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좋더란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벼르고 별렀으나 이제야 드디어 가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 4월초쯤에 예매 사이트엘 들어갔는데도 5월 말밖에 자리가 없었다.
개인박물관치고 가장 입장료가 비싸다는 해설사의 말마따나 무려 1人 2만원. 근데 둘러보고 나오며 아깝단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개인이 이 정도 한옥집과 고가구를 모으고 유지하기가 쉽진 않겠지. 오히려 꽤 규모가 크고 직원도 많던데 관람료와 대관료로 계속 박물관 유지가 가능할까 셈에 느린 나로선 감이 잡히질 않았다. 예전엔 뜨르르하는 부자였을지 몰라도, 혹은 후대에 들어 재산관리를 잘못했는지 어쩐지 가구박물관과 부지가 경매에 나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으나 아직 완전 부도나서 넘어가진 않은 모양이다. 이러다 나 구경가기 전에 경매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는데, 관람객은 계속 꽤 많은 듯.
비내린 뒤 개인 하늘이 정말 푸르렀던 날이었다. 대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는데 10초쯤 뒤 건물 외부 포함 모든 사진촬영은 지정된 곳 이외엔 절대 금지라고 하더군. 으으 뻘쭘하여라. 그래도 눈치 못했는지 사진 당장 지우란 말은 하지 않았다. ㅠ.ㅠ 이렇게 공개된 곳에 올렸으니 삭제하라고 연락오면 그때 삭제해야지.
박물관 관장이 거의 고등학생 때부터 고가구 보는 눈이 있어 버려진 고가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해설사가 하던데, 그런 안목을 갖춘 건 역시 집안에서 익히 골동품을 보고 자란 경험이 쌓여서 작용했을까? 우리 친가, 외가에도 옛날에 쓰고 있던 호족반, 개족반, 서안, 엄마가 시집올 때 해왔던 자개장... 이런 것들도 죄다 내버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기야 쓰기 멀쩡한 상태였는데 불편해서 버렸을 리는 없고 깨지고 망가지고 그랬으니 버렸을 거다. 엄마의 혼수품이었던 자개장은 나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엄청 무거워서 셋방살이 잦은 이사에 옮기기도 힘 들었지만 균형이 틀어져 이불장쪽 미닫이문이 잘 안닫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전시품 자개장처럼 엄청나게 화려하게 전면에 꼼꼼히 자개를 입힌 골동품도 아니었고 듬성듬성 도안을 넣은 자개가 군데군데 떨어져나갔던 것 같다. ^^;
전통 고가구야 다 아름답지만 누가 하나쯤 가지라고 한다면 앉은뱅이 책상인 서안을 가장 탐내는 편인데, 평평한 건 사대부들이 쓰던 거고, 끝이 위로 말려 올라간 건 사찰에서 쓰던 '경상'이란다. 두루마리 경전이 되말리지 않도록 펼처놓기 좋게 만든 거라고. 오호 그런 거였군.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쓰시던 저렴이 서안도 위로 말려 올라간 형태였던 것 같다. 나중엔 사대부들도 아름답고 좋아보여 널리 썼다니 한국전쟁 이후에 유통되던 가구들도 비슷하게 만들어진듯.
암튼 근데 전시품 중 요번에 가장 탐났던 건 뭐니뭐니해도 책함! 사진찍고 싶은데 못찍어오니 인터넷 이미지를 뒤졌다. 역시... 중앙지 기자에겐 사진을 찍게 해주는군.
책의 권수에 맞게 맞춤형으로 만들어 함째로 들고 이동해 읽었단다. 아.. 갖고 싶어라.. 사진 출처는 ㅈㅅ일보 +_+
1시간동안 다섯채 정도 되는 한옥과 그 안에 전시된 고가구를 둘러보고 나와서 드디어 사진 촬영이 가능한... 순정효왕후가 살았다는 한옥집 앞마당에 이르렀다. 사람들 없이 찍는데 성공.
민망하지만 누마루쪽도 담긴 온전한 사진은 이것뿐이라 얼굴을 가렸다. ㅎㅎ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살게 되면 나도 저렇게 창호지 분합문과 여닫이 유리문으로 이중문을 해달아야지 ㅋ
가느다란 바늘을 쥐고 자수를 놓는 건 손목 건초염에 대단히 좋지 않은 행동이다. DIY 바느질이 뜸해진 이유도 밤을 꼴딱 새가며 뭐 하나를 만들고 나면 며칠 고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째뜬 그래서 자수도 요샌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사진 정리하면서 아예 날려버리기엔 아쉬운 자수 작품(?)의 기록을 여기에라도 옮겨놓아야겠다. ^^; 인스타그램엔 종종 자랑했는데, 그마저도 시기를 놓치면 기록이 사라져 아쉽다. 내 물건은 괜찮은데 선물한 건 특히.
