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또 까먹고 있다가 막내조카 그림을 찍어 올린 동생 블로그에 가보고 떠올랐다. 조카들 그림 자랑 시리즈로 쓴대놓고 이거 원, 얼른 준우편, 지환이편을 마무리해야 요즘 가장 기대주인 지우편을 쓸 수 있으니 서둘러야겠다. 그동안 지우는 계속해서 천재적인 그림을 그려놓거라!
동생네 집에는 준우 작품과 작품사진이 더 어린 시절부터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내가 열심히 싸이질 하던 시절부터 퍼다놓고 오려놓고 찍어놓은 추억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팔불출 고모에게 천재가 틀림없다며 감탄을 자아내기 시작한 건 네살 때다.
이 시기에 비슷하게 제 아빠를 그린 그림도 있지만 앞으로 그림사진을 잔뜩 올려야하니 엄선하는 수밖에 없다. 암튼 준우도 네살이 되자 스케치북을 하루아침에 뚝딱 다 써버릴 정도로 작품욕에 불타올랐다. 엄마는 크게 그리고 자기는 작게 그리는 걸 이미 네살 때 터득했다는 거 훌륭한 거 아닌가? ㅋㅋㅋ
2005년 4월. 아직 만 세돌도 안된 네살 때 그림이다.
2006년 2월작. 호랑이와 햇님이 매우 닮은 것이 특징이다. ^^;
올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무렵엔 홀로 스케치북을 펴놓고 앉아 쓱쓱 그림을 그려놓고선 제 엄마에게 이게 무슨 그림 같으냐고 물었단다. 자기가 형상화한 모양이 타인에게도 정확하게 전달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또 열광했다. 역시 천재가 틀림없어! >.<
[새] 2006. 2월. 5세 |
[고모(그렇다! 바로 나다ㅋ)]2006. 3월 |
같은해 겨우 한달 새 그린 그림인데 한쪽은 대단히 절제된 선과 단순성이 돋보이는 작품인 반면, 오른쪽은 그림을 사주한 장본인 앞에서 그리려니 짜증이 밀려와 화풍이 달라졌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
어쨌거나 이 오른쪽 그림은 준우가 나를 그려준 첫 작품이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하이힐을 신은 발을 보시라! (당시만 해도 나는 언제나 높은 신발만 신고 다녔을 거다)
[악어] 2006. 2월. 스케치북에 연필. 5세
세로그림을 위로 모으느라 순서가 달라졌다만, 이 그림은 위의 왼쪽 새 그림과 같은날 발견, 촬영된 것이다.
작품명은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 <악어>
이러니 내가 천재소리를 안할 수가 있겠나! ㅋ
[인물화] 이면지에 보라색연필. 5세.
그러나 동생은 동생이고 산후조리기간 동안 죽도록 좋아하는 엄마랑 헤어져 지내야하는 건 모든 아이가 그렇듯 준우에게도 힘겨운 시련이었다. 엄마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유치원에 다녀와선 주로 외할머니나 이모가 돌봐주시고 가끔 우리집에도 왔었는데, 내가 아무리 정신없이 놀아주려 해도 엄마가 그리워서 어깨가 축 쳐졌었다. 어쨌든 그렇게 지우가 태어나고 며칠 뒤 우리집에서 놀다가 그린 그림이다. 누구냐고 물어도 "그냥...."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6월에 찍어서 6월로 기록되어 있지만 내 생각엔 2006년 5월말 작품인듯.
[공룡] 2007년 2월 스케치북에 싸인펜. 6세 |
[엄마와 동생] 2007년 2월. 스케치북에 색연필. 6세 |
2007년 준우 여섯살 때다. 역시나 나이와 함께 그림도 여물었다. 정민이는 공룡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는 건지 준우, 지환이, 지우 다 공룡이라면 아주 사족을 못쓰고 좋아한다. 그 어렵고 긴 외래어 이름을 다 외우는 게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그러고는 공룡을 자주 그리기도 했다. 싸인펜으로 마치 공룡화석을 스케치한 것처럼 쓱쓱쓱 이리도 정교하게 그려놓다니, 나로선 침을 줄줄 흘리며 감탄할밖에. 근데 이건 무슨 공룡일까? +_+
오른쪽 그림은 제 엄마와 동생 지우를 그린 작품이다. 그림 설명을 청했을 때 동생이 자고 있어서 엄마가 행복해한다고 들은 것 같다. 짜식... 엄마를 '임마'라고 적은 것이 참으로 귀엽다. ㅎㅎㅎㅎ
[동현이 헝아] 2007년, 6세
이쯤해서 귀여운 화가 준우의 사진을 공개한다. 지금은 완전 청년 느낌인데 이때만 해도 완전 애기다 애기. ㅠ.ㅠ
작품명은 <동현이 헝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제 사촌형을 그렸다.
