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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2.24 여행 열망 21
  3. 2008.08.27 잡다 12
  4. 2008.08.06 오 제주도 4 9
  5. 2008.08.05 오 제주도 3 21
  6. 2008.08.04 오 제주도 2 15
  7. 2008.08.04 오 제주도! 9
  8. 2008.08.02 뒤끝 6
  9. 2008.06.26 질주본능 6
  10. 2008.06.24 아파트 18

춘천의 추억

추억주머니 2009. 6. 11. 18:11

춘천은 나에게 아련한 추억과 동경의 장소다.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가 나오기도 훨씬 전인 고3 여름방학때, 두 친구와 작당하여 아침부터 이어지는 따분한 자율학습을 과감히 제끼고 난생 처음 춘천행 기차에 올랐었다. 그 전에는 땡땡이라고 해봤자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떡볶이를 사먹는다든지 조금 일찍 달아나는 정도였을 뿐, 하루를 온전히 빼먹는 땡땡이는 시도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전날부터 몹시 마음이 설렜다. 청량리역에서 만나 일단 성북역까지 가서는 거기서 춘천행 기차를 타야했는데, 두어시간 남짓한 그곳이 나에겐 마치 한반도 끝에 있는 부산만큼이나 심정적으로 먼 곳이라 생각되어 대단히 짜릿한 일탈로 여겨졌다. 이미 아는 오빠를 따라 춘천에 몇번 다녀본 전적이 있는 친구의 안내대로, 춘천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간 공지천 주변을 거닐다 호숫가에 서 있는 <이디오피아>라는 카페에서 볶음밥과 빙수를 먹은 뒤 돌아오는 기차를 탄 것이 여행의 전부였지만, 우리 셋은 너무도 행복했다. 기차를 타고 오가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남한강과 북한강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웠고, 완행열차에서 사먹은 삶은달걀도 감동의 맛이었다.
그날의 추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나와 친구들은 남은 학기 내내 두고두고 춘천 기차여행 이야기를 되뇌다,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졸업 전에 다시 춘천으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진학을 하든 재수를 하든 단짝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서글퍼하면서. 두번째 춘천 여행에선 꽝꽝 얼어붙은 소양강댐에도 구경했고, 새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린 공지천을 배경으로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열여덟살이던 당시 춘천은 나에게 짜릿한 일탈의 공간이었고, 어른을 동반하지 않고 내가 홀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고, 여러가지 매력 넘치는 기차여행을 누릴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춘천 기차여행을 큰 자랑거리로 떠벌였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경한 친구들에게 겨우 두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춘천은 일탈의 장소이긴커녕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세 다녀오거나 매일 통학할 수도 있는 지척의 도시였다. +_+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친구 하나가 동조해주는 바람에 눈이 펑펑내리던 어느날 충동적으로 다시 춘천행 기차를 탔던 날, 우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는 소양댐을 굳이 걸어서 올라갔고 언 손을 호호 불며 맛없고 쓴 커피를 마시면서도 행복했다. 그날 처음 춘천 닭갈비라는 것을 먹어보았는데, 종일 눈에 젖어 덜덜 떨다가 들어가 먹어본 그 맛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몇년에 한번씩 춘천엘 간 적은 있지만 죄다 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춘천가는 기차>가 상징하는 춘천여행의 묘미와 추억을 더는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완행열차 비둘기호는 사라져버렸어도 언제고 한번 꼭 기차를 타고 춘천엘 가봐야지 막연하게 마음은 먹었지만, 강원도 여행길에 일부러 들르지 않는 한 춘천 자체를 찾아갈 일도 아예 없는 편이어서 춘천은 점점 내 추억의 창고에서도 깊숙한 구석쪽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낭보가 들려왔다. 판화가인 막내고모가 춘천에서 열리는 강원아트페어에 전시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차여행은 못하겠지만 간만에 춘천 땅도 밟아보고 고모 그림도 보고 닭갈비도 먹고 일석삼조, 일타삼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지난 7일, 왕비마마를 모시고 춘천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당연히 설레고 들떴다. 아직 철은 이르지만 가는 길에 가평 찰옥수수도 사먹을 생각을 하면, 막히는 길쯤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왕비마마와 공주 일행이 납시었는줄 온 세상이 알았는지 전날엔 미치도록 막혀 되돌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는 춘천행 국도도 뻥 뚫려 오히려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마다 서 있는 옥수수 장수들을 만나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뜨겁고 매운 닭갈비를 먹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이번 춘천 여행에선 정말로 눈과 입과 위 모두 흐뭇하게 대접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가끔 닭갈비를 사먹긴 하지만, 역시 닭갈비는 춘천에 가서 먹어야 제맛이란 진리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또 언제 춘천엘 가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일탈의 공간이었던 춘천에 처음으로 가족들을 동반하고 간 이번 여행의 의미는 또 다른 추억의 겹으로 남아 돌이킬 때마다 흐뭇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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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열망

삶꾸러미 2009. 2. 24. 13:00

역시나 얼마전 작업한 책에서 주인공은 내키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가 어느 한가로운 소도시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이들이 짧게 머물려고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한달이 지나고, 그러다 석달이 지나고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왜 결국 남은 평생 그곳에서 살게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겠다고. "이상한 힘. 제 아무리 야성적인 사람이더라도 상관없이, 한 사람을 외국 땅에 정착하게 만드는 기운. 나는 그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모험과는 반대되는 무언가, 살아가는 습관에서 비롯되는 무언가이며, 단조로운, 매일 같은 일상의 단조로움에 대한 수긍이다."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니 영영 그곳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을 품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여행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은 적은 많았다. 나에겐 여행의 동기라는 것이 도피였거나 휴식, 애쓴 나에게 주는 포상 같은 것이었으므로 멍에 같은 현실이나 일상의 번잡함이 싫어서 가능한 한 여정을 길게 늘여 돌아감을 지연시키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정착이라니.

