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아지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뜨악해 하거나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험들이 내게도 꽤 많다. 동네 시장 어귀에서 살아 있는 닭 한마리를 골라 주인이 탁 모가지를 쳐서 잡아가지고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털뽑는 기계에 넣어 닭털을 정리한 뒤 생닭을 팔거나 그 옆에 기름솥을 놓고 튀겨서도 팔던 닭집이라든지, 아궁이에서 연탄갈기, 석유곤로 따위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흔해빠진 흰색/검정색 비닐봉지 이전에 모든 시장에서 사용하던 신문지도 빠뜨릴 수 없다.
닭집 앞을 지나치는 게 너무 무섭긴 했지만 엄마 따라 시장 다니는 걸 좋아하던 나는 나중엔 엄마 대신 혼자 장보기 심부름을 다녔다. 그땐 모두들 플라스틱 장바구니나 동그란 손잡이에 실뜨개로 짠 망이 달린 장바구니를 가져갔다. 닭을 사도, 생선을 사도, 돼지고기를 사도, 하다못해 콩나물이나 풋고추를 사도 그 옛날 시장에선 다들 신문지 두어장에 내용물을 둘둘 말아 장바구니 안에 넣어주었다. 그래서 시장터 가게마다 신문 전지를 4등분한 크기의 신문지를 몇뼘이나 되는 높이로 쌓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학교에서 폐품을 걷을 때도 신문지가 제일 인기 품목이었고.
환경 문제로 비닐봉지 사용을 자제하려는 움직임이 요새 다시 일고는 있지만, 장바구니를 가져가더라도 마트를 가든 시장엘 가든 여전히 모든 먹거리는 기본적으로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것이 정석으로 굳어졌다. 무게를 담아 파는 채소를 살 때도 일단은 작은 비닐에 담아야 가격이 적힌 스티커가 나오는 판국이니까. 게다가 이젠 종이 신문 보기가 거의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지고 있으니, 재활용도가 높은 신문을 옛날처럼 쓰라고 해도 다량으로 구할 수가 없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신문지는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는 포장재였던 모양이다. 주말에 이모가 다니러 오며 빨간 플라스틱 대야를 맞붙여 노끈으로 묶은 딸기를 들고 오셨다. 마트에서 파는 딸기는 대개 스티로폼이나 투명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지만, 과일 도매상에 가보면 그렇게 광주리 만한 빨간 대야에 수북하게 담아놓은 딸기를 팔기도 한다. 둘이 다 언제 다 먹나 싶게 걱정이 앞설 만큼 엄청난 딸기 대야를 여니 안엔 신문지 한장이 덮여 있었다. 아래쪽 대야 맨 안쪽에도 마찬가지로 신문지 한 장이 깔려 있었고.
그런데 싱싱해 보이는 딸기를 일부 씻어 먹으려니 희미하게 석유냄새 같은 것이 났다. 입맛이 무뎌진 왕비마마는 아무 말씀 안하셨지만 나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딸기를 물에 덜 담갔다 씻었나? 혹시 보일러 난방유가 불완전 연소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딸기라 기름 냄새가 밴 걸까? 과일가게 주변에서 혹시 기름사고 같은 게 있었나? 주말 내내 별별 가능성을 다 상상하며 찝찝한 마음으로 딸기를 먹던 나는 드디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범인은 바로 신문지다.
어느 신문사였던가 인체에 좋은 콩기름으로 인쇄한다는 홍보를 한참 했던 것 같은데, 다른 신문사들도 다 그렇게 휘발유 냄새가 안나는 잉크로 바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옛날에 갓 배달된 신문에서 풍기던 휘발유 냄새를 맡으면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면서 멀미 비슷한 증상이 생겼다. 그래서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조간신문을 꼭 다 저녁때 본다고, 신문이 아니라 '구문'을 보는 거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군가 다 뒤적여놓아 그나마 휘발유 냄새가 희미해진 다음에야 두통 없이 신문을 볼 수 있는 걸 어쩌랴.
옛날 신문지는 워낙 오래된 것들을 폐지 도매상에서 떼어다가 썼을 테니 휘발유 냄새가 다 날아간 다음이었겠지만, 요즘처럼 종이 신문이 많지 않을 때는 아무래도 최근 신문을 활용했을 것 같다. 게다가 수익성이 날로 떨어지는 주요 신문사든, 사방에서 남발되는 무가지든 고가의 인쇄용 기름을 썼을 것 같지는 않으니, 예나 지금이나 신문지 특유의 매캐한 기름냄새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그리고 워낙 과육이 무른 딸기에 그 미세한 휘발유 냄새가 온통 배어들었을 테고.
어쨌거나 식탐꾼답게 먹거리의 미묘한 맛에도 까탈스러운 나는 아직도 꼬박 닷새는 더 먹어야 할 만큼 많이 남은 딸기가 돌연 먹기 싫어졌다. 아무리 물에 오래 담가 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석유냄새를 나로선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다. -_-; 물론 아주 옛날 과일가게 좌판에 둥그렇고 큰 '다라이'에 담긴 딸기를 근으로 달아 팔 때도 양은인지 주석인지 알 수 없는 쇠다라이 바닥엔 딸기 물크러지지 말라고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그래도 딸기에서 석유냄새를 맡은 적은 없었는데 우째 이런 일이. 짐작컨대 이모는 아마도 과일가게를 오래 하고 있는 어느 주인에게서 딸기를 사왔을 것 같다. 신문지로 딸기를 포장해도 불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때부터 과일가게를 해온 주인장으로부터. 그렇지 않았다면 신문지 대신 과일상자 위에 흔히 덮여 있는 얇은 스티로폼이나 투명 비닐을 대신 덮지 않았을까나.
건강에 해로울지 아닐지도 모르겠고, 내 추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자신도 없지만 암튼 방금 결심했다. 남은 딸기는 생으로 먹지 말고 쨈을 만들기로. 내 아무리 딸기를 좋아하기로서니 석유냄새 나는 딸기는 못먹겠다. 현재로선 팍팍 끓이면 휘발성인 냄새가 다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쨈으로 만들어도 그 냄새가 안 가시면 어쩌나? 작년엔가 귤쨈을 만들어본 경험에 따르면 한시간 가까이 서서 계속 저어줘야 하던데 으으윽. 괜히 시간낭비하며 일감만 만드는 거 아닌가 걱정도 앞서지만 하는 수 없다. 암튼 과일가게 주인 여러분, 딸기는 웬만하면 최근 신문지로 덮지 말아주세요. 네? -_-;
오늘은 밤참으로 무얼 먹을까 궁리하다 일주일쯤 전에 사다둔 고구마에 생각이 미쳤다. 두 개만 전자렌지에 쪄먹어야지 하며 꺼내려는데 곰팡내가 훅 끼쳤다. 봉지 맨아래 고구마 하나가 썩어가고 있었던 것. 안되겠다 싶어 고구마 한 봉지를 몽땅 찜통에 쪄놓기로 했다. 과일이든 고구마든 하나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면 주변 것들까지 금세 덩달아 상하는 법이다. 곰팡난 고구마를 3분의 2 이상 잘라내 성한 부분만 남기고 나자 다행스럽게도 다른 고구마들은 다 멀쩡했다. 밤참으로 며칠 내리 토스트를 먹다가 문득 고구마가 생각난 건 혹시 고구마들이 나에게 보낸 텔레파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황당한 생각이 들 정도로 희한하게 딱 하나만 심하게 썩었다.
