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내 몸을 각별히 아껴주겠노라, 작심했던 대로 점심 먹고 느즈막히 올라간 앞산은 얕봤던 나를 조롱하듯 영상 날씨에도 곳곳에 빙판길, 눈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노상 다니던 길이라 여겼건만 심지어 눈이 덮여 있으니, 어느 결에 길을 잘못들어 한참이나 눈길을 버둥버둥 뒤뚱거리며 되돌아 나와야 했고 그럼에도 오기가 발동해 정상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휘청휘청 미끄덩, 콰당 넘어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눈길로 내려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 내려올 땐 멀리 덜 얼어붙은 다른 길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조심조심 한발짝씩 옮기다보니 어느새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그러고 보니 새해들어 처음으로 유심히 바라보는 해렸다. 게으른 올빼미는 당연히 뜨는 해를 본 기억보다 지는 해를 바라본 기억이 수백배는 많을 듯 싶은데, 그나마도 볼 때마다 낯설고 신기하다. 뜨는 해 지는 해는 눈이 덜 부셔서 그건가, 중천에서 빛날 때보다 왜 훨씬 더 커보이는지.
암튼 새해들어 나흘만에 겨우 올려다본 하늘과 태양이니 기념으로 담아두기로. 짬 날 때마다 하늘과 바람을 올려다보며 한숨 돌리는 것도 올해의 작심 사항이다.
10월부터 가을 사진을 휴대폰에 차곡차곡 모았다. 가끔 심심할때 들여다보며 언제 시간 내서 포스팅해야지... 그러면서. 새삼 수능추위로 영하까지 기온이 내려간다는 소식에 아 벌써 겨울인가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아직은 겨울이 아니고 늦가을이라고 우기며 가는 세월 바짓가랑이 붙들고 매달리는 심정으로 추려낸 것들. 마당의 벚나무도 지난밤 찬비를 견디고 아직 성성히 빨갛게 매달려있단 말이다 ㅠㅠ
10월에 답사로 다녀온 보은 법주사. 가을하늘은 바로 이런 것임을 자랑하던 쨍하고 서늘한 날씨가 사진에 담긴듯.
아래는 11월 8일 천마산... 중고딩 6년간 수련대회를 1년에 두번씩은 갔었고 아침 식전에 꼭 강제등산을 시킨 뒤 밥을 먹였던 기억이 있어서 우습게 여겼다가 큰코다쳤다. 어린시절 내가 운동화 신고 선착순으로 뛰어 올랐던 봉우리는 천마산 정상이 아니었다. ㅠ.ㅠ 정상근처가 어찌나 가파르고 암벽투성인지 어휴....
떡갈나무, 은행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원없이 낙엽도 밟았지만 여러번 엉덩방아도 찧었다. 가을 낙엽쌓인 산길은 눈길만큼 미끄럽다는 교훈...
마지막 사진은 울동네 자락길 단풍. 다 지기 전에 약속대로 엄니랑 소풍가야하는데 날씨가... ㅠㅠ
지지난주 토요일에 사촌동생 결혼식엘 갔다가 꽃길과 리셉션에 장식되었던 꽃을 양껏 집어왔었다. 전문 예식장이 아니라 그날 예식은 딱 한번 뿐이라 한갓져서 좋았고 사진촬영을 마친 뒤로는 주최측에서 얼른 꽃장식을 뽑아 하객들 가져가라고 입구에 쌓아놓아 더 좋았다. 나는 노친네들 식당으로 안내한 뒤에야 그 낭보를 듣고 뒷북으로 혹시나 하고 가봤는데 다들 한두 다발씩 가져갈 만큼만 챙겼는지 아직 꽤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수국과 장미, 리시안서스를 각기 챙겨서 막내고모랑 나눠가졌는데도 집에 와 꽃으니 화병 3개 분량.
맨 오른쪽 센터피스는 뭐, 주로 줄기 꺾어진 꽃들로 급조한 거라지만 며칠간 눈과 마음이 행복했다. 이 꽃들처럼 예쁘게 잘 살거라 사촌동생아, 그런 마음도 들고...
꽃이 오래가지 못할 걸 예상하기는 했지만 과연 사흘쯤 됐을 무렵부터 한 송이 한 송이 시들어 뽑아버리다 보니 일주일 뒤엔 장미는 다 사라지고 큰 화병 두 개의 수국과 리시안서스만 남았었다. 그나마도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면 수북했던 수국이 한줄기 통째로 축 늘어져 쪼그라져 있기 일쑤.
헌데 내일이면 꽃을 얻어온지 만 2주가 되는데도 하얀 수국 한 줄기와 리시안서스 한 송이는 여전히 멀쩡하게 버티는 중이다. 수국은 줄기나 두껍지, 리시안서스는 하늘하늘 가느다란 줄기로 어떻게 버티는지 신기할 따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옛말 틀린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름부터 아예 백일홍이라는 꽃도 있고, 가을 국화는 뭐든 2, 3주도 끄덕없다규~~) 장하고 고고하여라 꽃송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열심히 물도 갈아주고 줄기 끝도 잘라주며, 역시 잘 참고 질긴 게 이기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유독 강하게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특히 송이나 줄기가 크고 튼튼하지도 않았는데 남들보다 오래오래 잘도 버티는 것이 나름의 비법을 갖춘 게 틀림없다. 마음 스산하다는 핑계로 수시로 돌려대는 보일러 탓에 실내 공기가 꽤나 건조할 것 같은데도 누렇게 말라붙지 않고 종잇장처럼 얇은 꽃잎으로 새하얗게 버티고 있는 꽃. 누가 불러주어서 꽃이 되고 싶은 건 잘 모르겠는데, 질기고 아름답게 고고하게 독야청청 쭉 버티는 것도 진정 미덕이라는 (너무 당연한가?) 뜬금없는 깨달음이 들었다.
