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일 종일 비가 내린다더라는 아버지의 귀띔을 듣고도
아침에 집을 나설 땐 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서 굳이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차 트렁크에든 작업실 서랍에든 우산 하나 쯤 당연히 있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 병실 들렀다 나오니 어느새 가는 빗줄기가 땅바닥을 죄다 적셔놓았던데
예상과 달리 차 트렁크엔 우산이 없었다.
그나마 점퍼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주차장에서 다시 작업실로 올라왔는데
분명히 두 개나 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작은 우산이 서랍 안에 온데간데 없다.
그렇다면 그간 죄다 집으로 실어날라다 놓았다는 뜻인데
어린 시절과 달리 우산이 흔하디 흔하고 보니,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나 보다.
옛날에야 모든 물자가 다 부족하고 귀했지만
특히 우산은 왜 식구 수보다 꼭 하나씩 모자랐는지 원.
제일 좋은 장우산은 당연히 아버지 차지였고
그 다음으로 좋은 체크무늬 접이식 우산은 삼남매 중에서 제일 먼저 학교엘 가는 사람 차지가 되어야 마땅했지만, 걸을 때마다 차르륵차르륵 소리가 나는 대나무 비닐우산을 몹시 창피하게 여기는 큰동생이 떼를 쓰는 경우엔 선뜻 내가 양보했던 것 같다.
사실 접고 펴는 성능이 좋지 않은 접이식 우산을 접을 때 나는 걸핏하면 손가락 살이 끼여
피가 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비닐우산을 쓰는 게 좋았기 때문.
하지만 내가 비닐우산을 쓰고 학교엘 가면, 뒤에서 걸어오던 짖궂은 반 아이들이
우산 노래를 부르며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부분에서 멀쩡했던 내 우산을 공연히 지들 우산 살로 찍어 찢어뜨리곤 도망가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등굣길부터 눈물바람을 비치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중학교에 들어간 뒤론 좀 우산이 흔해져,
결혼식이나 회갑 답례품으로 늘 우산이 생기는 바람에 나름대로 우산을 골라 쓰는 재미(?)도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무렵엔 교복을 입고도 비맞는 걸 어찌나 좋아했는지 ^^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몰라도 오후부터 비온다는 예보 따위엔 당연히 우산 없이 학교엘 갔다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홀딱 젖은 몰골로도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모든 게 넘치도록 풍요로워진 지금은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사들인 우산까지 합해서 내 것으로만 우산이 서너 개가 넘는 것 같고, 그것 말고도 달랑 세 식구 사는 집에 놓인 우산꽂이에 늘상 들어 있는 우산도 대여섯개가 넘는다.
아마 장롱 속엔 아직 꺼내보지도 않은 새 우산도 몇 개 들어있을 거다.
그런데도 우산 욕심은 끝이 없어서...
기분에 따라 골라 들 수 있게, 모양이나 색깔이 예쁜 우산을 보면 또 사고 싶어진다.
하긴 등산광이신 울 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2번 가는 등산을 빠뜨리지 않기 때문에 방수 재킷이며 비옷을 챙겨가는 것 이외에도 늘 최소형, 최경량 우산을 보면 슬그머니 사들고 오시는 듯.
산성비 탓도 있겠지만
우리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너도나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데, 이상스럽게도 외국엘 가보면 비가 철철 오는데도 그냥 맞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필리핀 같은 데야 워낙 아직 물자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우기엔 우산으로 전혀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들었지만,
똑같이 산성비 걱정을 할 것 같은 뉴욕이나 런던의 대도시에서도 그렇다는 게 참 이상했다.
모자나 후드를 눌러 쓴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발걸음을 서두르지도 않고 그저 꿋꿋하게
옷깃만 세우고 비를 맞고 걸어다는 사람들 속에서 가느다란 빗줄기에도 유난스럽게 우산을 펼쳐들고 걸어가다 우산을 쓴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뜨악했던 순간이 몇번이나 있었더랬다.
아 맞다, 타이페이에 출장 갔을 땐 제법 빗줄기가 굵었는데도 그랬었지...
어쨌든 나는 이제 비 맞는 것에 익숙하질 않은 지 오래라
오늘 아침 후드를 뒤집어 쓰고도 주차장에서 얼마 안되는 건물 현관까지 무의식적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왔고, 그런 내 모습이 뒤늦게 우스워 낄낄 웃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 굵어 보이는데
이따가 나갈 땐 잠깐이나마 의연하게 비를 맞고 걸어가게 될까, 어쩔까... 모르겠다.
암튼 집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우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아도
오늘 같은 우중충한 기분을 달래줄 화사한 색깔의 봄우산 하나 더 장만해야겠다는 생각만 불쑥 치민다.
지금 갖고 있는 우산은 분홍색, 카키색, 아이보리색, 감색, 자주색밖엔 없단 말이지...
올봄엔 신록을 닮은 연두색이나 싱그러운 하늘색 우산을 또 장만하면 누가 흉보려나.. -_-;;
아.. 우산 사러 가고 싶어라.
