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에서 8월 30일까지 <조선의 왕비와 후궁>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너무 더워서 경복궁이 뜨끈뜨끈 했던 자원봉사 날, 여전히 메르스 여파로 외국 관람객은 드물고 내국인 관람객 역시 해설엔 관심을 안 보이길래 무더위도 피할 겸 고궁박물관으로 '피서'를 가 전시 설명을 들었다.
오래도록 사극에서 하도 왜곡된 모습만 부각되어 조선 왕궁의 여인들이라고 하면 으레 왕 한 사람을 놓고 궁중암투나 벌이고 세도정치와 당파싸움에 희생되고 마는 좀 한심한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연히 그렇지만도 않았고 의외의 재미난 모습들이 많다. 뭐니뭐니해도 왕에 버금가는 최고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왕이 지존이라 품계가 없듯, 왕비도 품계가 없단다. 내명부 품계는 후궁부터 1품, 2품... 단계별로 희빈, 소의, 숙의 같은 명칭이 주어진다고.
왕의 대례복인 구장복에 온갖 복잡한 뜻이 담겨있듯, 왕비의 대례복과 장식에도 별별 의미가 다 많아! (벌써 다 까먹었음 ㅋㅋ) 암튼 실제 영친왕비가 입었던 옷도 있고, 복원된 왕비의 복장도 있고... 볼 거리 읽을 거리가 쏠쏠한 전시다.
꽤 크게 제작한 이 전시포스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해서 좋아라 받아내선 고이고이 집까지 모셔왔는데 아오... 좁아터진 우리집에 붙이기엔 포스터가 워낙 크고, 이렇게 두 장 연결해서 나란히 붙일만한 벽이 없다. ㅠ.ㅠ 따로 붙이면 느낌이 안사는데 잉.. 하는 수 없이 이층 올라오는 계단 벽에 붙여야하나... 그러는중. 에효
아래 사진은 왕비가 가례(혼례식) 때 입었던 대례복 '적의'(翟衣)를 마네킹에 입혀놓은 거다. 아래 깔린 멍석도 실제 유물인데 끝부분이 짤렸더라. 옷에 들어간 꿩무늬가 글쎄 그 옛날에도 자수를 놓은 게 아니고 죄다 직조한 거라고! +_+ 대한제국 들어 고종이 황제를 칭한 뒤 황복을 입었듯이 황후는 저 꿩무늬가 12줄인데.. 영친왕비는 급이 좀 아래라서 9줄 들어간 걸 입었다네. (원래 왕비의 적의는 그러니깐 모두 꿩이 9줄) 머리장식이 하도 거대하여 저러고 하루종일 있으면 담 걸리는 건 피할 수 없겠다. 보석들이 거짓말 좀 보태서 주먹만하다.. ㅋㅋ
이옷들은 원삼인데.. 품계에 따라 색깔 구분이 있다고 들었으나 벌써 깜깜. 빨간색이 왕비였던가... 노란색이 왕비였던가. 황색이 왕을 뜻하니 노란색이 왕비 옷이었을 것도 같고... ㅎ 곤룡포가 빨간색이니 빨간색이 왕비였을 것도 같고... 으음.. 황색 곤룡포는 고종이 황제를 칭하고 나서나 입었으니 저 노랑색은 순정효황후 때나 입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요 장면 설명할 때 사진 찍느라고 제대로 해설을 못 들었다. ㅠ.ㅠ 기억나는 건 '원삼'의 깃 부분이 겹치지 않고 둥글게 마주치도록 되어 있어서 원삼이라는 듯. 웬만한 저고리는 다 깃이 겹쳐지지만 예복 중에선 저렇게 깃이 안 겹쳐지고 둥글게 맞섶으로 처리된 게 많다는 것 같음. 하여간 원삼은 앞 자락이 짧고 뒷자락이 길다! ^^
그밖에 왕비가 출산을 할 때 이부자리를 어떻게 겹겹이 깔고 배치했는지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지만 일단 원자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나자마자 '군자남면-군자는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나라를 다스린다'의 원칙에 맞도록 왕비는 남쪽에 머리를 두고 누웠다.. ㅋㅋ) 출산 후 태는 어떻게 보관하는지, 산후 구완은 어떻게 하는지 별별 게 다 기록으로 남아있고 궁중문학이랄지 왕실 여인들의 호방하거나 애틋한 필체와 글씨도 볼 수 있다. 혜경궁 홍씨와 명성황후 글씨에 새삼 깜놀. 명필이더라...
왕실잔치를 그린 병풍 그림도 미국에서 원본을 빌려와 전시하고 있는데 아오 섬세하여라... 흐릿하게 사진으로만 뽑아가지고 구경하다가 실물을 알현하니 한참을 감탄하며 봤다. 대충 휘리릭 둘러본 거라 한번 더 꼼꼼히 봐야지 싶으나 과연... 고궁박물관은 무료전시 치고 매번 훌륭한 기획을 하는 듯! 10주년 기념전시라 좀 더 신경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3만8천원인가 하는 전시도록도 탐난다.
요샌 그림을 별로 안 그린다는 지우. 아주 가끔씩만 기발한 착상과 솜씨를 보여주곤 하는데, 새해 들어선 자기네 식구들을 띠 동물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어찌나 디테일한지... ㅋㅋㅋ
2015년 1월 3일 지우 10세 (3월에 3학년됨^^)
주말에도 노상 출근해 애들과 얼굴 마주칠 일 드물다는 돼지띠 아빠는 일벌레 돼지란다. 워낙 바빠서 가방 열린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모습이라고. 말띠 형아는 공부벌레의 이미지. 너무 열심히 공부하느라 눈에 핏발이 섰다. ㅋ 토끼띠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트레드밀을 걷고있다. 요새 특히 운동에 힘쓰고 있다나. 마지막으로 개띠 본인은 침대에 드러누워 빈둥거린다. 야 조용히 해... 라면서 ㅋㅋㅋ
어제 가보니 그림 옆에 성격과 특징도 적어놨던데 화가께서 자기 항목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설명해놓았다. 평소 담날이 시험인지 아닌지 통 관심없이 제 맘대로 사시는 편이라고... ㅋㅋ
양띠 고모 그림도 좀 그려주십사 부탁했더니 포복절도할 작품을 선사해주었다. ^^;; 2015년 1월 3일 지우 10세
그림 왼쪽의 양은 고모와 동갑이신 이모 양의 모습. 치킨과 피자를 비롯한 온갖 음식들을 차례로 비워 앞쪽에 빈접시를 쌓아놓고 계시다. 내가 알기론 키도 크고 날씬한 분인데 저런 탐식양으로 그려내다니 ㅎㅎㅎㅎㅎ
오른쪽 고모 양의 모습에서 북실북실 검은 양털과 함께 주의 깊게 봐야할 건 개구진 표정으로 양팔에 매달려 양을 괴롭히고 있는 말과 호랑이다. 그들은 바로 말띠 지@이형과 호랑이띠 정O이 누나! 지우는 저 두 남매가 평소 얼마나 고모를 못살게 구는지 안 봐도 다 알고 있었던 것! (하긴 지난번 제삿날 지우가 홀로 남아 자고가게 되자, 지@이 형아는 지우에게 '잠 안자고 고모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죄다 전수해주고 갔고, 함께 남았던 정O누나의 만행?을 다음날 아침 지우가 일부 목격하긴했다;;)
양팔에 두놈을 매달고 ㅠㅠ 길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 팔 모양은 설마 하트인가? 너무 사실적이고 웃겨서 아주 배꼽을 잡았다. ㅎㅎㅎㅎ
어린 화가는 최근 고흐도 싫어졌고 서양 화가들의 그림이 시큰둥해진 반면 우리 옛그림이 좋아졌단다. 특히 김홍도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어제는 간만에 고모랑 같이 김홍도 그림 따라그리기를 시도했다. 지우가 선택한 그림은 바로 <씨름>.
