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해당되는 글 39건

  1. 2010.04.10 짐을 싼다 9
  2. 2010.03.31 비오는 수요일 14
  3. 2009.08.26 칠석에 내리는 비 6
  4. 2009.03.13 그런가? 14
  5. 2009.03.06 근대 엿보기 10
  6. 2008.11.27 남자의 수다 15
  7. 2008.08.22 춥다 14
  8. 2008.08.12 더위는 이제 그만 4
  9. 2008.07.23 어렵다 19
  10. 2008.07.22 비는 사랑을 타고 17

짐을 싼다

투덜일기 2010. 4. 10. 02:03

사흘간의 탈출. 최초의 모녀 여행. 최초의 일본 여행. 온천료칸 체험. 짐을 싼다.
왕비마마 칠순기념으로 흐드러진 벚꽃구경을 목표로 했으되 마감 눈치보느라 어물쩡거리며 자꾸 예약날짜 바꾸는 사이 좋은 날짜 다 놓치고, 3박4일 로망대신 2박3일로 줄어든 일정으로, 과연 벚꽃이 남아있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계절에 암튼 간다.

전통료칸에서 무조건 편하게 쉬면서 맛난 거 먹고, 쏘다니는 관광은 최소한인 조용한 상품을 찾다보니 이름하여 <명탕순례 미각기행> ㅋㅋ. 지리에 워낙 약해 도쿄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돗토리현 요나고. 일왕도 묵어갔다는 료칸이라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며 덜컥 정해놓고는, 필요이상으로 들떠 흥분한 왕비마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며 드디어 짐을 싸고 있다. 나 같은 역마살 인생한테야 여행이란 늘 감당할 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주는 놀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특히 노인들에겐 말 설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험이란다. 여행 뒤끝엔 늘 마음병이 도져 돌아온 울 엄마가 바로 그 케이스. 당신이 가고싶다던 일본 온천 여행이니 과연 이번엔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돌아보니 여행 직전까지 밀린 일에 휘둘리는 건 늘 반복되는 습관이다. 제주도 갔을 때는 아예 일감을 싸가지고 갔었고,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지 아마. 이번에도 가서 쉬면 된다면서, 공항가기 몇시간 전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원. 

아무튼 이번엔 일감은커녕 책 한권도 안 가져갈 거고 순전히 늘어져서 먹고 쉬다 올 테다. 헌데 현지 날씨를 확인해보니 계속 비가 온다네 젠장. 바람에 휘날리며 지는 벚꽃비를 기대했더니, 참 운도 좋다. 나 혼자라면야 비오는 일본 시골 도시도 고즈넉한게 좋기만 하겠지만, 부디 꽃구경 좋아하는 우리 왕비마마를 위해서 단 하루라도 축축한 비대신 꽃비가 내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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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수요일

투덜일기 2010. 3. 31. 13:10

요즘 거의 라디오를 안 들어서 알 수 없지만, 아직도 비오는 수요일엔 다섯손가락이 부르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가 자주 나오는지 궁금하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이미 해체된 그룹이니 내 또래가 아니고선 <다섯손가락>이란 이름조차 낯설듯한데, 동방신기가 부른 <풍선>인가 하는 노래도 원래는 다섯손가락이 부른 노래였다. 유난히 수요일에만 비가 자주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던 그 노래 덕분에 비오는 수요일엔 종종 빨간 장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 세뇌작용이 얼마나 강렬한지 오늘처럼 비오는 수요일엔 아직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 노래가 생각나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빨간 장미 한송이를 사볼까 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천편일률적으로 한송이씩 셀로판지에 둘둘 말아 리본 묶어 놓은 거 말고, 이왕이면 튼튼한 대를 길게 잘라 아무 포장 없이 그냥 들고 올 수 있게 하는 꽃집에서.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일이면 4월이다. 예전엔 4월이 열리면 이런 저런 만우절 에피소드와 함께 어김없이 April come she will~로 시작되는 사이먼&가펑클의 <4월> 노래를 이방송 저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혹시 요즘도 그럴까? 혹시나 틀어줄지 내일은 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보고픈 마음도 든다. 음악이 듣고 싶으면 찾아서 들으면 될 것을 라디오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내가 구식이고 옛날 사람이라는 증거겠지.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이유는 단단한 죽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생명력 때문이라는데도, 다른 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4월은 봄꽃의 달이라 꽃의 향연 속에서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야 하는 상황을 잔인하다고 여겨 툴툴댔던 것 같고, 올해도 역시나 나의 4월은 잔인한 스케줄을 품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땐 하필 제일 날씨 좋고 봄꽃 아름다울 때 중간고사 기간이라 잔인하다기보다는 억울한 4월이라고 생각했다고 쳐도, 다들 굳이 다른 달보다 4월을 더 힘겨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느끼는 걸 보면 분명 주입식 교육의 잔재다. T. S. 엘리엇.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무운시. 그러니까 4월은 무조건 잔인한 달. -_-;