언젠가 멕시코에 갔을 때였다. 떠나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건 칸쿤 같은 편한 휴양지의 빌라에서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마가리타를 마시거나 새하얀 요트에 누워 눈부시게 파란 바다를 즐기는 휴식이었지만 일행이 나를 데려간 곳은 골수 낚시꾼들이나 찾아가는 태평양 연안의 작은 어촌이었고, 수영장이 딸린 호텔 따위는 아예 없었으며, 일행이 트럭 뒤꽁무니에 매달고 간 배는 물론 요트가 아니라 작은 고기잡이 배였다. 40도를 넘는 폭염에 새벽 6시에 깨어나 찬물을 틀어도 달궈진 지붕과 물탱크 때문에 화들짝 놀랄 만큼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열악한 환경의 모텔에서 친구와 나는 망연자실했다. 친구의 남편이 우리 키만큼이나 큰 방어를 끔찍이도 많이(그때 잡아서 아이스박스 몇 개에 담아온 방어는 최소 석달은 먹고도 남음이 있었다) 잡아와 자랑을 늘어놓아도 우린 둘 다 시큰둥했다. 그나마 현지인들에게 방어를 나눠주고 바꿔먹는 생굴과 클램차우더, 짝퉁 레몬 대신 진짜 싱싱한 라임을 넣어 먹는 코로나 맥주가 맛있어서 참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 낚시꾼들을 상대하는 아주 작은 포장마차 비슷한 음식점엔 뜻밖에도 스웨덴 여자가 허드렛일을 거들고 있었다. 멕시코인 부부와 올망졸망한 십대 자녀들이 충분히 운영하고도 남을 만큼 한가한 그곳에서 과연 그 여자는 무슨 일을 하며 얼마나 돈을 받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전직 교사였다는 그 여자는 방학동안 남미로 여행을 왔다가 몇년 전 다 때려치우고 그곳에 그냥 눌러앉았다고 했다. 이미 안면이 있던 친구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특별한 직업 없이 낚시철엔 낚시꾼들이 흔쾌히 주고 가는 생선으로 연명하고 주말에는 그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거들어주고 끼니와 맥주를 제공받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간의 저축과 연금을 쪼개서 궁핍하게 살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그곳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나. 차마 나이를 물어볼 순 없었지만 오십대는 된 것 같은 여자였다. 
나는 도저히 그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텔에서도 발전기를 돌려야 겨우 에어컨과 전등을 켤 수 있으며 더위 때문에 어떤 날은 해저물 때까지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지독히 심심하고 한가한 그 <깡시골 어촌>에서 그 여자는 어떤 매력을 발견했기에 무턱대고 눌러 앉기로 작정을 했을지. 맑고 푸른 바다는 오대양 주변이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을 터였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도 나라마다 없는 곳은 없지 않겠나? 
어쨌거나 지금은 이름도 까먹은 바하캘리포니아 끝자락의 어느 어촌엔 그 여자 말고도 여행으로 흘러들어왔다가 정착한 외국인들이 두어 명 더 있다고 했다. 친구 남편의 꿈 역시 은퇴해서 그곳에 정착해 남은 평생 낚시를 하며 사는 것이었지만, 친구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책을 번역하다 저 구절을 만난 순간, 십년도 넘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 스웨덴 여자가 불쑥 떠올랐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가 뜻밖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낯선 곳에 정착했다는 사람들을 좀체 이해하진 못하겠다. 나에게도 여행은 새롭고 낯선 것들의 경험이 큰 의미를 차지하지만, 결국엔 익숙한 장소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지연시키고픈 현실임과 동시에 든든한 <빽>인 것만 같은데 말이다.
내가 아직 인생의 연륜을 덜 쌓아 낯선 여행지가 풍기는 <이상한 힘>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사주에 역마살이 있기는 하지만 늘 원점으로 돌아오는 역마살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주팔자 때문인지, 낯선 곳과 낯선 삶을 두려워하는 우물안 개구리이기 때문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하나는 있다.
낯선 곳에의 정착은 꿈도 안 꿀 터이니, 그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만큼 여러가지 여유를 지니고 살고 싶다는 사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니 슬슬 역마살이 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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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투덜일기 2008. 8. 27. 23:41
며칠째 이가 아프다.
절반쯤 모습을 드러낸 채 썩고 있는데도 오래도록 방치한 사랑니가  드디어 세상과 내 입안에 작별을 고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엔 하루쯤 욱신거리다 잠잠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멈출 기세가 아니어서 계획대로라면 드디어 내일 치과에 가서 어마어마한 공사를 시작해볼 작정이다. 웃을 때마다 위아래로 금니를 번쩍거릴 순 없다며 상아재질로 십수 개(!)의 충치를 떼워놓고 방치한지 13년이 된 나로서는 과연  견적이 얼마나  몹시 두렵다.