고모는 <담배 썰기>라는 그림을 선택해서 (인물도 적고 비교적 단순하니깐 ^^;) 후다닥 대충 그리고 말았으나, 지우 화가께선 뺨과 귀가 빨개지도록 심혈을 기울여 1시간여를 그리고도 어제 주인공 1명만을 그린 뒤, 인라인을 타러 나가자고 했었는데 오늘 나머지 주인공 1명을 마저 그렸단다. 카톡으로 공수받은 모사그림 전격 공개. ^^;
힘을 잔뜩 주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과 팔다리가 아주 역동적이지 않은가! (또 다시 팔불출 고모 출현;;; 양해바람) 나머지 엿장수 아이와 구경꾼들의 모습은 어떻게 탄생될지 기대가 크다. ㅎㅎㅎ
2015년 1월 24-25일. 계속 그리는 중
이 포스팅 며칠 뒤... 또 다시 카톡으로 날아온 그림 진행상황 보고...
자꾸 틀려서 엄청 힘들고 짜증났지만 잘 참고서 '겨우' 요만큼 더 그렸다는 지우 본인의 말에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씨름꾼 두 사람 외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오주석 선생의 책에 나온 대로 오른쪽 아래의 흠칫 놀라는 두 관객(이들 때문에 씨름꾼 둘이 다음 순간 넘어질 방향이 오른쪽이란다!)과 엿장수가 다음 차례였다. 오 놀라워라... 벗어놓은 갓이랑 신발.. 귀엽다 ㅎㅎ
방학 맞은 아이들 끌고 나온 학부모들로 바글거리기 전에 가봐야한다고 마음 먹었으나 어느덧 겨울방학의 피크로 치닫고 있는 즈음, 현재 하고 있거나 앞으로 예정이라는 전시 중에 좀 땡기는 것들만 목록을 정리했다. 그래야 안 잊을 확률이 좀 더 높으니까. 결국 나는 배설 및 과시형 블로거가 아닌가. 작년엔 가고픈 전시 목록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놓았었는데 (여기도 포스팅을 했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30퍼센트쯤 가보았더군. 일단 나가면 빨빨거리며 잘도 돌아다니면서, 집에 붙박이로 있다보면 게으름과 귀찮음을 떨치고 나가기가 참 어렵다.
아무튼 이미 시작한 전시도 3, 4월까지 아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초대권은 기간이 짧아서 공짜로 보려면 1월 말 안에 봐야할 전시도 있고 하여 괜히 마음만 조급하다. 이 중에서 과연 정말 가서 보게될 전시는 무엇이며, 가서 본 만큼 기대에 부응하거나 또는 실망스러운 전시는 뭐가 될까. 그런 기대감으로 또 1년을 설레며 보낸다면 참 좋으련만... 무얼 해도 시큰둥한 이 무기력감은 으휴...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 대림미술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 중앙박물관
장욱진의 그림편지 - 양주장욱진미술관 (아 ㅠ.ㅠ 이건 1월 18일에 끝난다니 못갈 확률이 더 높다;; 가을부터 별렀는데;;)
오드리 헵번 전시 - DDP (3월 8일까지)
케테 콜비츠 - 서울시립북서울 미술관(4월 19일까지)
아래는 예정 전시.
이중섭 - 갤러리 현대(1월6일-3월1일)
이쾌대 - 덕수궁 현대미술관(7월-10월)
페르난도 보테로 - 한가람미술관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 - 올림픽공원 소마 미술관(1월25일-5월10일, 14000원. 매주 금요일 야간 할인)
한국전통건축 예찬 - 리움
브레송 사진전은 내가 알기로도 벌써 세번째 전시인데, 그간 한국에 안 왔던 작품이 있다니 또 안가볼 수가.. +_+ 언뜻 보니 풍경사진이 많은 듯. 키큰 나무가 하트처럼 모여 서 있는 길을 찍은 작품 하나만 보고와도 기쁘지 않을까나.
통통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한 보테로도 한국에서 인기 많은 화가이니 또 오누만. 한가람에서 또 얼마나 입장료를 비싸게 받을까 쳇... 이중섭도 많이 본 작품들이 대부분일 거란 생각에 꼭 갈지는 모르겠으나, 한국근현대미술전에서 서너 작품만 본 적 있던 이쾌대 전시는 좀 기대된다. 내가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그림들은 딱 근대화가의 작품까지인듯. 무지한 나에게 현대미술은 넘 어려워서 원..
동시대 화가이다보니 탄생 연도가 한해 차이였고 당연히100주년 기념전도 나란히 붙어 열렸다. 덕수궁에서 하고 있는 근현대회화 100선에도 박수근 그림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지만, 위작 논란에도 휩쓸렸고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빨래터>를 비롯해서 내가 제일 탐내는 <아기 업은 소녀> 그림까지 모조리 한꺼번에 구경할 기회를 그냥 넘길 순 없지. 스케치 포함 작품 수가 120점이나 된대고, 그 중 유화만도 90여점이라 몇년전 45주기 회고전 때보다 훨씬 대규모다.
3월 16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하고, 입장료는 만원. 월요일은 당연히 휴관인줄 알았는데 전시기간 중 무휴라고 하고, 매주 수요일엔 오후 9시까지 관람가능하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수요일엔 늦게까지 열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엔 무려 '무료' 입장이라던데!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지만 한번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
가나아트센터 4층까지 전시실 네 군데를 빼곡하게 채운 박수근의 그림들은 기대대로 정겨웠고, '예쁜' 그림을 탐닉하는 나는 특히 아직 화강암의 질감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고 색채감이 살아있는 초창기의 아련한 그림들이 좋았다. 그 유명한 <빨래터>도 파스텔 톤 저고리 색깔이 예쁜 그림과 무채색 느낌만으로 처리한 작품이 2개더군.
박수근이 같은 주제로 워낙 많은 그림을 그려서 똑같은 제목이 많았다. 박수근 그림 싫어하는 한국사람은 없을 거라고들 하는데, 그 이유는 조부모나 부모의 옛 추억을 공유한 세대에 공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장 좌판에 바구니를 놓고 앉은 여인들이나 광주리를 이고 나무 아래를 걷는 모습은 어쩐지 딱 우리 할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지고, 상고머리를 한 아기 업은 소녀도 10살 차이 나는 막내 이모 업고 골목길에서 서성대는 울 엄마의 옛모습과 겹쳐지니 말이다.
[노상] 1957년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까지 여전히 쪽머리를 하고 있던 친할머니도 부산 피난시절에 아마 이 그림과 비슷한 모습으로 생선행상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아버지가 평생 등푸른 생선과 멸치 비롯해 비린 생선을 못먹게 된 것도 어쩌면 졸지에 생선장수를 나선 어머니를 마중다니며 비롯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비린내가 죽도록 싫어서 엄마의 생선광주리를 받아들면 입으로 숨을 쉬면서도, 깜깜한 길 홀로 돌아올 어머니를 매일이다시피 마중나갔다는 열두살 장남의 기특함을 할머니는 평생 나한테 자랑하셨었다.
