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구경

놀잇감 2009. 2. 27. 16:43

그간 보고싶은 전시가 무척 많았는데 바쁨과 게으름을 핑계로 통 움직이질 못했다.
그나마도 봄방학 끝나기 전에 조카와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조바심이 게으른 몸을 재촉해 간신히 보러 갔던 게 성곡미술관에서 하는 CJ 그림책 축제.
같은 기간에 볼로냐 그림책 전시회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조선일보에 박힌 미운털에 더하여 이쪽엔 그림책과 원화 말고도 설치미술 작품도 있으니 어린 조카들이 보기에 더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의 열성은 참 대단하여, 그림책과 친해지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까지 죄다 데려온 바람에 동화작가의 낭독시간에 빽빽 울어대질 않나, 설치미술 작품을 마구 흔들어대질 않나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약간 인상이 찌푸려질 때도 있긴 했다. 하기야 그래도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을 책과 친하게 만들어주고 싶겠지.
나의 조카들은 제 엄마한테 미리 하도 교육을 받고 온 탓인지 네살짜리 녀석도 조곤조곤 속삭이며 전시장을 돌아다녀 꽤나 뿌듯했다. 다만, 가끔 광화문에 볼 일 있을 때 부러 성곡미술관에 가서 조각공원 내다보며 마시는 차 한잔이 참 좋았었는데 치사하게도 입구 물확에 개구리밥풀을 심어놓았던 원래 찻집은 아예 문을 닫았고, 작은 건물에 있는 현재 찻집에선 이제 호두 들어간 수제 쿠키도 팔지 않더군. ㅠ.ㅠ 그나마 그 찻집을 이용하려면 전시 매표소에서 찻집 이용권까지 미리 사야했다. 그거야 원래 알고 가긴 했지만, 옛날엔 유자차 같은 전통차도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파는 것도 커피 아니면 병에 든 주스와 물 뿐이라 조금 빈정상했다.
전시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예쁘고 맛있는 찻집도 그냥 계속 유지해주었으면!
 
그래도 좋았던 건, 전시장에서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해주더라는 것. 사실 우리나라처럼 그림전시장에서 사진찍기를 금지하는 데는 없는 것 같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제아무리 유명한 명화도 다 사진찍게 해주던데, 대체 왜 우리나라만 카메라에 인색한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국내외 그림책과 CJ에서 개최했다는 그림책상 원화들, 데이비드 위즈너의 특별초대전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신났다. 내가 어렸을 때의 뻔한 그림책과 달리,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이야기가 돋보이는 요즘 그림책들은 정말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도 재미나고 신기하다. 어른인 나도 그러니 아이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까. 출판계가 아무리 불황이라도 우리나라 엄마들의 교육열 때문에 거의 끄덕없는 분야가 아동서적이라는 건 그나마 고무적이다. 그렇게 책을 열심히 사주고 읽히다가 아이들이 학교에만 들어가면 죄다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열에 하나, 스물에 하나쯤 커가면서 계속해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겠지.

일찍 보러 갔으면 조카나 아이들 데리고 한번 가보시라고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전시였지만 3월 1일에 끝나는 전시에 거의 막차를 탄 셈이니 이런 글을 쓰는 건 순전히 기록과 자랑의 목적 외엔 쓸모가 없어졌다.
올해의 첫 전시회를 느즈막히 끊었으니 어서 퐁피두 전시회도, 클림트도 보러가야지!


Posted by 입때
,