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달아드리거나 사다드리는 건 어째 좀 쑥스럽고 민망했다. 꽃으로만 따져도 카네이션은 내눈에 별로 안 예쁘다. 부모님도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고 출근하는 걸 자랑스레 여기는 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카네이션을 선물했겠지만 그 이후로는 현실적으로 선물만 내미는 게 편했다. 혹시 꽃을 사더라도 깃에 다는 용이 아니라 바구니째 놓고 보는 쪽을 선호했고. 꽃을 달고 나다녀야 하는 민망함에서 놓여나 부모님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동생들이 결혼을 한 뒤 나는 아예 카네이션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올케들이 다 알아서 했으니 말이다. 조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꽃까지 종종 색종이로 만들어와 가슴에 달아드렸던 것도 같고... 암튼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이제 동생들 몫이라고 제쳐두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카네이션이 미학적으로 그리 예쁜 꽃은 아니란 건 다들 인정하는 모양인지 카네이션 바구니는 해를 거듭할수록 달라졌다. 내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올 때만 해도 빨간 카네이션에 안개꽃을 약간 꽂은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더니 올케들이 어버이날 꽃을 대기 시작하며 카네이션과 안개꽃에 장미가 혼합되어 화려해졌다. 언제부턴가는 다른 작은 꽃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기야 수년 전부터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만드는 양상이 달라졌다. 꽃을 한 종류로 하던 경향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꽃을 아름답게 섞어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카네이션 꽃바구니에도 당연히 그런 추세가 적용됐을 것이다.
덕분에 더욱 아름다워진 어버이날 카네이션에 해마다 감탄해왔는데 올해는 정점을 이뤘다. +_+ 두 동생이 가져온 앙증맞은 꽃바구니는 똑같이 카네이션을 활용했으면서도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카네이션 별로 안 예쁘다고 툴툴대던 나의 편견이 교정될 정도였다. 다량으로 제작판매하는 바람에 신선도가 떨어져 그 아름다움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어차피 화무십일홍이랬다(잘하면 2, 3주일도 거뜬한 국화는 예외다 ㅋㅋ). 토요일부터 사흘간 한껏 예쁜 자태를 자랑하다 푹 고꾸라져버린 꽃들을 빼버리고 남은 것들만 다시 추려 유리병에 꽂아놓았는데 식탁 센터피스로 아주 딱이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꽃 한번 쳐다보고 반찬 한번 집어먹고 벌어진 봉오리 한번 쳐다보고... 서양사람들이 정찬 식탁에 왜 꽃을 두는지 알겠다.
동생들이 결혼을 한 뒤 나는 아예 카네이션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올케들이 다 알아서 했으니 말이다. 조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꽃까지 종종 색종이로 만들어와 가슴에 달아드렸던 것도 같고... 암튼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이제 동생들 몫이라고 제쳐두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카네이션이 미학적으로 그리 예쁜 꽃은 아니란 건 다들 인정하는 모양인지 카네이션 바구니는 해를 거듭할수록 달라졌다. 내가 카네이션 바구니를 사올 때만 해도 빨간 카네이션에 안개꽃을 약간 꽂은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더니 올케들이 어버이날 꽃을 대기 시작하며 카네이션과 안개꽃에 장미가 혼합되어 화려해졌다. 언제부턴가는 다른 작은 꽃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기야 수년 전부터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만드는 양상이 달라졌다. 꽃을 한 종류로 하던 경향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꽃을 아름답게 섞어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카네이션 꽃바구니에도 당연히 그런 추세가 적용됐을 것이다.
덕분에 더욱 아름다워진 어버이날 카네이션에 해마다 감탄해왔는데 올해는 정점을 이뤘다. +_+ 두 동생이 가져온 앙증맞은 꽃바구니는 똑같이 카네이션을 활용했으면서도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카네이션 별로 안 예쁘다고 툴툴대던 나의 편견이 교정될 정도였다. 다량으로 제작판매하는 바람에 신선도가 떨어져 그 아름다움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어차피 화무십일홍이랬다(잘하면 2, 3주일도 거뜬한 국화는 예외다 ㅋㅋ). 토요일부터 사흘간 한껏 예쁜 자태를 자랑하다 푹 고꾸라져버린 꽃들을 빼버리고 남은 것들만 다시 추려 유리병에 꽂아놓았는데 식탁 센터피스로 아주 딱이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꽃 한번 쳐다보고 반찬 한번 집어먹고 벌어진 봉오리 한번 쳐다보고... 서양사람들이 정찬 식탁에 왜 꽃을 두는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