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10.03.31 비오는 수요일 14
  2. 2010.03.22 생각대로 되지 않아 12
  3. 2010.03.09 머피의 법칙 3
  4. 2009.05.04 도서관 18
  5. 2009.04.09 덥더라 16
  6. 2009.04.02 4월인데 8
  7. 2009.03.19 이것이 온난화? 11
  8. 2009.03.13 그런가? 14
  9. 2009.03.08 가지치기 13
  10. 2008.04.11 꽃구경 10

비오는 수요일

투덜일기 2010. 3. 31. 13:10

요즘 거의 라디오를 안 들어서 알 수 없지만, 아직도 비오는 수요일엔 다섯손가락이 부르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가 자주 나오는지 궁금하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이미 해체된 그룹이니 내 또래가 아니고선 <다섯손가락>이란 이름조차 낯설듯한데, 동방신기가 부른 <풍선>인가 하는 노래도 원래는 다섯손가락이 부른 노래였다. 유난히 수요일에만 비가 자주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던 그 노래 덕분에 비오는 수요일엔 종종 빨간 장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 세뇌작용이 얼마나 강렬한지 오늘처럼 비오는 수요일엔 아직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 노래가 생각나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빨간 장미 한송이를 사볼까 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천편일률적으로 한송이씩 셀로판지에 둘둘 말아 리본 묶어 놓은 거 말고, 이왕이면 튼튼한 대를 길게 잘라 아무 포장 없이 그냥 들고 올 수 있게 하는 꽃집에서.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일이면 4월이다. 예전엔 4월이 열리면 이런 저런 만우절 에피소드와 함께 어김없이 April come she will~로 시작되는 사이먼&가펑클의 <4월> 노래를 이방송 저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혹시 요즘도 그럴까? 혹시나 틀어줄지 내일은 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보고픈 마음도 든다. 음악이 듣고 싶으면 찾아서 들으면 될 것을 라디오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내가 구식이고 옛날 사람이라는 증거겠지.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이유는 단단한 죽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생명력 때문이라는데도, 다른 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4월은 봄꽃의 달이라 꽃의 향연 속에서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야 하는 상황을 잔인하다고 여겨 툴툴댔던 것 같고, 올해도 역시나 나의 4월은 잔인한 스케줄을 품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땐 하필 제일 날씨 좋고 봄꽃 아름다울 때 중간고사 기간이라 잔인하다기보다는 억울한 4월이라고 생각했다고 쳐도, 다들 굳이 다른 달보다 4월을 더 힘겨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느끼는 걸 보면 분명 주입식 교육의 잔재다. T. S. 엘리엇.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무운시. 그러니까 4월은 무조건 잔인한 달. -_-;

어쨌거나 촉촉한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라 몰랑몰랑해진 감성은 음악을 멀리하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인간에게까지 감상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비와 함께 연상되는 음악, 커피, 추억 같은 것들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만 품고 있는 주입식 기억의 흔적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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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한 나의 단점 가운데서 혹자는 나더러 생각이 너무 많다고 지적 한다. 나도 잘 알고 싫어하는 단점이다. 소심함, 우유부단함과 함께 세트 메뉴로 몰려다니며 종종 내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니까. 심지어는 앞으로 해야할 일,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여러 경우의 수대로 홀로 상상해보고 추측하고 짐작하면서 미리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땐 내가 이러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저러저러한 말로 대꾸할 테고 또 내가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면 저러이러한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하다가 버럭, 있지도 않은 사건에 꽁해져 마음에 응어리를 맺거나 홀로 이유없이 화를 내고 앉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밀린 일이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는 건 너무도 뻔한 게으름 때문이라고 쳐도, 하루 일정 계획해 놓은 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일은 다반사이며, 한 이틀 푹 자고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입천장도 아직 너덜거리고, 요가 넉달만에 열세살 조카는 키가 5센티미터나 크고 체중도 줄어 허리선이 생겨났는데 중년의 고모는 체중감량은커녕 늘어난 유연성 따위도 전혀 모르겠고, 일주일만에 아기발처럼 변한다고 선전하며 각질이 허물 벗는 뱀 껍질처럼 벗겨지는 모습을 보여주던 마법의 묘약 같은 각질제거제는 나한테만 효과가 나타나질 않으며, 4월이 코앞인데 아직 날씨는 겨울이고, 진심은 언제고 반드시 통할 거라 믿었던 오랜 관계에 금이 가거나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아 제일 못마땅하고 속상한 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일년에 한번씩은 제법 긴 여행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유와 여건이 허락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중년의 삶이다. 