ㅎㅎ 그건 그렇고 박수근이 주로 그린 노점상은 과일 행상과 소금장수인듯. 아무렴... 생선장수 아줌마는 저렇게 새하얀 치마를 입고 시장에 나갈 수가 없단 말이지! 울 할머니는 몸빼바지에 거무티티한 나이롱(!) 치마를 덧입었다는 것 같다. 어쩌면 <고목과 행인>에 나오는 이런 모습? ㅋ
[고목과 행인] 1960년대
김환기 100주년전에서도 브로셔가 없어서 심술을 부렸었는데, 박수근 100주년전에도 브로셔는 없었다. 무료 브로셔는 관람객들이 휙휙 가져다가 보고 금세 버리기 때문에 안만드는 게 갤러리들의 추세인가? 쳇...
어쨌거나 브로셔 고이 모셔와서 한참동안(어쩔 땐 1년 내내) 벽에 붙여두거나 세워놓고 감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찌나 서럽고 짜증나는지 원. 3만원씩하는 기념 화집을 대신 사라고 강권하는 것 같아서 계속 툴툴거렸다. 12장짜리 기념 엽서도 낱장으론 안팔아서 선뜻 사기 부담스러운 것도 불만. 몇 개만 골라서 살 수 있게 하면 좀 좋은가! 흥!
게다가 작품 설명에 죄다 작품 제목과 연도만 기록되어 있고 그림 재료에 대해선 설명이 없어, 아니 뭐 이렇게 불친절한 전시가 다 있나 구시렁거리다가 끝내 안내원에게 묻고 말았다. 왜 유화인지, 목탄인지 그런 설명은 안 적혀 있나요?
그랬더니만, 어차피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캔버스에 유화 아니면 종이에 연필 아니면 목탄인데, 워낙 오래된 그림들이라 작품별로 재료를 확실하게 기록해둔 것도 없어서 부러 적지 않았단다. 아... 박수근도 김환기 못지않게 아내와 금슬이 좋긴 했지만, 김환기의 아내 변동림(김향안)처럼 아내가 철저한 매니저 역할까지 한 건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박완서의 소설에도 등장하듯, 박수근은 생활고로 미군PX에서 초상화가로 돈을 벌었고 당연히 화구 구입에 들일 돈이 많지 않았으니 작품 사이즈도 그리 크지 않다. 딱 엽서만한 1호짜리 캔버스에 그린 그림도 여럿 본 것 같다.
[아기 업은 소녀] 캔버스에 유채, 1953년, 28x13cm
어쨌거나 이번 전시를 보면서도 작품을 딱 하나 가져갈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 쓸데없이 계속해서 고민을 했는데, "당연히 <빨래터>를 가져야지!"라고 하던 일행과 달리 나는 크기도 아담하고 정겨운 <아기 업은 소녀>로 정했다. ^^; 역시나 똑같은 제목으로 여럿이나 되는 작품 중에서 내가 좋아라 하는 <아기 업은 소녀>는 바로 이것.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전시장 밖 포토존에도 저 소녀가 (조악하나마;;) 제작되어 있었다. ㅎㅎㅎ 작품 사진은 못찍게 하니 아쉬운 대로 다른 층 포토존에 마련된 화가와 작품 형상도 찍어왔음.
화가 뒤편 벽에 걸린 그림은 [나무와 두 여인]이다
꽤 많은 작품 이외에도 그림을 팔고 사느라 주고받은 편지며 관련 기사 스크랩, 직접 그린 연하장도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 소소하게나마 구경할 수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박수근 본인 입으로도 자기 작품은 소재와 정서로 보나, 화강암의 질감으로 보나 서양화가 아니라 한국화라고 했단던데(정확한 말인지 벌써 가물가물, 암튼 뭐 이 비슷한 맥락이다;; ㅎㅎ) 그 말이 딱 맞다. 고향인 양구에 박수근 미술관이 있다니, 진품이 늘 상설 전시되고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또 박수근의 그림이 그리워지면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고 느꼈다. 전시장 곳곳에 박수근을 회고하는 박완서의 글귀가 있기도 했지만, 박수근과의 일화를 소설로 엮은 <나목>도 한번 더 읽어봐야 하려나...
찾아보니 벌써 2007년도의 일이다. 막내고모 작품 전시회에 조카들 셋과 두 올케가 합작으로 그림과 모빌을 만들어 걸었었다.
구린 휴대폰으로 찍어서 작품이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사진에서 얼핏 보이듯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매달렸던 모빌작품이 전시장 방 하나의 맨 중앙에 걸려 있었다.
전시가 끝나고 막내고모는 특별하게 나한테만 녀석들 그림을 하나씩 매달아 총 네 개의 사포 그림이 달린 모빌을 선물했다. 나는 감사히 아이들의 모빌 작품을 방문 앞에 매달고는 작업하러 드나들 때마다 쳐다보며 흐뭇해했다.
문설주에 걸어놓은 길쭉한 모빌을 지저분한 집안 풍경 없이 담는 것이 불가능해, 작품 전체 사진은 눈물을 머금고 생략. ㅋ
째뜬 지우가 그려놓은 작품 속에선 그 느낌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10월, 지우 6세 때
당시 내가 지내는 거실 공간을 거의 그대로 담아 조금씩 변형한 모습이다. 그림속 중앙의 사진 액자는 할머니와 제 아빠라는데 원래는 내가 이십대 중반에 찍은 옛날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지금은 엄마네로 옮겨놓은 소파에 엉덩이를 보이고 있는 사람이 화가 본인인 지우. 테이블에 놓은 화병과 레고 로봇도 빠뜨리지 않았다. 조카네가 놀러오면 늘 신발 십여켤레가 나란히 복작거리는 현관 묘사도 일품.
그러나 이번에 눈여겨볼 건 저게 뭔가 싶은 그림 맨 오른쪽의 모빌 형상이다. 누나가 그린 꽃과 형들이 그린 곤충모양의 사포 모빌을 제대로 표현해놓았다. ㅎㅎㅎ
아마 저 그림을 그린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지우는 왜 사포 모빌에 자기 그림은 안 매달렸는지 궁금해하더니, 너무 어려서 누나 형들이랑 같이 못 그렸다니깐 자기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옳타구나 싶어, 그럼 고모가 사포를 사놓을 테니 담에 같이 그려서 맨 끝에 지우 작품도 매달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고는 어영부영 세월이 흘러... ㅠ.ㅠ
원래 어린아이들은 중요한 약속을 절대 잊지 않는다. 어른들이나 설렁설렁 넘어갈 뿐. 얼마 전 지우는 또 다시 내게 그 약속을 상기시켰고 드디어 철물점에서 사포를 사다가 작품활동에 돌입했다.
2013년 9월, 지우 8세 (사포에 크레파스)
우툴두툴 새카만 사포에(150번 정도가 적당할 듯. 난 처음 80번 샀다가 실패하고 180번을 사왔는데... 전문가께서 좀 더 굵어야 질감표현이 더 좋다고 하시었음)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걸 어린 화가가 얼마나 신나하는지, 몇년이나 약속을 까먹었던 게 민망하고 미안했다.