커다란 찜기 위를 거의 다 채울 만큼 많은 고구마를 한꺼번에 쪄셔 계획대로 두개만 냠냠쩝쩝 먹고 나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썩어가는 모든 것들도 이렇게 일부만 싹둑 잘라 익혀 부패를 미리 중단시킬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명력을 지닌 모든 것들은 결국 생을 마감하며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찐고구마도 계속 오래 내버려두면 또 상하겠지만,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날 고구마들이 연달아 썩어가 결국 다 버려야할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나 말이다. 누군가는 단지 부패의 속도만 지연시켰을 뿐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허나 그건 찐고구마의 효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당장 먹을 건 냉장고에 보관하고 남은 건 냉동실에 넣었다가 아이스크림 먹듯 베어물어도 그만이고, 귀찮음을 극복할 수 있다면 납작하게 썰어 말려 쫀득쫀득한 간식으로 만들 수도 있다. 통영에선가는 그렇게 말린 찐고구마로 빼때기죽도 만든다던데. 그러니까 이 미친 썩은 세상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것들을 싹둑 잘라버리고 난 뒤에 원래의 달콤한 맛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었으면, 누군가 그런 묘안을 생각해낸다면 참말 좋겠다는, 찐고구마 옆구리 찌르는 것 같은 이야기.
식탐인의 입장에선 하루에 맛있는 걸 가능한 한 여러번 먹으며 사는 게 행복할 것도 같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선 다 귀찮으니 하루에 한끼만, 아니 사흘에 한끼만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콩닥거리는 하루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는 몸을 위한 섭생의 의미보다 짜증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걸 어쩌랴. 요샌 머리를 심히 한쪽으로 집중해야 하는 기간인 고로 딱히 해먹을 거리들의 메뉴도 떠오르지 않아서, 장보러 갈 때 적은 목록도 노상 똑같아 매주 새로 적을 필요조차 없었다. 영양 면에서 균형잡힌 식단 따위 잊은지 오래라서 그런지 식탐모녀의 겨울 체중은 빠직빠직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 푸성귀 채소의 섭취 부족이 아닐까 싶다. 해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여기다 그간 대강 해먹은 것들 중 대강 요리로 소개하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두고, 생각난 김에 예전에 기록하던 신데렐라 키친 요리법 가운데 채소류를 퍼다 놓아 끼니 메뉴의 차별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걸핏하면 굶고 사시는 이웃들의 요리 욕구를 충동질해 보려는 바이다.
1. 냉동 코다리를 자연 해동한 뒤 코다리의 머리와 꼬리,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먹기좋은 크기로 토막낸다. 2. 코다리의 육질을 맛있게 하려면 '마사지(?)'를 해야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으므로 북북 씻으면서 한껏 주물러준다. 3. 콩나물을 원하는 식으로 다듬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나는 그냥 통째로 쓴다. 콩나물 꼬리를 언제 일일이 다 다듬고 앉았나!) 4. 양파 한두 개를 숭덩숭덩 잘라놓는다. (설탕을 넣지 않고 단맛내기용이므로 더 단 걸 원하면 많이 넣어도 무방) 5. 송송 썬 파와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고추장 한 숟갈, 멸치액젓 한 숟갈 (생선 요리엔 멸치 액젓을 넣어야 깊은 맛이 난다고 작은올케가 가르쳐줬음), 맛술 두 숟갈, 고춧가루 한 숟갈, 간장과 물 적당량(?)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6. 커다란 냄비나 깊은 프라이팬에 코다리와 양파를 앉히고 양념장을 절반만 부어 끓인다. 7. 얼추 다 익었다 싶으면 남은 양념장과 콩나물을 넣고 뒤적여 준 다음 얼른 뚜껑을 닫고 콩나물을 익힌다. 8. 콩나물이 다 익었다고 자신할 무렵 다시 뒤적여서 통깨를 뿌려 접시에 담는다.
1. 닭고기 가슴살 500g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닭고기 살에 다진 마늘 두 큰술, 후추가루, 꽃소금(또는 허브솔트)으로 밑간을 해둔다. 3. 파프리카, 양파, 표고버섯을 취향껏 자른다. 4. 식용유를 조금만 두르고 밑간해 둔 닭고기를 볶는다. 5. 거의 다 익어가면 잘라놓은 채소를 넣어 볶는다. 이때 다진 마늘을 한 큰 술 더 넣는다. 6. 굴소스를 두 세 큰술 넣어 간을 맞춘다. 굴소스만으로 간을 하면 내 입엔 좀 느끼해지므로, 싱거우면 소금을 더 넣는다. 7.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뿌려 볶은 뒤 통깨로 마무리한다.
1. 영양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3cm 길이로 자른다. 2. 오이를 길게 반을 갈라 다시 반달 어슷썰기를 한다. 3. 양파는 반 잘라서 가능한 한 가늘게 채썬다. 4. 매운 풋고추를 적당히.. 3개 정도 반을 가르고 다시 어슷하게 채썬다. 5. 썰은 재료를 큰 그릇에 담고 소금 한 스푼, 간장 두세 스푼, 고춧가루 취향에 따라 두 스푼, 다진 마늘 한 스푼, 참기름 넉넉히 넣고 살살 버무린다. 간을 봐서 취향대로 소금이나 간장을 더 넣으면 끝. 6. 통깨로 마무리하고 좀 더 상큼한 맛을 원한다면 식초를 약간 넣어도 좋다.