아무튼 산에 계속 다니고는 있다. 8월엔 무려 세번(광교산, 도봉산, 북한산!)이나 등산을 하기도.
워낙 등산 고수들을 따라다니는 거라서 종종 힘에 부치고, 너무 괴로워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순간도 있지만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좀체 안 쓰던 근육까지 죄다 동원하여 약간 몸을 학대(?)하고나면 괜히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일단은 오래 앉아 일을 할래도 체력이 딸리는 점을 보완하고자 시작한 일이므로, 얼마나 더 있어야 체력이 확~ 좋아지나 지켜보는 중. 아직은 본격 등산을 하고 나면 머리가 띵~ 두통이 올 정도로 호흡도 엉망이고 저질체력이다. ㅠ.ㅠ
봄부터 쫓아다녔어도 바쁘게 거의 땅만 보고 쫓아다니며 헐떡대느라 산에서 사진 찍을 여유 따위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여름부턴 잠시 쉬는 동안 휴대폰을 꺼내들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몇장 안 되는 사진 대거 자랑. ㅋㅋ
<도봉산 오봉 올라갔던 날> 8월 15일
중간에 점심 먹던 곳에서 발견한 쓰러진 나무와 버섯.
그리고 드디어 오봉이 눈앞에... 고소공포증을 핑계로 바위엔 안올라갔다. 숲은 좋지만... 낭떠러지 바위는 정말 너무 무섭다 ㅠ.ㅠ
<설악산> 9월 13일.
설악산 대청봉엘 당일코스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과연 따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삼아 도봉산엘 가본 거였는데, 역시 무리라고 판단. ^^; 한계령부터 올라가서 귀때기청봉 언저리까지만 다녀오는 B팀을 선택했다. 그러기를 잘했지... ㅋ
9월인데도 이날 날씨가 정말 변화무쌍했다. 운해가 자욱해 능선도 안보이다가 햇빛 비치다가, 안개에 휩싸였다가... 점심을 먹을 땐 춥기까지...
마지막 사진은 한계령 내려오다 마지막 바위에서 보이는 구불구불 옛 도로. 한계령 휴게소 규모가 옛날엔 엄청났던 것 같은데 요번에 보니 아주 작아서 의외였다. ㅎㅎ
대청봉 정상까지 찍고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우린 낙산사에도 다녀왔다. 8월에 다녀온 부산바다가 올해 구경하는 마지막 바다겠거니 생각했는데... 인생은 역시 예측불허다. ^^; 의상대와 홍련암에서 내려다보는 짙푸른 양양 앞바다도 참 아름다웠다. 다만... 산불로 홀라당 타버려 새로 지은 낙산사는 확실히 별로였다. 다행히 화마를 피한 의상대와 홍련암은 그대로인 것이 기뻤으나 그 주변에도 뭘 그리 덕지덕지 새 건물을 지어놓았는지.... 결국 한국의 종교는 하나같이 새 건물 지어 돈벌이 할 궁리에 힘쓰는 게 추세인 듯.
<안산> 10월6일.
동네 앞산을 우리집에서 올라가면 그냥 계속 거의 숲길인데, 독립문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정상 부근부터 암릉 구간이 좀 있다. 무서워서 혼자선 엄두도 못낼 길이었는데...(사진 왼쪽 귀퉁이에 하얀 철제 난간 있는 길이 바로 등산로. 남들에겐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낭떠러지 길은 내겐 무조건 후덜덜...) 지인들과 안산 자락길 산책에 나선 날 담력훈련 하는 셈 치고 미친척 한번 올라가봤다. '산세만 보면 설악산 못지않다!' 이러면서 그냥 운동화 신고 올라가 질질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v
이날 날씨도 좋고 시계도 완전 멀리 트여서 한강 너머 관악산, 청계산까지 다 보였는데, 오후 늦게 올라가는 바람에 금방 해가 져서 사진은 많이 못찍었다. 담엔 안산 자락길도 완전 일주해봐야지.
얼굴도 뭉개져 잘 안보이겠다...
ㅋㅋ 과감하게 인물사진도 한장.
둘은 아예 등산복 차림이었고
평상복 차림인 후배도 가방만은 배낭을 메고 왔는데 난 집에 들러 옷 갈아입고 만날 생각에 외출했다 곧장 가는 바람에 좀 웃기는 차림.
그래도 본격 바위 타기 전이라 헤벌쭉 웃고 있다. 나 이제 이런 바위산도 일반 운동화 신고 올라가는 사람이야! -_-;;
(물론 쪼리 슬리퍼 신고서 이 길로 올라오는 사람도 많이 봤다만;; ㅜ.,ㅡ)
지난 주에도 도봉산 우이암엘 다녀왔으니, 알량하게나마 이로써 10월에도 이미 등산을 두번이나... ㅋ
시시각각 변해가는 단풍 색깔 구경하는 묘미로도 10월엔 앞산엘 좀 더 자주 올라가볼 작정이다. 여기다 적어놔야 또 약속을 지킬 것 같아서 하는 포스팅.