이때만 해도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음에도 노상 바쁘다고 빌빌대느라 나는 이렇게 멋진 작품을 그려받지 못했다. 속상하다. 흑... 뭐 그래도 생일 선물로는 늘 그림을 받았으니까!
다섯살 때 생일선물로 가져온, 배꼽도 있고 찌찌도 있는 싸인펜화는 예전에 다른 데 공개한 적이 있으니 이번엔 생략했다. ㅎㅎ
정민이 그림 때도 소개한 적이 있는, 막내고모할머니랑 공동작업한 사포 모빌작품이다. 그 가운데 준우는 세 개를 그렸던 모양인데 마침 사촌동생이 찍어다주어 어찌나 반갑던지 낼름 퍼다놨었다. 곤충 그림만 봐도 딱 준우 느낌이 난다. ^^
역시나 2007년 9월. 6세 때.
드디어 2008년으로 넘어가자. 2007년부턴가 동생이 좋은 카메라를 장만해 사진보기 답답한 미니홈피를 탈피해 블로그 시대를 열면서 작품사진도 훨씬 시원시원해져 퍼오기도 좋다. ㅎㅎ
[무서운 상어] 08년 7월. 도화지에 크레파스와 물감. 7세 |
[낙타거미] 08년 가을. 7세 |
둘 다 준우 유치원에서 발표가 있던 날 교실에 걸려있던 그림을 동생이 찍어온 사진이다. 왼쪽의 바다 풍경 그림에선 갈매기가 어쩜 저리도 정교한지, 그리고 상어를 흔하지 않게 자주색으로 칠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런 채색화도 하나 소장하고 싶은데 흑...
오른쪽 그림은 나도 직접 봤는데 세밀하기가 이를 데 없다!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리는지.. 다른 애들 작품과 완전 비교되면서 천재 DNA에 대한 나의 심중을 굳혔다. 누가 일곱살 때 이런 그림을 그리겠느냐고!!!
[코뿔소] 2009년 10월. 도화지에 연필. 8세 |
모티브가 된 고모할머니 판화작품 |
막내고모할머니의 전시회를 다녀온 준우가 집에 가서 코뿔소 그림을 그렸다며 동생이 찍어 올려주었었다. 사진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니고, 그저 작품이 남긴 인상을 떠올려 그린 그림치고는 정말 잘 그리지 않았나!!! (뭐 카탈로그 보고 따라그린 거라고 해도 어쨌든 휼륭하다;; ㅋ) 왼쪽 작품을 보고 동생은 귀가 어깨에 달린 게 흠이라지만 그런 파격이 더 천재적인 거지 원래! ㅋㅋㅋ
일부러 비교용으로 나란히 놓았는데 볼수록 신기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역시나 제도권 미술교육의 폐해인지 아닌지, 준우도 우리 집에 오면 그림 그리며 놀자는 나의 청을 단박에 거절하고 다른 놀이를 원했다. 공차기라든지 원반던지기라든지 아니면 카페놀이.. -_-; 그러다 어렵사리 그림을 그리자고 꼬드겨보면 한참 열중해 있던 SF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이름도 하나같이 어찌나 웃긴지 원 ^^; 해서 준우가 고모에게 소장을 허락한 마지막 그림은 아래와 같다. 물론 생일 선물 빼고...
작품명은 모르겠고 2010년 4월 작품으로 추정됨. 9세 |
나는 특히 아래쪽 문어 캐릭터가 맘에든다 ㅎㅎ |
다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이래뵈도 착한 애들과 나쁜 애들로 나뉜다. 특히나 '똥파란 사자', '나쁜 문에수' 등 악당 이름이 웃겨죽겠다.
어느덧 준우는 이제 3학년. 10살이다. 요즘은 팽이와 레고, 부루마블을 비롯해 놀잇감이 워낙 많으니 그림을 그리며 놀지 않는다. 그림은 제 동생이 열심히 그려주고 있으니 준우는 축구와 야구에 심취해 몸을 쓰며 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고모는 궁금하다. 준우는 요새 학교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는지. 천재화가의 DNA는 또 언제쯤 발현되어 줄 것인지... 허나 어쩌겠나. 기다림밖엔 답이 없으니 기다려야지.
Posted by 입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