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87건

  1. 2010.04.26 사흘간의 일본 여행 둘쨋날 23
  2. 2010.04.20 사흘간의 일본 여행 첫날 22
  3. 2010.04.14 生還 16
  4. 2010.04.10 짐을 싼다 9
  5. 2010.04.07 꿀빵 먹기 힘들다 26
  6. 2009.12.14 타락마을 엠티 후기 19
  7. 2009.12.14 순무 13
  8. 2009.12.11 엠티의 역사 11
  9. 2009.06.23 가방싸기 14
  10. 2009.06.19 ktx 15

마침 그때를 연상시키듯 비도 내리고 있겠다, 여행후기나 마저 올려야겠다.

비바람 속에 첫날을 보내느라 제풀에 지친 모녀는 전날 밤 일본 말도 모르면서 TV를 틀어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일기예보를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일본열도 아래쪽은 죄다 우산 그림이었다. 6시부터 울린 모닝콜에 눈을 떠 커튼을 젖혀보니 당연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 아침 먹기 전 온천욕 한판의 욕심은 내리는 비와 함께 꼬리를 감추었다. 비오는 날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말이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마저 풍겨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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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를 더 미루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는 조바심에 틈틈이 적어놓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다 또 발동 걸리면 일 미뤄두고 포스팅에 열을 올리겠지만서도, 사진 크기 일일이 줄이고 올리는 게 번거로워서라도 하루씩 정리하는 게 좋겠다. 겨우 사흘간의 여행이 심리적으로는 일주일 이상 길게 느껴졌으니, 아마 후기도 쓸데없이 투덜투덜 주절주절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만의 여행이었기도 하니까.


뭐니뭐니해도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따라가서 제일 싫은 건, 내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가이드가 정해준 시간에 맞춰 헐떡거리며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도 일부러 꾸며놓은 거리 안쪽으로 그냥 동네 구멍가게 같은 잡화 식료품점에서 나 어릴 때 '미깡'이라며 사먹던 옛날식 밀감도 발견했고, 시골스러운 쌀집도 구경하며 신기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다음 코스를 위해 억지로 버스에 올라야 했다. 으휴.

동해에 인접해 일몰이 절경이라는 신지코 호수가 다음 행선지였으나, 비바람치는 오후에 일몰은 무슨 일몰. 가운데 소나무섬을 만들어놓았으니 그거라도 구경하라는 말에 버스에서 내려 한 다섯발자국 가다가 사진 한방 찍고는 그냥 돌아섰다. 그래도 이 사진속의 두 연인은 젊어서 비바람 무릅쓰고 한참이나 다녀오더라마는...

동해바다 내려다보러 올라간 그 다음 전망대도 당연히 나는 시큰둥했고, 어서 온천료칸에 가서 푹 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코스정식 카이세키 요리에 대한 기대도 허기와 함께 부풀어올랐고... 대체로 요번 일행들의 목적은 온천료칸 체험인듯 했으므로, 시답잖은 관광 코스는 한둘 정도 빼고 푹 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혹시라도 불만을 품은 사람이 나중에 여행사에 항의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그 바람을 실천에 옮길 수는 없었다. 괜찮은 온천 료칸 골라서 푹 쉬는 여행을 계획하려면 그저 호텔팩이나 자유여행밖에는 방법이 없는듯.

<명탕순례>랍시고 우리가 첫날 간 곳은 타마즈쿠리 온천. 돗토리현 공항에 내리긴 했어도 이미 어느 시점엔가 시마네현으로 넘어가 그곳 주소는 시마네현이라고 했다. 온천 역사가 1300년이나 된다고 해서 저녁이나 아침에 짬 내서 온천마을 산책도 할 작정을 품고 떠났으나, 여행 가서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어본 역사가 없으니 당연히 패스~. 게다가 반나절 만에 이미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듯한 왕비마마를 모시고선 그저 온천욕이나 할밖에 아무것도 계획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 숙소인 마츠노유 료칸

료칸 안뜰 -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온천욕탕이다


원래 내가 꿈꾸었던 온천료칸 체험은 역사가 몇백년씩 되는 소규모 전통 료칸에서 기모노를 차려입은 오카미상의 깍듯한 시중을 받아보는 것이었으나 ㅠ.ㅠ 그런 곳은 단체손님을 받지 않는 듯, 패키지 상품으론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공권과 숙박 예약만 대행해주는 자유여행 상품은 더러 있었으나, 일본말도 못하면서 왕비마마를 모시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진즉에 포기한 뒤, 그나마 좀 괜찮은 온천료칸 상품을 검색해본 터였다. 숙소 건물에 들어가자 마자 풀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느껴지더니 방에 들어가자 확실히 다다미방의 향취가 느껴졌다. 바로 이거야, 싶은. 온천료칸에 가면 저녁 먹기 전에 먼저 온천욕부터 하는 거라는데, 우리는 체크인 시간이 늦어 곧장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내가 꿈꾸었던 카이세키 요리 또한 다다미방으로 가져와서 차려주는 것이었으나, 식당으로 내려가야 했으니 또 한번 실망...