매년 가을이던가, 1년에 딱 한 차례만 곳간 열쇠를 열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그래서 DDP란다. 나는 가운데 D가 '디지털'인 줄;;;) 개관 기념으로 봄부터 간송문화전을 열고 있다. 4월에도 한번 가서 보았는데, 워낙 보물급 문화재가 많아서 1, 2부로 나누어 교체 전시를 한다기에 신윤복의 미인도 보러 지난주에 또 다녀왔다. 국보급 문화재는 지난번과 똑같은 게 많았으나, 그림들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난번에 본 건데도 다 까먹었을 확률도 있음. ㅎㅎㅎ
건축물로서의 DDP에 대해선 워낙 말도 많고 탓도 많았지만, 일단 전 시장 5세훈이 저지른 온갖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마다 외국인 건축가에게 일을 맡기는 바람에 맥락도 없고 역사도 무시한 흉물들이 곳곳에 너무 많아진 게 유감이고 생김새가 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콧하려다가 간송의 문화재에 넘어가고 말았다. 전철역부터 몇시간씩 줄서서 성북동에 올라가 잠깐씩만 봐야하는 간송미술관의 콧대높음을 한탄했었는데, 몇달씩 전시를 해주는 게 어딘가 고마워 하면서. -_-;
누구는 뱀이 똬리를 튼 형상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우주선 같다고도 하는 DDP의 외관은 이렇다.
사진은 4월에 찍어온 거라 그나마 좀 한적. 지난주엔 초딩들 방학한 걸 까먹고 갔다가 평일에도 어찌나 곳곳이 바글바글거리는지 앗뜨거라 후회했었다.
똑바로 서거나 직선으로 이루어진 벽면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라 빙글빙글 건물 내부를 돌다보면 나도 모르게 벽의 기울기와 맞춰 몸을 삐딱하게 하고 걷거나 멀미가 날 수도 있는데, 그나마 몇달 만에 두 번째로 간 거라 나름 익숙해진 듯했고 매캐한 새집 냄새가 나는 건 사라지고 없었다.
미인도와 더불어 내가 기대했던 건 지난번에 날짜별로 8개씩 나눠 교체전시를 하고 있던 <혜원 전신첩>이었는데 하이고... 전번에 본 걸 똑같이 전시하고 있을 줄이야! ㅠ.ㅠ 이번에도 보고팠던 <단오풍정>과 <월하정인>은 보지 못했다. 흑...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그나마 옷자락에서 바람이 휙휙 나오는 듯한 <쌍검대무>를 본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신윤복 전신첩, [쌍검대무]
그밖에 소싯적 미술 교과서와 국사 교과서에서 보던 청자 항아리며 오리 연적, 원숭이 연적, 금동불상 등을 실물로 볼 수 있고, 간송 전형필이 집 몇채 값을 주고 사들여 엄청 어렵게 지켜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도 전시되어 있다. 4월 전시때는 국보급 문화재를 지키러 온 건지 곳곳에 시커먼 정장차림의 보디가드들이 위협적으로 버티고 서 있었고, 수많은 진행요원들이 더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전시장이 꼬불탕꼬불탕해서 동선이 좀 요상하긴 하다;;) 나 말고도 불만 품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 점은 개선된 듯했다. 일단 바글바글 애들 관람객이 많으니 그거 통제하기에도 바빠보였음.
하지만 어둠컴컴한 조명(유물 보호를 위해 조명에 신경써야 하는 정도는 나도 안다규~!) 아래 유리 안에 가둬놓은 유물을 보는 건 참 짜증나는 일이다. 유리에 상이 비쳐서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잘 안보이니 원... 그렇다고 부분조명을 잘 해놓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눈 나쁜 사람 성질나게 만들어놓았다. 그러고는 곳곳에 디지털 영상을 틀어놓았다. 3D로 만들었거나 세세한 부분까지 그림을 확대해 놓은 영상이 수시로 돌아가서 시선을 끌기는 하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원본을 더 자세히 감상하고 싶을 뿐이고...
어쨌거나 가장 기대하고 갔던 신윤복의 <미인도>는 생각보다 작품이 꽤 컸다.
길이가 130센티미터 정도 된다는데, 족자 크기 때문이긴 하지만 우왕... 정면에서 보면 거의 등신상처럼 느껴지는 크기다. 섬세한 아름다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_+
보존상태가 겨우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감지덕지. 한참을 홀린듯 감상했다. 요새 자주 보이는 국악소녀가 입은 한복도 그렇고 애어른 할 것없이 왜들 그렇게 소매통과 품이 미친듯이 좁고 꽉 끼는 한복을 입나 했더니, 그 전범이 바로 미인도더군! ㅎㅎㅎ
짧고 좁은 옷고름을 옆구리부터 달아 묶는 한복이 많이 보이는 것도 왠지 이제야 알았다. 한복에도 복고풍이 유행이었어!
기념품 가게에는 미인도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인간문화재 장인이 만들었다는 저 노리개도 고가에 팔고 있었다.
간송문화전 입장료는 8천원이고, 2부 전시는 9월 28일까지 한단다. 간송문화전을 보면 그외 다른 전시장에서 하는 현대 디자인전이며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를 할인해주는 것 같았으나 그닥 관심 없어서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다. 4월에 갔을 땐 개관기념으로 DDP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 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끝이 난 듯했다. 방학이라 아무래도 애들 관객 유치를 위한 각종 디자인 전시회를 유치한 모양.
