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12.08.27 여름 다 지나고 빙수 12
  2. 2012.08.17 장아찌 9
  3. 2012.05.22 친구의 밥상 15
  4. 2012.05.04 연아커피와 참붕어빵 9
  5. 2012.04.27 치맥 열망 12
  6. 2012.04.24 인사동 5
  7. 2012.02.29 이번엔 깍두기 3
  8. 2012.02.08 뜬금없이 팥죽 6
  9. 2012.02.07 미국산 스테이크? 8
  10. 2011.12.09 밥짓기 9

볕이 너무 뜨겁고 더워도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걸 처음 실감했던 올 여름. 생각보다 빙수는 많이 먹으러 다니지 않았다. 빙수 한 그릇 먹을까 싶다가도 막상 시키려고 보면 달디 단 빙수보다는 얼음 잔뜩 넣은 쌉싸름한 아이스커피가 더 땡기는 걸 어쩌겠나. 유명한 빙수집을 잘 모르는 것도 그만큼 내가 빙수를 즐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여름을 통틀어 빙수는 너댓 번 먹은 게 다인 것 같다. 그럼에도 뭘 또 굳이 적어두나 싶지만 마침 휴대폰 사진 정리하다 나온 사진 석장에 기록의 유혹을 느꼈다. 내년 여름에도 혹시 빙수 생각나면 참고해야지.

 

 

북촌 한옥마을 가던 날 안국역 지하에 있는 (아마도) 파리크라상에서 먹은 올 여름 첫 팥빙수. 이름이 <얼음공주>였다. 화이트초콜릿으로 만든 티아라를 얹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나, 나는 딱 한 입 먹어보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청 달아~! 달아도 너~~~무 달아서.... 지금도 몸서리가 부르르.

위에 얹은 인절미는 부드럽고 쫄깃했던 것으로 기억되나 팥은 그냥 중국산 통조림 팥이 분명하다. 가격은 9500원쯤 했던 듯.

다시 먹고픈 마음은 없다.

 

 

 

 

 

 

 

 

 

 

 

 

 

저 멀리 판교까지 가서 먹은 '아임홈'의 <밀크빙수>.

후배가 유명한 곳이라며 데려갔는데, 알고 보니 I'm Home이라는 카페가 여기저기 프랜차이즈로 있는 모양이다. 분당에도 있고 죽전에도 있고...  서판교였던가 동판교 였던가 암튼 거기도 카페거리가 있던데 딱 보정동 카페거리처럼 생겼다.

후배 말로는 위에 얹은 아이스크림도 직접 만든 수제아이스크림이라고. 곱게 간 우유얼음 아래 견과류와 팥이 숨어 있다. 견과류 좋아하는 나는 별로 달지 않고 고소해서 좋아라했는데, 인절미 대신 찹쌀떡이 나에겐 에러! 난 찹쌀떡이 달아서 싫다.

11000원이었던 걸로 기억. 밥 잔뜩 먹고 갔던 터라 둘이 먹다 다 못먹고 남겼다. 사진 찍어온 빙수 셋 중에선 단연 독보적인 1위. 그러나 최고의 빙수라고 할 순 없다...

 

 

 

신촌 명물거리에서 기차역쪽에 가까운 대로변에 있는 '호밀밭'의 <밀크빙수>. 줄서서 기다렸다 먹는 빙수집으로 워낙 유명하다며 꼭 한번 가보자는 친구 말에 싫단 말도 못하고 따라갔다. 정말로 20분쯤 줄 서서 기다렸다 먹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유명해진 건지 나로선 좀 의아했다. 혹자는 <밀탑> 빙수의 맛과 견주던데, 팥 리필해주는 거 말고 어디가 비슷하다고! 통단팥의 씹히는 맛으로 보아 여기서 직접 만든 것 같기는 했고, 콩고물 안 묻힌 찹쌀떡 얹어주는 것도 밀탑 식이긴 하다. 하지만 빙질과 맛은... 으음. (밀탑 빙수 먹어본지 오래됐긴 하다만;) 어쨌든 가격은 저렴했다. 단돈 5500원. 당연히 양이 적은 편인데, 둘이 하나 시켜놓고 팥 리필 두번이나 해서 먹는 사람들도 있더라. 으어.... 달랑 두개 나온 찹쌀떡은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 팥소를 처음부터 아예 따로 주는 건 마음에 들지만 우유얼음을 너무 곱게 갈아서 숟가락질 몇번 하면 금방 물이 되어버린다. 팥 없이 그냥 얼음만 먹으면 딱 <서주아이스주> 맛이라고 내가 말했더니 친구도 동의했다. ^^;

 

 

부산 광안대교 주변인가 그렇게 팥빙수 골목이 유명하다는데, 정말 싸고도 별로 안 달고 맛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워낙에도 단팥을 좋아하지 않으니, 막상 가보면 시큰둥하게 될듯...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최고의 맛으로 각인된 빙수의 추억은 두 군데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세검정 모 대학 언덕배기에 있던 그랑빌 분식의 커피빙수. 수십년 전이라 그저 빙수 얼음에 가루커피와 연유를 듬뿍 얹어주는 게 전부였는데도 정말 너무너무 맛이 있었다. (내 키가 요렇게 작은 이유가 정말로 중학생 때부터 탐닉한 인스턴트 커피 때문인지 아닌지 못내 궁금타;;) 그집은 그랑빌 국수라고 해서 쫄면을 칼국수처럼 끓인 국수가 엄청 맛있고 유명했는데, 뜨끈한 그랑빌 국수를 후후불어 먹고 나서 후식으로 커피빙수를 먹으면 정말이지 세상이 내것인 듯 기분이 좋아졌었다. 졸업후에도 그 맛을 못 잊어 가봤더니 분식집이 통째로 없어졌두만...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아 글쎄 신촌 호밀밭의 커피빙수도  인스턴트 가루커피를 얹어주길래 깜짝 놀랐다. 호기심이 약간 동하긴 했으나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안드는 비주얼. 그 옛날 그랑빌의 커피빙수는 가루커피에 우유랑 연유를 듬뿍 얹어주어 진짜 맛있었는데... 

 

두 번째 역시 공교롭게도 분식집에서 팔던 빙수다. 하기야 수십년 전엔 지금처럼 카페가 많지도 않았고, 빙수는 여름에 제과점에서 주로 파는 한정 상품이었다규~! 암튼 내가 반했던 두 번째 빙수는 바로 이대앞 가미분식의 수박 빙수. 가미도 여름 한철 수박빙수에 연유를 듬뿍 얹어 내주었던 것 같다. 나 설마 빙수가 아니라 연유 맛을 좋아했던 것 아니겠지? ㅋ 째뜬 가미분식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주인이 바뀐 이후로 맛이 완전히 달라져 발길을 끊은지 10년도 넘은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정말이지 시험 끝난 다음이나 여름 방학 때 큰 마음 먹고 이대앞에 나가 가미분식 찾아가는 걸 대단한 행사로 여겼었는데...

