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순이로 살더라도 몹시 수고롭고 골치 아픈 김치는 웬만하면 담가먹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결심이나, 예외는 간혹 있다. 지난번엔 식탐 열망을 이기지 못해 오이김치를 두번이나 만들어 먹었고(첫번째가 너무도 맛있어 열흘쯤 뒤엔 더 다량의 오이를 사다가 만들었다 실패하는 바람에 다시는 시도 안하고 있기는 하다;), 제사나 차례를 앞두고 나박김치는 내가 담그지 않으면 안되는 품목이 되고 말았다. 설날 때는 수정과라도 올리니까 제기 중에서 국물 담는 그릇을 하나라도 쓸 수 있는데, 여름엔 나박김치가 없으면 네 개나 되는 우묵한 제기를 전혀 쓰지 못하는 게 좀 민망하다. 누구보다도 나박김치를 좋아하셨던 할머니 제사땐 꼭 올리려고 했었는데 여름이었던 할머니 제사를 겨울 할아버지 제사로 합치고 보니, 이젠 제사 핑계로 담근 나박김치에 국수를 말아먹으려면 아버지 기일과 추석에 맞춰 담그는 수밖에 없다.
대충요리의 선구자로서 대충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아내 그간 어깨 너머로 배운 아이디어까지 더하여 대강 뚝딱 만들고 나면 이상하게도 첫 솜씨가 제일 훌륭하다. 나박김치도 몇해 전 처음 만들었을 때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통의 나박김치보다는 무와 배추를 조금 작게 썰어, 엄마에겐 소꿉장난 하느냐는 일갈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할머니표 나박김치인 것을 어쩌랴. 말년에 이가 부실해지신 데다 허리까지 굽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이 쉽지 않았던 할머니는 나박김치의 무와 배추도 앙증맞을 만큼 작게 썰어 만드셨고, 매 끼니마다 나박김치를 한 탕기씩 해치우셨다. 그런데 나도 그 편이 먹기도 좋고 보기에도 예쁘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으니 그대로 따랐던 거다. 또 다시 일년만에 나박김치를 담그느라 어제 몇시간 서 있었더니 종아리에 알이 배겼는데, 깜박깜박하는 나의 기억력으로 볼 때 어딘가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재료를 또 하나 빠뜨릴 것 같아 기록해두기로 했다. 어제는 글쎄 장 볼 때 배를 빠뜨리는 바람에 다 저녁때 나가서 사와야 했다. 나박김치엔 뭐니뭐니 해도 배를 넣어야 국물이 시원해지는 법이거늘.
재료: 무 반 개, 쌈용 배추 한 통, 큼지막한 배 한 개, 쪽파 한 움큼, 미나리 한 움큼, 통마늘, 홍고추, 고춧가루, 천일염, 찹쌀가루, 흰설탕, 멸치액젓 한숟가락. (김치냉장고용 김치통으로 딱 하나 분량임)
1. 찹쌀가루를 두 숟가락 정도 물에 개어 묽게 찹쌀풀을 쑤어 놓는다.
2. 무를 1.2~1.5cm 두께로 토막내서 정사각형 모양으로 납작납작 잘라 소금을 뿌려 절인다.
3. 나박김치에 들어가는 배추는 노란 속잎만 넣는 게 맛있으므로 나는 아예 쌈용 배추 속고갱이만 사서 넣는다. 배추 역시 무와 비슷한 크기로 잘라 슬쩍 소금에 절인다.
4. 쪽파와 미나리를 다음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적당한 길이로(나는 2.5cm)로 잘라둔다.
5. 홍고추는 절반 갈라 씨를 거의 다 빼낸다.
6. 절인 무와 배추를 물에 씻어 건져 물기를 뺀다.
7. 배 껍질을 깎아 무와 같은 크기로, 대신에 좀 더 도톰하게 잘라놓는다.
8. 통마늘을 저며 채썰어놓는다.
9. 찹쌀풀에 소금, 멸치액젓, 설탕, 생수 약간을 넣어 잘 저어 풀어놓는다.
10. 김치통에 미나리를 뺀 모든 재료를 다 넣고 양념을 부은 다음 생수를 넉넉히 부어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다. 설탕을 아예 넣지 않는 집도 있다지만 나는 역시나 할머니 식으로 백설탕을 약간 넣는다. 그래야 나중에 소면 삶아 말아먹을 때도 환상적인 맛이 난다. ^^;
11. 고춧가루를 원래 베 보자기에 싸서 국물에 담가 지저분해지지 않게 발그레한 색을 거라는데 나는 나중에 베 보자기 빠는 게 귀찮아서 -_-; 멸치 다시 국물내는 거름망에 고춧가루를 넣고 그걸 김치통에 담근다. ^^v 가는 고춧가루는 빠져나가지만 뭐 그래도 거의 똑같은 효과가 나므로 흡족하다.
12. 날씨에 따라서 하루나 이틀 정도 상온에서 익힌 다음에 미나리는 맨 마지막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미나리를 처음부터 넣으면 뭔가 맛이 없어지고 빨리 신다고 할머니한테 들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나박김치가 맛있을지 궁금하다.
아직 미나리는 넣기 전이다. 새콤하니 익은 냄새가 나긴 하는데 좀 덜 익었다. 오늘 밤중이나 내일 새벽에 냉장고에 넣으면 될듯.
음식으로 환기하는 기억에 대해서라면 프루스트가 제일 유명하겠지만, 프루스트가 처음 발견 한 건 아니었을 것 같다. 유독 식탐이 강하지 않은 사람도 음식과 연결되어 추억으로 남는 게 어디 드문 일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들에게 옥수수와 동격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옥수수 노점상은 절대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먹어야 직성이 풀리는데다가, 굳이 먼지 풀풀 나는 길거리에서 와구와구 뜯어먹으며 행복해했기 때문이라나.
계절따라 제철음식을 찾아먹는 일도 원래는 가난과 필요가 낳은 습관이겠지만, 그 습관이 반복되어 세대를 거듭하다 결국 전통이자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봄이 되면 진달래 따다 부쳐먹던 화전이랑 쑥버무리 같은 게 관련 인물들과 같이 떠오르는 식이겠지. 음식이 그리운지 사람이 그리운지 콕 찝어낼 순 없어도 그냥 그 음식을 먹으면 마음 한 구석이 달래지는 기운 같은 게 있다. 그걸 못해 결핍되면 못내 아쉽고 공허해질 테고.
