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13.03.14 혜화동 나들이 6
  2. 2013.03.05 2월에 놀고먹고
  3. 2013.01.18 올림픽 수제비 10
  4. 2012.11.16 그리고 부산 6
  5. 2012.11.16 안동 하회마을 8
  6. 2012.11.14 드디어 안동 9
  7. 2012.11.07 일본 북큐슈 셋쨋날 14
  8. 2012.11.06 일본 북큐슈 둘쨋날 12
  9. 2012.09.14 몸 생각 2
  10. 2012.09.08 달걀 삶기 8

대학로 쪽으로 나가 놀일이 그간 통 없었다가 간만에 어제 혜화동을 누볐다. 맛있는 커피집을 소개받기로 했던 게 지난 여름부터였는데 벼르고 벼르다 두 계절이나 지난 뒤에 드디어 성공. 향기롭고 맛있는 반나절을 보낸 행복감에 쓰다 만 밀린 포스팅들 죄다 제쳐두고 그 자랑부터 해볼란다. 요즘은 다들 입맛이 까다로워서 카페마다 커피는 웬만하면 다 맛있는 편이지만 간만에 원두까지 장만하고픈 집을 만난 게 어찌나 반가운지.  

 

위치는 번화한 대학로 쪽이 아니고 혜화동 로터리에서 주유소 옆 도로로 좀 올라가다 왼편 골목 안에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찾아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흥미가 있다면야 방법은 있겠지. 원래 나는 그렇게 친절한 맛집 안내 블로거가 아니라 항상 먹고 논 거 슬쩍 자랑 수다에 치중하는 사람. ㅋㅋ

 

 

오래된 좁은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집이란 것도 나에겐 무조건 가산점! 혜화동에도 가만 보면 아직 한옥들이 점점이 박혀있긴 하지만 대부분 폐허에 가깝던데 반갑기도 하여라...

 

<Lim's Coffee>라는 곳인데 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고소하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풍겨와 황홀했다. 직접 볶은 원두도 팔지만 로스팅 교육도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요즘은 일하기 싫은병에 이어 '뭐든 배우고픈 병'에 걸렸는지 순간적으로 로스팅 교육 받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_-;) 자체 개발해서 이름 붙인 커피와 직접 블렌딩한 커피도 여러종류인 듯했다.

 

어제는 '케냐투샤'라는 커피를 추천해주어서 드립으로 마셨다. 드립 커피 가격은 6천원 정도였던 듯. 드립커피야 어디나 좀 비싸지만, 여긴 원하면 다른 종류로 커피를 얼마든지 무료 리필해 마실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시간만 늦지 않았으면 나도 세잔까지 마실 욕심을 부렸겠지만... '만델링'을 두번째로 마시고 참았다. 진하게 볶은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라 요새 집에서도 케냐AA를 마시고 있는데, 이집 커피는 특히나 진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향을 높이는 로스팅 비법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만델링 원두를 사와서 오늘 내가 어설픈 솜씨로 드리퍼에 내려 마셨는데, 오오 어제 전문가 솜씨보단 못해도 맛있게 내려졌다. ^_______^  좀 전엔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추출해서도 다시 마셔보고 간만에 카페놀이에 흠뻑 빠졌음.

 

게다가 드립커피 담아주는 커피잔도 예뻐! ^^; 손님마다 커피잔을 달리 주는데 처음 마신 커피잔은 연분홍색이라 사진이 잘 안나왔다. 음식 앞에두고 여러컷 사진질하는 건 민망해서 달랑 한장 찍고 얼른 먹고 마시는데 집중하는 편이라 처음 마신 커피잔 사진은 못 올리는 것이 아쉽다. 아래 두 사진은 두번째로 리필해달라고 해서 등장한 '스프링 왈츠'와 만델링. 자체 블렌딩해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아주는 커피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강하게 볶은 '하드락'이란 것도 있다고. 담에 가선 그걸 마셔봐야겠다고 결심.   

머그잔 모양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색달랐던 건 오른손잡이의 경우 안쪽 로고가 본인말고 상대방 쪽에서 볼 수 있게 인쇄되었다는 점. 크레마로 뒤덮인 머그잔 아래로 드러난 저 로고를 본 순간 나도 마시고 싶어졌다. ㅋ 내가 마신 저 파란색 꽃무늬 커피잔은 노리다케 제품. 커피잔마다 다 브랜드 다른 걸 골라모은 듯했다. 큼지막한 머그잔에 잔뜩 담아주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잔받침 있는 커피잔에 우아하게 마시는 커피도 매력있다.

 

원두는 100g에 7천원 정도. 다른데와 비교해보면 저렴하다곤 할 수 없으나 신선하고 맛있는 로스팅으로 승부하려나보다 했다. 1kg을 4만원에 신청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월요일마다 4번에 나눠서 받아먹는 제도도 있다는 것 같다. 솔깃했지만 한달에 원두 1kg을 내가 다 못먹는다는 것이 문제. ㅋ

 

암튼 테이블도 몇개 안되고 아직은 비닐로 막아놓은 테라스 자리가 좀 추울 듯하지만 원목 의자와 테이블이며 천장에 드러난 서까래와 작은 화분들까지 마음에 들었다. 담에 가볼 땐 어느 케이크 전문점에서 공수해온다는 조칵 케이크도 맛있나 먹어봐야지.

 

저녁시간이 다 되어 출출해진 우리는 무얼 먹을까 또 한참을 고민했다. 눈알이 빠지게 맛집 검색을 해보다 포기한 뒤엔, 일행이 가본 적 있다는 칼국수집으로 가기로 했다. 사골칼국수집에서 아 글쎄 통통한 생선튀김을 판다네!?  

 

이름하여 <혜화 칼국수>. 위치도 혜화동로터리에서 금세였다. 이번엔 로터리에 있는 주유소 오른쪽 골목으로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수십년 역사와 포스가 한눈에 느껴지는 알루미늄 샤시문과 낡은 간판이 나타난다. 생선튀김을 먹어야 하므로 칼국수는 하나만 시키려고 우물쭈물했더니만 서빙하시는 아주머니 재빨리 생선튀김 반 짜리가 있다며 둘 다 칼국수 시켜야 양이 맞는다고 부추겼다. (이 아주머니 별도 메뉴 시키는 다른 테이블에도 악착같이 칼국수를 인원수대로 주문 받아내는 신공이 있었다. 그건 쫌 불만!) 지킴이 면접만 없었으면 반주도 하면서 안주로 먹기에 딱이겠다 싶어 내심 아쉬웠던 통통한 생선튀김의 위용은 바로 이렇다!

흰살생선의 정체는 대구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아마 맞을 듯. 바삭하고 신선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원래 허름하고 유서깊은 칼국수 집에서 다른 메뉴 성공시키기가 어려운 법인데 신기했음. 생선튀김 원래 가격이 2만5천원이고, 절반은 만3천원이니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먹어보고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칼국수는 7천원.

 

튀김기름 처리문제가 무섭기도 하고 왕비마마에겐 기피해야할 음식 1순위가 튀김이라 집에선 절대로 튀김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짜 웬만한 재료는 바삭바삭 튀겨놓으면 다 맛있다는 걸 내가 왜 모를꼬. 나 역시 기름에 튀긴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저질 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 튀김 먹고싶어지면 찾아가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ㅎㅎㅎ

 

통통한 생선살의 느낌을 찍어보려 카메라를 들이대긴 했으나 초점도 잘 못맞췄다. 생선튀김을 거의 다 먹고 났을 무렵 나온 사골칼국수는 평균적인 맛이었다. 다데기 양념을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다 덜어내고 풀어놓은 모습이 아래 사진 오른쪽. 집 근처에도 <연희칼국수>라고 오래 된 사골칼국수 집이 유명한데, 그 집에 비하면 크게 맛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특히 연희칼국수는 백김치가 인기의 비결인데, 혜화칼국수는 김치와 무채나물이 내 입맛에 좀 짰다.  

그래도 생선튀김 때문에 다 용서되는 기분! ㅋㅋㅋ 다음에도 혜화동 가면 칼국수와 생선튀김을 먼저 먹고 림스커피에 가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는 순서로 동선을 짜볼 작정이다.

