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14.03.31 3월 31일 11
  2. 2014.03.28 호박이 뭐 어디가 어때서 1
  3. 2014.03.16 안산
  4. 2013.09.26 모빌의 완성 2
  5. 2013.08.13 뭔짓인지 8
  6. 2013.06.04 경복궁 예쁜 곳 7
  7. 2013.05.18 동궐도 전시회 8
  8. 2013.05.02 서양수수꽃다리 4
  9. 2013.04.16 집앞에 꽃잔치 8
  10. 2013.04.09 진달래 10

3월 31일

투덜일기 2014. 3. 31. 15:45

연말에 한해를 돌아볼 때 3월은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달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대체 한 가지도 '마무리'를 한 게 없는 듯. ㅠ.ㅠ

암튼 마음만 급한 3월 말일. 게으른 나를 조롱하듯 만개한 집앞 벚꽃은 벌써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던 그저께. 전날만 해도 가지마다 꽃이 서너 개나 벌어졌을까말까 다 피려면 며칠 걸리겠다 여겼지만 밤새 홀라당 다 핀 걸 보고 안타까워했다. 비와서 하루만에 떨어지는 거 아냐! 그러면서 안타까워 비오기 전에 베란다 문 열고 후딱 찍어둔 사진. 

3월 29일

 

그러나 다행히도 이슬비가 내리는둥 마는둥 빗줄기가 가늘었던 덕분인지, 벚꽃은 무사했고  하루하루 더 예뻐졌다. 어제도 예뻤지만 오늘이 피크인듯, 벌써 하나 둘 꽃잎이 날리기 시작.

3월 31일

 

다 피었다고 여겼어도 이틀 전 사진엔 덜 핀 봉오리들이 꽤 많았다는 걸 이제야 비교하며 깨달았다. 송이송이 탐스럽고 예쁘다...  누가 하라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벚꽃 다 핀 날짜를 왜 기록하고 있나 모르겠지만 집앞 벚꽃은 암튼 다른 해보다 보름이나 일찍 피었다. 날씨가 너무 더운 거다. 진짜로 며칠 전부터 반팔 입고 지내는데 안 춥다. 세월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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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볼 때 지구를 위해선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이른바 '로컬 푸드'라는 걸 골라야 한다는 건 알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일단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 어쩌라고! 그냥 '국내산'이라고만 적혀있지 정확한 재배지까지 표기된 채소도 많지 않지만, 포항초, 제주 무, 제주 당근, 제주 감자... 같은 건 먼데서 왔어도 사고봐야 되는 걸 뭐. 한단 천원짜리 시금치와 그 세배 가격인 포항초 시금치는 맛이 워낙 달라서 비싸도 포항초나 섬초를 사먹게 된다. 게다가 난 또 시커먼 제주 흙이 묻어 있는 당근이나 감자를 보면 또 엄청 맛있을 것 같아서, 혹시 '파주'나 '강원도' 꼬리표를 단 다른 제품이 있더라도 제주도 먹거리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왔을 텐데... 하는 생각에 좀 찔려하면서도.

 

단호박도 마찬가지다. 제철음식만 먹고 산다면, 굳이 태평양 건너 날아온 뉴질랜드산 단호박을 사지 않아야 하는데 단호박을 워낙 좋아한 나머지 통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요리랄 것도 없이 쪄서 치즈랑 아몬드만 얹어 먹어도 얼마나 훌륭한 맛이 나는데 ㅠ.ㅠ (물론 쪄서 그냥 먹어도 좋다.) 게다가 단호박을 찌기 전에 긁어낸 호박씨도 좀 말렸다가 까먹으면 얼마나 맛있다규!  일일이 껍질을 까기가 좀 귀찮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앞니로 호박씨를 오독오독 까먹는 재주를 익혀둔 덕분에 크게 성가실 것도 없다. 씨가 좀 덜 여물었을 땐 아쉬워하면서 그냥 버리지만, 단호박을 딱 쪼갰는데 튼실한 씨앗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으면 말렸다가 밤참으로 까먹을 생각에 흐흐흐 므흣해진다.

 

혹 어려서 부르던 이런 노래를 기억하는가? (심지어 학교에서 배웠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호박 같은 내 얼굴 미웁기도 하지요,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도 삐뚤삐뚤'

'오이 같은 내얼굴  길기도 하지요, 눈도 길쭉 코도 길쭉 입도 길쭉길쭉'

(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이런 노래는 완전히 사라졌기를 빈다 -_-; 하긴 조카들이 부르는 거 통 못들어봤으니 다행)

그런데 나는 이 노래를 배우면서도 호박이 삐뚤삐둘 못생겼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눈엔 호박 예쁜데? 게다가 호박꽃도 못생긴 꽃의 대명사로 통하는데, 내 눈엔 샛노랗고 통통한 것이 이쁘기만 한 걸! 대체 왜? 비슷하게 생긴 나리꽃이나 수선화보다 못할 게 뭔가!