얼마전부터 자꾸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었다. 그냥 흔한 오이소박이가 아니라 우리 외할머니표 오이소박이. 보통 오이소박이라고 하면 오이를 서너토막 잘라 한쪽에 칼집을 내 부추양념 소를 넣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외할머니표 오이소박이는 달랐다. 부추는 지저분해진다고 넣지 않는다. 대신에 조선오이 끝동 부분을 손가락 두어마디 쯤 잘라내 채를 썰어 양념에 버무려 소를 만든다. 오이는 통째로 길게 가운데 칼집을 넣어 소를 넣는둥마는둥하게 넣는다. 어려서 엄마가 만들어준 오이소박이의 경우 부추 소는 죄다 긁어내고 오이만 먹었는데, 할머니표 오이소박이는 양념을 긁어내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전국방방곡곡 풍광 좋은 사찰로 성지순례와 방생 다니실 때 수십년 간 모아온, 납작하고 큼지막한 돌멩이로 눌러놓았다가 그 돌멩이째 우리집으로 날라오는 할머니표 오이소박이는 어찌나 아작아작 시원하고 깔끔하게 맛있는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말년에 꽤 오래 모시고 살며 병수발을 들었던 막내이모가 젓갈 없이 소금으로만 깔끔하고 슴슴하게 맛을 내는 할머니표 김치는 그럭저럭 전승하는데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이소박이만은 아무리 애써봐도 도저히 그 맛을 낼 수가 없다고 손을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입퇴원을 반복하던 마지막 무렵에도 손수 오이소박이를 담가 자식들 집집마다 나눠주셨다. 울 엄마는 칠순에도 이미 입맛이 무뎌져 간을 잘 모르는데 할머니는 여든다섯에도 어떻게 한결같은 김치맛을 내셨는지 불가사의하다. 이모는 할머니 때랑 똑같이 가락동 시장에 가서 늘 사던 그 집에서 오이를 사다가 똑같이 한다고 해봐도 맛이 나질 않는다며 속상해하신다. 그래봐야 어쩌겠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함께 사라져버린 할머니의 그리운 손맛 여러가지 가운데 하나로 아쉬워할 수밖에.
토막썰기를 해서 칼집을 넣은 오이소박이도 밥상에서 잘라 먹으려면 꽤 불편한데, 통째로 길게 오이소박이를 담그면 사실 그릇에 낼 때부터 아예 잘라야 하므로 더욱 성가시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평생 그 방법을 고수하셨던 걸 보면 그래야 제맛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오이가 사시사철 장에 나오긴 하지만, 할머니가 거의 열흘 간격으로 꼭 스무개, 서른개씩만 담가 보내던 오이소박이 행렬이 시작되는 건 확실히 요맘때였던 게 틀림없다. 뜬금없이 눈앞에 할머니표 오이소박이가 어른어른거리면서 먹고 싶어진 걸 보면 말이다.
반찬코너에서 한 그릇 사다먹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고춧가루 범벅에다 내가 싫어하는 당근까지 채썰어 소를 박은 꼬라지를 보니 당최 내키질 않았다.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열정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는 결국 오이 여섯개를 사다가 직접 오이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어차피 외할머니표 오이소박이의 맛을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처음부터 먹기 좋게 오이도 조각조각 잘라 절이고 부추도 넣었다. 오이김치 요리법을 찾아 참고한 대로 멸치액젓도 넣고 매실청도 넣어(둘 다 할머니는 절대 안 넣으셨을 양념이다) 대충 버무렸다. 당연히 할머니표 오이소박이와는 아주 동떨어진 오이김치가 탄생되었다. 버무리자마자 한 보시기 담아 우적우적 밥 한그릇을 다 먹고 나니 그래도 마음 속 결핍이 어느정도 채워진 듯했다.
음력사월이 시작되면서부터 외할머니가 부지런히 오이소박이를 담가 보내신 이유는 물론 잘 알고 있다. 이가 부실한 맏사위가 배추김치보다 오이소박이를 훨씬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매운 것도 잘 먹지 못하는 아버지에겐 양념과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 말간 생김새의 오이소박이가 딱이었다. 그리고 마침 아버지의 생일은 음력 사월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돌아가신 분의 생일은 이제 제삿날이라는데 나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요맘때면 오이소박이를 먹어야 하는 습관이 밴 몸을 지니고 있으니 참 징하고 서글프다. 할머니랑 아버지가 겨우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어서 그리움 타령이냐고 타박하실 것만 같다.
간간이 일하기가 싫어지는 건 모든 노동자들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며, 또 딴짓. 화가 나서 점심을 굶은 터라 사진으로라도 요기하려는 속셈이기도 하다. 일종의 심리요법? 과연 사진을 다 올리고 나면 배가 고파지고 식욕이 돌지 궁금하다. 하여간에 시작하는 사진 대방출.
독일식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판다는 하우스 맥주 체인점 옥토버페스트에 가면 맨 먼저 사람수 대로 주는 길쭉이빵. 솔직히 하우스 맥주맛은 그리 반할 정도로 맛있지 않은데 나는 왜 이리도 바삭하고 고소하고 쫄깃한 이 빵이 좋은지, 나중엔 따로 더 시켜먹기도 한다. 하나에 5백원인가 아마 그럴 거다.
강남과 신촌점에도 가봤는데, 이 길쭉이 빵이 제일 맛있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종로점이다. 종로1가 농협 건물과 던킨 사이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 곳. 이날도 두번째 바구니 시켜놓고 신이 나서 사진을 찍은 것 같다. ㅋ
광화문 정동길에 있는 브라카의 음식들.
친구가 새로운 맛집이라고 검색해와서 가봤다. 1층엔 아바하, 지하엔 브라카. 원목가구를 진열해놓고 파는 게 특색이고, 음식 맛은 뭐 그럭저럭 먹을 만한 수준이다. 일단은 가격대가 저렴해서 큰 불만은 없었다. 대개 7, 8천원대였던 것으로 기억남. 1층엔 원목가구도 볼 게 더 많고, 좀 더 비싼 스테이크 메뉴도 있다고 하는데, 그날 우린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상황이 아니었다.
같이 주는 된장국이 너무 짜서 뜨거운 물 더 달라고 해 희석해 먹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내가 시켰던 치즈 돈까스(사진 오른쪽 아래)가 제일 맛있었음.
전체적인 인테리어 느낌은 아래와 같다. 투툼하고 투박한 원목가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딱히 갖고 싶은 가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ㅎㅎ
이 사진은 죽전 보정동 카페거리에 있는 Likeat의 디저트. 이름은 까먹었다.
그 동네 음식점이 다 터무니없이 비싸고 부가세도 별도인 데 반해 이 집이 가격대비 만족도가 가장 높다며 친구가 추천해주어 갔었는데 런치스페셜은 별로였고, 크림 파스타가 괜찮았던 것 같다. 일단은 음식값이 적절한 편이고 부가세도 포함이니까. ^^
나는 이 집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이 초콜릿 디저트에 기대를 했었는데 포크질을 하면 안에서 뜨거운 초콜릿이 막 흘러나온다는 사람들 소문에 비해선 빵도 퍽퍽하고 초콜릿 양도 적어 실망스러웠다. ㅋㅋ 그래도 커피는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함.
홍대 J's recipe의 이름 까먹은 샐러드. 점심때 파스타 시키면 그냥 주는 거였는지, 우리가 따로 시킨 거였는지 그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는 지인과 내가 이곳의 게살 크림 파스타와 고르곤졸라 파스타의 팬이라서, 그날도 먹으러 갔었으나 메뉴가 죄다 바뀌어 있었다. 주인과 주방장은 안 바뀌었다는데 어찌 그런 일이... -_-;
2층은 흡연석이긴 해도 햇살이며 전망 때문에 꼭 2층 자리를 고집하곤 했는데(담배냄새로 괴로운 적이 그간 없었다는 게 이상한가?), 그날 따라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상했다.
그날 내가 시킨 연어 펜네 어쩌구...
내가 워낙 진하고 느끼한 맛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전체적으로 묽고 성긴 느낌이었다. 다시 홍대 인근에서 맛있는 파스타집을 찾아보겠노라고 지인에게 약속했다.
당분간 J's recipe는 안녕이다.
