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준비

삶꾸러미 2009. 4. 24. 17:58
원래부터 준비성이 뛰어난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점점 까다롭고 괴팍한 유형으로 변하면서 뭐든 조바심을 품고 진즉에 준비를 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하긴,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척 마음을 놓고 뿌듯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옛날보다 미리 걱정하는 시기가 빨라진 것뿐이라 괜스레 전전긍긍하는 기간만 길어졌으니 그것도 내심 못마땅하다.
아무려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빼곡히 들어있는 5월이 오려면 아직 꽤 남았는데도 나는 열흘전부터 고민에 돌입했다. 생일 챙기면 됐지,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그냥 좀 넘기라고 잔소리하는 올케도 있지만 때맞춰서 조카들 선물 챙기는 것도 고모의 낙인데 어쩌라고! 물론 낙과 더불어 요샌 선택의 고민도 커지긴 했다. 만날 똑같은 걸 사줄 수도 없고...
원래 아이들은 옷선물이랑 책선물을 제일 싫어한단다. 그건 부모가 언제든 사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필수품이지 선물로 기쁘게 받을 품목은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나도 점수를 더 따려면 장난감을 사주어야겠지만 이번엔 녀석들이 못마땅해 하더라도 건설적인 책선물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미 준비를 마쳤다. 슬쩍 어린이날 선물이 뭔지 떠본 공주는 책선물이라고 하자 몹시 실망하여 거세게 항의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선물 주면서 나만 신나면 그만이지 뭐. 요즘 애들 책은 내가 봐도 신기하고 재미나다. *_*
곧이어 어버이날 선물은 또 뭘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왕비마마께서 수월하게 해결해주셨다. 작년에 김영임의 <효> 공연을 보여드렸는데 올해도 또 가고싶으시단다. -_-;; 작년에 공연 볼 때도 마치 중노년계의 이효리라도 되는 듯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김영임 아줌마를 보며 나는 꽤나 의아했는데, 레퍼토리도 비슷할 게 뻔한 그 공연을 울엄마가 또 보고 싶다는 걸 보면, 그리고 벌써 사흘 내내 vip석은 한자리도 남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엄청나게 인기 많은 공연인 모양이다. 아니면 효도는 딱 5월 한달동안에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자식들이 선택하기에 적합한 공연이거나(공연 제목부터 <효>라잖아!). 울 엄만 옛날부터 외할머니가 그리 좋아하셨던 <회심곡> 때문에 가고 싶다고 하셨던 건데 올해는 좀 길게라도 불러주면 좋겠다. 작년엔 화려한 무당차림으로 굿하다 중간에 객석에 내려와 돈 걷어간 것밖에 기억에 안남는다. 내가 보기엔 시큰둥해도 어르신들은 예쁜 그 아줌마가 손한번이라도 잡아주며 잘왔다고 하니 만원짜리는 물론이고 수표까지 막 찔러주더군. 나로선 꽤나 놀라운 문화충격이었다. 나이 들어도 좋아하는 가수나 소리꾼한테 열광하는 건 똑같다는 걸 몰랐다는 게 이상한 건가? 그나마 울 엄만 나훈아, 남진 공연 보고 싶단 소리 안하니 천만다행이다. 그 아저씨들도 중노년계의 <비> 수준이라던데. ㅋㅋ
째뜬 5월 준비는 얼추 끝났다. 언제 어디서 무슨 메뉴로 거국적으로 밥을 먹을까, 를 결정하는 문제는 아직 남았지만 그거야 아랫것들이 정하라고 할 작정이다.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5월을 기다려도 되는데, 왜 아직도 마음이 묵직한지 그걸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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