소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게 인생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만날 생각만 길게 앞세우지도 말 것이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맘 상해 괴로움에 연연하는 대신 생각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인간의 욕심으론 그게 잘 안된다. 성인이나 고승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범하게 연연해 하지 않고 매사에 기꺼이 욕심을 놓아가며 사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크게 성공하겠다거나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탐욕 따위를 품지도 않았으니 생각을 조금만 덜하고 탐심도 조금 버리면 되련만...

3월도 끝자락을 향해가는 22일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처럼, 앞으론 내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 황당하고 기막힐 정도로 뒤통수를 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나는 또 그런 예상마저 미리 생각해두겠노라며 미련을 떨 것이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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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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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투덜일기 2009. 5. 4. 16:52

집주변에 장서량이 훌륭하고 시설도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몹시 부럽다.
그나마도 근방에 도서관이 아예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원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
원래 빌리고 빌려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빌린 책은 괜스레 남는 게 더 없는 느낌이라 읽기 전부터 허기가 든다. 이미 뇌조직이 느슨해진 것인지 뭐든 읽고 나면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아스라이 잊혀지는 마당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책등에 적힌 제목이라도 가끔 보면 아하 저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지,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만 빌려 읽고 난 책은 흔적도 없으니 도무지 내것이라 챙겨 놓을 방도가 없다. 꼼꼼히 다이어리나 독서노트, 독서후기 따위를 쓰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직도 예전에 사놓고 안읽은 책들엔 먼지만 쌓이는데 새로운 책을 사고싶은 마음이 들어 또 몇권 사들이고도 얇은 귀를 팔랑이며 누가 인상깊게 읽었다고 하는 책은 또 욕심이 나니 하는 수 없이 이젠 도서관에서 좀 더 많이 책을 빌려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서 읽고 싶은 책 말고 일 때문에 필요한 자료 책들은 예전부터 빌려보았기 때문에 대출카드도 만들어둔 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빌려 읽는 책들은 새책이어야 읽을 마음이 생긴다. 대체 어떤 인간들이 만졌을지 모를 흔적들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게 남아 있는 책에 내 손길을 보태기가 영 꺼려지기 때문이다. 공부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엔 짜증스럽게 줄까지 쳐 있어도 그다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좀 이상한 강박증이다. 그땐 저작권 문제에 아무 거리낌 없이 복사나 제본을 해서 봤기 때문일까? 그냥 읽어보기만 한 책도 더러 있었는데... 아무튼 헌책방에서 구한 오래된 책은 이제 내것이란 소유의 심리 때문인지 누렇게 변했어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 도서관 책은 좀체 적응하기가 어렵다. 뭐든 새것만 추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텐데, 난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다.
반성은 반성이고 아무래도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던 차에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아직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은 책을 신청하는 것! 그러면 책이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책에 바코드를 붙이고 도장을 찍은 도서관 직원들 말고는 아직 그 책을 주물럭거린 사람들이 드물다는 얘기니까 거의 새책이다. 문자 메시지가 오면 이틀 안에 찾으러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이기는 것이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꽤나 큰 도전(?)인데 그래도 도서관 책이면서 내가 처음 책장들을 펼친다는 착각에 훨씬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빌린 책으로도 구멍 뚫린 두뇌에 좀 더 깊은 인상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오늘은 그렇게 빌렸던 책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라고 또 문자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도서관엘 갔는데 2주 전 비오는 날엔 초록 잎도 제대로 눈에 안들어 왔던 등나무에 연보랏빛 꽃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 등나무꽃 아래엔 흡연자들을 위한 벤치 한두 개밖에 없었지만, 옛날 학교의 등나무 아래 벤치가 떠오르며 그리움으로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바야흐로 5월, 축제의 계절이겠구나 싶어서.
시설은 노후했고 책도 별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네 산기슭에 자리잡은 터라 위치는 좋은 편이니 다음엔 아카시아 꽃 향기 그윽할 무렵 또 도서관엘 가봐야겠다. 아직 도서관에 들여놓지 않은 주옥같은 책이 뭐가 있을까 열심히 찾아 신청도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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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더라