이것이 카이세키 요리


그렇다고 대규모 식당에서 객실손님 전체가 와글와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을 위해 따로 마련된 소규모 연회실 같은 곳에서 각자 한 상씩 차려진 저녁밥을 먹는 식이었고,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종업원들이 깍듯하게 시중을 들기는 했다. 열심히 외운 오미즈(찬물)이며 오차(녹차)를 달라고 입도 떼기 전에 눈치 빠르게 따라주시고... 일본인들의 친절함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매번 납작 엎드리듯 무릎 꿇고 시중드는 건 어째 영 불편하더라.
암튼 지역특산물인 게요리, 쇠고기 스테이크, 스키야키, 사시미, 소바... 온갖 진미가 나오는 것으로 기대했던 코스정식의 겉모습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맛이!!

우리나라 활어회와 달리 일본 사시미는 약간 숙성한 맛을 최고로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닷가에 가까워서 특선요리가 생선이란 것쯤은 짐작했음에도, 첫날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나는 허기를 빵과 과일로 달래야했다.
나말고도 열심히 큼지막한 카메라를 가는 데마다 들이대는 여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괜스레 자꾸 사진찍는 게 민망해서 얼른 한장 누르고 마느라 저 사시미 위에 덮인 종이도 걷지 않아 좀 민망하다. 아무려나 네다섯 점 올려 있던 생선회는 비려서 먹다 남겼고, 게다리는 차가웠으며 특히 제일 위 가운데 놓여있는 정체불명의 요리는 생선과 가지, 두부를 연잎 같은 데 싸서 찐 거였는데 어찌나 비린지 단박에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ㅠ.ㅠ 왼쪽 위 뚜껑 덮여 있는 스키야키는 어찌나 짠지 아래 있던 날 달걀을 풀어 넣어도 간이 맞질 않고 나머지 밑반찬은 차거나 비리거나 밍밍해서, 첫날 저녁 제대로 먹은 건 하얀밥과 미소시루와 쇠고기 몇점이 다였다. 카이세키 요리 엄청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곳만 실망스러운 걸까? 우쒸...

식탐녀의 상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방으로 돌아와 발견한 푹신한 이불 두 채였다. 다녀와서 알아보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료칸도 식당은 별채에 마련해두고, 아침 저녁 밥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 이불을 개고 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듯하다.
이불을 보니 하루만에 너무 피곤해서 온천이고 뭐고 한숨 먼저 자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써 몸과 마음을 추스려 유카타로 갈아입은 뒤 온천으로 내려갔다. 굳이 목욕탕에 귀중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겠지만, 어쨌든 일본 온천에는 열쇠로 잠그는 라커 없이 그냥 바구니 아니면 나무로 짜놓은 칸막이에 옷을 벗어놓는다. 들어갈 때 자기 번호만 눈여겨 보면 그만이다.
온천 성분 같은 거 전혀 모르긴 하지만, 완전히 말간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대강 씻었는데도 머리칼과 살결이 매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료칸에 딸린 온천탕이므로 규모는 당연히 그리 크지 않고, 탕이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는 일반 목욕탕 정도를 상상하면 될듯하다. 까마득한 옛날에 온양온천이랑 강화도 해수온천에 가본 적 있는데, 거기나 여기나 느낌은 다 비슷했다. 노천탕도 있었지만, 춥고 피곤해서 우린 나가볼 엄두도 내지 못해 그건 좀 아쉬웠다. 물이 다르다고 칭찬을 거듭하며 모녀는 다음날 새벽에도 한번 더 온천욕을 하자고 작심했지만 ㅋㅋㅋ 막상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당연히 온천욕 대신 잠을 더 욕심냈다. 아무렴, 잠이 더 중요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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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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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還

여행담 2010. 4. 14. 14:44
일요일에 떠나 어제 무사히 돌아왔음. 동생들은 사흘이 후딱 갔다면서 벌써 와서 아쉽겠다고 위로했지만, 모녀의 2박3일은 어찌나 길었는지 원래 예정대로 3박4일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도착하는 날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바람에 소망하던 꽃비는커녕 육중한 노친네 부축하고 우산 받쳐들고 다니느라 무수리는 완전 녹초 상태로 몸살 직전까지 빌빌대야 했다. 게다가 어제 인천공항에 내리니 갑자기 겨울 날씨! 삭신이 쑤셔서 어젯밤부터 오늘오전까지 두 모녀는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 끙끙 앓았음. ㅠ.ㅠ

동해바다에 면한 곳이라 느낌이 속초나 강릉 즈음으로 여겨지는 톳토리현, 시마네현 일부를 보고 온 주제에 일본이 어쩌니 저쩌니 말하는 건 가당찮은 짓이겠지만 어쨌거나, 처음 가본 일본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 생각보다 벚꽃이 별로 없더라. 끝물이기도 하고 비가 와서 많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아직 벚꽃축제기간이라는데 공원에 서 있는 벚나무가 그리 많지도 않았음. 진해나 여의도처럼 일본에도 일부 대도시에만 대규모로 벚꽃길이 조성되는 건가? 
- 화산지역이라 당연하겠지만, 일본 온천물 우리나라 온천물보다 좋더라. 온천욕 별로 안 좋아해서 효능 따위 잘 모르는 편인데, 머리감고 나서 곧장 매끈거리는 머릿결이 느껴졌음. 떠나는 날 아침에 한번 더 담그지 못하고 돌아온 걸 모녀 둘 다 후회스러워했다. ㅋ (나이가 들면서 온천이 좋아지는 걸지도.. -_-;;)
- 다다미방으로 된 온천료칸 체험, 은근 매력있다. 다다미를 해마다 바꾸는지 어쩐지 방에 들어가자마자 싱그러운 돗자리 냄새 같은 다다미 냄새가 풍겼고, 저녁 먹으러 다녀오는 사이에 다기 놓여있던 테이블 치우고 이불 깔아놓는 서비스 마음에 들었음. 
-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음식맛과 염도에 차이가 있으니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행의 현지음식은 절반 정도 내 입에 맞지 않았다. 모험정신 강하고 식탐 많은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나. 일행 중엔 컵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거의 연명한 이도 있었다. ㅋ 
- 귀엽고 아담한 경차가 정말 많더라. 경차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다는 말만 들을 때랑 직접 보는 거랑 역시 느낌이 다르다.
- 전통과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전국 어딜 가나 도시든 시골이든 볼썽사나운 아파트와 시멘트 양옥집 투성이인 이 나라와 달리, 오래된 일본집스러운 느낌의 나무로 된 집들이 참 많았다.