이가 아프니 먹고 씹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생각하고 대꾸하는 것도 여의치가 않은데 그래도 약속대로 덕수궁엘 나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청앞엔 범불교도 대회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 버스에서 내려 서대문부터 걸어야 했다.
촛불집회 때 시청부터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가듯 걸어가며, 교통 통제된 버스 안에 갇혀 짜증을 부리며 욕설을 퍼붓던 시민들과 똑같은 심정은 아니었지만(짜증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게 옳다) 어쨌든 불편했고 늦어버린 약속시간 때문에 지인들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집회는 얼추 끝난 뒤였기 때문에, 전시 보는 내내 시끄러운 방송음이 들리면 어쩌나 염려했던 건 기우였고 단체로 장삼에 가사를 걸치고 챙 넓은 밀집모자를 쓴 스님들의 행렬을 정동길에서 마주쳤을 땐 신기해서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었지만 당연히 참았다.

그런데 정동길 끝에선 어떤 아줌마와 아저씨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목에 건 이름패로 보아 범불교도 대회에 참여했음이 분명한 젊은 아줌마(어쩌면 내 또래일지도 모르겠다)는
내가 곁을 지나는 순간, 젊은 아저씨에게 "내가 빨갱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웅얼웅얼 뭐라고 대꾸했는데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고, 여자는 다시 "정부가 잘못하는 일을 지적만 해도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사회가 그럼 옳은 거냐?"고 되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떼거리로 체포된 인사들의 이름이 신문에 나고, 여간첩이 잡혔다는 게 속보로 나오며 걸핏하면 <빨갱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금이 정말로 2008년인지 의아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이미 한달치 걷기를 했던 데다 전시장을 뺑뺑 도느라 다리가 아팠던 우리는 덕수궁을 나와서 이어지는 약속장소인 안국동까지 이왕이면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셋이서 기본요금이 나오기 십상인 거리에 택시를 타면 욕을 먹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택시도 눈치보며 타야 하는 상황이 버럭 짜증이 났다.
물론 시청앞에서 택시는 쉬 잡히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배고픔에 괴로워하며 뚜벅뚜벅 안국동까지 걸어갔다.

청계천을 건너며 우리 앞을 거의 막아서다시피 팻말을 몸에 걸고 다가오는 1인시위자가 있었는데 팻말엔
<대운하 건설을 적극 찬성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예정지에 땅이라도 사놓으셨나보군요, 라고 피식 웃으며 그 사람을 지나쳤지만 또 치통이 도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봐 염려하며 한달짜리 유럽 여행 일정을 짜는 지인들에게 캐캐묵은 경험담을 조언이랍시고 전하며 고질병처럼 역마살이 춤추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요즘 같아선 어디론가 떠났다가 정말로 안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에 제풀에 주저앉는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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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주도 4

여행담 2008. 8. 6. 15:12
어쩐지 아쉬워서 두고두고 조금씩 후기를 올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도 같고 기억력도 가물거려 나중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마무리를 해야겠다.

2008. 8. 1.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식사용으로 사놓았던 소박한 양식(바나나, 사발면, 포장용기 밥 따위)들은 거의 떨어져 우유와 주스 정도만 남았지만 그나마도 모두 해치우고 가야한다는 일념에 모두들 우유와 주스를 두잔씩은 벌컥벌컥 마셔댄 것 같다.
호화로운 나인브릿지 빌라와는 일찌감치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는데, 밤중 귀가길에 앞좌석에 앉았던 잇점을 살려 얼핏 풀 뜯어먹는 노루를 구경한 벨로와 키드님과 달리 당시 뒷자리에 앉았던 지다님과 나는 결국 한라산 중턱에 사는 노루를 볼 기회가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했더라면 또 모르겠는데, 잠자리가 설어 토끼잠에 시달리는 데다 아침잠까지 많은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 수는 없었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마지막 날엔 다들 꼭 가보고 싶었다고 손꼽았던 김영갑님의 두모악 갤러리를 먼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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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 사진만 찍다가 병든 몸으로도 제주도에 남아 그곳에 묻혔다는 사진작가의 일대기가 아니더라도 길쭉하게 제주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참 아름답고 정겨워서 슬펐다.
접사는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서 이 정도면 접사일까 아닐까 고민하면서 굳이 서툰 솜씨로 찍어본 사진들은 그분 작품에 대한 훼손일 것도 같아서 올리지 않기로 했다.
마치 아프리카 대초원의 바람을 담은 듯한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처음엔 갤러리 바깥에 조성된 정원에 옹기종기 장식되어 있는 작은 조각들도 혹시나 사진작가의 작품일까 열심히 사진에 담았는데 어느 여성화가의 작품이라는 듯하여 맥이 좀 풀렸다. 어쨌든 현무암 하나하나를 쌓아올리고 곳곳에 나무를 심어 가꾼 정성은 본인의 것이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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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에 줄지어 놓인 작은 돌 연못도 예쁘다.

공항 시간에 맞춰 한 군데 더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했던 우유부단한 일행들은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물 자연휴양림을 선택했다. 산굼부리와 휴양림 가운데 고르라고 칼자루를 지다님께 쥐어주었는데 단칼에 "휴양림이요!"라고 대답해주어서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
산굼부리는 산등성이 중간쯤에 형성된 분화구라 가을엔 단풍과 억새밭이 장관이고, 봄에도 꽃구경이 흥미롭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하나 없는 그곳으로 올라가려면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휴양림에 가기 전에 먼저 점심을 떼우기로 했던 우리는 전날 우도 정자 옆 간이 식당에서 본 열무국수를 계속 부르짖으며 비빔밥 같은 것도 좋지만 열무국수를 먹고싶다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워섬겼는데, 토룡마을을 이끄는 뛰어난 영도력과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눈썰미마저 빠른 키드님이 전격적으로 국수전문점을 발견하여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시원한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콩국수는 비싼 흰콩을 아끼느라 땅콩을 너무 많이 넣은 맛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훌륭했고
열무국수 또한 담백하고 시원하여, 더불어 시켰던 해물파전과 먹기엔 금상첨화였는데 어찌나 양이 많던지
모두들 국수와 파전을 조금씩 남기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먹은 국수와 파전까지... 이번 여행의 먹거리는 <제주도에선 맛난 음식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예전 제주도 여행에선 친한 현지인이 권해준 식당이 아닌 한, 늘 먹고도 별 맛도 없으면서 터무니 없이 바가지 쓴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는데, 제주도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정비를 했다더니 먹거리 문화까지 개발된 것 같아 흐뭇했다.