아침에 집을 나설 땐 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서 굳이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차 트렁크에든 작업실 서랍에든 우산 하나 쯤 당연히 있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 병실 들렀다 나오니 어느새 가는 빗줄기가 땅바닥을 죄다 적셔놓았던데
예상과 달리 차 트렁크엔 우산이 없었다.
그나마 점퍼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주차장에서 다시 작업실로 올라왔는데
분명히 두 개나 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작은 우산이 서랍 안에 온데간데 없다.
그렇다면 그간 죄다 집으로 실어날라다 놓았다는 뜻인데
어린 시절과 달리 우산이 흔하디 흔하고 보니,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나 보다.
옛날에야 모든 물자가 다 부족하고 귀했지만
특히 우산은 왜 식구 수보다 꼭 하나씩 모자랐는지 원.
제일 좋은 장우산은 당연히 아버지 차지였고
그 다음으로 좋은 체크무늬 접이식 우산은 삼남매 중에서 제일 먼저 학교엘 가는 사람 차지가 되어야 마땅했지만, 걸을 때마다 차르륵차르륵 소리가 나는 대나무 비닐우산을 몹시 창피하게 여기는 큰동생이 떼를 쓰는 경우엔 선뜻 내가 양보했던 것 같다.
사실 접고 펴는 성능이 좋지 않은 접이식 우산을 접을 때 나는 걸핏하면 손가락 살이 끼여
피가 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비닐우산을 쓰는 게 좋았기 때문.
하지만 내가 비닐우산을 쓰고 학교엘 가면, 뒤에서 걸어오던 짖궂은 반 아이들이
우산 노래를 부르며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부분에서 멀쩡했던 내 우산을 공연히 지들 우산 살로 찍어 찢어뜨리곤 도망가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등굣길부터 눈물바람을 비치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중학교에 들어간 뒤론 좀 우산이 흔해져,
결혼식이나 회갑 답례품으로 늘 우산이 생기는 바람에 나름대로 우산을 골라 쓰는 재미(?)도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무렵엔 교복을 입고도 비맞는 걸 어찌나 좋아했는지 ^^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몰라도 오후부터 비온다는 예보 따위엔 당연히 우산 없이 학교엘 갔다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홀딱 젖은 몰골로도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모든 게 넘치도록 풍요로워진 지금은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사들인 우산까지 합해서 내 것으로만 우산이 서너 개가 넘는 것 같고, 그것 말고도 달랑 세 식구 사는 집에 놓인 우산꽂이에 늘상 들어 있는 우산도 대여섯개가 넘는다.
아마 장롱 속엔 아직 꺼내보지도 않은 새 우산도 몇 개 들어있을 거다.
그런데도 우산 욕심은 끝이 없어서...
기분에 따라 골라 들 수 있게, 모양이나 색깔이 예쁜 우산을 보면 또 사고 싶어진다.
하긴 등산광이신 울 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2번 가는 등산을 빠뜨리지 않기 때문에 방수 재킷이며 비옷을 챙겨가는 것 이외에도 늘 최소형, 최경량 우산을 보면 슬그머니 사들고 오시는 듯.
산성비 탓도 있겠지만
우리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너도나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데, 이상스럽게도 외국엘 가보면 비가 철철 오는데도 그냥 맞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필리핀 같은 데야 워낙 아직 물자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우기엔 우산으로 전혀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들었지만,
똑같이 산성비 걱정을 할 것 같은 뉴욕이나 런던의 대도시에서도 그렇다는 게 참 이상했다.
모자나 후드를 눌러 쓴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발걸음을 서두르지도 않고 그저 꿋꿋하게
옷깃만 세우고 비를 맞고 걸어다는 사람들 속에서 가느다란 빗줄기에도 유난스럽게 우산을 펼쳐들고 걸어가다 우산을 쓴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뜨악했던 순간이 몇번이나 있었더랬다.
아 맞다, 타이페이에 출장 갔을 땐 제법 빗줄기가 굵었는데도 그랬었지...
어쨌든 나는 이제 비 맞는 것에 익숙하질 않은 지 오래라
오늘 아침 후드를 뒤집어 쓰고도 주차장에서 얼마 안되는 건물 현관까지 무의식적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왔고, 그런 내 모습이 뒤늦게 우스워 낄낄 웃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 굵어 보이는데
이따가 나갈 땐 잠깐이나마 의연하게 비를 맞고 걸어가게 될까, 어쩔까... 모르겠다.
암튼 집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우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아도
오늘 같은 우중충한 기분을 달래줄 화사한 색깔의 봄우산 하나 더 장만해야겠다는 생각만 불쑥 치민다.
지금 갖고 있는 우산은 분홍색, 카키색, 아이보리색, 감색, 자주색밖엔 없단 말이지...
올봄엔 신록을 닮은 연두색이나 싱그러운 하늘색 우산을 또 장만하면 누가 흉보려나.. -_-;;
아.. 우산 사러 가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