홍대 다방(d'Avant)의 마실거리들. 위의 파스타 지인과 홍대에서 만나면 의식처럼 J's recipe에 갔다가 다방엘 가서 부른 배를 막 두들기면서라도 와플까지 와구와구 먹어주는데, 언제나 먹는 게 우선이라 와플 사진은 매번 못 찍는다. ㅎㅎㅎ
왼쪽은 내가 주로 마시는 카푸치노. 찻잔이 내 용량보다 작은 편이라 속상하지만 맛있다.
가운데는 지난 겨울 처음 시켜본 귤차. 어떻게 만들어주나 궁금해서 구경했더니 정말로 생귤을 막 짜서 즙을 내 담아주었다. 생각보다 달달하고 맛있다며 지인이 굳이 내게도 먹어보게 했다. 영혼을 달래주는 달콤함이라고 인정.
오른쪽은 쇼콜라 어쩌구 하는 다방 특유의 핫초콜릿. 진짜 초콜릿을 정말로 주전자에 녹여주면 따뜻하게 데워 뜨개질옷을 입힌 우유병에 담긴 우유로 희석해 먹는 방식이다. 너무 달아서 나는 일년에 한번 먹을까말까 하지만 그래도 동행이 먹는 걸 지켜보며 행복해하는 편.
집 김밥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면서도 귀찮아서 좀처럼 해먹지 않는 음식이 바로 잡채인데, 2월엔가 하도 먹고 싶어서 결국 손수 해먹었다. 막상 만들면서도 왜 이렇게 손 많이 가는 음식이 먹고싶어진 건지 막 짜증이 났고, 다시는 하지 말자며 증거용 사진을 찍었다.
한국 음식은 만들다가 지치고 냄새에 질려서 정작 먹을 땐 맛을 잘 모르게 되기 십상인데, 투덜투덜 씨부렁씨부렁 끝에 그릇에 담아 먹으면서도 맛있어서 울컥했다. 식충이가 따로 없네, 이러면서.
식탐인의 입장에선 하루에 맛있는 걸 가능한 한 여러번 먹으며 사는 게 행복할 것도 같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선 다 귀찮으니 하루에 한끼만, 아니 사흘에 한끼만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콩닥거리는 하루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는 몸을 위한 섭생의 의미보다 짜증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걸 어쩌랴. 요샌 머리를 심히 한쪽으로 집중해야 하는 기간인 고로 딱히 해먹을 거리들의 메뉴도 떠오르지 않아서, 장보러 갈 때 적은 목록도 노상 똑같아 매주 새로 적을 필요조차 없었다. 영양 면에서 균형잡힌 식단 따위 잊은지 오래라서 그런지 식탐모녀의 겨울 체중은 빠직빠직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 푸성귀 채소의 섭취 부족이 아닐까 싶다. 해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여기다 그간 대강 해먹은 것들 중 대강 요리로 소개하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두고, 생각난 김에 예전에 기록하던 신데렐라 키친 요리법 가운데 채소류를 퍼다 놓아 끼니 메뉴의 차별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걸핏하면 굶고 사시는 이웃들의 요리 욕구를 충동질해 보려는 바이다.
1. 냉동 코다리를 자연 해동한 뒤 코다리의 머리와 꼬리,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먹기좋은 크기로 토막낸다. 2. 코다리의 육질을 맛있게 하려면 '마사지(?)'를 해야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으므로 북북 씻으면서 한껏 주물러준다. 3. 콩나물을 원하는 식으로 다듬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나는 그냥 통째로 쓴다. 콩나물 꼬리를 언제 일일이 다 다듬고 앉았나!) 4. 양파 한두 개를 숭덩숭덩 잘라놓는다. (설탕을 넣지 않고 단맛내기용이므로 더 단 걸 원하면 많이 넣어도 무방) 5. 송송 썬 파와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고추장 한 숟갈, 멸치액젓 한 숟갈 (생선 요리엔 멸치 액젓을 넣어야 깊은 맛이 난다고 작은올케가 가르쳐줬음), 맛술 두 숟갈, 고춧가루 한 숟갈, 간장과 물 적당량(?)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6. 커다란 냄비나 깊은 프라이팬에 코다리와 양파를 앉히고 양념장을 절반만 부어 끓인다. 7. 얼추 다 익었다 싶으면 남은 양념장과 콩나물을 넣고 뒤적여 준 다음 얼른 뚜껑을 닫고 콩나물을 익힌다. 8. 콩나물이 다 익었다고 자신할 무렵 다시 뒤적여서 통깨를 뿌려 접시에 담는다.
1. 닭고기 가슴살 500g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닭고기 살에 다진 마늘 두 큰술, 후추가루, 꽃소금(또는 허브솔트)으로 밑간을 해둔다. 3. 파프리카, 양파, 표고버섯을 취향껏 자른다. 4. 식용유를 조금만 두르고 밑간해 둔 닭고기를 볶는다. 5. 거의 다 익어가면 잘라놓은 채소를 넣어 볶는다. 이때 다진 마늘을 한 큰 술 더 넣는다. 6. 굴소스를 두 세 큰술 넣어 간을 맞춘다. 굴소스만으로 간을 하면 내 입엔 좀 느끼해지므로, 싱거우면 소금을 더 넣는다. 7.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뿌려 볶은 뒤 통깨로 마무리한다.
1. 영양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3cm 길이로 자른다. 2. 오이를 길게 반을 갈라 다시 반달 어슷썰기를 한다. 3. 양파는 반 잘라서 가능한 한 가늘게 채썬다. 4. 매운 풋고추를 적당히.. 3개 정도 반을 가르고 다시 어슷하게 채썬다. 5. 썰은 재료를 큰 그릇에 담고 소금 한 스푼, 간장 두세 스푼, 고춧가루 취향에 따라 두 스푼, 다진 마늘 한 스푼, 참기름 넉넉히 넣고 살살 버무린다. 간을 봐서 취향대로 소금이나 간장을 더 넣으면 끝. 6. 통깨로 마무리하고 좀 더 상큼한 맛을 원한다면 식초를 약간 넣어도 좋다.
1. 미나리를 다듬는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이번엔 살짝 데칠 거라 이파리는 모두 잘라버렸다. 미나리는 이상하게도 데치면 굵은 아랫부분보다 이파리 달린 윗부분이 더 질기다. 길쭉하게 다듬은 미나리를 적당한 길이로 뚝뚝 잘라놓는다. 짧은 걸 원하면 손가락 만하게.. 나는 귀찮아서 그냥 3등분 했다. ^^ 2. 물을 끓여서 미나리를 아주 재빨리 데친다. 오래 푹푹 끓이면 질겨 지니깐, 거의 넣었다 바로 꺼낼 정도로 살짝 숨만 죽인다. 3. 체에 받쳐서 물기를 빼놓는다. 4. 물기도 빠지고 어지간히 식으면 물기를 대충 좀 더 짜준 뒤에 (어쩐지 꼭 짜면 섬유질이 질겨질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ㅋㅋ) 그릇에 담고, 고추장 한 큰술(실은 정확한 양을 모르겠다;;), 다진 파와 다진 마늘을 각 한 숟가락쯤, 고춧가루는 색깔 봐가며 솔솔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5. 소금으로 간을 하고, 꿀 약간, 참기름, 통깨로 마무리...