어쨌거나 촉촉한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라 몰랑몰랑해진 감성은 음악을 멀리하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인간에게까지 감상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비와 함께 연상되는 음악, 커피, 추억 같은 것들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만 품고 있는 주입식 기억의 흔적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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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날짜보다 음력이 더 편한 할머니 두분이랑 오래도록 가까이 산 데다 이젠 울 엄마도 할머니가 되어 매일 양력과 음력이 나란히 적혀 있는 달력을 들춰가며 날짜계산을 하는 터라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오늘이 칠석이라고. 절에선 칠석(음력 7월 7일이다)부터 백중(음력 7월 보름)까지 계속 특별기도가 있는 터라 왕비마마는 원래 절에 가셨어야 하는데 마침 안과 정기검진일이라 못 가게 된 게 엄청 아쉬운 모양이었다.
왕비마마의 아쉬움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오늘도 과연 비가 내릴 것인가 그것만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방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칠월칠석은 견우랑 직녀가 일년에 딱 하루 오작교를 타고 만나는 날이고, 그래서 기쁨의 눈물이 비로 내린다는 전설을 나는 전래동화책을 보기 이전에 까마득히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것 같다. 한 여름 낮잠을 자려고 할머니방에 누우면 친할머니는 잠이 쉬이 오도록 머리칼을 살살 쓸어넘겨 주시거나 부채질을 해주면서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평안북도 고향에 사실 적에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고 싶었는데 계집애라 학교에 못가게 하는 바람에 오라버니들 책 읽는 걸 귀동냥으로 들으며 독학으로 대강 한글을 익혔다는 이야기며, 몸종 거느리고 꽃가마를 타고서 시집 오던 날 이야기, 한량 남편의 기생질 사건 같은  할머니의 실제 경험담도 있었지만, 견우 직녀 얘기랑 햇님달님 이야기 같은 옛날 이야기도 주요 레퍼토리였다.

어린 나에게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곧 진리이기도 했지만, 칠월칠석엔 정말로 해마다 비가 내려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비가 조금 내리면 기쁨의 눈물이라 살짝 울고 마는구나,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리면 이번엔 그동안 서로 헤어져 지내는 게 힘들어서 서러움의 통곡을 하나보다, 하는 할머니의 부연설명까지 곁들여지면 어찌나 더 실감이 나던지. 여름마다 옥수수를 사다가 쪄먹을 때 옥수수 끄트머리에 달린 수염을 뜯어내면서도, 햇님달님 호랑이가 마지막에 썩은 동아줄이 끊어져 옥수수밭에 떨어지는 바람에 옥수수 수염이 빨갛게 됐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나는 호랑이 피가 묻어 색이 변했다는 옥수수 수염을 단 한오라기도 남겨놓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왈칵 울음을 쏟아내던 견우와 직녀가 진정했는지 이 글을 쓰는 사이 어느새 비가 그쳤다. 언젠가는 칠석날 아침에 비가 내렸다가 해가 쨍 났다가 저녁무렵 다시 비가 내린 적도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날 직녀랑 견우가 만나서 기뻐 울다가 행복해져서 해가 났었는데 저녁때 다시 헤어져야 하는 게 슬퍼 또 눈물을 흘리는 거라고 하셨고, 종일 비가 안 내려 이상하다 싶었다가 오후 늦게 비가 내린 어느해 칠석엔 아마 까마귀랑 까치가 게으름을 부려서 오작교를 늦게 만들어줬나 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10여년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에겐 참 늘 위대한 분이었던 우리 할머니, 이제 돌이켜보아도 정말 참 대단하시다. 할머니가 소싯적에 전해 들었던 이야기였든, 당신이 직접 꾸며내신 이야기였든 칠석날 하나에도 손녀딸에게 이토록 소중한 추억과 다양한 이야기를 남겨주셨다니.
오늘따라 눈물나게 할머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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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투덜일기 2009. 3. 13. 00:18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도 교정지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딴짓을 할 수가 없어 블로그질도 멀리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건만, 봄비오는 밤 누군가의 춘심에 뒤통수를 맞았다.
넌 왜 만날 그렇게 씩씩하느냐고 걸핏하면 딴죽을 거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나의 변함없는 씩씩함에 트집을 잡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외로워서 술 한잔을 하고도 계속 외로워서 자기보다 외로운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생각해봤더니 누군가 떠올랐다나. 그게 누군지 아느냐고 나에게 묻기에, 나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곤 대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내 대답도 듣기 전에 하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은 바로 나란다.
의지력이 강해서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씩씩하게 보이지만 속은 안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안쓰럽다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섣불리 나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코멘트 쯤은 시큰둥하게 넘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여기고는 있는데, 세상에 안 외로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웃어 넘기며 취기어린 목소리를 차단하는데 성공을 거두긴 했는데, 좀체 다시 교정지에 집중이 안된다.