 

간만의 혜화동 나들이가 즐거워, 버스 안에서 흥얼흥얼 혜화동 노래를 부르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도 얼른 동물원 노래를 찾아들었다. 내 어린시절의 골목길 추억은 헤화동과 상관없지만 기분은 딱 옛친구를 옛동네에서 만나고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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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놀고먹고

놀잇감 2013. 3. 5. 16:46

3월 중엔 어쩔 수 없이 슬슬 일을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월엔 그야말로 참 열심히 놀고먹었다. 머릿속도 좀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전시는 세 개나 봤잖니. ^^; 처음엔 다 따로따로 포스팅할 작정이었으나 벌써 다 기억이 가물거려 대강 기록만 해둘 요량이다. 안 그러면 몇달 지난 뒤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버릴 지도 모르니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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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이라고 쓰기는 하지만 아직도 2013년 1월이라는 게 적응이 안된다) 스팅공연 보러 간 날, 전날까지만 해도 방이동과 몽촌토성역 근방의 '그럴듯한' 맛집 후보지 중 한 군데를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난데없는 폭설로 일단은 전철 타고 올림픽공원 근처에 가 아무거나 먹자는 쪽으로 급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공원 내 공연장을 자주 다녀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그 바로 주변 상가엔 먹을 만한 밥집이 별로 없다. 역 바로 앞에 버젓이 올림픽아파트 상가가 있지만 대규모 공연이 있는 날 그 근처에서 제일 장사 잘 되는 집은 햄버거집이랑 편의점일 정도다. 입맛이야 상당히 주관적인 잣대일 수밖에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딱 한 군데 의외의 보물같은 맛집이 있으니, 올림픽 상가(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암튼;;) 지하에 있는 올림픽 수제비다.

 

몇해 전 여름, 수제비 좋아하는 후배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온 집이었는데 처음엔 길을 잘못 들어서 허름한 지하주차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마트를 마구 헤매다 찾아간 바람에 첫인상이 좋지 못했다. 그야말로 시장통 분식집 느낌. 그런데 나온 음식을 보니 선입견이 쏙 들어갔다. 해물이 완전 싱싱해!

 

해물 수제비의 위용. 반죽에도 채소를 갈아 넣었는지 초록빛이 난다

간도 슴슴하니 내 입맛에 딱이었고 자극적인 조미료맛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맛이라는 감이 팍 다가왔다.

무슨 메뉴를 시키든 볶은밥을 앙증맞게 김에 싸서 나오는 에피타이저가 나오는데 배고픈 김에 얼른 집어먹고 사진도 못찍었을 정도였다. 김치랑 깍두기도 맛있었고...

 

바지락 칼국수와 해물 수제비를 하나씩 시켜놓고 먹었는데, 짜지 않은 생물 바지락(싱싱하지 않은 바지락은 대부분 엄청 짜다;;)이 풍성하게 들어간 칼국수 사진 역시 남기지 못했다.

 

이후 올림픽 공원에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입맛을 다시며, 재차 가보려했으나 기회가 닿질 않았었는데 스팅 공연보러간 날 일행들과 뜻이 맞아 다시 가게 된 터였다. (스팅을 만나러 가는 날이니 일행들은 이왕이면 좀 더 그럴싸한 메뉴를 먹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올림픽 상가 1, 2층 식당을 뺑뺑 돌고 난 뒤이긴 했다;; ㅋㅋ)

 

이젠 맛있다고 소문이 많이 나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날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시장통 같은 지하 식당가 반찬집 옆에 있는 위치 때문일까나? 어쨌든 나야 맛있으면 장땡.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통영인가 여수에서 직접 가져온다는 굴로 만든 굴국밥이 계절메뉴로 새로 등장해 있었다. 굴이라면 익혔든 생으로든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므로 해물수제비와 함께 일단 시키고 봤다.

 

왼쪽 사진 위에 보이는 시커먼 물체가 1인당 2개씩 나오는 볶음밥 김쌈(?)이고, 오른쪽 사진이 정신없이 퍼먹다가 아차 하면서 찍어 자못 민망한 굴국밥이다. 익힌 굴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굴 넣고 끓인 미역국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날 이집에서 부추와 두부를 곁들인 시원한 굴국밥을 먹어본 뒤로는 계속 집에서 해먹어봐야지, 해먹어봐야지 한달 넘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며칠 전, 굴과 부추를 사다가 시도해보았다! 당연히 그날의 전문가스러운 맛은 내지 못했지만 다시마와 무와 멸치로 낸 다시 국물에 굴과 부추와 두부를 넣어 끓인 뒤 밥에 부어 먹었더니 캬... 겨울 별미로 딱이었다. 한번 더 가서 먹어보면 완벽하게 비슷한 맛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음... 이거 먹겠다고 엄동설한에 남의 동네 지하상가엘 가자니 좀 민망한 느낌. ^^;;

 

찾아갈 때마다 계속 헤맸지만 그날 주인아저씨의 안내로 직통 출입구를 알아두었으니 이젠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아갈 자신도 있다. 반원형으로 생긴 올림픽 상가 건물 입구로 들어가지 말고, 상가 앞 광장 왼쪽 귀퉁이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 곧장 건물지하로 들어가면 코앞에 올림픽 수제비가 있다.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도 친절하시고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도 정갈하니 앞으로 올림픽공원에 갈 일 있으면 무조건 고민 않고 이 집으로 밥먹으러 갈 작정이니 부디 오래오래 번창하길 빈다. 오늘따라 저 해물 수제비가 몹시 먹고 싶어서 눈요기라도 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이거 좀 과한 홍보인가?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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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산

여행담 2012. 11. 16. 20:29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두시간 반. 푹신하고 넓은 우등고속 좌석은 곤한 다리를 쉬기에 딱이었고 우린 터미널 카페에서 드디어 반갑게 상봉한 쓴 커피를 '원샷'한 뒤에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심야가 아닌데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 안 조명을 깜깜하게 꺼두었다가 부산 노포 톨게이트에 접어들고나서야 실내등을 켜 승객들을 깨웠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며 잠깐이라도 부산까지 찍고 오자 결심했던 이유는 처음 일본에 가려 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하루쯤 놀다가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사전 모의가 무산되면서 뭔가 대단히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친구 핑계대고 이왕 나선 김에 부산에 이어 통영, 해남, 순천만 생태공원까지(여름부터 친구랑 휴가 계획 짜며 모두 언급되었던 여행지들이다 ㅋ) 죄다 둘러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2주라고 해도 S는 금요일 출국인데다 수요일엔 또 LA에서 같이 휴가나온 동료도 만나야했다. 은행장이 특별히 임무를 부여했다나 뭐라나 -_-;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올라갈 KTX도 이미 2시반에 예약해둔 터라 부산에서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숙소 예약하지 말고 우리도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한번 자보자고 별렀다. 하룻밤은 우아하게 별당아씨 노릇을 했으니 또 하룻밤쯤은 행랑아범처럼 쭈그려 자도 재밌겠다고. LA교포들의 정보력이란 암튼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친구의 언니는 한인 아침방송에서 봤다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빼빼목'을 사오라고 부탁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을 뿐이고!) 찜질방도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잠을 잔다는 것이 가능할지 두려웠으나 까짓것 하루쯤 잠 못자면 어떠랴, 내가 LA 놀러갔을 때도 뜬금없이 코리아타운 사우나엘 데려갔을 정도로 친구는 대중목욕탕 애용자인 것을. 그리하여 만 하루가 못되는 부산일정 역시 먹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야경보며 시원소주에 회 먹기,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로 금수복국, 점심은 밀면! 부산 오뎅과 자갈치시장 씨앗 호떡은 간식 옵션이었다. ^^;

 

안동에선 시내버스비 1200원을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했으나 부산에선 선후불 교통카드 사용에 불편이 없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갔을 때 사고 남은 티머니 카드가 그래서 서울과 부산에서 아주 요긴했는데, 친구가 갖고가 버렸다. 좀 남았을 텐데 ㅋㅋㅋ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으려나. 째뜬 노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곧장 향한 곳은 광안역.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된다더니, 우리 걸음으론 역시나 15분쯤 걸린 듯하고 인도에 나다니는 사람들 별로 없는 아파트촌 옆을 지나면서는 친구가 미국시민 답게 좀 두려워했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중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을 땐 나도 좀 간이 오그라들었음. ㅋ 다행히 곧 나타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은 평일임에도 휘황찬란 해변 카페, 술집마다 사람들이 드글드글, 바닷가엔 저녁 산책 및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해변에서 군데군데 영업중인 점 보는 파라솔! (광안대교 사진 오른쪽에도 살짝 걸쳐 나왔다 ㅋ) 대체 누가 저런 걸 보나 싶은데도, 파라솔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사주궁합 안좋다 그러면 헤어질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음. 오른쪽 사진은 민락 회타운인가 하는 건물 꼭대기층 횟집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일부러 광안대교 보이는 집으로 골라간 건데 다리쪽 방엔 자리가 다 찼다. ㅠ.ㅠ

 

그래도... 요즘 제철이라며 전어회도 따로 좀 챙겨주시고 맛과 서비스는 흡족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집어먹다가 매번 아차,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 (휴대폰에 먹고팠던 갖가지 한국 음식 사진을 넣어가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라면 소망인지라;;)