 

이제는 사라져버린데다 추억이 가미되어 더 맛있었다고 느껴지는 그런 상상의 빙수맛 말고, 진짜로 내 입맛에 꼭 맞는 빙수가 어디엔가는 있으려니 싶어서 해마다 여름이면 빙수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 커피빙수 맛있게 하는 집 없을까, 하는 나의 로망은 이번에도 내년으로 넘겨야할듯. 

Posted by 입때
,

장아찌

식탐보고서 2012. 8. 17. 01:59

ㅋㅋ 한꺼번에 폭풍 포스팅이다. '레시피' 들어가는 영화 후기 쓰고 보니 생각난 게 있어서 또...

 

노년의 엄마는 살림을 손에서 놓은지 오래됐으면서도 철철이 찾아오는 주부 본능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햇마늘 나오면 꼭 한두 접 사야하고, 가을에 태양초 고춧가루 누가 고향에서 가져다 판다고 하면 또 막 사고 싶어한다. 김치도 안담그면서 대체 왜!! 보관 문제도 그렇고 쓸데없이 일 벌이는 걸 완전 싫어하는 내가 방방 뜨면서 극구 말려보기는 하지만, 나의 투정쯤은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지 올해도 또 햇마늘을 사들였다. 그것도 두 번이나!

 

시위의 방편으로 나는 마늘까기에 손도 대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혹시라도 다 썩어서 버리게 되면 쓰레기 치우는 건 내가 담당하겠노라고 악담을 했다. 그랬더니 이 노친네 몇달에 걸쳐서 가끔씩 마늘을 까고 또 까고... 현관 근처에 봉지째 굴러다니던 두 접의 마늘까기가 오늘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v 다 내가 구시렁구시렁 투덜투덜 악담을 추임새로 넣은 덕분에 엄마가 오기로 다 깐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1차로 깐 마늘을 처리는 해야하니 어쩌겠나. 한달 전 쯤 소량으로 장아찌를 담갔다. 예년에도 시도했지만 막상 또 담가놓으면 잘 드시지도 않는다. 맵고 아리다나 뭐라나. 내 실력 부족 탓으로 덜 삭혀서 그런가 싶어 요번엔 내맘대로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제대로 찾아보고 시도를 했는데, 결과물이 제법 흡족하다.

 

간장 달여서 붓자마자 찍은 것

냉장고에 보따리 보따리 깐마늘 봉지가 점점 늘어가니 일부는 다져서 냉동실에 넣는다고 해도, 또 한번 마늘장아찌를 담가야할 것 같아 한달 전의 기억을 더듬어 적어놓기로 했다.

 

싱겁고 덜 달게 만들어야 하니 검색해본 방법 그대로 적용한 게 아니라서.

 

<마늘 장아찌>

마늘, 간장, 식초, 물, 설탕, 매운고추.

 

1. 깐마늘은 잘 씻어 채에 건져 물기를 말린다. 통째로 담가서 껍질을 발라 먹는 방법도 있지만 우린 그렇게 담가놓으면 귀찮아서 누군가 손으로 죄다 발라주어야 하기에, 그 노동은 내 몫이 될 게 뻔하기에 알마늘로 담근다.

 

2. 예년의 경험상 햇마늘은 특히나 단단하고 매워서 잘 안 삭는 것 같아 이번엔 굵기가 굵은 녀석들은 절반, 또는 삼등분으로 저몄다. (그러느라 손 매워 혼났다. 비닐장갑 사용 추천;;)

 

3. 검색해보니 대체로 간장과 식초, 물, 설탕의 비율이 1:1:1:1이었으나, 그럼 너무 달고 짤 것 같아서 설탕의 양은 얼추 1/3로 줄였다. 간장에도 단 맛이 있으니까.

일단 식초와 물, 설탕의 비율을 1:1:0.3의 비율로 촛물을 만들어 사나흘 정도 마늘을 담가놓는다. 마늘이 잠기도록... 혹시 뜨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종지를 엎어 두었다. 하얀 마늘이 연두색으로 변해가는데 연두색이 꽤나 진해져야 매운 맛이 다 빠지는 것 같다.

 

4. 식촛물을 냄비에 따르고 간장은 처음 넣은 물과 식초의 7할(이라지만 사실 정확하지 않다. 반컵보다 약간 더 많았음)  정도의 비율로 넣고 끓인다. 이 때 매운 고추도 몇 조각 투척. 칼칼한 맛이 더해진다.

 

5. 오이지 담글때도 그렇고 나로선 이해가 잘 안되지만 팔팔 끓여서 식힌 간장촛물은 뜨거울 때 그대로 마늘에 붓는다. 그래야 아작아작하다고. (상식적으론 겉이 익어 물러질 것 같은데 왜 더 아작아작해질까나;; ㅋ) 그러니까 보관용기는 당연히 유리로 해야할 듯. 팔팔 끓인 물로 병을 소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어차피 양도 적고 냉장고에 넣고 먹을 거라 소독 같은 절차는 생략했다. 

 

6. 간장농도가 짙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상온에서 열흘 쯤은 두어야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이 드는 것 같았다. 오래 보관해두고 먹으려면 중간에 장을 한번 더 따라서 끓여 부어야 한다고.  

 

 

마늘에서도 좀 수분이 나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간장촛물이 좀 남았는데 버리기엔 아까워서 앙파 장아찌도 같이 담가보았다. 근데 울 엄니, 부드러운 양파 장아찌를 더 잘 드신다. ㅋㅋ 어쩔 수 없이 계속 양파 두세개 씩 담그고 있는 중.

 

 

<양파 장아찌>(라지만 피클에 가까운 것도 같다)

양파, 간장, 식초, 물, 매운 고추.

 

1. 양파를 씻어 적당한 크기로 집어먹기 좋게 자른다.

 

2. 양파는 단맛이 있으니 설탕 생략. 간장:식초:물을 0.7:1:1의 비율로 냄비에 붓고, 냉동실에 잘라 넣어둔 매운 고추 몇 조각 투척해 파르르 끓여 부으면 끝. 하루 이틀이면 곧바로 먹을 수 있다. 날로도 먹으니까 굳이 삭힐 필요도 없고, 피클 담글 때를 생각하면 간장을 끓여 부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더 아작아작해진다니까...