처음 그린 작품은 형아들을 따라서 주로 곤충. 잠자리, 집게벌레, 지네를 그리더니만 다음엔 포도 양(?)과 바나나 상어를 형상화했고...
작품활동은 다음날로도 이어졌다며 추후 작품 사진이 내게도 날아왔다.
캬오~ 그림이 더 예뻐졌고, 나는 모빌 작품 구성 상 딱 하나만(그리고 형아들과의 형평성의 원칙에 준하여...) 골라 매달아야 할텐데 과연 어느 걸 매달아달라고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분홍색 공룡도 탐나고... 외눈박이 몬스터도 귀엽고... 우잉..
허나, 작품의 완성도는 역시나 전문가이신 막내고모께 맡겨야할 일. 추석날 올 때 낚싯줄이랑 착색제 챙겨오시라 당부했고, 작품 선정도 화가에게 맡겼다.
그리하여... 누나, 형아들의 그림과 색감이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낙점된 것은 바로 외눈박이 괴물. ^^; (너무 길쭉하기만한 지네는 모빌로 부적당하다고 퇴짜를 맞아, 결국 내 전용 책갈피로 하사받았다 캬캬)
두둥~~!
6년만에 드디어 조카 넷이 모두 합작한 모빌작품이 완성되었다. 예전 전시에 순서를 달리하여 매달았던 터라 정민이의 꽃 아래쪽에도 구멍이 나 있었는데, 요번에 그걸 활용해 매달았으니 명실공히 완성품.
계속 뱅글뱅글 돌아가는 걸 찍느라 엄청 힘들었다. 작품 다섯개(맨 위엔 정민이의 해바라기 그림--맨 꼭대기 사진에서 보이는--이 중심을 잡고 있어 여기도 큰누나&고명딸 프리미엄이 좀 있긴 하다 ㅋ)가 다 개성이 있어 새삼 볼 때마다 미소가 벌벌 흐른다.
지우 작품으로만 또 하나 완성시킨 모빌은 나중에 놀러가서 어떻게 아름답게 매달려 있나 확인할 작정이다.
나는 급식과 대체로 친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어려선 당연히 도시락 세대였고, 그 이후엔 선택의 여지가 조금은 있다 하나 단체급식과 다를 바 없는 저렴한 학생식당의 '스텐' 식판과 푸슬푸슬 찐밥과 배식대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가능하면 교문 밖 분식집에서 차라리 라면을 먹었다. 그도 아니면 하숙하는 친구의 월식 식권을 축내거나... 배식구 근처에서 풍기는 그 혐오스러운 냄새를 누군가 '잔반' 냄새라고 가르쳐주었다. 어쩔 수 없이 쌓인 음식물쓰레기의 냄새. 저렴한 밥을 먹는 대가로 반드시 본인이 큼지막한 그릇에 쓸어모아 두어야 하는 오물그릇. 방금 맛나게 먹은 음식들이라 해도 한데 뒤섞여 국물과 함께 처참하게 모여 있으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그 자태. 배식구와 퇴식구가 아무리 멀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그 잔반의 냄새가 나는 정말이지 토나오게 싫었다.
급식에 대한 인식이 완전 바닥인 나와 달리, 유치원이며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어김없이 급식에 익숙해져야 하는 요즘 아이들은 또 생각이 다르겠지 싶으면서도 여전히 염려스럽다. 누군가는 엄마들이 도시락 싸기에서 해방된 게 여성참정권만큼이나 중대한 일이라고 하고, 웬만한 학교는 부실한 엄마표 집밥보다 급식이 훨씬 더 알차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급식 담당 외식업체와 교장의 담합이나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를 공급하다 걸린 사건이 종종 있는 마당에, 애들 급식이 정말로 영양과 맛 면에서 합격점인지 어쩐지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나도 최근 다시 3500원짜리 구내식당 밥을 2주에 한번 먹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나마 식판은 아니고 큼지막한 스텐 대접을 주로 쟁반도 없이 덜렁 국그릇과 함께 들고가 먹지만 단체급식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구나 느낀다. 잔반통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중이라고 사방에 적어놓은 덕분인지 퇴식구 앞에 놓여있는 잔반통은 흔히 식당에서 뼈통으로 쓰는 작은 스텐그릇이고, 주로 국국물만 버려지는 것 같다.(아마도 자주 비우겠지;;) 언젠가 심히 배가 고팠던 내가 밥을 좀 많이 퍼서 덮밥 양념을 달라고 내밀었더니, 아주머니가 밥 많아서 남기겠다고 덜고 오라고 했다.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내가 봐도 많았다. 그대로 시도했다면 꾸역꾸역 다 먹었을지 남겼을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얼른 전기밥통에 다시 덜어냈다. 자기가 푸는 음식 양도 잘 조절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퍼준 급식밥을 말없이 다 먹어치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뜬금없이 급식과 잔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막내조카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급식 때문에 고전중이라고 들은 탓이다. 원래 좀 편식이 심하고 양도 적어 염려를 했지만, 유치원에선 그래도 잘 먹는 편이라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근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훈육방식은 유치원 선생님과는 당연히 다르고, 오십대 베테랑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 1학년 급식은 종종 '억지로 참고 빨리 먹기' 훈련인 것 같다.
집에선 밥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라고 가르치는데 아 왜!? 거기다 '국물' 문제가 또 큰 걸림돌이란다. 우리집은 특히 가계 모두 고혈압 인자가 있어서 간을 최대한 싱겁게 하는 편임에도 '국물은 다 먹지말고 남겨!'가 식탁의 모토다. 수년간 잔소리를 해댄 끝에 왕비마마는 요새 아예 국과 찌개를 젓가락으로 드실 때도 많다. 실버아카데미에서도 매번 강조한단다. 한식의 국물만 안 먹어도 나트륨 섭취량을 대거 줄일 수 있다고. 작은올케는 국을 아예 안 끓여먹을 때가 많단다. 국이 꼭 있어야 밥먹는 식구들이 아니니 상관없다.