본격후기는 슬슬 밀린 일 눈치 봐가면서 올리도록 하겠음. 여행은 늘 좋지만, 집에 돌아오는 건 더 좋다. 예전엔 판에 박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싫어서 항상 여행 끄트머리에 느끼는 아쉬움이 몹시 컸던 것 같은데, 이번엔 진심으로 귀가를 기다렸다. 오죽하면 제목이 <살아돌아옴>이겠나. 집에 와서 기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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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싼다

투덜일기 2010. 4. 10. 02:03

사흘간의 탈출. 최초의 모녀 여행. 최초의 일본 여행. 온천료칸 체험. 짐을 싼다.
왕비마마 칠순기념으로 흐드러진 벚꽃구경을 목표로 했으되 마감 눈치보느라 어물쩡거리며 자꾸 예약날짜 바꾸는 사이 좋은 날짜 다 놓치고, 3박4일 로망대신 2박3일로 줄어든 일정으로, 과연 벚꽃이 남아있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계절에 암튼 간다.

전통료칸에서 무조건 편하게 쉬면서 맛난 거 먹고, 쏘다니는 관광은 최소한인 조용한 상품을 찾다보니 이름하여 <명탕순례 미각기행> ㅋㅋ. 지리에 워낙 약해 도쿄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돗토리현 요나고. 일왕도 묵어갔다는 료칸이라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며 덜컥 정해놓고는, 필요이상으로 들떠 흥분한 왕비마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며 드디어 짐을 싸고 있다. 나 같은 역마살 인생한테야 여행이란 늘 감당할 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주는 놀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특히 노인들에겐 말 설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험이란다. 여행 뒤끝엔 늘 마음병이 도져 돌아온 울 엄마가 바로 그 케이스. 당신이 가고싶다던 일본 온천 여행이니 과연 이번엔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돌아보니 여행 직전까지 밀린 일에 휘둘리는 건 늘 반복되는 습관이다. 제주도 갔을 때는 아예 일감을 싸가지고 갔었고,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지 아마. 이번에도 가서 쉬면 된다면서, 공항가기 몇시간 전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원. 

아무튼 이번엔 일감은커녕 책 한권도 안 가져갈 거고 순전히 늘어져서 먹고 쉬다 올 테다. 헌데 현지 날씨를 확인해보니 계속 비가 온다네 젠장. 바람에 휘날리며 지는 벚꽃비를 기대했더니, 참 운도 좋다. 나 혼자라면야 비오는 일본 시골 도시도 고즈넉한게 좋기만 하겠지만, 부디 꽃구경 좋아하는 우리 왕비마마를 위해서 단 하루라도 축축한 비대신 꽃비가 내려주길.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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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많은 사람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먹고 싶다고 생각한 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물론이고 나는 누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조차 그냥 허투루 듣지를 않고 담아두었다가 먹게 해주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특히나 왕비마마 및 조카들이 먹고 싶다고 말한 건 왜 그냥 넘길 수가 없는지 원. 물론 건강에 나쁜 먹거리인 경우에는 왕비마마의 지병 걱정에 우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일단 안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비슷한 대체품으로라도 사드리거나 만들어 드리고 후회를 하는 인간인지라 어쩔 땐 저질러 놓고 "내가 미친년이지..."라고 후회할 때가 많다.

3월 24일이었을 거다. 왕비마마의 CT촬영 때문에 꼭두새벽 7시부터 병원엘 가야했고 순차로 이어지는 각종 검사와 진료 때문에 오전 내내 병원에서 살아야했던 날, 아침방송에 문제의 <통영 꿀빵>이 나왔다. 원래 유명한 꿀빵집은 아니었고 최근에 고구마 꿀빵이니 빼때기죽이니 신제품 개발을 해서 차별화를 시켜 월 매출이 2천만원이라는 어느 젊은 아줌마네 꿀빵집 소개였다.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튀긴 것, 단 것, 밀가루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하는 왕비마마는 병원 의자에 앉아 당연히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그 꿀빵을 탐냈다. 오래 전 키드 님과 벨로의 통영 여행 덕분에 한 덩어리 맛을 본 적 있는 나 역시 화면을 보니 새삼 군침이 돌았다. 당시엔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니 한번 시켜먹어봐야겠다 생각했으면서 그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TV에 한번 나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기에 머리 좀 쓴답시고 TV에 나온 꿀빵집 대신 원조 꿀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름도 까먹어서 키드님 블로그에 다시 가서 검색해 알아본 <오미사 꿀빵>을 이번엔 기필코 시켜먹기로 마음 먹은 거다. 헌데 그렇게 맘먹은 인간이 나뿐이 아니더라. 그로부터 열흘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오미사 꿀빵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 처음 며칠간은 트래픽 초과로 아예 홈피 접속도 되질 않더니 닷새쯤 지나니깐 접속은 가능하되, 늘 일시품절 상태다. 주문이 밀려들어 어쩔 수가 없단다. 방송의 주인공이었던 <꿀단지> 꿀빵집도 당연히 마찬가지라 나는 공연히 몸이 달았다. 사실 이 정도쯤 되면 왕비마마는 꿀빵을 벌써 잊고 계실 확률이 높다. 그간 꿀빵 대신 꿀떡을 계속 간식으로 먹어서 단것에 대한 열망이 잠재워졌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젠 내가 오기가 났다!