어렸을 땐 미나리 특유의 향을 석유냄새라고 여겼기 때문에 좀처럼 입에 대질 않았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바뀐 식성에 따라서인지, 언제부턴가 향긋한 미나리가 몹시 좋다. 예전에 이모가 만들어준 미나리 나물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처음 만들어봤는데, 놀랍게도 얼추 비슷한 맛이 나는 것이 아주 싱그럽게 괜찮은 맛이었다! ㅋㅋ
<가지 무침> 재료: 가지 4개, 다진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통깨 1. 깨끗이 씻은 가지를 4, 5등분 해서 4cm 길이로 자른 뒤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길쭉하게 자른다. 내 경우 원통형 가지를 반 갈라서 다시 4, 5번 잘라준다. 2. 처음엔 찜통에 넣고 쪄서 무쳤지만.. 요새는 귀찮아서 그냥 전자렌지에 찐다. 물론 뚜껑을 덮고 가지 본래의 수분으로 쪄야하는 건 기본. 가지 4개를 9분 정도 찌면 우리집에서 먹기 좋아하는 말랑함의 정도로 쪄진다. 좀 더 푹 익히는 걸 원하면 더쪄도 좋음. 3. 쪄낸 가지를 좀 식힌 다음, 다진 파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 약간, 간장 2스푼, 참기름, 통깨 넣고 슥슥 버무린다. 4. 워낙 대충반찬의 대가라서 간은.. ^^;; 먹어보면서 맞춘다.
1. 양파와 애호박을 원하는 두께로 반달썰기 한다. 양파를 반달썰기하면 당연히 채 썬 것처럼 흐트러진다. 2. 우묵한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두 채소를 볶다가 새우젓을 적당히 넣는다. (우리집 간은 반 숟갈 정도) 3. 다진 마늘도 한 큰 술 넣어 같이 볶는다. 4. 호박이 반쯤 투명해지고 채소에서 나온 물도 거의 다 졸아들면 완성. 취향에 따라서 물렁한 호박볶음을 원하면 더 볶아도 좋다. 5. 접시에 담은 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양념인 통깨를 살짝 뿌려준다.
[#M_퍼오는 김에|접기|
호박볶음 사진 올려둔 것도 있기에 같이 퍼왔다. 꽃빵 사다가 부추잡채도 해먹어야겠다. +_+ 무려 5년 전 사진이던데... 메뉴는 돌고 도누나.
추억이라는 조미료 때문에 내가 그 옛날 울 엄마표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녹두전은 아무리 잘 하는 집 것을 사먹어 봐도 우리집표 녹두전이 제일 맛있고 생각하는데, 과거가 되어버린 김밥과는 달리 녹두전은 현재형이다. 할머니부터 울 엄마, 작은어머니들을 거쳐 나와 울 올케들에게 전수된 녹두부침개의 맛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제사음식이 지방마다 다르듯이, 녹두전도 지방마다 재료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내 입맛엔 돼지고기 넣고 투박하고 큼직하게 부쳐낸 이북식이 최고인 것 같다. 원래 이북식은 돼지고기를 큼직큼직 듬성듬성 썰어 넣는 것이라지만 우리집에선 갈아서 넣는 데다 숙주는 물론이고 대파와 김치도 썰어넣기 때문에 느끼할 이유도 없어 바삭바삭 아작아작 하니 그저 최고의 맛이다.
서울경기식 녹두전은 순 녹두만 갈아서 기껏해야 손바닥 반만하게, 더러는 예쁘장하니 한 입 크기로 부쳐 위에 실고추 같은 걸로 모양을 내는 거라고 해서 어찌나 의아하던지. 녹두 본연의 고소한 맛이야 있겠으나, 먹기 심심해서 어찌 그걸 녹두전이라 부를 수 있겠나 말이다. 게다가 차례나 제사땐 다른 전도 종류별로 장만해야 하는데 녹두전을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부쳐내면 그걸 언제 다 부치라고! 드넓은 전기 프라이팬 양쪽에 펼쳐놓고 한판에 여러 장씩 부쳐내도 오래 걸리는 게 녹두전인데 말이다.
종류별로 전 부치다 질력나고 꾀가 생기면 녹두전 크기가 마구 커져 가끔은 뒤집다 찢어질 지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찢어진 핑계로 뜨겁고 고소할 때 먼저 먹어볼 수 있어서 반가운 녹두전은 차례 때나 제사가 아니면 내가 평소에 감히 만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 음식이다. 드높은 나의 식탐 열망으로도 넘기 어려운 명절 음식의 지존이랄까. 어쩌면 다른 녹두전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뜨악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최고의 녹두전인 우리집 요리법은 이렇다.
재료: 깐녹두 500g, 쌀 한 줌, 돼지고기 갈은 것 300g 정도, 신김치 반 포기, 숙주나물, 대파, 다진 마늘, 소금, 후추, 참기름, 포도씨유.
1. 전날밤에 깐녹두를 씻어 물에 불려 놓는다. 쌀 한줌도 함께.
2. 다음날 아침에 엄청 불어 생겨난 녹두 껍질을 떠내려보내며 다시 씻는다.
3. 숙주나물을 살짝 데쳐서 길이를 칼로 적당히 잘라준 뒤에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어 밑간해 놓는다.
4. 신김치 반포기도 속만 대강 털어낸 뒤에 잘게 잘라 김칫국물을 꼭 짜낸 다음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다.
5. 돼지고기 갈은 것도 소금, 후추, 다진 마늘로 미리 양념한다.
6. 대파는 두어뿌리 어슷썰기로 큼직큼직하게 썰어놓는다.
7. 불린 녹두를 간다. 이때 농도가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 너무 묽으면 전이 찢어진다!
8. 갈은 녹두에 양념해놓은 위 재료를 몽땅 넣고 잘 버무린다. 다들 밑간을 했지만 이 단계에도 역시나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9. 양념과 섞어 놓으면 갈은 녹두가 삭기 시작하므로 얼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노릇노릇 바삭하게 부쳐낸다. 적정 지름은 15센티미터쯤인 것 같은데, 엊그제 내 작품은 얼른 끝낼 요량으로 18센티미터는 되었던 듯.
우리집 녹두전의 특징은 김치를 넣어 색이 좀 붉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돼지고기와 김치, 숙주와 대파가 어우러져서 기름에 부쳤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바삭바삭 아작아작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음식이 다 그렇듯, 방금 부쳐냈을 때가 제일 맛있으므로 녹두전 부치다가 찢어뜨리면 아뿔싸 민망하다가도 나는 신이 난다. ㅋㅋ 명절 음식은 다 전날 부쳐놨다가 데워먹으니 한결 풍미가 떨어지는 듯하지만 녹두전은 냉장고에 한참 넣어놨다가 프라이팬에 데워먹어도 그저 훌륭하다.
올여름들어 처음 과일가게에 나온 자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체리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크기 다섯개에 4천원이면 좀 비싸다 싶었지만 자줏빛으로 빛나는 싱그러운 자태를 본 순간 이미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어쩌랴. 커피 한잔 사마시려면 5천원도 훌쩍 넘는 때가 많은데도 과일값엔 매번 놀라 손끝이 망설여진다.
날씨도 더워졌지만 요즘 내가 계절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과일가게에 드높이 쌓인 수박을 볼 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이 벌써 한참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몇통 안되는 수박을 진열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과일 도매상엔 엄청나게 큰 수박부터 적당한 크기까지 작은 수박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달기만 한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씨 빼는 게 귀찮아서 수박은 나의 기호품이 아니다. 모름지기 과일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해야 제맛이라는 게 나의 굳건한 믿음.