 

할아버지댁에 살 때 마당에서 애호박과 늙은 호박, 화초 호박을 종류별로 키웠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탐스러운 샛노란 꽃이 피었다가 꽃이 시들면서 그 끝에 콩알만하게 열매가 맺혀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노끈을 매달아 덩굴손이 뻗어나가 자라도록 기른 애호박은 적당히 크면 뚝 따서 된장찌개도 끓이고, 새우젓 넣고 볶아도 먹고, 송송 썰어 칼국수나 수제비도 해먹었는데, 요즘 마트에서 보는 인큐베이터 애호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맛이 났었다. 늙은 호박은 어린 내가 들 수도 없을 만큼 크게 자란 걸 광에 쌓아두었다가 '한 놈씩 잡아서' 호박죽도 쑤고, 호박고지로 만들어 시루떡에도 넣고... 또 뭘 해먹었더라.

 

하여간 할머니가 늙은호박에서 긁어낸 굵은 호박씨도 잔뜩 말려놓았다가 간식으로 오독오독 까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땐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생긴 이유도 하도 맛있어서 몰래 먹는다는 의미로 이해될 정도였다. 진짜로, 이 속담의 유래는 뭘까나. 내숭떨고 앞뒤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텐데 왜 하필 호박씨? 앞니로도 까기가 어려운데, 뒷구멍으로? ㅋㅋㅋ

 

하여간 오늘 저녁에도 단호박을 쪘는데 호박 자체는 단단하고 맛이 있었느나 안타깝게도 씨가 덜 여물어 그냥 긁어버려야했다. 눌러보니 죄다 쭉정이. 단단하고 맛있는 단호박을 고르는 눈은 이제 얼추 익혔는데, 아직도 겉으로 봐서 씨앗의 여물기까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색이 진하게 잘 익었어도 씨앗이 덜 큰 이유는 뭐람. 그나마도 바다건너 오느라 탄소마일리지 팍팍 늘렸을 뉴질랜드 단호박은 다른 수입 농산물에 비해 거부감이 덜하다. 나라에 청정지역이 많다고 그곳 농부들이 농장에서 키우는 수출용 호박에 농약이니 비료니 안 쳤을 리 없지만 그냥 나의 편견. 뉴질랜드 농부들은 어쩐지 먹거리에 심한 장난까지 치지는 않겠지...

 

나무샘 블로그에서 강요배의 호박꽃 그림을 본 순간 포스팅 거리가 생각나서 시작은 했는데 결론은 나의 식탐으로 끝나누만. 째뜬 오늘 밤참은 찐 단호박이고, 호박과 호박꽃은 언제 봐도 예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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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투덜일기 2014. 3. 16. 17:00

내가 올 들어 조금씩 산책겸 올라가보기 시작한 동네 뒷산은 부르는 산은 엄밀히 집 앞에 있으니 '앞산'이고 버젓이 이름도 두 개나 있다. 안산 또는 무악산. 이름의 유래는 여러번 들었는데 또 홀라당 다 까먹었다. '안산'이라는 말은 흔히 풍수지리에서 쓰는 말이니 그와 관련이 있으려니... 검색해보면 금세 나오겠지만 귀찮아서 패스~.

 

하여간 남들은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부러 '등산'을 하러 오기도 한다는 얘기에 괜한 자극을 받아, 언젠가는 나도 정상에 오를 일이 있겠지 여기며 힘 닿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중간까지만 갔다가(정상까지 998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앞에서) 돌아오기를 두달여. 그러다 어제 전격적으로 욕심을 내 봉수대가 있다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집안에서 볼 땐 햇살이 따사롭고 화창해보였으나 밖에 나가보니 수시로 바람이 쌩쌩. 혹시 추울까 든든하게 입고나갔기에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추워서 10분만에 귀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산 중턱 팔각정 앞 개울에서 두꺼비 발견!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기운도 없고 살가죽이 쪼글쪼글 느릿느릿 걸어다니고 있었다. 차가운 개울과 황량한 풀숲에서 녀석이 뭘 먹을 게 있으려나... 

