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의 낡은 베란다 창문. 안닦은지 몇년인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원래 그 임무는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암튼 간간이 들이친 빗방울 맺힌 자리에 다시 흙먼지가 말라붙어 알공달공 희뿌연 창문을 볼 때마다 비오는 날 저거 한 번 닦아줘야 하는데... 하고 마음만 먹었다가 드디어 오늘 해치웠다. 생각은 워낙 오래전부터 했던 터라 지난 장마철에 다이소에서 천원짜리 땡땡이 비옷도 이미 사다뒀었다. 2천원짜리를 살까, 천원짜리를 살까 하다 어차피 한 번 입고 버릴 텐데 싼 거 사자 했더니만 ㅋㅋㅋ 이번엔 완전 싼 게 비지떡. 비닐이 어찌나 얇은지 스냅단추 채우다가 찢어지게 생긴 데다 모자가 작아서 머리가 다 가려지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비옷에 장화, 고무장갑까지 완전무장 하고서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가지고 나가 휘휘 유리창에 물을 뿌리고 나서 문질렀는데, 닦을 땐 말끔한 것 같더니만 들어와서 보니 얼룩덜룩 제대로 안닦였다. 그나마 먼저 닦은 엄마네 마루쪽창문이 좀 더 깨끗하고, 우리집 창문엔 스펀지 지나간 자국이 부채꼴로 선명하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그래도 안한 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하고 있다. 일단 심한 흙먼지를 닦아내고 나면 마른 날 마른걸레로 슥슥 창문 닦는 게 수월하겠지. 과연 마른 날 창문닦기에 나서기까지 몇달을 또 벼르게 될지 자신은 없지만서도.

 

이왕 비옷 떨쳐입은 김에 비오는 날 또 하나의 숙원사업이랄까 로망도 실천했다. 다름 아닌 빗물 세차. 언젠가 영국에 살던 친구가  그랬다. 자기네 동네에선 비만 오면 아저씨들이 비옷 입고 나와 슬금슬금 자동차를 닦는다나. 그래서 비록 마일리지 엄청난 고물차일지언정 다들 차가 깨끗하다고. 직딩시절부터 나는 차가 더럽기로 유명했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데 대체 세차를 언제 하냐고! (지금도 밤엔 세차장 영업 안 하지 않나?) 주말에는 놀러나가거나 밀린 잠 자야하고 말이지. 준백수인 요즘도 차는 쓰는 날보다 세워두는 날이 더 많아 차안은 깨끗한 편이지만, 차고 바로 위에 가지를 뻗은 앵두나무, 무궁화, 사철나무에서 왜들 그렇게 철철이 잎과 꽃이 떨어지는지 원! 특히나 누렇게 차체에 엉겨붙은 무궁화 꽃은 정말 더럽고 싫다.

 

요즘 특히나 걸핏하면 비 내리고 무궁화꽃은 계속해서 떨어져내려 차체에 말라붙었다가 시커멓게 썩어 심하면 똥같아 보인다고 엄마가 며칠 전 병원 가며 언짢아하셨다. 내 돈 내고 시키는 건데도 차가 너무 더러우면 세차장에 맡길 때도 좀 민망하다고 생각. 어차피 계속 내린 비에 먼지는 다 씻겨내려갔으니, 무궁화꽃이랑 잎 말라붙어 시커멓게 된 부분만 닦아주면 되는 일이었다. 역시나 고양이 세수하듯 걸레로 알량하게 얼룩을 지우고 들어와, 아까보다는 확실히 말갛게 변한 베란다 유리창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내다보고 있자니 퍽이나 뿌듯하다. 근래들어 처음으로 몸을 이롭게 써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 -_-;

 

비오는 날의 마지막 푸닥거리는 아무래도 부침개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지만... 얼굴까지 튀긴 구정물  샥 다 씻고 나왔는데 또 온몸에 기름냄새 배게 하고 싶진 않다규~! 그러니까 오늘의 우천기념 푸닥거리 노동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아무려나 덴빈이 몰고온 비바람은 웬간히 하고 지나가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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