헌데 조카의 담임선생님은 국을 국물까지 다, 남김없이 먹어야하는 걸 급식교육의 모토로 삼으신 분인가보다. 먹기 싫으니까 아이들이 국은 조금만 달라고 해도, 그걸 또 용납 안하신단다. 모든 반찬을 적당량 다 남기지 말고 먹어야한다고. 아 대체 왜!?!? -_-;; '밥먹기 속도와 국'에 대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틈 사이에서 된통 고생하는 건 물론 조카녀석이다. 먹기는 싫은데 버리진 못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 맨날 밥을 늦게 먹어서 선생님한테 미운털 박히고 혼나고... 심지어 얼마전엔 점심시간 끝나도록 식판을 못 비운 우리 조카에게 국 다 먹을 때까지는 어림도 없다며 홀로 책상에 식판을 두고 5교시를 지내게 했단다. 다른 애들 다 책 펴놓고 공부하는데 혼자 냄새나는 식판 앞에놓고 앉아있으면서 여덟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부 학교에선 환경과 아이들 편식 고치기의 일환으로 반마다 나오는 급식 잔반의 양으로 담임 선생님들 인사고과 점수를 매기는 데도 있다고 들었다. (아 정말 학교가 미쳤다;) 인사고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반이 제일 많이 남은 반 선생님은 교장한테 잔소리를 듣기도 하고... 암튼 급식 때문에 아이의 수업권을 박탈했다는 얘기를 전화통화 하다가 전해들은 나는 대번에 "그 선생 미친 거 아냐?"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의 편식을 고쳐주려는 의도도 알겠고, 음식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방침도 알겠고, 1학년이니깐 더더욱 학교 규율에 적응시키려 더 엄하게 한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밥 늦게 먹는다고 선생님이 아이를 미워(?)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얘기들 들어보니 조카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한테 한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달리기에서 무려 1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다는데, 그거야 담임의 판단력이 개입할 수 없는 분야라서 어쩔 수 없었을 거다. 그 외엔 밥 늦게 먹고 국물 안 먹고, 숫기 없어서 발표 잘 안하고, 수업중에 친구가 말시키면 대답해주다가 걸려서 수업시간 내내 팔 들고 벌 서고, 엄마가 치맛바람 일으키며 찾아다니지도 않는 조카녀석은 그냥 밉상으로 찍혔구나 싶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림' 하나는 미술학원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주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뜨르르 실력을 인정받았던 조카의 그림을 담임 선생님은 여태 단 한번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그림 잘 그렸다고 교실 뒤에 붙여놓고 상도 주었다는 아이들 작품을 가서 보고온 올케 역시 당연히 마음이 상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원하는 '얌전한' 그림이 따로 있다지만, 디테일한 스케치 묘사력과 색채감과 아이디어가 정말로 남다른(! 팔불출인 거 안다 ㅋㅋ) 그림을 몰라보다니 쳇. 아무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미술시간에 과정을 둘러보면 누가누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는지 척 대번에 알지 않을까? 특히나 칭찬과 격려가 중요한 1학년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편애의 마음이 들더라도 골고루 상을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리다 만 거 같은 그림인데도 순전히 밥 빨리 먹고 담임 말에 고분고분한 아이들이 그렸다는 이유로 잘 그렸다고 상주고 교실에 붙여놓고 그럼 안되는 거 아니냐고!! 애들 그림이 죄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뭔가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지!!
급식 문제로 여전히 선생님한테 만날 혼난다는 조카에게 얼마전엔 내가 못된 반항을 가르쳐보았다. <우리 할머니가 국 국물 먹으면 고혈압 걸린다고 먹지 말랬어요!>카드를 써보라고 한 거다. ^^;; 그럼 선생님도 좀 이해를 해주거나, 속으로 엇뜨거라 하거나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숫기 없고 선생님한테 아직은 잘보이고 싶어하는 조카는 당연히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단다. 어휴...
내가 조카였다면 급식 때문에라도 매일매일 학교 가기가 싫을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미리부터 먹기 싫은 국물 흡입할 생각에 체기가 돌지나 않을까. 조카는 원래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양이 작아서 몇 숟갈 먹고는 배부르다며 끝내는 아이다. 오죽하면 몸매가 자코메티의 조각 같을라고. 그렇게 먹고도 콩나물처럼 키는 쑥쑥 자라주니 고맙다. 하여간 학부모 면담때 급식 국물 갖고 애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선 강력하게 항의(?) 내지는 읍소라도 하겠다던 올케는 역시나 아이 맡긴 약자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왔단다. 미운털 더 박히면 어떻게 해요... 라고. 아아악~~~! 묘안도 없으면서 암튼 요즘 급식만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 여덟살 아이는 계속되는 담임과의 대립을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째뜬 보지도 못한 조카네 담임선생님을 엄청 미워하고 있다. 당신이 인정 안해도, 지우 실력은 어디 안간다규! 흥!
제목은 저 비슷한 거였는데.... ㅎㅎ
날개를 편 채 입을 떡 벌리고 벌레를 잡아먹는 부엉이를 몬스터들이 구경하며 응원하고 있는 장면이다.
조선시대 세워진 궁궐은 무려 다섯개. 5대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중에서 역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고,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사라지기 이전에도 익히 애용했던 궁궐은 창덕궁이다. 그렇다고 다섯 궁궐이 동시에 모두 사용되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법궁과 이궁, 두 개의 궁궐을 사용하는 양궐체제가 주욱~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궁궐이 여기저기 워낙 많아서 그랬는지, 원래 이름 이외에도 궁궐엔 별칭이 있었다. 경복궁은 북궐,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 경희궁은 서궐이라 불렀다고. 창덕궁과 창경궁은 지금 담장으로 나뉘어 입장료도 따로 내고 들어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성종 때 대비마마가 무려 네 분이나 계신 덕분에 창덕궁이 비좁아 왕실가족을 위하여 넓혀 지은 공간이 창경궁이므로 엄밀히는 하나의 공간이었고, 당연히 드넓은 후원도 공유했다. 지금 창경궁 입장에선 아름다운 후원이 창덕궁 쪽에서만 접근할 수 있으니 꽤나 억울하겠다.
암튼 이 '동궐'이 조선시대 왕조사의 핵심이 되는 궁궐임은 분명한듯, 경복궁의 경우 흥선대원군 복원 당시나 이전의 단면도 정도만 현존하는데 비해 창덕궁과 창경궁 권역은 <동궐도>라고 하는 엄청난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각각 하나씩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로도 지정된 귀중한 자료인데, 놀라운 것은 이 <동궐도>에 대한 역사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든 전각은 물론이고 나무 하나 꽃 하나까지(심지어 나무 위 까치집도 있음!) 세밀하게 묘사한 놀라운 기법의 정밀화를 누가 왜 어째서 그리게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는 '미스터리'가 또 이 동궐도의 매력이다.
어쨌거나 고려대와 동아대가 각기 갖고 있던 동궐도 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있었다. 2월말에 시작해 5월 12일까지라기에 시간 많다고 여유부리다 끝나기 며칠 전에 간신히 볼 수 있었다(그러나 두둥~ 알고보니6월 2일까지 연장 전시한다고! ㅋㅋ) 부산 동아대까지 가서 보긴 뭣해도 고려대 박물관에 가면 무료 상설전시로 언제든 구경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만, 훼손 방지를 위해 더는 전시를 안한다는 것이 문제 ㅠ.ㅠ 고려대본 16폭을 죄다 펼쳐놓고 전시했던 때를 못 본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번엔 화첩을 4개만 펼쳐놓고 나머지는 그냥 쌓아놨더군. 쳇. 빌려온 동아대본(병풍으로 만들어졌다)을 더 예우하려 했던 것일까나?
하여간 하나도 못본 것보다는 낫다고 애써 위로하며, 도화서 화원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꽤나 훌륭한 보존상태에 기뻐하며 구경했다. 궁궐 강의 들을 때 창덕궁 소장님이 그랬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백년 수령의 향나무가 태풍때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도 겪었고 계속 기울어 버팀대를 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동궐도>에도 이미 그 향나무는 지주대로 버텨놓았을 만큼 고목이었다고.