숨을 헐떡대며 오르다 보면 후끈 덥다가 또 바람계곡으로 들어서면 춥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며 올라가려니 어디선가 내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쏜살같이 앞으로 차고 나가는 외국인 미녀. ㅠ.ㅠ 내가 입은 오리털 조끼가 무색하게 그녀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허거걱...  도촬이 미안하기도 해서 머뭇거렸지만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저 앞으로... ㅋㅋ

산꼭대기에는 방송 중계용인듯 철탑도 있고, 헬기장도 있고, 조선시대에 평안도부터 남산까지 이어졌다는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었다. 계단 아래쪽 기단부는 오래된 느낌이 나는데 봉수대 돌은 너무 하얗고 새것이라 어쩐지 졸속 복원의 냄새가 풀풀... -_-; 남산에 복원해 놓은 세 개짜리 봉수대랑 모양이 똑같은지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째뜬 중요한 건 내가 꼭대기에 올랐다는 것. 집에서부터 1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두꺼비 구경에 몇분이나 허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 하도 여러 갈래이고 여러 동네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아 몇번 익숙해지면 가장 수월한 길, 또는 가장 험난한 길을 골라 선택할 수도 있겠다. 중간중간 얼었던 길이 녹아 진창도 있고 등산화 없이는 꽤나 미끄러울 법한 바위 구간도 있었는데, 음마야, 플랫슈즈에 반바지 입고 남친이랑 손잡고 가뿐하게 올라온 커플도 발견했다. ㅠ.ㅠ

 

나 같은 주민들에겐 동네 뒷산 또는 앞산이고

어떤 이들에겐 등산 스틱까지 찍고 올라가야 하는 서울 근교의 만만한 등산코스이고, 일부 커플들에게는 그냥 데이트 산책 코스라는 얘기. ㅎㅎ

 

 

 왼쪽 사진에서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북한산. 가운데 사진에선 인왕산 능선을 따라 한양 성곽도 보인다. 오른쪽 사진 중앙에 서 있는 게 남산. 서쪽으로는 여의도와 한강도 눈에 들어오는데 역광인데다 미세먼지 탓에 온통 뿌옇게 찍혔다. 등산의 묘미 중 하나가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는 거라고 하던데, 그 잠깐 좋자고 꾸역꾸역 낑낑대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할 '의미'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정상을 '정복'한다는식으로 말하는 심리도 통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어제는 뭔가 '숙제'를 다 마친 기분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얼어붙은 방죽 1월 모습 얼음 풀리고 봄이 오는 방죽, 어제

게다가 눈 쌓여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 산길부터 조금씩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곧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봄과 신록이 우거질 여름도 기대중.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그렇게 싫다고 미쳤냐고 펄쩍 뛰던 내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삼아 산엘 오르게 되다니 참... 느낌이 묘하다. 나이가 들면 원래 산이 좋아지는 건지... 어느 산에나 득시글거리는 중장년 등반객들을 보면 그런 것도 같아서 좀 씁쓸.  

 

 

올라갈 땐 대부분 땅바닥만 보며 헉헉대느라 놓쳤는데 내려오다 신기한 나무를 발견했다. 군데군데 동글동글 붙어있는 건 이끼인가? 암튼 솔잎이 뭉쳐진 듯한 이끼무더기 끝에 방울방울 물기가 맺혔다. 뭔가 나무도 이끼도 열심히 봄을 준비하고 있는 느낌.

 

오후들어 점점 밀려든 미세먼지 때문에 기분을 좀 잡치긴 했어도, 약간 팍팍한 느낌의 장단지와 허벅지가 엄청 건강해진 듯한 착각을 안겨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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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의 완성

놀잇감 2013. 9. 26. 16:15

기분 꿀꿀할 땐 뭐니뭐니해도 언제나 약발 백퍼센트인 조카 그림 자랑이 답.

찾아보니 벌써 2007년도의 일이다. 막내고모 작품 전시회에 조카들 셋과 두 올케가 합작으로 그림과 모빌을 만들어 걸었었다.  

 

구린 휴대폰으로 찍어서 작품이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사진에서 얼핏 보이듯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매달렸던 모빌작품이 전시장 방 하나의 맨 중앙에 걸려 있었다.

전시가 끝나고 막내고모는 특별하게 나한테만 녀석들 그림을 하나씩 매달아 총 네 개의 사포 그림이 달린 모빌을 선물했다. 나는 감사히 아이들의 모빌 작품을 방문 앞에 매달고는 작업하러 드나들 때마다 쳐다보며 흐뭇해했다.