 

부산에 왔으면 시원소주를 마셔줘야지 암, 그러면서 술꾼인척 소주를 시켰으나 결국엔 사이다와 소주를 3:1의 비율로 섞어 먹다 배부르다는 핑계로 반병 남기고 왔다. 소맥을 할 걸 그랬나보다. ;=p

 

 

밤이 깊어가고 있었으나, 찜질방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어 내가 짜낸 아이디어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 CJ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은 LA에서도 볼 수 있다며 친구는 이왕이면 다른 걸 보고 싶어했으나 마침 볼만한 다른 한국영화가 없으니 선택은 결국 <광해>였는데, 나는 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영화 장면장면마다 우리가 최근에 갔던 창덕궁 구석구석이 막 나오는 게 아닌가! 쓰러진 광해가 숨어있던 집 역시 안동 하회마을일 리 없는데도 낮에 본 한옥들과 겹쳐져 더욱 실감이 났다. 그토록 뜸들이다 부산에까지 와서 <광해>를 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미루고 미루다 새벽 2시가 다 돼 택시타고 찾아간 달맞이 언덕 베*타 찜질방은 상상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꽤 훌륭했다. 그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별로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드넓은 방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큰 방엔 거의 누을 자리가 없을 정도! 여성용 수면실이 따로 있긴 하던데 좁은데다 온도가 너무 높아 숨이 막힐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도 요란하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들 덮고 자는 담요는 과연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구경다니며 탐색하던 우리도 드디어 담요와 목침을 하나씩 구해들고 제일 덜 더운 방에 몸을 눕혔다... 근데 거기도 너무 더워 ㅠ.ㅠ 나는 잠든 친구를 남겨두고 찬바람을 쏘이러 베란다 앞으로 갔다가 식당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친구 옆으로. 에구구 여행에서 잠자리는 역시 편해야 제맛임을 실감.

 

 

그렇긴 해도 또 눈을 뜨자마자 이런 광경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는 묘미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전날 밤 그저 깜깜한 유리창으로만 보였던 목욕탕 전면도 죄다 저렇게 바다로 향해 있어 탕에 들어앉아서도 바다감상이 가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 찜질방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ㅎㅎ

 

아래는 노천탕이 있다는 옥상구경하러 올라가서 찍어온 해운대 앞바다 사진.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에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좀 걸어보겠냐고 했더니 바다구경은 충분하단다. 맞다, LA에서도 바다는 금방이었지... 

 

 

 

간단하게 때밀이(!) 목욕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계획대로 금수복국 해운대점. 오래 전 부산에 갔을 때 택시타고 가자했더니 교묘하게 곧장 2층 입구에 내려주어 얼결에 수만원짜리 '정식'을 먹어야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조심해야지 했는데, 웬걸. 택시 아저씨가 쿨하게 큰길가에 내려주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

 

그래서 시켜먹은 것이 은복 지리와 복주머니 만두. 

LA 한식당에 비해서 다들 음식이 왜 이리도 양이 적으냐고 투덜거리던 친구는 처음으로 1인분다운 뚝배기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서울에도 이미 분점이 있지만, 말간 국물의 복국은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제맛인 느낌. 해장할 필요도 없이 속은 멀쩡했지만 어김없이 시원했다.

 

 

마침 복국집 바로 앞에 원두커피집도 있겠다, 이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순히 풀려주는 기분이었다. 이후 부산관광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태종대, 자갈치시장 쪽을 돌아 기점인 부산역으로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것이었다. 해운대 코스를 타면 광안대교도 건너간다잖아! (버스비는 만원.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내리며 계속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간 동안 역시나 부산여행을 한 울 엄니가 가르쳐 주심. 후쿠오카 시티투어버스에 비해 훨씬 유용한데 우린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진짜로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엔 정말로 뚜껑없는 이층 투어버스가 다닌다는 듯;;

 

 

 

 

 

 

 

 

 

부산역 앞에서 은행구경과 서비스 체험도 좀 하고(얼마나 친절하고 편리한지 친구가 미국은행과 비교를 원했다), 다시 태종대행 시티투어버스를 타긴 했으나, 2시반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자갈치시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듯했고 태종대도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잘 기억도 나진 않지만 예전엔 택시를 타고 등대앞까지 갔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거기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걸 타고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시티'투어'버스다 보니 어찌나 해안으로만 돌고돌아 구석구석 다녀주시는지, 도심에서 태종대까지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나중에 택시타고 와보니깐 부산역까지 15분도 안 걸리더만!)  

 

 

말이 태종대지 솔숲길로 조금 걸어내려가 우묵하게 파인 만과 전망대 앞 바닷가를 본 것으로 이날의 관광 끝. 점심으로 별렀던 밀면을 먹을 시간조차없었다. ㅠ.ㅠ

 

 

결국 우린 회먹으러 부산 온 거였네, 라고 자조하며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할 정도였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서울역.

 

 

곧장 전철로 이동하여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의 동료들과 합류, 쌈지길과 청계천을 쏘다닌 뒤론 다시 홍대앞(주차장길 네일샵→액세서리 가게→조폭 떡볶이→커피집)을 휩쓸다 이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우리는 장렬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전국이 일일생활권임을 몸소 실천한 좋은 예.

 

(2012. 10. 24)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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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여행담 2012. 11. 16. 15:01

겉은 고택이되 안은 새로이 단장한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곤하게 자고 일어난 아침,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침을 뭐라도 먹고 움직여야 하나, 일단 나가서 움직이며 배를 채워야 하나... 하룻밤 잠만 자고 나가기엔 너무 아깝다. ㅠ.ㅠ 갖고 있는 먹거리라곤 귤 몇 알과 티백 커피, 차뿐임을 잘 알기에, 우유부단하게 고민만 하고 있는 내게 친구가 일단 나가보자고 말했다.

 

꾸물럭꾸물럭 짐을 싸 아쉬운 마음으로 치암고택을 나서며 전날밤 깜깜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 집주변을 먼저 감상했다. 이 또한 참 잘생긴 한옥일세.  

 

왼쪽으로 살짝 낮고 검게 보이는 것이 주인의 살림공간인 듯한 안채. 사랑채에도 객실이 두 개 있는 듯하던데 6명까지 묵을 수 있는 큰 방에 고가라 예약할 때 아예 염두에 두질 않았으나 실물로 보니 탐이 났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럿이서 사랑채에 묵어보리라! 

 

오른쪽 방문 열린 곳이 바로 우리가 묵었던 별채 계명재. 안채, 사랑채와 동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독립적인 느낌은 좋았으나, 방문 밖이 바로 주차장이고 엄밀히 말해 대문 '밖'이라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문고리를 보며 약간 걱정스럽기는 했다. 

 

별당아씨 놀이를 기대했던 친구는 섬돌 바로 코앞까지 대놓은 자동차들을 보며 별채가 아니고 행랑채 같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몰러~ ㅋㅋ

 

전날 친구 M이 별나게 무섭다고 했던 이유가 따로 있긴 했다. 방 옆으로 난 문을 여니 아 글쎄 담너머 딴집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이렇게... ^^; 

술 잔뜩 먹고 엉뚱하게 문 잘못 열고 나가면 그대로 허공으로뚝 떨어지며 낙상이다.

저렇게 내려다보이는 집에도 사람이 사는 것 같던데 윗집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은근히 신경쓰일 것 같았다.

 

이 문으론 허공이라 누가 들어올 리도 없는데 M은 상상력이 뛰어난 건지 전설의 고향 운운하며그래서 더 무섭다고... ㅋㅋ

 

 

 

 

 

 

암튼 안채 마당과 사랑채를 머뭇머뭇 구경하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벌써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셨고, 하회마을엘 가려면 택시타고 안동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는 아주머니의 조언 대로 우린 길을 나섰다. 버스 시간표도 미리 다 검색해서 적어갔으나 생각보다 하회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그리 자주다니지 않았다. 한번 놓치면 막 두시간씩 기다려야 해! 해서, 안동역 근처 간잽이 아저씨 식당에서 아점으로 고등어조림을 먹고야 말겠다는 나의 열망은 또다시 물건너가야했다. 10시 반인가 45분 버스를 못타면 2시간 뒤에나 하회마을행 버스가 있었다. ㅠ.ㅠ  그럼 찐한 커피라도 마셔 카페인 파워로 돌아다녀보겠다는 바람도 실천이 어려웠다.  역 주변인데도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안 보이고 원두커피를 파는 편의점은 없었다. 너무 연해서 마시기 싫다고 했던 티백 커피라도 마시고 나올 것을, 아니, 고택 툇마루에 있던 자판기 커피라도 마시고 올 것을... 후회 막급이었다. ㅠ.ㅠ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까지는 한 40분쯤 걸렸나, 꽤 먼거리였던 느낌이다. 하회마을 입구엔 토속장터와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었고, 일단 거기서 우리도 아침을 먹었어야 했다. 하지만 오전이라 가게들은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라 쭈뼛거리던 우리는 일단 짐을 매표소 옆 사물함에 넣어두고 마을 안까지 들어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거기도 입구에 밥집 있겠지 뭐;;;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 예전에 이웃주민 포스팅에서 본 마을 입구 음식점은 그러니까 장터 입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듯, 마을에 들어서니 가게라곤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간이매점 같은 곳 뿐이었다. 아이고 배고파라... ㅠ.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배가 고프면 손발이 후덜거리고 분노조절이 안되는 인간형이다. 그나마 배낭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다니길 잘했지...)