 

 

 

Posted by 입때
,

친구의 밥상

투덜일기 2012. 5. 22. 17:26

입던 옷차림에 슬리퍼를 대충 끌고 아무때나 스스럼없이 집으로 놀러가도 좋을 동네 친구는 이제 없다. 여전히 '우리집으로 놀러와'라고 말하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선뜻 나서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나만해도 몇년 전까진 아주 가끔 친구가 집으로 놀러오는 일이 있었으나, 조카들 놀러오는 것도 귀찮은 마당에(!) 친구가 집으로 오는 건 이제 손사래를 치며 말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청소하기 싫엇!

 

내 입장에선 차라리 그냥 밖에서 만나서 수다떨고 밥먹고 차마시는 게 훨씬 편하고, 전업주부든 아니든 친구들도 대개 내 의견에 동감한다. 혹시 아이가 어리다든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모이게 되더라도 밥은 반드시 나가서 먹거나 시켜먹는 것이 대세. 그렇더라도 나로선 한끼니 내 손으로 안챙겨도 해결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누군가에게 집밥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황공무지한 일이 된지 오래. 사실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동생네 집에 가서 큰올케가 해주는 집밥을 얻어먹으며 황송해한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더러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시누이 노릇이고 아니고를 떠나 똑같이 지겨운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양심이 저릿저릿 하는 것 같다.

 

암튼 집밥의 귀중함을 알기에 누구에게든 함부로 청할 수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으며 누가 해준다고 하면 일견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최근 그런 귀한 집밥상을 친구에게 연달아 받는 일이 생겼다. "요리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밥값으로 니가 해!"라고 하는 친구들도 아니어서 나는 그야말로 황송하고 감격했다. 귀찮게 나가서 먹지 뭘 밥을 했느냐고, 괜한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하던 나에게 그들은 좋은 사람을 위해 차리는 밥상은 전혀 피곤하지도 귀찮지도 않다는 대답으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했다. 나는 매끼니 밥상 차리면서 노상 인상 구기고 툴툴대는 인간인데...

 

확실히 그들은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 틀림없다고 여기며, 괜한 죄책감까지 품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사진을 담아둔 김에 고마움과 자랑을 겸한 포스팅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내가 이런데다 자기네가 차려준 밥상 사진을 올리고 주절대는 짓거리를 하고 산다는 건 모르고 있으니 금상첨화. 친구가 해준 요리 중엔 참고 삼아 나중에 해먹어도 좋을 것들도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한 기록이 될 거라 믿는다.

 

밥상1.

이중에 나도 시도해본 건 냉이무침과 새싹채소 샐러드. 뒷줄 왼쪽, 삼치를 밀가루 입혀 굽고 데리야끼 소스를 끼얹은 건 한번 해먹어보고 싶은데 귀찮아서 잘 안된다. 소금구이로도 맛있는걸 뭐! 그날 친구의 냉장고엔 이 요리를 위한 레시피 적힌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친정엄마가 해주셨다는 김치 두 종류 말고는 따끈한 잡곡밥까지 죄다 신선한 반찬. 과연 몇시간을 공들여 차려낸 밥상일지 감개무량.

 

밥상2 

당연히 밖에서 사먹을 거라 생각했다가 집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놀랐던 두번째 친구의 밥상은 사진 한장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착한 순간 씻어놓았던 쌀로 돌솥에 밥을 앉히고 중탕으로 계란찜까지... 죄다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이라 손 가는 거 하나 없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중탕 계란찜도 누룽밥도, 부추전도 저절로 되는 요리는 아님을 내가 왜 모르나. 우리집 계란찜은 늘 전자렌지에 뚝딱 해먹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퍽퍽하고 딱딱해져서 계란찜 메뉴로 눌러놓고도 틈틈이 휘저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밥 한공기 다 먹고 누룽밥까지 과식한 바람에 위가 아파서 저녁은 굶어야 했다. ㅎㅎㅎ

 

밥상3

 

이날도 저 수북한 밥그릇 좀 봐라. 원래 집에서 먹는 양은 저 절반쯤 되는데... 밖에만 나가면 꾸역꾸역 참 잘도 먹는다. 따끈따끈한 새밥은 정말 그냥 밥만 씹어도 맛있다는 걸 이제 나도 아는 나이랄까... ㅠ.ㅠ 이 친구네 냉장고 안엔 밑반찬이 단 한 개도 없고, 매끼니 새로운 반찬을 즉석에서 해먹는 걸로 유명하다. 가운데 있는 건 맵지 않게 끓인 닭볶음탕이고, 부추 샐러드와 부추전도 내가 보는 앞에서 금세 뚝딱 만들어냈다. 여덟살 짜리 아들놈이 초록색 부침개를 좋아해서 부추를 갈아 체에 걸러 놓았다가 저렇게 앙증맞은 부추전을 부쳐먹는단다. 켁... 가서 울 엄마 부쳐드리라고 초록색 반죽을 준다고 해서 급사양했다. 울 엄마가 애기도 아니고! 이 다음날 부추 사다가 부추가 잔뜩 씹히는 두번째 밥상 속 부추전을 만들어 먹고, 남은 생부추는 비빔국수에 넣었더니 엄만 안 씹혀 못먹겠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들기름과 간장 들깨로 버무린 향긋한 부추샐러드는 우리집에선 못해먹을 음식이란 의미. 대신에 닭볶음탕을 그렇게 간장에 청양고추만 조금 넣고 안동찜닭처럼 해먹어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

'우유만 마시던 연아가 커피를 마신다'고 했던가? 고현정의 내레이션이 깔린 연아커피 선전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한번 먹어봐야지 했었는데 막상 마트엘 가면 늘 까먹었다. 아예 인스턴트 커피 코너 쪽으론 잘 안가게 되기 때문이다. 성묘갈 때 타가려고 사놓았던 경쟁사의 믹스커피(강동원 커피!)가 꽤 오래 굴러다닌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어쨌거나 이미 연아커피를 시음해본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호기심은 남았다. 아마도 순전히 모델에 대한 호감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사에 시큰둥, 과대광고를 비웃는 나마저도 이러니 엄청난 모델료를 주고서라도 광고계가 특정 인물을 선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비록 제품값에 그 엄청난 모델료며 홍보비용이 다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째뜬 광고 보고 호기심이 인 먹거리가 연아커피 하나였으면 또 그냥 흐지부지 잊고 말았을 텐데, 얼마전 내 눈에 딱 들어온 TV광고가 있었으니... 송창식이 노래를 부른 <참붕어빵>이다. 유명 모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그냥 붕어빵이 주인공인 광고에 송창식이 CM송을 불렀는데, 단박에 먹어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 바삭한 붕어빵을 한번도 못 먹어보고 그냥 지냈다. 어쩐지 억울해 억울해. 봄이 되면서 거리마다 붕어빵 노점상은 다 사라졌으니, 제과회사에서 만든 붕어빵 과자라도 사먹어보리라 불끈 결심이 섰다.