절물 휴양림은 역시 지난번 막내동생의 여행담을 주워듣고 알게 되어 처음 가본 것인데, 손바닥만한 공간을 휴양림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입장료를 받는 기분 나쁜 과거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퍽 괜찮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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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넓은 중앙로엔 그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골진 나무판자가 정갈하게 깔린 오른쪽 숲길로 무조건 접어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오로지 우리의 목표는 그늘진 평상을 찾아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드러누워 산림욕과 낮잠을 즐기는 것이었다. ^^
그렇게 평상에 드러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어찌나 맑고 파랗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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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 드러누워 이 사진을 찍을 땐 드러난 하늘 모양이 나비 같다고 생각하며 자랑삼아 찍은 것인데 와서 보니 막상 그 느낌이 별로 없다. 솜씨 탓도 있겠지만, 특히 자연은 마음에 담기는 것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사진에 담겨주질 않는 듯.

숲속에선 피톤치드가 나오네, 음이온이 발생하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야 없는 법인데
이곳 평상에 드러누웠을 땐 확 트인 공간에서 절대로 잠들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답지 않게 나도 까무룩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숲의 심신 안정 효과가 그만큼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

아쉽게 휴양림을 떠난 우리는 공항까지 21분 걸린다는 네비게이션의 말을 믿고 시간을 안배했건만
마지막에 연료탱크를 꽉 채워 렌터카를 돌려줘야하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마지막 주유소를 지나치는 바람에 다시 공항에서 빠져나와 뺑뺑도는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무사히 차를 넘길 수 있었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건 제주도 휘발유 값이 서울보다 훨씬 싸다는 것!
서울에선 2천원이 넘는데, 제주도는 리터당 겨우 1810원!
연료통을 가득 채우면 거의 만원 가까이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졌다.  +_+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국내여행이지만 공항에서 면세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한데
한도액이 40만원이다보니 아주 값비싼 명품 가방같은 것들은 있지도 않고 주로 화장품과 선글라스 정도인데도 사람들이 완전 미친듯이 쇼핑을 하더군.
나도 화장품을 사기는 했지만 대단히 정신없는 도깨비 시장 같은 분위기라 오래 구경하진 못할 듯했다.

다들 몹시 피곤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들 꾸벅꾸벅 조는 분위기였는데, 돌아오는 한성항공은 착륙을 앞두고 어찌나 불안하게 흔들거리는지 뱃속과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고 설상가상 통로 반대편에 앉은 몰상식한 인간이 계속 휴대전화를 끄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어 <다이하드>에서 몰래 기내에서 전화질하는 기자에게 주먹질을 했던 브루스 윌리스 부인의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아는 여자>에서 동치성 부모님이 기내에서 동치성이랑 통화하다 꽝 추락사하는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물론... 김포에 무사히 착륙했으니 이렇게 후기를 올리고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내 몰상식 비율을 봐서라도 비행기 같은데선 아예 휴대폰 전파가 안잡히게 해야하지 않을까 공연히 부르르 주먹쥐고 떨었었다.
-_-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비행기 이착륙할 때 매번 불안하지만, <그래도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보상금도 많이 나오잖아>라고 위로하며 자신을 달랬었는데 저가항공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쩐지 보상금도 적게 나올 것 같아 앞으로는 더더욱 좀 덜 흔들리고 안전한(확실하진 않지만;;)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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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주도 3

여행담 2008. 8. 5. 14:03
셋쨋날(2008. 7. 31)은 드디어 내가 우도에 발을 디디는 날이었기에 더욱 설렜다.
스물한 살 이후 제주도엘 꽤 여러번 가봤지만 우도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 수학여행이나 패키지 여행상품엔 우도행이 포함되지 않았었고 나중에 렌터카를 빌려 제주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됐을 땐 늘 날씨가 나빠 배를 탈 수 없거나 시간이 촉박해 매번 우도를 포기해야 했는데
우도에 하필 국내 유일의 산호해변이 있다는 말에 더욱 동경을 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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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다 못해 검은 머리가 지글지글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태양과 새파란 하늘 아래 우도행 배는 더욱 푸른 바닷물을 헤치고 출발했고,
방파제 위에 마주보며 서 있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성산항을 빠져나갔다.



















