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잠을 못 자!"
어제 촛불집회에서 정민공주가 가장 재미있다고 손꼽은 구호다.
회를 거듭할수록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도대체가 저들과 말이 안통하는 걸 실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 크고 많은 목소리를 모아 한입으로 질러대서 막힌 귓구멍을 뚫고라도 국민이 바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아니겠나.

정치적으로 변질이 됐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어제 모였다가 밤을 지새우며 청와대로 몰려가려 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이 잘못되었고, 위정자들이 매번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진심을 왜곡, 우롱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제 저녁 8시 반이었을 게다. 촛불문화제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유발언도 몇명 못 했고 준비한 공연도 두어개 밖에 안 끝났을 때, 청와대 코앞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100여명의 대학생들 가운데 80여명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사회자가 전하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남은 행사를 지켜보기보다 그냥 모두 일어나 연행된 그들을 구하러 가자고 외쳤다. 얼떨결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회자는 남은 공연과 발언을 준비한 이들에겐 죄송하지만, 모두의 뜻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늘 하던대로 9시 반쯤 촛불문화제가 끝나면 가두행진이 시작되기 전에 안전하게 공주를 데리고 퇴장하려던 나의 계획은 졸지에 무산되고, 우린 수만명의 대열 속에서 전경차로 막아놓은 세종로 방향의 반대인 서소문로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광장에서 만난 지인들과 나란히 걸으며, 정말이지 옛날 생각 난다는 말을 하며 감격스러웠다.
시뻘건 집단주의의 광기가 싫고 겁나서 월드컵 때마다 단체관람은커녕 TV 생중계도 잘 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수만명이 시청광장을 메우고 또 서소문로를 완전히 뒤덮은 채 행진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또 참여한 건 그야말로 오래 전 80년대의 경험이 전부였다. 그 옛날의 행진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좀 더 비장하고 두렵고 불안한 느낌이었다면, 여기저기 유모차가 보이고 온 가족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거나 연인인듯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촛불을 들고 가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너 때문에 잠을 못자!>라고 외치는 분위기는 확실히 축제 같았다.

중앙일보 건물 앞에서 길이 막혀 다시 광화문으로 되돌아왔을 때, 몇몇 시민들이 사방을 꽉 막고 선 전경차를 흔들며  <차빼라!>를 외쳤지만, 이내 누군가 비폭력 시위를 하려면 전경차를 흔들면 안된다고 나서서 말렸다. 어디로든 돌아서 골목골목 스며들어 집에 가듯 청와대에 가서 만나자며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10시가 넘도록 집에 가려하지 않는 정민공주를 가까스로 설득해 온통 인도로 변한 종로 1가 중앙선을 따라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계속 남아있고 싶어하던 공주만큼이나 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명바기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사고, 배후엔 누가 있는지 보고하라고 했단다. 귓구멍 콧구멍이 확실히 막힌 놈이다. 미선이 효순이 때도, 노무현 탄핵반대 때도, 촛불을 준비한 자금은 십시일반 모금함을 돌려 걷은 시민들의 돈이었다. 나는 그나마도 주최측의 초와 종이컵을 축내는 게 아까워, 지난번에도 어제도 집에서 제사 지내고 남은 양초를 준비해 갔었다. 물론 집회가 길어져 가져갔던 초가 다 녹아 새 초와 종이컵을 써야 했지만...
모임 장소에 가면 <배후는 너야!> <배후는 이명박 정부>라고 적힌 종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아직도 놈들이 배후, 음모 타령을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광우병 쇠고기, 한반도 대운하, 수돗물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치솟는 물가, 기업중심의 경제정책, 국민을 보호할 생각은 안하고 살인적인 무한자유경쟁에 모든 산업과 시장을 맡기겠다는 미친 정부.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가 쏟아내는 기막힌 정책 때문에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걸 너는 아직도 모르겠냐, 이눔아!

사람들이 왜 청와대로 달려가려 하느냐고?
니 귓구멍에 직접 대고 소리치면 혹시나 알아들을까 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는 거다!
명바기는 앞으로 밤잠 좀 설칠게다. 물대포 쏘고 소화기로 뿌려대면 촛불이 꺼질 줄 아나본데, 니들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걸 차츰 알게 되겠지.  

새벽까지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던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실신하기도 하고 많이 연행되었지만 소수는 여전히 시청에 남아 오늘 집회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폭행시비가 벌어져 법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게 됐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때렸느냐 하는 점이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질 때 교묘하게 상대를 자극해 먼저 주먹을 휘두르게 한 다음 한대 맞고 나서 같이 주먹질을 하면 정당방위가 되기 때문에, 주먹 세계(?)에선 절대 먼저 치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경찰측에선 분명 시위대가 먼저 사다리를 놓고 전경차를 넘어 방어선을 뚫었으니 먼저 주먹을 휘두른 셈이라고 주장할 테지만, 내가 보기엔 물대포를 쏘아 먼저 폭력을 휘두른 쪽은 경찰이다. 하기야 인간이 준 사료 먹고 광우병 걸린 소가 아무 잘못 없듯, 방패 들고 일선에 나선 경찰들도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폭력은 계속해서 감정적인 대응과 폭력을 부르는 법. 성난 사자들과 피로에 지친 경찰들의 격렬한 싸움은 벌어지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어젯밤 촛불을 들고 걸으며 처음엔 경찰한데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벌벌 떨던 정민이가 숫적으로 너무도 우세한 시위대를 보며 안심을 했는지 나중에 한 마디 했다.
"고모, 경찰들도 명바기가 싫을 텐데 불쌍하다. 그냥 우리 청와대 가게 길 비켜주고 같은 편 하면 안 되나?"
"그래도 경찰은 대통령을 보호하는 게 일이라서 길 비켜주면 짤려."
"어차피 명바기가 쫓겨나면 상관없잖아!"
"....."
 
11살짜리 정민이처럼 명쾌한 답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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