 

잘 생긴 한옥들과 황토색 토담의 정갈함도 내 눈엔 잘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온통 밥먹을 생각뿐! 미숫가루라도 먹으랴 물으니 친구는 빈속에 차가운 미숫가루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집 할머니께 어디서 밥 좀 먹을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몇 군데 주소를 가르쳐주며 가보라고 했다. 밥을 해달라면 해주는 집이 있긴 한데, 문을 안열었으면 주인이 없는 거라는 하나마나한 설명과 함께... 흑... 정 밥집이 없으면 다시 돌아와 뜨거운 미숫가루라도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밥집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허나 미숫가루 집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소는 둘 다 대문이 닫혀있을 뿐이고 ㅠ.ㅠ 하는 수 없이 우린 간이매점에서 강냉이를 한 봉지 사서 한움큼씩 집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주린 배를 바삭한 강냉이로 좀 달래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한옥 구경에 돌입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도 본 적 있는, 유명한 양진당에 들어서니 아저씨 한분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계셨다. 원래도 공개된 공간 안쪽은 살림공간이고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한다고 팻말에 적혀 있는데, 이날은  매우 중요한 제사가 거행되고 있으니 특히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잘 보면 집안에서 쟁반 들고 바삐 오가시는 종부 어르신의 그림자도 찍혔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음력 9월 9일 중양절의 의미도 설명해주셨다. 본디 음력 8월 15일에 추석차례를 지내지만 그때는 시기가 일러 제대로 곡식이 다 익지 않았을 경우가 많고 음력 9월 9일에는 제대로 추수가 끝난 데다 음양이 조화롭고 더 길한 날이라 안동에선 제일 큰 제사가 있다나. 배를 타고 나갔거나 객사를 하여 정확한 제삿날을 모르는 모든 조상들을 위한 합동 제삿날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더욱 동하여 중문 안쪽을 기웃거리니, 정말로 도포자락 휘날리는 차림새의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모여 계셨다.  

 

 

전날엔 왜 우리가 움직이는데 하필 비오고 날 추워져서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으면서, 바로 담날엔 중양절에 때 맞춰 잘 놀러왔구나 싶어져 키득거리다니 참 변덕스럽기도 하여라.

 

왼쪽은 양진당 행랑채에 딸린 마굿간. 여물통이 진짜 오래 되어 보인다.

 

 

 

 

 

 

 

평일인데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 아무래도 밥집 찾기는 글렀나보다 포기했을 무렵, 민박 팻말을 내건 어느 한옥에 유독 사람들이 드글거렸다. 알고보니 인근 공사중인 한옥 인부들이 매일 대놓고 밥을 먹는 듯했다. 어쨌거나 체면불구하고 들어가 할머니께 내가 물었다. 저희도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굶주림은 얼굴을 두껍게 만든다는 진리!) 당연히 가능하나, 고등어구이와 안동찜닭 두 가지 메뉴만 된다는 기쁜 대답이 돌아왔다. 찜닭은 어제 먹었으니 무조건 고등어구이 백반!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달린 단칸방에 들어가 앉은 우리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날의 첫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간잽이 아저씨네 식당의 고등어구이와는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우린 허겁지겁 맛나게 밥공기를 깨끗하게 비웠고, 칼칼한 된장찌개와 고들빼기 김치, 더덕 무침은 평범하게 느껴졌던 고등어구이의 맛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진짜로 맛깔스러웠던 반찬이었다고 인정. 들어갈 땐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작전고택>이라고 팻말도 서 있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 하회마을에서 고유한 이름 없는 한옥은 하나도 없는 듯;

 

 

 

 

 

 

 

 

 

속이 든든해지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더 새파란 것 같고, 토담 안에 줄지어 서 있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며 텃밭에서 줄지어 자라는 배추들까지 죄다 한층 더 정겨워보였다. ^^;    

 

들어가지 말라는 곳엔 왜 더 들어가보고 싶은지;; 저 멀리 안채 처마에 매달린 곶감은 또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굴뚝 하나도 그냥 쌓아올리지 않은 정성과 예술감각을 보라!

 

 

걸어가면 왕복 한 시간도 넘게 걸릴 거라는 병산서원 가는 길.

하회마을에서 나가는 시내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우리 걸음으론 무리라는 결론으로 포기하며 바라보니 어찌나 아쉽고 오솔길이 더 예뻐 보이던지. 도산서원도 못보고 병산서원도 못보고 이것 참... 반쪽짜리 안동여행일세.

(알고 보니 도산서원은 안동시내를 중심으로 하회마을과 완전 반대편에 있었고, 시내에서 그쪽으로 가는 버스편도 하루에 몇번 되지 않았다. ㅠ.ㅠ)

 

 

 

 

 

 

 

 

공터에 나타난 그네도 한번 타주시고, 친구가  대뜸"시소다!"라고 외친 널뛰기 널에도 한번 올라가주며, 마을을 거의 다 한바퀴 돌고 나니 보이는 것은 부용대 절벽과 솔숲.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뻗어있는 예쁜 오솔길. 저 길을 우리도 하염없이 걸어가고 싶었으나...

버스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

양쪽 나무가 머리를 맞댄 이 길 역시 좀 걷다가 돌아서야 했다.

 

관광철이 아니라선지 부용대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룻배도 없고, 그렇다면 이젠 미숫가루나 먹으며 다리를 쉬어야 할 때. ^^;

 

 

 

 

 

 

 

 

미숫가루를 먹으러 들어간 방에서, 자기도 이런 예쁜 찻상 갖고 싶다며 친구는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마침 친구S의 남편은 목공예가 취미인 사람.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화장대겸 원목 책상을 나도 익히 본 적 있었다. 아마 다음번에 친구네 놀러갔을 땐 거실에 이런 야트막한 찻상이 놓여 있을지도...

 

 

한여름에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얼음 동동 띠운 미숫가루의 위용. ^^;

 

여행일정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 아니라 전부 다 버스 시간표에 달려있음을 그제야 깨달은 우리는 5시쯤 하회마을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괜스레 하회탈 박물관에 들어가 별로 볼 것 없는 구경도 하고, 그곳 매점에서 드디어 그날의 첫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다 안동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하회마을은 원없이 구석구석 돌아보았으나 병산서원, 도산서원 못 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2012. 10. 23)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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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동

여행담 2012. 11. 14. 16:18

드디어 안동 얘기까지 왔으니 여행자의 삶 후기도 얼마 안남았다. 쓰고 보니 많이 다니지도 않았구만 왜 그렇게 노상 쏘다닌 것처럼 느껴졌는지 원. 아무튼... 이웃 주민들 영향으로 통영과 함께 선망의 여행지였던 안동에 결국 다녀왔다.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짰던 시간표와 동선은 완전히 무너져 허망했고, 얼마 다니지도 못했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마구 찍어댄 풍경사진을 '소장'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뿌듯하며, 그곳을 30년지기와 함께 거닐었다는데 의미가 있으니 됐구나 싶다.

 

그래도 왠지 억울해서 적어보자면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고속버스편으로 아침 일찍 출발.

안동에 도착해 점심으론 <헛제삿밥>을 먹는다.

오후에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돌아본 뒤 저녁은 안동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안동찜닭>을 먹어줘야지.

숙소인 고택으로 가기 전에 필히 맘모스 제과에 들러 안동사과를 넣어 구웠다는 30년 전통의<사과파이>와 <맘모스빵>을 산다.

이걸로 다음날 아침 커피와 함께 요기.

이틑날 오전에는 도산서원을 돌아본 뒤 다시 안동시내로 돌아와 역앞에 있다는 간재비 아저씨네 식당에서 고등어조림과 구이로 거하게 점심. 

커피 한잔 마시며 여유 부리다 오후 늦게 부산으로 출발.