돌아보니, 일년 중에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 절반도 안된다는 한라산이 저 멀리서 우릴 배웅하듯 구름을 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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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항에서 빤히 건네다보이는 우도는 어느새 우리 눈앞에 나타났고 역시나 제일 먼저 빨간 등대가 눈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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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우릴 반기는 건 검은 바위 해안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갈매기들.
서해안 갈매기는 새우깡에 목을 매고 기를 쓰며 달려드는 데 반해 제주도 갈매기들은 인간들이 귀찮다는 듯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

나름 서둘러 나선다고 생각했지만 우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2시.
가장 뜨겁고 더운 시간에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돌아야 한다니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넉넉하게 마지막 뱃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빌린 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 초보자가 어련하겠나. 출발 직후 처음 만난 번잡한 삼거리에서 다가오는 트럭을 피하려던 나는 그만 어이없게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져 시멘트 차단벽에 무릎을 갈았다. 나중에 보니 바지에도 살짝 구멍이 났더군. -_-;;
그나마도 이후엔 피를 보는 사고는 없어 다행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세운 곳은 기대했던 대로, 하얀 산호가 깔린 해변이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볼 수 있다던  서빈백사 해수욕장. 봄에 동생이 사진에 담아왔을 때만 해도 날이 흐리긴 했어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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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도에 간 지우











































미세하게 부서진 돌멩이처럼 새하얗고 동글동글한 산호 백사장은 똑같았으나
사람들이 들어가 휘저어 놓은 바다는 해초들이 떠올라 에메랄드빛은 커녕 뿌연 미역국 같았다. +_+

실망을 애써 감추고 다시 해안도로로 페달을 밟으니 드디어 백사장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옥빛 바다를 발견할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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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앞에서 풀을 뜯고 있는 예쁜 어미말과 새끼말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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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다님과 벨로가 실제로 말을 타고 작은 마당을 한바퀴 돌며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벌써부터 기진맥진해진 나는 그늘에서 기력을 회복한 뒤, 근처 정자에서 전날 내기했던 대로 우도반점에서
자장면을 배달해 먹고는 잠시 행복해했으나 4시 넘어 늦은 점심을 먹고난 뒤의 체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다행히 우도의 절반은 돌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햇빛은 숨막히게 뜨겁고 어느덧 맞바람까지 치고 있는데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계속해서 일행들보다 최소 50미터는 뒤쳐져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막판 고비인 언덕이 시작되었으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전망대가 있을 법한 우도 꼭대기의 등대 주변에서 잠시 쉴 때는 거의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득하고 혼미했던 나의 정신이 반영된 듯 그 때 찍은 사진은 이렇게 뿌옇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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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미 상당히 얼이 빠져 헉헉대던 나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선 난간 기둥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깜박 잊었다가 나중에 자전거 세워둔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기억해내고 후다닥 다시 가져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알만하다.

우도를 자전거로 1시간이면 돌 수 있다는 말은 확실히 거짓말이다.
우리는 서빈백사 해수욕장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나중의 언덕 고비를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반대방향으로 돌았더라면 초반부라 힘이 더 있기는 했겠지만 더 오랜 시간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야했을 터.
중간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한참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중간중간 쉰 시간까지 합해서 꼬박 3시간 반이 걸렸는데, 아마 마지막 배를 놓쳐선 안되며 5시반까지 자전거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나 혼자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아니, 앞으로 다시는 우도를 자전거로 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ㅠ.ㅠ
지난 봄 자동차로 우도를 돌아보았던 막내동생은 내가 이번에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일주했다고 하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우도 자전거일주는 남들에겐 별것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겐 철인3종경기 못지 않은 레이스였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언덕을 오를 땐 첫날 느루를 타고 나갔다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어지러움증도 느껴졌으므로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사례를 할 터이니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어달라고 부탁을 할까,
트럭을 불러서 자전거를 보낸 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갈까,
일행들은 먼저 마지막 배로 돌려보낸 뒤 나는 우도에 남아 어디서든 일박을 하고 다음날 합류할까,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했었지만, 결국엔 무거운 몸과 자전거를 이끌고 마지막 언덕을 올랐고
생존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후 우도 항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배에 올라 성산항으로 돌아오던 과정은 과음 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단편적이다. 선실에서 다짜고짜 드러누워 늘어져 있던 모습을 벨로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지 않았다면 내 몰골이 얼마나 흉측했는지 몰랐을 듯.


성산항에서 가까운 섭지코지는 일몰이 가까운 시간에 가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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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유명한 건축물을 보겠다며 일행들은 검은 오솔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우도 이후 체력이 고갈된 나는 뒤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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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난간에 앉았다가 옆을 돌아보니 섭지코지의 또 다른 등대와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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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시나브로 기울어가는데 일행들은 돌아올 생각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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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이라 실제보다 어둡게 나와서 그렇지 아직 꽤나 밝았고, 사실은 일행들도 금세 돌아왔음 ^^;;)

섭지코지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9시까지 운영한다는 콘도 식당에서
<활어해물탕과 가마솥밥>을 먹을 일념에 열심히 달려왔으나 너무 늦어 방에서 사발면, 사발우동 따위로 저녁을 떼워야했지만 별로 배고픈 줄도 모르는 피로 뒤끝이라선지 그것 또한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일행들은 또 다시 마지막 밤까지 포켓볼 열정을 불태우러 나갔지만 나는 홀로 남아 소파에서 뒹굴며 맥주를 홀짝였는데, 당연히 쏟아질 줄 알았던 잠은 놀랍게도 피로에 지친 마지막 밤까지 나를 배신하였으니... 오후 늦게 우도에서 원샷했던 커피 탓을 해보아도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뒤였다. 쓸데없이 예민한 잠버릇은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는지 원...
암튼 그렇게 제주도의 마지막밤은 광란의 음주나 유희 없이 소근소근 가벼운 맥주 한잔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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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주도 2

여행담 2008. 8. 4. 17:10
사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에 나에겐 끝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원서 읽고 리뷰 쓰기를 죽도록 싫어하긴 하지만, 지난 원고를 워낙 늦게 넘겼던 터라 벌 서는 셈치고 출판사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넉넉하게 2, 3주 동안 소설을 한 권 읽고 검토서를 보내달라는 약속날짜가 바로 제주도 출발 직전의 월요일.
그러나 또 내가 누군가.
원고 마감일에 관한 한 이미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녀가 된 지 오래.
제주도 가기 전에만 보내면 되겠거니 차일피일 미루며 영화보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사먹으러 다니며 실컷 놀다간 또 다른 책 역자후기 때문에 일주일 또 낑낑댔으니, 출발일 전날 새벽 3시 반까지 검토서를 정리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책을 싸들고 가자 결심하고 말았다.