1. 미나리를 다듬는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이번엔 살짝 데칠 거라 이파리는 모두 잘라버렸다. 미나리는 이상하게도 데치면 굵은 아랫부분보다 이파리 달린 윗부분이 더 질기다. 길쭉하게 다듬은 미나리를 적당한 길이로 뚝뚝 잘라놓는다. 짧은 걸 원하면 손가락 만하게.. 나는 귀찮아서 그냥 3등분 했다. ^^ 2. 물을 끓여서 미나리를 아주 재빨리 데친다. 오래 푹푹 끓이면 질겨 지니깐, 거의 넣었다 바로 꺼낼 정도로 살짝 숨만 죽인다. 3. 체에 받쳐서 물기를 빼놓는다. 4. 물기도 빠지고 어지간히 식으면 물기를 대충 좀 더 짜준 뒤에 (어쩐지 꼭 짜면 섬유질이 질겨질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ㅋㅋ) 그릇에 담고, 고추장 한 큰술(실은 정확한 양을 모르겠다;;), 다진 파와 다진 마늘을 각 한 숟가락쯤, 고춧가루는 색깔 봐가며 솔솔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5. 소금으로 간을 하고, 꿀 약간, 참기름, 통깨로 마무리...
어렸을 땐 미나리 특유의 향을 석유냄새라고 여겼기 때문에 좀처럼 입에 대질 않았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바뀐 식성에 따라서인지, 언제부턴가 향긋한 미나리가 몹시 좋다. 예전에 이모가 만들어준 미나리 나물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처음 만들어봤는데, 놀랍게도 얼추 비슷한 맛이 나는 것이 아주 싱그럽게 괜찮은 맛이었다! ㅋㅋ
<가지 무침> 재료: 가지 4개, 다진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통깨 1. 깨끗이 씻은 가지를 4, 5등분 해서 4cm 길이로 자른 뒤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길쭉하게 자른다. 내 경우 원통형 가지를 반 갈라서 다시 4, 5번 잘라준다. 2. 처음엔 찜통에 넣고 쪄서 무쳤지만.. 요새는 귀찮아서 그냥 전자렌지에 찐다. 물론 뚜껑을 덮고 가지 본래의 수분으로 쪄야하는 건 기본. 가지 4개를 9분 정도 찌면 우리집에서 먹기 좋아하는 말랑함의 정도로 쪄진다. 좀 더 푹 익히는 걸 원하면 더쪄도 좋음. 3. 쪄낸 가지를 좀 식힌 다음, 다진 파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 약간, 간장 2스푼, 참기름, 통깨 넣고 슥슥 버무린다. 4. 워낙 대충반찬의 대가라서 간은.. ^^;; 먹어보면서 맞춘다.
1. 양파와 애호박을 원하는 두께로 반달썰기 한다. 양파를 반달썰기하면 당연히 채 썬 것처럼 흐트러진다. 2. 우묵한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두 채소를 볶다가 새우젓을 적당히 넣는다. (우리집 간은 반 숟갈 정도) 3. 다진 마늘도 한 큰 술 넣어 같이 볶는다. 4. 호박이 반쯤 투명해지고 채소에서 나온 물도 거의 다 졸아들면 완성. 취향에 따라서 물렁한 호박볶음을 원하면 더 볶아도 좋다. 5. 접시에 담은 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양념인 통깨를 살짝 뿌려준다.
[#M_퍼오는 김에|접기|
호박볶음 사진 올려둔 것도 있기에 같이 퍼왔다. 꽃빵 사다가 부추잡채도 해먹어야겠다. +_+ 무려 5년 전 사진이던데... 메뉴는 돌고 도누나.
사춘기 때도 여드름이 그리 심하진 않았건만 도자기 피부와는 거리가 먼 내 얼굴엔 중년의 나이에도 가끔 여드름이 난다. 이건 여드름이 아니라 뾰루지라고 불러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나는 익숙한 이름인 여드름으로 부를란다. 내 경우, 여드름이 나는 이유는 뻔하다. 불규칙한 수면시간, 스트레스, 외출 안하는 날 걸핏하면 세수 건너뛰는 습관 -_-; 그리고 기름지거나 심하게 단 음식.
특히나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중3무렵부터 지금껏 변함이 없는 건 삼겹살을 와구와구 구워먹고 나면 하루 이틀 뒤 반드시 얼굴에 여드름이 솟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온 가족이 다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특별히 여드름 수에 변화가 있는 건 나뿐이었고, 그간 식품의학계는 삼겹살과 여드름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었다. 여드름은 어디까지나 호르몬 분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과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됐으면 모를까 직접적인 음식섭취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이다. 나는 속으로 아닌데, 내 얼굴에 난 여드름이 증거인데... (삼겹살을 2인분은 거뜬히 해치우며 나는 다만 행복할 뿐 스트레스 따위는 느끼지 않는 식탐가란 말이다!) 중얼거리면서도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하니 아닌 줄로 알아야지 어쩌겠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뉴스를 보니 여드름의 주원인이 음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며 학회지에도 실릴 예정이란다(관련기사). 그간 음식과 여드름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박박 우겼던 과학자들과 식품학자들은 물 먹은 거다. 하기야 이 주장 역시 일단은 반박의 가능성이 있는 또 하나의 '가설'일 뿐이니 앞으로 또 무슨 얘기가 나올지 두고봐야 알 거다. 사실상 과학에선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여러가지 증거가 뒷받침 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신빙성을 얻었을 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인정되는 '진실'(참=truth)은 없단다. 엄밀하게는 모두가 그저 '가설'의 지위를 갖고 있으므로 언제든 과학의 검증과 실험으로 뒤집힐 수 있다니 얼마나 허무한지 원. 하지만 또 그렇게 언제든 과학적인 검증과 실험으로 진실의 권위에 수없이 의문을 품는 과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진실이 인정될 수 있다니, 나 같은 단순한 머리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는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요번 여드름 연구결과 뉴스를 보고서도 나는 또 한번 깨달았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권위를 내세워도 결국 자기 몸에 대해서 '진실'을 제일 잘아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 당연하다거나 '진실'로 인정되는 것들이 앞으로 언제 뒤집히게 될지도 모르니 이렇게 계속해서 삐딱하게 '어디 두고보자'는 태도로 살아도 무방(? 또는 안전?)하겠다는 점이다. 지켜본다고 결국엔 매사가 깔끔하게 밝혀질 리 없겠지만 어쨌든 당장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는 건 우유부단한 나에게 퍽이나 안심되는 일이다.