삶꾸러미 2009. 4. 9. 16:04

한여름에도 긴팔은 물론 시커먼색 재킷까지 겹쳐 입고도 땀 한방울 안 흘리던 나의 20대는 그저 아득한 과거일 뿐이다. 삼복중에 낳은 아이를 뉘면 움푹 들어갈 만큼 푹신한 솜이불에 싸서 키웠다는 전설과 함께 유난스럽게 추위를 타는 반면 더위엔 끄덕 없던 나의 체질이 슬슬 바뀌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30대에 들어서부터인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선 아예 몸에 열이 많아졌다.
요며칠 낮기온이 꽤나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종일 집에서 뒹굴거릴 땐 몰랐다가 어제 오늘 밖에 나가보곤 깜짝놀랐다. 봄은 어디로 간 건지, 벌써 덥더라.
뙤약볕에 세워놓은 차가 후텁지근한 걸 감안하더라도, 어제 오늘 한낮엔 창문을 활짝 열고 다니다 시끄러움에 못이겨 결국 에어컨을 켜야할 정도였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올해의 첫 아이스커피를 만들어마셨다. +_+
어제 미리 얼음을 얼려두었기에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얼음커피 마시고 싶어서 몇시간 환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벌써 벚꽃과 앵두꽃은 흐드러지게 눈발처럼 휘날리고, 성급히 피었던 목련들은 벌써 시체처럼 검게 변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내겐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이 이렇게 빨랑빨랑 가버리는 게 아쉬워서 막 조바심이 나는데, 바짓가랑이 붙든다고 머물러줄 것도 아니고 괜히 싱숭생숭 마음만 펄럭댄다.
오늘은 왕비마마가 꼬드기면 못이기는 척 뒷동산에 밤벚꽃놀이라도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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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인데

투덜일기 2009. 4. 2. 17:42

어제보니 앵두꽃이 활짝 피었더라. 벚꽃보다 앵두꽃이 먼저 피는 거였는지 몰랐다.
그 역시 망할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벚꽃도 며칠 안에 피겠던데...
많이 잘라내 성긴 가지에 핀 앵두꽃을 보며 새삼 멍했다.
봄꽃 피면 왜 꼭 다 팽개치고 꽃놀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요번엔 책 잘 만들 욕심(잘 팔 욕심?)과 욕 안 먹고 싶은 마음이 옮긴이나 만든이나 똑같아 다행이기도 하고 그래서 피곤하기도 하다. 난생처음 같은 책의 두번째 역자교정을 하며 눈알 빠지게 골치가 아프다. 어제 받은 원고 오늘 퀵으로 보냈어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또 여전히 붙들고 낑낑대는 중이다. 카페인 힘을 빌어 잠을 안잤더니 마음이 바쁜데도 계속 멍하다. 머리가 맑아도 시원찮은 판국에!

만우절이 생일인 그리운 친구도 있고,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 때문에라도 4월의 첫날엔 뭔가 끼적이고 싶었는데 허둥지둥하느라 친구에게 전화 한통 못하고 멍청하게 보냈다. 시차 확인을 해보니 지금 LA는 밤 12시 40분이란다. 너무 늦었다. 서머타임이 시작됐는지 그것도 모르겠고. 이메일조차 없어 편지와 전화 아니면 아예 닿지 않는 아날로그형 옛 친구는 이럴때 야속하다. 다 내 게으름 탓이지만.

어쨌거나 멍하게 무너진 비루한 일상. 그것이 4월의 시작이다.
뭐 그렇다고.
순전히 잠깨기 용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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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전부터 꾸준히 오가고 있지만 무지한 나로서는 춥지 않은 겨울, 녹아 없어질 위기에 놓인 북극 빙하, 마른 장마, 세계 각지의 이상기온을 그저 막연하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바깥 공기는 며칠 만에 한번씩 접할 때도 많기 때문에 기온 파악을 전혀 못하고 살다가 잘못된 옷 선택에 민망한 순간이 있긴 해도 요즘 기온이 평년보다 얼마나 더운지 추운지는 잘 모른다.

아무리 봄이 왔다고 해도 춥게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못견디기 때문에 늘 남보다 뒤쳐지는 두툼한 옷을 입는 편인데, 어제는 과연 입을 때가 됐을까 아닐까 고민하며 그간 꺼내지 못했던 할머니의 유품 스웨터를 드디어 꺼내 걸치고 장보러 나갔다가 쪄죽을 뻔했다. +_+ 예년엔 3월과 늦가을에 입었던 것 같은데...
골목 어귀의 목련도 이제 막 벌어지려는 듯 물이 올라 있었다. 봄꽃은 원래 4월이나 돼야 피는 거 아니던가? 어쨌든 아름다운 꽃들이 좀 빨리 피는 것이야 반가우면 반가웠지 나쁠 일은 없다.