겨우 4시간 자고 일어나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고 밤중에 일행들과 맥주도 한 잔 걸친 셈치고는 새벽까지 꽤나 양호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역시 습성을 속속들이 잘 모르는 일행들과의 여행 때문에 소심한 인간답게 퍽 긴장을 했던 모양인데다, 더 늦기 전에 검토서를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 부담없이 놀아야겠다는 욕망이 작용한 듯했다.
해서 모두들 잠든 새벽 (실은 닌텐도 동물의 숲에 심취한 벨로가 게임하는 소리가 딩동딩동 꽤나 오래까지 아어지긴 했지만;;) 게으름녀의 여행 첫날밤은 일과 함께 3시 반이 넘도록 이어졌다. ㅠ.ㅠ
원래 계획은 일을 끝내는 대로 클럽하우스로 걸어가서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컴퓨터로 문서를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에 숲속으로 난 꽤 먼 오솔길을 홀로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해서 또 다시 눈을 붙였다 떴다 4시간쯤 토끼잠을 잔 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는
일행들이 일어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올 심보로 몰래 카드 키를 들고 컴퓨터로 향했으나...

애당초 검토서가 늦어졌던 이유, 출간을 권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론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으니
타이핑을 다 끝낸 뒤에도, 결정적인 검토 소견을 마무리하지 못해 전전긍긍 급기야 일행들이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 외출준비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 때까지 2시간을 넘기고서야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기상청의 날씨예보 어긋나기는 제주도에서도 어김이 없었고
오전오후 비올 확률이 각각 60%나 된다는 예보와 달리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에 우린 셋쨋날로 미뤘던 해수욕을 전격적으로 당겨 즐기기로 결정.
미리 수영복을 챙겨입고 놀기 가장 좋다고 벨로가 추천한 협재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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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했고, 공기가 맑기 때문인지 제주도 하늘의 구름은 늘 손을 뻗으면 잡힐듯 낮게 깔려 바람따라 떠돌았다.



허나.. 이틀 내리 수면부족에 시달린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리 없으니, 놀랍게도 협재 해수욕장에선 사진을 단 한장도 찍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ㅠ.ㅠ
완만하고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옥빛 바다, 그 주변에 어우러진 검은 현무암의 해안,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초록과 연둣빛 비양도의 모습을 남겼어야 하는 건데...
미치도록 뜨거운 햇살 아래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가방도 지키고 뙤약볕 아래 우산을 쓰고서라도 어떻게든 눈을 붙여볼 요량으로 홀로 남았으나 쓸데 없이 예민한 인간이 그런 해변에서 잠들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잘못이지.
더위에 헐떡이다 잠시 바다에 몸을 식혔다가 또 금세 돌아와 망연자실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벨로는
<애들 노는 거 지키는 엄마 같다>며 정곡을 찔렀다. ^^;
실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심 나이가 들면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재미도 줄어드는 것인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날은 암튼 덥고 피곤하고 가방과 돗자리를 지키는 책임감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 마냥 심신이 늘어졌던 것 같다.
암튼 경사가 완만해서 서해안처럼 가도가도 물이 얕고 깨끗하고 파도도 적당히 치는 협재 해수욕장은 가족단위로 파도타기에 아주 좋은 해변이었다. 과거에 함덕해수욕장과 하얏트 호텔쪽 중문 해수욕장에서 놀아본 적이 있었는데 중문은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굵어 발바닥이 좀 아팠던 반면, 함덕 해수욕장은 모래가 거의 밀가루 수준으로 곱고 백사장이 넓어 흡족했었는데 제주도에서 해수욕하려면 협재, 함덕처럼 북쪽 해변이 놀기 좋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오후들어 백사장에서 시켜먹은 '주황색' 치킨 한 마리와 미리 싸 간 천도복숭아로 점심을 떼운 우리는
주섬주섬 해수욕을 마무리하고 차디찬 물로 바닷물과 모래만 대강 닦은 뒤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다들 최대한 여유롭고 헐렁한 일정을 목표로 삼았던 데다 대체로 무얼 하든 다 좋은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선보였으니, 매번 가장 어려운 점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었던 듯. ^^

바닷가에 가서는 반드시 해산물과 회를 먹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엔 회를 못 먹는 일행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거나한 횟집을 가는 것은 당연히 횡포였기에
비교적 저렴하고 푸짐한 동복리 해녀 잠수촌의 포장마차 같은 간이 횟집엘 가자고 내가 주장했는데
그리도   푸짐하던 해녀 할머니들의 인심도 성수기 관광철엔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걸 실감하여 마음이 상했다.
4년 전 봄에 갔을 땐 냉장고 대신 바닷가에 담가 놓았던 그물에서 건져올린 해삼과 멍게를 푸짐하게 잘라주고도 무조건 한 접시에 만원이었으며, 삶은 문어와 구운 석화도 대단히 넉넉했었는데 이번엔 아예 석화도 없고 접시는 하나같이 바닥에 깔린 정도.
내 마음도 상했지만, 굳이 해산물 싸게 먹자고 거기까지 데려간 일행들에게 미안해서 더 화가 났다. -_-;;