사과 중에 내가 제일로 치는 품종은 역시나 새빨간 '홍옥'이지만, 풋풋한 맛의 파란 사과도 그에 버금가게 좋아한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과 1, 2위는 '빨간 사과, 파란 사과'다.(홍옥을 제외한 다른 품종의 사과엔 '빨갛다'는 말도 붙이기 어렵지 않은가! 그저 붉은 정도지...-_-;) 아쉬운 건 내가 좋아하는 품종들이 지극히 짧은 기간에만 유통된다는 점이다. '아오리 사과'로 불리는 파란 사과도 요즘에나 먹을 수 있지 좀 지나면 -- 아마도 추석이 지나고 나면 -- 구경하기 힘들어질 거다. 그러니 요맘때 얼른 실컷 먹어주는 수밖에 없다. 과육이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홍옥과는 또 다르게 아삭거림이 강하면서 껍질이 얇고 약간 떫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역시나 새콤달콤한 과즙이 풍부한 파란 사과는 나름 매력이 철철 넘친다.
'파랗다'라는 우리말은 정말로 '파란색'부터 '초록색'에 이르기까지 푸른 계통의 색을 모두 아우르고 있으니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신호등에도 파란 불이 들어오고 사과도 파랗다고 말하는 게 어른들에겐 어색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듣기엔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에서도 신호등 파란 불은 '초록 불'이라고 고쳐 배우는 모양이니 말이다. 제일 어린 조카가 네살이었던 작년 이맘때, 집에 놀러온 녀석에게 "파란 사과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대뜸 세상에 파란 사과가 어디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뜨끔한 내가 "초록 사과, 아니 연두색 사과 말이야"라고 고쳐 말했더니, 녀석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아오리 사과?"라고 대꾸했다. '아오리 사과'를 아는 네 살 짜리 어린이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나는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었는데, 올해 다시 파란 사과를 통째로 들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생각하니 '파란 사과'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조카들에게도 가르쳐줘야할 것만 같다.
어른들이 초록색이든 연두색이든 푸르딩딩한 남색이든 하늘색이든 죄다 '파랗다'고 말하는 건 색깔 구분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색깔조차도 크고 넓고 풍요롭게 지칭하는 마음의 여유 때문이라고. 연두색이 예쁜 파란 사과는 역시나 '아오리 사과'라고 부를 때보다 '파란 사과'라고 부를 때 느낌이 제격이다. 백설공주가 먹고 쓰러진 반만 빨간 사과도 덜익은 반대편 절반은 '파랗게' 덜익었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아무려나 바야흐로 파란 사과의 계절, 내가 원없이 먹었다고 느낄 때까지는 너무 빨리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좋겠다.
콩국수를 좋아하지만 콩삶아 가는 건 너무도 귀찮아서 작년에는 완제품으로 파는 콩국물을 사다가 콩국수를 해먹었는에 올해는 그에 못지 않게 간편하면서 맛은 더 훌륭한 방법을 알게 됐다. 콩국수의 핵심은 고소한 콩국물의 맛인데 아무래도 파는 콩국물은 농도 면에서나 맛에서 영 흡족하질 않은 게 사실이다. 헌데 똑같은 회사 제품인데도 확실히 부족한 콩국물에 비해 '두부'의 완성도는 다들 뛰어나다는 데서 누군가 힌트를 얻은 모양이다. 두부와 우유를 갈아서 콩국물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설마, 했는데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놀라울 정도로 우유 맛은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얼렁뚱땅 20분만에 올 여름 처음 콩국수를 식탁에 내놓자 울 엄니가 물으셨다. 니가 아무리 도깨비 같이 요리를 하는 건 안다만 대체 콩은 언제 삶았느냐고. ㅋㅋㅋ 국수 삶을 때 잠깐 가스렌지를 켜야 하긴 하지만, 더운 날씨에 최대한 불 안쓰고 만들어 먹는 요리로 아주 그만이다.
재료(2인분): 국산콩 두부 한 모, 우유 400ml, 소금 약간, 통깨 약간, 소면, 채썬 오이(없어도 그만)
1. 두부를 숭덩숭덩 잘라 우유, 소금, 통깨를 모두 넣고 믹서에 간다. 1분도 안걸림.
2. 소면을 삶아(요즘엔 우리밀 국수를 사면 1인분씩 포장해서 나오기 때문에 국수 양을 몰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찬물에 헹군다.
3. 큰 그릇에 소면을 담고 콩국물을 부어 얼음을 동동 띄운 뒤 (얼음과 같이 갈아도 봤는데 국물이 싱거워져 비추천) 채썬 오이를 얹어 먹는다.
콩국물 갈을 때 견과류를 넣으라는 조언도 더러 있는데 나는 깔끔한 콩맛이 좋아서 통깨만 넣는다. 취향대로 알아서 시도해보시길.
추억이라는 조미료 때문에 내가 그 옛날 울 엄마표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녹두전은 아무리 잘 하는 집 것을 사먹어 봐도 우리집표 녹두전이 제일 맛있고 생각하는데, 과거가 되어버린 김밥과는 달리 녹두전은 현재형이다. 할머니부터 울 엄마, 작은어머니들을 거쳐 나와 울 올케들에게 전수된 녹두부침개의 맛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제사음식이 지방마다 다르듯이, 녹두전도 지방마다 재료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내 입맛엔 돼지고기 넣고 투박하고 큼직하게 부쳐낸 이북식이 최고인 것 같다. 원래 이북식은 돼지고기를 큼직큼직 듬성듬성 썰어 넣는 것이라지만 우리집에선 갈아서 넣는 데다 숙주는 물론이고 대파와 김치도 썰어넣기 때문에 느끼할 이유도 없어 바삭바삭 아작아작 하니 그저 최고의 맛이다.
서울경기식 녹두전은 순 녹두만 갈아서 기껏해야 손바닥 반만하게, 더러는 예쁘장하니 한 입 크기로 부쳐 위에 실고추 같은 걸로 모양을 내는 거라고 해서 어찌나 의아하던지. 녹두 본연의 고소한 맛이야 있겠으나, 먹기 심심해서 어찌 그걸 녹두전이라 부를 수 있겠나 말이다. 게다가 차례나 제사땐 다른 전도 종류별로 장만해야 하는데 녹두전을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부쳐내면 그걸 언제 다 부치라고! 드넓은 전기 프라이팬 양쪽에 펼쳐놓고 한판에 여러 장씩 부쳐내도 오래 걸리는 게 녹두전인데 말이다.
종류별로 전 부치다 질력나고 꾀가 생기면 녹두전 크기가 마구 커져 가끔은 뒤집다 찢어질 지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찢어진 핑계로 뜨겁고 고소할 때 먼저 먹어볼 수 있어서 반가운 녹두전은 차례 때나 제사가 아니면 내가 평소에 감히 만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 음식이다. 드높은 나의 식탐 열망으로도 넘기 어려운 명절 음식의 지존이랄까. 어쩌면 다른 녹두전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뜨악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최고의 녹두전인 우리집 요리법은 이렇다.