거의 매일 오미사 분점 홈피에 들락거리며 <재고: 일시품절> 글씨가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으려니, 드디어 어제 수요일 9시에 다시 홈피를 열어두겠다는 공고가 보였다. 으으.. 9시면 내가 잠자고 있을 시간인데, 2주 이상 지났으니 요번엔 오후에 접속해도 성공할 수 있으려나 어쩌려나... 꿀빵 열망이 나를 9시 접속으로 이끌 것인지, 혹시라도 또 기회를 놓치면 다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슬글슬금 꿀빵을 탐냈던 사실까지 잊어버릴 것인지 스스로 궁금하다. 2주 가까이 들인 공을 생각하면 꿀빵 먹으러 조만간 통영 놀러갈 계획이라도 세울 기세다. 왕비마마 다이어트 시키려면 내가 쓸데없는 오기를 버리는 게 옳은데. ㅋㅋ 이렇게 열심히 일이나 좀 하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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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엠티 날이 밝았다. 보란듯이 날씨는 쾌청. 타락마을 주민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빠진다는 징크스는 몇몇 새 주민들의 영입으로 깨진 게 틀림없다. 담날에도 춥기는커녕 하늘에 거의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영상의 날씨라, 명색이 겨울 엠티인데 눈 쌓인 풍경 한 번 못 본 건 아쉬울 정도였다.

약속시간에 맞춰 넉넉히 집을 나서려던 계획은 현관에 놓인 고구마 봉다리를 보며 쿠킹호일에 싸가지고 갈까 말까 또 다시 고민을 하며 무너졌다. 잠자기 전엔 분명 호박고구마가 아니라서 주민들에게 쿠사리를 먹을 게 뻔하다며 안가져가기로 해놓고선 또 망설이는 건 뭔지! 정말 우유부단한 인간... 그래도 고구마 고민으로 마루에서 얼쩡거리느라 하마터면 빠뜨리고 갈 뻔 했던 달력과 증정본은 잘 챙길 수 있었다.
암튼 약속시간 15분 전에 벌써 도착했다는 부지런쟁이 미아의 문자가 날아올 무렵 내 위치는 화곡동. 신호등 운만 잘 맞으면 정각에 도착할 것이라 오만한 자신감을 품었으나 그건 오산. 김포공항에 들어가서도 이마트 찾아 헤매느라 공항을 다시 한바퀴 돌아야 했으니 일행을 만났을 땐 이미 10분 지각한 시간. 된통 키드님의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으나, 다행히 더 늦게 오고 있는 벨로 때문에 무사히 넘어간 듯.
이번 엠티를 기회로 <홀로서기>를 강요받게 된 키드님이 적어온 쇼핑 목록에 따라 각개전투를 하듯 순식간에 쇼핑을 마치고 강화도로 출발한 시간이 얼추 세시 반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강화도라고는 하지만, 약도상 강화대교 건너자 마자 나타나는 초입. 김빠지게 30분 만에 도착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으나 그래도 1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문제는 인간 네비게이션을 자랑할 때 필수인 약도 메모지를 집에 두고 온 것. 그래도 강화도는 여러번 가봤고, 비교적 간단한 약도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는 듯 해 잘난 척 앞장을 섰다. 내 기억으론 <강화대교 지나 강화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 계속 직진하다가 인산저수지 앞 횡단보도에서 우회전. 바로 목적지>였다. 내 기억에서 한 가지 빠진 기점이 있었으니 바로 <안양대학교>.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한 건 좋았는데 중간에 삼거리가 나오며 여러 관광지 표지판이 적혀 있어 잠시 머뭇대느라 시뻘건 노선버스 아저씨한테 길 막았다고 빵빵 위협 구박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키드님과 파피의 문자 조언으로 그만하면 선방했다.

다락방까지 갖추어져 있는 펜션은 꽤나 흡족. 안에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러나 이 지나친 난방은 밤새도록 몇몇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으니... 으으으) 순식간에 과자 몇봉지와 귤을 까먹으며 저녁 먹을 시간을 기다린 우리는 놀랍게도 손이 빠르신 키드님의 양상추와 오이 씻기의 신공으로 <먹고 마시기> 준비를 일사천리로 끝냈다. 반드시 <강화도 호박고구마>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마트에서도 고구마를 안 사고 근처에서 조달하기로 했던 우리의 염려 또한 키드님의 수완으로 해결되어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깔끔하게 제공받았으며, 홀로 고기 굽고 자르고 소금/후추 뿌리는 솜씨까지 모두를 만족시켰으니 그의 홀로서기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대는 하산하시오~.