월요일엔 휴관이고, 지하철 2, 4,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출구에서 DDP로 곧장 이어진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대체 뭘 어떻게 꾸며놓았나 지난 4월에 돌아보았는데, 땅파다가 수없이 나온 옛날 가옥 유구들과 이간수문을 그대로(위치를 엉망으로 바꿔놓았다고 들었다;;) 전시해놓았고, 옛날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도 몇 개 그냥 남겨놓았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무들은 아직 그늘을 드리우려면 멀고도 멀어보여, '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했음. 모름지기 공원은 좀 편히 쉬고 여유로워야하는 거 아닌가? 참 내...
주변에 밥집도 커피마실 곳도 별로 마땅칠 않아서 더욱 괴로웠던 동대문 나들이에서 미인도 알현 말고도 그나마 하나 건진 건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의 생선구이집. ^^; DDP는 또 다시 갈지 모르겠지만, 그 생선구이집은 나중에 이런저런 옷감이며 부자재(?) 사러 나가는 길에 또 들러 먹어볼 생각이다.
지난번보다 많아진 여러 회화 작품 중에서 미인도 말고도 마음에 쏙 들었던 그림은 김홍도의 <마상청앵>이란 그림이었다. (4월에도 있었을지 모름;; ㅋ)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꾀꼬리 한 쌍을 올려다보는 그림인데.... '옷' 하고 놀라는 입모양의 느낌도 정겹고... 말고삐를 잡은 꽃미남 하인은 거의 9등신이다. ^^; 아 눈이 즐거운 그림!
번역하다보면 오래 고민해 봐도 뾰족하게 일대일로 이거다 싶게 대응하는 답이 안나오는 말들이 더러 있다. 'highschool sweetheart'도 그런 말이다. 곧이 곧대로 '고교생 연인'이라고 하면 얼마나 웃긴가! 그냥 아무개랑 아무개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다.. 정도로 풀어쓰는 차선책을 택하는 게 낫다. 요새도 가끔 고등학교 때 사귄 첫사랑이랑 결혼하는 이들이 더러 있나본데 (대표적인 주자로 차태현이 있다;; ㅋ) 옛날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이 케이스의 대표주자는 단연코 울 부모님이다;; +_+)했다고 들었다. 결혼시기가 지금보다 빨랐으니 아무래도 더욱 그랬겠지.
하여간 외국에선 최근까지도 '고교생 연인'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한국보다는 더 높고(그래봤자 걔들도 고딩때 사귄 애인과는 절반 이상 졸업 후나 대학 들어가면서 헤어진다고;;) 대체로 어린 마음에 확 결혼했다가는 몇년 못 살고 헤어지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일반 이혼율이 40퍼센트를 넘는다는 것 같은데, 어린 부부들이야 오죽할까!
요즘처럼 너도나도 장수하는 100세 시대와 발을 맞추려면, 평균 수명 40세 안팎일 때 만들어진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최소한 배우자를 3번은 바꿔가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나! ㅋㅋㅋ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말로 자신과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나름의 타당성도 있다. 살아봐야 아는 점이(어떤 건 살아봐도 잘 모르지 않나?) 어디 한두가지여야 말이지... 그렇다고 덜컥덜컥 쉽사리 결혼하고 또 헤어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개인의 성향차이고 선택의 차이겠거니 할 따름.
얼마 전 번역하다 책에 나온 '고교생 연인' 이야기의 추이에 유달리 신경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조카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도 그렇고 그간 남자친구 있느냐고 그렇게 묻고 의심해도 절대 없다고 딱 잡아떼시던 우리의 ㅈㅁ공주. (중딩땐 진짜로 없었던 건지도...) 고등학교 올라가자마자 남친과 동네에서 데이트 하다가 온 가족에게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 하필 울 엄마랑 나도 간 날이라 밖에서 저녁 먹고 나서 평소와 다른 뒷길로 움직이던 중이었는데, 그야말로 '고교생 연인'의 실루엣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딱 걸려들었다. ㅎㅎㅎㅎㅎ
고2때 만난 남자랑 8년 연애 끝에 결혼해 40여년을 같이 살고도 다시 태어나도 그 남편과 살겠다는 순애보를 고집하는 할머니는 당장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뭐하는 집 아들인지 알아보라'고 성화를 부리시고, 공주 아빠는 얼굴이 굳었다. (남자애가 뭐 저렇게 못 생기고 키도 작고 비실비실하냐!) ㅋㅋㅋㅋ 물론 당시 겉으로는 다들 웃는 얼굴로 창문을 내리고는 반갑다, 니가 ㅎㅈ이구나, 나중에 또 보자, 집으로 놀러와라... 다정하게 대해주었음을 밝혀둔다.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에서 우린 ㄱㅎㅈ이란 애가 남친일 수도 있다고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아무튼 '쿨한 고모 코스프레'에 충실하려는 나는 울 공주 결혼하려면 그 전까지 남친 열명도 더 갈아치울 테니 염려 말라고, 이제 겨우 고1인데 뭔 걱정이냐고 코웃음을 쳤다. 본인이 예쁘니깐 남친 외모도 안보고 사귀네, 엄청 훌륭하네 뭐, 남자애가 착한가보다... 너스레를 떨면서... (근데 내심 나도 그 남친 ㅎㅈ이가 그리 맘에 들진 않았다. ㅠ.ㅠ 이놈의 외모지상주의자!)