그래서 <동궐도>는 단순히 역사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건축학과 조경학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자료란다. 다른 화원이 그려서 그랬겠지만, 고려대본과 동아대본이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 ^^;; 우진각 지붕인 돈화문(광해군 때 중건 이후엔 한번도 소실된 적 없다는데;;)을 팔작지붕으로 그려놓은 것도 미스터리란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도 두 그림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컴퓨터 영상이 계속 돌아간다. 극사실화를 추구하더라도 계단 모양이나 대문의 빗살, 나무와 까치집의 크기 같은 건 화원마다 다르게 그렸을 수도 있겠으나, 선정전 잡상이 고려대본엔 있고, 동아대본엔 없다는 것도 참 재미있다. 현재 창덕궁 선정전에도 잡상이 없다는데... 어느 쪽이 맞을까나.
열여섯 폭 비단에 그린 고품격 채색화인 <동궐도>는 분명 당시에도 야심찬 기획이었을 텐데, 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고려대본에 '인(人)이라고 적혀 '천/지/인' 세가지 본이 그려졌음을 알수 있다는데, 두 개만 전해지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 그나마 동아대본은 누군가 화첩을 아예 중간에 병풍으로 만들어 버렸고, '천'과 '지' 어느 판본인지 알 수도 없다. 세번째 지도가 더 있었다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셋을 비교해보는 묘미가 더 컸을 텐데...
지도 자체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동궐도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목조건축이라 수없이 화재 소실과 중건을 겪은 궁궐 전각에 대한 기록이 소상하기 때문이다. 창덕궁에서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공간인 '연경당'은 1828년 순조 때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는 동안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려고 지은 건물이란다. 그런데 <동궐도>에 이미 연경당이 보인다. 그밖에 창경궁의 전각과 빈터 등을 고려할 때 동궐도는 1828년에서 30년 사이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당시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이므로 효명세자가 도화서에 명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란다.
효명세자가 누군가. 정조의 손자로, 창덕궁 후원입구에 한칸 반짜리 소박한 북향 전각 기오헌을 지어놓고 언덕 너머 규장각에서 책을 날라다가 밤낮으로 '열공'하면서 할아버지 정조대왕의 뒤를 이으려고 했던 준비된 인재 아닌가. 그래서 순조가 일찌감치 대리청정을 시켰을 테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효명세자는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요절. ㅠ.ㅠ 정조가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고 괜한 가능성을 점쳐보며 한탄하듯,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는 소현세자와 함께 효명세자 역시 요절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명운을 바꾸어놓았을 인물로 종종 손꼽히는 인물인데 참 아쉽다. 째뜬 그나마 귀중한 유산 <동궐도>를 남겼으니, 감사할 따름.
국보급 유물의 전시라서 당연히 동궐도 진본의 촬영은 불가능했다. 대신 복사본을 밖에 걸어뒀던데 이왕 복사본을 만들려면 좀 제대로 또렷하게 인쇄를 하든지! 진품의 위용을 흐리지 않기 위함인지 복사본 지도는 흐리멍텅, 선이며 채색이 몹시 마음에 안들었다. 쳇;;; (그래도 찍어왔으면서 ㅋ)
가로 5.76미터 세로 2.73미터의 엄청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궁궐 안엔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원칙이 상당히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을 뜻하는 네모 안에 나무 목(木)을 넣으면 빈곤할 곤(困)자가 되기 때문에 궁궐 담장 안엔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경학에서 귀중한 자료로 사용할 만큼 동궐도엔 수종도 다양한 나무들이 엄청 많다!
복사본을 그나마도 흔들어 찍어온 위 사진으로 동궐도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엔 역시나 역부족. 부분부분 세밀화를 보아야 느낌이 전달되므로, 문화재청 자료 자신 몇장 퍼왔다. ^^;; (그나마 화질이 좋아 퍼오긴 했으나, 실제 그림보다는 전체적으로 너무 노란 기운이 강하다)
팔작지붕의 미스터리를 갖춘 돈화문 부분. 문 앞으로 길게 뻗은 월대 앞 ㅈㅈ 표시는 궁궐출입자들이 모두 가마와 말에서 내려야한다는 하마비(그 앞에 ㄴ자로 생긴 돌의 이름)를 나타내는 거라고 들었다.
부용지에 배를 띄워놓은 모습도 보이는 주합루 앞과 그 너머 연경당의 모습. 조감도를 그릴 만큼 높은 곳에 올라가 그릴 수 없었으니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겠고, 당연히 실제 거리나 원근법과는 좀 맞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5월에 그린 그림인 듯. 꽃나무 색깔이 아련하다. 저거 앵두나무일까? +_+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의 특색이 두드러져 보이는 부분. 현재 창덕궁에서 청기와가 남아있는 전각은 선정전이 유일한데, 이 그림엔 대조전과 복도각으로 이어진 경훈각(그림 맨 꼭대기 건물)도 청기와다. 청기와는 청나라에서 수입하는 회회청으로 구워야해서 돈이 많이 들었다던데.... 아우.. 그림이 정말 정교하지 않은가! 깃발까지 날리고 있다. 전각마다 다 이름이 적혀있고, 편액 글씨까지 섬세하게 다 보이는데, 내가 무식하여 한자를 다 못읽는 것이 아쉬웠다. -_-;
안내문엔 하루에 몇번 로봇이 하는 전시 설명과 해설사 설명이 있다던데, 대학원생인 듯한 해설사 설명을 조금 듣다가 관뒀다. 완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느낌으로 설렁설렁... 아무리 봐도 해설사란 남들이 뭐라든 자기만의 열정이 샘솟아야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 <하하하>에서 문소리가 열연했던 왕성옥 정도는 되어야... 끙.
3월 중엔 어쩔 수 없이 슬슬 일을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월엔 그야말로 참 열심히 놀고먹었다. 머릿속도 좀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전시는 세 개나 봤잖니. ^^; 처음엔 다 따로따로 포스팅할 작정이었으나 벌써 다 기억이 가물거려 대강 기록만 해둘 요량이다. 안 그러면 몇달 지난 뒤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버릴 지도 모르니까.
1. 전시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4월 21일까지 전시중이다. 전시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흥미도 없었으나, 덕수궁 갔던 날 순전히 '프라하'에 끌려서 들어갔었다.
1905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체코의 근현대 미술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덕수궁미술관을 종종 가면서도 항상 내가 까먹는 사실이 있다. 덕수궁 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의 덕수궁 분점이라 언제든 근현대 예술작품만 전시한다는 점! 그런데 나는 특히 현대미술의 초현실주의적인 추상화를 별로 안좋아한다는 점! ㅋㅋㅋ
단순한 나의 시각에 '예뻐' 보이는 그림들도 더러 있었지만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제목과도 매치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어서 그런 그림들은 설렁설렁 보는둥마는둥 지나쳐야 했다.
운명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하건만, 가끔 살다보면 기막힌 우연의 일치랄까 무언가 나의 삶이 예정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20세기 초 일어났던 '미래파'니 '미래주의 선언'이니 '마리네티'니 하는 이야기에 골머리를 싸매고 좀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떡하니 어느 전시실 벽에 적힌 작품설명에서 같은 이야기를 맞닥뜨렸다. +_+ 신기하기도 하여라.
체코 역사와 화가들에 대해서 하나도 아는 게 없어서 팸플릿을 열심히 읽어보아도 여전히 무식이 통통 튕기는 느낌이었지만, 체코와 프라하에 대한 선망과 허영심으로 택한 전시에서 더 무엇을 바라리. 같은 시기 우리나라 화가들의 작품을 작년에 이어 전시실 한 군데에서 계속 전시하고 있었기에 비교해보는 묘미도 있었다. 특히 저 그림을 그린 쿠프카의 자화상은 구본웅이 드린 이상 초상화랑 분위기가 몹시 흡사했다. 굵은 유화붓 터치며 파이프 물고 있는 것까지도.