올해는 가지치기를 건너뛴 데다 해걸이를 하는지 통 수확이 신통찮은 앵두를 두어번 따먹으며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보들보들 새콤한 맛에 한동한 행복했고, FTA를 반대하는 의미로 수입과일은 '사다' 먹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지만 '누가 줘서' 얻어먹은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참외와 사과, 토마토로 근근이 과일 열망을 잠재우고 있었는데 자두를 만난 거다.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자두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씨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기야 꽃 맺히고 나서 열린 과일 열매의 생김새가 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랫부분까지 움푹 들어간 사과나 배와 달리 앵두, 체리, 자두, 복숭아, 살구 같은 건 꼭지가 달린 윗부분만 쏘옥 들어가고 아래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솟은 하트 모양이라는 의미다. 다들 가운데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고 말이다. +_+ 별것도 아닌데 나로선 새삼스러운 발견이라 마치 큰 성취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더운 날씨는 못견딜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서 자두랑 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산처럼 쌓여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봐야겠다. 과일은 나의 힘!
식탐이 많은 사람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먹고 싶다고 생각한 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물론이고 나는 누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조차 그냥 허투루 듣지를 않고 담아두었다가 먹게 해주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특히나 왕비마마 및 조카들이 먹고 싶다고 말한 건 왜 그냥 넘길 수가 없는지 원. 물론 건강에 나쁜 먹거리인 경우에는 왕비마마의 지병 걱정에 우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일단 안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비슷한 대체품으로라도 사드리거나 만들어 드리고 후회를 하는 인간인지라 어쩔 땐 저질러 놓고 "내가 미친년이지..."라고 후회할 때가 많다.
3월 24일이었을 거다. 왕비마마의 CT촬영 때문에 꼭두새벽 7시부터 병원엘 가야했고 순차로 이어지는 각종 검사와 진료 때문에 오전 내내 병원에서 살아야했던 날, 아침방송에 문제의 <통영 꿀빵>이 나왔다. 원래 유명한 꿀빵집은 아니었고 최근에 고구마 꿀빵이니 빼때기죽이니 신제품 개발을 해서 차별화를 시켜 월 매출이 2천만원이라는 어느 젊은 아줌마네 꿀빵집 소개였다.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튀긴 것, 단 것, 밀가루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하는 왕비마마는 병원 의자에 앉아 당연히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그 꿀빵을 탐냈다. 오래 전 키드 님과 벨로의 통영 여행 덕분에 한 덩어리 맛을 본 적 있는 나 역시 화면을 보니 새삼 군침이 돌았다. 당시엔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니 한번 시켜먹어봐야겠다 생각했으면서 그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TV에 한번 나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기에 머리 좀 쓴답시고 TV에 나온 꿀빵집 대신 원조 꿀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름도 까먹어서 키드님 블로그에 다시 가서 검색해 알아본 <오미사 꿀빵>을 이번엔 기필코 시켜먹기로 마음 먹은 거다. 헌데 그렇게 맘먹은 인간이 나뿐이 아니더라. 그로부터 열흘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오미사 꿀빵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 처음 며칠간은 트래픽 초과로 아예 홈피 접속도 되질 않더니 닷새쯤 지나니깐 접속은 가능하되, 늘 일시품절 상태다. 주문이 밀려들어 어쩔 수가 없단다. 방송의 주인공이었던 <꿀단지> 꿀빵집도 당연히 마찬가지라 나는 공연히 몸이 달았다. 사실 이 정도쯤 되면 왕비마마는 꿀빵을 벌써 잊고 계실 확률이 높다. 그간 꿀빵 대신 꿀떡을 계속 간식으로 먹어서 단것에 대한 열망이 잠재워졌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젠 내가 오기가 났다!
거의 매일 오미사 분점 홈피에 들락거리며 <재고: 일시품절> 글씨가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으려니, 드디어 어제 수요일 9시에 다시 홈피를 열어두겠다는 공고가 보였다. 으으.. 9시면 내가 잠자고 있을 시간인데, 2주 이상 지났으니 요번엔 오후에 접속해도 성공할 수 있으려나 어쩌려나... 꿀빵 열망이 나를 9시 접속으로 이끌 것인지, 혹시라도 또 기회를 놓치면 다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슬글슬금 꿀빵을 탐냈던 사실까지 잊어버릴 것인지 스스로 궁금하다. 2주 가까이 들인 공을 생각하면 꿀빵 먹으러 조만간 통영 놀러갈 계획이라도 세울 기세다. 왕비마마 다이어트 시키려면 내가 쓸데없는 오기를 버리는 게 옳은데. ㅋㅋ 이렇게 열심히 일이나 좀 하지!
딱히 가사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 않은 이 놀이의 마지막은 <밥먹느~~은다 -- 무슨 바~~안찬? -- 개구리 바~~안찬 -- 살았니 죽었니?>에 대한 대답과 함께 술래가 친구들을 잡으러 가거나("살았다!"고 외쳤을 때) 움찔 움직인 친구를 잡아내는 ("죽었다!"가 대답일 때) 것으로 끝이 난다. 운동신경도 둔하고 달음박질 느린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놀이를 할 땐 별로 즐기질 않았는데, 다 놀고 집에 들어와서 흥얼흥얼 새로운 댓구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고, 부엌을 들여다보며 할머니나 엄마한테도 놀이를 하듯 장단 맞춰 "무슨 바~~안찬?"이라고 묻는 걸 재밌어했다. 그리고 할머니나 엄마가 "개구리 바~~안찬"이라고 대답할 땐 기쁘게도 뭔가 맛있는 <고기> 반찬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수십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 추억이지만, 가끔 우리집에선 개구리 반찬이 아직도 <맛있는 고기 반찬>의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대개는 내가 입을 쑥 내민 채로 콩닥콩닥 냉장고와 조리대를 오가며 꽤 오래 부산을 떠는 저녁 무렵이면 왕비마마가 슬쩍 부엌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무슨 개구리 반찬이라도 만드니?"
그러고 보니 옛날에 엄마가 장보러 가면서 아버지와 내게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면 가끔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개구리 반찬!"이라고.
채식이 지구를 살리고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지름길이란 걸 알지만, 우리 가족은 고기를 너무 사랑해서 절대 채식주의자로 살 순 없을 것 같다. 일주일만 고기를 굶으면 손발이 후들후들 떨린다는 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생선으로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해도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오리고기 따위를 먹어야만 채워지는 육식애호 인자를 확실히 엄마도 나도 보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채소 싫어하는 조카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정말로 개구리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것 같다. 당연히 일주일에 한번씩 장을 볼 때도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종류별로 거의 빠뜨리는 일이 없다. ㅠ.ㅠ 고기마다 다 맛이 다른 걸 어쩌란 말이냐. ㅎㅎㅎ 봄이 오면 남들은 식욕을 잃는다는데, 왕비마마도 무수리도 입맛을 잃기는커녕 지난주부터는 이상스레 식탐이 동해 고기가 더 먹고 싶어서 이틀이 멀다하고 과식을 거듭하고는 피둥피둥 몸무게를 늘이고 있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또 다른 개구리 반찬을 떠올리는 식탐 모녀를 위해 적어두는 반성의 기록이다.
1. 큰 냄비에 다시마, 국물멸치, 대파, 표고버섯을 기호대로 넣고 푹푹 끓여 먼저 국물을 낸다.
2. 끓는 국물에 돼지고기 덩어리와 잘 익은 포기김치를 통째로 넣고 1시간 반쯤 국물이 절반이하로 졸아들 때까지 약한 불로 끓인다.
3. 1시간 반쯤, 김치와 고기가 물렁물렁 먹기 좋게 익을 때까지 끓여서 큰 접시에 담고 가위로 쓱싹쓱싹 잘라 먹는다.