그러고도 까마귀 정신이라 까맣게 잊고 장볼 때마다 몇번을 그냥 건너 뛰고는 어쩌다 만나게 되는 광고에 아차! 하기를 여러번. 요번엔 마트 갈때 적는 메모지에 연아커피와 참붕어빵도 일부러 적어넣었다. 적어가서도 빼놓고 사오는 물건이 있는 마당에, 안 적어가서 생각해내기를 기대하는 건 이미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해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라고 하면 당연히 좀 과장이다;; ㅋ) 시식에 돌입했다. 둘 다 단 거라 한꺼번에 시도했을 리는 없고, 일단 참붕어빵부터 밤참으로 뜯었다. 엇.. 근데 과자 포장이 뭐이리도 예쁘다냐!

itistory-photo-1

(이미 두개 먹고 나서 생각나 사진을 찍었다 ㅋ)

요즘 모든 과자가 요란뻑적지근한 과대포장을 하는 통에 박스는 꽤 큰 반면 막상 열어보면 은박비닐 포장된 내용물이 몇 개 안 들어 화를 돋우는데, <참붕어빵>도 그 대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속포장을 색색깔로 네 종류나 달리 해놓다니 무슨 팬시용품 같기도 하고 왠지 맘에들어! 포장비에 투자할 돈으로 내용물이나 좀 더 크게 만들지, 라며 노상 투덜거린 게 민망스럽게도 나는 과대포장 상술에 또 홀딱 넘어가 후한 점수를 주고 앉았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속포장을 까서 시식. 으으 역시 달구나. 찹쌀을 넣어 쫄깃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더니 역시나 내가 기대한 붕어빵의 맛과는 거리가 좀... 쫄깃거리는 게 아니라 내 입엔 좀 찐덕찐덕 마시멜로 같기도 하고 스펀지 같기도 하고, 씹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마들렌처럼 부드럽게만 만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째뜬 엄연히 밤참끼니로 먹는 것이므로 우유랑 삼켜서 그럭저럭 2개를 먹었지만 너무 달아서 한번에 그 이상은 못먹을 것 같았다. 열량표시를 보니 역시나 2개가 '1회 제공량'이라고 되어 있고 280칼로리쯤 된다고. 당연하겠지만 밥한공기를 너끈히 넘기는 열량이다. 니글니글 텁텁하게 남은 단맛 때문에 결국 나는 얼른 대저토마토를 우적우적 씹어먹어야 했다. 마트에서 할인해 3천5백원쯤 주고 샀으니 할인 전엔 마리당 500원 정도라는 의미다. 요새 2천원에 세마리 주는 진짜 붕어빵보다는 저렴하지만 물론 크기도 훨씬 작고 팥소도 부실하다. 앞으로 송창식 아저씨가 노래로 낭랑하게 꼬셔도 다신 안 사먹어야지, 쳇.

다음날 연아커피는 오전 두번째로 마시는 커피타임에 시도해보았다. 설탕 부분을 조절하더라도 단맛을 감안해 냉커피로 마셔볼테닷. 헌데 그게 나의 착오였던 듯. 가뜩이나 연한 연아커피를 얼음 잔뜩 부어 냉커피로 만들어놓으니 이도저도 아닌 싱거운 맛만 강조되는 게 아닌가. 다시 다음날엔 적당히 물을 조금 부어 뜨겁게 타 마셔보았는데, 그간 원두 갈아마시기에 심취하여 믹스커피의 참맛을 까먹은 듯, 달달하고 진한 자판기 커피 특유의 매력을 통 느낄 수가 없었다. 부드러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커피 본연의 매력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걸까나. 에잇, 연아커피도 다신 안 사먹을 테닷! (근데 남은 봉지믹스는 어쩐담;;)

언젠가 누군가 새로 나오는 과자와 라면 따위를 죄다 먹어보며 올린 시식기를 킬킬대며 읽었던 적이 있다. 어찌나 자세하고도 구구절절 느낌이 자상하던지. 그게 누구였더라? 나는 귀도 막귀라서 음악을 섬세하게 구분해 듣지 못하듯, 입도 막입이라 아무거나 잘먹는 반면 미묘한 맛의 차이를 세세하게 구분해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어불성설 이런 포스팅을 한다는 게 좀 민망하지만, 워낙 별렀다가 먹어보고 실망한 참이라 식탐녀의 흔적으로 기록해둘 만하다 여겼다. ^^;

Posted by 입때
,

치맥 열망

식탐보고서 2012. 4. 27. 23:21

오만가지에 다 적용되는 줄임말을 싫어하는 편이면서도 또 줏대없이 덩달아 따라쓰는 줄임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치맥'이다. 사실 치킨에 맥주의 궁합은 건강상 대단히 안 좋은 거라지만, 어차피 건강을 심히 챙기려면 아예 술을 마시질 말아야지! 바삭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이나 전기구이 통닭을 먹다보면 탄산음료보다는 역시 시원한 맥주가 제격.

 

치킨에 맥주를 즐겨온 역사를 따져보라고 한다면 정말 까마득하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언제부턴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엔 프라이드 치킨과 튀김엔 끄덕 없고 유난히 볶음밥만 소화를 못시키더니, 급기야 기름에 튀긴 모든 음식들이 확실히 부담스럽다. 뱃속에 넣은지 몇시간 지난 뒤에도 막 기름냄새가 계속 튀어올라오는 기분이 들고 위가 붓는 느낌까지 있다. 어흑, 내가 치킨에 맥주 마시는 걸 얼마나 좋아라 했는데!

 

그래서 자주 못먹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가끔 기회가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까짓것 위 좀 혹사시키면 어때! 웩웩 게워내고도 또 술 퍼마시던 때에 비하면야 치맥 정도는 양반이다. 어차피 치킨에 탐닉하느라 배불러서 많이도 못 마시질 않는가. ㅎㅎ

 

홍대 레게치킨이 그리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통 가볼 기회가 없었다. 갈 때마다 자리가 없어! 젠장. 근데 꿩 대신 닭이라고 얼결에 들어간 치킨집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워낙 치킨을 멀리하며 살다보니 내 입엔 그저 닭만 대충 튀겨놓아도 무조건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일행도 맛있다고 칭찬했으니 객관적인 평가도 뒷받침된 감상이다. 게다가 생맥주에 무슨 짓을 한 건지 거품이 아주 쫀쫀한 느낌으로 괜찮았다. 맥주 자체가 진한 맛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물타서 싱거운 맥주는 아니라는 데서 점수를 얻었다. 이름하여 깐부치킨. 상상마당 건너편 주차장 길 모퉁이에 있다. 