이후로도 조카에게 남친 얘기 물어보면 절대로 대답도 안해주고 버럭 화만 내기 때문에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나 보면서 둘 사이를 짐작할 뿐이었다.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가끔 보란듯이 엄청난 남친 욕설을 적어놓는다든지 수상한 글귀가 떠오르면 둘이 헤어졌나 싶기도 했는데, 또 금세 잘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젠 막 남친이 집으로 놀러도 오는 사이라나... ㅠ.ㅠ
그러더니 급기야 좀 있으면 사귄지 200일이라고 선물(커플 시계!)까지 준비중이시란다. 그것도 영원한 봉 고모의 스폰서를 받아서.. 끙... 그냥은 스폰서 못해주겠고 와서 할머니 어깨 주무르기 알바라도 하면 시급으로 비용을 까주겠다고 했더니만 진짜로 방학 첫날인 오늘 건너왔다. 주말에 제발 좀 놀러오라고 할머니랑 고모가 애걸복걸 할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쳇... 아 놀라운 풋사랑의 힘이여~!
업고 안아 재우며 키운 첫조카가 벌써 17살이 되어 연애질을 한다는데 허거걱 그간의 세월이 놀랍기도하려니와 고딩 연인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데이트를 하는지 호기심이 발동하며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 중간고사 기간 땐 둘이 울 동네 구립 도서관에도 같이 간 모양인데 (아우 귀엽다!) 자리가 없어서 헤매다 둘이 밥 얻어먹으러 우리집에도 왔었다. 이쯤 되면 건전하고 착한 연인이라고 인정. 다만 조카가 자꾸 다이어트에 열 올리지 않도록 남친 녀석이 좀 살이 쪄주면 좋겠다. ㅎ
200일 기념 커플아이템 마련을 위해 (공주께선 그간 남친이 사준 커플링을 두번이나 잃어버리셨다고 +_+) 일종의 알바를 하러 온 건데, 나 원참 할머니 어깨는 10분씩 겨우 두번이나 주물렀나.... 히히호호 남친이랑 통화를 하지 않으면 카톡하느라 정신이 없더니 30분에 걸쳐 곱게 '풀메이크업'을 하고는 데이트나가신단다. 계속되는 조카의 봉노릇... 기분이 그닥 나쁘지는 않은데, 이거 괜찮은 건가 좀 염려는 된다. 조카 남친의 봉노릇까지 하는 고모라니 쯧쯧쯧...
궁궐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면 일반 관람객이 못들어가는 전각 내부까지 속속들이 구경할 기회가 많을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그런 혜택이 별로 많지 않다. 특히나 경복궁은 청와대가 가까워서 보안요원들도 늘 상주하고 있고, 특히 인적 뜸한 북쪽 전각들은 속속들이 구경하려고 한가한 시간에 홀로 뒷담에 가까이 다가가 사진 찍다가는 흠칫 놀랄 때도 많다. 전경인지 의경인지 암튼 곳곳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어느 틈에 나타나 주시하며 서로 막 워키토키로 '수상한 인물'이 접근중임을 보고하고 난리다. ㅋㅋ
세월호 관련 시위가 광화문과 시청앞에서 벌어지던 어느 주말 낮에는, 대학생들이 청와대 앞까지 기습적으로 진입해 시위를 벌였다는데 그때 이용한 통로가 경복궁이었단다. 대학생들(25세까지던가;;)은 입장료도 무료이고, 북쪽 출입구인 신무문 나가면 바로 청와대 입구이니, 누구 아이디언지 기발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 탓에 보안요원들의 경복궁 입구 감시가 더욱 삼엄해져, 야광조끼 입은 의경들 여럿 뿐만 아니라 선글라스 낀 사복 경찰(경호대 소속일까?) 같은 사람이 아주 까칠한 표정으로 입장권 내고 들어가는 주 출입구(흥례문) 앞에 서서 모든 이들을 주시한다. 듣자하니 언젠가는 사복입고 온 중학생들을 괜히 의심해 심문하기도 했다고...
계속 경복궁 제모습 찾기 복원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고, 2030년까지 흥선대원군 중건당시의 80%를 복원한다는데, 경복궁이 정말로 제 모습을 찾으려면 청와대가 이사를 가야한다고 본다. 청와대가 경복궁 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대통령 되고 나면 더더욱 지들이 '왕'이 된 거라 착각하는 게 아닐까? 정말로 스스로 왕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는 이승만은 심지어 경회루 한 귀퉁이에 정자(하향정)를 지어 전용 낚시터로 사용했고, 그 정자가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다. 없앨 것인가 말 것인가 논란이 많지만, 훼손의 역사도 역사인지라 보존하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문화재 보존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요즘에나 높아졌지, 독재정권 시절은 물론이고 군사정권을 거쳐 김영삼 시절까지도 대통령이 되면 경복궁을 아주 제 마당처럼 써먹으며 경회루 같은 데서 파티를 벌이고 했다는 거 같다. 문화재 훼손의 제일 큰 주범은 암만해도 한국인들이 아닐지.