1. 톡톡한 면의 질감도 모양도 마음에 드는 편한 티셔츠에 찰리 브라운 얼굴을 수놓아보았고, 결국 지난 가을겨울 최애 티셔츠로 등극했다. ^^;
2. 수국과 라일락꽃을 담은 손수건. 처음엔 나도 한번 가져보겠다고 시작했으나... 고마운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는 너무 예쁘지만 아까워서 쓸 수도 없는 물건을 왜 고생스레 만들었냐고 핀잔을 주었다. ㅎㅎ
3. 컵받침. 예정대로였다면 1월 초에 베트남 친구에게 놀러갈 작정이었고, 그때 친구부부에게 선물로 가져가려고 만들었다. 하지만 여행이 취소되면서 ㅠ.ㅠ 나중에 함께 가져가려던 마른 나물이며 멸치 따위와 함께 우편으로 부쳤다. 물고기는 기독교인들에게 의미 깊은 상징이라고 해서 일부러 고른 도안이다.
5. 너구리 브로치. 이건 인스타에도 올렸지만 그래도 귀여우니깐 한번 더 자랑. ㅋ 막내고모의 주문에 따라 나름 작품 속 너구리를 표현해낸 것.
전시는 12월 23일까지여서 10월부터 중앙박물관 지도 전시회랑 같이 보러가려고 별렀으나 결국 지도 전시는 놓치고 이것도 끝나기 나흘 전에 겨우겨우 보러 갔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처음 가본 건데... 대기업에서 홍보용이든 탈세용이든 아니든 작품 소장하고 미술관 운영하는 거 난 찬성일세. ^^;
전시는 생각보다 넘 좋아서 여러번 감탄했다. 서양 문화에선 그림을 일단 벽에 턱 걸어놓고 상시 감상을 하는 편이라면 겸손을 군자의 미덕으로 여기는 동양에선 병풍이나 족자로 그림을 갖고 있다가 가끔씩만 꺼내서 감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혼자 보기도 아까워서 좋은 그림을 감상할 양이면 친구들 지인들 불러다가 핑계김에 술도 마시고 시도 막 읊고.. 그림 감상이 풍류의 일환인 거지. 그렇다면 내가 허세 떨듯 미술관 구경다니는 것도 내 나름의 풍류 취미라고 우겨야겠다.
설명도 없이 사진만 무진장 찍어와서 더 뭐라 적을 이야기도 없다.
그냥.. 전시는 좋았고, 병풍의 종류가 어마어마했고, 그림속에 모두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구석에 작게 보이는 게 한 마리, 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도 그냥 괜히 그려 넣은 건 없었다. 그리고 기록화 느낌의 병풍은 사진기 없던 시절 옛날 사람들이 '참석 인증샷' 정도로 나눠갖던 기념품 역할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이토록 화려한 병풍을 실컷 보고 집에 오니, 차례와 제사 때 세워두는 우리집 병풍이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ㅎㅎㅎ
좌: 해치. 기린, 백탁, 천록... 뿔달리고 몸뚱이에 털이 얼룩덜룩한 상상의 동물을 도무지 분간 못하겠다. 이건 뭐라고 적혀 있었더라. +_+
중: 살아있는 오징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린 게 틀림없다!
우: 조개와 해당화도 각각 무슨 의미가 있었는데 ㅠ.ㅠ
세계지도를 그린 병풍도 있고..
평안 관찰사가 부임하는 모습을 그린 거라던가.. 암튼 평양 시내를 그린 병풍도 있고!
청설모가 토종 다람쥐를 몰아낸 외래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어디서 잘못 들었나? 암튼 옛날 병풍 속에도 청설모가 있더라!
설치류 싫어하는 내 눈에도 좀 귀여워보여서 얘만 클로즈업해 찍어보았다.
놀라운 자수 병풍도 있었고...
궁궐에서 열린 연회 장면을 그린 병풍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궁중 화원들이 행사를 지켜본 뒤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조감도처럼 실제보다 더 장엄하게 그려 넣었겠지.