 

문설주에 걸어놓은 길쭉한 모빌을 지저분한 집안 풍경 없이 담는 것이 불가능해, 작품 전체 사진은 눈물을 머금고 생략. ㅋ

 

째뜬 지우가 그려놓은 작품 속에선 그 느낌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10월, 지우 6세 때

당시 내가 지내는 거실 공간을 거의 그대로 담아 조금씩 변형한 모습이다. 그림속 중앙의 사진 액자는 할머니와 제 아빠라는데 원래는 내가 이십대 중반에 찍은 옛날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지금은 엄마네로 옮겨놓은 소파에 엉덩이를 보이고 있는 사람이 화가 본인인 지우. 테이블에 놓은 화병과 레고 로봇도 빠뜨리지 않았다. 조카네가 놀러오면 늘 신발 십여켤레가 나란히 복작거리는 현관 묘사도 일품.

그러나 이번에 눈여겨볼 건 저게 뭔가 싶은 그림 맨 오른쪽의 모빌 형상이다. 누나가 그린 꽃과 형들이 그린 곤충모양의 사포 모빌을 제대로 표현해놓았다. ㅎㅎㅎ

 

아마 저 그림을 그린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지우는 왜 사포 모빌에 자기 그림은 안 매달렸는지 궁금해하더니, 너무 어려서 누나 형들이랑 같이 못 그렸다니깐 자기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옳타구나 싶어, 그럼 고모가 사포를 사놓을 테니 담에 같이 그려서 맨 끝에 지우 작품도 매달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고는 어영부영 세월이 흘러... ㅠ.ㅠ

 

원래 어린아이들은 중요한 약속을 절대 잊지 않는다. 어른들이나 설렁설렁 넘어갈 뿐. 얼마 전 지우는 또 다시 내게 그 약속을 상기시켰고 드디어 철물점에서 사포를 사다가 작품활동에 돌입했다.

 

 

2013년 9월, 지우 8세 (사포에 크레파스)

우툴두툴 새카만 사포에(150번 정도가 적당할 듯. 난 처음 80번 샀다가 실패하고 180번을 사왔는데... 전문가께서 좀 더 굵어야 질감표현이 더 좋다고 하시었음)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걸 어린 화가가 얼마나 신나하는지, 몇년이나 약속을 까먹었던 게 민망하고 미안했다.

 

처음 그린 작품은 형아들을 따라서 주로 곤충. 잠자리, 집게벌레, 지네를 그리더니만 다음엔 포도 양(?)과 바나나 상어를 형상화했고...

 

작품활동은 다음날로도 이어졌다며 추후 작품 사진이 내게도 날아왔다.

 

 

캬오~ 그림이 더 예뻐졌고, 나는 모빌 작품 구성 상 딱 하나만(그리고 형아들과의 형평성의 원칙에 준하여...) 골라 매달아야 할텐데 과연 어느 걸 매달아달라고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분홍색 공룡도 탐나고... 외눈박이 몬스터도 귀엽고... 우잉..

 

허나, 작품의 완성도는 역시나 전문가이신 막내고모께 맡겨야할 일. 추석날 올 때 낚싯줄이랑 착색제 챙겨오시라 당부했고, 작품 선정도 화가에게 맡겼다.

 

 

 

 

그리하여... 누나, 형아들의 그림과 색감이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낙점된 것은 바로 외눈박이 괴물. ^^; (너무 길쭉하기만한 지네는 모빌로 부적당하다고 퇴짜를 맞아, 결국 내 전용 책갈피로 하사받았다 캬캬)

 

 

 

두둥~~!

6년만에 드디어 조카 넷이 모두 합작한 모빌작품이 완성되었다. 예전 전시에 순서를 달리하여 매달았던 터라 정민이의 꽃 아래쪽에도 구멍이 나 있었는데, 요번에 그걸 활용해 매달았으니 명실공히 완성품.

 

계속 뱅글뱅글 돌아가는 걸 찍느라 엄청 힘들었다. 작품 다섯개(맨 위엔 정민이의 해바라기 그림--맨 꼭대기 사진에서 보이는--이 중심을 잡고 있어 여기도 큰누나&고명딸 프리미엄이 좀 있긴 하다 ㅋ)가 다 개성이 있어 새삼 볼 때마다 미소가 벌벌 흐른다. 

 

지우 작품으로만 또 하나 완성시킨 모빌은 나중에 놀러가서 어떻게 아름답게 매달려 있나 확인할 작정이다. 

