함) 별로, 고정 상태와 착색 정도를 담은 내용이었다. 결론은 견직물이 효과가 제일 좋고, 염색을 세 차례 실시한 결과, 착색효과는 매염제를 썼을 때나 안썼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나중에 빨아도 물이 안빠진단다. 옳거니.


백반도 남았겠다. 2차 시도에 돌입. 다시 비트를 사왔다. 백반의 농도가 중요할지 모르니깐 뜨거운 물에 10% 용액을 대체로 맞춰 준비해놓고 잘게 자른 비트를 망에 담아 푹푹 끓였다. 아 색깔 좋고... 그러나 모든 흰색 옷감에 형광증백제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지만 쉽사리 그 선연한 진분홍색깔이 저고리에 침투하진 못했다. 어쨌든 염료 30분, 매염제 30분씩 담그는 절차를 3번 하면 되렸다....  허걱. 기껏 분홍색으로 물든 저고리를 백반물에 담갔더니 다시 흰색으로 환원! ㅠ.ㅠ 열받아서 백반물은 확 쏟아버렸다. 다시 물에 헹궈낸 뒤엔 그냥 비트물에 소금 좀 넣고(어디선가 TV에서 본 적 있다. 소금이 천연염료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던가) 4, 5시간 푹 담궈놓았다. 논문에서 매염제 안써도 효과는 똑같다고 했으니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옷값에 비트값에 쓸데없이 돈만 엄청 버렸구나 싶은 낭패감이 들었다. 잘못하면 염료 산화되서 색깔 완전 이상해진다던데 에라 모르겠다. 쳇. 간간이 들여다보니 분명 염색물은 진자주색인데 옷감 색은 분홍도 아니고 갈색도 아니고 요상망측. ㅋㅋㅋ


그쯤했으면 최선을 다했다 싶어 그나마 누런 흰색은 모면한 저고리를 꺼내 깨끗한 물에 주물러 헹궜다. 신기하게도 보라자주 기운이 돌던 저고리가 헹구면 헹굴수록 갈색으로... 그나마 얼룩덜룩했던 1차 염색의 후유증은 다 사라졌다. 그럼 됐지 뭐... 

옷걸이에 걸려 말렸더니, 그럴싸한 베이지색이 되었고, 원래 옷감에 든 꽃무늬 부분은 은은하게 약간 더 갈변한 느낌. 아싸~


결국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천연염색 저고리가 완성되었다. ^^; 칙칙하다고 누가 뭐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흡족하면 됐지! 볏짚 색이랄지, 베이지색으로 변한 저고리엔 진밤색 치마가 제격(생활한복 치마 아니고 시원해서 여름마다 내가 애용하는, 무인양품에서 산 긴 랩스커트를 활용했다)이라며 희희낙락 지난 활동일에 입고 다녔다. 이번엔 다들 칭찬해주는 분위기... 색깔 은은하고 예쁘네...라면서. 


그러고 보니 또 다시 커지는 욕심... 이왕이면 리본 고름을 다른 색으로 달고 시프다... 어흑.. 

결국 며칠 전엔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 대로 오밤중에 고름만 떼어서 패브릭 마커로 칠을 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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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뭔지

투덜일기 2014. 7. 15. 15:44

어차피 내려올 산을 헥헥거리며 올라가는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산이 좋으면 밑에서 올려다 봐도 되잖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려서 억지로 산엘 쫓아다녀서였을까? 북한산과 멀지 않은 동네에 오래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 암튼 아버지는 꽤 젊어서부터 종종 등산을 다녔고 40대땐 부부가 아예 이런저런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가끔씩 억지로 우리 삼남매를 등산에 끌고 갔다. 봄엔 진달래 능선에 핀 예쁜 꽃을 봐야한다면서, 가을엔 눈부신 단풍구경을 하자면서, 겨울엔 나무에 얼어붙은 눈꽃이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면서... 