그런가?

흥.
아니다.
외로운 걸 모를 정도로 심장이 무심하게 단련된 것인지 그냥 무신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절대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나니까 안다.
쳇.
그저 비와 술이 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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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엿보기

놀잇감 2009. 3. 6. 15:52

덕수궁 입장료 단돈 천원으로 한국근대미술 걸작전을 볼 수 있다는 낭보를 접한지 한달만이었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오후 정동으로 향했다. 궂은 날씨가 얄밉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가 오니 미술관이 한적하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좀 춥긴했어도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고궁 뜨락을 거니는 맛 또한 감격스러웠다. 드물게 석조전 동관까지 개방해 전시를 할 만큼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음에도, 전시는 입이 헤 벌어질 정도로 대규모라 운수라곤 통 없는 내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느낌이었다. 


미술관 서관과 동관 입구에서 각각 나눠주는 무료 티켓도 어찌나 앙증맞고 예쁘던지 책갈피로 쓰거나 간직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소중히 가져와 스캔했다.
표에 인쇄된 건 아시다시피 박수근과 천경자의 그림.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를 눈앞에 마주한 순간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 상고머리를 하고 저렇게 아이를 들쳐업은 울 엄마의 사진을 언젠가 본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전시된 2백3십 몇점들의 작품은 겨우 삼분의 일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다 빌려온 것들이란다. 클림트의 작품을 대거 만나보는 건 금세기에 또 없을 거라는 광고에 힘입어 예전 미술관이 매일 문전성시라던데, 우리나라 근대화가들을 이렇게 대거 모아놓은 전시 또한 금세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빴다. 티켓엔 본인이 몇번째 관객인지 알아볼 수 있게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본관은 12만명이 넘은 반면 동관은 인원이 그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보아 다들 시간이 빠듯했나보다 싶었다. 하기야 도슨트의 설명 1시간을 포함하여 우리도 양쪽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꼬박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번 더 가야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이인성, 김기창, 김환기, 장욱진, 구본웅, 박래현, 천경자... 이름을 대기에도 벅찬 유명화가들이 무려 105명이나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오죽하랴!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았던 작품들도 알현 가능했고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들도 더러 있어서 더욱 반가웠는데, 월북한 화가라 최근에야 비로소 해금되었다는 이쾌대 화백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비롯한 낯선 작품들은 역시나 눈길을 끌었다. 자유연애의 열풍이 불었다는 근대의 그 시기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미래의 부인 유갑봉 여사에게 보낸 절절한 연서도 함께 공개되어 있었으니, 비오는 봄날의 정서와 어찌나 잘 어우러지던지.
해방전후의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당시를 상상하려니 얼마 전 읽은 책 <서울은 깊다>와 많은 부분들이 겹쳐지는 듯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변모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한 역사 속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들,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그 시절 이 나라의 면면들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모습을 엿보는 기분은 퍽 묘했다. 너무 가난해서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뒤 담뱃갑 은박지 뒤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가 하면, 당시 집 한채 값도 넘는 800원이라는 외상값을 갚으려고 유학비를 타 외상값을 청산하고 유유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종우의 그림도 있었다. 내노라하는 당대 거부의 자식이었기에 서양 화구와 서양화를 접할 수 있었을 수많은 화가들의 친일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았다.  정치적인 향방과 상관없이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래도 아는 게 병이라고, 조각을 그림보다 덜 좋아하긴 하지만 친일 문제를 거론할 때 제일 먼저 손꼽히는 김경승의 조각품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심드렁해서 휙 지나치게 되더군. 

