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09.03.27 담백하다/담박하다 23
  2. 2009.03.26 못생겨야 예쁘다 13
  3. 2008.12.15 편애 22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낙서장에 가까운 블로그지만 담백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뜻과 속속들이 맞는지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또 하나 배우게 됐다.
<담백하다>는 원래 담박(淡泊)하다에서 나온 거란다.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고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사전에 <담백한 글>이라는 용례는 없지만, 담백함의 반대말은 느끼함이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며 글에도 비유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련다.

요 며칠 또 괜히 머리가 시끄러워서 잠도 잘 안오는 밤과 새벽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정서불안 환자처럼 이 책 저 책 들춰보다가 느낀 게 있다. 나도 접속사로 연결된 복잡하고 긴 문장을 습관적으로 많이 쓰는 편인데, 확실히 간결한 문장이 더 설득력있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 문장이 긴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유려한 글쓰기를 하는 이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호흡이 길어지면 시선과 이해력이 흐트러져 다시 되돌아가야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의 나처럼 정신 시끄러울 때 하는 독서의 경우는 더더욱. 거기다 젠체 하는 거들먹거림까지 버무려진 느끼한 글을 만나면 아예 참을 수가 없다.
어디선가 소개글을 보고 한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내 돈주고 사기는 아까운 책이라 마침 그 출판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한권 얻어놓은 책이 있었다. 이참에 한번 읽어볼까 싶어 몇달만에 드디어 들춰보려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무거운 주제도 아니고, 인간의 <쇼핑> 욕망에 대한 잡다한 단상을 적은 것임에도 그렇더라. 조사와 접속사 빼고는 죄다 외래어인 패션잡지를 멀미나서 잘 못 읽는 나의 개인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유없이 거슬리는 꼭지들을 건너뛰어 뒷장으로 넘어가도 문장들이 딴죽을 걸듯 자꾸 턱턱 걸렸다. 어찌나 멋을 부리셨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션전문가의 손을 빌려 꾸미고 명품으로 휘감았는데, 진품인지 모조인지 구분하기는커녕 명품 브랜드에 무지한 나는 그게  명품인줄도 모르는 격이랄까. 아니지, 내눈엔 진짜도 죄다 가짜로 보인다는 게 더 맞겠다.
아무튼 결국 난 그 책 읽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 읽진 못했어도 나도 쓸데없이 기교와 멋부리는 문장은 쓰지 말아야한다는 교훈을 주었으니 그마저도 성공적인 독서라고 할 수 있으려나. ㅎ

상대적으로 수전 손택, 서경식의 글과 생각들은 어찌나 명징(나는 이 단어가 참 좋다!)한지 하나같이 밑줄 그어 두고 싶은 주옥같은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긴이들의 공도 당연히 있겠지만 저들은 삶부터 겉치레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원래 글도 담백하고 간결했을 거라 믿는다. 
한 두어달 일은 관두고 장서욕심에 사두고 밀린 책들이나 죄다 읽으면 좋겠건만 마음만 바빠서 독서도 초조한 메뚜기처럼 자꾸 이 책 저 책 옮겨다니게 되니 어쩌면 좋으냐. 으휴. 하기야 그런 욕심을 품으면 담백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건가? 이래저래 딜레마로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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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청룡영화제에 과연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 것인지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배우 김혜수. 당연하겠지만 그녀에게도 풋풋하고 싱그럽고 깜찍하기만 하던 십대가 있었다. 중학생쯤으로 기억되는 그녀가 나온 TV 광고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심지어 광고문구까지도.
"못생겨도 맛은 좋아, 매치매치바!"
아니, 어쩌면 그 광고문구 때문에 귀엽게 콧등을 찡그리며 웃는 김혜수의 앳된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막내동생이 방문에 브로마이드를 붙여놓을 정도로 김혜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 땅콩초콜릿바를 꽤나 애용했다. 5분 더 자겠다고 아침을 굶고 떠난 등교길,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건물까지 올라가려면 언덕배기 초입에 있는 문방구에 들러 초코바를 하나 입에 물어야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릴 기운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녀 김혜수의 깜찍함에 힘입었든, 초코바의 맛 때문이든, 기발한 광고카피 때문이든 그 제품은 한동안 꽤나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같은 속담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꽤나 인상적이었을 그 광고문구 덕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못생긴 걸 자랑삼은 경우는 아마도 그게 유일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때도 지금도 '추함'은 이 사회에서 비웃음과 손가락질과 비하의 대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 같은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드러내놓고 희화해서 성공을 거두었고(아예 그가 부른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노래도 있었다) 요즘도 못생김을 무기로 활동하는 수많은 코미디언, 개그맨들이 있지만, 나는 덩달아 웃으면서도 그들의 자기비하가 마음 불편하다. 얼굴 생김새가 곧 개그라는 그들의 목소리는 곧, 대한민국의 외모지상주의가 점점 공고해지고 심화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였던가 외모가 뛰어나고 키가 커야 성공한다는 논문이 발표될 정도이니, 외모지상주의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좀 괜찮게 산다 싶은 나라로 꼽히는 국가 가운데선 이력서에 대놓고 사진을 붙이게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밖에 없을 거다. 하기야 어디 사람얼굴 뿐인가. 최상품이 되려면 황소도 잘 생겨야 하고, 과일도 번지르르 때깔이 고와야 하며 애완동물도 더 예쁜것들을 골라 더 예쁘게 치장하는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들은 원래 그렇게 예쁘지만은 않다. 여기서 예쁘다는 말은 이미 보편적 잣대로 굳어져 버린 <현재의> 인공미 기준을 따질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형태를 예쁘다고 찬미하는 시대는 가버린 듯하다. 아니,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나 역시 무슨 물건을 사든 예쁜 게 좋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속물이지만, 예쁘지 않다고 차별하거나 무시하거나 인위적으로 바꿔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사고방식엔 숨이 막힌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고 본인의 선택이라고는 해도, 평범한 사람들까지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배불리는 사회현상이 건강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젊든 늙든 예쁘지 않고는 못견디도록 만든 건 분명 집단의 압력이 작용한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징그럽기만 한데, 연세 많으신 시골 할머니들까지 시커멓게 눈썹 문신을(십중팔구 불법 시술이었을 거다;;) 하고 계신 걸 보면 숨이 막힐 정도다.