사람들 한사람 한 사람 표정이 다를 때도 있고 재인들의 춤사위가 살짝 다른 것도 찾아보는 묘미가 있다. 물론 그렇게 자세히 보려면 멀미가 필수.. ㅋㅋ
오디오 가이드 대신에 박물관 앱을 깔고 이어폰으로 설명을 들었는데 버그가 있는지 자꾸만 튕기고 에러나고... 자수 병풍 몇개는 송혜교 목소리로 작품 설명이 나왔고, 아모레퍼시픽 회장님이 직접 설명 녹음도 했던데 그건 쫌;;; +_+ 굳이 왜 그렇게까지!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주변에서 누구는 심히 아프고, 누구는 갑자기 떠나버리고, 나 역시도 건강을 자신하지 못하게 되면서 모두 조바심을 냈다. 보고 싶을 때 망설이지 말고 만나기, 하고 싶은 일은 주저하지 말고 저지르기, 싫은 일은 싫다고 티내고 동조하지 말기, 행복한 일 기쁜 일만 하고 살기... 따위의 결심을 하자고 단합? 같은 걸 하게 된 거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누가 어디 갈까? 그러면 무조건 오케이! 하며 따라다녔다. ^^ 물론 그래서 행복했고, 힘들 때 그날의 사진들을 꺼내보며 조금 위로가 되었다. 이런 날들이라도 무기력하게 늘어져 낙담하고 나쁜 생각만 하면서 허투로 보내진 않았구나,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화공원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노란 공작단풍잎과 빨간 단풍잎이 정말 카페트처럼 푹신하게 깔려 있었다. 우와... 찬란한 저 색깔좀 보소.. 비가 내려 색이 더 진해 보인다.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쓰시던 방에 쌓인 책더미를 보는데 얼마전 책장 정리하기 전까지 내 방 꼬라지랑 똑같아서 슬몃 웃음나고 정겨웠다. 가운데는 반려묘상... 오른쪽 큰 책상엔 원래 재떨이가 놓여 있어야하는데 ^^; 유치원생들부터 체험학습 몰려오는 학생들 교육상 나빠서 치웠다는 후문. 남성 작가나 화가였여도 재떨이를 굳이 치웠을까 궁금타.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는데... 혼불문학관이며 윤동주 문학관엘 가봐도.. 작가는 역시 필체가 예술가답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내 편견인가?
암튼 '원고지에 쓴 육필원고'라는 말을 요즘 아이들도 그렇고 후대 아이들도 박물관에서다 보는 유물로 알겠지.
난 학교 다닐 때 원고지에 독후감 써서 상받고 그랬는데. ㅠ.ㅠ
우리집엔 문방구에서 파는 빨간 선 원고지 말고 검정색이나 초록색으로 선이 그려진 '출판사용 원고지'가 굴러다녔다. 아마도 아버지가 대학출판부에서 쌓아 놓고 쓰는 비품 원고지를 집에다 가져다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난하고 알뜰한 부모님이 출판사에 다니던 지인에게 얻어다 둔 것일 수도 있겠고.. 암튼 대학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 인쇄된 그 원고지에 글을 써서 내는 걸 창피해하던 유년의 내가 기억난다.
이날 답사의 하일라이트는 그간 여러번 별렀으되 입장료가 하도 비싸고 멀어서 가지 못했던 '뮤지엄 산'. 제임스 터렐관이던가 깜깜한 통로로 들어가 빛의 예술을 보는 별관 관람까지 무려 2만5천원이던가 암튼 거금을 들였으나 한번쯤은 아깝지 않다 싶었다.
안도 타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질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여긴 확실히 물과 빛을 잘 이용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름다웠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기라도 한듯 조르륵 물살에 밀려 흔들리던 단풍잎도 예쁘고...
색깔을 주제로 열린 특별전이었던가... 대작들이 많았는데 현대미술은 보는 눈도 없고 추상화엔 좀처럼 감흥을 잘 못느끼는 내눈엔 그저 그랬다.
로비에 있던 백남준의 작품(왼쪽) 마네킹 때문에 좀 무서웠지만 오래된 자동차는 맘에 들어서 굳이 찍어옴.
뒷마당의 둥근 돌무덤들은 경주에 있는 고분군을 형상화했다는 것 같다.
미술관 로비엔 엄청 비싼 자코메티의 조각품도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재미났다. 그치만 난 예전 자코메티 전시도 본 사람이라 뭐 그 정도 소품은 쿨하게 패스~. 사진도 안 찍었다.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잘 찍어올 재주도 없었고...
남편따라 베트남에서 지내다 잠시 귀국한 친구와 쌓은 5월의 추억 기록이다. 아이클라우드 용량 절약을 위해 사진 지우기 전에 후다닥 아까운 사진만 여기다 퍼놓았었는데 뒤늦게 정리한다. ㅠ.ㅠ
여긴 북촌의 무슨 공방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주방인듯한 문짝에 조르륵 올려둔 고양이 인형이 예쁘다.
이 얼마만에 보는 펌프인가! 옛날 친가, 외가 마당에 모두 이런 펌프가 있었다. 빨갛게 녹이 슬었는데도 맑은 물이 올라와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몇년전에 월요일마다 엄마가 애청하시는 <우리말겨루기>에 '마중물'이 문제로 나왔는데, 엄마랑 나랑 동시에 답을 외쳐 서로 쳐다보며 웃었더랬지.
익선동의 어느 카페 마당이었던듯. 이때 가보고 오래된 좁은 골목과 학옥집들이 맘에 들어서 누굴 시내에서 만날 때마다 일부러 약속장소를 종로쪽으로 정해 거의 반년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갔더랬는데 벌써 이미 많은 곳이 변해버렸다. 아직 골목 곳곳에서 살림집으로 살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얼마나 시끄러울까 걱정되 되고;;
같은 날 세운상가엘 왜 갔더라? 뭔가 행사가 있다는 안내문을 받았던 것 같다. 옥상에서 작은 공방 좌판이 열려 있었던 건 별 흥미가 없었는데, 그 옆 전시실에서 빈티지 그릇 벼룩시장이 열려 반색하며 구경했다.