 

그러나... ㅠ.ㅠ 야무진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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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쨋날은 호텔서 아침먹고 나서 오후까지 그야말로 자유로이 돌아다니다 공항가기 전에 일행과 만나면 끝. 일본 호텔의 뷔페식 아침밥은 맛이 없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열심히 미니 오븐에 빵을 데워 테이블로 갔더니 친구는 미소시루에 밥, 시사모 구이와 명란젓을 듬뿍 담아와 희색이 만면했다. LA에서 명란젓 얼마나 비싼 줄 아냐고, 시뻘겋고 짜디짠 것도 비싸서 못 사먹는다고, 이렇게 말갛게 신선한 명란젓 처음 본다고, 넘 맛있다고 흥분일색이었다. 나도 먹어보라고 권했으나 다시 일어나 밥푸고 자시고 하기 귀찮아.... 그러고 보니 이날 아침밥은 사진도 안남겼다. 원래도 먹거리 보면 숟가락질부터 하지, 사진부터 찍는 인간이 아니라 셋쨋날 쯤 되니 원래 하던대로 돌아간 듯.

 

전날밤부터 이날 하루 뭘하고 놀 것인가 지도와 안내책자를 보며 아침까지도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베르메르 때문

이었다. ㅜ,.ㅠ

첫날 다자이후시에 갔을 때 이미 포스터를 발견하고 희희낙락 자유일정 때 보러가야겠노라고 결심했으나 가이드에게 물으니 후쿠오카에서 다시 가려면 거리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도 뭣하고 택시로 가면 2, 3만엔은 나올 거라고...(택시비가 3,40만원이란 말이냐!)

 

왔다갔다 왕복시간도 정확히 알수 없는데다 기껏 박물관에 찾아갔다 해도 허겁지겁 그림을 보고 나오려면 내내 불안에 떨어야할 것 같았다. 나 혼자였다면 몰라도 그림에 별 관심없는 친구를 이끌고 모험을 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해서 결국 포기.

그런 나를 놀리듯 시내 곳곳엔 베르메르 그림 포스터가 저렇게 떡하니 붙어있었다. 흥! 나중에 네덜란드로 보러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포스터 영문사이트 주소를 보니 베를린 어쩌고 되어 있다. 저 그림은 베를린 박물관에 있나? +_+ 암튼... 아쉬운 베르메르와의 인연.

 

자유일정에서 여행사가 추천하는 장소는 대부분 캐널시티 쇼핑몰과 도심 백화점 주변, 하카타 역 쇼핑몰 따위였으나 나와 친구는 둘 다 쇼핑을 별로 안좋아하는 인종. 쇼핑이라면 이미 전날 밤 드넓은 무지 매장을 실컷 구경한 걸로 족했다. (아직도 무지 매장에서 본 검정색 통짜 원피스가 눈에 아른아른.. 그러나 칠부소매의 겨울 원피스를 내가 언제 어디에서 입으리! 안 사길 잘했지) 게다가 이미 마냥 걸어다니는 데는 질력이 나기도 한 상태.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유람선이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휘휘 구경을 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이었다. 허나 유람선은 야경 위주라 낮엔 탈 수도 없었는데다 시간도 몇번 되지 않았고 (어쩐지 전날 강에 배가 하나도 안 돌아다니더라;;) 시티투어도 하루에 딱 네번. 지정 정류장 아무데서나 타고 내릴 수는 있지만 표를 사려면 시청 로비까지 가야했다.  

 

지도를 보니 하핫, 우리가 전날 벤치에 앉아있던 공원이 바로 시청 뒤에 있는 텐진 중앙공원이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야...

(이러면서 전날 사진 재활용. 공원 잔디에서 놀이기구 같은 걸로 연습하던 남녀 학생이 인상적이었다)

 

 

목표는 11시에 출발하여 항구와 해변, 도시 외곽을 도는 파란색 노선의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었는데 아뿔싸, 내 앞에서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묻던 일본 아주머니가 단체 가이드였던 듯, 남은 표를 몽땅 사가버렸다. 로비에 먼저 도착한 건 우리였는데! 잠깐 안내판 보며 남은 표 열두장이라고 희희낙락 확인하는 사이에 흑... ㅠ.ㅠ 매표원이 안내판 11시 시간표에 매진 팻말을 붙여놓았다. 결국 우린 12시에 출발하는 빨간색 도심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또 다시 두 시간이나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의미. 에효.  여러 설문과 인증 끝에 한번에 15분간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시청 건물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너무도 날씨 화창한 밖으로 나섰다.

 

 

 

요즘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박스 모양이 대세인 일반 자동차들과 대단히 클래식한 느낌의 택시도 한 장 찍고...

(정말로 운전수가 차문 자동으로 열고 닫아주는지, 일본 택시 한번 타보고 싶어서 별로 멀지 않은 나중 집결지까지 타고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결사반대했다.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냐고,  멀지도 않은데... 그치만 얼마나 비싼가 한번 타보고 싶긴 하던데;; ㅋ)

 

도심이라 주변에 백화점들이 대거 몰려있다는 건 알지만 굳이 들어가보고 싶진 않았으나 걷다보니 다이마루 백화점 앞이었다.

 

역시나 깔끔한 건물 앞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의미 모를 곰돌이도 구경하고, 귀여운 하마 모자(혹은 부녀?)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큐슈 날씨는 제주도와 비슷하려니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어찌나 덥고 햇살이 뜨거운지 외투는 계속 벗어서 들고다녀야 했다.  

 

이날 돌아다니며 제일 예뻤던 꽃집 앞 화분들.

 

공연히 억울하게 시간을 허비하다 드디어 시티투어 버스에 오를 시간. 지정석인데 그나마 일찍 표를 끊은 터라 앞에서 둘쨋줄, 자리는 좋았다. 햇살이 뜨거워 그렇지 ^^;

 

그래도 관광용이니 가끔씩 영어 안내라도 해줄 줄 알았으나 그건 헛된 기대였다. 계속 일본말로만 뭐라뭐라 방송이 나왔으니, 우린 그저 지도를 보며 위치를 짐작하는 수밖에. 처음에 항구쪽 고가도로를 잠깐 달려 바다를 뵈준 다음엔 그나마 대부분 도심을 도는 거라 돌아다녀 본 곳이 많았다. ㅋ

 

겨우 50분 보는데 2천엔이나 하고, 배차간격이 너무 멀어 다시 탈 수도 없으니(그날 하루는 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도 계속 이용할 수 있다는듯;;) 그다지 추천할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항구와 해변쪽을 도는 노선을 탔더라면 볼 게 더 많았을까? 그야 모를 일.

 

어쨌거나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는 일본에서 길쭉한 버스가 좌회전을 할 때마다 왼쪽 끝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야트막한 가로수에 부딪칠 것 같다고 기겁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음. 

2층 버스에 앉아 선글라스와 외투로 햇빛을 가리다가 가끔씩 사진기를 들어올리고 난사한 사진 중에 그나마 두 장. ^^;  

저것은 분명 야자수렸다? 제주와 비슷한 위도임이 분명하다고 나 혼자 우겼음. 그리고 가끔씩 도로 모퉁이에 서 있는 저 동그란 시계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는 시계탑에도 이제 다 디지털 시계로 숫자만 나오지 않던가?

 

암튼 후쿠오카 도심에서 내게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물은 바로 이것. 

용적률을 엄청 포기하고 옥상을 계단식으로 한 뒤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 나는 그냥 휴식공간이려니 했는데 버스 타고 돌다보니 저 옥상 중앙쯤에 난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는 사람 발견!

 

경사면 쪽에서 보면 이렇게 생긴 건물이다. 버스투어 하며 지나다 찍은 사진이라 좀 멀다...

무슨 건물인지 나중에 지도 찾아봐야지 작정했었는데;; 아 글쎄 챙겨왔던 지도를 벌써 내다버렸지 뭔가.

사무실 건물이라면 공간을 거의 절반이나 포기하고 저렇게 꾸몄다는 건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첨부: 저 건물 이름은 아크로스 후쿠오카. 후쿠오카현 국제회관이 자리잡은 13층 건물이란다. 저 경사면은 텐진 중앙공원과 마주하고 있으며, 항시 개방되어 있는 계단 산책로와 에코 빌딩으로 유명하다고...) 

 

 

 

 

 

 

 

 

 

 

 

 

 

 

 

 

다시 시청앞으로 돌아가 빨간 2층버스에서 내려 해야할 일은 점심을 챙겨먹는 것. 일본에 왔으니 초밥을 먹을 것인가, 일본 카레를 먹을 것인가... 눈에 띄는 음식점마다 기웃거리다, 사람 많은 곳엘 가야 맛있다는 지론을 철썩같이 믿고 찾아다녀보았으나 도심에서 직장인들이 1시 넘어서까지 우글우글 밥을 먹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ㅋㅋㅋ

그러다 발견한 곳이 이 작은 우동집. 허름하고 작은데 뭔가 포스가 느껴진다고 자위하며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영어메뉴도 있음! 메뉴판과 그릇에서 '원조' 글씨를 발견하고 몹시 뿌듯해하며 메뉴 맨 위에 있는 우동을 시켰다. 좀 짜긴 했어도 퍽 맛있었음.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지만 왜 이리도 양이 적은 것이냐! 눈치를 보니 다른 남자들은 거의 다 사리를 덤으로 시켜먹더군. 그럼 그렇지. 이것만 먹고 어찌 한 끼라고 할 수 있으리.