공연히 마음에 들었던 그림 하나 더...
[1922년의 레트나] 블라스타 보스트르제발로바피쉐르바, 1926년
뒷짐진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정겹다. 샤갈의 템페라 벽화 느낌도 나고.. +_+
<옛사람의 삶과 풍류>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
단원 김홍도 [운우도첩] 가운데...
갤러리현대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2월 24일까지 했던 전시라서 끝나기 전에 얼른 보러가야했다.
단원, 혜원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조선풍속화도 풍속화려니와 '화끈한' 19금 춘화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지 않은가. ㅎㅎㅎ
생각만큼 작품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변변한 팸플릿도 없는 게 내심 불만이었지만, 갤러리 2층에 따로 모아둔 춘화는 노골적인 정도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라 좀 놀라웠다. 단원과 혜원의 춘화첩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라는 듯한데, 얼굴 뜨끈해질 만큼 노골적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성까지 잃지 않다니 역시 대가는 다르단 느낌.
입장료 5천원에 함께 가 볼 수 있었던 두가헌 갤러리에선 구한말 외국인들에게 절찬리에 공급되었다는 김준근의 풍속화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단원, 혜원의 선과 섬세한 인체묘사에 높아진 눈으로 접하니 그림의 수준이 그리 드높다 할 수 없었지만 현란한 색채며, 당시 한글 표기법, 재미난 세시풍속이 흥미로웠다.
<한옥이 돌아왔다>에도 잠시 소개된 두가헌 한옥을 구경할 기회도 반가웠다. 안에 들어가 차 한잔 하고팠으나 시간에 쫓겨 그냥 나온 것이 한이라면 한.
그래도 두가헌 마당 한 귀퉁이 의자에서 다리는 좀 쉬다 나왔다. 저렇게 나무를 심고도 마당에 나무데크를 깔면 흙먼지 풀풀나는 걸 방지할 수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한옥의 목재와 유리는 서로 참 안어울리는 재료라던데, 유리에 습기가 맺혀 나무 썪기 딱 좋다던데, 몇년째 또 이렇게 건재하고 있는 걸 보면 건축전문가들이 다 방법을 마련해놓았나보다. 쓸데없는 염려 말고 한옥에 살고프면 그저 땅과 돈만 준비하면 되겠다. ㅠ.ㅠ
<팀 버튼>전
겨울방학 내내 사람들로 바글거린다는 얘기를 듣고 최대한 일정을 늦추어 2월말에 갔는데도 인파가 대단했다.
팀 버튼 영화개봉하면 언제 시작했다 끝났는지도 알 수 없게 슬그머니 내려가는데, 왜 이런 전시는 이토록 인기가 높은걸까? ㅋㅋ
4월 14일까지 계속 전시 중이니, 요새도 사람이 그리 많으려나 궁금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입장료는 12000원.
어린애들 데리고 온 엄마들이 특히 많아보였다. 아오... 애들은 막 싫고 무서워하는데 엄마들은 참신하고 재미나지 않느냐며 막 들이대고... 참신한 발상에 목매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가엾을 지경이었다. 관람객이 많으면 난 전시를 보기도 전에 지치는 느낌이다. 이날도 신기해서 좋아라 구경을 다니긴 했지만 운동화를 신고도 왜 그리 허리 다리가 아픈지... 나중엔 머리도 어질어질.
그치만 팀 버튼은 참... 대단한 사람이 틀림없다. 선 몇 개로 어떻게 그런 그림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지! 헬레나 본 햄 카터를 배우로서도 무척 좋아하지만, 팀 버튼 영화에 또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고(물론 조니 뎁은 예외 ^^;)! 심지어 둘이 부부라니... 헐...
전시장 입구에 세워놓은 대형 조형물도 재미났지만 창문에 유령신부 캐릭터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꾸며놓은 거 기발하다~ 하하하.
2. 공연/영화
<오페라의 유령>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황홀한 가면무도회 장면 ^^;;
<오페라의 유령> 탄생 25주년 월드투어 내한공연이 잡혔다더니만, 예매도 전쟁이었다. 이런 공연은 그저 티켓 오픈일에 경건히 기다렸다가 광클릭을 해야지, 안 그랬다간 좋은자리에서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하는 지경이 되었다. 허 그것 참... 암튼 1월초에 알아보니 VIP석과 R석은 3월까지 전공연 모두 한두 자리만 남아있을 정도. 9만원짜리 S석도 감지덕지로 여기며 2월말 날짜로 예매를 해놓고 설레며 기다렸다.
이번 공연에선 샹들리에가 그야말로 '뚝' 떨어져줄 것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샹들리에는 그리 극적으로 떨어져주지 않았지만 (무대장치 기술도 죄다 가져올텐데 왜 한국 공연에선 매번 기함할 정도로 샹들리에가 뚝 떨어지지 못하고 살살 줄을 타는지 그게 정말 궁금하다!) 공연은 역시나 황홀했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남아 앉아 있다가 팬텀 역할 배우한테 사인도 받고 싶었는데... ㅎㅎㅎ 파트너가 귀가를 서둘러 포기했다. 삼성 블루스퀘어 공연장은 처음 가보았으나, 2층에 앉아서 그런지 음향이 그닥 흡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감동받았으면 된거지만...
25주년 기념투어이기 때문일까. 공연장 밖에 의상과 소품들이 유리상자 안에 진열되어 있어 눈요기하기에도 좋았다. 마치 뮤지컬 초반부 경매장을 살짝 엿보는 느낌도 들고... 간만에 귀호강 눈호강 잘 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베를린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로 상영해주는 데가 점점 드물어져 어렵사리 먼데까지 가서 보았는데, 평일 오전부터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모르고 예매 안하고 갔다가 맨앞줄에서 목을 꺽으며 봐야했다. ^^;
그런데 일신의 불편함을 잊을 정도로 홀딱 빠져들었으니...
보고나자마자는 무신론자로서 새삼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았으나 벌써 다 까먹고말았다. 군데군데 영상이 정말 아름다워서 이안 감독이 정말 대단한사람이구나 싶었던 것과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었다는 충동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베를린>은 별 기대없이, 나 류승완 감독 영화 별로 안좋아하는데.. 궁시렁거리며 들어갔다가 뜻밖에 재미있게 보았다. 연기야 역시나 하정우가 갑이었지만, 한석규의 초라한 모습과 생활연기도 좋았다. 액션영화도 너무 힘들어가지 않게(여전히 내겐 좀 과하고 길다 싶은 액션 장면 있긴 했다만;;) 폼나게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3. 2월에 읽은책
우리궁궐 이야기, 홍순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
고양이눈 1, 마거릿 애트우드
<그레이스>는 잠을 미뤄가며 단숨에 미친듯이 읽었고 <고양이눈>은 좀 괴로워하느라 천천히 읽었다. 올해는 마거릿 애트우드를 좀더 찾아 읽기로 결심했고, 초상 시리즈(?)로 <여인의 초상>도 읽고 싶어졌다. 역시 읽는 맛은 소설이야, 라며 읽다 만 과학책들은 올스톱. ㅎㅎㅎ
4. 식탐의 흔적
밖에 나가서 조미료를 많이 넣어 만든 음식을 먹고 들어오면 어김없이 탈수현상에 시달린다. 물을 두 주전자쯤 마셔주어야 갈증이 가시는 듯한... 그래도 내가 안 만든 요리는 죄다 맛있다, 싶은 심정으로 나가먹고 살긴 한다. 그러다 담백한 음식점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동탄 <담숙>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한식당이라며 친구가 데려가주었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집에서 만든 것처럼 담백한 음식들은 종종 '맛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바깥 음식이야 맵고 간간하고 자극적이어야만 맛집으로 소문나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지 않나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소신있게 주인장 부부가 개발하고 만든 음식들로 정갈하게 한정식을 내오는 집이다. 아쉽게도 내가 정신없이 차에 전화기를 두고 내린 바람에, 사진은 친구한테 전달받은 이거 딱 한장이다. +_+
죽이랑 블루베리 소스를 뿌린 샐러드, 낚지볶음, 두부버섯샐러드 등등... 기억도 잘 나질 않는 음식들이 죄다 맛있었다. 사진 속 음식은 표고 탕수와 섭산적(아마도;;).
