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이상하게 밤만 되면 미친듯이 쏟아지기를 여러날.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동안에 내려 오가는 사람들 발목을 잡는 것보다는 그래도 밤새 요란하게 내리다 날 새면서 그치는 게 낫긴 하다. 헌데 밤중에 폭우가 내리니 간간이 동네가 시끄럽다. 요란한 빗소리도 빗소리려니와 저 아래 개천변에서 딩동댕동 경고방송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구청이나 소방서에서 담당자들이 야간 순찰을 도는 것 같진 않고, 최근 천변에 강우량이나 수위 센서 같은 것을 설치한 모양이다.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 싶으면 발랄경쾌한 방송음악이 들리면서 뭐라뭐라 떠들어대는데 오늘밤에도 벌써 몇번째 반복되는 상황이다.

 

으음, 개천에서 언덕 위 우리집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려나. 골목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내부순환로와 그 아래로 흐르는 개천이 정면으로 보이니 그리 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당연히 경고방송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이리라. 이렇게 철철 비오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개천변 산책로엘 대체 누가 나가겠냐고 생각하지만, 그야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 그렇다는 것이고 간혹 그 상식을 깨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실제로 몇년 전 비오는 날 바로 저 아래 개천변을 산책하던 사람이 하수구에서 쏟아진 물에 휩쓸려 변을 당했고 시신은 강화도 앞 한강에서 겨우 찾았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그 사건 이후 폭우 내려 물 불어난 개천에 왜 하필 새벽같이 산책을 나갔느냐며, 그 사람을 미워한  배우자가 일부러 내보내 죽게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동네에 돌기도 했다. 그러니까 폭우 쏟아질 땐 개천변에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방송이 대낮이든 한밤중이든 상관없이 흘러 나오게 만든 건 잘한 일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덕 위 우리집에서까지 들리는 저 방송이 개천변 바로 옆에 있는 집에선 얼마나 크게 들릴까. 요즘 빗소리는 자던 사람을 깨울 만큼 요란하던데, 거기다 경고방송까지!

 

저 아랫동네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뭔 쓸데없는 걱정이냐 싶으면서도, 와르르 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면 자꾸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아 또 짜증나는 딩동댕동 음악과 함께 경고방송 나오겠구나 싶어서. 벌써 몇번째 이맛살을 팍 구기며 짜증을 내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다.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 때 쓰나미 경고방송으로 여러 주민의 목숨을 구했으나 본인은 탈출하지 못했던 여공무원 이야기다. 이 동네도 경고방송을 하든 말든 위험한 개천변에 내려갈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 또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경고방송 덕분에 위험을 모면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계속 방송을 이어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효과가 있긴 있나? 정말 유효한 조치였는지는 아마 나도 잘 모르고 이 동네 구청도 모를 것 같기는 하다만, 시끄러워도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까칠함을 달래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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