 

모빌 작품 완성을 기념해서라도 재미가 있든 없든 <몬스터 대학교>를 봐줘야하는뎁;;;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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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짓인지

놀잇감 2013. 8. 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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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예쁜 곳

놀잇감 2013. 6. 4. 14:47

2주가 참 금방 간다. 한달에 두 번 그까이거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지만 한달에 두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뭔가를 배우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 하도 오랜만에 하다보니 퍽이나 고되게 느껴진다. 누가 시켜선 절대로 못할 '귀찮은' 일을 자진해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기함과 존경은 여전하다. 나와는 확실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인 듯.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섣불리 덤벼들어선 안될 일이다. 

째뜬 주어진 시간동안 많이 보고 들으며 예쁜 광경을 눈에 머리에 담아두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대로 사진 찍을 여유도 사실 별로 없다. 한가로운 '관광객' 모드로 돌아다니질 못하니 원...  ㅎㅎ 그래도 눈치 슬쩍슬쩍 보면서 볼수록 예쁜 곳을 휴대폰에 담아두고 심심할 때 감상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옛기술과 지혜와 솜씨와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자꾸 보고 설명을 들어도 통 모르겠다 싶은 경복궁에서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곳 사진 몇장 골랐다. 

여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때,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려준 조대비 신정왕후에게 가장 화려하게 지어바쳤다는 자경전의 꽃담. 3월에 찍은 사진이라 나무들이 앙상하다. 지금은 초록잎이 무성한데... 세월 무상.

일일이 색기와를 구워 액자처럼 꽃나무를 표현하고 바탕은 삼화토로 마무리해 갈라지는 법이 없다는 저 그림 하나하나에도 각기 다른 사연이 숨어 있단다. 앵두나무에 걸린 보름달을 표현한 첫번째 그림은 중국어 발음까지도 관련이 있다던데... 복잡해서 다 까먹었다. ㅎㅎ 암튼 경복궁에 있는 침전 중에서 옛모습 그대로 간직된 전각은 자경전이 유일하다. 그래서 보물 809호. 전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나는 훼손되면 기술 재현이 불가능해 복구할 방도가 없다는 저 꽃담이 훨씬 더 예쁘고 정겹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모든 무늬는 강녕과 장수를, 아름다운 꽃나무는 부귀영화를 의미한다네. 

자경전 뒤에 있는 유명한 십장생 굴뚝도 지나칠 수 없다. 온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굴뚝을 담장과 연결하고 이런 장식을 하다니 옛사람들 정말 천재가 아닌가 싶다. 자경전과 별도로 이 십장생 굴뚝도 보물로 지정, 810호다. 정면에서 찍어 안보이지만 굴뚝 옆으로 돌아가 보면 맨 꼭대기엔 박쥐가 매달려 있다. 박쥐의 한자 이름이 '편복'이어서, 과거엔 복을 주는 동물이라 여겼다고. 십장생 말고도 연밥, 포도, 불노초 등 다양한 장식을 새겨놓았다. 볼 때마다 숨은그림 찾기 하는 기분.. ^^;

예쁜 굴뚝이라고 하면 교태전 뒤 화계에 세워진 아미산 굴뚝도 빼놓을 수 없다. 굴뚝마저도  육각으로 예쁘게 쌓고 꼭대기엔 기와처럼 지붕까지 올려둘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중전마마 보기 좋으라고 생각해냈다지만, 참 아기자기한 발상이다.

 

교태전 전각 자체는 1995년에 복원한 새것이지만, 아미산 굴뚝은 옛것 그대로라 역시나 보물 811호. 자경전부터 번호가 쪼르륵 붙어있어 욀 생각이 없었는데도 각인되었다. ㅋㅋ 요즘은 교태전과 강녕전 전각을 개방해놓아, 신벗고 들어가 대강이나마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데, 이 아미산 굴뚝은 반드시 교태전에 들어사 툇마루 쪽에서 바라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고... (그러나 툇마루엔 못나가게 관리인 아저씨가 지키고 있다. 쳇;; 전각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 보아도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는 낫지만, 상상으로라도 중전마마 놀이 하기엔 역부족! ㅋㅋ)

마지막으로 향원정이다. 중고등학생때 수없이 그려댄 향원정을 딱 그 구도로 찍어오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좀 더 왼쪽으로 가서 다리를 비스듬하게 잡아야하는데 해설 중 눈치보여서 그러지 못했다. 저 다리의 이름은 향기에 취한다는 뜻을 지닌 '취향교'. 원래 아치 형태로 건청궁 쪽으로 나 있었으나, 한국전쟁때 폭격 맞아 파괴된 것을 복원하며 반대쪽에 직선으로 놓았다. 건청궁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니 오래도록 그 자리는 그냥 빈마당이었고, 관람객 편의를 위해 다리도 반대쪽으로 놓았던 거다. 2030년까지 계속된다는 경복궁 복원사업이 끝나기 전에 저 다리 역시 건청궁 쪽으로 되돌려진다는 듯.