언제부턴가 종로구에선 한옥집들을 사들이고 개조해서 한옥문화원이라든가 한옥 체험관이라든가 한옥도서관으로 일반에 공개를 하고 있다. 궁궐 쌤들 따라서 북촌 답사 따라갔다 발견한 보물 같은 한옥집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친구들도 데려갔다. 당연히 다들 어찌나 좋아하던지. 한 여름에도 누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정말 시원하다. 이날은 비가 와서 나름대로 또 운치가 있었던 기억...
뜻밖의 누수공사로..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에 치여 마음 고생이 너무너무 심한 나날을 보내며 당연히 불면에 시달렸다. 수시로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열이 막 오르고 (어쩌면 이건 폭염 탓으로 생겨난 온열 질환의 징후일 수도 있겠으나;;) 거의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도 심신이 계속 고달펐다.
스트레스로 바짝 긴장한 머리가 때로는 활자로 달래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엔 도무지 책을 들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 심정?
그래서 정말 미친 척 무박2일로 지리산 천왕봉을 가자는 이야기에 홀라당 넘어가 금요일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 결정엔 점점 몸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드는 상황도 한몫을 했다. 내년엔 무릎이나 발목이 더 아파서 등산과 영영 이별을 할 수도 있는데! 하루라도 더 젊을(?)때 로망인 지리산에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필 최고기온이 36, 7도를 육박하는 한여름에 간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설마 지리산은 시원하겠지 막연히 상상했다.
생판 모르는 일반 산악회 주최 지리산 등산에 나포함 지인 4명이 끼어서 가는 형식이었는데, 놀랍게도 무박2일로 새벽 3시부터 지리산 종주 33km를 13시간만해 해치우는 A팀이 16명이나 됐다. 혹시 버스 출발 시간을 넘겨 낙오되면 서울로 돌아오는 건 각자 알아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단다. 우어... 우리는 거의 최단코스로 10시간만에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는 B팀. 13.5km를 10시간에 완주하면 된다고 했다.
밤새 버스에서 자야 수월하게 등산을 할 수 있을 테니 안대와 목베개까지 준비했지만 ㅠ,ㅠ 그럼 그렇지... 당연히 숙면을 취할 순 없었고, 어느 틈에 3시가 다 되어 A팀이 성삼재에서 우르르 버스를 내렸다. 곧이어 3시 30분쯤. 우리도 백무동 계곡 주차장에 당도했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등산 준비를 했다.
새벽 지리산은 역시나 시원해서 23도를 가리켜 다행이었지만, 도시락과 얼음물, 커피와 간식까지 사상 최고의 무게로 꾸린 배낭이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물론 가장 무거운 건 비몽사몽 피로감과 불안감이 더해진 나의 육신이었다. 등산 고수이신 선배님의 안내로 빠르지도 않게 차근차근 경사를 오르는데 음...이상하다. 왜 숨이 잘 안 쉬어지지? 자꾸만 다리가 처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해도 폣속에 공기가 잘 가 닿지 않는 느낌이랄까.
동행들이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리더이신 선배님은 속으로 나 때문에 천왕봉은 글렀고 장터목 대피소까지만 갔다가 하산해야겠다고 계산을 하셨다고 한다. ㅠ.ㅠ 말도 안되는 추측일 수도 있겠는데, 내 짐작으로는 폐소 공포증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각자 헤드랜턴에 의지해 자기 발밑만 보고 가는 야간 산행이 상상속에선 되게 멋질 것 같았는데 현실의 나에겐 그냥 공포였던 모양이다. 조금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며 내가 변명을 했다. 해만 뜨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실제로 사방이 서서히 밝아지자 숨이 잘 안쉬어지는 것 같은 짓눌린 느낌이 사라졌다. 미안한 마음에 그다음부턴 내가 맨앞장을 섰는데 초반에 많이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겠다는 의욕이 간간히 과다해져 오버페이스! ㅋㅋ 이내 선두를 선배님께 양보했다.