그나마도 현대인의 건강염려증과 환경에 대한 일부인들의 뒤늦은 염려로 차츰 늘어나고 있는 유기농이나 무농약 채소들을 보면 조금씩 변화가 느껴진다. 농약을 하나도 치지 않고 때깔나게 왁스도 바르지 않고 나온 과일들은 울퉁불퉁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제각각이며, 채소들도 하나같이 참 못생겼다 싶을 정도로 매끈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익숙해진 감별방법에 따르면 차마 선뜻 손이 안 가게 생긴, 흠집도 많고 모양도 비뚤어진 녀석들을 엄청나게 비싼 값에 사먹으며 새삼 느낀다. 자연스럽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먹는 외삼촌이나 고모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엔 비료를 치지 않고는 고추 하나 오이 한개도 똑바로 자라지를 않더란다. 생김새는 비틀리고 굽었지만 맛은 비할데 없이 좋은 그 채소들을 얻어먹으며, 생산자의 양심에 대해 반신반의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비싼 유기농 제품들을 사먹으며 자꾸만 나도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중이다.
자연스럽게 못생겨야 예쁜 거라고.
영화든 드라마든 주인공이 예쁘고 잘생겨야 볼 맛이 난다는 편견도 이젠 좀 버려야겠다고 반성하고 있다.
많이 티 안나게 참 잘도 고쳐 예쁜 사람들을 보며 감탄하고, 티나게 고친 사람들을 보며 쑥덕거릴 것이 아니라
나라도 자연스럽고 개성있는 얼굴들에 박수를 쳐줘야 할게 아닌가.
비록 내 목소리가 외모지상주의의 집단최면의 기세에 눌려 이내 짓밟히고 말지언정
잊지는 말아야겠다.
못생긴 떡도 재료만 좋으면 얼마든지 맛있다고!
백화점에 즐비한 요란한 화과자보다 옛날 집에서 대충 만들어 먹은 인절미가 정말 훨씬 더 맛있었단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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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

삶꾸러미 2008. 12. 15. 20:47

편견, 편단(공정하지 못하고 편벽되게 결정함), 편벽(남에게 알랑거리며 그 비위를 잘 맞추는 일, 또는 그런 사람), 편법, 편식, 편심, 편애, 편파, 편취, 편협.

<편>자 들어간 글자 치고 잘한 일은 하나도 없다.
특히 편애는 나쁘다.
원래 공평무사한 인간이 극히 드물다는 점을 구실로 삼더라도 편파적이면서 잘했노라고 말할 순 없는 일이다.

어제 카니발 콘서트에서도 그랬다.
나는 표나게 김동률을 더 좋아했다. 이적 노래는 몇 곡 아는 것도 없었다.
같이 간 지인은 너무 편애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지러지는 비명은 당연히 김동률만을 향한 것이었다.
물론 이적에게도 환호하고 박수도 쳐주었지만 내가 느끼는 감동은 달랐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사람은 이적이 노래를 부를 때 훨씬 더 열광했고 내가 모르는 노래들도 척척 따라불렀다. 반면에 김동률이 노래할 때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정확히 나눌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을 공히 좋아하는 이들과, 따로따로 편애하는 이들이 뒤섞여 있었으니 아무도 마음 다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다치는 이들이 생겨나는 편애는 정말이지 곤란하다.
오래 전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확실히 나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냥 예쁜 아이들은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잘하거나 모범생이어서 예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 눈엔 심하게 잘나고 스스로의 잘남을 깨닫고 있는 우등생이나 상위권 학생들은 주는 것 없이 얄미울 때가 많았다. 성격이나 성적이 어떤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눈빛과 태도로 전달되는 맑은 심성 때문에 정이 가거나, 어딘가 측은함이 느껴지는 아이에게로 애정이 쏠렸다. 그러나 교사는, 특히 담임은 누구를 편애하는지 드러내서는 안된다. 누구나 고유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대중가수와 달리, 아이들에겐 담임선생이 단 한명 뿐이니까.
편애를 받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왕따가 되기 십상이고, 편애의 좁은 관계망에서 벗어난 대다수의 아이들은 어린 마음을 다칠지도 모른다.

매사에 잘난 척도 더럽게 많이 하면서 제 앞가림을 못하는 건 나의 가장 큰 단점임을 새삼, 그것도 옆구리를 세게 찔리고 나서야 깨닫고 속이 상해 밤새 가슴을 쳤다. 
사탕발림처럼 얄팍한 사랑을  덧칠하며 꽂는 비수는 더욱 아픈 법이거늘 소중한 사람들을 다치게 한 죄는 너무도 크다.
온종일 자학, 반성모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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