향원정에서 또 하나 웃겼던 건 수많은 연꽃들이 사라진 이유였다. 정말로 내가 중고딩때 그림 그리러 갔을 땐 연못 한 가득 잎 하나가 거의 우산만한 연잎이 수면을 가득 메워, 그것만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었다. 나도 몇번 시도해보았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던 것 같다. 근데 김영삼 정부 시절, 기독교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자 '알아서 아부하는 관리들'이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경회루와 향원정 주변에서 죄다 뽑아버렸단다. (미친 거 아냐!?) 이젠 다시 작은 수련들이 생겨나긴 했지만 암튼 이 나라 행정의 무식한 무대포 정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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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전시회

놀잇감 2013. 5. 18. 16:33

조선시대 세워진 궁궐은 무려 다섯개. 5대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중에서 역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고,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사라지기 이전에도 익히 애용했던 궁궐은 창덕궁이다. 그렇다고 다섯 궁궐이 동시에 모두 사용되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법궁과 이궁, 두 개의 궁궐을 사용하는 양궐체제가 주욱~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궁궐이 여기저기 워낙 많아서 그랬는지, 원래 이름 이외에도 궁궐엔 별칭이 있었다. 경복궁은 북궐,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 경희궁은 서궐이라 불렀다고. 창덕궁과 창경궁은 지금 담장으로 나뉘어 입장료도 따로 내고 들어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성종 때 대비마마가 무려 네 분이나 계신 덕분에 창덕궁이 비좁아 왕실가족을 위하여 넓혀 지은 공간이 창경궁이므로 엄밀히는 하나의 공간이었고, 당연히 드넓은 후원도 공유했다. 지금 창경궁 입장에선 아름다운 후원이 창덕궁 쪽에서만 접근할 수 있으니 꽤나 억울하겠다.

 

암튼 이 '동궐'이 조선시대 왕조사의 핵심이 되는 궁궐임은 분명한듯, 경복궁의 경우 흥선대원군 복원 당시나 이전의 단면도 정도만 현존하는데 비해 창덕궁과 창경궁 권역은 <동궐도>라고 하는 엄청난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각각 하나씩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로도 지정된 귀중한 자료인데, 놀라운 것은 이 <동궐도>에 대한 역사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든 전각은 물론이고 나무 하나 꽃 하나까지(심지어 나무 위 까치집도 있음!) 세밀하게 묘사한 놀라운 기법의 정밀화를 누가 왜 어째서 그리게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는 '미스터리'가 또 이 동궐도의 매력이다.

 

 

어쨌거나 고려대와 동아대가 각기 갖고 있던 동궐도 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있었다. 2월말에 시작해 5월 12일까지라기에 시간 많다고 여유부리다 끝나기 며칠 전에 간신히 볼 수 있었다(그러나 두둥~ 알고보니 6월 2일까지 연장 전시한다고! ㅋㅋ) 부산 동아대까지 가서 보긴 뭣해도 고려대 박물관에 가면 무료 상설전시로 언제든 구경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만, 훼손 방지를 위해 더는 전시를 안한다는 것이 문제 ㅠ.ㅠ 고려대본 16폭을 죄다 펼쳐놓고 전시했던 때를 못 본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번엔 화첩을 4개만 펼쳐놓고 나머지는 그냥 쌓아놨더군. 쳇. 빌려온 동아대본(병풍으로 만들어졌다)을 더 예우하려 했던 것일까나?

 

하여간 하나도 못본 것보다는 낫다고 애써 위로하며, 도화서 화원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꽤나 훌륭한 보존상태에 기뻐하며 구경했다. 궁궐 강의 들을 때 창덕궁 소장님이 그랬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백년 수령의 향나무가 태풍때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도 겪었고 계속 기울어 버팀대를 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동궐도>에도 이미 그 향나무는 지주대로 버텨놓았을 만큼 고목이었다고.