이어 보성 녹차밭보다 훨씬 더 넓고 볼만하다는 지인의 귀띔을 들었던 터라 오설록 녹차박물관에 가자는 내 의견에 다들 그러마고 하긴 했는데, 예상과 달리 입장료가 없는 건 좋았고 뜻밖에 10년만에 대학동창을 만나기도 했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만 바라본 제주 녹차밭은 큰 감흥이 없었다.
골이 좁은 밭고랑으로 일일이 사람들이 들어가 차잎을 따는 광경을 상상만해도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차 농사의 어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비경은 역시 바다와 오름이라는 사실만 백만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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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나 부실했던 둘쨋날의 먹거리에 그나마 식탐의 기쁨을 준 건 저녁에 찾아간 유리네 식당의 갈치조림.
늘 관광버스 줄지어 서 있고 왁자지껄 요란하여 순번을 기다리기 일쑤인 그곳에서 우린 운 좋게 가자마자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고 3만5천원에서 전격적으로 값을 내려 3만원(공기밥 값은 따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으며 다들 공기밥을 후딱 비웠다. 딸려나온 게장과 다른 반찬들도 괜찮았는데, 시끄럽고 번잡하긴 해도 제주도 갈치조림은 역시 유리네만큼 맛있는 데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불붙은 포켓볼 열정...
운동신경 젬병인데다 기억력도 나쁜 나는 소싯적에 시도해 본 당구와 포켓볼을 평생 멀리하며 살리라 다짐했건만 콘도에 마련된 당구 테이블을 발견한 일행들은 전의를 불태웠고...
난생 처음 쳐본다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키드님과 지다님, 그리고 다른 데 가서는 형편없는 실력이라지만 우리들에겐 완전고수로 보였던 벨로의 내기 본능에 편승하여 얼떨결에 시작된 2:2 게임에서 막상막하의 막당구 내공을 보이던 라니와 지다의 하수팀은 결국 우도반점 자장면 내기에서 분패하고야 말았다.
팔다리가 짧은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느라 낑낑거린 나는 이미 두번째 게임 즈음에서 지루해져 하기 싫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낮에 해수욕장에서 비교되었던 파도타기의 열정과 더불어 나의 나이듦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ㅜ.ㅡ
 
어쨌거나 둘쨋날도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벌써 이틀이 지났다는 사실에 마구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2008.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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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주도!

여행담 2008. 8. 4. 15:51
나는 웬만한 동남아시아의 휴양지보다 제주도가 백번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 가격이면 차라리 외국을 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가격이면 차라리 제주도를 가지!>라고 추천한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맑은 옥빛 바다와 절경이야 비슷하다 쳐도, 더 가깝지, 훨씬 더 깨끗하지, 더 안전하지, 말 잘 통하지, 직접 운전해 돌아다니든 택시를 부르든 싼값에 맛난 음식 골라먹을 수 있지, <기브 미 원 달라>라고 외치며 쫓아다니는 눈동자 풀린 아이들이나 기념품을 팔려는 가난한 현지인들을 감당할 필요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가깝고 가기 쉽지만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라는(대학 수학여행 때 목포에서 배 타고 한 번 가봤는데 ㅠ.ㅠ 8시간이던가 끔찍이도 오래 걸렸던 뱃길로는 두번 다시 제주도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어쩐지 제주도는 내게 늘 동경과 그리움의 장소이건만 이번엔 무려 4년만에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한성항공은 저가 항공사답게 작고 허름한 비행기로 (내가 싫어하는)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만끽하게 해주었으나, 기내에서 물 한잔도 안 주더라는 '카더라' 통신과는 달리 주스와 생수는 한잔씩 마시게 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큰 비행기는 게이트에서 곧장 탈 수 있지만 작은 비행기에 배정되었을 땐 공항내 버스를 타고 활주로까지 친히 나가야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게이트에서 다시 버스로 비행기까지 가야하는 건 그러려니 했으나 문제는 비행시간. 예정 시간은 1시간 5분이었지만, 갈 때 올 때 실제 걸린 시간은 각각 1시간 반이었다. -_-;;

째뜬 벨로의 신분증 사건과 예약없이 극성수기에 렌터카 확보하기 과정에서 식겁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으나
모두 극적으로 해결되어 꿈결같은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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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투덜일기 2008. 8. 2. 23:40
여행 후유증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발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예상은 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복귀는 참으로 구차하고 남루하다.
피곤과 우중충한 날씨를 핑계로 온종일 뒹굴거리며 잠을 잤는데도 여전히 졸린 건 계속해서 일상 복귀를 거부하려는 생체시계의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강행군을 한 것도 아닌데, 심정적인 친근감은 깊어도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쌓은 시간이 적은 이웃들과의 여행이 살짝 부담스러웠는지 긴장된 몸은 나흘 내내 취기와 피로에도 예민한 더듬이를 내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시체처럼 꿈쩍않고 한 열시간쯤 계속 자고 싶은데, 여전히 쏟아지는 건 토끼잠뿐이라는 게 억울할 지경.
원래부터 뒤끝 있는 인간이건만 여행 뒤끝은 한번도 예사롭게 넘기는 적이 없다.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듯 제주도를 담아온 사진조차 내려받을 엄두가 안난다.
주말을 핑계로 내일까지 버벅댈 작정.