인상적인 그림들이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든데, 그래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동관 전시실에 아담한 화실을 옮겨다 재현해 놓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유쾌하고 귀여운 느낌의 장욱진 선생의 그림들도 좋았고,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들은 말하면 잔소리고, 이응노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어 기뻤다. 특히 <취야>는 비도 오겠다 술한잔 해야할 것 같은 흥겨운 느낌을 풀풀 풍겨 그림을 보다 말고 마구 목이 말라졌다. ^^

이응노 [취야]

장욱진 [수하樹下]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했던 그림은 박래현의 <노점A>.
중3때였던가 고1때였던가, 학교 미술시간에 판화를 할 때, 나는 하필 미술책에 있던 이 그림을 판화로 시도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박래현이 김기창화백의 부인이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큐비즘을 시도하여 이 작품으로 국전 대상을 탔다는 뒷이야기는 알지도 못할 때였고, 그냥 시장 좌판의 여인들을 단색의 판화로 모사해도 멋있을 것 같았다. 미술선생님은 굳이 어려운 걸 파겠다고 애쓰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찼지만 완성된 작품은 꽤나 뿌듯하게 나왔고, 특히 리어카에 앉아 팔을 괴고 있는 아줌마의 표정과 머리에 인 광주리에 담긴 생선이 원작보다 생동감 있다는 과장 섞인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미술책 속 사진과 소싯적 내 판화의 밑그림으로만 알던 이 그림은 실제로 보니 꽤나 크기가 큰 대작이었는데, 건너편 벽에 걸린 김기창 화백의 예쁜 여인들 그림과 함께 번갈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전시는 3월 22일까지.
평일 전시는 6시까지, 금토일엔 8시반까지 연장 운영된다. 얼마 남진 않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고, 나 역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무료 관람에다 전시작품이 많아 복권 당첨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마지막에 뜻밖의 근대 엿보기 경험을 하나 더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번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루라는데, 하필 우리가 간 날 무성영화를 상영하다니. 여러모로 공교로웠다.
제목도 익히 들어본 바 있었던 <검사와 여선생>.
현존하는 마지막 변사 신출 할아버지의 설명으로  1948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를 난생처음 덕수궁 미술관 로비에 앉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난생처음 영화를 접했을지도 모를 옛날 사람들의 설렘과 내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든이 넘으셨다는 신출 할아버지는 결코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귀띔으로 영화 설명을 시작했지만, 음향과 발음의 문제로 삼분의 일은 못알아들으면서 우린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조악한 초기 영화 기술도 그렇거니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표정은 정말로 요즘도 코미디에서 모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의 전형이었는데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혹시나 관객이 졸까봐 그러시는 것인지 중간중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이름을 불러대시는 변사 할아버지의 말소리도 재미났고, 당시에 자막의 맞춤법까지 손볼 여유가 없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그땐 그렇게 맞춤법을 소리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던 것인지 가끔씩 출몰하는 자막의 <이튼ㅅ날> <며칠을 굴멋니?> <엇째서 그러니> <내>(네) 같은 글씨들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와글와글 웃어댔다. 