암튼 참 후지게도 지은 청와대는 양옥도 아니고 한옥도 아닌 얼치기에다 내부 시설도 엉망진창이라지만, 역대 대통령 중 감히 누구도 새로 짓자거나 옮기자는 말을 못했고, 앞으로도 쉽게 할 순 없을 거다. 가뜩이나 욕먹기 십상인 대통령이 저 편하자고 대통령 관저에 막대한 예산 들인다면 얼마나 국민들이 욕을 해대겠나. 영빈관 하나 제대로 없어서 외국 대통령들 오면 죄다 호텔에서 묵는 판국이니, 이왕 지으려면 품격있게 최소한 100년은 쓸 수 있게 잘 지어야할텐데 그걸 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흠.. 뾰족한 답은 없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경복궁에 초점을 맞추어 장기적으로 제대로 문화재 복원사업을 계획한다면 청와대를 옮겨야한다고 생각한다. 궁궐 관람중에 다다다다 요란하게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면 아우 정말 시끄러워서 원! 일제시대 지은 '경무대'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은 청와대 터는 진짜로 경복궁 후원이었다니깐! 언제가 되었든, 정말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나타나서 필요성을 검증받고 온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낸 뒤에 대통령관저를 정말이지 근사하고 아름답게 짓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경복궁 뒤쪽의 후원도 제 모습을 찾기를 한옥 및 문화재 애호가로서 바라고 있다. ^^;
아우 뭔 딴 소리가 이렇게 길어졌다냐. 경복궁 휴관일인 화요일에 자원봉사자들 특별관람 했다는 거 보고하려던 포스팅이었는데 순 딴소리만... ㅠ.ㅠ
하여간에 내가 꼭 들어가보고 싶었던 전각은 근정전, 향원정, 집옥재였는데, 그곳은 쏘옥~ 빼고 다니긴 했어도 나름 뿌듯했던 특별답사 사진 대거 투척~
첫 행선지는 광화문 문루.
복원한지 얼마 안 됐는데도 여기저기 기둥이며 창방이 갈라진 곳이 보여서 속상했지만, 문루 위가 상당히 넓었다. 문루로 올라가는 돌계단도 그렇고, 마룻바닥 넓은 공간에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어찌나 가파른지 일본에서 천수각 계단 올라가던 기억이 났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광화문 광장도, 궁궐 안마당도 느낌이 사뭇 달라서 신선했다. 들창도 열어서 사진도 막 찍어주시고...
휴관일 경복궁은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지킴이들만 유유자적 관람을 하는 양상일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크나큰 착각!
곳곳에서 바삐 여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엔 새로 흙을 까는 작업이... 근정전 행각에선 흰개미 퇴치용 약을 뿌리느라 눈이 쓰라릴 정도였고 ㅠ.ㅠ 경회루 근방에서도 나무에 약치는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물론 곳곳을 지키고 있는 전경들까지... 나의 상상과는 무척 달랐음. ^^;
다음으론 경회루.
일반인 관람때는 함홍문이던가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는데, 이번에 우리들은 왕이 드나드는 맨 남쪽 어문으로! 들어갔다는 점이 감격!! ㅋㅋ
그물에 가려지지 않은 조망을 담아보려고 교묘하게 그물 사이로 휴대폰 렌즈를 들이밀었는데, 두번째 사진엔 그물이 살짝 걸렸다. 경회루의 사방 중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동쪽으로 바라보는, 고래등 같은 기와 지붕들이 이마를 맛대고 있는 광경이 가장 좋다. 물론 동서남북 네 방향의 풍경이 다 아름답지만... (연산군이 노상 경회루에서 흥청망청 놀았던 게 다 이해가 된다;;)
이어서 찾아간 왕들의 집무실, 즉 편전인사정전은 7월인가 8월까지 가림막과 비계를 설치하고 실측조사 중이어서 단청이며 내부 구조를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아쉽;;; 그저 어좌만 확인... 왕의 자리 치고는 참 소박하다. (사극 드라마며 영화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하게 긴 편전 장면은 다 뻥이다! 좌우로 넓고 폭이 상당히 좁아서 신하들 몇명 못 앉았을 크기임 ㅋㅋ)
다음으로 구경한 곳은 왕과 왕비의 처소인 강녕전과 교태전.
강녕전과 교태전이 쌍둥이 건물이냐 아니냐, 좌우 온돌방이 정확하게 井자가 맞냐 아니냐(9칸으로 나뉜 방 한 가운데서 왕과 왕비가 자고 주변 방에선 지밀상궁들이 불침번을 섰단다!) 고수들 사이에서 논란이 오고갔는데, 강녕전은 정확히 문턱 낮은 방 9개가 모여있는 井자임이 확인되지만, 교태전은 북쪽에 면한 방들이 문턱이 높아서 분합문 개방해 놓은 상태만 봐서는 6칸 같아 보였다. 암튼 뭐 문턱이 높아서 그렇지 옆방까지 치면 井자가 맞는 걸로 인정을.... ㅋㅋ
가운데 수라상이 차려진 이곳이 아마도 강녕전이었던 듯;; 아 벌써 3주나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
이어서 우리는 궁궐 속의 궁궐이랄 수 있는 건청궁으로 향했다. 고종이 10년만에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직접 정치를 하겠다며 제일 처음 지은 것이 바로 양반집 양식으로 후원에 자리잡은 건청궁. 취향이 이상한지 나는 궁궐마다 이렇게 단청 안한 건물이 제일 좋다. 아늑하고 편안하고... 국왕이 궁궐 아닌 일반 사가로 들어앉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속설도 있다고 하지만, 암튼 왕들이 종종 왜 화려한 공식 처소 놔두고 이런 일반 한옥집에 머무는 걸 더 좋아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아기자기 사람처럼 사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물론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극의 현장이라, 해설을 하면서도 참담한 곳이긴 하다만;;; 2007년인가 복원되어서 가끔 아직도 싱그러운 나무 냄새가 나기도 할 정도라, 엄청 들어가보고 싶었다!