약간의 문제는 그래도 겨울이라고 쌀쌀한 날씨에 얼른 방으로 돌아와 시작된 2차 음주 자리부터 시작된 듯하다. 연일 이어진 야근으로 피로가 쌓인 벨로는 차안에서부터 틈틈이 눈을 붙이더니 방에 들어와서는 아예 소파에 누워 맥을 못추며 사방에 잠가루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피곤벨로가 초저녁 내내 눈을 반짝이며 깨어있던 순간은 달력 뽑기 이벤트와 타락마을 싼타 키드님의 선물공세 때 뿐이었다. 다크호스로 기대하던 지다님도 배가 아프다며 이불을 배에 두르고 누워 술마시기 보다는 아이팟과 놀기에 더 흥을 보이질 않나, 이미 이전 엠티에서 구토키드의 별명을 습득한 키드님도 초반부의 강세가 급격히 기울며 11시도 되기 전에 살짝 취해 같은 질문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질 않나, 기대주 파피 또한 술집에서 마실 때는 강해도 엠티에선 은근히 약하다며 일찌감치 쓰러질 것을 예고했으니, 이번 엠티를 위해 집에서 간간이 캔맥주로 미리 간을 단련해온 나로서는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벨로를 엠티 내내 <잠만 처자게> 할 수는 없다며 파피가 불끈 주먹을 쥐고 달려나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커피믹스 세 통을 공수해 와 얼른 타먹인 덕분에 뒤늦게 커피파워로 버티기 시작한 벨로를 마구 독려하며, 나는 은근 다크호스 미아와 파피를 술동무 삼아 최소한 2, 3시까지는 술자리를 이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무렵 구토키드는 계속 들락날락 홀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다님은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취침 중.
허나 이미 세력을 장악한 잠의 기운은 한 사람씩 쓰러뜨리기 시작하였으니, 벨로의 커피파워를 깨워놓은 파피가 제일 먼저 자리에 눕고 잠깐 눈을 붙이겠다던 미아도 그 옆에 드러눕고, 남은 사람은 바깥 계단에 홀로 앉아 괴로워하는 키드님과 치뻗는 커피파워를 주체 못하는 벨로와 나뿐.
"실망이야, 실망이야, 다 실망이야"를 외치고 있던 나도 어지간히 취해 있던 터라 키드님을 집안으로 들여 놓고는 자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사이 초인적인 커피파워를 발휘한 벨로는 재빨리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해놓지를 않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나의 잠자리는 키드님이 예고한 대로 격리실 다락방. ^^; 가파른 계단을 한발씩 올라가 누운 건 좋았는데, 아 곧이어 느껴지는 타는 목마름. 아슬아슬 다시 계단을 내려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한 컵 떠가지고 다시 위로 올라가보니 실내 기온이 무려 29도였다. 하필 내 머리맡에 있던 온도계는 계속해서 틱, 틱, 보일러 작동음을 알려주고, 온도를 내려도 여전히 방은 숨막히게 덥고, 목은 마르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생수병에 물을 잔뜩 담아갖고 올라와 자다 깨서 마시고 또 자다 깨서 마시고... 자는둥 마는둥 괴로워하며 문득 깨달은 것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작게 코고는 소리! 아... 나 말고도 누군가 살살 코를 고는구나 누워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무 더워서 다락방 창문을 좀 열어놓고 또 깜빡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막 떠드는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났다. 아직은 깜깜한데 밖에서 일렁이는 손전등 불빛. 건너편 펜션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잔뜩 쏟아져나왔다. 시간은 겨우 5시. 미친 인간들이 새벽낚시라도 가는 듯... 다시 드러누웠지만 여전히 방은 덥고 머리는 아프고 속은 괴롭고... 아 왜 그리도 과음을 했던고. 후회막급이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또 다시 나를 깨운 건 난데없는 알람. 파피가 혼자 상경을 시도해보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피야, 가지마." 미아의 간청이 들리고 그래도 가겠다고 나서는 듯한 파피. 아직 날도 새지 않은 캄캄함 속에 어딜 가겠다는 건지! 나는 또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파란 털모자를 쓰고 굳이 먼저 가겠다고 나서는 파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 혹시 버스 못 타면 다시 와라. 분홍색 곰돌이 탈을 뒤집어 쓰고 자고 있던 키드님도 벌떡 일어나 파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다시 눈을 떠보니 드디어 아침. 미아와 파피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키드님은 간간이 일어나 밖에 나갔다 와선 다시 끙끙대며 앓고... 어라.. 파피 안 갔네? 그제야 내가 손을 흔들어주었던 파피가 못보던 새파란 모자를 쓰고 있었고, 키드님의 분홍색 곰돌이탈도 떠올랐다. 그게 꿈이었구나. 키키키. 하지만 얼굴과 뱃속은 웃을 형편이 아니었다. 으으윽 머리아파~~

아침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깊은 잠을 자면 금방 나아질 것 같은데 이미 날은 밝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소음... 부지런쟁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아침까지 챙겨먹었지만 나는 슬며시 날아드는 라면국물 냄새도 거북할 정도.. 뇌와 두개골이 따로따로 출렁이는 느낌이었다.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극심한 숙취인지. 어휴... 생각해보니 제주도는 <여행>이라 밤마다 몸을 사렸고, 이토록 음주에 매진한 타락마을 엠티 경험은 처음이었다. 키드님을 제외하고 엠티 경력이 꽤 되는 다른 분들이 왜 전날밤에 몸을 사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몸을 안 사렸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가장 극심한 숙취에 시달린 키드님과 나도 다음번엔 확실히 살살 달리겠지.