쫄깃한 표고탕수가 엄청 맛있어서, 상대적으로 파채 싸먹는 고기요리는 그저그렇게 느껴졌다. 담에 또 가게 되면 코스별로 죄다 사진 찍어다가 집에서 시도해봐야(ㅠ.ㅠ 이 투철한 밥순이 정신;;)겠다.
광화문 <어반가든>
먹기에 바빠 사진은 없다. 작년 겨울 모임때 갔다가 예약 안한 사람은 2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쫓겨나오며 언제고 한번 먹어보리 결심했었는데, 팀버튼 전시회 본 날 문득 떠올라 찾아갔다. 덕수궁 정동길에서 거의 프란치스코 수도회까지 올라가 왼편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다. 여름엔 온갖 화초로 유명하다는 얘기 들었는데, 이날은 꽃이며 화분 쳐다볼 여유도 없었던 거 같다. 런치세트가 17000원 정도라서, 싸지도 않은데 맛없으면 어쩌나 일행들 마음에 안들면 어쩌나 바짝 쫄았었다.
샐러드의 신선도나 수프는 마음에 들었는데, 파스타 맛은 딱히 엄청 맛있다고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또 요즘 집에서 파스타 요리에 심취하고 있어놔서;;; ㅋㅋㅋ
마지막 커피까지 주는 건 좋았는데, 종이컵에 주는 건 마이너스, 커피 맛도 그저그랬다. 커피까지 머그잔이나 찻잔에 주고 커피맛도 훌륭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쳇. 다음엔 정동극장 안에 있는 파스타집엘 가보고 비교해보리라
올림픽수제비 굴국밥 따라하기
이제는 나도 굴국밥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게 되었다! 하핫.
지난번 국물 낼 때 멸치까지 넣었더니 오히려 과잉이었던 듯.
무와 다시마로만 깔끔하게 낸 국물에 소금간을 한 뒤
파, 마늘, 생굴, 매운고추, 부추를 넣고 포르르 한소끔만 끓여 밥에 부어 먹으면 된다.
몇번 해먹어보니, 큼지막한 양식굴보다는 확실히 자잘한 자연산 굴로 끓였을 때 바다향이 더 싱그럽게 난다.
뚝배기에 담아내놓았을 땐, 정말로 올림픽수제비에서 맛본 거랑 비주얼까지 똑같았다. ^^;
노로바이러스의 기승으로 생굴 먹기는 좀 걱정스러우니 날 더 더워지기 전에 몇번 더 해먹어야지. 냠냠냠.
보름 나물
올해는 오곡밥과 나물을 볶아야 하는 대보름 전날이 하필 사촌 동생 결혼식이었다.
강남에서 무려 2시간도 넘게 걸려 운전하고 집에 오느라 녹초가 된 몸을 다시 꾸역꾸역 움직이며, 좀 서럽기도 했다.
안먹고 살면 될텐데, 왜 이렇게 식탐에 집착하느냐고!! ㅠ.ㅠ
하지만 이번엔 특히나 엄마가 애호박과 가지를 손수 말려놓으셨던 걸 물에 불려놓고 나갔기때문에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지쳐서 홀수로 못만들겠으니, 네 가지 나물로 끝내자고 왕비마마와 합의를 보았다.
오곡밥이 아니라 10곡밥은 될 듯한 찰밥에다 저 나물 반찬으로 김쌈을 해먹는데, 어우... 맛있어서 또 짜증이 났다. (아니 왜?) 사먹는 게 더 맛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떡집에서 오곡밥이랑 나물까지 다 사왔어도 맛있게만 먹었다던데 말이다. 으휴.
만수무강 약식
설날에 오지랍넓게도 약식을 또 만들었었다.
다른 먹을거리가 많아 그날 약식이 절반도 더 남았길래 작은댁이랑 동생네, 사촌동생들까지 죄다 싸보냈더니 왕비마마가 퍽이나 섭섭해하셨다. 당신은 약식을 딱 한입밖에 못 드셨다나 뭐라나. 나 원 참...
(그러나 나중에 올케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 한입만이 아니었다 ㅋㅋㅋ)
어쨌거나 생신도 가까워오겠다, 그렇다면 원없이 약식을 한판 다 드시게 해드리겠다며 호기롭게 약식찌기에 돌입했다. 당뇨환자용으로 설탕과 찹쌀은 양을 좀 줄이고 견과류는 더욱 풍성하게 잔뜩 넣어서...
그리하여 탄생한 만수무강 약식이다. 정말로 난 한두 조각이나 먹었나, 약식 한솥을 사흘 안에 홀로 다 드시는 바람에 무서워서 당분간은 혈당 체크도 하지 못했다. -_-;
그러고 보니 정말 2월 한달은 죽어라 먹는 것에만 탐닉했던 것 같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가 우리 두 모녀의 좌우명. ㅎㅎㅎ
보너스로 요즘 점심 메뉴로 종종 등장하는 입때표 해산물 파스타의 위용을 공개한다. 두둥~ ㅋㅋㅋ
심지어 파스타 접시도 새로 장만했다는.... ;-p 매번 몸 생각하며 건더기를 하도 많이 넣어 담고 나면 면발이 잘 안보인다. ㅋㅋ 내 그릇에 대충 담느라 가장자리에 척 걸쳐진 면발을 숨기려는 시도로 찍었으나 실패. 다 보인다!
난 무대체질도 아닌데, 내 평생 외발자전거는 타본 적도 없는데, 그림 속의 나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저글링까지 하고 있다. 운동신경 젬병인 고모를 저런 모습으로 담아준 것이 그저 고맙고, 녀석의 뛰어난 상상력을 신기해하며 줄곧 냉장고에 붙여두고 흐뭇해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 문득 쳐다보며 어린 조카의 혜안(?)이 참 놀랍구나 싶어졌다. 잘 타지도 못하는 외발자전거에 올라 공을 세개나 허공으로 던지고 받느라 아등바등...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언제 넘어질지 위태롭기만 하다. 딱 요즘 내 모습이 아닌가. 이 다음 장면에서 난 분명 저 높은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자빠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거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당분간 아등바등 몸부림은 그만둬야겠다. 철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