* 우리집 입맛처럼 싱겁게 먹는 편이라면 간은 따로 하지 않아도 김치에서 배어나온 맛으로 충분하다. 구수하게 푹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없다. 정민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을 만큼 솜씨를 인정받은 반찬인데 ^^v 실은 막내올케한테 전수받은 거다. ㅋㅋㅋ
1. 한우 사태의 핏물을 씻어낸 후 고기가 잠길 만큼 분량의 끓는 물에 넣고 1시간 정도 푹푹 끓인다.
2. 통마늘과 대파도 통째로 넣어 누린내를 없앤다.
3. 고기를 끓이는 사이에 메추리알도 냄비에 담아 적당히(?) 삶아낸 뒤 찬물에 담가 껍질을 깐다. (상당히 지겨울 수 있음)
4. 고기가 다 익었겠다 싶고 국물도 절반쯤으로 줄었다 싶으면 색깔이 마음에 들 때까지(?) -- 짜지면 곤란하니까 -- 간장을 적당히 붓고, 올리고당 한 숟가락, 통후추 많이, 까놓은 메추리알도 넣어 같이 조린다.
5. 칼칼한 맛을 더하고 싶으면 냉동실에 잘라서 얼려둔 -- 없으면 말고 -- 청양고추 몇 조각을 집어넣는다.
6. 간이 적당히 배었다 싶으면 (우리집은 절대 짜게 먹으면 안되는 왕비마마가 계셔서 간장을 졸이지 않는다) 불에서 내려 식힌다.
7. 하얗게 굳은 기름을 다 걷어낸 뒤에, 결대로 고기를 쪽쪽 찢어 메추리알과 함께 저장용기에 나눠 담아놓고 밑반찬으로 내놓으면 훌륭한 개구리 반찬이다.
1. 닭안심을 잘 씻어서 물기를 뺀 후 허브솔트로 밑간을 해둔다. 1인분이 300g이라는데 750g짜리 한 팩을 다 해서 둘이 먹었더니 배불러서 혼났다. -_-;;
2. 밑간을 한 닭안심에 밀가루를 입힌 후에 프라이팬에 포도씨유를 약간 두르고 중불에서 익힌다.
3. 타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 사이에 간장, 맛술, 우유 약간, 다진 마늘로 사이비 데리야끼 소스를 만든다. (달지 않게 하려고 물엿 따위는 넣지 않았다)
4. 거의 다 익어가는 닭고기에 화이트와인 반잔을 끼얹는다. (와인의 닷만으로도 충분하더라)
5. 와인이 거의 다 날아가면 간장소스를 뿌리고, 잘라놓은 브로콜리와 새송이 버섯도 넣어 같이 익힌다.
6. 소스가 거의 다 졸아들면 커다란 접시에 최대한 예쁘게 담아 먹는다.
* 스테이크랍시고 포크와 나이프로 세팅했더니 왕비마마는 귀찮아하셨다. 다음엔 포크찹처럼 고기를 다 잘라서 담아드리는 게 나을 듯. 나가서 사먹으면 몇만원짜리 요리라며 추켜세웠지만 생각보다 별로 맛은 없었다. 역시 우리 모녀는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기는 걸 더 좋아한다. ㅋㅋ
담백한 닭죽 <재료> 닭 한마리, 찹쌀, 대파, 통마늘
1. 찹쌀 한 컵을 반나절 정도 불린다.
2. 큰 냄비에 물을 끓인다.
3. 닭은 껍질을 최대한 다 벗겨내고 껍질 안쪽의 하얀 기름을 특히 잘 떼낸다.
4. 끓는 물에 닭을 넣고 삶는다. 통마늘과 대파를 넉넉히 넣는다.
5. 닭이 절반쯤 익었을 무렵(닭 크기에 따라 한 2-30분쯤?) 통째로 넣은 대파는 건져버리고, 불린 찹쌀을 넣어 끓인다. 중간중간 저어 주어야 죽이 바닥에 눌지 않는다.
6. 찹쌀이 다 퍼지면 닭 한 마리 먼저 건져서 와구와구 뜯어먹고, 담백한 닭죽으로 입가심한다. 몸보신에 최고. 가끔 수삼을 넣기도 하는데, 내가 씁쓸한 맛을 싫어해서 복날에만 삼계탕을 끓이고 평소엔 그냥 닭죽이라 칭한다.
1. 흰콩을 잘 씻어 반나절 이상 불린다.
2. 신김치를 씻거나 양념만 털어서(빨간 느낌이 좋으면 그냥 써도 됨)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큰 냄비 맨 아래 깐다. (들기름에 먼저 볶아도 좋음. 그러나 난 이제 귀찮아서 안 볶는다. 맛도 별 차이 없고 -_-;;)
3. 양파 한 개, 대파 한 뿌리도 썩썩 잘라 넣는다.
4. 불린 콩을 적당양의 물과 함께 블렌더에 넣고 간다. 물이 몹시 적으면 너무 되서 잘 안 흘러내린다.
5. 돼지고기를 원하는 크기로 넉넉히 잘라 넣는다.
6. 너무 세지 않은 불에 올려 푹푹 끓이다 소금을 소량 넣어 밑간을 한다. (콩비지는 익으면서 무지 양이 많아져 폭발할 수도 있다! 냄비에 절반 이상 채우지 말것)
7. 비지가 익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에 다진파와 다진 마늘 약간, 매운 풋고추 한개 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 약간, 통깨, 참기름을 넣으면 완성.
8. 담백하고 뽀얀 콩비지 찌개가 완성되면 양념장을 넣어 버무려 먹는다.
* 날콩을 갈아서 끓이면 폭발하는 것처럼 양이 많아지는 과정을 잘 넘기기가 어려워서 가끔 콩을 삶아서 갈아 비지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삶아서 갈면 비지 맛이 좀 달라진다. 미숫가루 같아진다고나 할까. 그나마 이건 몸에 좋은 콩 요리라 해먹으면서도 덜 민망하다.
삼겹살 편육 <재료> 돼지고기 삼겹살 또는 오겹살, 통마늘, 대파, 된장 반 숟가락, 각종 쌈채소 또는 그냥 김치
1. 냄비에 물을 끓인다.
2. 삼겹살 덩어리를 넣는다.
3. 통마늘 10개쯤, 대파 통째로 1줄기를 넣고, 된장 반 숟가락을 푼다.
4. 상당히 오랫동안(최소4-50분) 푹푹 끓인다. (처음 돼지고기를 삶을 땐 익었나 안익어봤나 수시로 젓가락으로 찔러봤는데 ㅡ.ㅡ 계속 핏물이 베어나와 난감했었다. ㅋㅋ)
5. 잘 삶아진 돼지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담은 다음 각종 쌈채소에 쌈장을 곁들여 싸먹거나, 그냥 맛있는 김치랑 먹으면 된다. (보쌈용 김치까지 만드는 수고는 사절이다!)
[#M_적는 김에|닫기|* 감자탕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이라 예전엔 집에서 자주 해먹었지만,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3주기가 머지 않은 지금껏 다시 해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앞에 자주 가던 감자탕 집도 애써 멀리하다 동생들과 처음 갔던 날 눈물을 쏟기도 했었고.
그치만 장조림에 들어가는 메추리알도 늘 아버지가 까주셨기 때문에 눈물 나서 못해먹겠다고 하다가 이젠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듯, 감자탕도 올해쯤엔 다시 요리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예전에 다른 데 올렸던 걸 퍼왔다.