등산화 없다는 핑계를 대면 새로 아이젠까지 다 사주면서까지 어떻게든 꼬드겨 애들을 산엘 데려간 걸 보면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따라나선 우리들이 착하다고 해야할지. 그 옛날엔 모든 산에서 취사가 가능할 때였으니, 코펠에 버너에 쌀과 반찬에 짐을 한보따리 홀로 짊어지고 밥짓는 노동까지 다 도맡아하면서도 아버진 뭐가 그렇게 좋으셨는지 지금도 좀 의아하다. 산에서 먹던 코펠밥과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엄청 맛있긴 했지만, 그 맛에 또 따라나서겠다고 할 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등산 차출'에 동원되었던 건 아마 나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막내나 큰 동생은 나보다 몇 번 더 끌려(?) 갔을지도 모르겠다. 

등산이라면 절레절레 인상부터 쓰던 내가 수학여행 때 한라산엘 올라갔던 건 순전히 지도교수로 따라간 할머니 교수님 덕분이었다. 요즘이야 뒷동산엘 가도 등산화에 아웃도어에 배낭에 히말라야 등반도 불사할 차림으로 나서는 게 유행이지만, 그때 우린 대체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심지어 정장바지에 구두를 신은 우리과의 퀸카 '패셔니스타'도 있었다!) 배낭은커녕 여관에서 아침에 싸준 은박 도시락과 물 한병을 각자 비닐봉지에 덜렁덜렁 들고 나선 터였다. 정상까지 가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없었고, 대충 올라가다가 점심 도시락 까먹고 내려와야지 싶었다. 그런데 정년퇴임을 앞둔 할머니 교수가 어찌나 깐족거리시는지... 늙은 나도 올라가는데 젊은 니들이 뭐가 힘드니, 여기까지 왔는데 백록담은 보고 가야지...

결국 얼떨결에 나까지도 한라산 정상을 올랐고,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불가사의한 추억담이다. 스물한살의 팔팔한 패기 와 오기 탓이었겠지만, 나이키 운동화에 무겁고 꽉 끼는 청바지까지 입고 대체 어떻게 한라산을?! +_+ 하여간 내 인생의 등산은 그날 한라산 해발 1950미터를 정점으로 영원히 끝이라라고 생각했다. 설악산은 흔들바위 이상 올라가본 적이 없고(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엔 올라갔다 ㅋ) 각종 단풍놀이로 간 내장산, 속리산, 주왕산 등등도 중턱이나 가봤을까. 직장인 시절 야유회를 산으로 가면 중간에 도망쳐 집으로 가거나 산 아래 막거리집에서 기다리는 쪽이었다. 

근데 그러던 내가 변덕도 유분수지, 최근 등산을 몇번 따라갔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낭떠러지가 무서워서 눈앞이 노래지는 순간을 겪으며 내 미쳤지! 다시는 안 따라올란다! 결심해놓고는 다음번에 또 따라가기를 벌써 서너번 했나? ㅋㅋ  운동삼아 동네 앞산 뒷산을 오르겠다고 장담할 때부터 스스로 좀 이상하긴 했는데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뭔가에 홀린 듯 등산화, 등산바지에 이어 스틱까지 장만하고는 요즘 계속 등산용품을 기웃거리고 있다. 어쩌면 마라톤화,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요가에 이어 또 그냥 흐지부지 운동타령 푸닥거리로 반짝하다 말 짓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도 못 미더워서 아직 배낭도 손바닥만한 엄마 걸 빌려갖고 다니고는 있는데 과연... 이건 그냥 물욕, 쇼핑욕일까 아니면 새로운 취미에 대한 초보스러운 열망일까. ㅎㅎㅎ

알록달록 색깔과 봉제선이 요란한 아웃도어는 또 내가 무진장 싫어하는 패션이어서 다행히 기능성 등산복엔 별로 눈길이 안가는데 배낭은 아무래도 꼭 하나 장만해야할 것 같고 ㅋㅋ 등산화도 아무케나 제일 가벼운 걸로 광고모델 봐서 덜컥 산 거 말고 좀 안미끄러운 놈으로 제대로 하나 또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계속 등산용품 사이트를 들락날락... 아무래도 등산화와 배낭은 고가품이라 확 저지르기 전에 몇달째 망설이고만 있는 우유부단함이 이번엔 나름 미덕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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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자 금단추

투덜일기 2014. 5. 21. 00:38

지다님이 마고자가 어떻게 생긴 옷인지 몰라 검색해봤다는 댓글을 다셨는데, 그걸 보니 깃과 고름 없이 큼지막한 단추로 슬쩍 여미게 되어 있는 남자 마고자와 관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아 진짜 일하기 싫은 게 맞다. 마감이랍시고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는 있으되 틈만 나면 딴짓할 궁리를 하게 되누만. 하여간에 후다닥 적어보련다. 기가 막힌 마고자 금단추 얘기를.