 

(물병만 크게 나왔다고 친구한테 잔소리 들은 카운터 정면 사진. 우동은 아직 한 젓가락도 안 먹은 상태. 입 큰 사람은 두 젓가락으로 끝낼 수도 있겠다. ㅋ)

 

이왕이면 다른 다리로 강을 건너겠다며 좀 멀리 돌아 다시 캐널시티 쪽으로 돌아오다 다리 위에서 찍은 강의 합류지점. 별로 안 넓은데 사진엔 퍽이나 넓게 나왔다. 이러니 한강은 찍어놓으면 바다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가운데가 뻥 뚤린 캐널시티 쇼핑몰 건물은 한장도 안 찍어왔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각 시간대별로 있다는 음악분수도 꽤나 기대했다가 어찌나 미미하여 놀랐던지. ㅋㅋㅋ 그에 비하면 우리 동네 개천변에 있는 분수쇼가 더 장관이더라.

 

아래는 항구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인데, 처음 여행 계획할 때 염두에 두었던 카멜리아호가 부두에 정박해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부산에서 그 배타고 타고 9시간이나 와야했더라면 배안에서 아마 몸서리를 쳤을 듯.  전망대 올라가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유리창 격자무늬가 선명하게 나온 이 사진 괜스레 마음에 든다.

 

이후 시간 때우기는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지친 다리를 쉬러 카페에 들어가서 계속 개겼던가... 일본 슈크림은 달지 않다며 그래도 한번 먹어보자고 해서 슈크림 빵도 같이 사먹었던 건 기억 나고, 사흘만에 부쩍 늘어난 뱃살에 한숨 지었던 것도 생각난다. 많이 걸어다니면 뭐하나, 고열량 간식을 좀 많이 먹었어야지.. 밤마다 맥주에... ㅎㅎㅎ

 

 

애당초 2박3일은 너무 짧지 않겠느냐고 나흘짜리 여행상품을 알아보라던 친구에게 아쉬우냐고 물었더니 이미 일주일 이상 놀러다닌 느낌이라 흡족하다고 했으나,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나는 마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3박4일짜리 홋카이도 여행을 갈 걸 그랬나... -_-;

 

 

암튼 티웨이 항공은 처음 타보는 경험이었는데 퍽 흡족했다. 그래서 다들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겠지. 갈 때는 오렌지주스에 크라상 빵 하나 달랑 주기에 쳇, 외면하다 주스만 마셨는데 돌아올 때는 참치주먹밥이 나왔다. 배 안 고파서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게 친구가 외쳤다. 맛있어! 까불지 말고 먹어둬. (집에 와서 신라면 끓여먹을 생각에 좀 버텨보다 결국 나도

다 먹었는데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는지... 공항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치는 바람에 집에 9시도 훨씬 넘어 도착했다. ㅠ.ㅠ 물론 그 밤중에도 라면 두개 끓여 김치 한 포기와 함께 폭풍흡입을 안 한 건 아니지만서도).

 

여행 다녀오면 그 어느 때보다 튼실해진다는 진리는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세끼 다 찾아먹고 사이사이 간식까지 챙겨먹는 습관에 길들여진 위는 거의 한달이 다 된 요즘에야 원래로 돌아왔다. 여행자로 산다는 건 참... 심신이 즐거운 일이다.

 

 

(2012.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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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한번 더 온천욕을 즐길 사람을 위해 6시반부터 울린 모닝콜을 무시하고 우린 8시까지 내쳐 잤던 것 같다. 8시반에 아침 먹고 10시까지 모이라고 했던가... 암튼 아침형 인간인 친구 덕분에 상당히 여유롭게 아침 먹기 전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있었다.

 

 

이곳이 우리가 묵은 하나미즈키 료칸. 방 열쇠 나눠줄 때 보니깐 3층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앞에서 보니 2층이다. 뒤와 옆쪽으로 애매하게 건물이 더 연장되어 있는 듯.

 

일행 중에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온 모녀커플이 있었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어르신에겐 좀 고역이었겠으나 젊은 사람들은 이 정도 규모의 저렴한 료칸에 묵어도 정말 아무 문제 없겠다. 늙은이처럼 난 왜 점점 온천 료칸이 좋아지는 걸까나 ㅠ.ㅠ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골목엔 이따금씩 옛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다녔다. 남학생들은 진짜로 7, 80년대 우리가 입었던 깜장교복이고 여학생들은 세일러복.

대체 왜 죄다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한 온천 사진을 찍고 다니다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내가 자기들 사진을 찍는 줄 알았는지(사진기 방향으로 볼 때 절대로 카메라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비켜있는 게 아니었음;;) 그 자리에서 배시시 웃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뒤늦게라도 내가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담아왔다. 나 같으면 얼른 도망가고 말았을 텐데, 착하기도 하여라. 

 

 

 

 

 

 

 

 

 

 

 

 

한국인 관광객이 엄청 오는 곳인 듯.. 글씨체는 좀 이상할망정 표지판마다 한글이 있다. 이런 거 찍어오는 거 웃기다면서도 결국 찍어오고야 말았다는;;; 일본은 어디나 기복신앙의 공간이 정말 많은 듯. 온천 골목에도 떡하니 이런 집이 있었다. 절 같지도 않고 규모도 엄청 작던데;;; <연애성취> 글자만은 대번에 알아본 나는 이웃주민 지다니를 떠올렸다. 종이 하나 매다는 데 100엔(대략 천오백원)이라는데 저걸 매달아 걸면 정말 연애가 성취될까? ^^;;

 

 

료칸에서 먹은 이날의 아침식사. 먹을 거 별로 없는 호텔식 뷔페가 아니라서 좋았다. 저 뚜껑을 열면 달걀 프라이와 베이컨 한 조각이 지글지글 익고 있고, 하얀 스티로폼 통엔 낫또가 들었다. 청국장은 좋아하여도 내 낫또는 못 먹는 사람이건만, 친구가 화장실 성공을 기원하며 먹어야한다고 해서 꾸역꾸역 삼켰다. 김이 딱딱하고 창호지 같긴 했지만 그럭저럭 가벼운 조찬으로 딱이었다. 이래야 부담없이 간식을 사먹을 수 있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아침을 먹고 나서 가방을 싸가지고 내려온 우리는 근처 가마토 지옥을 둘러봤다. 분출되는 성분에 따라서 같은 집인데도 군데군데 온천 색깔이 막 다르고 온도가 800도라나 어쩧다나... 정말 지옥이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부글부글 끓는 온천수 나오는 샘을 한바퀴 돌아 구경한 뒤 온천 수증기로 찐 달걀 사먹고 족욕 한판하고 나왔다. 그런 온천 지옥 자산 가치가  엄청나다는데(몇백억이라고;;), 귀엽게 생긴 사장 아들이 담뱃불 붙여서 재 떨어뜨려가며 수증기 많이 나오는 모습 시연하고 있는 걸 보며, 우리가 중얼거렸다. 한국 같았으면 부자 사장 아들이 저런 시답잖은 안내 하고 있겠냐. 일본이니까 가능한 거지....  

두 사진이 같은 집이라는 것이 신기...

 

다음은 벳부의 마지막 코스 유노하나. 유황재배지라는데 아마 한 10분쯤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ㅋㅋㅋ

움집 같은데서 수분과 햇빛을 막아 유황결정을 오래오래 키우는 걸 '재배'라고 표현한 듯. 움막이 선사시대 움집같이 생긴 건 약간 관심을 끌었으나 꼬리꼬리한 유황냄새는 좀체 좋아할 수가 없다.  

흐리고 침침했던 전날 날씨와 달리 화창하고 푸르른 하늘과 눈부신 햇빛. 이런 가을날에야 어디를 데려가서 풀어놓아도 좋아라 했을 듯. ㅋ

 

이어지는 행선지는 유후인. 아기자기한 기념품점과 민예품 상점 늘어서 있는 거리라며 익히 들어본 적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뭐 내 생각엔 인사동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싶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민예품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낼 수 없고 싸구려 기념품은 조잡해! ㅋㅋㅋ

차라리 유후인 공부를 미리 했더라면 호숫가에 있다는 샤갈 박물관엘 가볼 것을.. 사진 찍으며 샤갈이라고 적힌 건물이 보이길래 카페인가보다 했더니만,나중에 여행책자를 보니 샤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물이 엄청 맑아서 뛰노는 물고기 비늘이 보인다는 호수는 전날 내린 비로 혼탁... 전날 비와서 혼탁하다는데 물은 또 왜 저리 적어보이는가? 