여기가 바로 장터목 대피소
새벽 4시부터 오르기 시작해 장터목대피소에 당도한 것이 8시 30분쯤. 6시반쯤 간식으로 빵을 좀 먹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싸온 도시락을 먹을 순서였다. 선배님이 돼지고기와 라면사리까지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끓였고, 나는 산에서도 굳이 잘 먹겠다는 일념으로 얼린 냉면 육수와 도토리묵, 양념한 김치, 채썬 오이로 묵사발을 만들었다. 장터목 휴게소에선 바람이 꽤 불어 그늘에 있으면 바람막이를 입고도 덜덜 떨렸던 참이라, 뜨끈한 찌개도 먹고 곧이어 시원한 묵사발도 먹으며 꾸역꾸역 엄청난 양의 밥을 삼켰다. 점심은 하산 후에 느즈막히 식당에서 사먹을 작정이라 최대한 많이 먹어두라는 선배님의 당부 말씀. ㅋㅋ
해발 1750미터라는 장터목 대피소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와.. 지리산이 정말 큰산이로구나. 사방으로 겹겹이 펼쳐진 능선이 끝이 없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 천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 시간이 9시 30분.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상까지 목표시간은 대략 11시. 정상에서 좀 노닥거리다가 3시간 동안 하산해 점심 먹으면 딱이겠군, 했다.
보통 산에서는 1km 걷는데 30분을 예상한다. 헌데 지리산 표지판은 거리표시가 너무 박한 느낌! 서울 근교 산에서 느끼는 거리감보다 너무 멀었다. 500미터 거리 줄이기가 어찌나 어렵고 오래 걸리던지. ㅠ.ㅠ 틀림없이 표지판 잘못됐다고 투덜투덜 나중엔 욕이 막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1.5km냐고! 3km도 넘는 것 같은데!
길이 멀어서 욕이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운무와 구름에 휩싸였다 벗어졌다를 반복하는 풍경은 기가 막혔다. 우와...
물론 걱정스럽기도 했다. 계속 이렇게 운무가 몰려오면 천왕봉에서 시계가 별로 안 좋을텐데.. ㅠ.ㅠ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이왕이면 하늘이 맑게 개기를 빌며 바위 비탈을 오르고 또 올랐다.
드문드문 고사목을 만나 높은 산임을 실감하며 드디어 1915미터 천왕봉 정상!
걱정했던 대로 정상 부근은 구름에 휩싸여 시계가 좋지 못했고... 좁아터진 정상석 부근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고 무셔라.
째뜬 내가 드디어 지리산 꼭대기를 올랐다는 뿌듯함과 행복함에 휩싸였다. 한라산 꼭대기는 어렸을 때 멋모르고 올라가긴 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남한 최고봉을 올랐고, 두번째로 높은 지리산 천왕봉도 드디어 구경했으니 이제 남은 건 설악산 대청봉 뿐이로다! ㅎㅎㅎ 장하다.
하산길은 중산리 계곡으로 3시간만 내려가면 된다고 했으니 최대한 정상 등반의 기쁨을 만끽하며 아이스커피도 한 모금 마신 뒤 11시반쯤 슬슬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복병은 역시나 한낮의 더위였다. 천왕봉 정상 코스는 능선길이 많지 않아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올랐는데, 내려갈 때는 숲을 벗어나 뙤약볕으로 걷는 길이 꽤 됐고, 28,9도 정도라고는 해도 습기와 열기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물은 총 2리터 정도면 넉넉하다고 했었는데;;; 1.5km쯤 남았다고 했을 무렵 결국 내 물은 동이 나버렸고 후배와 동기에게 물과 음료를 얻어마시며 민폐를 끼쳐야 했다.
산에서는 절대 주변 사람들 물 뺏어먹으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어흑. 게다가 총 6.5km였던가... 3시간이면 된다고 하던 하산길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가도 가도 끝이 없어! 하도 지리지리해서 지리산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다리는 무겁고, 땀은 쏟이지는데 계속 덥고... 어휴. 경사가 가파르지 않는 한 숨가쁠 이유도 없는 하산길은 속도만 잘 유지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이 떨어져 산을 내려가는 게 고역일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산길에 비하면 오히려 천왕봉 올라가기 직전엔 쌩쌩한 편이었네 그려.
폭염에 무박2일로 지리산에 간다고 했을때 주변에서 혹시 탈진할까 우려된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숨도 안찬데 너무 힘들고 진빠지고 금방이라도 눕고 싶고. 마지막 삼거리대피소였던가... 거기서 쉴 땐 나도 모르게 배낭을 맨 채 의자에 드러누워버렸다.
하여간 10시간을 예상했다가 11시간 반만에 무사히 내려와 중산리 계곡 앞 식당에서 대충 씻고 옷도 갈아입은 뒤 감자전과 비빔밥으로 맛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서울로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은 5시. 종주팀 중에는 무려 9시간만에 33km를 달려 내려와 벌써부터 쉬며 기다린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인간이 아닌게야. ㅠ.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와 24시간 만에 신사역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 보니, 정말 지난 시간이 꿈결 같았다. 우와 내가 지리산 천왕봉엘 올라갔다니! 당연히 그날은 지리산 숲의 정기를 받으며 체력을 탈탈 소진한 뒤끝이라 집에 돌아와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
그러나 지리산 효과는 며칠 가지 못했다. 매일같이 부딪쳐야 하는 아래층 아저씨 아줌마와 말을 섞기만 해도 엄마도 나도 혈압이 올라갔다. 우엑!
