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관한 한, 주변을 돌아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제 아무리 유유상종이라고는 하지만 내 측근이나 지인 가운데는 연애를 진행중인 사람이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여기선 결혼한 이들을 제외하고 하는 말인데, 기막히게도 유부녀, 유부남 친구들 가운데는 배우자 이외에 '애인'마저 갖추고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빈익빈부익부의 논리는 연애 분야에서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어제 후배들과 반갑게 모인 자리에서도 연애의 어려움과 불가사의함이 화제로 오갔는데
하물며 길바닥에서 개미를 잡아먹는 여자한테도 남자친구가 있는데(나는 못 봤지만, TV에 그런 여자애가 기이한 인물로 소개된 모양이었다 ㅡ.ㅡ;;), '도대체' 왜 충분히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아름다운 그들에겐 남자친구가 안 생기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증은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어디선가 '뚝'하고 떨어지듯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주길 기다리는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라는 쪽으로 기울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드물게나마 소개팅도 하고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이 겪는 연애의 어려움은 참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한때의(!!!) 나처럼 연애조차 귀찮고 번거롭다 여겼다면 또 몰라도...

비단 어제 만난 지인들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주변 지인들 가운데는 서른살이 훌쩍 넘도록 단 한 번도 연애를 안해본 이도 적지 않다. 그들은 농담 삼아 '언니/누나의 악의 포스'가 자신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쳤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연애따위 안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인간과 곁에 있으면 덩달아 따라가게 된다나 뭐라나.. ㅡ.ㅡ;;
물론 연애 없는 인생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다만 인생의 경험치가 좀 덜 다양할 뿐이리라. (내 삶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연애의 기회야 어서 오너라.. 기다리고 있으마 ^^)
 
그나마 이리저리 줄을 놓아 소개팅을 하거나 해서 만남의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연애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다.
훨씬 더 만남이 순수하고 수월했던 옛날엔(이렇게 얘기하니 난 완전 늙다리가 된 기분;;)
연애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누굴 만나게 되더라도 서로 재고 눈치 보고 머리 굴리느라 정말로 '사귀게' 되는 관계까지 가기가 쉽지 않단다.
첫눈에 둘 다 홀딱 반하는 사랑이 가능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과연??)
대부분은 어느 한쪽이 먼저 더 많이 좋아하고 나머지 한 쪽이 차츰 감정을 키워나가게 되는 것이 연애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옛날엔 먼저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의 공들이기가 워낙 정성스럽고 기간도 길었던 반면, 요즘엔 슬쩍 떠보듯 감정을 전해서 상대방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즉각 꼬리를 내리고 감정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양상을 보인다.

어제 J양이 '리액션이 중요해!'라고 외쳤던 것도 같은 맥락인데
누군가 넌지시 감정의 화살을 쏘아댈 때 무덤덤하게 반응하거나 뜨뜨미지근하게 감정을 전달하면 그 연애는 초기에 실패하고 만다는 결론이다.
(아.. 나처럼 소심하고 특히 남녀의 인간관계에 소극적인 인간에게는 열번은 기본으로 '찍어주는' 옛날 방식이 훨씬 좋은데 ㅜ.ㅜ;;)
게다가 요즘 연애의 성공 여부는 돈이 절반 이상을 좌우한단다.

(주로 남자쪽에서) 우아하고 맛있고 로맨틱한 장소를 엄선하여 계획한 데이트 비용 부담은 물론이고, 주기적으로 선물공세를 펼치지 않으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는 것!
재미있는 건 능력 있는 누나들이 연하남을 사귀는 경우, 이 관계가 역전되어 데이트 비용과 선물 비용을 부담하는 쪽이 (특히 데이트 초반부엔) 여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암튼 연애를 하면서 누가 더 '돈'을 많이 쓰느냐는 커플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커플링은 물론이고, 100일이나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엔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코트(이번에 남친에게 68만원짜리 롱코트 선물 받은 이도 있더라!)나 시계, 가방, 신발 따위를 선물하고 또 받는 것이 요샌 너무나 당연한 연애양상이란다.
건실한 청년들이 돈 없어서 연애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소릴 가끔 들을 때마다 참 기가 막힌다. 어쩌다가 연애도 물질만능주의에 좌우되는 시대가 되었는지...
아.. 정말 연애는 어렵기 짝이 없다.

공교롭게 어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 뒤쪽에 20대 초반의 청년들 셋이 앉아
갓 데이트를 시작한 한 친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들려주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 지인들과 나누고 돌아온 대화의 후속편쯤이 되는 것 같아 아주 흥미로웠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은 만난지 얼마 안된 여자친구와 지속적인 대화와 관심을 나누려면 적당한 선물이 필수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조언을 했고, 한 친구가 책 선물이 저렴하면서도 꽤 효과가 오래 가는 비법이라고 설명했다. (출판계에 기대에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 청년이 어찌나 기특하든지!)
너무 지루하지도 않으면서 두껍지도 않은 재미 있는 책을 선물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면 영화 한 편 보고 단 하루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좋다는 것이 책 선물을 권한 남자애의 생각이었는데, 책 읽는 걸 몹시 싫어하거나 값비싼 선물만 선호하는 여자애가 아닌 다음에야 정말 괜찮은 방법이라 여겨져 흐뭇했으나 ^^;;
그 흐뭇함은 잠깐이었고, 요즘 여자애들은 남친과 다닌 '쓸만한' 데이트 장소나 남친한테 받은 선물을 친구들과 서로 비교하며 자랑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적당한 선물과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해주고 '빡시게 알바라도 해서 가끔 근사한 데 데려가지 않으면 여친관리가 안된다'는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급우울해졌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사귀는 단계도 그렇게 어렵고 계산적이어야 하다면
연애가 힘든 건 불을 보듯 뻔한 게 아니겠나!

인간적으로 참 괜찮고 매력적이고 알면 알수록 진국인 젊은 남녀들이 주변에 수두룩하지만
(물론 여성동지들이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다들 연애에 굶주려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저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슬프다.
내가 보기엔 이른바 '스펙'이 최고급 사양인데다 성격파탄자도 아닌 정말로 괜찮은 이들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어제 만난 지인들의 결론은,
'어떻게든 만남의 기회를 찾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어떻게???
괜찮은 사람 소개 시켜달라는 후배들의 부탁은 지금도 간간히 듣고 있지만 예전처럼 쉽사리 만남을 꾸며보기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선뜻 나서기가 꺼려지는 걸 보면
확실히 나의 객기가 줄어들기도 했고, 사람과 사람이, 특히 남녀가 만나 감정을 키워간다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이노무 불가사의... 누가 속시원히 풀어주면 좋으련만,
풀 수 없으니 불가사의겠지!
그래도....
암튼 올해는 측근들이라도 닭살스러운 연애행각을 많이 벌여주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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