<이것이 바로 마고자. 사진 출처는 사진에 찍힌 저 사이트임. 문제 되면 삭제하겠음>


친구 하나가 스물 서너 살 쯤, 엄청 일찍 결혼을 했다. 그래도 제일 먼저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 두번째쯤? 처음 결혼한 친구는 소개받고 거의 석달 만엔가 초스피드로 후다닥 채여가다시피 결혼을 하는 바람에 혼례의 절차고 뭐고 얘기 들을 기회가 전혀 없이 어느 틈에 결혼식장 구경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내내 연애를 거쳤던 이 P양의 경우, 상견례며 약혼식 준비(결혼식 비용은 반반 나눠 내지만 약혼식 비용은 전액 신부 부담이라던데 요즘도 진짜 그런가? 아 왜?)부터 시시콜콜 수월하게 넘어가는 게 단 하나도 없었고, P양은 종종 우리에게 하소연을 하다 눈물을 흘렸다. 친구가 사귀던 '오빠'가 '의대생'이었던 것이 사단이었다! 의사 사위 보려면 열쇠 3개(아파트, 자동차, 또 뭐지? 설마 병원 건물?)를 신부에게 딸려보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던 시절이었고, P양의 예비 시댁은 아주 기세등등 했다. 


P양은 정말로 거의 친정 기둥뿌리를 뽑다시피 혼수와 예단을 장만했는데, 결혼식을 달랑 한달쯤 앞두고는 급기야 결혼을 하네 마네 파란이 일었다. 예비 시어머니가 적어보낸 예단 목록대로 얼추 다 맞춰보내고는 친정 엄마가 한숨을 쉬려는 찰나, 신랑 마고자에 달린 단추가 순금이 아니라 호박이라고 돌려보냈다는 것! -_-;; 


당시 P양의 마고자 금단추 사건은 꽤나 유명하고도 워낙 인상적이어서, 수십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친구들 사이에  오갈 정도다. 견디다 못한 친구의 친정 엄마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그런 시댁을 참아가며 결혼을 꼭 해야겠느냐고 그만 엎어버리자고 하셨다나. 놀라운 건 나 같으면 진짜로 확 다 엎어버렸거나, 남자친구를 설득하거나 시댁과 싸워서 호박단추를 관철시켰거나 했을 것 같은데 P양은 징징 울면서 엄마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이제껏 들인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순순히 금단추로 바꿔주지 싶은 생각에 섭섭하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거다. 우웩~!!


결론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P양의 의대생 남친은 결혼식 폐백 때 황금칠보 단추가 떡하니 달린 마고자를 입고야 말았다. 

폐백용 한복과 피로연 때 입을 정장을 맡아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폐백실에 따라가서 얼른 보자기를 풀며 그 문제의 황금단추를 구경했다. 도대체 마고자 금단추는 어떻게 생겨먹었나 궁금해서 말이지... ^^; 매듭으로 매달리는 큼지막한 눈물 모양의 마고자 단추를 죄다 황금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수십돈 쯤 들지 않을까 우리끼리 궁시렁거렸었는데, 알고보니 안을 텅 비게 해서 그렇게 많은 양의 금이 들어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10돈이라던가 5돈이라던가.... 꽤 고가이긴 했다. 



<역시나 퍼온 사진. 그날 본 금단추는 이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던 기억이;;;>


어쨌거나 이십대 초반에 내가 구경한 마고자 금단추 사건은 결혼제도의 폐해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었고, 집안 나름이겠지만 결혼은 진짜로 할 게 못된다는 심증을 굳혔다. 이후 결혼하는 친구들이 나타날 때마다 묻곤 했다. 너도 마고자 금단추 해가냐? ㅋㅋ 이후 P양에게도 걸핏하면 놀려댔다. 친정 기둥뿌리 다 뽑아서 신랑 마고자 금단추까지 해갔는데 잘 살아야지! 