번역은 과거 수도자들의 수행 도구였다는 말도 있듯이, 드물게 잠깐씩 짧은 작업을 할 땐 그래도 마음의 평화가 온 것 같았지만, 불면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잠 안오는 밤에 뽀시락뽀시락 또 생산적인 취미생활을 하는 수밖엔 없었다. ^^
마침 출판사 다니는 후배가 서울도서전 홍보물로 만들었다는 에코백을 준 게 있었는데, 보라색과 민트색 중에 내 취향대로 민트색 프린트를 고르긴 했어도 딱히 내가 좋아하는 '푸른 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반대편을 푸른색 자수로 장식하리라!
자수책을 뒤적여 여름에 맞게 시원해보이는 도안을 골라 가방에 밑그림을 그렸다.
요즘엔 알록달록한 자수보다 이렇게 단색 자수 도안이 더 마음에 든다. 나중에 자수액자를 만들어도 예쁠 것 같다.
왼쪽이 선물받은 에코백의 원래 정면이고, 가운데는 내가 자수를 놓아 새로이 탄생한 정면이고... 에코백의 단점인 수납 문제를 해결하고 지저분한 자수 실매듭도 가리고자 한쪽에만 천을 대고 주머니도 달아 오른쪽 사진처럼 안감이 탄생했다.
생각보다 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자수실도 많이 들어, 처음 2개나 사놓았던 DMC 791번실이 모자라 중도에 멈췄다가 동대문시장에 다녀와야했다. 벌써 두어번 들고 나가보았는데, 이젠 정말 가벼운 천가방이 아니고선 어깨가 아파서 뭘 매고 다닐 수가 없다. 이것저것 많이도 넣고 다니는 내 취향엔 크기가 좀 작다 싶지만 그래도 캔버스 천이 두툼한 편이라 꽤 오래 애용할 것 같다.
가방의 완성과 더불어 더 이상 맘고생 할 일이 없으면 했으나.. 지난주에도 또 접촉사고로 전전긍긍할 일이 생겨 밤에 또 자수함을 꺼냈다. ㅠ.ㅠ 이번엔 간단하게 선인장 도안을 이리저리 참고해 냉장고 마그넷을 만들었다.
마침 친구 생일도 돌아오겠다;; 지난번에 받은 기프티콘에 답례겸... 자수 브로치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친구의 취향을 감안한 선택이다.
친구의 이니셜까지 새겨넣고도 막상 냉장고에 붙여보니 넘나 예뻐서 선물하지 말고 그냥 내가 가질까 한참 고민했다. ㅋㅋ (그러나 아직 전달하지 않았으므로 계속 유혹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또 만들긴 마그넷 재료가 부족해서리...
요 전 포스팅을 올린 뒤 비로소 나름 마음의 정리도 많이 된 느낌이고, 불면도 어느정도는 해소된 듯하다. 어차피 창피한 김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나의 노력과 그 결과물 또한 자랑하고 싶었다. 남아도는 잉여력과 생산성의 결과물이 예쁘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은가. ㅠ.ㅠ
달력을 찾아보니 중앙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전시회를 다녀왔던게 벌써 한달도 더 지난 5월 21일이다. 기억 휘발되기 전에 후기 남기려고 바로 며칠 뒤에 사진만 대충 골라 올려두고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5월말엔 그러고 보니 나름 친구들이랑 많이도 놀러다녔네그려.
몽골은 언제고 꼭 가보고싶은 여행지이기도 해서, 몽골 관련 전시라기에 기대가 컸다. 중박에서 특별전시하는 공간인 본관 건너편 전시실이 아니라, 본관 내부에 따로 기획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더라. 만나는 장소를 당연히 매표소 앞이라고 했다가 예상한 곳에 매표소가 없어 다들 좀 당황했으나 우리에겐 휴대폰이 있으니 헤맬 일은 없었다.
벌써 한달도 더 지나버려서 사진을 보아도 그때 느꼈던 세세한 감동이나 신기함은 잊히고 말았다. ㅠ.ㅠ 암튼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도 거슬렸던 건 해설하는 분이 자꾸만 '저희 나라'라고 설명했던 거다. 몽골을 우리나라보다 높일 생각이 있었던 건 분명 아니겠고 관람객을 너무 존대하려다 보니 초심자의 실수겠거니 짐작하면서도 너무 귀에 거슬려서 나중엔 설명듣다 뒤로 빠지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의 도슨트도 다들 자원봉사로 알고 있다. 기본 소양은 다들 검증되었을텐데 왜 기초적인 말실수로 점수를 깎이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날의 짜증스러운 마음 같아선 중앙박물관 게시판에 전시 날짜와 시간대를 올려 담당자의 잘못을 '시정'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도 고민했으나, 결국 게을러서.. 그리고 또 뭔가 짠하기도 해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ㅋ
하여간에 전시는 볼만했다. 관람료가 6천원이라보니 ^^; 특별기획전시 치고 비싸지 않아.. 뭐 이런 느낌이었고 그래서 가성비가 좋았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몽골은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하는 대규모 박물관이 마땅히 있질 않아서 몽골에 막상 가도 이런 정도의 문화재를 한꺼번에 보긴 힘들다고 하는 것 같다. 암튼.. 몽골의 선사시대부터 칭기즈칸 시대까지 생활상과 역사를 훑어볼 수 있고, 신기하고 멋진 유물과 기록들이 꽤 많았다.