 

이젠 맥주 한 두잔에 알딸딸하는 형편없는 주량으로 전락했으면서도 성인이 된 이후로 음주를 즐긴 역사가 길기 때문인지 비가 온다거나, 금요일밤이 되면 이상스레 술이 마시고 싶어짐을 느낀다. 날씨 화창해진 요즘 금요일밤은 더더욱! 냉장고에 사다 넣어둔 캔맥주도 있지만 그건 또 일요일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한 캔씩 홀짝거리는 용도였다. 출근도 안하는 주제에 왜 일주일이 다 가고 월요일이 오는 게 서글픈지 원. 그러나 일요일밤을 헤롱헤롱 보내다 12시를 넘기면 월요일을 술기운에 시작하는 것 같아 그짓도 몇번 하다 관뒀다. 혼자 술마시는 게 알코올 중독의 시초라는데! ;-p

 

암튼... 지난주 금요일밤의 치맥이 못내 그리워 사진 쓰다듬다 마음을 달래려 시작한 포스팅이다.  

이름이 [순살 치킨]이었을 거다 이건 [마늘 치킨]

식탐녀답게 휴대폰에 종종 먹거리 사진을 모아둔다. 물론 먹는 게 급해서 사진을 못찍을 때가 더 많지만, 사진으로도 갖고 싶은 음식이 꼭 있더라고... 그러다 가끔 배경화면으로 쓰기도 한다. ㅋ

 

메뉴판을 보고 별 생각 없이 시켰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이 두 메뉴보다는 크리스피 치킨이 더 인기인 것 같다. 발라먹기 귀찮더라도 담엔 그걸 시켜먹어봐야지. 같이 튀겨 내온 감자튀김의 양이 좀 적긴 하지만 파삭파삭 맛있었다. 전기구이 통닭에 마늘소스를 얹어 준 것도 담백하니 맛났음. 생맥주는 3천원, 치킨 가격은 16000-17000원 전후. 가격은 다른 데와 비슷한데 양이 좀 적은 것도 같다. 이 정도면 보통인가? 나로선 엄청 배고플 때 들어가서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는지 진짜로 훌륭한 맛인지 한번 더 먹어보고 판단해줄 테다. 치맥 궁합은 역시 진리!

Posted by 입때
,

인사동

추억주머니 2012. 4. 24. 20:19

얼마전 무척 오랜만에 인사동엘 갔었다. 그것도 날씨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깔려죽을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사동길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며 숨막힘을 느꼈고, 마냥 아쉬웠다. 이제 그 옛날 인사동 분위기는 절대로 느껴볼 수 없겠구나 싶어서였다. 관광객과 온통 중국제 투성이 기념품으로 가득한 인사동은 이제 더는 전통의 거리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자꾸 모여드는지 그걸 통 모르겠다. 하기야 나도 순전히 항아리 수제비 먹을 욕심에 간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확실히 인사동은 이제 포장만 요란한 불량품 같다. 내가 맨처음 화방과 골동품 가게 늘어선 인사동 구경을 다니던 중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인사동은 꽤나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이젠 인사동에 나갈 일이 생기면 심호흡부터 하며 스트레스를 미리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한 곳이 되고 말았다. 그 동네를 버려놓은 건 서울시일까, 상업자본일까, 그냥 세월의 변화일까.

 

어린시절 인사동엘 왜 처음 나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잘난 척 서예도구를 사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화선지라도 학교앞 문방구에서 파는 거랑 인사동 화방에서 파는 거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같은 가격이라도 인사동 화방에서 파는 화선지는 두툼하고 표면이 오톨도톨 먹물이 잘 번지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화선지를 묶음으로 사서 나눠갖고 뿌듯해 했다. 서예용 붓도 적당한 가격에 꽤 질 좋은 걸 살 수도 있었다. 우리 같은 애송이는 감히 구경도 못할 엄청난 고가의 붓부터 학생용 붓까지 화방엔 다양한 종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화선지 몇 장 사러가서도 그런 붓을 쓰다듬어 보는 게 나는 퍽 기분이 좋았다. 멋드러지게 생긴 벼루나 연적 같은 건 그저 그림의 떡이었지만 별로 비싸지도 않으면서 잘 갈리는 먹을 사는 것도 가능했다. 고가품만 파는 화방에서야 중학생 손님쯤 거들떠도 안보는 데가 많았고, "화선지 있어요?"라고 물으면 귀찮은 듯 손사래를 쳐 내쫓는 주인들도 만났지만, 의외로 친절하게 맞아주는 주인들도 있었다. 미술반 시절엔 고급 액자로 골라 그림 표구를 맡긴 부잣집 딸 친구를 따라 표구상에 들어가본 적도 몇번 있었는데, 표구상에서 나는 향긋한 나무 냄새(지금 생각해보면 나무냄새가 아니라 '본드' 냄새였을 수도 있겠다;; ㅋ)가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암튼 인사동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림과 골동품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로도 어른이 될때까지 인사동엔 가끔씩 나갈 일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 문방구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한지로 된 편지지와 편지봉투, 곱게 물들인 한지 포장지가 당시엔 인사동 화방에만 있었고, 종이를 꼬아 만든 갈색 지끈도 거기 나가서 구해야 하는 품목이었다. 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되면 낙원상가 아래의 허름한 술집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를 피해 후다닥 길을 건너 꼬불꼬불 골목길로 경인미술관을 찾아가 대추차나 수정과를  마시며 뿌듯해했다. 나의 한옥 선망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던가? 당시만 해도 경인미술관엔 잔디 깔린 너른 마당이 있고 잘 생긴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비오는 날 처마로 떨어지는 낙숫물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거기가 번잡한 종로 한복판이란 걸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마당이 사라진 경인미술관에선 이제 그런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아직 안 없어지고 있어주는 걸 고마워 해야 하는 건지도.

 

째뜬 끼니때 인사동엘 나가면 나는 비싸기만 했지 별로 먹을 건 없는 한정식보다 꼭 <조금> 솥밥을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안국동쪽 초입에 있는 그 밥집에서 먹던 굴 솥밥, 새우 솥밥, 송이 솥밥 같은 걸 무척 좋아했는데, 5, 6천원쯤 할 때 먹기 시작했던 <조금> 솥밥 가격이 마지막 먹었을 때 만삼천원이었으니, 참 세월이 엄청 흐르긴 한 것 같다. ^^; 하지만 일식 느낌이라 반찬도 별로 없고 양도 많지 않은 솥밥을 그 가격에 먹는건 낭비라는 측근들도 있었고, 인사동의 번잡함을 다들 싫어하는 탓에 최근엔 가본 적이 없어 혹시 없어진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내가 인사동 밥집의 양대산맥으로 치는 또 한 군데, 인사동 항아리 수제비집은 아직 그대로던데. 사실 지난번에 번잡한 토요일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간 이유는 순전히 항아리 수제비집엘 가기 위함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맛이 좀 변하긴 했어도(옛날엔 깻잎을 넣어 향이 더 진했는데, 외국 관광객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인지 언제부턴가 깻잎은 사라지고 말았다 ㅠ.ㅠ) 굴과 감자를 넣어 끓여 항아리에 담아주어 표주박으로 각자 퍼담아 먹는 항아리수제비는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음식이다. 동동주에 해물파전을 곁들여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옵션.