재료: 깐녹두 500g, 쌀 한 줌, 돼지고기 갈은 것 300g 정도, 신김치 반 포기, 숙주나물, 대파, 다진 마늘, 소금, 후추, 참기름, 포도씨유.
1. 전날밤에 깐녹두를 씻어 물에 불려 놓는다. 쌀 한줌도 함께.
2. 다음날 아침에 엄청 불어 생겨난 녹두 껍질을 떠내려보내며 다시 씻는다.
3. 숙주나물을 살짝 데쳐서 길이를 칼로 적당히 잘라준 뒤에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어 밑간해 놓는다.
4. 신김치 반포기도 속만 대강 털어낸 뒤에 잘게 잘라 김칫국물을 꼭 짜낸 다음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다.
5. 돼지고기 갈은 것도 소금, 후추, 다진 마늘로 미리 양념한다.
6. 대파는 두어뿌리 어슷썰기로 큼직큼직하게 썰어놓는다.
7. 불린 녹두를 간다. 이때 농도가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 너무 묽으면 전이 찢어진다!
8. 갈은 녹두에 양념해놓은 위 재료를 몽땅 넣고 잘 버무린다. 다들 밑간을 했지만 이 단계에도 역시나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9. 양념과 섞어 놓으면 갈은 녹두가 삭기 시작하므로 얼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노릇노릇 바삭하게 부쳐낸다. 적정 지름은 15센티미터쯤인 것 같은데, 엊그제 내 작품은 얼른 끝낼 요량으로 18센티미터는 되었던 듯.
우리집 녹두전의 특징은 김치를 넣어 색이 좀 붉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돼지고기와 김치, 숙주와 대파가 어우러져서 기름에 부쳤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바삭바삭 아작아작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음식이 다 그렇듯, 방금 부쳐냈을 때가 제일 맛있으므로 녹두전 부치다가 찢어뜨리면 아뿔싸 민망하다가도 나는 신이 난다. ㅋㅋ 명절 음식은 다 전날 부쳐놨다가 데워먹으니 한결 풍미가 떨어지는 듯하지만 녹두전은 냉장고에 한참 넣어놨다가 프라이팬에 데워먹어도 그저 훌륭하다.
올여름들어 처음 과일가게에 나온 자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체리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크기 다섯개에 4천원이면 좀 비싸다 싶었지만 자줏빛으로 빛나는 싱그러운 자태를 본 순간 이미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어쩌랴. 커피 한잔 사마시려면 5천원도 훌쩍 넘는 때가 많은데도 과일값엔 매번 놀라 손끝이 망설여진다.
날씨도 더워졌지만 요즘 내가 계절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과일가게에 드높이 쌓인 수박을 볼 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이 벌써 한참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몇통 안되는 수박을 진열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과일 도매상엔 엄청나게 큰 수박부터 적당한 크기까지 작은 수박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달기만 한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씨 빼는 게 귀찮아서 수박은 나의 기호품이 아니다. 모름지기 과일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해야 제맛이라는 게 나의 굳건한 믿음.
올해는 가지치기를 건너뛴 데다 해걸이를 하는지 통 수확이 신통찮은 앵두를 두어번 따먹으며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보들보들 새콤한 맛에 한동한 행복했고, FTA를 반대하는 의미로 수입과일은 '사다' 먹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지만 '누가 줘서' 얻어먹은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참외와 사과, 토마토로 근근이 과일 열망을 잠재우고 있었는데 자두를 만난 거다.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자두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씨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기야 꽃 맺히고 나서 열린 과일 열매의 생김새가 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랫부분까지 움푹 들어간 사과나 배와 달리 앵두, 체리, 자두, 복숭아, 살구 같은 건 꼭지가 달린 윗부분만 쏘옥 들어가고 아래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솟은 하트 모양이라는 의미다. 다들 가운데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고 말이다. +_+ 별것도 아닌데 나로선 새삼스러운 발견이라 마치 큰 성취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더운 날씨는 못견딜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서 자두랑 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산처럼 쌓여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봐야겠다. 과일은 나의 힘!
그리스, 로마 시대는 물론이고 19세기까지도 내과의사들은 대부분 식물학자였단다. 병의 원인이 무엇이든 과학자와 식물학자들은 병을 고칠 해답을 식물에서 찾아왔고, 신약개발 얘기를 들어봐도 과학자들이 아직도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는 게 맞다. 한방에서 아직도 요긴하게 참조하는 동의보감도 거의 다 식물 약재 비법 아닌가 말이다. 밥이 보약이고 밥상으로 병을 고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거다. 독초도 조금만 먹으면 약으로 쓸 수도 있다잖은가. 어차피 인체는 스스로 치유하고 나으려는 에너지와 비밀스런 방편을 갖고 있는 유기체이므로, 치명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면 병은 낫게 되어 있다. 어리석은 인간이 자기 몸을 잘 못 돌봐서 그렇지.
보호자로서 평균 일주일에 한번은 대학병원을 들락거리고는 있지만 의학과 약효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점점 회의가 들어 웬만해선 병원을 찾지 않는 나의 성향이 더욱 고착되는 중이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라는 사람들이 환자를 두고 하는 말은 거의 다 가정이고 가능성이지 않으면 협박이다. 이런저런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나을 거라고 환자에게 확신을 주는 게 아니라, 일단 한번 복용해보고 주사도 맞아보자는 식이다.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게 쉽지도 않은 나라지만, 어쨌거나 그런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최대한 피해가려는 수법이 눈에 보인다. 어디까지나 모든 부작용과 문제점에 대한 책임은 환자가 지라는 거다.
의료진도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하도 오묘해서 같은 약도 사람에 따라서는 효과가 달리 나타나며 웬만한 위약의 플라시보 효과는 무려 30%에 달한다니 가끔 불치병이 기적처럼 나았다는 사례들은 엄밀히 말해 인간과 인체의 정신력과 체력의 승리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임상효과가 입증된 약일지라도, 대조실험을 해보면 약에 대한 신뢰성을 지닌 집단은 탁월한 효과를 보는 반면에 약효에 대한 회의를 품은 집단은 약이 잘 듣질 않는단다. 딱 울 왕비마마 같은 분 얘기다. 멀쩡한 음식도 '혹시나 상했나' 의심하는 마음을 품으면 반드시 탈이 나는 왕비마마는 주치의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드시는 약의 효과가 죄다 다르다. 특히나 진통효과를 내는 약이나 주사나 패치 따위에 대한 불신은 놀라울 정도라 남들보다 30%(플라시보 효과 만큼이다)는 약효가 떨어질 게 틀림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나로선 통 믿음이 가지 않는 민간요법이나 '카더라 통신'에 대한 신뢰와 효과는 비록 단기간일지라도 대단하게 나타난다. '친구분의 권유 대로 매일 사과발효 식초를 먹었더니 머리와 다리가 확실히 거뜬해졌다'고 믿는 식이다. 결론은 하나다. 모든 것은 왕비마마의 마음과 생각에 달렸다는 것.