왕의 처소인 장안당으로 들어가서 왕비 처소인 곤녕합, 옥호루까지 미로처럼 복도로 이어졌다는 공간을 누비고 다니는 기분이 실로 삼삼... (창덕궁 연경당도 겉으로 보기엔 사랑채와 안채가 문도 다르고 나뉘어져 있지만 한 건물이듯이, 경복궁 건청궁도 사랑채와 안채가 완전 뚝 떨어져 보이지만 안에선 다 통한다. 궁궐에서만 눈가리고 아웅! 일반 양반집은 진짜로 떨어져있던데;; ㅋㅋ)
장안당에 딸린 누각을 외부에서 찍은 사진. 저 안엔 푹신한 보료와 함께 가야금인지 거문고가 놓여있던데, 실제로 거기 앉아 문 열어놓고 마당 바라보며 연주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건청궁 장안당에서 괜스레 내 마음에 제일 들었던, 일월오봉도(왕권을 상징하는 중요한 그림이라 어좌 뒤엔 언제나 놓인다. 심지어 세종대왕과 함께 만원짜리에도 들어가 있음! 확인해보시길.. ^^;)를 그려넣은 장지문. 저 앞에 고종이 어좌를 놓고 앉았거나 보료를 깔고 앉지 않았을까...
아래는 왕의 처소에서 왕비 처소로 가는, 다시 말해 장안당과 곤녕합을 잇는 복도각 내부.
그리고 놀랍게도 침대가 놓여있던 왕비의 처소. 창덕궁 대조전에도 양식 가구들이 구비되어 있지만, 명성황후가 침대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깜놀;; ㅎㅎ 취향의 차이긴 하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나도 아직 바닥에 이불깔고 자거늘!
마지막 코스는 대망의 건춘문.
광화문이 가장 최근 복원되었고, 다른 문들도 콘크리트로 대충 얼렁뚱땅 다시 지은 것인 반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은 흥선대원군 중건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단다. 조선시대엔 주로 왕실 종친들이 이 문으로 드나들었다고...
나 중고생때는 경복궁 주출입구가 동쪽에 있어서 이리로 드나들었다. 화구상자랑 이젤, 화판들고 한달에도 몇번씩 드나들던 문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건춘문 문루에서 바라다보이는 인왕산과 궁궐 마당도 조망이 새삼스러웠다. 역시 풍경은 높은 데서 내려다보아야 제맛.
마지막으로 건춘문에서 청와대를 향해 북쪽으로 쭉 뻗은 동쪽 담장과 뒤쪽 백악산을 아쉬운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다 문루를 내려왔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이 동쪽 담장 바로 바깥으로 '중학천'이 흘렀고 그게 청계천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내가 어디선가 읽은 책에선 현재 삼청동 들어가는 길이 바로 그 중학천을 복개한 거라던데, 다른 분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경복궁 현 담장이 원래 위치보다 안쪽이라는 둥, 그래서 개천은 길보다 더 멀리 현 현대미술관 서울관 쯤 흘렀을 거라는 둥...
그러나 내가 폭풍검색해본 결과, 삼청동 길이 중학천 복개한 거 맞더라. 그 증거사진.. ^^;
지금은 섬처럼 동떨어져 있는 삼청동 초입 동십자각 쪽에서 경복궁 동쪽 담장을 1930년대 찍은 사진이란다.
중간에 건춘문이 살짝 보이고 담장에서 제일 멀리 보이는 문은 조선총독부 지으며 뜬금없이 옮겨다 세워놓은 광화문.
집앞 앵두나무가 해걸이를 해서 한 해 열매가 많이 열리면 그 다음해는 성글게 열리는데, 올해는 많이 열리는 해다. 작년에는 한움큼씩 두어번이나 따먹었나. 그것도 감지덕지 꽤 많다 싶었는데 올해는 아예 엄마가 한번에 소쿠리에 수북하게 따대시는 데도 계속 익어가고 있다. 너무 익어 떨어져 버리기 전에 얼른 따먹어야 한다며, 오늘도 한 소쿠리 따갖고 올라와선 냉동실에 얼렸다 애들 오면 줄까, 설탕 넣고 잼을 만들까 괜한 고민을 하신다. 며칠 전에 딴 앵두도 아직 냉장고에 들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엄밀히 옆집 나무이되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더 많이 뻗은 살구나무와 벚나무 역시 해걸이를 하는데 완전 흉년인 쪽이다. 작년엔 살구를 역시나 한두 소쿠리 쯤 따서 아주 맛있게 먹었고, 큼지막하게 익은 버찌도 꽤나 먹을 만 했었는데, 올해는 열매 구경하기가 아예 힘들다. 얼마 안되는 살구 열매가 앵두만하게 자랐을 무렵 웬일인지 다 떨어져 마당에 뒹군 탓이다. 그래도 한두개는 건지겠거니, 아무리 살펴봐도 온전하게 가지에 붙어 익어가는 살구는 한 알갱이도 안보인다. 크기는 작아도 사온 살구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며 쩝쩝 입맛을 다시는 엄마. 그러고 보니 작년 살구 수확(2층 베란다에서 가지를 당겨 따야하는 위험한 과정;;)도 나 외출한 새 엄마가 다했었다.