 

회사생활 할 때 외국에서 온 사람들 서울 관광을 시켜줘야 할 때면 나는 거의 창덕궁-인사동-남대문시장 정도로 동선을 짰고, 불고기나 갈비 이외의 한국음식에도 도전해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 항아리수제비집으로 끌고갔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굴을 넣은 수제비를 난감해했지만 해물파전과 동동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회사를 때려치운 뒤 영어로 씨부리는 걸 까먹지 않으려고 종로통 학원엘 꽤 오래 다니면서는 거의 하루 걸러 한번씩 인사동 찻집과 카페를 전전했다. 차를 마시고 싶으면 <경인미술관>이나 <옛찻집>에,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산타페>와 <볼가>에 가서 두세 시간씩 수다를 떨었다. <산타페>와 <볼가>엔 꽤 먹을만한 점심 특선도 있었고 좀 진한 커피도 맛있었는데, 둘 다 이국적인 인테리어 때문에 좋아하긴 했어도 특히 <볼가>엔 늘 싱싱한 생화가 여기저기 꽂혀 있어 더 애용했다. <산타페>는 없어진지 한참 됐는데, <볼가>는 대학로의 <릴리 마를렌>과 더불어 아직 있다는 것 같다. <볼가>엔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인사동엘 나가는 게 워낙 부담스러우니 선뜻 실행하지 못한지가 수년째다. 상대적으로 항아리 수제비집엔 한가한 시간을 틈 타 꽤 들락거린 걸 보면 난 역시 커피보다 탐식 욕망이 더 강한 사람. 아, 그러고 보니 인사동에만 있던 주막 분위기의 전통술집도 거의 다 사라졌다. 솔잎 막걸리를 비롯한 온갖 막걸리와 동동주, 홍주 따위에 취해 비틀거리며 인사동 밤거리를 빠져나오던 것도 다 과거의 추억일뿐.   

 

오래 전엔 엄마 때문에도 인사동엘 갈 일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알록달록한 통영 누비 덧신을 사러 꼭 종로쪽 인사동 초입에 있는 잡화상을 찾았다. 본인이 신을 것 말고도, 외할머니, 이모 것까지 크기별로 덧버선을 고른 뒤엔 수 놓인 누비 주머니 같은 것도 오래 만지작거리다 사들였다. 화장품 지갑, 염주 지갑, 동전 지갑 등으로 쓰던 통영 누비 파우치 몇개는 아직도 멀쩡한 모습으로 집에 남아 있다. 헌데 생활한복을 파는 집들이 더러 인사동에 남아있긴 하지만 오며가며 살펴본 바로는 이제 통영 누비를 파는 잡화점은 사라진 것 같다. 인사동에서 파는 복주머니, 행낭, 조각보 같은 것들이 이젠 다 중국에서 들여온 싸구려 물건이라니 손으로 일일이 꿰매 누빈 통영 누비 수공예품이 발 붙일 구석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 옛날에도 통영 누비는 시장에서 파는 막 덧버선보다 꽤나 비쌌는데, 엄마랑 외할머니는 그래도 통영 누비 덧버선이 편하고 따뜻하고 오래 간다며 굳이 인사동까지 행차했던 거다. 하지만 통영 누비 덧신의 오랜 팬이었던 울 엄마도 어느덧 보들보들한 수면양말의 매력에 굴복한지 오래다. 

 

주말 오후의 인사동엔 걸어다니는 것조차 힘에 부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지만 뜻밖에 항아리 수제비 집은 한산했다. 전에 없던 메뉴가 생겨난 걸 보면 그곳의 인기도 시들해진 듯했다. 그곳 역시 20년 가까이 안 없어지고 있어주어 고마워해야할 판. 그러나 수제비가 먹고 싶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르는 곳일지언정 앞으로도 선뜻 가겠다고 나서기엔 인사동이 너무 많이 변했다. 요번에도 거의 2, 3년 만에 다시 찾은 것 같은데,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별도로 시끄럽고 번잡한 인사동에선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쓰고 앉았으면서도 대체 왜 쓰는지 의아해 하며 며칠에 걸쳐 이 포스팅을 하고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인사동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사라져간 것들을 돌이키는 마음은 늘 조금 서글프고 처량하다.

Posted by 입때
,
원래도 식탐이 많아 엥겔계수가 높은 편이지만 요샌 장보러 마트가기가 정말 겁날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과일과 채소는 넉넉히 사와야 마음이 뿌듯한데 설날 이후로 계속 어찌나 비싼지! 원래도 이맘때면 끝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 과일 중에 제일 만만한 귤은 별 부담없이 먹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나, 요즘 귤값은 거의 금값이다. 100g에 무려 870원. 멋모르고 담다보니 귤 한개당 거의 천원꼴이더라. ㅠ.ㅠ 예전엔 5천원어치만 사도 한보따리라 막 물러져 버리곤 했는데...차라리 한통에 만원 하는 딸기가 더 싼 느낌. 매번 사오는 친환경 양배추도 너무 비싸서 반통씩 사오고, 푸성귀 나물도 무서워서 잘 못담아오겠다. 달달한 맛이 일품인 섬초 시금치나 국산 표고버섯 좀 봉지에 담으면 막 만원이 넘는다. 어휴...

부자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뚱뚱한 건 영양가 따져 먹을 형편이 아니라 늘 값싼 정크푸드만 먹기 때문이라는데, 이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마트에서 제일 싼건 10개씩 담아 꾸러미로 파는 스팸, 참치 같은 통조림류 아니면 라면류인 듯. 할머니랑 오래 살아서 할머니 입맛이라는 평을 자주 듣는 나는 종종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 이런 게 막 먹고 싶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며칠 전 장보러 가서는 100g 당 가격을 보고 기가 막혀 포기했다. 불려놓은 국산 고사리가 100g에 2800원! 켁... 차라리 고기라면 몇만원 주고라도 사오는 게 익숙한데, 아무리 농사가 어렵고 일손이 많이 간다고 해도 나물 반찬이 한번 해먹을 분량에 만원을 넘기는 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도 물가보다 나의 노동력이 더 비싸다고 우기며 김치도 종*집 포기김치를 한 봉지씩 사다먹는 형편이니 이렇게 투덜댈 자격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며칠전부터 뜬금없이 깍두기가 먹고 싶어 또 종*집 깍두기를 한 봉지 사다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헌데 막상 손바닥만한 깍두기봉지 하나의 가격을 보고는 차마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죄다 국산 농산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한 보시기밖엔 안나오겠던데 8천원쯤 하던가... (이러면서 또 나가선 한끼 만원 넘는 음식도 막 사먹는 소비의 모순;;) 머뭇거리다 그냥 뒤돌아서려니 <제주무 990원>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지난번의 절반가격! 좀 시들시들해서 반값에 처분하는 모양이었다. 까짓것 깍두기 내가 한 접시 담아주마 하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한통 집어들었어도, 집에 와서는 좀 망설였다. 아 왜 가사일 싫어하면서 일거리를 사서 만드냐고! 그러나 깍두기는 먹고 싶으고... 에이 빌어먹을 이놈의 식탐.