잠깐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인데, 들고 돌아온 팸플릿과 티켓을 보면 확실히 현실이라 오늘까지도 느낌이 더욱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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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수다

투덜일기 2008. 11. 27. 17:35

내가 보기에 수다스러움은 성별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개인차일 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냥 수다스러운 이가 있고 말이 없는 이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심하게 수다스러운 남자의 경우 그 정도와 혐오감은 그야말로 으뜸이다.
지난번 유럽영화제를 보러 코엑스에 갔을 때 지하철을 길게 타면서 꽤 심하게 지하철 멀미를 했기에 이번엔 비가 와서 길이 막히든 말든 버스를 타고 강남엘 갔었다.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앉아 빗방울이 맺힌 차창을 내다보며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는 마른 날과는 또 달랐다. 
문제는 소음.
갈 때는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의 수다스러운 남자 디제이 때문에 괴로웠다. 이래서 젊은 사람들은 다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구나 싶었다. 다음엔 나도 휴대폰 이어폰을 챙겨갖고 다니다가 몇곡 안되긴 하지만 저장된 음악을 들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래도 라디오 소음은 익숙해지고 나니 배경음처럼 뇌리에서 지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돌아올 때 옆에 앉았던 남자의 수다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목소리와 발음은 목청 높여 설교하시는 목사님(죄송하지만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목사님들의 낭낭한 설교톤은 정말이지 싫다!)의 번드르르한 어투를 따라한 듯하여, 혹시 전도사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차림새나 들고 있는 가방도, 무슨 무슨 집사님이 찾아와 무슨무슨 일을 상의했으며, 성도회 6지구에서 하는 일이 잘 안되서 온종일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괴로웠다는 내용도 나의 짐작을 뒷받침해주었다.
처음엔 도대체 그렇게 길고 긴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 들려주는 휴대폰 통화의 대상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10분쯤 지나자 상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지나고 있는 정류장과 동네 이름을 추임새로 넣어가며 남자가 20분 넘게 통화를 하는 상대는 아내였다. 4시도 안 된 시간에 퇴근을 하는 남자의 진짜 직업이 무엇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남자는 온종일 있었던 일과보고를 충실하게 마치더니 아이들은 지금 무얼 하는지 묻고는 조금 있다가 학원엘 가는 듯한 아이에게 간식으로 고구마를 주면 되겠다고, 아이가 잘 먹도록 삶은 고구마를 작게 잘라 포크로 찍어먹게 하라고, 그게 싫다고 하면 사과랑 귤을 반개씩 먹이고 우유를 마시게 하면 될 거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과자부스러기는 금방 배가 꺼질 거라나. 그러고는 4시반쯤 도착할 텐데 아내의 간식으로 먹을 떡볶이를 사갈까, 빵을 사갈까, 던킨에서 도너츠를 사갈까, 연신내에서 갈아탈까, 그냥 끝까지 가서 좀 걸을까, 오늘 저녁엔 무얼 먹게 해줄 건지 끊임없이 묻고 아내의 대답을 들었다.