막연하게 허전하고 서글픈 마음은 캔맥주로나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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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본능

하나마나 푸념 2008. 6. 26. 17:53
작업실과 우체국과 마트에 갈 일이 있어서 잠시 외출을 했었다.
또 오래도록 버려져 있던 작업실의 탁한 공기 속에 관리인 아저씨가 들여놓은 우편물을 풀어
다시 반송 꾸러미를 만들어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에 정말이지 나는 그 길로 차를 몰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라디오에선 신나는 음악이 흘러 나왔는데, 여름 뺨치는 더위에 에어컨까지 켜고 있으니 얼굴을 잔뜩 가리는 선글라스 하나 걸쳐쓰고 나무향기 그윽한 숲이든 비린내 나는 바닷가든 잠시라도 현실의 짐을 벗어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순간이동하고 싶었다.

현실은 너무도 짜증스럽다.
마감일에 쫓기는 와중에 연일 무수리 생활에 쪽잠을 잤더니 얼굴에 빨간 뾰루지가 다섯개나 돋아나 가관이다.
척추골절은 치료가 끝났지만 골다공증이 무서워 몸쓰기를 두려워하는 엄마는 다시 예순여덟살 먹은 큰애기로 돌변했다. 당근과 채찍 요법을 쓰며 엄마를 채근하고 있는데 자꾸 채찍 쪽에 강도가 실린다. -_-;;
낡은 다가구주택은 시세를 알아보니 두채를 팔아도 두 모녀가 살 만한 작은 아파트를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두들겨도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철옹벽 같은 정부는 결국 쇠고기 고시를 강행했고
촛불을 든 사람들은 연일 언론에서 폭력 시위자로 매도당하더니 초등생 애엄마 가릴 것 없이 잡혀갔단다.
대체 이젠 무슨 방법이 남은 것인지 모르겠다.

짜증나는 현실 속에서 나의 질주본능은 결국 비겁한 도피본능이다.
결국 도망치지도 못할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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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투덜일기 2008. 6. 24. 12:29


대체 어쩌다가 아파트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주거공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거동 불편한 엄마 때문에 동생네 아파트에서 일주일째 얹혀 살면서 앞으론 나도 이런 공간에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을 열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애정이 생기질 않는다.
집값과는 전혀 상관없다지만 북한산을 끼고 있는 위치 때문에 동생네 아파트는 공기도 청량하고 몇 걸음만 옮기면 경치 좋은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있으며, 조경 잘 된 아파트 단지가 으레 그러하듯 솔직히 우리집보다 주변에 나무도 많다. 그뿐인가, 넓은 주차공간은 명절때마다 친척분들이 골목골목에 차 세우느라 골치거리인 우리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쓰레기 배출 요일과 상관없이 지저분한 쓰레기를 내놓는 얌체들 때문에 골목 어귀가 지저분할 때가 많은 우리 동네와 달리 당연히 주변도 깨끗하다. 14층이나 되는 높은 곳임에도 무시무시한 계단 대신 경쾌한 안내 멘트가 나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 그만이니 아직까지 걸음 부실한 엄마에게도, 계단 공포증 환자인 나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일단 정전이나 엘리베이터 고장의 경우는 염두에서 제외하자)
그러나 이렇게 아파트의 장점을 모두 주워섬겨보아도 나의 문제는 콘크리트 괴물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듯한 아파트 단지가 나를 옥죄는 것 같다는 폐쇄공포증을 느낌과 동시에 발가벗겨져 거리에 내던져진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눈이 나쁜 편인데도 주방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려면 건너편 아파트 거실에서 빨래를 너는 아줌마나 장난감 말을 타고 노는 아이가 보인다. 그렇게 얼핏 들여다보이는 건너편 아파트의 살림살이는 놀랍도록 똑같다. 왼쪽 벽엔 소파가 있고, 오른쪽 벽엔 TV가 놓여 있고 그 가운데쯤엔 식탁 한 귀퉁이가 멀찍이 보인다.
수십층 빌딩에서 층층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책상에 앉아 있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회의를 하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절반 이상 유리로 된 건물의 건너편에서 재미있다 여기며 한참을 구경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 편히 쉬는 공간에서도 층층이 내 위와 아래에 사람들을 이고 깔고 지내야한다는 것이 왜 이리 불편할까. 물론 여행지에서 콘도나 호텔에서라면 수십층 겹겹이 쌓인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잠들고 깨어날 수 있었다. 왜냐고? 그곳은 <여행지>였으니까. 얼마쯤 지나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밑자락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잠자리가 설어 선잠을 자는 며칠이 이어진다 해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동생네서 지내는 기분도 딱 여행온 느낌이다. 병원짐을 담았던 여행용 트렁크가 방 한구석에 놓여 있기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다. 처음엔 여기서 지내는 불편함이 낯선 잠자리와 더부살이의 부담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올케가 아무리 잘해주고 편히 대한다 해도, 익숙한 내 물건들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 내집처럼 편할 수야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기묘한 불편함은 잠잘 때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조카들이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 가고 올케는 볼일을 보러 나가, 낙상 사고가 나기 전의 모녀가 살던 우리 집에서처럼 온종일 쿨쿨 잠만 자는 엄마와 나뿐인 상황에도 막연한 답답함과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물론 여행이 아니므로 여행이 주는 즐거운 설렘과 흥분 따위는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견디기가 더욱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드디어 이따가 집으로 돌아간다.
계단이 소름끼치더라도 일단은 집에 가면 반갑고 편하고 숨이 잘 쉬어질 것 같다. -_-;;
어쩜 이렇게 촌스러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이지 아파트란 공간은 내 마음에 차질 않는다. 계단 많은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긴 해야할 터인데, 아... 어떡하지.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계단은 무섭고, 아파트는 싫고, 한옥을 장만하기엔 돈이 턱없이 모자랄 테고...
아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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