문제는 얼마전부터 우리 동네에 미친듯이 생겨나고 있는 모기떼다.
특별 방역이 필요할 정도로 벌써부터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어차피 요즘 모기들이야 아파트촌의 뜨뜻한 하수구에서 한겨울에도 버젓이 살아 날아다닌지 꽤나 오래 되지 않았나. 그런데 최근 출몰한 우리 동네 모기들은 한겨울에 몇마리씩 날아다니는 수준이 아니다. 자연하천 복원이랍시고 한강물을 끌어들이고 분수에다 물레방아, 폭포까지 생돈을 쳐들여 물이 흘러가게 만들어놓은 홍제천이 핵심 원인이라는 심증이 가기는 하는데, 흐르는 물에도 모기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 날아다니는 모기들은 군데군데 시커먼 갈색구름처럼 수백, 수천마리씩 뭉쳐 윙윙거리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아직 그나마 기온이 낮기 때문인지 여름날 보이는 모기처럼 몸집이 크지 않아 그 절반도 안되는 듯부실하고 아직은 사람을 물지도 못한다. 자칫하면 하루살이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놈들이 가끔 집안으로 숨어들었다간 제풀에 지쳐 비실비실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방충망 바깥에 수십마리씩 앉아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으으으으....
방충망을 향해 모기약을 뿌려대도 놈들은 후르륵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며칠 전 꽃샘추위가 왔을 땐 모기들이 하나도 안보이길래 다 얼어죽었나보다 기뻐했더니 어느새 다시 살아났더라. 이른 봄부터 벌써 이 지경이면 여름엔 어쩌란 말인가.
경상도 어느 도시였던가. 근처 공장에서 내보낸 높은 온도의 폐수 때문에 모기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 구름처럼 날아다니는 바람에 집밖으로 외출을 하려면  벌치는 사람들처럼 망을 내려뜨린 모자를 써야할 정도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본 것 같은데, 설마 우리동네도 그런 지경이 되는 것은 아닐까.
모기 잡으라고 구청에 민원전화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만날 구시렁거리면서도 정착 전화해볼 용기는 못 내고 있다. 이미 누군가 불평을 해서 상황을 알고 있을 거야, 라고 막연히 짐작하면서...

이런 것이 지구 온난화로구나 싶어서 문득 두렵고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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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투덜일기 2009. 3. 13. 00:18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도 교정지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딴짓을 할 수가 없어 블로그질도 멀리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건만, 봄비오는 밤 누군가의 춘심에 뒤통수를 맞았다.
넌 왜 만날 그렇게 씩씩하느냐고 걸핏하면 딴죽을 거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나의 변함없는 씩씩함에 트집을 잡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외로워서 술 한잔을 하고도 계속 외로워서 자기보다 외로운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생각해봤더니 누군가 떠올랐다나. 그게 누군지 아느냐고 나에게 묻기에, 나는 다른 사람을 떠올리곤 대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내 대답도 듣기 전에 하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은 바로 나란다.
의지력이 강해서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씩씩하게 보이지만 속은 안그렇다고. 그래서 내가 안쓰럽다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섣불리 나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코멘트 쯤은 시큰둥하게 넘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여기고는 있는데, 세상에 안 외로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웃어 넘기며 취기어린 목소리를 차단하는데 성공을 거두긴 했는데, 좀체 다시 교정지에 집중이 안된다.

그런가?