모전녀전이라고 나 역시 회의와 불신이 많은 인간이지만 식탐녀 답게 먹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몸을 다스릴 수 있다는 부분엔 믿음이 간다. 특정음식에 심한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모든 인체는 해로운 음식에 어떤 형태로든 거부반응을 보이며 이로운 음식엔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고혈압 당뇨 환자에게 육류를 줄이고 열심히 유기농 채소를 먹게 하면 반드시 혈압과 혈당 수치가 좋아진다. 왕비마마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하고 끼니마다 나물반찬과 샐러드 따위를 떨어뜨리지 않은 결과 1년 반만에 약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기에 자신있게 하는 말이다. 운동량을 늘여서 체중만 줄이면 당뇨 약을 끊어도 될 터인데 그것까지는 이룰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중년에 접어든 내 몸도 마찬가지다. 평생 변비 같은 건 모르고 살지만 외식을 했다든지 불균형하게 끼니를 떼워 푸성귀를 좀 덜 먹은 다음날은 확실히 화장실 가기가 어렵다. 이젠 몸도 적응했는지 채소와 과일을 좀 덜먹었다 싶은 날은 오밤중에라도 나도 모르게 우적우적 오이와 양배추 과일 따위를 씹어먹고 앉았다. 이 또한 심리적인 작용임을 잘 안다. 음, 나 오늘 채소를 좀 덜 먹었네. 내일 배변이 어려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몸을 지배해 현실로 벌어진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이런 미묘한 심리와 몸의 경향을 나는 다 '먹는 것'으로 해결하려 들고 있다는 뜻이다. 갑자기 닭고기가 먹고 싶으면 몸에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의미고, 새콤달콤한 과일이 땡기면 몸이 비타민을 원한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몇달째 감기기운으로만 들락거리던 바이러스의 힘이 드디어 창궐하여 목이 붓고 콧물이 줄줄 나는 상황에 놓이면 즉각 나는 보신용 음식으로 대처한다. 예로부터 몸이 아파 입맛이 떨어지면 죽을 먹는 게 전통이지만 나는 '죽쑤는' 것도 싫고 별 씹을 것 없이 우물거리다 삼켜야 하는 죽도 싫다. 말이 보신용 음식이지, 맥 떨어지고 입맛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냥 머리에 '퍽' 하고 떠오르는 음식이 곧 내 몸이 원하는 보신용 음식이다. 이번에 그렇게 '퍽'하고 떠오른 음식은 난데없이 '치킨수프와 미나리'였다. 오래 전 <**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시리즈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지만 원래도 치킨수프의 뉘앙스는 서양인들이 몸 아플 때 먹는 심신의 보양식이다. '국물' 음식이 드문 서양식 가운데 그나마도 따끈하게 몸을 덥혀주는 음식이기 때문일 거다. 뜬금없이 미나리 생각은 왜 났는지 모르겠는데 미나리 특유의 상큼한 향이 그리워진 걸 보면 코감기로 둔해진 후각이 콕 찝어서 미나리 열망을 뇌에 전달한 모양이었다. ^^
아직은 사흘째 밤마다 열이 올라 후끈후끈 덥고 팽팽 코를 풀어대느라 코밑이 빨갛지만 온갖 채소를 듬뿍 넣은 치킨 수프와 미나리숙주 무침을 이틀 내리 먹어주었더니 얼추 감기가 나아가고 있는 기분이다(순전히 기분일지도). 열이 나는 건 내 몸의 백혈구가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의미라 기특해서 얼음물을 마셔가며 열심히 지원을 해주고 있다. 어차피 감기 바이러스는 2주면 물러간다는데 꾸역꾸역 먹어서 나으려는 식탐녀의 노력으로 며칠 안에 똑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오늘은 비타민B군 섭취를 위해 돼지고기를 삶아서 쌈밥을 해먹을 것이기 때문. 거슬러 올라가면 음식과 약은 기원이 같다는 진리를 신봉하게 된 자의 몸부림은 곧 식탐이다. ㅋ
1. 냉장고 안에 있는 만만한 채소를 죄다 하나씩 꺼내 작게 깍둑썰기한다. 양송이버섯은 워낙 작아지므로 그냥 크게 저며도 됨.
2. 얼마 전 백숙 해먹고 만들어둔 닭고기 육수가 있어서 국물만 넣었는데, 닭부터 삶아서 건진 다음 고기를 잘게 넣고 채소와 함께 끓여도 된다. (근데 요번엔 닭고기가 먹기 싫었다) 우선은 잘 안익는 당근과 감자부터 넣고 익히다가 금세 익는 나머지 채소를 차례로 넣어야 최종적으로 곤죽이 되지 않는다.
3. 채소가 거의 다 익으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취향에 따라 치즈를 넣는다.
(닭비린내 날 까봐 닭고기는 싫더니만 단백질 균형을 생각한답시고 치즈를 두장 넣었다. 맛 괜찮았음)
4. 말간 닭 국물에 몸에 좋은 채소가 듬뿍 들어간 건강식 완성.
<미나리 숙주 무침> 재료: 미나리, 숙주, 다진 파, 다진 마늘, 들깨가루, 소금, 참기름, 통깨
1. 미나리는 끄트머리 잎부분을 거의 다듬어서 부드러운 줄기만 남기고 깨끗이 씻어 건진다. (엄마한테 배우기는 미나리 잎을 죄다 뜯어버리는 것으로 배웠는데 아까워서 나는 좀 남긴다)
2. 숙주도 깨끗이 씻어 채에 건진다.
3. 큰 냄비에 물을 끓여 미나리와 숙주를 살짝 데친다. (이번에는 잘 몰라서 따로따로 데쳤는데, 둘 다 끓는 물에 거의 넣었다 빼는 수준으로 데치면 되므로 한꺼번에 데쳐도 될 것 '같다'.)