아래는 실제로 사용했던 걸까, 의례용일까 아니면 장식품일까 궁금했으나 결국 묻지 못했던, 주요 유물 안장이다. 사진 잘 찍었다고 스스로 흡족했음. ㅎㅎ
황후의 옷 치고 덜 화려하다고 느낌 ^^;
아마도 황후의 신발;;
'마두금'이란 전통 악기
정교한 공예품으로 소개된 물건들이었던 것 같은데 굳이 왜 찍어왔는지, 내가 왜 올렸는지 기억 안난다. ㅠ.ㅠ 경복궁 꽃담이나 아미산 굴뚝처럼 몽골에서도 도자기로 정교하게 구운 장식물들을 만들었단 게 신기했나? 에효...
암튼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의 대나무 뼈대를 벽처럼 세워 공간을 나누고, 마차와 식기 같은 생활 유물도 볼 수 있게 해놨다. 칸, 카안, 카간..의 차이를 듣기도 했는데...
척추협착증 수술 때문인지 엄마는 식탁 의자의 나무 등받이를 불편해해서 늘 쿠션을 대고 앉아야 한다. 근데 쿠션은 자꾸 부엌 바닥으로 떨어져 성가시고 그렇다고 리본 달린 방석을 묶어놓으니 또 보기가 싫어서 결국 어버이날 선물 겸 은방을 꽃 자수를 놓은 쿠션 등받이를 만들었다. ^^;
우선 때 안 타는 진밤색 천을 사다가 은방울꽃 자수를 놓고...
등받이로 씌우려면 나름 튼튼해야 하므로 심지와 안감을 넣어 퀼트 비스무리하게 꿰매고...
얼렁뚱땅 솜을 넣을 겹천까지 꿰매 완성! (내가 만들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그럴듯하게 탄생했는지 돌이켜보아도 잘 모르겠다. ㅎㅎ)
아래는 구름솜을 사다가 채워넣고 의자에 씌운 모습이다.
엄마는 물론 매우 만족하시었고... 한참을 뜸들이다 결국 내가 앉을 의자는 쿠션솜 없이 그냥 자수 등받이로만 만들어 씌웠다.
보통 사진이 들어가는 내용은 휴대폰으로 사진만 먼저 올려놨다가 텍스트는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적어넣고 포스팅을 완성하는데;; ㅠ.ㅠ 일 없다고 컴퓨터를 아예 멀리하다가 실수를 저질렀다. 완성되지도 않은 포스팅을 공개하다니 창피하도다.. ㅎㅎ 그럼에도 계속 컴퓨터 전원조차 켜지 않는 게으른 나날을 며칠 보내고 이제 겨우 긴 메일을 써야해서 자리 잡고 앉았다.
비공개로 차곡차곡 쌓아둔 포스팅 갯수가 꽤 되는데;; 영화나 전시, 책 본 후기는 아무래도 좀 더 공들여서 생각하며 써야하니 도무지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노상 침방나인 같은 자수 포스팅이나 하고 있으려니 그 또한 민망하여 저어하였으나 노출된 김에 또 핑계삼아 자랑질을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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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력 폭발로 인해 틈틈이 이어지는 취미생활의 기록이다. 아마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지 않다면 며칠에 하나씩 뭔가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으나, 하루이틀 빡세게 바늘을 쥐고 나면 손가락마디까지 죄다 뻣뻣해져서 그나마 다행히 쉬엄쉬엄 하고 있다.
나름 작품 완성 순서대로 설명해보자면...
1. 컵받침
음력 1월이었던 작은올케 생일 선물로 만든 작품이다. 자수책을 보며 본인이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골랐고, 브로치 같은 건 잘 안하고 다니니 실용적인 컵받침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뒷면엔 퀼트용 천을 골라 꿰맸더니, 친구가 뒷면이 더 예쁘다는 망언을 하며 약을 올렸다. 프린트 원단이 더 예쁜데 고생되게 이런 짓을 뭣하러 하느냐고.. ㅋㅋ
그러게... 손자수, 손뜨개, 손바느질... 요즘 같은 디지털, IT 최강 시대에 왜 이런 아날로그 회귀성 노동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뭐...내눈엔 이게 더 예쁘니까? ^^*
나름 생일선물이라고 리본으로 묶어 포장해 건넸더니, 생일 주인공은 아까워서 어디 컵받침으로 쓰겠냐며 벽에 걸어놔야겠다고 했다. 아니 그럼 안 되지! (오른쪽 아래는 재단이 잘못돼서 크기가 좀 다르고 정사각형 아니라고 클레임 들어왔었다;; ㅋ)
얼마간 걸어뒀다가 컵받침으로 쓴다고 하더니만 요샌 쓰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컵받침으로 첫작품이었는데, 컵을 올려두려면 무늬를 가장자리쪽으로 작게 넣어 컵을 올려도 자수가 보이도록 하는 도안을 써야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치만.... 난 계속 우길란다. 컵받침도 가운데 무늬가 더 예쁘다!