지다님의 젤리카메라에 찍힌 담날의 몰골은 아마도 십수년전 과음 후 새벽 백사장을 달린 뒤끝에 온종일 팅팅 불어 있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타락마을 엠티 담날은 다들 그렇게 빌빌대다 암것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전통인가요? 멀미지다님 때문에 크게는 바라지 않았지만, 12시 전에 체크아웃하면 귀가하기엔 너무 일러 외포항에 가서 석모도 가는 배라도 타고 갈매기한테 새우깡주기 같은 것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음(물론 나는 갈매기 무서워서 새우깡 주는 거 싫어하지만!). ㅋㅋ 그런데 굳이 친절 베풀겠다며 배웅 나온 아저씨가 경치 좋은 해안도로로 잠시 돌아서 귀경하라는 데도 단박에 거절하는 타락마을 주민들! 다시 출발점에 일행들을 내려주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무려 2시. 나의 엠티 역사상 가장 빠른 귀가시간이었다. 

구구절절 쓸데없이 길게 썼지만, 타락마을의 1박2일 엠티를 한 줄로 요약하면 맛난 고기와 술먹고 수다떨다 꽥.
 ^^; 하기야 엠티가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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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

투덜일기 2009. 12. 14. 15:17
강화도에 간다고 하니 왕비마마는 올 때 "순무나 사와라, 심심할 때 깎아먹게."라고 말했다.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만, 왕비마마는 <언제나> 심심하다. 온종일 TV를 동무삼으면서도 심심하다고 간간이 일하는 딸을 귀찮게 굴어 타박을 받을 정도니 나도 할 말이 없다.
심심하다는 핑계로 괜히 찾아다니는 간식만 안먹어도 체중 줄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 텐데, 식탐도 강하고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분이라, 그나마 열량이 적은 순무나 무, 콜라비 따위를 군입거리로 삼겠다 할 땐 반가워해야 한다.

오래 전 가족끼리 강화도에 놀러갔을 때도 순무를 사왔는데 만원에 한 보따리였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격을 물으니 알이 작은 건 6개 5천원, 큰 건 5개 5천원이라고 했다. 동생네가 와 있단 얘기를 안들었으면 5천원어치만 샀겠지만, 공주네 식구도 다이어트 때문인지 날로 깎아먹는 무를 좋아하는 편이라 큰놈으로 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는데, 알이 굵어선지 꽤 무거웠다. 며칠이든 당일치기든 어딜 다녀오면 그 지방의 특산물을 뇌물로 바치지 않으면 삐치는 집구석은 우리밖에 없나보다. ㅋㅋ 
어쨌거나 아줌마는 분명 순무 잎을 잘라 비닐에 담으며 "하나 더 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 집에 와보니 달랑 열개 뿐이다. 내가 전날의 과음으로 여전히 숙취에 시달리고 있기는 했지만 잘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나는 치밀하질 못해서 물건을 살 때 장사치의 셈에 그냥 맡기는 편이다. 과일을 살 때도 굳이 같이 세지 않는다. 내가 특히 셈에 약하기도 하고, 알아서 담겠지 싶어서... 그래서 실수인지 속임수인지 모르지만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확인 안한 내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과일의 갯수가 모자란다든지 슬그머니 못생기고 상처 난 과일을 집어넣은 걸 발견해 장사치의 얕은 속임수임을 실감할 땐 잠깐이지만 인간이 싫어진다. 

순무의 경우는 어차피 10개가 만원어치이므로 내가 손해본 건 없다. 내가 덤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한 개 더 주겠다고 해놓고 10개만 넣은 건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지만 그래도 뜨내기 장사라고 나를 허투루 대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제 내가 오자마자 왕비마마는 큼지막한 순무를 한 덩어리 잡아 조카와 함께 뚝딱 해치우셨다. 그래도 여전히 열개나 있으니 동생네와 반반씩 나눠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순무가 9개 뿐이라는 사실에서 그만 나는 잠깐 와락 짜증이 났다. "그 아줌마 뭐냐!" 나의 분노를 식탐과 순무 욕심으로 받아들였는지, 동생네는 달랑 순무를 2개만 얻어갔다. ㅋㅋ

오늘도 심심해진 왕비마마가 깎아준 순무의 맛은 그저 그렇다. 날 무보다 좀 단단하고 부위에 따라 단맛이 좀 더 많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무의 매운 맛과 비슷하게 알싸한 맛으로 씹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겐 지금 순무의 맛이 중요하지 않다. 순무 장수 아줌마가 10개를 11개로 잘못 센 것인지, 덤을 하나 주겠다고 한 말을 그새 까먹은 것인지, 덤을 주는 척 괜히 생색만 내는 게 그곳 마케팅의 수법인지, 아니면 내가 헛것을 들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남은 순무가 다 없어질 때까지 나의 의문은 반복될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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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의 역사

추억주머니 2009. 12. 11. 22:57

누가 그랬다. 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엠티를 다니냐?
그러고 보니, 멤버십 트레이닝의 약자라는 <MT>를 다닌 역사가 그 이전 역사보다 길다. 하하하.