감자탕 <재료> 돼지 등뼈, 감자, 양파, 대파, 마늘, 생강, 삶은 우거지, 고춧가루, 된장, 들기름, 소금
1. 돼지뼈를 찬물에 1, 2시간쯤 담가 핏물을 우려낸다.
2. 감자 3개, 양파 1개의 껍질을 벗겨 통째로 씻어놓는다.
(사실 나는 감자를 무지 좋아하는데, 당뇨병엔 감자가 무척 안좋은 음식이라 일부러 조금만 넣었다;;)
3.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돼지뼈를 넣고, 통생강과 통마늘을 넉넉히 넣는다.
4. 양파와 감자도 통째로 넣고, 대파도 손으로 뚝뚝 잘라 넣고 끓이다 파는 나중에 먹기 직전에 건져버린다.
5. 펄펄 끓으면서 거무스름한 거품과 기름이 둥둥 뜨면 계속 건져내서 뽀얀 국물이 나올때까지 1시간 반쯤 끓인다.
6. 마침 삶아놓은 우거지가 있어서 처음부터 삶을 필요가 없었는데, 말린 시레기부터 손질하려면 물을 넉넉히 붓고 푹푹 삶아 나중에 잘 씻어 건지면 끝이다.
우거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다음 물기를 꼭 짜서, 고춧가루, 다진마늘, 다진 파, 된장, 들기름을 적당히(^^;;) 넣어 조물조물 버무려 놓는다.
7. 돼지뼈에서 고기가 흐물흐물 떼어질 정도로 잘 익으면, 양념한 우거지를 얹고 고춧가루를 더 넣어서 (미리 고추기름을 만들어 쓰는 경우도 아마 있을 것 같다마는;;;) 발그레족족 맛있는 색이 나도록 한다.
8.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돼지냄새도 전혀 안나고 구수하고 맛있는 감자탕이 완성된다!!
적고 보니 아무래도 한우는 비싼 가격 탓에 국으로 끓여먹지 않으면, 장조림 해먹는 게 다인듯. 오리고기는 훈제오리 제품을 사다가 살짝 데워서 무쌈에 싸먹으면 되므로 요리랄 것도 없다. 이렇게 먹고도 어제 왕비마마는 또 삽겹살을 구워먹고 싶다 하셨다. 으휴...
여기서 <밥>이 먹기 싫다는 말은 순수한 의미 그대로의 <밥>이지 <한 끼니>가 아니다. 하루 세끼 꼬박 반찬까지 여러 종류로 챙겨서 밥을 먹기엔 수랏간 무수리로도 좀 지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점심은 주로 간단히 먹는 편이고 대부분 떡만두국, 우동, 칼국수를 번갈아 해먹다가 간간이 떡볶이로 좀 오버하는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빵으로 떼운다. 그러나 반찬 없이 밥먹으면 그 밥심이 2시간 밖에 안가는 인간이 빵 조각 간단히 집어먹고서 버젓하게 <끼니>라고 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 나름 영양소까지 감안해서 한 끼니를 해결하므로 <떼운다>고 말하기엔 좀 섭한 감이 있을 정도다. 감자수프 한 그릇에 프렌치토스트 2조각, 바나나 한개 정도면 꽤나 배부를 수 있음. ^^; 아무튼 이어지는 식탐녀의 식탐 포스팅.
무늬만 <감자수프> 재료: (2인분) 감자 2개 (작은 건 3개), 양파 반개, 우유 1컵(넉넉히), 소금 약간. 호두
1. 감자와 양파 껍질을 까서 빨리 익도록 숭덩숭덩 잘라 그릇에 담아 전자렌지에 5, 6분 쪄 익힌다.
2. 익은 감자와 양파, 그리고 역시나 전자렌지에 데운 우유 1컵을 믹서기에 넣고 기호에 따라 소금을 약간 넣어 슈리릭 간다.
3. 수프를 그릇에 쏟아 담고 호두를 몇 알 얹어서 식기 전에 먹으면 끝. (뜨겁게 한다고 냄비에 쏟아 다시 끓여본 적 있는데 맛엔 큰 차이 없다. 설거지감만 많아질 뿐)
생크림도, 버터도, 밀가루도 넣지 않은 걸죽한 수프지만 순 재료 맛만으로도 맛있다고 장담한다!
<프렌치 토스트>
재료: (2인분) 호밀빵 4조각, 달걀 2개, 우유 적당히, 버터나 올리브유, 계피가루, 귤쨈
1. 달걀 2개를 넓은 그릇에 풀고 우유를 달걀 양의 절반 쯤 붓는다. (계피가루를 이 단계에 넣고 해도 된다)
2. 호밀식빵을 달걀우유물에 담갔다가 버터나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부쳐낸다. 처음엔 버터로 해먹어서 더 고소하긴 했는데 열량 생각하니 끔찍해져서 요샌 올리브유로 선회했다.
3. 접시에 담아 취향에 따라 계피가루를 좀 뿌린 뒤 쨈을 발라 먹는다. 바나나를 잘라서 같이 먹어도 맛있음
<귤쨈> 노나또님이 귤쨈 만들어 브런치 해드셨다는 포스팅 보고 '무슨 집에서 쨈을 다 만드시나!'라고 놀랐는데, 설날때 나눠온 귤이 냉장고에서 자꾸 썩어나가는 걸 보니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다 버리게 생겨서 나도 시도해봤다. 어린시절 울 엄마처럼 딸기를 몇관(?)씩 사다가 엄청나게 만드는 양이 아니므로 1시간이면 대충 완성되는 듯. 완성품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뿌듯했다.
재료: 귤, 설탕
1. 귤을 까서 냄비에 담고 대강 으깬다.
2. 과즙이 꽤나 많이 흥건하게 나오므로 설탕을 적당히 넣고 나무주걱으로 죽어라 저으면서 계속 끓인다.
3. 식으면 더 끈적해질 게 틀림없으므로 과즙이 거의 다 졸아들었을 무렵 팔 아파서 불을 껐다.
4. 끓는 물에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식혀 냉장고에 보관한다.
좀 덜 달게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수정과 만들고 남은 백설탕이 확 쏟아지는 바람에 정석으로 달콤하게 만들어졌다. 유기농설탕이나 황설탕을 넣으면 색이 좀 탁해지겠지만 건강엔 더 좋을듯. 째뜬 우리집엔 건강에는 나빠도 맑은 주황색의 귤쨈이 반병 생겨났다. 계피가루 뿌린 프렌치 토스트랑 꽤 잘어울린다. ㅎㅎ
정월 열나흔날부터 보름날까지 나무 아홉 짐 해오고 아홉 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아홉 번 먹어야 한다는 세시풍습을 나는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다. 보름날 아침에 자고 있으면 엄마가 부럼을 가져와서 어서 깨물으라고 재촉했는데, 부스럼을 비롯해 각종 병을 막아준다는 부럼깨기 풍습도 재미났고, 이름 불러서 더위파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아이들은 대개 나물을 즐기지 않는다지만 나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각종 나물이 맛있다고 생각했고, 특히 대보름 나물은 하나같이 좋아한다. 엄마가 부엌일에서 손을 놓은 다음 한두 해는 귀찮아서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다 먹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무모한 도전정신을 발휘해 막요리를 시도하는 쪽을 택했다. 밥이야 어차피 밥솥이 하는 거고, 아홉 가지나 만들 자신과 열정은 없어도 몇 가지 나물쯤이야 몇번의 실패 후 그럭저럭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작년에도 대보름 나물을 만들었을 텐데 올해는 왜 그리도 다 새롭던지. 결국 시레기 나물은 실패한 것 같다. 다 기록을 해두지 않은 탓에 요리할 때마다 대충대충 하기 때문인가 싶어, 내년을 위해 또 막요리를 기록한다. 시레기 나물과 취나물이 좀 질겨서 속이 상했지만 다섯 가지 나물을 차려놓고 김에 싸먹는 오곡밥은 행복과 지혜의 맛이 틀림없다.
