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언 레시피

놀잇감 2012. 8. 16. 17:03

 

보나마나 <카모메 식당> 아류작이겠군, 하면서도 보러갔던 영화다. 포스터 제목 위에도 아예 '해외 스테이 무비'(대체 뭔말이냐;;)라고 적혀 있다. ㅋㅋㅋ

 

<훌라걸스> 볼 때도 일본 탄광촌에 왜 뜬금없이 하와이풍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건가 의아했었는데, 하와이 땅 절반이 일본인 소유이고 영어 못지않게 일본어가 통하며 그리로 은퇴하는 일본인들이 엄청 많다고 들은 풍월을 떠올려보면 그럴만도 한 것 같다. 뜬금없이 내가 또 왜 <훌라걸스>를 떠올렸는가 하면 아오이 유우 때문이다. 포스터엔 떡하니 이름이 세번째로 적혀 있지만 우정출연 비슷한 것인듯 영화 도입부에 1분쯤 나왔다가 사라지곤 끝이다. 특히나 어찌나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던지...

 

원래 제목은 <하노카 보이>인 것 같은데 굳이 <하와이언 레시피>로 바꾼 이유는 하와이와 음식을 강조하기 위함이겠거니.

1년 전 하와이의 한적한 섬으로 짜증 많은 여친 아오이 유우랑 놀러갔다 헤어진 뒤, 레오는 인상 깊었던 하노카  마을에서 아무 생각없이 1년쯤 지내기로 한다.

 

대체 어떻게 유지하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영화관에 취직해 영사기 보조를 하며 딩가딩가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홀로 수영도 하고 온통 노인들 뿐인 소수의 마을 주민과 선문답을 주고받듯 소통하는 것이 삶의 전부다. 밀가루 포대를 배달해주러 갔다가 영화관 매점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말라사다(빵 이름이다)를 만드는 비이 할머니를 만나고,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갖가지 음식을 매개로 싹트는 레오와 비이 할머니의 우정(?)이 그려진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해변, 싱그러운 초원, 파란 하늘, 아름다운 절벽이 수시로 비춰지면서 그냥 하품나게 심심하고 잔잔한 일상이 그려지는데 놀랍게도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비이 할머니의 오래된 부엌 살림살이며, 매일매일 레오를 먹이려고 공짜로 만들어주는 온갖 진미도 그렇고 아기자기 화면이 예쁘다. 사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극적이지 않아도 레오가 굳이 관광지도 아닌 그 마을로 흘러들어간 목적도 원래 그렇게 탱자탱자 놀고 먹으려고 한 것이니 그러려니 하게 되는 듯.

 

이 영화 보고나서 제일 많은 후기가 '<양배추롤> 만들어먹고 싶다'는 것이었다는데, 나는 느끼할 것 같아서 영 시도해볼 마음이 안드는 대신에 과정샷이 별로 안나온 다른 먹거리들이 훨씬 더 땡겼다. 다들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말라사다'도 먹어보고 싶어졌는데, 밀가루 반죽을 네모나게 튀겨서 설탕에 버무린 빵이 정말 그렇게도 맛이 있을까? ㅎ

 

 

사진은 하노카의 명물인 달무지개를 보러 오두막 같은데 찾아간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버니드롭>이 생각났다. 나란히 계단이나 난간에 쪼그려 앉아 있는 장면을 일본 감독들도 나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ㅋ

 

몇몇 인상적인 대사도 있었는데 벌써 가물가물...

"대답하기 곤란해지면 넌 입을 다무는구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하면 안되는 일이란 없다"

"인생은 누군가를 계속 만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

(다 정확하진 않다;;)

 

다른 나라에서 여유롭게 한 1년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을 품은 사람들의 옆구리를 살짝 긁어주는 영화다. 아무 대가 없이 맛있는 산해진미를 매일매일 차려주는 이웃집 할머니라니! 어휴. 물론 뭐 그런 걸 억어먹으려면 레오처럼 잘 생겨야 하는 거겠지. 그래도 등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냥 무성의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여자, 남자라는 점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듯.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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