엄마는 올해도 마당에 내려다 놓은 스티로폼 화분과 새 화분에 꽃씨와 모종을 심어놓고 매일매일 물을 주며 정성을 들이고 있다. 화원에서 사온 영양토 말고도 작년 가을 마당에서 쓸어 모았던 낙엽을 비닐에 담아 썩혀 그걸 퇴비로 얹어준 때문인지 올해는 가지와 고추 모종이 그럭저럭 잘 자라나는 중이고, 심지어 작년에 심었는데 나오지 않아 망했던 분꽃도 하나 싹을 튀웠단다. 2년만에 싹이 나는 분꽃이라니! ㅋㅋ 작년 분꽃 자리에는 원래 올해 과꽃 씨앗을 뿌렸는데, 그건 다 싹을 틔워 쑥쑥 자라나고 있다.
집앞 앵두나무는 30년전 아래층 할머니가 분재 화분을 버리려고 마당에 내용물만 휙 쏟아놓았던 게 지금처럼 무성하게 자란,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이제 그걸 아는 사람은 울 엄마와 나뿐이다. 집앞에 벚꽃이랑 살구꽃 한참 만개했을 때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면 30년 넘어 낡은 집에 대한 나쁜 인상이 조금이나마 덜해질 텐데 아쉬웠듯이,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요즘 누군가 집을 보러 온다면 또 낡았지만 해마다 앵두 따먹는 재미에 대한 환상 같은 걸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데, ㅋㅋ 부동산 이야기론 동네 자체가 원래 매매가 뜸하지만 이런 오래 된 집은 아예 보겠다는 사람조차 없단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듯, 엄마는 이사가면 앵두 따먹는 것도 끝이라며 열성을 부리는 거라고. 알았으니 많이 드셔. 그러면서 한 소쿠리 깨끗이 씻어놓았다.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벚나무를 많이 심어놓아 벚꽃길로 유명한 데를 가보면 대개 가지가 축축 늘어져 꽃이 피어나는 수양벚꽃이 한두그루씩은 꼭 있다. 우리동네 벚꽃길에도 물론 있고, 제주도나 경주에서도 본 기억이 나고, 여의도 윤중로에도 있었던 것 같고, 각 궁궐에도 다 있는 듯하다. (창덕궁과 경복궁에 있는 건 내 눈으로 봤으니 확실한데 나머지 궁에도 있는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 ^^; 근데 아마 있지 않을까나 ㅋ)
하지만 내가 수양벚꽃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난생 처음 봤다며 반색한다. 유명한 데로 벚꽃 구경 한번 안다녀 본 사람은 없을 텐데 이유가 뭘까... 철철이 꽃구경에 심취한다는 건 나이들었다는 뜻이며, 꽃놀이 다닐 생각이 들면 그건 중년이라는 증거라는 말도 듣는다. 하기야 난 젊어서도 꽃을 좋아했다고 주장하는 바이지만, 사실 어려서 좋아했던 건 꽃집에서 파는 꽃 위주였던 것 같다. 장미, 튤립, 프리지아, 백합, 스타치스, 칼라, 소국, 수국, 카네이션, 데이지, 리시안서스... 꽃집 양동이에 담긴 싱싱한 꽃들과 향기에 행복해하다가 신중하게 골라 한 다발 집안에 들여놓고는 좋아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지긋지긋한 월요병을 극복하고자, 월요일마다 사무실 책상에 일부러 꽃을 꽂기도 했다. 지 책상에만 유난스레 꽃 꽂아놓는다고 남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흥.
물론 길가에 피어나는 민들레, 애기똥풀, 개망초, 제비꽃, 진달래 같은 애들도 예뻐했지만 굳이 꽃구경을 나설 생각은 진짜로 서른 넘어서 했던 것도 같고... 아닌데, 스무살 때도 데이트랍시고 분명 밤벚꽃놀이 갔었는데 ㅠ.ㅠ 지금도 젊은 사람들의 꽃놀이는 벚꽃구경이 유일하고, 나머지 꽃구경은 '아줌마들'의 전유물이 맞는 것도 같다.
암튼 잎도 나기전에 서둘러 화라락 피어나는 성급한 봄꽃들은 거의 다 졌고, 라일락이 한창이다. 벚꽃, 살구꽃, 매화, 복사꽃(이들이 바로 나를 몹시 헷갈리게 만드는 비슷한 꽃 4종 세트되시겠다 ㅋㅋ 하기야, 배꽃, 자두꽃도 비슷하게 생겼더라 ㅠ.ㅠ) , 목련, 진달래, 개나리 같은 애들을 다시 보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 아쉬운 마음에 종종 핸드폰에 든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러고 보니 '수양벚꽃'이 정확한 이름인 줄도 잘 모른다. 수양버들은 수나라 양제가 운하를 건설하며 강가에 버드나무를 심게 해서 생긴 이름이라던데, 그래서 원산지가 중국이고 우리나라 자생 버드나무는 능수버들이라고 한다던데. 둘의 차이는 물론 암만 봐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수양벚꽃도 능수벚꽃이라 불러야 하나? ㅋㅋ 아 이 겉잡을 수 없는 잡념의 꼬리물기..
결론은 그저 벚꽃이 져 아쉽다는 것.
날이 맑긴 했어도 바람불고 엄청 쌀쌀했던 4월 4일 경회루 앞. 이날도 이미 궁궐 벚꽃은 끝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