 

그래서 <동궐도>는 단순히 역사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건축학과 조경학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자료란다. 다른 화원이 그려서 그랬겠지만, 고려대본과 동아대본이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 ^^;; 우진각 지붕인 돈화문(광해군 때 중건 이후엔 한번도 소실된 적 없다는데;;)을 팔작지붕으로 그려놓은 것도 미스터리란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도 두 그림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컴퓨터 영상이 계속 돌아간다. 극사실화를 추구하더라도 계단 모양이나 대문의 빗살, 나무와 까치집의 크기 같은 건 화원마다 다르게 그렸을 수도 있겠으나, 선정전 잡상이 고려대본엔 있고, 동아대본엔 없다는 것도 참 재미있다. 현재 창덕궁 선정전에도 잡상이 없다는데... 어느 쪽이 맞을까나.

 

열여섯 폭 비단에 그린 고품격 채색화인 <동궐도>는 분명 당시에도 야심찬 기획이었을 텐데, 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고려대본에 '인(人)이라고 적혀 '천/지/인' 세가지 본이 그려졌음을 알수 있다는데, 두 개만 전해지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 그나마 동아대본은 누군가 화첩을 아예 중간에 병풍으로 만들어 버렸고, '천'과 '지' 어느 판본인지 알 수도 없다. 세번째 지도가 더 있었다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셋을 비교해보는 묘미가 더 컸을 텐데...

 

지도 자체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동궐도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목조건축이라 수없이 화재 소실과 중건을 겪은 궁궐 전각에 대한 기록이 소상하기 때문이다. 창덕궁에서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공간인 '연경당'은 1828년 순조 때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는 동안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려고 지은 건물이란다. 그런데 <동궐도>에 이미 연경당이 보인다. 그밖에 창경궁의 전각과 빈터 등을 고려할 때 동궐도는 1828년에서 30년 사이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당시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이므로 효명세자가 도화서에 명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란다.

 

효명세자가 누군가. 정조의 손자로, 창덕궁 후원입구에 한칸 반짜리 소박한 북향 전각 기오헌을 지어놓고 언덕 너머 규장각에서 책을 날라다가 밤낮으로  '열공'하면서 할아버지 정조대왕의 뒤를 이으려고 했던 준비된 인재 아닌가. 그래서 순조가 일찌감치 대리청정을 시켰을 테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효명세자는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요절. ㅠ.ㅠ 정조가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고 괜한 가능성을 점쳐보며 한탄하듯,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는 소현세자와 함께 효명세자 역시 요절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명운을 바꾸어놓았을 인물로 종종 손꼽히는 인물인데 참 아쉽다. 째뜬 그나마 귀중한 유산 <동궐도>를 남겼으니, 감사할 따름. 

 

국보급 유물의 전시라서 당연히 동궐도 진본의 촬영은 불가능했다. 대신 복사본을 밖에 걸어뒀던데 이왕 복사본을 만들려면 좀 제대로 또렷하게 인쇄를 하든지! 진품의 위용을 흐리지 않기 위함인지 복사본 지도는 흐리멍텅, 선이며 채색이 몹시 마음에 안들었다. 쳇;;; (그래도 찍어왔으면서  ㅋ)

 

가로 5.76미터 세로 2.73미터의 엄청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궁궐 안엔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원칙이 상당히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을 뜻하는 네모 안에 나무 목(木)을 넣으면 빈곤할 곤(困)자가 되기 때문에 궁궐 담장 안엔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경학에서 귀중한 자료로 사용할 만큼 동궐도엔 수종도 다양한 나무들이 엄청 많다!

 

 

복사본을 그나마도 흔들어 찍어온 위 사진으로 동궐도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엔 역시나 역부족. 부분부분 세밀화를 보아야 느낌이 전달되므로, 문화재청 자료 자신 몇장 퍼왔다. ^^;; (그나마 화질이 좋아 퍼오긴 했으나, 실제 그림보다는 전체적으로 너무 노란 기운이 강하다)

 

팔작지붕의 미스터리를 갖춘 돈화문 부분. 문 앞으로 길게 뻗은 월대 앞 ㅈㅈ 표시는 궁궐출입자들이 모두 가마와 말에서 내려야한다는 하마비(그 앞에 ㄴ자로 생긴 돌의 이름)를 나타내는 거라고 들었다.