강남역에서 내가 버스를 탔을 때부터 이미 연결되어 있던 남자의 통화가 그 낭낭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30분 가까이 이어지자 나는 머릿속으로 하필 그 남자 옆에 앉은 나의 선택을 저주하며, 남자의 휴대폰을 확 낚아채 비오는 창밖으로 내던지는 상상을 했다. "닥쳐! 시끄럽단 말이야!"라고 외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승객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결국 남자는 30분을 넘겨 버스가 종로에 접어든 후에야 전화를 끊었고, 거의 멀미에 가까운 소음공해를 피해 대각선 앞자리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부들부들 남자에 대한 혐오감에 떨던 나도 다시 마음을 안정시키고 창밖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남자는 아내에게 둘도없이 자상하고 사려깊고 애정 넘치는 남편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 남자는 그저 버스안에서 예의없게 목청 높여 휴대폰 통화를 하는 무뢰한일 뿐이며
사소한 일도 홀로 결정하지 못하는 쪼잔하고 소심한 의지박약의 혐오남이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간섭하고 지시하고 의논하고 질문하는 남자라면 난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오래 홀로 지내면서도 외로움이란 걸 모르는 것이겠거니 하면서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말로든 글로든 이렇게 수다스러울지언정 주책없이 뻔뻔하고 수다스러운 남자는 정말 질색이라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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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투덜일기 2008. 8. 22. 14:27
덥다고 헉헉대며 발악하는 포스팅을 한 게 불과 열흘 전일 텐데
아침저녁으로 선들선들 하더니 비가 내리는 오늘은 벌써 춥다.
보일러를 돌려 방바닥과 집안 공기를 데우며 비바람 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라는 인간의 변덕과 나약함이 혐오스럽고 짜증날 정도.
나는 역시 추위보다 더위가 더 만만하다.
그래서 춥다고 느껴지는 8월의 남은 날짜들을 보며 겁이 났다.
일년에 더운 날은 겨우 두달이고, 변덕스러운 인간이 추위를 느끼는 달은 열달이나 된다는 사실이
새삼 두렵다.
이렇게 미친년 널뛰듯 하는 내 변덕스러움이 정말이지 재수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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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올 여름 더위는 단연코 내 생애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열대야 때문에 잠못드는 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벽녘엔 서늘해져서 얇은 홑이불이 여름엔 나의 필수품이었다.
올해도 7월까지는 잘 때 반드시 홑이불로 몸을 칭칭 감아야 편히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날밤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한낮엔 숨막히게 더워도 밤엔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서 포근함을 느꼈던 한라산 중턱의 여름밤이 너무 달콤했던 탓일까. 8월의 서울 더위는 정말이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제부터 비가 내려 선선해졌으니 망정이지, 찜통더위가 계속 이어졌다면 난 아마 헐크처럼 누덕누덕 옷을 찢어뜨리며 폭발했을지도 모르겠다. -_-;;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며 냉방병에 쉬 걸리던 과거의 나는 이제 사라진 게 확실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틀어놓은 에어컨을 끄고 돌아다니거나 온도를 올리는 사람이 나였는데
올해는 결국 못 견디고 에어컨 리모컨을 먼저 찾는 사람도, 온도를 자꾸 낮추는 사람도 나다.
자동차에서도 작년까지는 처음 실내온도를 낮춰야할 때를 제외하고 시원해진 다음에 혼자 다니면서는
 26도 아래로, 그리고 2단 이상 에어컨을 틀어본 적이 없었건만 올해는 26도에 맞춰서는 견디질 못하고 자꾸 온도를 낮춘다. 바람세기도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어제 비 내리기 직전 통화한 울산 사는 지인은 8월 초부터 분명 바람이 다르다며 가을이 오고 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나에겐 턱도 없는 소리였다. 울산과 서울의 지역차가 컸겠지.
나보다 훨씬 더위를 많이 타서 한겨울에도 얼음을 으드득 씹어먹기 일쑤인 그 지인은 올 여름이 그렇게 심히 덥지 않았단다. 평년과 다를 게 없었다나.

하지만 내 경우 이렇게 열흘 가까이 더워서 잠을 못자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온종일 괴로워했던 여름은 처음이다. 주변의 의견을 물어보면 절반은 올 여름이 특히 더웠다고 수긍을 해주는 편인데 나머지 절반은 다른 여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단다.
더위를 느끼는 정도도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고 지역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래도 올 여름 더위가 특히 견디기 힘든 이유는 변해가는 나의 체질 탓이라는 심증이 굳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서글프게도) 점점 땀도 많아지고 더위를 많이 타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올 여름에 겪은 추이대로라면 내년 여름이 정말이지 두렵다. 원래 입추와 말복이 지나면 추워서 바닷물에도 못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올 여름 같아선 8월 말까지도 거뜬히 해수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겨울을 보면 그렇다고 추위에 강해진 것도 아닌데 무슨 놈의 체질이 이렇게 짜증스럽게 변하는지 원.

연일 더운 날씨와 높은 불쾌지수 탓을 하며 걸핏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고 창피스러운데, 후회는 늘 뒤늦고 잠시 뿐 참을성 눈금은 좀처럼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변해가는(엄밀히 말해선 늙어가는) 몸으로 부족한 성정을 다스리기엔 무리가 있으니 그저 더위가 물러나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니 어찌나 반가운지, 요 며칠 기특하게 잘 맞는 날씨예보에 고마워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건 아쉽지만 부디 여름 더위는 빨리 꺾이길 바란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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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투덜일기 2008. 7. 23. 23:51