최근 사촌동생들 결혼 때 보니, 마고자 금단추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은 사라진 듯했다. 합리적인 아이들은 어차피 잠깐 촬영할 때만 필요한 거라며 아예 한복도 안 맞추고 친구에게 빌려 입기까지! 예쁜 것들...  

근데 '마고자 금단추'로 검색해서 뭔가 나오는 걸 보면 요즘도 혼수로 해가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 어쩐 건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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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벚꽃

놀잇감 2014. 4. 13. 16:32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벚나무를 많이 심어놓아 벚꽃길로 유명한 데를 가보면 대개 가지가 축축 늘어져 꽃이 피어나는 수양벚꽃이 한두그루씩은 꼭 있다. 우리동네 벚꽃길에도 물론 있고, 제주도나 경주에서도 본 기억이 나고, 여의도 윤중로에도 있었던 것 같고, 각 궁궐에도 다 있는 듯하다. (창덕궁과 경복궁에 있는 건 내 눈으로 봤으니 확실한데 나머지 궁에도 있는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 ^^; 근데 아마 있지 않을까나 ㅋ)

 

하지만 내가 수양벚꽃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난생 처음 봤다며 반색한다. 유명한 데로 벚꽃 구경 한번 안다녀 본 사람은 없을 텐데 이유가 뭘까...  철철이 꽃구경에 심취한다는 건 나이들었다는 뜻이며, 꽃놀이 다닐 생각이 들면 그건 중년이라는 증거라는 말도 듣는다. 하기야 난 젊어서도 꽃을 좋아했다고  주장하는 바이지만, 사실 어려서 좋아했던 건 꽃집에서 파는 꽃 위주였던 것 같다. 장미, 튤립, 프리지아, 백합, 스타치스, 칼라, 소국, 수국, 카네이션, 데이지, 리시안서스... 꽃집 양동이에 담긴 싱싱한 꽃들과 향기에 행복해하다가 신중하게 골라 한 다발 집안에 들여놓고는 좋아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지긋지긋한 월요병을 극복하고자, 월요일마다 사무실 책상에 일부러 꽃을 꽂기도 했다. 지 책상에만 유난스레 꽃 꽂아놓는다고 남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흥. 

 

물론 길가에 피어나는 민들레, 애기똥풀, 개망초, 제비꽃, 진달래 같은 애들도 예뻐했지만 굳이 꽃구경을 나설 생각은 진짜로 서른 넘어서 했던 것도 같고... 아닌데, 스무살 때도 데이트랍시고 분명 밤벚꽃놀이 갔었는데 ㅠ.ㅠ 지금도 젊은 사람들의 꽃놀이는 벚꽃구경이 유일하고, 나머지 꽃구경은 '아줌마들'의 전유물이 맞는 것도 같다.

 

암튼 잎도 나기전에 서둘러 화라락 피어나는 성급한 봄꽃들은 거의 다 졌고, 라일락이 한창이다. 벚꽃, 살구꽃, 매화, 복사꽃(이들이 바로 나를 몹시 헷갈리게 만드는 비슷한 꽃 4종 세트되시겠다 ㅋㅋ 하기야, 배꽃, 자두꽃도 비슷하게 생겼더라 ㅠ.ㅠ) , 목련, 진달래, 개나리 같은 애들을 다시 보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 아쉬운 마음에 종종 핸드폰에 든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러고 보니 '수양벚꽃'이 정확한 이름인 줄도 잘 모른다. 수양버들은 수나라 양제가 운하를 건설하며 강가에 버드나무를 심게 해서 생긴 이름이라던데, 그래서 원산지가 중국이고 우리나라 자생 버드나무는 능수버들이라고 한다던데. 둘의 차이는 물론 암만 봐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수양벚꽃도 능수벚꽃이라 불러야 하나? ㅋㅋ 아 이 겉잡을 수 없는 잡념의 꼬리물기..

 

결론은 그저 벚꽃이 져 아쉽다는 것. 

 

날이 맑긴 했어도 바람불고 엄청 쌀쌀했던 4월 4일 경회루 앞. 이날도 이미 궁궐 벚꽃은 끝물이었다.

 

이건 복사꽃 (개복숭아꽃이라고 누가 그랬던 듯;;)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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