흥.
아니다.
외로운 걸 모를 정도로 심장이 무심하게 단련된 것인지 그냥 무신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절대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냥 나니까 안다.
쳇.
그저 비와 술이 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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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투덜일기 2009. 3. 8. 17:34
몇그루 되지도 않는 나무이건만 2년간 방치했더니 작년 여름 집앞 꼴이 완전 밀림스러웠다.
집이 나무로 가려져 골목어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건 나('진짜' 마당 있는 집을 꿈꾸는 자)로선 괜히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키큰 나무가 서로 맞닿아 하늘을 가린 건 멋져보일지 몰라도 입구에 선 작은 사철나무와 라일락이 서로 가지를 이어 놓은 건 흉가 느낌이 났고, 작년에 앵두가 열렸을 때 보니 가엾게도 너무 길게 자란 가지가 무거워 비가 올 땐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쳐졌다. 게다가 나뭇가지가 무성하면 여름에 모기들이 어찌나 많이 꼬이는지!
더욱이 내가 제일 꼴보기 싫어하는 무궁화 나무는 엄청나게 가지를 뻗고 자라, 여름 내내 세차도 잘 안하는 내 차에 더럽게 뭉쳐 떨어지는 꽃뭉치를 퍽퍽 뿌려댔다. 원래도 무궁화꽃 예쁜 줄 모르겠고, 벌레꼬이기 대장인데다 심지어 차위에 떨어져 누렇게 썪는 꽃뭉치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무궁화나무는 예전부터 내가 아버지한테 확 베어버리시라고 요구했던 나무다.
해서 올해는 봄되면 꼭 가지치기를 해야지 마음먹고, 가지치기의 적당한 시기도 인터넷으로 검색해놓았었다.
가장 중요한 앵두나무의 경우는 2월말에서 3월초에 꽃눈 나기 전에 하는 거라고.
2월말엔 워낙 노느라 바빴기 때문에 3월초에 하지 뭐,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일주일을 다 보낸 어제 며칠을 별러 잡은 날이었기에 전정가위와 톱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우리집 앵두나무는 심한 편은 아니지만 약간은 해걸이를 한다. 한해씩 번갈아가면서 앵두가 많이 열리고 덜 열린다는 얘기다. 재작년 앵두철은 워낙 경황이 없었던 터라 기억나질 않는데, 작년엔 가지치기도 하지 않았는데 앵두가 정말로 많이 열렸다. 그나마도 다 따먹기 전에 엄마의 입원으로 다 말려버렸지만 말이다.
과실나무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무학(?)을 전공한 막내동생에 따르면 원래 초봄에 가지치기를 해줘야 열매가 많이 맺힌단다. 어차피 열매는 나무들이 후세를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라, 가지치기를 하면 자기가 죽는 줄 알고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얘기. 그걸 노리고 가지를 잘라버리는 인간들의 심보가 끔찍하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뻗어 길어진 가지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그렇다고 내가 가지치기의 요령에 대해 아는 것도 아니니, 막상 나무 앞에 서긴 했어도 막막했다.
작년에 읽은 책의 구절을 염두에 두긴 했었다.

가지치기를 할 때 절대로 무턱대고 가지를 잘라선 안된다. 우선 부러지거나 죽은 가지를 먼저 잘라낸 다음 웃자란 가지를 잘라주는데, 이때는 반드시 눈의 위치를 파악하고 눈 바로 위를 눈의 반대방향이 되도록 사선으로 잘라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빗물이 눈속으로 들어가 얼거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오경아, <소박한 정원> 121쪽)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난감할 만큼 거리감이 있다. 눈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어느 눈의 방향을 확인하란 말인지? 가지가 단단해서 전정가위로 잘 잘리지도 않는데 사선인지 직선인지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나? 톱으로 우툴두툴 자르는 건 절대 안된단 말씀?
젠장. 내 마음대로 손길 닿는대로 <무턱대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작년 초여름에 심하게 늘어졌던 기억이 있는 앵두나무의 긴가지들을 우선적으로 잘라내며 보니 아뿔싸, 이미 꽃눈이 다 돋아났더라. 분홍색 기운이 완연해 보이는 꽃눈이 다닥다닥 달린 가지들을 마구 잘라내며 올해는 앵두를 맛보기 글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앵두나무는 생각보다 꽤나 단단했다. 새끼손가락 굵기도 안되는 가지들도 가위로는 잘 잘리지 않았다. 전정가위를 두손으로 잡고 힘주어 잘라도 잘 안 잘릴 정도로 단단했는데, 상대적으로 무궁화와 사철나무는 꽤나 무르더군. 앵두나무는 가는 가지에 톱질을 해도 잘 안잘라지던데, 무궁화와 사철나무는 난생 처음 해보는 가지치기 톱질임에도 슥삭슥삭 굵은 가지가 잘려나갔다.
생각 같아선 무궁화 가지들을 더 많이 쳐내고 싶었는데 신장의 열세로 손닿는 부분만 자르고 보니 나란히 서서 서로 가지를 얽고 있는 세 그루 나무들의 전체적인 꼬락서니는 꽤나 우스웠다. 그런데도 전정가위와 톱을 들고 나와 망설임없이 쓱쓱 가지를 쳐내는 내 모습이 대단히 전문적으로 보였는지 이웃분들이 나와 한마디씩 거들면서 신기해 했다. -_-a
물론 높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전체적인 나무의 모양새를 잡는 일 따위는 할 수도 없었다. 사다리가 집에 있기야 하지만 내가 그 정도로 나무 가꾸기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고, 금세 힘도 딸렸다. 이번엔 그저 지저분하게 뻗은 가지들을 시원하게 이발시켜 준 것에만 만족하기로 했다. 초보 나무이발사의 솜씨로 헤어디자이너 같은 스타일을 기대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어쨌거나 좁아터진 마당 한구석이 조금은 훤해져 속이 시원했다.
다만 그것도 일이라고 톱질에 힘쓴 어깨와 가위를 잡았던 오른손아귀가 오늘까지 꽤나 아프다.
아무렇게나 톱질과 가위질을 해놓은 만신창이 앵두나무에서 과연 올해는 수확을 얼마나 보려나, 그것이 궁금하다. 
그리고 어제의 교훈: 마당 있는 집에서 예쁜 정원 감상하며 살려면 우선 집을 살 돈도 많이 벌어 놓아야겠지만 꾸준히 정원 가꾸는 인력을 고용할 돈도 많이 벌어야겠다. 정원 가꾸는 솜씨가 있는 사람을 데리고 살거나.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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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