4. 좀 식힌 후에 물기를 꼭 짜서 다진 파, 다진 마늘, 들깨가루, 소금, 참기름, 통깨를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들깨가루랑 참기름이랑 둘 다 넣으면 맛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역시나 6시 모닝콜로 눈을 뜬 아침. 평소엔 늘 새벽 6시쯤 잠드는 올빼미가 6시 모닝콜에 잠을 깨는 생활은 아무리 여행지라도 적응하기 참 어렵더라. 그래도 다른 날보나 창밖이 훤한 듯하여 몸을 일으켜보려 했더니 말을 듣질 않았다. 까마득히 오래 전 부실한 몸으로 체력장을 치른 다음날처럼, 허벅지와 장단지, 무릎과 허리가 죄다 쑤셨다. 왕비마마가 이렇게 아파서 걸음을 제대로 못걸으시는 건가 어렴풋이 실감될 만큼 심각한 근육통. 혹시나 해서 새벽 온천 한번 더 하시겠느냐고 엄니에게 물으니 니 맘대로 하란다. 나야 물으나마나, 온천물이 아무리 좋아도 잠보다 좋을소냐 당연히 잠을 택했다.
그래도 출국날이라 훨씬 더 서둘러야 하기에 조금 더 미적거리다 억지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앞다리 뒷다리가 다 땡겼다. 사다리 같은 계단으로 30미터 높이 천수각에 뛰어 올라갔다 내려온 15분도 안되는 사이에 중년의 몸은 그렇게 망가지고 말더라. ㅎㅎ
료칸 건물은 전날 묵은 데보다 더 현대적인데 실내장식은 이쪽이 더 고풍스러웠다. (전날 묵은 료칸 창엔 두툼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음) 우리나라 한옥의 아기자기 예쁜 창살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창호지 바른 저 창문 무늬도 깔끔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ㅋㅋ 설정사진 티나게 맨 왼쪽 문이 덜 닫혔다.
생각해보니 일본료칸온천 체험 못지 않게 한옥고택체험도 열망하며 살았는데 일본엘 먼저 가 본 셈이다. 언제고 꼭 행랑아범 냄새 안나는 깨끗한 고택을 골라 한옥체험도 해보고 말리라!
창문을 여니, 짠하고 사흘만에 햇살이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일본을 떠나는 날 반나절이라도 비와 우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왕비마마의 불편한 다리를 감안해 방배정을 1층으로 받는 바람에 전망이 나빠진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나무 사이로 조만큼이라도 바다가 보이는 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저게 바로 동해바다 아닌가. 료칸에선 <대정원>이라고 이름붙여 자랑하는 안뜰과 바닷가 산책로를 권했었는데, 우린 이렇게 창밖으로 내다보는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아침식사도 부페식이 아니라 저녁 먹은 그 자리에 정갈하게 개인별로 마련된 간소한 정식이었으나, 카메라질에 익숙하질 않아 몸만 덜렁 내려간 탓에 증거사진이 없다. 미소된장을 각자 풀어서 즉석 국을 끓여 밥과 함께 먹는 식이었다. 달걀찜과 샐러드도 있었고, 알록달록하게 튀긴 감자 고로께 같은 반찬도 있어서 난 전날 카이세키
코스요리보다 아침 정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자마자 곧장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해야했으므로, 전날 아침 방에 준비된 다기로 차를 끓여서 잠시 음미하며 부렸던 여유도 생략했다. 그 대신 료칸 방과 아쉬운 작별의 의미로 사진 몇 장.
우리가 묵은 128호 방 한가운데 벽엔 저렇게 약간은 조악한 정물화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 수수한 꽃꽂이 수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 로비는 물론이고 복도 곳곳에 작고 앙증맞은 수반과 꽃꽂이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별 거 아니라도 이런 세부적인 데 신경쓰는 마음씀씀이가 나는 참 좋다. 며칠 전 잡지 기사를 보니, 교토 쪽엔 호시노야 리조트 계열 료칸 가운데 정말 역사가 오래된, 각각 별채로만 이루어진 전통료칸도 있다더라. 혹시라도 또 한번 온천료칸 여행을 꿈꾼다면 참고해야겠다.
아 맞다, 로비 커피하우스에서 무료로 커피도 마실 수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포기해야했다. 아까비...
방열쇠에 저렇게 꽤 큼지막한 나뭇조각이 달려있었다.
열쇠가 두개인 이유는 하나가 금고열쇠이기 때문인데, 옷장 아래쪽에 작은 철제 금고가 자리잡고 있더라. 나는 열어볼 생각도 안했다.
어쨌든 저 열쇠 덕분에 료칸이름 토코엔을 한자로 東光園(동광원)이라고 표기한다는 걸 알게됐음.
아침햇살에 빛나는 대정원은 그야말로 3초쯤 얼굴만 내밀어 보고 돌아섰다. 박석 같은 저 돌 위로 걷는 기분도 꽤나 괜찮았겠다...고 짐작.
마지막 날 첫 행선지는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유형의 관광지인 배 박물관이었다. 내가 일본 배 박물관엘 뭣하러 가서 홍보영상물까지 봐야한담... 여러 종류의 배를 실컷 시식하게 해준다고 해서 그나마 좀 참았다. ㅋㅋ
20세기 배라나 뭐라나가 돗토리현 특산품이라는데 색깔이 우리나라 배처럼 노란 갈색이 아니라 연두색인 게 특징이래고, 좀 아삭한 품종은 시큼하고 그나마 좀 단 놈은 푸석거렸다. 시식이 끝난 후엔 왕비와 곧장 로비 의자에 앉아 빈둥거리며 박
물관에 대한 무관심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시간을 죽였다.
그나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배 박물관 건물의 뼈대... 얼핏 봤을 땐 대나무이거나 최소한 나무 소재인 줄 알고 허걱 놀라 한참 올려다봤다. 다니는 곳마다 산에 대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대나무 쪼개서 만든 부채살처럼 곡선으로 배 형상을 본떠 만든 건물이 밖에서 볼 땐 좀 우스꽝스러운데 안에서 볼 땐 꽤 근사했다.
건물 골조가 뼈처럼 드러나는 저런 구조를 내가 선호하는 건가?
어슬렁 거리며 건물을 나와 주차장에서 맞닥뜨린 건 어딜 가나 보이는 일본의 경차들.
경차는 노란 번호판을 단다는데 브랜드도 모양도 정말 다양하게 많더라. 일본 자동차는 각진 게 유행인지 경차든 아니든 각진 모양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저런 차 한번 운전해보고 싶었다. +_+ 그치만 차선이 반대라 사고내기 딱 좋겠지...
마지막 행선지는 쿠라요시? 에도시대 옛거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였다. 이른바 아카가와라(적와, 빨간 기와라는 뜻이랜다) 시카라베 토장군 거리. 맷돌로 커피 갈아주는 데가 있다고 그래서 지도 들고 찾아가보려고 했으나(규모가 인사동 만큼도 안 되는 듯;;) ㅠㅠ 날씨도 다시 껌껌해지고 빗방울도 뿌리기 시작하는데다 왕비마마의 다리가 비협조적이어서 그냥 눈에 띄는 데만 돌아다녔다.