첫 엠티. 열아홉살때. 대성리. 청량리역에 모여 기차타고 가서 허름한 민박집에 묵었다. 
오티, 엠티 같은 데 가면 운동권 학생들한테 <포섭> 당하거나, 위험한 <혼숙>이 자행되는 공간이라며 절대 못가게 하시던 구시대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애를 좀 먹었었다. 나중에 학생들 엠티에 한번 쫓아가본 아버지는 문제의 <혼숙>이란 것이 운동장 만한 방에 수십 명이 떼로 모여 한쪽에선 술마시다 자고 한쪽에선 고스톱치고 한쪽에선 기타치며 노래부르는 요상한 놀이의 장임을 깨닫고는 두말 안하셨다.
여전히 청평, 강촌, 남이섬 등지를 벗어날 수 없었던 두번째, 세번째 엠티 때도 똑같았다. 청량리역이나 성북역에 모여 기차를 타고 가선 시설 조악한 민박집이나 방갈로 같은 데서 죽어라 술퍼마시며 놀다 돌아왔다.

방학을 맞아 동아리에서 떠난 엠티는 장소가 좀 더 멀어졌다. 첫 동아리 엠티는 역시나 너무 멀고 기간도 길다고  집안 반대에 부딪쳐 못가고 스무살 때 비로소 동아리 엠티를 따라갔다. 3박4일짜리 동해안. 망상 해수욕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속버스 타고 가서 무려 <텐트>에서 잤다. 동아리가 개강하자마자 공연을 해야하므로, 체력단련한답시고 밤늦도록 술먹이고는 새벽에 깨워 백사장을 달리게 했다. 3박4일간 찍은 사진을 보면 다들 팅팅 불어 가관이었다. 

첫 직장에 들어가자 고급스러워진 엠티 장소는 드디어 콘도 또는 호텔. 상사들이 모는 자동차에 나눠타고 움직였다. 숙소는 호화로워졌지만 고기 먹고 밤새 술마시다 퍼지는 건 똑같았다. 회사 규모가 커지니 슬쩍 이름도 <워크샵>이라고 바뀌고 아예 관광버스를 몇 대씩 대절해 아무도 운전 안하는 건 좋았지만, 회사에서 출발하자 마자 버스 안에서부터 술을 마셔대는 분위기였다. 거의 20시간 술자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행히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선 다들 쓰러져 잠들어 더는 술권하는 이가 없었지만, 간간이 속이 아파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해야 하는 후유증이 꽤나 심했다.

회사생활을 관두고서도 엠티 기회는 이어졌다. 관계가 돈독해진 몇몇 출판사에선 번역자 관리 차원에서 직원들 엠티 때 끼워주었다. 스스로 가고 싶을 때도 있었고 가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일 끊길까 염려되어 웬만하면 따라갔다. 숙소는 펜션 아니면 콘도, 호텔. 장소가 무려 제주도일 때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도 해서 신났다. 허나 가서 하고 노는 건 역시나 고급 안주에 밤새 술마시기. 세상은 안변하더라.

늙다리 대학원생 시절에도 엠티가 있더라. 딱한번. 요샌 학부생들도 우아하게 콘도 같은데로 엠티 간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다. 양평이었던가 십수년 전 학생때와 다르지 않던 허름한 민박집. 그나마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가긴 했다. 밥먹고 술마시고 캠프파이어 하고 레퍼토리도, 다음날 숙취까지 기시감이 들 정도로 똑같았다.

그 뒤로 이래저래 만난 이들과 좀 각별히 친해지고 싶을 땐 어김없이 엠티를 떠났다. 장소도, 탈것도, 먹거리도 전보다 다양해졌다. <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게 아니라 <엠티>에 방점이 찍히는 짧은 나들이는 확실히 장소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매번 <구경>보다는 먹고 마시고 수다떨고 앉은 자리에서 최대한 즐기는 게 엠티의 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딘가에 모여 밤새 수다떨며 술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역시나 엠티는 그와는 다른 <설렘>을 동반한다. 소풍 전날 가방에 간식을 싸며 설레던 어린시절처럼, 오늘도 뭔가 간식을 싸야할 것 같은데 겨우 1박2일에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아 그냥 설렘만 즐기고 있다. 이 감미로운 설렘을 위해서라도 힘 닿는 때까지 엠티를 따라다닐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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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싸기