삶꾸러미 2008. 4. 11. 20:13
날씨마저 암울한 것이 전조가 좋지 못했던 총선날 투표 마치고 결국 동네 벚꽃길에 구경갔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바람에 금세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딸이랑 꼭 꽃구경을 해야한다는 엄마 원을 풀어드려서 조금 속이 후련.

그날 비가 내려 꽃이 다 떨어지겠다 걱정했더니 빗줄기가 그리 세지 않았는지 본격적인 벚꽃 축제는 오늘부터라면서 엄마는 또 과일 싸들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다녀왔다는데, 청사초롱에 불 들어오고 현란한 조명이 켜지는 밤에 더 볼것이 있다면서 여전히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본다. -_-

생각해보건대, 예로부터 봄이면 아줌마들이 관광버스 대절해서 버스 뒤집히도록 춤을 추어대면서
꽃구경을 다녔던 이유는 지난한 삶에서 약간의 일탈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월과 계절의 변화에 그만큼 민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 계절 중에선 언제나 봄이 제일 좋았고 봄꽃 피면 싱숭생숭 놀러나갈 궁리를 하기는 했으며 꽃을 유독 좋아하기는 하지만 계절따라 바뀌어 피는 꽃 하나하나에 진지한 의미를 두고 관찰하게 된 건 삼십대 이후였던 것 같다.

울 부모님이 사십대이셨을 때는 부부동반으로 근교 산에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셨는데
다른 때는 몰라도 산에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 능선이 있는 북한산인가 도봉산인가, 암튼 기억도 잘 안나는 산에 우리 삼남매를 데려가 꼭 구경시켜주고 싶어 하셨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니들도 꼭 봐야 한다면서...
그때 중학생이었나 고등학생이었던 막내는 맥가이버 봐야하는데 등산 때문에 늦어 못본다면서 볼이 퉁퉁 부은 얼굴로 따라다니다 결국 시무룩한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동생녀석 뒤에 아련하게 피어 있는 진달래가 참 예쁘긴 하다.

사실 그때는 부모님을 <한번 봐드린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등산엘 따라나섰는데
그런 경험이 아니었다면 걷기조차 싫어하는 내가 진달래 핀 봄산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았겠나 싶다.  

엄마는 이제 등산은 상상도 못하고 그저 멋진 등산화를 신고 동네 앞뒷산을 조금 오르다 마는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봄꽃이 피면 꼭 그걸 나한테 못 보여줘서 안달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얼마나 예쁜 줄 아니. 사람들이 다 와서 보고 좋다고 난리더라. 그러니까 너도 봐야지."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뼈저리게 알 수 있는 마음은 확실히 나이와 비례하는지
나는 아직도 엄마만큼 봄꽃구경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후회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엄마랑 많은 걸 함께 누려야한다는 조바심은 확실히 생겼다. 이렇게 나도 나이를 먹다가... 해마다 꽃구경을 빠뜨리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때가 오겠지 싶어서 마음이 묵직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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