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찌라시 언론들이 어젠 또 일제히 조폭들의 평균 수입을 들먹이고 나섰다.
그들의 월 평균 수입이 무려 400만원이라나!
물론 대졸 초임 연봉이 3200만원..이라는 둥의 말도 안되는 보도와 같은 맥락으로 보고 무시하면 그뿐이지만, 문제는 신문방송에서 심심하면 한번씩 무슨 유망 직업 홍보하듯 조폭세계를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사명감에 불타는 기자가 조폭세계에 잠입해서 르뽀기사를 썼나 했더니
무슨 연구소(?)라는 데서, 교도소에 수감된 조폭 범죄자 "109명"의 진술을 토대로 뽑은 자료라고 했다.
전문가가 아니니 나야 잘 모르지만, 겨우 109명의 표본집단으로 신빙성 있는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온국민이 혈액형별 성격구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혈액형부터 묻거나 추측하는 걸 너무도 당연히 여기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혈액형별 성격구분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얼치기 '진실'이며 어느 일본사람이 말도 안 되게 적은 인원수의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우겨대기' 시작한 게 시발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엉터리라는 얘길 아무리 해줘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성격이 드럽다는 따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볼 때, 진실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주장이나 우격다짐이 반복되고 재소비되면 끊임없는 재생산을 거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가뜩이나 각종 영화와 매체에서 미화하고 과장하여 재생산/소비를 반복해온 소재인 '조폭'이 언론을 통해 다시 한 번 대단한 수익산업이자 괜찮은 직업임이 천명되었으니 또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조폭세계로 눈을 돌리게 될까.
세금 한 푼 안 떼고 받을 연봉이 4800만원이나 된다는데 말이다!
더욱 내 눈에 뜨인 건 조사에 응답한 조직원들의 월 평균수입 분포의 시작점이 최하 100만원이었다는 점이었고, 조폭을 직업으로 삼은 장점은 다들 입을 모아 학력과 상관없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사실이었다.
140만원이라는 최저임금이 도입되는 바람에 관리비의 압박을 받은 아파트 주민들이 투표를 거쳐 대거 해고를 결정한 노령의 아파트 경비원들 평균 임금은 100만원이 안되는 80만원 선이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비정규직/계약직 노동자가 된 이들이 받는 월급도 대부분 100만원이 안되는 마당에 조직의 끄나불만 되면 매월 100만원은 거뜬하게 벌 수 있고
계속 "승진"해 중간 계급이 되면 월 4, 5백만원을 번다는 게 아닌가.
(물론 조사 결과를 100퍼센트 신뢰한다는 걸 전제로 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절대적인 1위가 연예인이이고
순위 상위권은 아니지만 '장동건이나 조인성처럼 멋지고 의리있는 조폭'이 장래희망이라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는데, 조폭의 연봉이 평균 5천만원에 육박한다는 얘길 들으면 전격적으로 장래희망 2순위로 뛰어오르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조폭 월평균 수입 400만원"이라는 헤드라인 밑에는 작은 글씨로 조폭 세계에서도 의리는 이제 중요하지 않으며 돈이 곧 권력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수감되어서 조직의 보살핌을 받는 조직원은 30퍼센트도 안되는 반면 조직에게 외면당한 나머지는 모두 가족의 심적,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더라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지만...
어쨌든 하물며 깍두기 형님들의 연봉이 5천만원에 달한다는 소식에 나까지도 상대적 박탈감에 잠시나마 허망했을 정도니, 수많은 실업자들과 박봉에 시달리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얼마나 더 허탈함을 느꼈을지 나로선 헤아릴 길이 없다.
기자입네 하는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야 늘상 마음에 안들지만
어쨌든 자꾸만 조폭 되길 권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강해지는 것 같아 영 불쾌하다.
소재의 빈곤 탓인지, 국내 영화엔 조폭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좀 과장해서 셋 중 하나는 되는 것 같고, 드라마와 개그 프로그램에도 심심치 않게 조폭이 등장하는데, 이젠 아예 언론까지 나서서 조폭을 홍보하고 있질 않나!
조폭 역시 인간이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합법적인 사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니 엄밀하게 따지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회사나 조직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조폭"은 엄연히 "조직폭력집단"의 준말이고 그들이 불법과 폭력을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다고 할때 절대로 상업주의의 논리만으로는 포장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부유함과 가난함은 그대로 대물림되어 더는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불가능해진 이노무 사회에선 학벌과 배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부실하면 부실한 대로 실직률은 높아만 가고 학별이나 배경 없이, 로또 당첨이나 부동산 폭등 같은 행운도 없이, 그저 "성실"과 "노력"만으로 부를 쌓는 것은 멀고 먼 환상에 불과하니 그나마 손쉽게 돈을 버는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게 아닌가 싶다.
장동건과 조인성이 아무리 멋진 조폭으로 나왔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불행한 종말을 맞았으며(사실 나는 <친구>와 <비열한 거리> 모두 보지 않아 잘은 모른다) 범죄자의 말로는 불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돈 많고 권력마저 갖춘 수많은 대형 범죄자들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정말이지 깍두기 머리 형님들의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가 않단 말이다!
조폭이 미화되는 꼬라지가 싫어 아예 조폭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안본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나 역시 이미 오래전에 좋아라 봤던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의 <대부> 같은 영화는 고전이라서..
<파이란>은 영화가 너무 괜찮아서...
<굿바이 솔로>는 노희경 드라마니까... 따위의 핑계를 대며 가끔 그런 원칙을 깨게 되긴 한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조폭 권하는 사회의 물결에 동참하기 싫다고 계속해서 투덜거릴 테다.
조폭이 싫어서 난 깍두기도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