늘 복작거리는 인사동과 달리 완전히 한산했다
아주 어린 시절 나도 개울을 낀 이런 집에서 산 적 있다!
이런 창고를 개조해서 공방과 기념품점으로 만들었다지
가게주인들은 물건 팔 생각이 없어보인다 -_-;
작은 시가지 중심에 실개천 같은 저런 개울이 흐르고 골목골목 더 좁은 수로가 이어지는 곳도 있는데 야트막한 물속에 팔뚝보다 더 굵은 색색깔의 잉어가 돌아다닌다. 나는 인공색소로 물들인 것 같은 잉어를 좀 징그러워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신기해서 사진 찍으려다가 매번 놓쳤는데, 이 사진엔 운 좋게 난간 사이로 한 마리 보인다. ㅋㅋㅋ
무슨 환경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징그러워 보여도 저 잉어들이 생활오수에 포함되어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치워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던데, 여기도 그러는 걸까 궁금해도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했다.
맷돌로 갈아주는 커피집은 포기했어도 지도를 보니 일본 절이 눈에 띄어 얼른 왕비마마 모시고 찾아갔다. 대
대련사였을 거다;;
대로 세습되는 직업이라는 일본 승려와 절은 낯설기도 하고 솔직히 좀 비호감으로 느껴진다. 일본 스님들의 염불소리도 심히 꾸미는 것 같고 말이지.... ;-p
그러거나 말거나 왕비마마는 일본 절 부처님 앞에 백엔짜리 몇개 보시하고 싶어하셨는데, 드디어 원풀이했다. 온 동네가 그렇듯 여기도 꽤 오래된 느낌이던데 유독 절마당 한구석에 마련된 납골묘만 화려번쩍 으리으리했다.
지도에 표시된 걸 보니 절 앞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에 <대련사 대로>(절 이름 맞다고 치고) 적혀 있었다. 일본 사람도 뻥이 참 심하다는 걸 느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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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이런 골목에다 <대로>를 붙이다니...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딱 편할 정도의 폭이다.
수공예품을 전시도 하고 팔고 있는 가게 몇군데를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엄청난 가격대에 비해 물건은 어찌나 조악한 느낌인지... 사고싶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러더라. 이런 데 비하면 우리나라 인사동이나 삼청동은 정말 세련되고 멋진 곳이라고. ㅋㅋ
모든 일정의 마지막은 이 거리 한 구석에 있는 떡 샤브샤브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사흘간 하도 음식에 실망을 했던 터라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맛있어서 감탄하며 먹었다. 열심히 외웠던 <오이시이데스네>를 쓸 수 있었던 유일한 음식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쓸 기회가 없었다. ㅋㅋ
랩이나 좀 벗겨내고 찍을 것을... 본디 음식 앞에두고 유별나게 사진찍어대는 인간들을 혐오해왔던 터라 민망하여 얼른 슬쩍 한장 찍고는 먹기에 바빴는데, 거의 다 먹고 나니 샤브샤브에 찹쌀떡을 넣어 끓여먹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기록해둘만한 가치가 있을만큼 맛있어서 딱 하나 남았던 떡을 찍었다. 끓는 육수에 10초 정도만 넣으면 말랑말랑해지는데, 너무 오래 두면 흐물흐물 집을 수도 없게 녹아버린다.
우린 공항가느라 영업시작하자마자인 듯 미리 세팅된 자리에서 11시반부터 먹어댔는데, 꽤 유명한 집인 모양으로 12시가 넘자 일본인들이 바글바글 모여들더니 급기야 문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 식당 이름이나 알아올 것을... 잠든 도시인 것처럼 우리 일행 말고는 거의 사람도 보이지 않던 거리에서 유독 그 음식점만 사람들로 들끓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오찬이 흡족해서 그랬는지 검게 변한 하늘에선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떠나는 발걸음이 여유로워졌다. 이미 우산은 짐가방에 넣고 싸버려서 다시 꺼낼 수도 없는 일이고...
빗길을 달려 요나고 공항까지 한시간 반쯤 걸렸던가 모녀는 처음에만 아쉬운 마음에 창밖 풍경에 시선을 돌렸을 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공항 규모가 하도 작아서 수속하는 승객들도 딱 우리가 탈 비행기 인원밖에 없었는데도 줄은 참 엄청 오래 섰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비하면 돌아오는 비행시간 1시간 20분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올 때와 똑같이 성의 없는 기내식을 물리치고 간만에 종이 신문 하나를 다 훑었더니 벌써 착륙준비를 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던 파아란 한국 하늘. ^^*
그러나 저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이 땅도 잔뜩 흐렸었다.
그러고 보니 2주 전 일인데 두어달은 된 일처럼 아득하다. 그래도 전혀 짧지 않은 사흘이었다. 요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 두 가지.
1. 앞으로 또 모녀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냥 국내 여행지만 실실 다니는 게 낫겠다. 물론 그마저도 섣불리 떠날 마음은 먹기 어려울 것 같다. ㅠㅠ
2. 내 일본어 발음이 꽤 괜찮은가보다! 다음 일본여행을 위해 (행여나?!) 일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나? ㅋㅋ 답례 인사 따위로 내가 쓴 말은 딱 두 가지,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랑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였는데 내가 저 말을 하면 일본인인줄 착각하거나 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막 말을 더 붙였다. 예를 들어, 토장군 거리에서 앙증맞은 검정콩 붕어빵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을 보자 우리말로 "검정콩 드세요. 맛있어요!"라고 하면서 시식용 빵을 내밀었다. 계속 "검정콩!"을 외치는 아저씨에게 나는 예의상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면서 하나 집었는데 그 아저씨가 막 당황하면서 "아하, 스미마생... 어쩌고 저쩌고... " 그러면서 빠르게 다시 일어로 지껄이는 거다. 놀라고 당황한 나는 고개만 꾸벅하고 얼른 도망쳤다. +_+
외국인이 우리말로 하는 "감사합니다"는 어쩐지 어색해서 금방 알지 않나? 흠...
아시아나 승무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내게 일어로 말을 걸지 않나... 하여간 이상하다!
다시 유럽에 갈 날을 꿈꾸며 사두고 구경만 하다가 요번에 짐가방에 매달고 간 이름표를 잃어버렸다. 흑...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둘쨋날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짐을 보니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딱 한번쓰고 이별이라니... 마구 던지고 험하게 굴리는 짐가방에 매다는 항공용 이름표 고리를 그따위로 약하게 디자인한 인간이 나쁘다! 그나마 사자마자 자랑용으로 찍어둔 이 사진이라도 있어서 다행인건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