또 시작됐다.
나의 옮긴이의 말 울렁증.
일주일 내내 고민해도 가닥이 잡히질 않아 며칠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옛날에 읽으며 주옥같은 문장에 반해 따로 챙겨두었던 책도 읽고 최근에 사들여 쌓아두고만 있던 책들도 읽으며, 뭔가 그럴듯한 화두가 떠오르길 빈다기보다는 글솜씨 뛰어난 작가들의 <글발>이 어떻게든 전염병처럼 내게 옮겨오길 빌었다.
그런데 별 소용이 없다.
그나마 밤이 내리면 감상의 과잉에 허덕이게 될까 싶어 일부러 연일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밤의 마법을 기대했건만 눈주변만 시커매질 뿐 그마저 효험이 없다.
오늘은 급기야 술의 힘을 빌어볼까 캔 맥주를 땄다.

번역가도 작가랍시고 꼬박꼬박 나를 선생님이라 추어올리는 이들은 내 이런 부끄러운 고통을 알까.
당연하겠지만 우리말로 옮기면서 애정이 많이 생긴 책일수록 역자후기 쓰는 게 어렵다.
번역하며 내가 즐긴 만큼 그 매력과 묘미를 독자들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몇 문단의 진솔한 글로 전할 재주가 내게는 참 멀기만 하다.

종일 마셔댄 카페인에 맥주의 알코올 기운이 더해져 알딸딸 뇌가 뜨거워지니 기분은 아삼삼 좋기만 한데,
종일 열어둔 한글 문서엔 좀처럼 글자수가 늘어나질 않고
애꿎은 블로그만 들락거리고 있다.

전에도 술기운에 옮긴이의 말을 쓴 적이 있던가 없던가.
오늘은 다행히도 밤의 마법에 촉촉한 비의 효과까지 겹쳐지니 뭔가 결실이 있으려나 어쩌려나.
으휴.
새삼 느끼는 글쓰기의 어려움.
정말이지 난 아직 멀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 재주에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는 밤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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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사랑을 타고

놀잇감 2008. 7. 22. 20:58
젊은이들은 옛날 영화 <비는 사랑을 타고(Singing in the Rain)>는 모르는 대신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더 잘 알겠지만, 노래도 그렇고 빗속을 걸어가며 발로 물장구를 치다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는 영화 속 장면은 요새도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표절인지 알 수 없는 명목으로 비슷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어린 시절에 본 그 영화와 장면들이 깊이 각인된 때문인지
장마철만 되면 나도 그렇게 빗속을 신나게 쏘다니고 싶은 충동이 되살아난다.
더불어 예쁜 장화와 우산에 대한 로망도. -_-;

내가 어린 시절엔 겨울 부츠와 함께 장화도 부잣집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거나, 엄마들이 꽤나 별러야 사줄 수 있는 고가의 물건이었던 것 같다.
물론 본인들은 신발주머니에 잘 들어가지 않는 장화를 신고 학교에 오는 게 매우 싫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예쁜 비옷(비닐 거적대기를 둘러쓴 것 같은 내 비옷과는 차원이 다른;;)과 장화와 예쁜 우산을 세트로 들고 온 친구를 내심 몹시 부러워했었다.
나중에 나도 사촌언니가 물려준 장화를 신어볼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발이 젖지 않는다는 기능에만 충실할 뿐 조금도 예쁘지 않은 그 장화는 오히려 신고 다니기가 창피스러웠다.