집에 가서 이렇게 걸어두었다고 보내온 인증샷이다
2. 꽃 브로치
장미와 수국을 표현한 건데 그래보이나? ^^;
이건 전작에 이어 음력1월 마지막날 생신이었던 울 왕비마마를 위해 만든 선물이다.
꼬물꼬물 노상 자수를 놓고는 있는데 막상 당신에겐 하나도 선물을 안해드려 속으로 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마침 생신도 돌아오겠다, 얼른 브로치를 수놓았다. 왕비마마 취향에 맞게 분홍분홍, 보라보라한 느낌의 장미와 수국.
여기저기 달아보다가 니트 조끼에 가장 잘 어울린다며 몇번 하고 다니셨더랬다.
1, 2번 선물은 같은 날 증정식을 했으므로, 포장 완제품(?)도 함께 찍어봄
3. 이니셜 브로치
한달동안 동거하고 있던 친구가 1, 2번 선물 제작의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게다가 또 3월말 출국 바로 다음주가 생일이었으니 하나 작품을 만들어주겠다고, 뭐든 골라보라고 호기롭게 자수책을 들이밀었더랬다.
허나 친구는 고생스럽게 뭘! 아무것도 하지 마! 이런 식이었다. 그럼 내 맘대로 젤 쉬운 꽃브로치 하나 만들어준다고 협박했더니 팬심 폭발하여 '그분'의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ㅎㅎ 그분이 사인할 때 덧붙이는 옆으로 뚱뚱한 하트까지 나름 도안도 팬클럽을 여기저기 뒤져서 새기고 꾸며 선물했다.
자수실을 완전히 구비하지 않은 때라... 이제보니 잔잔한 꽃색깔이 좀 더 다채로웠으면하는 마음이 있네그려. 암튼 이 브로치는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4. 별자리 컵받침
아주 수월하고 시간 덜 드는 단색 도안을 골라 또 다시 꼼지락꼼지락 만들어본 컵받침 세트.
열심히 다렸더니 번떡번떡 ㅋㅋ
이 또한 크기가 살짝 제각각이다. 아 몰랑. 공산품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모서리 꿰매서 뾰족하게 뒤집기가 만만칠 않았다. 핑계라면 앞뒤로 제법 두툼한 리넨천을 붙였더니만... ㅎㅎ
5. 꽃 브로치 again
엄마한테 만들어드린 장미꽃 자수를 분홍바탕에 놓아본 것. 이십대부터 입때껏 핑크공주로 살고 있는 후배를 위해 고른 배색이다. ^^;
근데 이런 꽃자수 브로치는 나 같은 사람이나 좋아라하지 개인적인 스타일상 막상 받고도 처치곤란으로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코백 같은데나 달면 모를까... 근데 또 딱 떨어지는 정장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에코백 패션을 모른다! ㅋㅋ
6. 자수 손수건
마지막으로 주문(?)받은 선물이다. 설날에 모였을 때 큰올케는 손수건용 자수 도안을 골랐다. 원래는 파우치에 놓인 꽃다발이었는데 자수 손수건을 갖고 싶으시다고...
해서 지난주 생일에 맞춰 완성하느라 다시 손수건이랑 실을 더 사러 동대문에 다녀온 후에야 마무리된 작품. 레이스까지 달려있는 자수용 손수건을 찾으려 발품을 꽤 팔았으나 못 구하고 ㅠ.ㅠ 오버로크 처리된 1500원짜리 손수건을 사와 가장자리를 홈질로 꿰맸다. 자수가 아까워서 그냥 놔둘 수가 있어야지!
원본사진과 비교샷 ^^
원본은 바탕이 베이지색이라 꽃봉오리가 흰색이지만, 흰바탕인 손수건인지라 연노랑으로 바꿨고, 주인공의 주문대로 선물받을 이의 이니셜도 새겨넣었다. 내가 해놓고도 계속 감탄하며 사진도 여러장 남김 ㅋㅋ
원래는 한쪽에만 꽃다발을 수놓을까 했으나...
반대편이 넘 심심할까봐.. 그리고 또 나의 이니셜도 어딘가 남기고 싶어서 욕심을 냈다. 전문가의 도안을 따라한 게 아니고 내 맘대로 배열해놓고 막 예술가적 감수성 폭발했다고 자뻑모드..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