해서 무국 끓일 1/3토막은 남겨놓고 겨우 700원어치 정도의 무로 어제 깍두기를 담갔다는 것이 별것도 아닌 이 포스팅의 결론이다. 알량하게 두세 그릇 분량이긴 해도 무조건 맛있어야 하니까, 새우젓도 넣고 찹쌀풀도 끓여넣고 매실청도 넣었다. 일부러 자작하게 국물도 만들어 부었는데 오늘 보니 생각보다 국물이 많이 나와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익었나 안익었나 종일 몇번이나 집어먹어본 느낌으로는 꽤 맛있을 것 같다. ^^v 

내 생애 처음인가 아닌가 잘 생각도 나지 않는 깍두기를 담그며 자랑스레 사진을 찍고 보니, 점점 구차하고 비루한 아줌마스러운 블로그로 변해가는 것을 자인하는 포스팅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런 거로라도 포스팅 갯수 올리는 게 잘하는 짓인지 한심한 노릇인지...

Posted by 입때
,
되돌이표 붙은 악보처럼 절기별로 반복되는 내 인생. 기시감이 들 만큼 작년 대보름날과 똑같이 콩닥콩닥 몸을 놀려 오곡밥과 나물을 해먹었고, 작년과 똑같이 남은 팥으로 알량하게 팥죽을 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좀 더 야심차게 찹쌀도 불려넣고 새알심도 만들었다는 것.

그러나 참고한 레시피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옛날의 기억을 떠올려 만든 팥죽은 절반의 실패였다. 삶은 팥을 체에 걸러서 거친 껍질을 빼야한다는 건 알았지만, 껍질 영양분과다설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통팥을 그냥 사용한 건 좋았는데 새알심이 문제였다. 맵쌀가루를 뜨거운물로 개어 익반죽을 해야한다는 것까지는 잘 기억하고 있었고, 동글동글 내 입에 딱 맞게 작은 새알심을 빚은 것도 훌륭했다. 그러나... 새알심을 끓는 물에 먼저 삶아 팥죽에 넣었어야 하는 것을 그냥 투하했더니만 당최 익어야 말이지. 하는 수 없이 건져내 끓는 물에 다시 삶아보았으나 이미 회복불가였다. 딱딱한 새알심 때문에 낑낑거리며 문득 네이버 웹툰 <역전야매요리>가 생각났다. 작가에게 소재로 쓰라고 알려줄까보다. 킥킥. 손수 팥죽을 끓여본지 30년쯤 된 엄마는 아마도 새알심 반죽이 너무 되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진실인지 확인할 순 없었다.

안씹히는 건 아니지만 쫄깃쫄깃 보들보들한 새알심과는 영판 다른(마치 절반쯤 굳은 가래떡 씹어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딱딱한 새알심을 씹어야 했지만, 그래도 소금과 설탕을 소량씩 넣은 팥죽의 맛은 그럴듯했다(고 주장;;). 요즘은 정말 순전히 먹으려고 사는 인간 같아 민망스럽다. 그러면서도 굳이 여기 적어두는 건 내년에도 반복되기 십상인 대보름날 팥죽 타령의 실패를 막기 위함이다. ㅋ

조명이 어두워 누런 밀가루처럼 나왔지만 엄연히 새하얀 쌀가루로 만든 새알심

새알심이 딱딱하거나 말거나 밤참으로 처묵처묵 방금 끝장낸 팥죽


Posted by 입때
,

2008년 이후 원산지를 속여 판 미국산 쇠고기 물량이 4백톤 가까이 된다는 뉴스를 보니, 까먹은 포스팅이 떠올랐다. 당시엔 분기탱천하여 곧장 포스팅하겠다 마음 먹어놓고, 왜 까먹었을까나.

얼마 전 모임에서 어쩌다보니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게 됐다. 소수 인원이라면 몰라도 6-7명쯤 되는 인원이 돌연 레스토랑에 떼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다니 좀 뜬금없는 일이었는데, CJ 계열사에 다니는 후배 하나가  그날 하필 여자친구도 데려왔겠다 뭔가 우아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직원가 할인을 꽤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다들 순순히 응했다. 주말이라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이미 두어번 퇴짜를 맞은 뒤끝이어서, 예약을 안하면 거의 자리잡기도 어려운 듯한 분위기(들어가자마자 예약하셨느냐고 묻더군;;)에 7명이 6명 좌석에 끼어앉기로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광교쪽 종로통 단독 건물의 4층엔 와인까지 시켜놓고 분위기를 잡은 연인이나 가족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왁자지껄 메뉴판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최고급 스테이크의 가격이 10만원을 넘기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5, 6만원대의 중간가격 스테이크가 무려 <미국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꼼꼼이 메뉴를 읽어보니 프라임 어쩌구라면서 10만원 넘는 최고급 스테이크와 3만4천원짜리 안심 스테이크 딱 두 종류만 국내산 쇠고기고, 그 중간 가격대 메뉴와 제일 싼 2만2천원짜리 찹스테이크까지 전부 미국산 쇠고기였다. 우엑~!

웬만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호주산 쇠고기를 쓰던데, 어째서 거긴 미국산 쇠고기를 그렇게 비싸게 받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TV에도 노상 미국산 쇠고기를 선전해대는 수입업자측과 정부가 설마 대기업 CJ에 압력을 넣었을라고? 어쨌거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에 엄마랑 조카까지 데려가 촛불을 불태웠던 내가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먹을 순 없는 일, 선택의 여지는 안심스테이크 딱 하나 뿐이었다. 10만원 넘는 스테이크를 내 돈 주고 사먹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음식점에 가서 여러명이 다 똑같은 메뉴로 <통일>하는 거 정말 촌스럽고 싫은 행동이라 여기지만, 그날 우린 어쩔 수 없었다. 까칠하게 내가 미국산 쇠고기는 먹을 수 없다고 말했으니 다른 애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린 계속 CJ 다니는 후배에게 제발 회사 게시판에 항의 좀 하라고 놀려댔다. 단둘이 와도 풀코스로 와인까지 시키고 부가세 포함하면 수십만원은 쉽사리 넘길 고급 스테이크집에 미국산 쇠고기가 웬말이냐고!