어른이 된 뒤에 별 필요도 없는 문방구 쇼핑에 탐닉하는 나의 버릇이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라고 인정하듯, 예쁜 장화와 우산에 대한 나의 로망 역시 어린시절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뒤늦은 욕심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여전히 내가 선뜻 <저지르지> 못하고 탐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ㅠ.ㅠ
물론 지름신에 홀라당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하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구멍은 수시로 나를 들쑤신다.
작년부터 장화를 살까말까살까말까살까말까 수십번도 더 고민했던 이유는 이를테면 이렇다.
1. 장화는 굽이 제일 높아봤자 5.5센티미터다. (간혹 6cm굽이라고 선전하는 데가 있긴 하지만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5cm에 더 가깝다!) 최소 7센티미터는 돼야 내 신발될 자격이 있는데;;
2. 겨울부츠는 종아리 굵기를 교묘하게 가려줄 디자인과 길이가 다양하지만, 레인부츠는 길어도 굵은 종아리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든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막상 사놓고도 차마 못 신고 나갈 확률이 높음.
3. 장마라고 해도 비가 잘 오지 않는 요상한 요즘 날씨 +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고 방구들 귀신에 가깝게 살고 있는 내 처지 = 과연 장화를 사서 여름에, 아니 일년에 몇번이나 신을 수 있을까? +_+
4. 3번의 이유 때문에 형편없이 활용도가 낮은 물건치고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부터 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 부츠는 가격이
무려 6만8천원. 봄부터 노리고 있는데 세일도 절대 안한다.
ㅋㅋ ^^;;
내가 물건을 살 때의 기준으론 <가격대비 만족도 및 활용도>가 가장 중요한 항목인데, 일년에 두어번 신으려고 이걸 사들인 뒤 좁아터진 신발장에 보관만 하려니 아직은 사고픈 욕망보다 사지 말아야한다는 이성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우산은 또 다르다.
이미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붙여 사들인 우산이 몇개나 되는데도 사고 싶은 우산은 자꾸 내 레이더망에 걸려들고, 장화에 비하면 가격마저 착한 편이고 활용도도 높다. ^^
그렇다고 무턱대고 물건을 질러대는 인간은 또 아닌지라, 기다란 장우산이면서 우산모양이 깊어 비바람이 쳐도 머리가 쉬 젖지 않을 듯한 우산을 사고 싶다는 바람을 꽤 오래 간직만 하고 있었다. 까다로운 내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장우산을 만나기가 이상스레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우산의 특징상 내가 들기엔 너무 길고 크거나, 내가 바라는 만큼 폭 덮이는 깊이가 아니거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레이스 따위의 장식이 요란하거나... 암튼 그랬다.

그러다가 올 장마철이 시작되었고, 비가 오든 말든 장화와 우산에 대한 나의 로망은 연일 꿈틀꿈틀 특히 밤마다 되살아나 나는 어느틈엔가 인터넷 사이트들을 배회하고 있었다. 여전히 내 조건에 딱 맞을 정도로 마음에 100퍼센트 파고드는 우산은 없었던 반면, 괜히 눈길을 끄는 녀석은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요것. ^^
장우산이기는 하지만, 돔 형태가 내가 바라는 만큼 깊지지도 않고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비닐우산이고 수동이며 당연히 oem 중국산이다.
위시리스트에 담아두고 들여다보며 나는 계속 지름의 욕망과 티격태격했다.
"사용후기를 보니 비닐이 그리 튼튼하지도, 완전 투명하지도 않대."
"그림제목이 <girl's goods>라니! 그림이 너무 여성적이고 편협하잖아."
"사진은 그럴듯해 보여도 실물로 보면 훨씬 허섭할거야.."
"아무리 신지 가토 제품이라지만 비닐우산치고는 가격도 비싼 편 아닌가?"
.......


하지만 결국 열흘쯤 전에 난 이 우산을 사고야 말았고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 쓰고 나가려고 계속 벼르고 있었는데 아직 본격적으로는 한번도 못써봤다. -_-;;
복날 삼계탕 재료 사러나가면서 잠깐 차에 타고 내릴 때 시운전(?)을 해본 것이 전부. ㅜ.ㅜ
마른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비가 내린 지난 주말엔 변덕스럽게 비가 오락가락해서 길다란 장우산을 들고 외출하기가 번거로웠고, 거기다 태풍이 몰고온 비라 바람에 혹시 비닐이 벌어질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흠...

바짓가랑이 젖을 염려 없는 반바지에, 역시 젖어도 상관없는 고무재질의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후두두둑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I'm singing in the rain~♪> 노래 흥얼거리며 물웅덩이에서 좀 철퍽거려줘야 하는데!

사실 <비는 사랑을 타고>라는 제목으로 뭔가 글을 끼적여야겠다고 생각한 동기는 따로 있었다. ^^;
지지난주 주말엔가, 억수로 비 내리던 날 그야말로 영화같은 장면들을 연출한 이가 있었으니...


다음에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엔 나도 기필코 저 우산을 쓰고 나가 첨벙거려주리라 결심하며 주간 날씨를 열심히 살피고 있다. 다행히 이번주에 또 비온단다, 야호!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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