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동사무소가 자리를 옮기더니 그 건물을 한참 뜯어고쳐 노인요양복지센터인가 뭔가 하는 게 생겼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울 왕비마마 같은 분들의 '복지'를 위해 좋은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더니 온 동네 노인들에게 장기요양 등급 신청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홀로 거동을 잘 하지 못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노인장기요양보험공단에 신청을 해 심신의 상태에 따라 등급을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파견되어 돌봐준다고 한다. 귀가 얇으신 왕비마마는 절에 갔다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동네 아줌마가 함께 노인센터로 요가도 하러 다니고 운동도 같이 다녀주고 하는 제도가 있으니 신청해보자는 말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색을 했단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제도가 다 있느냐면서. 그러고는 집에 와서 자꾸 나에게 3급 타령을 했다. 3급은 받아야 된다는데 당신은 아마 조금만 '신경쓰면' 3급이 나올 거라고 했다나. 처음엔 그저 착한 이웃 아주머니가 순전히 봉사의 의미로 왕비마마를 모시고 함께 운동을 다녀주려나 보다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추우니 봄 되면 슬슬 다녀보시라고 흔쾌히 권했는데, 자꾸만 전화가 걸려오고 어서 만나서 상의하자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뭔가 '야로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조금 전 요양보호사 '장농 면허'를 갖고 있다는 이웃 아주머니와 인근 구에서 노인 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또 한 명의 아주머니가 집으로 찾아왔다. 현관에 마중 나와 서서 계단을 올라오는 두 아주머니를 반기는 왕비마마를 본 그들의 첫마디가 가관이었다. 어머나, 나중에 공단에서 심사 나올 때 이렇게 멀쩡하게 서계시면 안 돼요, 호호호. 

그들의 주장은 그러니까 왕비마마를 노인장기요양 대상으로 신청한 다음 얼렁뚱땅 '거동 잘 못하는 연기'를 과장해서(척추협착증 수술을 받아 걸음이 불편하고 청력도 부실해진 건 '사실'이므로) 공단 심사를 거쳐 '3급' 진단을 받으면, '무료로' 자기네들이 일주일에 두번 4시간씩 찾아와서 운동도 같이 해드리고 목욕도 모시고 가고 집안일까지도 도와준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요양센터와 요양보호사에게는 공단에서 일정액의 '돈'이 지급된다고. 물론 공단의 심사가 예전에 비해 까다로워지기도 했고 현재의 왕비마마 상태는 너무나 멀쩡하여 3급 진단도 나올 수 없을 상황이라, 약간의 사기극(물론 그들이 '사기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다.)이 필요하겠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나. 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는 거의 멀쩡한 자기 어머니에게 자리 보전하고 누운 치매 노인 연기를 시켜 '1급' 진단을 받아낸 어떤 이의 무용담까지 전했다. +_+

왕비마마를 데리고 뭘 하든 날 따뜻한 봄부터 거동하시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는데도 굳이 며칠째 전화를 걸어 찾아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꿩먹고 알먹고, 짜고치는 고스톱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밝히기로. 왕비마마 역시 그런 편법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또 이용하는 상황을 흔쾌히 즐길 분이 아니라, 거부 의사를 밝힌 터였다. 내가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순진하고 거짓말 잘 못하는 왕비마마가 그런 사기극에 연루됐다간 시작도 하기 전에 잠 못자고 끙끙 앓다가 우울증이 도질 것임을 보지 않아도 짐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라는 것은 알겠으나(좋은 의도는 무슨! 자기네들 돈 벌 욕심에 접근한 거 다안다!) 왕비마마의 성격상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선 곤란하다는 나의 설명에,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더 강요하지 않고 순순히 돌아갔다. 우리 모녀의 '순진함'을 인정해주는 듯한 태도였으나, 아마 현관을 나서며 꽉 막힌 모녀라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르겠다. 노인 모시고 사는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다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약간씩 편법을 쓰는 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설득한 걸 보면 말이다.

어쨌거나 노인복지를 위해 나라에서 잘해보자고 시작한 일들이 또 이렇게 '야로'와 '편법'과 '비리'의 온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한 셈이라 입맛이 쓰다. 과연 이 요양보호사 제도의 혜택은 정말로 꼭 필요한 노인들에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지 의문이다.  이래서야 어디 노인을 위한 나라가 가당키나 하겠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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