투덜일기 2009. 6. 23. 11:47
그릇이나 문구용품 따위에 붙어 있는 스티커는 그냥 두고보질 못해 처음부터 떼어내고 써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에 비행기를 탈 때 항공사 직원이 여행가방 손잡이와 몸통에 덕지덕지 붙여준 스티커는 왠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다음번에 가방을 써야할 일이 있을 때나 떼내는 버릇이 있다.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든 그 흔적의 끄트머리라도 오래오래 부여잡고 싶은 욕망 때문이겠지. 
일년 가까이 여행가방 손잡이에 붙어 있느라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한 제주발 한성항공 짐표와 스티커를 어젯밤 다 떼내고 다시 짐을 꾸렸다. 세면도구와 양말, 수건, 편한 옷과 다량의 왕비마마 속옷, 휴대폰 충전기, 커피믹스, 종이컵, 책 두 권...을 넣을 때까지는 짐짓 유쾌한 여행을 준비하는 체할 수 있었지만, 곧이어 담요, 작은 쟁반, 과도, 티스푼, 곽티슈, 그리고 약 한 보따리를 챙겨 넣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모녀의 동반가출을 준비하듯 메모지에 적어놓은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손길이 너무도 익숙해 오히려 서글펐나 보다.
아침 일찌감치 화분에 빠짐없이 물을 주고, 될 수 있는대로 냉장고를 비우고... 떠날 준비는 모두 끝냈는데, 허무하게도 기다림은 다시 오후까지 이어져야 한단다.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은 늘 설렘을 동반했건만, 이젠 그 비율이 절반으로 떨어져버렸다. 옛날부터 따지면 8할대라 우길 수 있겠지만(처음엔 8할대라고 썼다가 고쳤다), 2, 3년전부터 따진다면 가방 싸기 두번에 한번은 여행 목적이 아니었다. 장농 옆에 세워두었던 여행가방을 꺼내 짐을 싸는 이유가 어느덧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할 때가 많아졌단 뜻이다. 다음 여행을 꿈꾸며 가방에 매달 예쁜 이름표를 사들여 이미 이름까지 적어둔지 어언 2년이건만, 이번에도 그 이름표는 매달 수가 없다. 집 떠나는 건 똑같아도 팔다리와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는 이런 가방싸기, 다시는 없으면 참 좋겠다. 부디 다음번 이 가방을 꺼낼 땐 정말로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위한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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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투덜일기 2009. 6. 19. 15:44

어제 아산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갈 일이 있어서 생전 두번째로 ktx를 탔다.
몇년 전 부산에 갈 때 처음 타본 ktx가 어찌나 실망스러웠던지 올라올 때는 일행 모두의 동의 하에 새마을호를 선택할 정도였다. 아무리 시간다툼을 위해 설계된 기차라지만 어떻게 제일 운임이 비싼 ktx가 새마을호 기차보다 자리가 좁은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겨우 1시간 차이라면 (지금은 완공구간이 늘어서 더 빨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땐 부산까지 2시간 50분 걸린대놓고 3시간 걸렸었다) 만원이나 싸고 잠자기에 좌석도 더 편한 새마을호가 더 낫다 여겼고, 이제껏 누가 ktx를 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시간 넉넉하면 차라리 새마을호를 타라고 한 마디 거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찾아간 그 지인은 얼마전까지 천안에 살고 있어서, 용산 천안간 급행 전철을 타고 놀러간 적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전철을 타고 가면 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걸린 시간은 전철구간만 꼬박 1시간 40분이었는데, 나로선 천안까지 전철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개무량했던 것 같다. 중간에 전철 노선만 두어번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은 일단 제쳐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인이 ktx를 타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이사간 곳도 천안 시내인 줄 알았더니 아산시라나. 미리 예매를 하며 서울역에서 겨우 36분밖에 안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ktx를 타고 가보니 정말 눈깜짝할 사이였다. 36분이면 우리 집에서 서울역 가려고 집에서 나서고 버스 기다리고 또 버스에서 내려 역까지 걸어가고 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 천안아산까지 ktx 운임은 12600원. 전철비용은 2500원쯤 됐던 것 같다. 부산까지 가는 ktx/새마을호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선 이번에도 역시나 돈은 만원 차이. 시간도 1시간 쯤 차이가 났다. 
천안 전철역보다 천안아산 ktx역이 지인의 집과 가까운 이점도 있었지만, 함께 간 동행은 돌아올 때는 전철을 타자고 했다가 ktx를 난생처음 타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돌아올 때도 ktx를 타고 싶다고 간절한 눈빛으로 ^^ 말했다. 내가 빠르기만 할 뿐 좌석 좁고 불편하다고 ktx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춰놓았기 때문인지, 동행은 ktx 객차에 앉아 몹시 감동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처음 ktx를 탔을 때보다는 실망감이 덜했고, 아마 동행이 극구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자고 우겼으면 속으로 짜증났을 것 같다. 용산 천안간 전철을 타고서도 주변에 펼쳐진 논과 밭, 산을 구경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차와 전철은 엄연히 다른 법! 게다가 서울에서 아산까지 36분이라니... 시속 300km가 넘는다는 속도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게 신기한데 정말 빠르긴 했다.

처음 ktx타고 부산에 갈 땐 저녁이라 속도감을 더 못느껴 지루했던 걸까. 어쨌든 그때도 금요일 저녁 퇴근한 지인들과 떠나 부산 해운대에서 싱싱한 회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빨라진 기차시간에 약간 고마워하긴 했지만, 뒤로 젖힐 수도 없는 좁은 좌석을 엄청 성토했었다. 나처럼 다리 짧은 인간도 답답하니 다리 길고 덩치 큰 사람들은 오죽 하겠냐고 투덜거리면서. 그런데 그새 내 다리가 더욱 짧아진 건지, ktx 좌석이 넓어진 건지(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어제 타본 부산행 ktx는 상당히 쾌적한 느낌이었다. 자리 잡고 앉았다가 고속철 본연의 모습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마자 금세 내려야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겨우 몇년 만에, 그리고 두번 만에 ktx에 대한 반감과 차비에 대한 아까움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고민해도 통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왕복 두시간을 아까워할 만큼 촌각을 다투어 바삐 사는 인간은 절대로 아니거늘. 그저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무래도 또 한번 부산까지 ktx를 타고 다녀와봐야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부산이 그리운 건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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