<오곡밥> 재료: 백미, 현미, 흑미, 기장쌀, 서리태, 보리(이미 쌀독에 섞여 들어 있는 잡곡) + 찹쌀, 강낭콩, 동부콩, 이름모를 큰콩 (좁쌀 좋아하는데 이번에 까먹고 빠뜨렸다! 내년엔 잊지 말 것)
1. 잡곡을 다 씻어서 30분쯤 불렸다가 밥솥에 앉힌다.
2. 이번엔 좁쌀을 빠뜨렸지만 좁쌀을 넣으려면 일일이 돌을 골라내야 하고 밥솥에 앉힐 때도 맨 위에 따로 솔솔 얹어야지 처음부터 섞어 놓으면 끓는 과정에서 맨 밑바닥으로 다 쏠려 엉긴다.
3. 취사 버튼을 눌러 밥을 하면 끝이다.
4. 다 된 밥을 살살 뒤적여 그릇에 담으면 찰지고 맛있는 오곡밥을 먹을 수 있다.
어릴 땐 엄마가 꼭 오곡밥에 소금을 좀 넣어 만들어주셨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이젠 넣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옛날 그 맛은 아니다. 다른 집은 안 그런다는데, 울 엄마는 대보름 오곡밥엔 김치를 먹는 게 아니라며 그 대신 김에 싸먹는 거라고 했었다. 말이 오곡밥이지 그 옛날에도 우리집 대보름밥은 잡곡 수가 다섯 가지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오곡백과>가 모든 곡식과 모든 종류의 과일을 의미하는 것이듯 반드시 다섯가지 잡곡으로만 밥을 해야 오곡밥은 아니라고 믿을란다.
<숙주나물> 재료: 숙주, 다진파, 다진 마늘, 소금, 참기름, 통깨.
1. 숙주를 깨끗이 씻어 건진다.
2. 끓는 물에 살짝 숙주를 데친다. 아삭함이 없어지지 않도록 빨리 데치는 것이 관건.
3. 체에 받쳐 좀 식혔다가 물기를 적당히 짠 다음 다진파와 다진 마늘, 참기름을 먼저 넣고(소금이 덜 침투하도록 하려는 나의 비법이다) 조물조물 버무린다.
4. 소금은 맨 마지막에 넣어 간을 맞춘다.
5. 통깨로 마무리.
대보름 나물 아홉가지에는 원래 숙주 대신 콩나물이 들어갈 거다. 근데 나도 그렇고 왕비마마도 그렇고 콩나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훨씬 더 부드러운 숙주나물로 대체했다. 무나물이든 숙주나물이든 하얀 나물 한 가지는 있어줘야 밥상이 예쁘지 않겠나. +_+
<가지나물>
재료: 건가지, 다진 파, 다진 마늘, 간장, 소금, 들기름, 들깨가루, 통깨
1. 말린 가지를 물에 잘 씻어서 끓는물에 15분쯤 삶는다. (시간이 정확하진 않으므로 무른 정도 확인 필요)
2. 가지가 적당히 불고 익었다 싶으면 건져서 프라이팬에 담는다.
3. 볶기 전에 간장, 소금, 다진파, 다진마늘을 넣고 좀 버무려준다. 그러면 간 맞추기가 쉽다는 풍월을 어디서 듣고 해본 건데, 엽분 섭취를 덜하려면 역시나 기름에 먼저 볶다가 간을 하는 게 낫겠다 싶다.
4. 들기름에 볶다가 들깨가루도 좀 넣고, 다 볶아졌다 싶으면 통깨로 마무리.
<시레기 나물>
재료: 삶은 시레기, 다진 파, 다진 마늘, 간장, 소금, 들기름, 들깨가루, 맛선생, 쇠고기 육수, 올리고당, 통깨 (영 맛이 안나서 온갖 재료 총동원)
1. 삶은 시레기를 물에 담가 흙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잘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제대로 하려면 말린 시레기를 푹푹 삶는 것부터 해야하겠지만, 나는 시간절약을 위해 일부러 삶은 시레기를 사왔는데 거기부터 잘못된 것 같다. 당연히 적당히 삶아졌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나 질기던지, 물 많이 넣고 1시간 넘게 볶아도 쉬 연해지질 않더라. 다음엔 삶은 시레기를 사왔더라도 일단 물넣고 푹푹 삶다가 볶을 것.
2. 시레기를 깊은 프라이팬에 넣고 간장, 소금, 들기름을 넣고 볶았는데 어쩌면 시레기는 맨 마지막에 간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간을 하면 섬유소가 더 질겨지는 것인지도!
3. 물을 넉넉히 붓고 뚜껑 덮어 계속 끓였으나 맛도 없고 질기기만 해서 쇠고기 육수, 들깨가루, 맛선생, 올리고당.. 별별걸 다 넣었다.
4. 어쨌거나 통깨로 마무리.
왕비마마가 제일 기대했던 나물인데 제일 맛없게 됐고, 저녁엔 연해진 이파리 부분만 골라먹었는데 아직도 줄기부분은 질겨서 과연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욕심 내고 산 바람에 양은 또 왜 그리 많은지!
<호박고지 나물> 재료: 호박고지, 다진 파, 다진 마늘, 포도씨유, 간장, 소금, 다시마 가루, 참기름, 통깨.
1. 호박고지를 반나절 이상 불려야 한단다. (나는 2시간 밖에 안불렸기 때문에 볶을 때 물을 많이 넣었다.)
2. 불린 호박고지를 깨끗이 씻어서 프라이팬에 넣고 간장 쬐끔, 소금으로 먼저 밑간을 좀 한다. 호박고지는 조직이 연해서 그런지 완성 후에 너무 싱거워진 전적이 있다.
3. 나물을 다 들기름에 볶으면 느끼해질 것도 같아서 호박은 포도씨유에 볶다가 다시마 가루 포함 모든 양념을 넣은 뒤 물을 반컵 이상 넣고 푹푹 끓였다.
4. 호박이 말랑말랑 물러지고 물기도 거의 없어지면 불을 끄고 참기름과 통깨를 넣어 마무리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보름 나물이다! 애호박 나물은 늘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데, 내년엔 말린 호박도 새우젓으로 간을 해 볶아도 맛있을 것 같다. 참고할 것.
<취나물> 재료: 삶은 취나물, 다진 파, 다진 마늘, 간장, 소금, 들기름, 들깨가루, 통깨.
1. 삶은 취나물을 잘 씻어 흙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번 헹군다.
2. 질긴 시레기 나물에 질려버린 나는 일단 취나물을 냄비에 넣고 푹푹 끓였다. 줄기가 물러졌다 싶을 때까지 계속...
3. 흥건한 물을 거의 다 따라버리고, 들기름, 간장, 소금, 양념을 다 넣고 볶다가 물이 다 졸아들으면 통깨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