그래도 단풍 들었으면 호들갑 떨며 예뻐라 했겠다 중얼거리며 뒤돌아섰다. 호수로 이어지는 개울은 문득 선운사 올라가는 길을 연상시켰음. 여기도 단풍 들었으면 더 아름다웠겠지...

 

 

유후인의 특산 먹거리는 일본 전지역 출품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했다는 코로케. 역시나 가이드는 '너무' 맛있을 것을 기

대하지 말라고 귀띔했고,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였으나.... ㅋㅋㅋ 역시나 튀긴음식을 안좋아하는 우리에겐 심히 느끼했다. 고로케가 당연히 그렇지 뭘! 생선을 넣은 듯한 금상 고로케보다는 차라리 감자고로케가 난 더 나았던 듯.

 

사진은 금상 고로케였는지 감자 고로케였는지 모르겠다. 금방 튀겨내어 바삭바삭 따끈하긴 했는데;; 우린 이후 상점들은 보는둥 마는둥 '진한' 커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


유후인에서 내가 제일 신기하게 느꼈던 건 어느 집 담장에 철사로 만들어 세워놓은 자그마한 조형물들이었다. 아무렇게나 철사를 구부려놓은 것 같지만 죄다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새의 형상은 분명 예술가의 솜씨!

 

 

 

어렵사리 찾아낸 커피집에서 산 쓴 커피로 느글느글한 목구멍을 씻어내리며 버스에 오르고 보니 또 점심시간.

휴게소 같은 데 있는 대형 음식점에 주르륵 준비되어 있던 솥밥 우동정식을 먹었다.

튀김과 연어구이가 차갑기는 했으나 맛은 대체로 훌륭. 고로께는 언제 먹었냐 싶게 밥과 우동을 흡입했다. 앙증맞게 나온 사과랑 귤도 맛있었음.

 

이후 스케줄은 내가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관심이 없었던 아소산, 활화산 분화구 구경이었다. 그런데 아싸~! 날씨는 쾌청해도 바람이 거세 '로프웨이'(케이블카를 이렇게 부르는 듯;) 운행이 중단되었단다. 처음 나눠준 일정 안내에도 날씨에 따라 분화구를 못 보게 되면 화산 박물관으로 대체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이드 말이 말이 화산박물관이지 사진 몇장 보고 오래 된 영상물 보는 게 전부이니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 말이! 해서 화산 사진은 로프웨이 승강장 건물에서 대강 보고, 그곳 특산물이라는 요구르트 한 병씩 마신 뒤 후쿠오카로 향했다. 심지어 점심 때 먹은 것 같은 저녁을 또 단체로 먹느니 박물관 입장료랑 저녁값이랑 챙겨서 각자 돌려줄 터이니 자유로이 사먹으라는 가이드의 제안. 우리야 당연히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별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가이드가 융통성을 많이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버스 타고 이동거리를 최소로 하려고 일정 순서도 좀 바꾸고 보나마나 한 전망대 관람 같은 건 하나 쯤 슬쩍 빼먹고...  워낙에도 마지막날은 자유여행이었지만 사흘 간 절반쯤이 자유롭고 보니 우리에겐 더욱 금상첨화였다. 

 

결국 우리는 늦은 오후에 후쿠오카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나서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애당초 셋이 가려던 여행이라 숙소 때문에 여행사 직원과 여러번 통화를 해야했는데, 우린 방이 좁아도 당연히 셋이 묵겠다고 우겼으나 매번 불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었다. 트윈이 아니라 세미더블이 어떻고 저떻고....

암튼 결국 둘이 갔으니 문제는 해결됐지만, 호텔방에 올라가 본 우리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비즈니스호텔이라 방이 정말 비좁아서 트윈 침대를 들여놓을 데가 아예 없어! ㅋㅋㅋ

 

치산호텔 방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등뒤에 출입문이 있고 침대 발치에 벽처럼 있는 곳이 화장실. 욕조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야할 정도로 귀여운 크기에 변기에 앉으면 거의 문에 무릎이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 엄청 깨끗해서 하룻밤 자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음.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고 우리는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다만...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호텔임이 좀;; ㅋ

그러고 보니 일본은 대체로 와이파이에 인색했다. 로밍은 해갔어도 데이터는 차단해뒀던 터라 와이파이 되는 데서만 신문물 검색이 가능했는데 도심 호텔에서도 와이파이가 안될 줄이야! 벳부 료칸에서도 와이파이 패스워드 알려주던데 쳇!

그래도 나에겐 제법 실한 눈썰미와 방향감각이 있겠다. 두려움에 떠는 친구를 호기롭게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포장마차촌에서 본토 오뎅도 먹게해주마.

 

강을 따라 저녁때만 나타난다는 포장마차촌을 향해 곧장 강을 건너니 벌써 어스름. 

 

 서서히 장사를 시작하려는 포장마차가 보이긴 했으나 본격 영업은 해가 져야 할 모양이라 우린 계속 강을 따라 걷다가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뭔가 문화재스러운 건물도 만나기도 하고, 다리를 두어번 건너 공원 벤치에 한참 앉았다가 돌아섰다.

 

 

 

 

 

호텔 바로 옆부터 '캐널시티'라고 어마어마한 쇼핑몰이 있던데 후쿠오카는 운하의 도시인 듯했다. 넓지 않은 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세 갈래였던가?) 도심에서 다리를 건너 조금 가면 또 다시 강줄기가 나왔다. 차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사람들만 건너다니는 다리가 있고... 다음날까지 다리를 몇개나 건너다녔는지 셀 수도 없다.

 

엄청 큰 물고기가 가끔 펄쩍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후쿠오카의 강에선 그런데 한강처럼 낚시질 하는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낚시는 금지인가? 하기야 한강에서도 낚시는 원래 금지됐는데 사람들이 몰래몰래 하는 거라고 들은 것도 같다. ^^;

 

강변 길을 다시 되짚어 돌아오다 드디어 일본에선 드물다는 포장마차 촌에서 오뎅을 사먹기는 했는데, 맛은 뭐 그저 그랬다. 내 입맛이 워낙 서민적이다보니 오뎅도 좀 구수하고 팅팅 불은 걸 선호하는데 (반면에 친구는 쫄깃한 걸 선호;;) 국물이 너무 짜고 달아서 새삼 일본이구나 싶었음.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포장마차 안주는 비싸니까 조심하라는 가이드 말은 이번에도 틀렸어! 고기 꼬치 파는 집은 비싼 집도 있었지만 우리가 먹은 오뎅집은 둘이 먹고 450엔. 한국 떡볶이 포장마차랑 비슷하구만 뭘;; 겁을 주고 그러시는지.

 

암튼 요기를 하긴 했어도 저녁식사로는 제대로 된 일본 라멘을 먹기로 결심했던 터라 캐널 시티에 모여 있다는 유명한 라면집을 찾아 올라갔다. 입구에서 자동 주문기로 먼저 돈을 내고 주문서를 뽑아야하는 데 그걸 몰라 어리바리 테이블에 앉았다가 다시 나와 시킨 라면은 그나마 제일 맵다는 것이었으나... ㅋㅋ 친구는 라면 면발이 아무리 생면이라도 꼬불거리지 않는 건 반칙이라며 느끼함에 괴로워했다. 돼지뼈 국물 라멘에 뭘 기대하셨나요 ㅎㅎㅎ

 

교자랑 세트로 나오는 걸 시켰으니 망정이지 양이 하도 적어 미리 오뎅 안 먹었으면 배고파서 화났을지도...

 

 

암튼 시내 거리를 쏘다니다 엄청 비싼 과일집에서 발견한 네모난 수박  구경과 편의점에서 일본맥주 쇼핑을 끝으로 둘쨋날도 끝이 났다. 

 

나야 가끔씩 버스타고 나다니기나 하지, 새벽부터 종일 12시간(동부와의 시차 때문에 6시에 출근한단다 헐;;;) 근무에 시달리는 은행 간부인 친구는 여행 이틀만에 고백했다. 석달치 걸을 거 여기 와서 다 걸은 것 같다고. 12센티미터나 되는 통굽 슬리퍼를 용감하게 신고 일본 여행 오겠다는 걸(인천공항엔 맨발에 그걸 신고 내렸었다)  내가 극구 말려 운동화를 신게 했었는데  운동화 안 신었음 어쩔 뻔 했누 ㅎㅎㅎ

 

(201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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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생각

식탐보고서 2012. 9. 14. 02:18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스스로도 영문을 모르게 멍한 상태가 되어 뒹굴뒹굴 컴퓨터 전원을 이삼일 씩 안 켜고 지낸 날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래도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있다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공부 좀 하자면 먼저 늘어놓은 책상정리에 몇 시간 땀을 빼고서야 본격적으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던 습관은 참 안 변한다. 원래도 책상과 친해지기가 참 힘든 인간이었구나 내가. 그에 비해 평생을 통틀어 나와 가장 친한 공간은 아무래도 구들장이 아닐는지.