 

 

부용지에 배를 띄워놓은 모습도 보이는 주합루 앞과 그 너머 연경당의 모습. 조감도를 그릴 만큼 높은 곳에 올라가 그릴 수 없었으니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겠고, 당연히 실제 거리나 원근법과는 좀 맞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5월에 그린 그림인 듯. 꽃나무 색깔이 아련하다. 저거 앵두나무일까? +_+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의 특색이 두드러져 보이는 부분. 현재 창덕궁에서 청기와가 남아있는 전각은 선정전이 유일한데, 이 그림엔 대조전과 복도각으로 이어진 경훈각(그림 맨 꼭대기 건물)도 청기와다. 청기와는 청나라에서 수입하는 회회청으로 구워야해서 돈이 많이 들었다던데.... 아우.. 그림이 정말 정교하지 않은가! 깃발까지 날리고 있다. 전각마다 다 이름이 적혀있고, 편액 글씨까지 섬세하게 다 보이는데, 내가 무식하여 한자를 다 못읽는 것이 아쉬웠다. -_-;

 

안내문엔 하루에 몇번 로봇이 하는 전시 설명과 해설사 설명이 있다던데, 대학원생인 듯한 해설사 설명을 조금 듣다가 관뒀다. 완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느낌으로 설렁설렁...   아무리 봐도 해설사란 남들이 뭐라든 자기만의 열정이 샘솟아야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 <하하하>에서 문소리가 열연했던 왕성옥 정도는 되어야...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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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고 왔는지 모르게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그새 벚꽃, 살구꽃은 다 떨어져 연두잎을 내밀었고, 라일락이 피어났다. 두문불출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드물게 마당에 내려가보면 라일락 향기가 퍽이나 유혹적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라일락 향기에 감탄하는 두 아줌마에게 외쳤다. 라일락이라고 하지 말고 서양수수꽃다리라고 해야 돼! 기특한 녀석.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새 '서양'이 더 붙었나보다. 배배 꼬여 쓰러져가는 라일락나무 밑둥에서 올해는 가느다란 가지가 올라오더니 볼품없는 막대기처럼 보였던 외줄기에도 꽃이 매달렸다. 허리를 숙여야 제대로 보이는 높이에서 솟아나듯 피어난 서양수수꽃다리는 더욱 향기롭고 예뻐 보인다. 애먼 데서 느끼는 단신의 동질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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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꽃잔치

투덜일기 2013. 4. 16. 17:00

질기디 질긴 꽃샘추위 때문에 아직도 간간이 발이 시린데도 꽃은 피어난다. 꽃봉오리 벌어지는 동안 찬비를 두번이나 맞아서 그런지 작년보다는 꽃송이가 좀 작다싶은 것이 덜 탐스럽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베란다 창문 밖이 드디어 밤낮으로 환한 꽃잔치가 열렸다. 오늘처럼 흐린 날씨에도 우리집 창밖만은 환하게 햇살이 비치는 느낌.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90퍼센트쯤 다 핀 것으로 인정하고 오늘부로 '만개' 선언.(왜 니가 그런 선언을? ㅋ) 다른 해엔 살구꽃이 가장 먼저 피고, 다음으로 벚꽃, 앵두꽃의 순으로 피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앵두꽃이 되레 가장 일찍 피었다. 현재 마당에선 세 종류의 하얀 꽃이 서로 마주보며 뽐내기를 하는 형국이다. 앵두꽃도 같이 담아 올리면 좋겠지만 계단 내려가기 귀찮아서 -_-; 관두기로.

 

 

살구꽃 벚꽃

 

6년 전에 밤벚꽃놀이 포스팅을 했을 때, 나는 벚꽃이 다 피었다가 눈송이처럼 후두둑 마구 떨어질 때가 가장 예쁘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벚꽃이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면 앞으로 몇년이나 더 이런 꽃구경을 하겠나 싶어져 서글픈 생각이 들어 싫다고 하셨고, 나는 얼른 미안해져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앞으로 10년간은 해마다 벚꽃놀이 다니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아버지의 벚꽃구경은 그게 마지막이었고 내 호언장담은 공수표가 되었다. 아버지가 그날로부터 석달도 안되어 돌아가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날 왜 하필 그런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지,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고 새하얗게 피어난 벚꽃을 보면서도 문득문득 슬퍼진다. 동시에 예쁠 때 많이 봐두자는 생각도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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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투덜일기 2013. 4. 9. 01:13

똑같은 봄꽃인데도 개나리, 목련이 핀 걸 보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 반면 진달래를 보면 추워보여 안타깝다. 분홍 꽃잎이 투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어려서 살던 동네 뒷산에서 진달래를 목격한 것이 분명 소월의 시를 안 시점보다 훨씬 더 먼저일 테니까 싯귀 때문은 분명 아니다. 어쨌거나 내게 진달래는 예뻐서 슬프다는 말이 뭔지 알려주는 듯한 봄꽃. 그래선지 오늘 어느 학교 교정에서 진달래꽃을 보고 반색하다가 문득 조금 서글펐다.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 왜 마냥 좋아하질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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