문제의 안심스테이크. 280g이라고 적혀있던 것 같은데 참.. 조촐하다

국내산이라는 메뉴 표기를 믿고 다들 안심스테이크를 시켜 먹기는 했지만 나는 속으로 매우 찜찜했다. 혹 국내산 쇠고기 안심이 아니면 어쩐다? 원산지 표시를 속였거나, 요리사가 실수로 미국산 쇠고기랑 국내산 쇠고기의 저장고를 혼동했다면? 마침 국내산 안심이 떨어져 에라 모르겠다 미국산 안심을 대신 내놓은 거라면? +_+ 밖에 나가 먹을 땐 어쩔 수 없이 호주산 쇠고기까지 허용하지만(사실 원산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음식점에서도 쇠고기는 잘 사먹지도 않는다!), 집에서 먹는 쇠고기는 아무리 비싸도 한우를 고집하고 있거늘(비싸면 차라리 먹는 횟수를 줄이는 편이다). 젠장. 부가세 포함 4만원 가까이 되는 스테이크가 미국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씹어 삼키면서도 영 맛이 나질 않았다. 그뿐인가! 나눠 먹으려고 시킨 시저샐러드엔 하필 큼지막한 앤초비가 생선형체 그대로 막 놓여있어 비린내가 나질 않나... ㅠ.ㅠ 원래 앤초비는 곧 이탈리아 멸치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피자나 파스타에 들어가 익은 것은 그나마 눈 딱감고 먹어줄 수 있지만 날것은 도저히... 흑흑.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은 미국식 본고장 스테이크를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생겨난 음식점이라나. 그러니 당연히 미국산 쇠고기를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땐 원산지에 대한 별 생각없이 우적우적 스테이크를 먹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광우병을 우려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했던 건, 미국내에선 유통되지도 않는 18개월 이상 쇠고기와 부산물까지도 규제없이 한국에 수출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라규! 질 낮은 중국산 농산물과 공산품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위하여 무조건 <싼것>만 찾는 우리나라 무역업자들이 더 문제임을 잘 알고 있듯, 사람들의 안전보다는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못할까 나는 항상 그게 더 걱정이다. 보란듯이 원산지를 속여파는 인간들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려나 결론은 한 가지. 가격대비 별로 맛도 없고 번거로워 코웃음쳤던 <더플레이스>에 이어, <더 스테이크 하우스>에도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하는 짓이야 늘 그렇지만, 특히나 삼성일가가 하는 일이 뻔하겠지만, CJ 그럼 안되지.. 흥!
Posted by 입때
,

밥짓기

투덜일기 2011. 12. 9. 21:05

쿠쿠밥솥이 고장났다. 쌀이 안익는 건 아닌데, 수증기가 다 옆으로 새는 바람에 푸실푸실 끈기없는 낱알 같은 밥을 만들어냈다. 2년전에도 겪어본 일이라 AS 신청을 해 패킹을 갈아야겠군, 의연하게 중얼거리고는 실로 간만에 냄비 밥짓기에 도전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또 쿠쿠밥솥에 쌀을 앉혀 한번 더 끈기없는 밥을 먹으면 좋겠건만, 왕비마마가 별로 어렵지 않다며 냄비밥을 명했기 때문이다. (아 그러면 엄마가 직접 하시든지! +_+ 아마 엄마도 냄비밥을 지어본 건 20-30년을 넘기지 않았을까. 쳇)

백미, 현미, 흑미, 서리태, 보리, 기장쌀, 율무까지 죄다 쌀독에 섞어놓은 잡곡인지라, 제일 바닥이 두툼한 냄비에 쌀을 씻어 앉히고 (까마득한 옛날 놀러가서 코펠에 밥할 때 압력솥보다 밥물 넉넉히 두던 걸 떠올려가며) 밤새 두었다가 무려 다섯시반에 일어나 '새벽밥'을 지었다. 한시간 내 곁에 붙어서서 불조절을 한 덕분에 태우진 않았지만 결과는 젠장, 죽밥이었다. 삼층밥, 꼬두밥보다는 그래도 진밥이 낫지 홀로 위로하며 상전(?)에게 새벽밥을 해먹이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취사예약 버튼 눌러놓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쿠쿠밥솥의 힘과 편리함이 실로 대단한 것이었구나. 보온밥통이 있거나 없거나 옛날 엄마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솥이나 냄비에 밥을 짓고 도시락까지 몇개씩 싸주었는데, 그 고된 노동을 최소 십수년씩 어떻게 견뎠을까. 내 경우 아버지가 보온밥통에 들었던 헌밥을 드시고 출근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도시락에 누렇게 변색된 헌밥을 싸간 적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이야 해놓은 밥 금세 얼렸다가 전자렌지에 돌리면 새밥처럼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종류별로 햇반도 나오는 시절이지만(그나마도 급식을 하니 특별한 날 아니고선 도시락 쌀 일도 없겠다만;;), 옛날엔 정말로 새벽마다 부엌에서 솔솔 풍겨오는 밥짓는 냄새를 맡으며 어렴풋한 아침 잠에서 깨어나곤 했던 것 같다. 

하기야 엄마가 새벽밥을 지어주면 뭐하나. 중학생 때까지는 꼬박꼬박 밥상에 둘러앉아 다같이 아침밥을 먹었지만, 등교시간이 훨 빨라진 고등학생 때부턴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하다며 아침을 거르는 대신 5분, 10분 더 자는 쪽을 택했었다. 정 배고프면 학교 올라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꼬마김밥이나 못난이 만두를 사먹거나, 2교시 끝나고 도시락 까먹기를 해도 된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엄마는 그래도 집밥이 최고라며 집에서 들기름 발라 재고 구운 김(사실 당시 김 재는 담당은 바로 나였다 뭐;;)에 싼 밥덩이 몇개를 접시에 담아 헐레벌떡 등교준비를 하는 내방에 가져다주며 눈을 흘겼었다. 그렇면 또 난 옷 갈아입고 책가방 싸면서 희희낙락 낼름낼름 주워먹었으니 참 얄밉기도 했겠다.

어쨌거나 밥솥은 AS를 신청해 해결했으므로 난데없는 냄비밥 짓기는 한번으로 끝인데, 냄비 하나 가득 만들어놓은 죽밥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그나마 위안은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밥에 물 부어 끓여먹으면 퍽 맛있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 전기압력밥솥만 쓰면서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 수도 없어 그게 아쉬웠는데, 뜻밖의 고장으로 약간의 삽질과 고생은 있었지만 얻는 것도 있긴 하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깐.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