 

몹시 뜨거웠던 여름 내내 더워서 몸 움직이기가 싫어서 그렇지, 별로 입맛을 잃거나 굶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찬바람 불면서 식욕이 떨어지고 다 귀찮아졌다. 먹고 사는 게 새삼 왜 이리도 구차한지. 그래서 게으름이 시키는 대로 가능하면 하루에 한 두끼만 대충, 잠도 아무때나 불규칙하게 자고 막 살며 몸을 좀 학대했더니 중년의 육신은 대번에 반항을 했다. 파르르 감기기운이 돌면서 목도 아프고 기진맥진, 좀체 카페인발도 안받고 말이지...

 

앗 뜨거라 싶어지면서 결국 손해보는 건 나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다시 열심히 해먹고 사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다. 중늙은이 상늙은이 할 것 없이 제 몸 생각 하느라 벌벌 떠는 태도는 참으로 숭하던데, 내가 그러고 앉았다. 남 욕할 거 하나도 없다. 숭하거나 말거나 어쨌든 물 대신 오미자 우려먹고, 배숙 끓여 먹고, 밤참으론 빵조가리 대신 수프도 끓여먹으며 땀냈더니 금세 비실거리던 기세는 떨어져나갔다. 역시 나는 밥심으로 사는 유형. 배숙과 수프는 인터넷 검색해서 참고했으니 적어놨다가 나중에 다시 써먹을 요량으로 기록한다. 아침에 기침 나오고 목 아프다던 노친네도 배숙 이틀 마시고 원상복귀됐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진짜 효험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기특하다.

 

<배숙>

큼지막한 배 1개, 생강 큰 거 1뿌리, 대추 열알쯤, 통후추 약간, 꿀 약간

 

1. 배는 12등분해서 껍질을 깐다.

2. 생강은 껍질을 까서 대충 저민다.

3.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껍질깐 배와 생강, 대추, 통후추를 넣고 중불에 끓여 물이 절반 쯤 줄어들 때까지 장시간 곤다.

4. 노르스름한 색깔로 잘 고아지면 꿀을 적당히 넣는다.

 

뜨거울 때 마셔도 좋고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혀 먹어도 좋은듯.

기침엔 배도 다 건져 먹어야 좋다는데, 설컹설컹 익은 배를 먹는 느낌은 좀 고약하다. ㅋ

 

 

 

 

 

 

 

 

<마녀수프?>

냉장고에 있는 온갖 채소(감자, 양파, 당근, 가지, 샐러리, 브로콜리, 토마토), 버터 약간, 카레가루 약간, 소금 약간.

 

1. 온갖 채소를 잘 씻어서 큼직큼직하게 잘라 냄비에 넣는다.

2. 버터를 약간 넣고 볶다가 물을 한두 컵 붓고 끓인다. (다이어트를 위한 진짜 마녀수프라면 버터에 볶으면 안된다. 올리브오일을 쓰라던가.. 하지만 나는 맛이 중요한 사람이니까;;)

3. 채소가 물렀다 싶으면 카레가루 약간 넣고 소금도 원하는 만큼 넣는다. 나는 둘 다 거의 넣는 시늉만 했음.

4. 나름 그루통이랍시고 토스트빵을 잘라 넣어보았으나 에러... ㅋㅋ 그냥 따로 먹는 게 낫다.

 

두번째로 퍼먹을 땐 영양을 생각해 치즈 한 장 얹어 먹었다. 당근 빼곤 내가 다 좋아하는 채소들이라 딱 기대했던 맛이 났다. 자연스레 달착지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랄까. 비타민 완전 충전형 야채수프라고 생각하면서 땀내고 먹고 났더니 감기기운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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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삶기

식탐보고서 2012. 9. 8. 22:26

찬물에 열심히 헹궈 식히지 않아도 껍질이 잘 까지는 달걀 삶기 비법을 쌘이 블로그에서 전수받아 오늘 시도해봤는데

정말이었다! 완전 신기하여라. 방법은 물의 양을 한 국자, 75ml 정도만 냄비에 넣고 달걀을 중불에 뚜껑 닫고 6-7분 삶다가, 뚜껑을 덮은 채로 반숙은 3-4분, 완숙은 다시 6-7분 놓아두는 것. 물을 그렇게 조금 바닥에 깔릴 만큼만 넣고 달걀을 삶는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으나, 결과물은 정말로 신기했다.

 

달걀 삶아서 껍질을 매끈하게 잘 까려면, 갑자기 찬물에 담가서 껍질의 부피를 확 줄여 중간에 공기층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왕이면 얼음물에 담그라고 하는 조언을 오래 전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어 나름 찬물에 헹궜다가 찬물 틀어놓은 수도꼭지 아래서 까보아도 성질 급한 나는 종종 우툴두툴 살점이 떨어지게 만들곤 했다. 그뿐인가, 냉장고에서 달걀을 바로 꺼내 냄비에 넣고 삶으면 왜 꼭 터져서 내용물이 질질 새어나오는지! 냉면 먹을 때야 옆구리 좀 터진 삶은 달걀을 얹어도 상관없지만, 장조림 같은 거 하려고 여러 개 삶을 때 터져버리면 참 난감했다. 삶을 때 터지지 않아도 껍질 까면서 우툴두툴 살점 떨어진 달걀은 장조림을 해놓아도 당연히 볼품 사납다.

 

달걀을 삶는 도중 껍질이 터져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보니 몇 가지가 있었다.

- 물에 소금을 넣고 삶을 것. 소금 성분이 단백질을 응고시킨다고.

- 불을 너무 세게 하지 말 것. 약불로 시작해 중불로 불 조절 필요. 냉장고에서 나온 차가운 달걀이 급격한 온도변화를 견디지 못해 급팽창하는 것이라나.

- 달걀이 완전히 물에 푹 잠기지 않도록 약간 숨구멍을 허락할 정도로만 물 양을 조절할 것. 뜨거워진 공기가 새어나올 구멍이 필요하다고.

- 삶는 도중 냄비를 흔들어 안에 든 달걀을 몇 번 굴려줄 것. 온도를 골고루 퍼지게 함과 동시에 노른자 위치도 정중앙에 놓이는 이점이 있음. 

 

그리하여 달걀을 터지지 않게 삶는 경지에는 오를 수 있었으나 살점 안 떨어지게 껍질 까는 것은 최근까지도 나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웬만한 요리는 어깨너머로 보고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삶은 달걀 하나 매끈하게 못 깐다는 게 때로는 자존심이 상할 정도. ㅠ.ㅠ 찬물에 여러번 헹구면야 물론 나도 매끈하게 깔 수 있지만, 후닥닥 30분 미만으로 점심 준비하면서 냉면 사리와 달걀을 동시에 삶고, 오이채 준비하고 상차림까지 완비하려면 일사천리로 쉴 새 없이 과정이 진행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개는 앗 뜨거라 하면서도 수도꼭지 아래서 후딱후딱 삶은 달걀 껍질을 까다보니...

 

째뜬 쌘이의 비법대로 오늘 삶은 달걀은 찬물에 한번만 헹구고 뜨거운 채로 막 까도 확실히 껍질이 잘 벗겨졌다. 물에 담가 끓이는 편보다 온도변화가 더 빨라서 내용물의 부피가 확 주는 모양인지, 톡톡 깨뜨려보니 공기구멍이 보통 물에 푹 담가 삶을 때보다 훨씬 컸다. 알고 보면 달걀 삶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의 모든 과정에도 이토록 놀라운 과학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염장 음식은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재료의 수분 양을 줄이는 원리일 것이고, 밥만 해도 쌀의 녹말 형태를 변형시켜 부드럽게 만드는 화학작용이 아니겠나. 대대로 내려오는 손맛과 전통 같은 것이야 과학 따위가 끼어들 틈도 없이 그저 정성과 세월의 힘이라고 믿지만, 나 같은 식탐형 얼치기 요리사는 확실히 요리법과 함께 원리를 깨쳐야 납득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손으로 꿈쩍여 먹고 살려면 배워야할 게 또 얼마나 많을까. 어차피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살아야한다지만, 껍질 매끈하게 벗겨지는 달걀 삶기 비법을 사십대 중반에 비로소 깨닫고 좋아라 흥분했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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